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은혜와 진리의 말씀

106강, 그러므로 네 진을 거룩히 하라

윤주만목사 2019. 6. 17. 08:39


106, 그러므로 네 진을 거룩히 하라

 

신명기 23:914절을 보면

네가 대적을 치러 출진할 때에 모든 악한 일을 스스로 삼갈찌니 너희 중에 누가 밤에 몽설함으로 부정하거든 진 밖으로 나가고 진 안에 들어오지 아니하다가 해질 때에 목욕하고 해진 후에 진에 들어올 것이요 너의 진 밖에 변소를 베풀고 그리로 나가되 너의 기구에 작은 삽을 더하여 밖에 나가서 대변을 통할 때에 그것으로 땅을 팔 것이요 몸을 돌이켜 그 배설물을 덮을찌니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구원하시고 적군을 네게 붙이시려고 네 진중에 행하심이라 그러므로 네 진을 거룩히 하라 그리하면 네게서 불합한 것을 보시지 않으므로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리라

 

성경은 오묘합니다.

저 역시 늘 성경을 보고 있지만 정말 어려운 말씀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는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른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쉽게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 영의 일을 비유와 은유로 다 숨겨 놓으셨습니다. 그것을 방언의 은사를 받은 사람이 우리나라 말로 번역을 해 놓았고 이 시대 우리가 성경을 보고 그 안에서 진리로 인도함을 받아서 믿음에 굳게 서고 있습니다.

 

알기 어려운 말씀입니다

그것이 더러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한글이 참으로 어렵습니다. 더러 있다고 하니까 아주 쉽게 생각을 하면서 자기가 문자적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몇 가지가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아니라 어려운 말씀들이 많이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성경을 너무 쉽게 보고 있습니다.

 

어렵습니다.

특히 구약의 율법은 더 어렵습니다. 성경 전체에서 영의 일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은 절대로 풀 수 없는 것이 율법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굳세지 못하고 무식한 자들이 기독교를 만들면서 성경을 해석하지 못하니까 율법을 분리를 해서 제사법과 시민법과 도덕법으로 나누고 있습니다.

 

제사법입니다

그리고 시민법입니다 기독교의 교리가 무엇입니까? 성경에 전체 율법이 있는데 이 두 가지에 해당이 되는 율법은 폐하여 졌다고 말을 하고 있고 도덕법은 성도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필요하다고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풀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제사법과 시민법을 성경에서 문자 그대로 보고 풀려고 하니까 도저히 풀리지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은 아주 쉽게 제사법과 시민법이 폐하여졌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굳이 이 법에 대해서 볼 필요성도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이 시대 폐하여질 법을 성경에 왜 굳이 기록하게 하셨습니까? 만약에 그런 성경이라면 우리는 하나님을 믿을 이유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시대가 바뀌어서 아니 이방에 복음이 전파가 되어서 더 이상 필요도 없는 법을 성경에 기록을 해 놓은 하나님을 애써 우리가 믿을 이유가 있습니까?

 

기독교입니다

그들은 무식한 자들입니다 그리고 굳세지 못한 자들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풀 수 없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하기 쉬운 말이 바로 제사법과 시민법이 폐하여 졌다고 하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 초등학생도 알 수 있는 도덕법이 살아 있다고 하면서 교회 안에 있는 거의 모든 목사들이 도덕 선생이 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제사법과 시민법과 도덕법을 나누고 있습니까? 누가 그것을 나누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성경은 율법 전체를 말씀을 하고 있지 그렇게 세분화해서 자기들이 풀기 어려운 것은 폐하여 졌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율법 폐하여 졌습니다.

전체 율법이 폐하여졌습니다. 제사법과 시민법만 폐하여 진 것이 아니라 도덕법 역시 폐하여졌습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율법은 어느 하나를 따로 떼어서 말할 수 없습니다. 율법은 살아 있는 유기체와 같아서 모두가 연결이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율법 전체가 이제는 다 폐하여 졌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이 오셔서 율법을 완전케 하셨습니다. 그리고 율법의 무거운 멍에를 메고 살아가고 있는 우리 인생들에게 자유를 주셨습니다. 또 율법의 포로로 잡혀 있는 우리를 해방시켜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주님께서 지키신 그 율법의 의를 모두 주심으로 해서 우리 역시 아니 우리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영 역시 율법을 완전히 지킨 자가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을 지킨 자가 내 안에 있습니다.

