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은혜와 진리의 말씀

107강, 아도니야가 스스로 높여서 이르기를

윤주만목사 2019. 6. 18. 08:53




107, 아도니야가 스스로 높여서 이르기를

 

열왕기상 1:5절을 보면

때에 학깃의 아들 아도니야가 스스로 높여서 이르기를 내가 왕이 되리라 하고 자기를 위하여 병거와 기병과 전배 오십 인을 예비하니

 

사람은 명예를 얻기를 원합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습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자리를 얻으면 그 다음부터는 그 자리가 사람을 만들어서 왕이 되게도 할 수 있고 정승으로 일을 할 수도 있게 됩니다.

 

그래서 더욱 명예를 얻기 원합니다.

어떻게 하든지 명예를 얻기만 하면 사실 그 자리를 유지하는 데는 별로 어려움이 없습니다. 물론 장관을 하려면 그만큼 전문적인 지식이 있어야 하겠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장관이 어떤 일을 계획하기 보다는 실무진에서 모든 것을 계획을 합니다.

 

수행원이 따라 다닙니다.

또 어떤 일을 하는데 있어 큰 그림만 제시를 해 주면 장관이 직접 일을 하지 않더라도 그 밑에 있는 사람들이 장관의 모든 것을 파악하고 그에 맞는 보고서를 제출하고 또 대외적으로 연설을 하게 도와주고 하기 때문에 사실 장관이 하는 일은 얼굴 마담과 같다고 해야 합니다.

 

물론 똑똑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서는 조금 부족해도 아래 사람들이 모든 것을 일일이 챙겨 주면 장관의 직무를 수행하는데 있어 별로 어려움이 없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든지 명예를 얻기만 하면 그 자리에 걸 맞는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누가 명예와 재물을 싫어하겠습니까?

더구나 그 능력을 어느 정도 갖추었다면 당연히 하고 싶어 합니다.

왕의 아들로 태어났다면 어느 아들이라도 왕이 되는 데는 부족하지 않을 만큼 공부를 하고 또 수업을 받게 됩니다. 서열이 높은 사람이라면 왕이 되어서 나라를 통치하고 싶은 마음은 인지상정입니다

 

다윗의 아들은 70명입니다

그런데 큰 아들은 자기 이복누이를 강제로 범했다가 압살롬에 의해 암살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가만히 있었으면 왕이 될 수 있는 장자가 한 순간 정욕에 눈이 멀어서 자기 생명까지 빼앗기는 일을 당하고 맙니다.

 

그리고 압살롬입니다

그는 압논을 죽이고 피신을 가있다가 다시 돌아와서 반역을 꾀해서 다윗 왕을 몰아내고 자기가 왕이 되려고 하다가 결국 다윗 왕의 신하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고 맙니다.

 

압살롬의 사건도 그렇습니다.

스스로 왕이 되려고 반역을 꾀하였다가 결국 자기 생명까지 잃고 비참하게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물론 압논이 잘못을 해서 그 형을 죽였지만 한번 그런 일이 있는 사람은 언제든지 반역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자기가 하려면 안 됩니다

스스로 높아지려고 하는 사람은 반드시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압살롬과 아도니아의 사건을 통해서 배워야 할 것이 많이 있습니다. 방법은 다를지라도 둘 다 스스로 높아져서 왕이 되려고 하다가 결국에는 그것으로 죽임을 당하고 맙니다.

 

성경이 아니라도 다 압니다.

자기 분수에 맞게 처신을 해야지 분수를 모르고 스스로 높아지려고 하다가 일찍 자기 생명을 잃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우리나라의 역사를 봐도 왕자들이 스스로 왕이 되려고 하다가 또는 주변 사람들에 의해서 억지로 왕이 되려고 하다가 일찍 그 생명을 잃는 경우를 많이 보았습니다.

 

내 스스로 왕이 되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가 무슨 그럴 능력이 있냐고 웃기는 이야기 하지 말라고 제가 반문을 할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지금 이 시대도 왕이 되고자 스스로 높이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교회 안에서 왕이 되어서 스스로를 높이고 왕의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스스로 높아지려고 하는 자는 반드시 망합니다.

물론 명예가 사람을 높이기도 하지만 또 한 가지 율법의 의가 사람을 높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 시대 교인들 중에는 스스로 왕이 되어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자기는 모르고 하는 일일지라도 왕이 되어서 잔치를 배설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도의 신분이 무엇입니까?

베드로전서에서 너희는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왕 같은 제사장은 내가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높여 주셔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왕 같은 제사장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가 아니면서도 왕 같은 제사장 행세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믿음이 없어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믿지도 않으면서 교회 안에서 왕 같은 제사장의 권위를 행사하고 있고 그 권위로 교인들을 꼼짝 못하게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바로 아도니아와 압살롬 같은 사람들입니다

 

차라리 가만히 있으면 좋습니다.

