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은혜와 진리의 말씀

104강,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윤주만목사 2019. 6. 15. 06:30


104,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갈라디아서 2:21절을 보면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사람이 해 아래서 하는 모든 수고가 헛되다고 전도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헛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기가 하는 일이 헛되지 않다고 믿고 있습니다.

특히 그 일이 하나님을 위해서 하는 일이라면 더욱이 헛되지 않다고 확신을 하면서 열심을 내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전도서 기자는 분명히 해 아래서 하는 모든 수고가 헛되도다. 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해 아래서 하는 모든 수고입니다

사람은 해 아래서 의롭게 살기도 하고 또 죄인으로 살기도 합니다.

의를 행하는 것도 다 해 아래서 하는 것임을 모르고 있다가는 그 수고가 헛되어 결국에는 헛된 일만 하다가 구원을 받지 못하고 지옥으로 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이 헛된 것이 문제입니다

헛된 것을 헛되지 않은 것으로 생각하다가 진짜 헛되지 않은 것을 헛된 것으로 만들어 크나큰 실수를 하게 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기가 하고 있는 행위가 헛되지 않은 것을 헛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헛된 것에 더욱 열심을 냅니다.

 

가장 큰 죄악이 무엇입니까?

헛된 것을 헛되지 않다고 하는 것이며 헛되지 않은 것을 헛된 것으로 인하여 헛되게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들이 하는 행위가 헛되지 않다고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 헛되지 않은 것을 헛되게 만들고 있으면서도 전혀 깨닫지 못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가장 조심해야 하는 일이 있습니다.

모두가 예수를 믿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믿는다고 하는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은 것으로 만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예수를 영접하지 않은 것과 같이 이 시대는 예수를 믿는다 하는 사람들이 예수님님께서 헛되이 죽은 것으로 만들어 버리고 있습니다.

 

이 문제는 구원에 대한 문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헛되게 만들고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교인들 100명에게 질문을 하면 당연히 구원을 못 받을 것이라고 대답을 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행동을 보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헛되게 만들고 있는 행위들을 아무 거리낌 없이 행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모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모르기 때문에 그것을 헛되게 만들고 있습니다.

만약 십자가에 대해서 정확히 알고 있다면 절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헛되게 만들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에서는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영생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모르면 헛되게 만듭니다.

불이 뜨겁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조심을 합니다.

그러나 불이 뜨겁다는 것을 모르는 아이는 불이 있어도 전혀 무서워하지도 않고 다가가서 만지려 하다가 화상을 입게 됩니다. 불이 얼마나 무섭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산에 가서 절대로 불을 피우지 않고 또 피치 못하게 불을 피워도 조심 또 조심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모르면 함부로 다루다가 산에 큰 불을 내게 됩니다.

그 불로 인하여 자기 생명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생명까지도 잃게 만드는 일이 벌어지곤 합니다. 집 안에서도 가스를 사용하고 있지만 그 가스가 얼마나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늘 가스를 사용하고 나면 또 다시 확인을 하고 있습니다.

 

알기 때문에 조심을 합니다.

그리고 내가 어떻게 해야 안전할까 늘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은 지나친 열심으로 인하여 자기가 해야 하는 일과 하지 말아야 하는 일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가스를 사용하고 그냥 방치를 해 두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헛되게 만들지 마시기 바랍니다.

어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헛되게 만들고도 자기 영혼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을 합니까? 한 사람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지만 그러나 교회 안에 있는 다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헛되게 만들고 있는 행위들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행위들을 하면서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도움이 된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더욱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냉정히 분별해야 하는 것은 교회 안에서 행하고 있는 거의 모든 행위들이 실제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헛되게 만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예배가 그렇고 기도가 그렇고 또 복음을 위해 헌신한다고 하는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헛되게 만들고 있지만 규례와 관습의 타성에 젖어서 그것이 헛되게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가 그런 것을 하지 말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성도가 예배를 드리고 기도를 해야 하고 또 복음에 생명을 받치면서 까지 헌신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내가 해야 하는 것과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을 모르고 하다가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헛되게 만드는 일이 됩니다.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시킨다고 무조건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도라면 구원을 받은 성도라면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고 있는 성도라면 내가 이것을 해야 하나 하지 말라야 하나 고민을 하게 되고 어떤 행위를 하면서 반드시 성경을 보고 거기서 결론을 얻고 나서 무엇을 합니다.

 

그러나 지혜를 구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 목사님이니까 당연히 바른 길로 인도하겠지 하면서 성경말씀보다 더 신뢰를 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목사가 전하는 말을 들으면 굳이 성경을 볼 필요도 없다고 생각을 하는 세대가 바로 이 세대입니다

 

이스라엘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출애굽을 해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살았을 때 수많은 제사장들이 있었지만 이스라엘은 계속해서 타락을 했습니다. 예수님이 오셨을 때는 거의 모든 제사장들이 타락을 해서 자기 땅에 오신 메시야를 영접하지도 않았습니다. 구약을 보면 어느 시대에 정말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했던 적이 있었습니까?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인생들은 계속해서 타락의 길로 가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단지 교회에 나왔다는 그 한 가지 이유만으로 자기가 바른 길로 가고 있다고 착각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2:16절을 보면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무엇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헛되게 합니까?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닌데 교회 안에서 자꾸 율법의 행위를 강조하면서 그 율법을 지키는 사람을 칭찬하고 있는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헛되게 만드는 일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행위를 강조합니다.