그러면 내가 다시 율법을 지켜야 합니까? 아니 내 육체는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습니다. 그렇게 죽은 육체가 다시 율법을 지켜야 하는 문제입니다. 성경에서 이것을 깨닫지를 못하면 도덕법을 지키게 되어 있고 그 도덕법을 지키는 자는 모든 율법을 항상 지킬 의무가 있고 그 의무를 행하지 못하면 율법의 진노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성도입니다

이제 더 이상 율법을 지키지 않습니다. 그리고 율법은 완전히 다 폐하여졌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율법을 안 보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이 시대 기독교인들보다 율법을 더 많이 보고 그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깨닫고 있습니다.

 

율법입니다

단지 율법이 아니라 성경입니다 그 안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율법을 봐야 하고 그 율법에서 복음을 깨달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 목사들은 율법을 전혀 보지를 않고 있습니다. 아니 율법에 대해서 정의를 내리지를 못하고 아주 어정쩡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은 영의 일입니다

율법이라고 해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모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또 율법에서 영의 일을 반드시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 성도만이 영의 일을 알고 믿음으로 해서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율법을 전혀 볼 생각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더구나 시민법에 해당이 되는 율법은 자기들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알기 어렵습니다.

정말 늘 성경을 보고 그것을 풀려고 하고 있지만 알기 어려운 말씀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는 진리로 인도함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그런 성도만이 이 성경을 풀 수 있고 그런 성도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점점 더 심해지고 있습니다.

목사들이 그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는 말 한 마디를 하고 성경에도 없는 이야기만 하다가 설교를 끝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 어느 목사는 그저 성경만 나열을 하고 있습니다. 그 성경을 풀어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성경만 연결을 해서 나열하는 것으로 설교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영생입니다

교회에 나가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해서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주님께서도 청함을 받는 자는 많으나 택함을 입은 자는 적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실제 우리가 성경을 보더라도 구원을 받은 사람이 얼마나 적은가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교회 안에만 있으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모릅니까?

성경이 풀어지지가 않고 있습니까? 그런데도 내가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물론 지금 이 시대 우리가 모든 성경을 다 풀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구원을 받는 일에 대해서만은 그리고 악을 행하는 것이 무엇이라는 것을 아는 것에 대해서만은 반드시 풀어서 알아야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네가 대적을 치러 출진할 때에 모든 악한 일을 스스로 삼갈찌니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당신들이 진을 치고 적과 맞서고 있는 동안에는, 어떤 악한 일도 스스로 삼가야 합니다.”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이 얼마나 많은 전쟁을 했는가는 성경을 통해서도 그렇고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서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전쟁이 거의 일상이라고 해도 틀리지가 않을 정도로 많은 전쟁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이유는 다 이스라엘로 영의 일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대적입니다.

이스라엘은 주변에 대적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아서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이스라엘과 이방은 늘 대적으로 살았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힘이 강해져서 그들을 통치할 수 있는 때를 제외하고는 거의 대적관계에 있었고 전쟁을 수시로 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육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영의 일입니다 이 신명기의 율법을 보고 단지 이스라엘의 일로만 치부를 하고 있다면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만약에 이 대적이 이 시대 우리에게 그대로 있다면 그는 싸움도 해 보지도 않고 그 대적에게 패하고 마는 어리석은 자가 되고 만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비유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은 이 시대 우리에게도 그대로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단지 이스라엘만 대적과 싸울 때 이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역시 대적과 싸우러 나갈 때 똑같이 해야 한다는 것을 율법을 통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대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싸우러 나갈 때 율법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하나님께서는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성도들이 대적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게 이 율법을 정하셨는데 우리가 이렇게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대적과의 싸움에서 절대로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도 대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대적과의 싸움에서 율법을 정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율법을 모르고 있다면 우리는 반드시 패하게 되어 있고 그것이 영의 일이라면 우리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말씀이 됩니다. 그런데도 이 율법을 보려고도 하지 않고 있고 시민법이라고 하면서 폐하여졌다고 하면서 생각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먼저 대적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 돈키호테가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자기 대적이 누군가도 모르면서 싸우려 하고 있다면 그는 정말로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자기 대적이 누군지도 모르면서 싸우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골로새서 2:14절을 보면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갈라디아서 5:17절을 보면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이스라엘의 육의 일입니다

그것은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영의 일이라는 것을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자기 대적이 누군가도 모르고 있습니다. 대적을 모르다보니까 율법에 정해놓은 대로 싸우러 가지도 않고 있습니다. 대적은 우리를 죽이려고 하고 있는데 대적을 모르니까 싸우려고도 하지 않고 대적에 의해서 모두가 사망의 길로 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대적입니다.