자기 생명을 보존할 수 있는데 영적인 지혜가 없으면서도 세상 종교인과 같이 행세를 하면서 종교인으로서 왕 같은 제사장의 직무를 행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그 생이 결코 평탄하지 못하게 됩니다. 아도니아가 스스로 높이려고 하다가 제 명에 죽지 못한 것과 같이 영생을 얻지 못하고 육신의 생명만 살다가 죽는 것입니다

 

왕의 행세를 합니다.

아도니아도 압살롬도 잠시 동안은 왕으로서 모든 것을 누리고 마음이 풍선처럼 부풀어져서 왕의 행세를 했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은 너무 짧고 죽고 나니까 너무도 허무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교회 안에서 왕 같은 제사장으로서 모든 것을 누리고 모든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고 존경을 받고 살다가 죽지만 그 영혼은 마치 압살롬이나 아도니아가 제 명에 죽지 못한 것과 같이 그 영혼이 멸망의 길로 간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자기 분수를 모르면 그렇게 됩니다.

자기 안에 성령의 감동을 받고 있지도 않으면서 겉으로 나타나는 은사를 가지고 마치 성령을 받은 것으로 스스로 높여서 왕 같은 제사장의 행세를 하다가 그 영혼이 사망의 길로 빠지게 됩니다. 잠시 동안 왕으로서 행세를 할 때는 자기가 최고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가 죽고 난 후에는 결국 아도니와와 같이 스스로 높였다는 것을 깨닫게 되지만 그때는 돌이키려 해도 늦습니다.

 

왕 같은 제사장은 누구나 하면 안 됩니다.

반드시 보혜사 성령이 내 안에 임해서 제사장의 직무를 행할 수 있는 사람만이 해야지 성령의 감동을 받지도 못하면서 세상 종교인과 같이 행세를 하면서 그 교회 안에서 왕이 되어 있다가는 더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냉정하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자가 누구입니까?

세상에서 예수를 안 믿는 사람입니까? 그들이 불쌍한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성령을 받지도 않고 왕 같은 제사장의 직무를 행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이 받는 벌이 다르다는 것을 성경은 분명히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은 죄인입니다

그러나 보혜사 성령의 감동을 받지도 않으면서 교회 안에서 왕 같은 제사장의 행세를 하는 사람은 악인입니다. 죄인이 받는 형벌과 악인이 받는 형벌이 다르다는 것을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차라리 죄인으로 있으면 조금 받을 것을 악인으로 나타나면 그때는 슬피 울며 이를 간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모르면 잠잠히 있기 바랍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자기 분수를 알고 설치지 않습니다.

그러나 미련한 사람은 자기 분수를 모르고 세뇌가 되어서 자기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그 일이 얼마나 악한 일이라는 것을 모르고 오히려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율법을 지키고 예수 그리스도를 거절 했던 일이 얼마나 악한 일인가를 모르고 오히려 하나님을 믿는 당연한 도리라고 생각을 하고 그 율법에 대해서 더욱 열심을 내다가 자주를 받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시대는 그 바리새인들보다 더욱 더 열심을 내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그들은 그것이 의롭고 선한 일이라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아도니아가 왕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왕의 계승 서열로 봐도 아도니아가 왕이 되려고 하는 것은 결코 나쁜 일이 아닙니다. 무슨 말씀이냐면 교회에 나와서 왕 같은 제사장으로서 행세를 하는 것이 결코 나쁜 일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는지 사람으로부터 왔는지를 모르면 아도니아와 같이 됩니다.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 스스로를 분별하지 못하고 행하는 모든 행위는 아도니아와 같이 왕이 되려고 하는 일입니다 내가 정말 성령의 감동을 받고 있는가? 확인하고 또 확증을 하면서 그때 가서 왕 같은 제사장의 일을 해도 늦지 않는데 스스로 왕 같은 제사장이 되려고 하다가 아니면 곁에 있는 사람이 당신은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하니까 아무 것도 모르면서 스스로 왕 같은 제사장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아도니아를 보시기 바랍니다.

열왕기상 1:7절을 보면

아도니야가 스루야의 아들 요압과 제사장 아비아달과 모의하니 저희가 좇아 도우나

 

아도니아 혼자 왕이 될 수 없습니다.

주변에서 돕는 자들이 있기 때문에 스스로 높아져서 왕이 되는 것입니다

요압은 군대 장관이고 아비아달은 그 당시 다윗 왕의 모든 총애를 받는 대 제사장 이었습니다. 그런 두 사람이 아도니와와 함께 뜻을 맞추니까 스스로 높여서 왕이 되려고 한 것입니다

 

부족한 것이 없습니다.

이스라엘에서 군대 장관과 대 제사장이 왕으로 세워 준다면 어느 누구 하나도 이의를 제기 할 수 없을 만큼 모든 조건을 갖추었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왕 같은 제사장을 만들어 주기에 아주 당연한 조건들이 있다는 것을 깨닫기 바랍니다. 교회 안에 대 제사장이 있고 또 군대 장관이 있어서 왕 같은 제사장을 삼아 주면 당연히 자기가 그런 줄로 알고 착각을 합니다.

