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은혜와 진리의 말씀

103강, 당일에 선악을 분변치 못하던

윤주만목사 2019. 6. 14. 05:49


103, 당일에 선악을 분변치 못하던

 

신명기 1:39절을 보면

또 너희가 사로잡히리라 하던 너희의 아이들과 당일에 선악을 분변치 못하던 너희 자녀들 그들은 그리로 들어갈 것이라 내가 그 땅을 그들에게 주어 산업이 되게 하리라

 

육과 영은 다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육을 보고 영을 분별할 수 있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어서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육의 모습에 속아서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당하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스라엘이 왜 속았습니까?

그들은 흠 없는 율법의 의를 보고 속았습니다.

당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과 제사장들은 율법에 정통해서 흠 없는 율법의 의를 가졌고 그래도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율법에 어긋나는 행위를 하지 않았던 것을 성경을 통해서 볼 수 있습니다

 

분별한다는 것은 너무도 중요합니다.

사과나무를 보고 그것이 아가시아 나무라고 생각을 하고 베어 버린다면 가을이 되었을 때 수확을 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모네기를 하고 난 후에 벼가 자랄 때 가라지가 함께 자라는데 가라지를 분별하지 못하고 벼를 뽑아낸다면 가을이 되어서 추수를 할 수 없습니다

 

영적은 것은 분별이 어렵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가라지를 뽑지 말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가라지와 곡식을 쉽게 분별할 수 있다면 당연히 뽑아 버리는 것이 났겠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분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알곡과도 같은 사람이 정말 저 사람은 천국에 갈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그가 변절이 되는 것을 많이 보아 왔습니다.

 

또 저는 구제 불능이라고 했던 사람이 회개를 하는 것도 보아왔습니다

내 눈으로 볼 때는 그렇게 됩니다. 눈으로 볼 때는 가라지가 곡식으로 보이기도 하고 곡식이 가라지로 보이기도 하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추수 때까지 그냥 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알곡과 가라지를 분별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제가 볼 때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설령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그것을 분별한다 해도 그때는 정말 가라지였지만 하나님께서 나중에 그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면 그가 곡식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함부로 판단을 해서는 안 됩니다

 

사도 바울이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그는 이스라엘이 이단의 괴수 예수를 믿는다는 것에 분을 참지 못하고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서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자기를 맨 마지막에 은혜를 입은 자라고 만삭 되지 못한 자라고 고백을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선악을 분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정말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지 않고는 불가능하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성경 말씀을 보면 마치 선이 악처럼 보이고 또 악이 선처럼 보이는 그런 말씀들이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 말씀을 하나라도 잘못 해석을 하게 되면 그것이 자기에게 올무가 되어 그 다음부터는 어두움 속에서 선과 악을 분멸하지 못하게 됩니다.

 

기독교인이 선을 많이 행합니까? 악을 많이 행합니까?

아마 이 질문을 하면 질문 같지도 않은 것을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냉정하게 생각을 하면 선을 행하는 사람보다 아니 선이 무엇이고 악이 무엇인가를 아는 사람보다는 그렇지 못하는 사람이 다수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장정이 60만이었습니다.

그러나 선과 악을 분별했던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선악을 분별하지 못했던 다수의 사람들은 광야에서 죽임을 당했고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던 것을 우리에게 예표로 보여 주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도 한국에 교인 수가 천만이라고 하지만 과연 선악을 분별해서 영적 가나안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까?

 

저는 3%도 안 된다고 보고 있습니다.

물론 제가 틀릴 수도 있지만 지금 눈에 보이는 한국 교회를 보면 3%도 과분하다고 보시면 정답일 것입니다 혹시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부셔서 성령의 역사가 다시 일어날 수 있다면 100%가 모두 천국에 갈 수 있을지 몰라도 지금 제 영적인 눈으로 볼 때는 3%도 과분합니다.

 

저는 교회를 비판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런 영적인 암흑의 시대에서도 하나님께서는 남은 자들은 곳곳에 남겨 두시고 그들을 통해 복음을 전파하게 하시고 있다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다만 그들의 숫자가 너무 적고 또 잘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다 선악을 분별한다고 말할 것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을 믿으면서 선악을 분별하지 못할 수 있느냐고 제가 오히려 반문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선악을 분별하지 못해서 행하고 있는 일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이 선이라고 행하고 있는 그것이 오히려 하나님께 악을 행하고 있다는 것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가나안에 누가 들어갔습니까?

선악을 분별한다고 하는 장정들은 모두가 광야에서 죽임을 당하고 선악을 분별하지 못한다고 하는 20세 미만의 사람들이 성장을 해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축복을 누렸습니다.