그들은 곁에 있는 이방의 나라가 대적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과 육적으로 전쟁을 했습니다. 그 싸움을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이방인들의 대적은 누구입니까? 그것을 사도 바울이 골로새서에서 우리를 거스리고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의문에 쓴 증서가 무엇인가 하면 바로 율법입니다 성경에 문자로 기록이 되어 있어서 그대로 사람이 알고 있는 그 율법이 대적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의 일입니다.

성경을 육의 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신명기의 율법은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대적과의 싸움에서 이기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율법으로 정하셨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의미를 알고 우리는 그대로 행함으로 해서 대적과위 싸움에서 이길 수 있습니다.

 

싸움입니다.

우리는 사는 동안에 이 대적과의 싸움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한두 번 싸우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싸워야 합니다. 아니 평생을 우리는 이 싸움을 해야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 대적은 우리를 사망에 빠뜨리게 하기 위해서 늘 치러 오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율법의 행위입니다

사실 교회 안에서 얼마나 많은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그렇게 율법을 지키는 행위는 모두가 대적에게 짐으로 해서 진노를 받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갈라디아서를 보아서도 잘 알고 있지만 복음을 듣고 믿은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에게 율법주의자들이 가만히 들어와서 율법을 지키게 했습니다.

 

대적입니다

우리를 진노를 받게 하고 있습니다. 율법은 진노를 이룬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게 함으로 해서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진노를 받게 하는 것이 대적입니다. 율법은 율법 책에 기록이 되어 있는 모든 율법을 항상 다 지켜야 하는데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으로부터 진노를 받게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좋습니까?

사람의 이성에는 더 이상 말이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의 대적이라는 것을 사람들은 모르고 있습니다. 그 율법을 자기들의 육체로 지키고 있으면서도 그것으로 성령의 소욕을 대적하고 거스리면서도 성경을 깨닫지를 못하니까 도리어 진노를 받게 하는 대적을 좋아하고 있고 모두가 사망의 길로 가고 있습니다.

 

대적과의 싸움입니다.

반드시 이겨야 합니다. 지면 어떻게 됩니까? 포로가 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바리새인들은 모두가 율법의 포로가 되어서 율법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때에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포로 된 자에게 자유 함을 주시겠다고 하셨지만 이스라엘은 믿지를 않고 대적에게 짐으로 해서 그들의 포로가 되어서 율법을 지킴으로 해서 진노를 받고 말았습니다.

 

이 전쟁입니다

우리는 죽을 때까지 이 전쟁을 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대적을 치러 늘 출전을 해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대적을 치러 출전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대적의 포로가 되어 이스라엘의 바리새인들과 같이 모두가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런 이스라엘에게 주님께서 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자기들이 종이 된 적이 없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종입니다

그들은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이 시대도 교회 안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자기들의 대적이 누군지도 모르고 있고 그 대적에게 종이 되어 있으면서도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어서 모두가 대적의 포로가 되어 살아가고 있습니다.

 

율법입니다

우리의 대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물론 율법을 항상 다 지키면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은 율법의 의로는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다고 성경이 정의를 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기능이 이렇다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하는데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성도입니까?

그래서 하나님의 성도로서 살기 위해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성경 어디에 하나님의 성도로서 살라고 하면서 율법을 지키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우리의 대적은 성경에도 없는 말을 마치 있는 것과 같이 미혹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대적을 치시기 바랍니다.

내 대적이 누군가를 알고 그 대적을 치시기 바랍니다. 쳐도 되고 안 쳐도 되는 것이 아니라 율법에 정하셨으면 우리는 이 율법대로 반드시 대적을 치러 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율법대로 하면 우리는 반드시 그 대적을 쳐서 이길 수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22절을 보면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

 

로마서 7:18절을 보면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대적을 치러 갑니다.

이스라엘은 육적인 대적을 치러갔습니다. 그러나 우리 이방인은 이제 영적인 대적을 치러 가야 합니다. 내가 하고 싶다고 해서 하고 하기 싫다고 해서 안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대적을 치러 가라고 하면 반드시 우리는 대적을 치러 가야 합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이 시대는 성경을 거의 육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까 율법에 정해 놓은 말씀을 보고도 자기 대적이 누군지도 모르고 있고 또 대적을 치러 나가려고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교회 안에 있으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고 있고 구원을 받았다고 하고 있습니다. 실상은 모두가 대적에게 포로가 되어 있으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악입니다

성경에 이 악에 대해서 얼마나 많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그런데 이 악에 대해서 깨닫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아니 이제까지 기독교사를 통해서 나타나고 있는 문서를 보면 이 악에 대해서 바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악입니다

우리는 죄인입니다 죄인이 하는 모든 행위는 다 악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아무리 하나님을 위한 일이라 해도 내가 육체로 행위로 무엇인가를 하고 있다면 그것은 다 악입니다. 그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시대는 악이 무엇인가를 모르다보니까 버리지를 않고 있습니다.