 

곁에서 이야기 합니다.

성도님, 성도님 하면 자기가 정말 성도가 된 줄로 착각을 합니다.

자기 분수를 모르고 그저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는 그것으로 세상 사람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자기가 왕 같은 제사장이 된 줄로 착각을 하고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인정을 하는 것도 누가 인정을 하는 것이냐면 사람이 인정을 하는 것입니다 마치 그것을 하나님께서 인정을 한 것으로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자기 마음에 높아지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자기는 아닌 것 같은데도 요압과 같은 군대 장관이 그리고 아비아달과 같은 제사장이 도와주니까 자기도 모르게 왕 같은 제사장이 되어서 행세를 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의 심리가 같다고 보시면 맞습니다. 거기에 미혹이 되면 빠져 나올 수 없게 되고 그 영혼이 영원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빼앗기고 맙니다.

 

성도는 왕입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천년 동안 왕 노릇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천년 왕국이 시작이 되면 그렇게 되지만 벌써 교회 안에서 왕이 되어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자기 분수를 모르고 그저 자기가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는 그것만으로 왕이 된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높아지려고 하는 사람은 반드시 망합니다.

내가 성도가 되는 것도 내 행위에서 비록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은 것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내 스스로 성도가 되려고 하다가는 반드시 망 합니다. 내가 구원을 받은 왕 같은 제사장이 되는 것은 내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세워 주셔야 합니다.

 

그런데 다수의 사람들은 스스로 높아지고 있습니다.

제가 신학을 부정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습니다. 또한 교회 제도를 부정하고 싶은 마음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제도 안에 있다는 것만으로 자기가 성도가 된 것으로 오해를 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성도가 되려하면 반드시 성령의 감동하심에 따라 확증을 받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아도니와와 같은 자기에게 있는 조건 만을 생각하고 또 주변에서 그렇다고 인정을 해 주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스스로 높아지려고 하다가는 멸망을 당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저 자기가 기도를 하고 예배를 드리고 찬양을 부르고 또 시간이 나면 성경을 조금 보는 그것으로 마치 성도가 된 것으로 생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스스로 높이려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기를 위하여 병거와 기병 전배 오십을 예비한 것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습니다. 내가 행하고 있는 신앙생활의 모든 의는 병거와 기병 전배를 예비한 것입니다 그런 것을 보고 마치 자기가 왕이 된 것으로 착각을 하다가는 명이 짧아집니다.

 

사무엘상 25:36절을 보면

아비가일이 나발에게로 돌아오니 그가 왕의 잔치 같은 잔치를 그 집에 배설하고 대취하여 마음에 기뻐하므로 아비가일이 밝는 아침까지는 다소간 말하지 아니하다가

 

성경에 나발이 나옵니다.

그도 자기가 가지고 있는 수많은 양과 가축을 보면서 스스로 왕이 된 것같이 왕과 같은 잔치를 배설하고 다윗의 요청을 거절했다가 하나님께서 그를 죽이셨습니다. 자기 눈에 보이는 양의 숫자를 보고서 왕이 되어서 잔치를 배설하고 마음껏 누리다가 그 명을 다하지 못 했습니다

 

교회 안에 그런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율법의 의에 대한 소유를 보고서 왕이 되어서 잔치를 배설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높아져서 마치 자기가 성도가 된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도가 되지도 않았으면서 성령의 감동을 받지도 않으면서도 자기 손에 있는 많은 것을 보면서 스스로 높아져서 성도 행세를 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들이 일찍 죽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영혼은 아도니아와 같이 일찍 죽임을 당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은혜로 말미암아 성도가 된 것인데도 교회에 나와서 신앙생활을 어떻게 하는 자기 모습에 취해서 자기 눈에 보이는 병거와 기병을 보면서 왕이 되려고 스스로 높이고 있습니다.

 

병거와 기병이 무엇입니까?

바로 은사입니다, 자기를 통해 나타나고 있는 은사를 보면서 자기가 마치 성도가 된 것으로 오해를 하고 스스로 높아져서 왕 같은 제사장의 행세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제가 분명히 말씀을 드리지만 그런 은사가 아무리 풍성하게 나타난다 할지라도 자기 안에 보혜사 성령이 임재하시지 않았다면 그는 아도나아와 같은 결말을 보게 됩니다.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은사가 나타나는 것과 보혜사 성령이 임하는 것은 다른 역사입니다

보혜사가 임하시지 않아도 얼마든지 은사는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 다수는 마치 은사를 보고 보혜사가 임한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자기를 높이는 이유는 바로 은사가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또한 율법을 통해 자기의 의가 나타나기 시작을 하면 높이지 않고 싶어도 높아지게 되어 있습니다. 병거와 마병이 많아지기 시작하면 높아지는 것과 같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런 눈에 보이는 것을 보고 스스로 높아지려고 하다가는 아도니아와 같이 망하게 됩니다.