 

구약은 그림자입니다

그리고 가나안은 더구나 너무도 중요한 천국의 예표입니다

지금 교회에 나와 있는 사람들은 모두가 이스라엘과 같이 광야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고 있다고 생각을 하면 됩니다. 그러나 선악을 분별할 수 있다고 하는 그들이 못 들어갔다는 것은 지금도 교회 안에서 선악을 분별한다고 하는 그들이 못 들어 갈 수 있다는 것을 예표로 보여 주시고 있습니다.

 

선이 무엇입니까?

세상의 선과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선은 다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지금 교회는 세상에서 말하고 있는 선을 보면서 마치 그것이 선인 줄 착각하고 있습니다. 세상에는 사람들의 눈에 보이는 선과 악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선을 추구하려고 노력을 합니다.

마치 허상을 보면서 그것을 실상이라고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장님이 코끼리 다리를 만지고 코끼리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말씀입니다 장님이 코끼리 다리를 만지고 그것이 무엇인지 도무지 알지 못하고 분별을 하지 못하는 것과 같이 이 세상에서 말하는 선을 보면서 마치 선이 자기들에게서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착각을 합니다.

 

이스라엘과 같이 선을 행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19:16절을 보면

어떤 사람이 주께 와서 가로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이 부자와 같은 생각에 사로 잡혀 있습니다.

자기가 무슨 선한 일을 하고 있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이 부자 청년은 율법을 다 지키고 어려서부터 고아와 과부를 돌아보면서 살아 왔습니다. 그렇게 산 자기의 삶과 신앙생활이 선이라고 오해를 하고 예수님께 묻고 있습니다.

 

지금 교회 안에 있는 다수의 사람들의 마음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직접 만나지는 못 했지만 만약 예수님을 만난다면 이 부자 청년과 같이 똑 같은 질문을 할 것이 분명합니다. 왜 이런 질문을 해야 하느냐면 그의 사상에는 이미 그렇게 굳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수 없이 들어온 설교에서 마치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는 것으로 각인이 되어 있기 때문에 선한 일을 하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 선한 일을 하기 위해서 율법을 철저하게 지키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하고 있는 신앙생활의 모든 일들을 하지 않으면 마치 선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을 하면서 더욱 더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선한 일을 할 수 있을까 고민을 하고 누가 한 가지를 가르쳐 주면 두 가지 세 가지를 하려고 애를 쓰고 있는 것이 지금 교인들의 모습입니다

 

선악을 분별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다면 자기들이 하고 있는 행위에 대해서 그렇게 열심을 내지 않을 수 있으며 또한 선한 일을 하려고 분주하게 찾아다니지도 않을 것입니다

 

제가 이 세상의 선을 행하지 말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늘 강조 드리지만 저는 성도가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것에서는 더욱 더 높은 도덕적인 요구를 하려고 합니다. 그래야만 내가 가지고 있는 귀한 복음을 이 세상 사람들에게 전파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이 세상 기준으로 볼 때 선하지 못하면 누가 내가 전하는 복음을 들을 것이며 선하지 못한 사람은 오히려 복음을 전해도 비웃음을 당하고 말 것입니다

 

지금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선에 대해서 제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 사람들이 알고 있는 선의 기준이 아니라는 것을 분별해야지만 내가 원하는 영적 가나안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은 이 선악을 분별하지 못함으로 인하여서 오히려 악을 행했고 하나님께서는 아주 선악을 분별하지 못하는 어린 아이들을 이끌어 가나안으로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먼저 사상을 바꾸시기 바랍니다.

우리 인생은 선을 행할 수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선과 악을 분별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내가 선을 행할 수 있다 그리고 내가 보는 저 사람은 선하다고 생각을 하고 있다면 여러분은 선악을 분별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시편 14:3절을 보면

다 치우쳤으며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

 

선에 대한 성경적인 정의입니다

선을 행하는 자가 하나도 없다고 분명히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선을 행하고 있다고 생각을 한다면 그 자체가 바로 악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선을 행하는 자가 하나도 없다고 정의를 내리고 있는데 선을 행하고 있다고 주장한다면 그는 악한 자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악한 자입니다

선하지 않은 것을 선하다고 하는 자체가 악입니다

마태복음의 이 부자 청년이 왜 악 하느냐면 선을 행하는 자가 하나도 없다고 시편에서 분명히 말씀을 하고 있는데 이 청년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느냐고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정면으로 부정을 하고 있습니다.