 

내가 하는 모든 행위입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자기가 하는 행위에 대해서 선한 것이 하나도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 그래서 악만 행하고 있다고 하는데 이 시대는 자기들이 선을 행하는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선을 행합니까?

선하신 이는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입니다. 그분만이 선을 행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 인생은 어떻습니까? 우리는 악만 행한다는 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말씀을 하니까 자기들은 아니고 악을 행하는 어떤 사람들을 말씀하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아닙니다.

우리 인생이 교회 안에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하는 모든 행위가 다 악입니다 이 모든 악한 일을 스스로 삼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대적 율법을 치러 출전할 때는 이 모든 악한 일을 스스로 삼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모든 악한 일입니다

전쟁은 하나님께서 싸워 이겨주십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스스로 싸우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스스로 싸우려고 하는 모든 행위가 다 악한 일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악한 일을 스스로 삼가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시대 교회는 율법의 행위가 넘쳐나고 있고 모두가 그 율법의 포로가 되어서 종으로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율법과의 싸움입니다.

우리는 그 율법을 지켜서는 안 됩니다 그 율법을 누가 지키시는가 하면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지키셨습니다. 그럼으로 해서 우리의 대적과의 싸움에서 이기셨습니다. 그런데 이 대적과 싸우겠다고 하는 그들이 교회 안에서 모두가 율법을 지키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속의 일을 믿지를 않고 있습니다.

 

악을 스스로 삼가시기 바랍니다.

율법을 지켜서는 안 됩니다 외식의 모양도 있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믿음을 말씀을 하고 있지만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악을 행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은 대적과의 싸움에서 져서 종이 되어 있는 사람입니다

너희 중에 누가 밤에 몽설함으로 부정하거든 진 밖으로 나가고 진 안에 들어오지 아니하다가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당신들 가운데 누가 밤에 몽설하여 부정을 탔을 때에, 그 사람은 진 밖으로 나가서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몽설

젊은 남자들이 잠을 자다가 자기도 모르게 사정을 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영의 일입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밤에 몽설을 했다는 것은 생명에 대해서 부정하게 되었다는 뜻이 됩니다.

 

유다의 아들들입니다

다말에게 들어갔다가 땅에 설정을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일로 인하여 악하다고 하나님께서 죽으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생각을 하면 아무 것도 아닌 일이 될 수 있지만 생명에 대해서는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어야 합니다.

 

왜 대적을 치러 나갑니까?

우리가 율법과의 싸움에서 이기려고 하는 것은 생명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그 외에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대적을 치러 갈 때에 너희 중에 누가 밤에 몽설함으로 부정하거든 진 밖으로 나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사람들이 성경을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뭐 이런 말씀까지 성경에 기록을 했는가에 의문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 영의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다 비유로 해서 우리에게 생명을 어떻게 얻을 수 있는가를 율법을 통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굳세지 못한 자들이 성경을 억지로 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부정한 자입니다.

생명에 대해서 부정한 자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부정한 자는 진 안에 들어오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생명에 대해서 부정한 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 부정한 자가 있으면 대적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해질 때에 목욕하고 해진 후에 진에 들어올 것이요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해가 질 무렵에 목욕을 하고, 해가 진 다음에 진으로 들어올 수 있습니다.”

 

우리 성도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 유월절 예비일에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자기가 발을 씻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네가 발을 씻지 않으면 나와 상관이 없다고 말씀을 하시니까 발 뿐 아니라 온 몸을 다 씻어 달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생명에 대해서 몽설한 자는 이렇게 온 몸을 씻고 해가진 후에 진에 다시 들어오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부정한 자이기 때문에 해가진 후에 들어오라고 율법에 정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진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계십니다. 그 진이 부정한 자가 씻고 들어올 때는 낮에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해가진 후에 들어오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 부정한 것을 나타내지 않게 해가진 후에 가만히 들어오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너의 진 밖에 변소를 베풀고 그리로 나가되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당신들은 진 바깥의 한 곳에 변소를 만들어 놓고, 그 곳에 갈 때에는,”

 

변소입니다

지금은 변소라는 말을 안 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어렸을 때는 변소라고 불렀습니다. 참 성경에서 이 시대 이런 말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까지 합니다. 그리고 성경에 왜 이런 말씀까지 기록을 했는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냥 보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목사들이 성경을 볼 때 그저 문자만 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말씀들이 나오면 생각할 필요도 없이 자기들이 어렸을 때 사용하던 단어를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시골에 가면 재래식 화장실을 가면 그것이 변소라는 것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변소입니다