 

마태복음 23:12절을 보면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자기를 높이는 자는 반드시 낮아집니다.

누가 높였습니까? 바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자기를 높였습니다. 무엇으로 자기를 높였느냐면 율법의 의로 자기를 높였습니다. 이 시대는 무엇으로 자기를 높이고 있습니까? 율법의 의로도 자기를 높이고 있고 또 한 가지 은사로 자기를 높이고 있습니다.

 

은사 참 좋은 것입니다

선하고 의롭게 사는 것 나쁘다고 할 사람 없습니다.

그러나 그 좋은 것을 가지고 자기를 높이는 순간 낮아지게 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성령이 그 직임에 따라 모든 사람에게 은사를 고루 주셨는데 그 은사는 약한 자를 섬기기 위해서 주셨는데 그 은사로 높임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나는 아니라 하고 있지만 실제로 교회 안에서 자기가 받은 은사를 가지고 얼마나 높이고들 있습니까? 은사를 자랑하는 것 자체가 자기를 높이는 것임을 깨닫지 못하면 망합니다. 특히 성령이 주신 은사를 통해 나타나는 역사를 간증을 하면서 높이고 있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 너무 많습니다.

 

성령의 은사라고 해도 그것을 높이는 순간 망합니다

그것이 구원을 받은 성도들에게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은사를 절제하지 못하게 되면 은사를 행하는 그에게 오히려 화가 임하게 됩니다. 율법의 의도 없고 은사도 없는 사람은 높아지려고 해도 높아 질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높아지는 조건이 바로 율법의 의와 은사입니다

그럼에도 전혀 조심을 하지 않고 오히려 자기가 행하고 있는 행위에 대해서 마음속에서 뿌듯해 하고 은사가 나타나면 자기가 하나님으로부터 무슨 특별한 것을 받은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주여, 주여 하다가 망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깨닫기 바랍니다.

 

야고보서 4:10절을 보면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나는 한 없이 낮아지시기 바랍니다.

그럼 주님께서 나를 높여 주십니다. 이 세상에서 나를 높여 주시는 것이 아니라 천국에서 왕 노릇 할 수 있게 높여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이런 말씀을 보면서 이 세상에서 나를 높여 주실 것으로 오해하지 마시고 이 세상에서는 가장 비천에 처할수록 하나님께서는 나를 더욱 더 높여 주실 것입니다

 

낮은 자를 높이십니다.

그 낮은 자를 이 세상에서 높이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율법주의에 미혹이 되어 있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높여 주실 것을 바라고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해서라도 높아지려고 하고 있고 그렇게 높아진 자기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높여 주셨다고 말을 합니다.

 

한 마디로 어리석은 자의 생각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도 높여 주실 수 있지만 이 세상의 권세를 잡은 자가 누구인가를 바로 깨닫기 바랍니다. 내가 세상에서 높아지려고 하는 마음은 사단이 준 마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모르면 스스로 높아지게 되어 결국 망하게 됩니다.

 

빌립보서 2:6-8절을 보면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본체이십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얼마나 낮아 지셨는가를 우리에게 잘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 모든 우주 만물의 창조주이신 주님께서 오히려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셔서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낮아 지셨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 종교인들은 너무 높아져 있습니다.

심지어는 왕의 권세를 가지고 교회를 좌지우지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말로는 미사여구를 써가면서 자기가 마치 낮아진 것처럼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그들의 권세는 이미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 있고도 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철저하게 낮아 지셨습니다.

빌립보서 2:9-11절을 보면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예수님이 낮아지시니까 하나님께서 높여 주셨습니다.

나를 낮추지 않는 사람은 절대로 하나님으로부터 높임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종교인들은 높아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가지고 있는 성도는 자기를 낮추고 있습니다. 이것은 겸손의 모양으로 낮아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자기를 철저하게 낮추고 있습니다.

 

모두가 왕 같은 제사장입니다

그러나 지금 교회는 왕 같은 제사장에도 계급이 있습니다.

왕 같은 제사장이 감히 강대상에 올라가지도 못하고 강대상에 있는 물건을 함부로 만지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스스로 자기를 높이고 있는 것임을 깨닫기 바랍니다.

 

낮아지시기 바랍니다.

그 길만이 자기 생명을 영원히 보존할 수 있는 길입니다

자기 눈에 보이는 병거와 마병을 보고 자기를 낮추지 못하는 자는 결국 아도니아와 같이 생명이 단축이 되고 맙니다. 아도니아를 통해서 성도가 어떻게 이 세상에서 살아가야 하는 가를 깨닫기 바랍니다.

 

내 은사 율법의 의 모두 버리시기 바랍니다.