선을 행하는 자가 하나도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 예수님 앞에 나와서 무슨 선을 행하여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면 하나님께서는 선을 행할 수 없다고 말씀을 하는데 자기는 이제까지 선을 행하면서 살아왔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 이런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자기가 행하고 있는 신앙생활의 의에 사로 잡혀서 마치 그것이 선한일 인줄로 알고 또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천국에 갈 수 있을까 고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누가 선한 일을 했다고 하면 자기도 그것을 하고 싶어서 견디지를 못하고 기어이 하고 맙니다.

 

전도, 선교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선한 일이라고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물로 전혀 아니다 라고 정의를 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그것이 선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선악을 분별할 수 있는 성도입니다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을 하는 것이지 그것이 선한 일이라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전도를 만 명하면 뭐 합니까?

만약 하나님께서 그 중에 단 한 명도 구원을 안 하시겠다고 한다면 교인의 숫자는 만 명을 교회 안으로 끌어드렸을지 몰라도 그것은 세상의 선한 일이지 하나님 입장에서 보면 악을 행한 것입니다 이 세상 종교도 누가 만 명을 전도 했다고 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마 그 사람을 칭찬하느라 입에 침이 마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하기를 바라고 간증을 하게 할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은 허상입니다

만 명이 아니라 천만 명이라 해도 그것이 허상이라면 그는 이 세상의 관례에 따라 선한 일을 한 사람이지 하나님 앞에는 조금도 선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말씀입니다 내가 선을 행할 수 있다는 자체가 바로 그럴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의 60만 명 중에 단 두 사람이었습니다.

더구나 그들은 하나님께서 홍해를 가르시고 또 애굽의 군대를 멸망시키고 광야에서 수많은 이적과 기사를 직접 눈으로 본 사람들입니다 그런 그들이 선악을 분별하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었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여러분 보다 지혜가 없어서 그리 되었다고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선은 내가 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일을 하는 것이 선일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성령을 보내 주셔서 그로 하여금 다른 사람이 구원을 받을 수 있게 했을 때 그것이 선한 일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엄밀히 말씀을 드리면 구원을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나는 그저 심부름꾼으로 종으로 일을 했을 뿐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합니다.

바울이 뭐고 게바가 뭐고 아볼로가 뭐가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씨를 뿌리고 아볼로가 물을 주었어도 하나님께서 자라게 하시지 않는다면 그들이 행한 일들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내가 하는 모든 행위는 다 악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위해서 복음을 위해서 일을 했을지라도 악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결코 선악을 분별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선을 행할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분뿐입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다른 영혼을 구원하실 때 그것이 선한 일이라고 성경은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엄밀히 말씀을 드리면 그것조차도 선이 아님을 깨달아야 합니다.

 

왜 그러냐면 선을 행할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분뿐이라고 분명히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선악을 분별해야 합니다. 구약에서는 선악을 분별하지 못하는 어린아이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선과 악이 분명히 드러났습니다.

 

그림자로 보니까 선악을 분별하지 못 했습니다.

구약은 그림자이기 때문에 무엇이 선인지 무엇이 악인지를 분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통해서 우리에게 선악이 무엇인가를 하나님께서는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구약을 보면서도 아직도 수건을 쓰고 보는 바람에 선악이 무엇인가를 분별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수건이 벗겨지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자기들이 선을 행하고자 성경에 있는 율법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정신 나간 학자들은 율법의 재발견이라는 제목으로 수시로 강연을 하면서 마치 율법을 지키는 것이 선인 것으로 착각을 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율법을 누가 붙들고 있는지 또 그것을 누가 지키게 만들고 있는지 조차 분별이 안 되는 영적인 암흑기를 살아가고 있는 시대입니다

 

누가복음 4:6절을 보면

가로되 이 모든 권세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 준 것이므로 나의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

 

사단이 예수님을 시험하고 있는 장면입니다

율법도 빛이 납니다. 율법도 영광이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3:7절을 보면

돌에 써서 새긴 죽게 하는 의문의 직분도 영광이 있어 이스라엘 자손들이 모세의 얼굴의 없어질 영광을 인하여 그 얼굴을 주목하지 못하였거든

 

돌에 써서 새긴 죽게 하는 의문의 직분이 무엇입니까?

바로 이스라엘이 그토록 지키고자 하는 율법입니다 그 율법을 누가 가지고 있느냐면 사단이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바로 분별해야 합니다. 지금도 사단은 이 율법을 가지고 사람들로 하여금 영광이 나타나도록 미혹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 다수의 사람들은 그것이 마치 하나님의 영광으로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시험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시험한 것 같이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다수를 시험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영광을 주면서 시험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시험이라고 전혀 생각하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아니 그것이 오히려 선이라고 생각을 하면서 율법을 재발견하려 하고 또 연구를 게을리 하지 않고 있습니다.