지금은 화장실이라고 합니다. 이제는 도시화가 되어서 이 화장실이 모두가 집 안에 있습니다. 아파트 문화가 발달하다보니까 이제는 변소를 밖에다 둘 수 있는 그런 시대가 아니라 모두가 집안에 화장실을 두고 있고 수세식으로 아주 청결하게 관리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적을 치러 출전할 때는 이렇게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너의 기구에 작은 삽을 더하여 밖에 나가서 대변을 통할 때에 그것으로 땅을 팔 것이요 몸을 돌이켜 그 배설물을 덮을찌니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당신들의 연장 가운데서 삽을 가지고 가야 합니다. 용변을 볼 때에는 그것으로 땅을 파고, 돌아설 때에는 배설물을 덮으십시오.”

 

청결입니까?

하나님께서는 거룩하신 분이라서 우리 인생들이 대변을 보면 그것을 삽으로 파서 덥게 하고 있습니까? 그리고 하나님께서 계시는 진 안에서는 그것을 하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까? 성경이 그냥 기록이 되었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더럽습니다.

그 더러움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것을 진 밖으로 가서 삽으로 파서 덮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단지 사람이 보고 있는 대변이 더러워서 이 말씀을 하고 있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우리의 영의 일이라는 것을 늘 생각하고 보아야 합니다.

 

빌립보서 3:8절을 보면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사도 바울입니다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하니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자기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내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의입니다

사도 바울은 율법으로는 흠이 없는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사도 바울이 자기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나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다고 말씀을 하면서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긴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의입니다

사도 바울의 의입니다 그것을 무엇으로 말씀을 하는가 하면 배설물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사람이 보고 있는 대변을 배설물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교회 안에 행하고 있는 모든 의를 사도 바울이 배설물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배를 드립니까?

찬송가를 부르고 있습니까? 기도를 하고 있습니까? 정말 진심으로 헌금을 하고 있습니까? 그리고 교회 안에서 하나님을 믿는 성도로서 모범이 되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그 모든 행위가 다 배설물과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 배설물과 같은 것을 이 시대는 덮지를 않고 자랑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바로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바리새인으로 있으면서 행했던 모든 율법의 의는 배설물과 같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배설물과 같은 그 모든 행위가 사실은 다 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대적을 치러갈 때는 진 밖에 변소를 베풀고 대변을 볼 때는 그것을 삽으로 파서 덮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이 시대는 그 배설물을 덮지를 않고 있습니다. 아니 자랑을 하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실제 모 기독교 방송에서는 그것을 간증이라고 하면서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배설물이라고 하는데 그 똥과 같은 것을 가지고 세상 속된 말로 자랑질을 하고 있는 것이 이 시대 교인들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덮어야 합니다.

반드시 우리 배설물을 진 밖에 변소에서 그것을 보고 덮어야 합니다. 율법의 대적을 치러 갈 때는 반드시 이렇게 해야 한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율법에 정해 놓으셨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고 있는 그들이 율법에서 무슨 말씀을 하고 있는지를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구원하시고 적군을 네게 붙이시려고 네 진중에 행하심이라 그러므로 네 진을 거룩히 하라 그리하면 네게서 불합한 것을 보시지 않으므로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리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주 당신들의 하나님은 당신들을 구원하시고 당신들의 대적들을 당신들에게 넘겨 주시려고, 당신들의 진 안을 두루 다니시기 때문에, 당신들의 진은 깨끗하게 유지되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당신들 가운데로 다니시다가 더러운 것을 보시면 당신들에게서 떠나시고 말 것이니,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당신들의 진을 성결하게 하십시오."”

 

구원입니다

지금 이 율법을 왜 정하셨습니까?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정해 놓으시고 우리에게 이렇게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아무도 대적을 치러 가는 사람도 없고 또 자기들의 배설물을 변소에 땅을 파서 덮고 있는 사람도 없습니다.

 

대적을 우리에게 붙이십니다.

그러니까 율법과의 싸움에서 우리를 이기게 하시기 위해서 이 율법을 정해 놓으셨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율법을 보고 의미를 깨닫고 이대로 행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율법의 의미도 모르는 그들이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교회 안에 있다고 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해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이런 율법을 알고 행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시겠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도의 구원입니다

성경을 모르고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는가를 이렇게 율법에 다 정해 놓으셨습니다. 자기의 의를 배설물로 버리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얻는 성도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