제가 아무 것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버리지 못하는 순간 그 생명이 짧아지게 된다는 것을 명심하시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만을 구해서 주님께서 높여 주시는 귀한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열왕기상 1:5절을 보면

때에 학깃의 아들 아도니야가 스스로 높여서 이르기를 내가 왕이 되리라 하고 자기를 위하여 병거와 기병과 전배 오십 인을 예비하니

 

사람은 명예를 얻기를 원합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습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자리를 얻으면 그 다음부터는 그 자리가 사람을 만들어서 왕이 되게도 할 수 있고 정승으로 일을 할 수도 있게 됩니다.

 

그래서 더욱 명예를 얻기 원합니다.

어떻게 하든지 명예를 얻기만 하면 사실 그 자리를 유지하는 데는 별로 어려움이 없습니다. 물론 장관을 하려면 그만큼 전문적인 지식이 있어야 하겠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장관이 어떤 일을 계획하기 보다는 실무진에서 모든 것을 계획을 합니다.

 

수행원이 따라 다닙니다.

또 어떤 일을 하는데 있어 큰 그림만 제시를 해 주면 장관이 직접 일을 하지 않더라도 그 밑에 있는 사람들이 장관의 모든 것을 파악하고 그에 맞는 보고서를 제출하고 또 대외적으로 연설을 하게 도와주고 하기 때문에 사실 장관이 하는 일은 얼굴 마담과 같다고 해야 합니다.

 

물론 똑똑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서는 조금 부족해도 아래 사람들이 모든 것을 일일이 챙겨 주면 장관의 직무를 수행하는데 있어 별로 어려움이 없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든지 명예를 얻기만 하면 그 자리에 걸 맞는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누가 명예와 재물을 싫어하겠습니까?

더구나 그 능력을 어느 정도 갖추었다면 당연히 하고 싶어 합니다.

왕의 아들로 태어났다면 어느 아들이라도 왕이 되는 데는 부족하지 않을 만큼 공부를 하고 또 수업을 받게 됩니다. 서열이 높은 사람이라면 왕이 되어서 나라를 통치하고 싶은 마음은 인지상정입니다

 

다윗의 아들은 70명입니다

그런데 큰 아들은 자기 이복누이를 강제로 범했다가 압살롬에 의해 암살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가만히 있었으면 왕이 될 수 있는 장자가 한 순간 정욕에 눈이 멀어서 자기 생명까지 빼앗기는 일을 당하고 맙니다.

 

그리고 압살롬입니다

그는 압논을 죽이고 피신을 가있다가 다시 돌아와서 반역을 꾀해서 다윗 왕을 몰아내고 자기가 왕이 되려고 하다가 결국 다윗 왕의 신하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고 맙니다.

 

압살롬의 사건도 그렇습니다.

스스로 왕이 되려고 반역을 꾀하였다가 결국 자기 생명까지 잃고 비참하게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물론 압논이 잘못을 해서 그 형을 죽였지만 한번 그런 일이 있는 사람은 언제든지 반역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자기가 하려면 안 됩니다

스스로 높아지려고 하는 사람은 반드시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압살롬과 아도니아의 사건을 통해서 배워야 할 것이 많이 있습니다. 방법은 다를지라도 둘 다 스스로 높아져서 왕이 되려고 하다가 결국에는 그것으로 죽임을 당하고 맙니다.

 

성경이 아니라도 다 압니다.

자기 분수에 맞게 처신을 해야지 분수를 모르고 스스로 높아지려고 하다가 일찍 자기 생명을 잃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우리나라의 역사를 봐도 왕자들이 스스로 왕이 되려고 하다가 또는 주변 사람들에 의해서 억지로 왕이 되려고 하다가 일찍 그 생명을 잃는 경우를 많이 보았습니다.

 

내 스스로 왕이 되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가 무슨 그럴 능력이 있냐고 웃기는 이야기 하지 말라고 제가 반문을 할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지금 이 시대도 왕이 되고자 스스로 높이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교회 안에서 왕이 되어서 스스로를 높이고 왕의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스스로 높아지려고 하는 자는 반드시 망합니다.

물론 명예가 사람을 높이기도 하지만 또 한 가지 율법의 의가 사람을 높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 시대 교인들 중에는 스스로 왕이 되어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자기는 모르고 하는 일일지라도 왕이 되어서 잔치를 배설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도의 신분이 무엇입니까?

베드로전서에서 너희는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왕 같은 제사장은 내가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높여 주셔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왕 같은 제사장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가 아니면서도 왕 같은 제사장 행세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믿음이 없어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믿지도 않으면서 교회 안에서 왕 같은 제사장의 권위를 행사하고 있고 그 권위로 교인들을 꼼짝 못하게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바로 아도니아와 압살롬 같은 사람들입니다

 

차라리 가만히 있으면 좋습니다.