 

사단은 예수님께 이 세상 영광 바로 율법의 영광을 다 주겠다고 시험을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똑 같이 시험을 받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시험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도리어 그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고 굳게 믿고 사단의 미혹에 거의 다 넘어가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율법을 통해 나타나고 있는 행위의 영광을 보면서 열광을 하고 있고 자기에게서도 그 영광이 나타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쉽습니까?

사단은 그냥 놓아두어도 자기들이 알아서 사단에게 그 영광을 달라고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치 그것이 선인 줄을 알고 교회에 나와서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을까 찾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행한 선한 일의 영광을 보면서 마치 구원을 받은 표징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분별하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는 그림자의 구약이 아닙니다.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참 빛으로 오셔서 우리 심령에 그 빛을 비춰 주시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참 영광을 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이 행하고 있는 신앙생활의 영광을 보면서 그것이 선인 줄 알고 깊은 수렁에 빠져 헤어 나오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눈으로 보고 있는 것은 선이 아닙니다.

눈으로 보이는 그것은 이 세상 사람들도 선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선이라고 하는 그것을 교회 안에서도 선이라고 한다면 기독교와 세상 종교가 무엇이 다릅니까? 그런 사상은 결국 오직 예수가 아니라 모든 종교에서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주장이 되고 맙니다.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은 율법의 영광을 쫓아가다가 결국 참 빛으로 오신 하나님의 영광을 보지 못 했습니다. 그들은 선이 무엇인지 악이 무엇인지를 분별하지 못하고 자기들을 통해서 나타나는 그 영광의 모습을 보고서 선이라고 착각을 하다가 결국 멸망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히브리서 5:14절을 보면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

 

육적인 것은 약합니다.

그것은 언젠가는 다 사라질 것이기 때문에 약합니다.

그러나 영적인 것은 단단합니다. 이 시대 단단한 식물을 먹으려 하지 않고 연약한 식물 율법을 먹으려 하는 자들이 너무 많습니다. 율법은 나를 살려 주는 것이 아니라 진노를 받게 하는 것입니다

 

영은 보이지 않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실상처럼 믿으려 하면 그 마음이 얼마나 단단해 져야 하겠습니까? 사실 복음의 경륜에 참여하지 못한 사람은 이 말씀이 도무지 이해가 안 됩니다 무엇인 단단한지 무엇인 연약한 것인지를 모르고 행위를 따라가다 결국 진노를 받게 됩니다.

 

반석은 단단합니다.

바로 영적인 식물 예수 그리스도는 단단합니다.

오직 예수만을 바라보고 사는 성도는 이 세상에서 전혀 흔들이지 않고 든든하게 서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설령 그들 앞에 죽음이 있다 해도 그들은 흔들리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기쁨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장성한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의의 말씀을 경헌하지 못한 자는 절대로 단단해 질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얻기 위해서 자기의 의를 모두 버린 성도는 그 의를 힘입기 때문에 세상이 그들을 어떻게 하려 해도 심지어는 사자 밥이 되게 해도 든든히 서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선악을 분별하지 못하는 어린아이가 가나안에 들어갔습니다.

이 말씀은 어른들은 자기들의 눈으로 선악을 분별한다고 했지만 그것이 바른 분별이 아니었다는 말씀입니다 선악을 분별할 수 있다고 하는 그 사람들이 생각하는 선악이 잘못되었기 때문에 선악을 분별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신약 시대입니다

이제 선이 무엇인지 악인 무엇인지 예수님을 통해 밝히 보여 지고 있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의의 말씀을 경험한 성도는 선악을 분별하고 영적인 단단한 식물을 먹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어린아이와 같은 사람은 영적인 단단한 식물을 먹지 못하고 육적으로 나타나는 그것을 먹으려고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사단이 건들 필요도 없습니다.

자기들이 알아서 사단이 주겠다고 하는 그 영광을 달라고 밤을 새워 가면서 눈물을 흘리고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단이 그것을 하나라도 주면 기뻐서 마치 천국을 얻은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자랑하느라 정신이 팔려 있습니다.

 

의의 말씀을 먹기 바랍니다.

그것은 내 육체가 무슨 선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내 영혼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신 모든 구속의 사역을 내 마음으로 믿고 받아들이고 그것을 의지하여 든든히 서 있는 것이 성도의 믿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풍성히 임하셔서 선과 악을 분별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