자기 생명을 보존할 수 있는데 영적인 지혜가 없으면서도 세상 종교인과 같이 행세를 하면서 종교인으로서 왕 같은 제사장의 직무를 행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그 생이 결코 평탄하지 못하게 됩니다. 아도니아가 스스로 높이려고 하다가 제 명에 죽지 못한 것과 같이 영생을 얻지 못하고 육신의 생명만 살다가 죽는 것입니다

 

왕의 행세를 합니다.

아도니아도 압살롬도 잠시 동안은 왕으로서 모든 것을 누리고 마음이 풍선처럼 부풀어져서 왕의 행세를 했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은 너무 짧고 죽고 나니까 너무도 허무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교회 안에서 왕 같은 제사장으로서 모든 것을 누리고 모든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고 존경을 받고 살다가 죽지만 그 영혼은 마치 압살롬이나 아도니아가 제 명에 죽지 못한 것과 같이 그 영혼이 멸망의 길로 간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자기 분수를 모르면 그렇게 됩니다.

자기 안에 성령의 감동을 받고 있지도 않으면서 겉으로 나타나는 은사를 가지고 마치 성령을 받은 것으로 스스로 높여서 왕 같은 제사장의 행세를 하다가 그 영혼이 사망의 길로 빠지게 됩니다. 잠시 동안 왕으로서 행세를 할 때는 자기가 최고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가 죽고 난 후에는 결국 아도니와와 같이 스스로 높였다는 것을 깨닫게 되지만 그때는 돌이키려 해도 늦습니다.

 

왕 같은 제사장은 누구나 하면 안 됩니다.

반드시 보혜사 성령이 내 안에 임해서 제사장의 직무를 행할 수 있는 사람만이 해야지 성령의 감동을 받지도 못하면서 세상 종교인과 같이 행세를 하면서 그 교회 안에서 왕이 되어 있다가는 더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냉정하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자가 누구입니까?

세상에서 예수를 안 믿는 사람입니까? 그들이 불쌍한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성령을 받지도 않고 왕 같은 제사장의 직무를 행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이 받는 벌이 다르다는 것을 성경은 분명히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은 죄인입니다

그러나 보혜사 성령의 감동을 받지도 않으면서 교회 안에서 왕 같은 제사장의 행세를 하는 사람은 악인입니다. 죄인이 받는 형벌과 악인이 받는 형벌이 다르다는 것을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차라리 죄인으로 있으면 조금 받을 것을 악인으로 나타나면 그때는 슬피 울며 이를 간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모르면 잠잠히 있기 바랍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자기 분수를 알고 설치지 않습니다.

그러나 미련한 사람은 자기 분수를 모르고 세뇌가 되어서 자기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그 일이 얼마나 악한 일이라는 것을 모르고 오히려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율법을 지키고 예수 그리스도를 거절 했던 일이 얼마나 악한 일인가를 모르고 오히려 하나님을 믿는 당연한 도리라고 생각을 하고 그 율법에 대해서 더욱 열심을 내다가 자주를 받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시대는 그 바리새인들보다 더욱 더 열심을 내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그들은 그것이 의롭고 선한 일이라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아도니아가 왕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왕의 계승 서열로 봐도 아도니아가 왕이 되려고 하는 것은 결코 나쁜 일이 아닙니다. 무슨 말씀이냐면 교회에 나와서 왕 같은 제사장으로서 행세를 하는 것이 결코 나쁜 일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는지 사람으로부터 왔는지를 모르면 아도니아와 같이 됩니다.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 스스로를 분별하지 못하고 행하는 모든 행위는 아도니아와 같이 왕이 되려고 하는 일입니다 내가 정말 성령의 감동을 받고 있는가? 확인하고 또 확증을 하면서 그때 가서 왕 같은 제사장의 일을 해도 늦지 않는데 스스로 왕 같은 제사장이 되려고 하다가 아니면 곁에 있는 사람이 당신은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하니까 아무 것도 모르면서 스스로 왕 같은 제사장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아도니아를 보시기 바랍니다.

열왕기상 1:7절을 보면

아도니야가 스루야의 아들 요압과 제사장 아비아달과 모의하니 저희가 좇아 도우나

 

아도니아 혼자 왕이 될 수 없습니다.

주변에서 돕는 자들이 있기 때문에 스스로 높아져서 왕이 되는 것입니다

요압은 군대 장관이고 아비아달은 그 당시 다윗 왕의 모든 총애를 받는 대 제사장 이었습니다. 그런 두 사람이 아도니와와 함께 뜻을 맞추니까 스스로 높여서 왕이 되려고 한 것입니다

 

부족한 것이 없습니다.

이스라엘에서 군대 장관과 대 제사장이 왕으로 세워 준다면 어느 누구 하나도 이의를 제기 할 수 없을 만큼 모든 조건을 갖추었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왕 같은 제사장을 만들어 주기에 아주 당연한 조건들이 있다는 것을 깨닫기 바랍니다. 교회 안에 대 제사장이 있고 또 군대 장관이 있어서 왕 같은 제사장을 삼아 주면 당연히 자기가 그런 줄로 알고 착각을 합니다.

 

곁에서 이야기 합니다.

성도님, 성도님 하면 자기가 정말 성도가 된 줄로 착각을 합니다.

자기 분수를 모르고 그저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는 그것으로 세상 사람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자기가 왕 같은 제사장이 된 줄로 착각을 하고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인정을 하는 것도 누가 인정을 하는 것이냐면 사람이 인정을 하는 것입니다 마치 그것을 하나님께서 인정을 한 것으로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자기 마음에 높아지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자기는 아닌 것 같은데도 요압과 같은 군대 장관이 그리고 아비아달과 같은 제사장이 도와주니까 자기도 모르게 왕 같은 제사장이 되어서 행세를 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의 심리가 같다고 보시면 맞습니다. 거기에 미혹이 되면 빠져 나올 수 없게 되고 그 영혼이 영원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빼앗기고 맙니다.

 

성도는 왕입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천년 동안 왕 노릇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천년 왕국이 시작이 되면 그렇게 되지만 벌써 교회 안에서 왕이 되어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자기 분수를 모르고 그저 자기가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는 그것만으로 왕이 된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높아지려고 하는 사람은 반드시 망합니다.

내가 성도가 되는 것도 내 행위에서 비록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은 것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내 스스로 성도가 되려고 하다가는 반드시 망 합니다. 내가 구원을 받은 왕 같은 제사장이 되는 것은 내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세워 주셔야 합니다.

 

그런데 다수의 사람들은 스스로 높아지고 있습니다.

제가 신학을 부정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습니다. 또한 교회 제도를 부정하고 싶은 마음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제도 안에 있다는 것만으로 자기가 성도가 된 것으로 오해를 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성도가 되려하면 반드시 성령의 감동하심에 따라 확증을 받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아도니와와 같은 자기에게 있는 조건 만을 생각하고 또 주변에서 그렇다고 인정을 해 주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스스로 높아지려고 하다가는 멸망을 당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저 자기가 기도를 하고 예배를 드리고 찬양을 부르고 또 시간이 나면 성경을 조금 보는 그것으로 마치 성도가 된 것으로 생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스스로 높이려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기를 위하여 병거와 기병 전배 오십을 예비한 것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습니다. 내가 행하고 있는 신앙생활의 모든 의는 병거와 기병 전배를 예비한 것입니다 그런 것을 보고 마치 자기가 왕이 된 것으로 착각을 하다가는 명이 짧아집니다.

 

사무엘상 25:36절을 보면

아비가일이 나발에게로 돌아오니 그가 왕의 잔치 같은 잔치를 그 집에 배설하고 대취하여 마음에 기뻐하므로 아비가일이 밝는 아침까지는 다소간 말하지 아니하다가

 

성경에 나발이 나옵니다.

그도 자기가 가지고 있는 수많은 양과 가축을 보면서 스스로 왕이 된 것같이 왕과 같은 잔치를 배설하고 다윗의 요청을 거절했다가 하나님께서 그를 죽이셨습니다. 자기 눈에 보이는 양의 숫자를 보고서 왕이 되어서 잔치를 배설하고 마음껏 누리다가 그 명을 다하지 못 했습니다

 

교회 안에 그런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율법의 의에 대한 소유를 보고서 왕이 되어서 잔치를 배설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높아져서 마치 자기가 성도가 된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도가 되지도 않았으면서 성령의 감동을 받지도 않으면서도 자기 손에 있는 많은 것을 보면서 스스로 높아져서 성도 행세를 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들이 일찍 죽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영혼은 아도니아와 같이 일찍 죽임을 당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은혜로 말미암아 성도가 된 것인데도 교회에 나와서 신앙생활을 어떻게 하는 자기 모습에 취해서 자기 눈에 보이는 병거와 기병을 보면서 왕이 되려고 스스로 높이고 있습니다.

 

병거와 기병이 무엇입니까?

바로 은사입니다, 자기를 통해 나타나고 있는 은사를 보면서 자기가 마치 성도가 된 것으로 오해를 하고 스스로 높아져서 왕 같은 제사장의 행세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제가 분명히 말씀을 드리지만 그런 은사가 아무리 풍성하게 나타난다 할지라도 자기 안에 보혜사 성령이 임재하시지 않았다면 그는 아도나아와 같은 결말을 보게 됩니다.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은사가 나타나는 것과 보혜사 성령이 임하는 것은 다른 역사입니다

보혜사가 임하시지 않아도 얼마든지 은사는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 다수는 마치 은사를 보고 보혜사가 임한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자기를 높이는 이유는 바로 은사가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또한 율법을 통해 자기의 의가 나타나기 시작을 하면 높이지 않고 싶어도 높아지게 되어 있습니다. 병거와 마병이 많아지기 시작하면 높아지는 것과 같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런 눈에 보이는 것을 보고 스스로 높아지려고 하다가는 아도니아와 같이 망하게 됩니다.

 

마태복음 23:12절을 보면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자기를 높이는 자는 반드시 낮아집니다.

누가 높였습니까? 바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자기를 높였습니다. 무엇으로 자기를 높였느냐면 율법의 의로 자기를 높였습니다. 이 시대는 무엇으로 자기를 높이고 있습니까? 율법의 의로도 자기를 높이고 있고 또 한 가지 은사로 자기를 높이고 있습니다.

 

은사 참 좋은 것입니다

선하고 의롭게 사는 것 나쁘다고 할 사람 없습니다.

그러나 그 좋은 것을 가지고 자기를 높이는 순간 낮아지게 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성령이 그 직임에 따라 모든 사람에게 은사를 고루 주셨는데 그 은사는 약한 자를 섬기기 위해서 주셨는데 그 은사로 높임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나는 아니라 하고 있지만 실제로 교회 안에서 자기가 받은 은사를 가지고 얼마나 높이고들 있습니까? 은사를 자랑하는 것 자체가 자기를 높이는 것임을 깨닫지 못하면 망합니다. 특히 성령이 주신 은사를 통해 나타나는 역사를 간증을 하면서 높이고 있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 너무 많습니다.

 

성령의 은사라고 해도 그것을 높이는 순간 망합니다

그것이 구원을 받은 성도들에게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은사를 절제하지 못하게 되면 은사를 행하는 그에게 오히려 화가 임하게 됩니다. 율법의 의도 없고 은사도 없는 사람은 높아지려고 해도 높아 질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높아지는 조건이 바로 율법의 의와 은사입니다

그럼에도 전혀 조심을 하지 않고 오히려 자기가 행하고 있는 행위에 대해서 마음속에서 뿌듯해 하고 은사가 나타나면 자기가 하나님으로부터 무슨 특별한 것을 받은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주여, 주여 하다가 망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깨닫기 바랍니다.

 

야고보서 4:10절을 보면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나는 한 없이 낮아지시기 바랍니다.

그럼 주님께서 나를 높여 주십니다. 이 세상에서 나를 높여 주시는 것이 아니라 천국에서 왕 노릇 할 수 있게 높여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이런 말씀을 보면서 이 세상에서 나를 높여 주실 것으로 오해하지 마시고 이 세상에서는 가장 비천에 처할수록 하나님께서는 나를 더욱 더 높여 주실 것입니다

 

낮은 자를 높이십니다.

그 낮은 자를 이 세상에서 높이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율법주의에 미혹이 되어 있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높여 주실 것을 바라고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해서라도 높아지려고 하고 있고 그렇게 높아진 자기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높여 주셨다고 말을 합니다.

 

한 마디로 어리석은 자의 생각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도 높여 주실 수 있지만 이 세상의 권세를 잡은 자가 누구인가를 바로 깨닫기 바랍니다. 내가 세상에서 높아지려고 하는 마음은 사단이 준 마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모르면 스스로 높아지게 되어 결국 망하게 됩니다.

 

빌립보서 2:6-8절을 보면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본체이십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얼마나 낮아 지셨는가를 우리에게 잘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 모든 우주 만물의 창조주이신 주님께서 오히려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셔서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낮아 지셨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 종교인들은 너무 높아져 있습니다.

심지어는 왕의 권세를 가지고 교회를 좌지우지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말로는 미사여구를 써가면서 자기가 마치 낮아진 것처럼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그들의 권세는 이미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 있고도 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철저하게 낮아 지셨습니다.

빌립보서 2:9-11절을 보면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예수님이 낮아지시니까 하나님께서 높여 주셨습니다.

나를 낮추지 않는 사람은 절대로 하나님으로부터 높임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종교인들은 높아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가지고 있는 성도는 자기를 낮추고 있습니다. 이것은 겸손의 모양으로 낮아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자기를 철저하게 낮추고 있습니다.

 

모두가 왕 같은 제사장입니다

그러나 지금 교회는 왕 같은 제사장에도 계급이 있습니다.

왕 같은 제사장이 감히 강대상에 올라가지도 못하고 강대상에 있는 물건을 함부로 만지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스스로 자기를 높이고 있는 것임을 깨닫기 바랍니다.

 

낮아지시기 바랍니다.

그 길만이 자기 생명을 영원히 보존할 수 있는 길입니다

자기 눈에 보이는 병거와 마병을 보고 자기를 낮추지 못하는 자는 결국 아도니아와 같이 생명이 단축이 되고 맙니다. 아도니아를 통해서 성도가 어떻게 이 세상에서 살아가야 하는 가를 깨닫기 바랍니다.

 

내 은사 율법의 의 모두 버리시기 바랍니다.

제가 아무 것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버리지 못하는 순간 그 생명이 짧아지게 된다는 것을 명심하시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만을 구해서 주님께서 높여 주시는 귀한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