이것을 해라 저것을 해라 하는 것들을 주장하면서 그런 행위들을 보면서 김 집사님은 참 믿음이 좋아 또 무엇을 하는 사람을 보면서 이 장로님은 참 믿음이 좋아 칭찬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라고 분명히 말씀을 하고 있는데 어떤 행위를 보면서 참 믿음이 좋다고 말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헛되게 만드는 일이 됩니다.

 

내가 의롭게 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입니다

그런데 그 은혜를 생각하지 못하고 사람이 하는 어떤 행위를 보면서 김 집사님은 참 믿음이 좋아서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행하고 교회에서 하는 모든 일에 헌신적으로 봉사를 하고 있어 하고 말한다면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헛되게 만드는 일이 됩니다.

 

지금 그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의롭게 되는 것은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되는 것임에도 사람이 하는 행위를 보고 그 믿음이 좋다 나쁘다 를 말한다는 그 자체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헛되게 하는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율법의 행위로는 의롭다할 육체가 없다고 분명히 정의를 내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서 어떤 행위를 하는 사람을 보고서 그 사람을 칭찬하고 있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은 것이 되고 맙니다. 그러나 지금 교회 안에서는 사람의 행위를 보고 얼마나 많은 칭찬을 하고 있고 믿음이 좋다고 말하고 있습니까?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의롭게 되는 것이 사람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닌데도 어떤 행위를 보고 그 사람의 믿음을 판단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헛되게 만드는 악한 일리 되고 만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아무 생각 없이 하는 그 말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헛되게 하고 있다면 결코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좋은 말이라고 무조건 좋은 것이 아닙니다.

해서는 되는 말이 있고 해서는 안 되는 일이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교인들은 좋은 것이 좋다고 자기의 겸손함을 나타내려고 미사여구를 사용하는데 아주 능숙해 있습니다. 그런 말이 실제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헛되게 만들고 있다면 그 얼마나 불행한 일이 되겠습니까?

 

오직 믿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게 됩니다.

사람의 행위를 보고 믿음이 좋다고 말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 다는 것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말입니다 마음속에 깊이 새겨 두시기 바랍니다. 내 입에서 혹시라도 사람의 행위를 보고 믿음이 좋다고 말하는 그 순간 나는 십자가를 헛되게 만드는 사람이 됩니다.

 

갈라디아서 2:18절을 보면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되려 하다가 죄인으로 나타나면 그리스도께서 죄를 짓게 하는 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표준 새 번역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하여 주심을 구하다가 우리가 죄인으로 드러난다면, 그리스도는 우리로 하여금 죄를 짓게 하시는 분이라는 말입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믿지를 못 합니다.

아니 믿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을 실상처럼 믿는 것이고 그 일은 영적인 일이기 때문에 사실 믿음을 갖는 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시지 않는다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기 위해 보혜사를 보내 주셔서 모든 진리가운데로 인도를 하고 있습니다.

 

행위로는 의롭다 함을 받을 육체가 없습니다.

그래서 믿음을 구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살아가는데 자꾸 자기 육체에 죄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저도 목사지만 하루를 살고 되돌아보면 죄 가운데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 인생은 육체가 연약하기 때문에 이 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라도 마찬가지입니다.

행위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다고 말씀을 하니까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데 자꾸 자기 죄를 보게 됩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사도 바울이 믿음에 확신을 주기 위해서 하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는 말씀입니다

 

절대로 죄인으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왜 죄인으로 나타나는 것을 염려하느냐면 자기 육체의 죄를 보고 있기 때문에 죄인으로 나타날 것을 늘 염려하고 있습니다. 의롭다 하는 것이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서 그래서 율법을 버리고 살다보니까 내 육체의 죄가 보이니까 사람들이 혹시 이러다 죄인으로 나타나면 나는 구원을 받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하면서 걱정을 하니까 사도 바울이 걱정하지 말아라 너희 믿음은 확실하니까 절대로 죄인으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만약 죄인으로 나타나면 그리스도께서 우리가 죄를 짓게 하는 분이라는 말씀입니다 절대로 혹시라도 그럴 염려가 없다 만약 너희가 죄인으로 나타나면 예수 그리스도는 나를 범죄자로 만들고 그렇다면 우리가 예수를 믿을 필요조차 없다는 담대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율법의 행위를 버리면 자기가 죄인으로 나타날까 염려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렇게 하고 행하는 그 모든 행위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헛되게 만드는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내가 죄인으로 나타날까봐 율법을 지키는 그 행위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헛되게 만들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지금 이런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자기가 죄인으로 나타날까봐 율법에 대해서 더욱 열심을 내고 있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들은 자기들이 하는 그 행위가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헛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지금도 더욱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만 믿어도 결코 나는 죄인으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이 세상 모든 사람의 죄를 다 지고 가셨기 때문에 결코 죄인으로 나타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교회 안에는 이것을 안 하면 저것을 잘 못하면 죄인으로 나타날까봐 율법의 행위에 열심을 내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바로 그러한 행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헛되게 만들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를 믿으세요.

그 믿음으로 여러분은 절대로 죄인으로 나타날 수 없습니다.

그렇게 믿는 성도는 율법의 행위를 버릴 수 있는데 믿음이 없는 사람은 율법의 행위를 버리지 못하고 혹시 하는 마음으로 내가 이러다 죄인으로 나타날까 염려를 하면서 율법에 매달리는 것을 보게 됩니다.

 

갈라디아서 2:18절을 보면

만일 내가 헐었던 것을 다시 세우면 내가 나를 범법한 자로 만드는 것이라

 

무엇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헛되게 만듭니까?

바로 헐었던 것을 다시 세우는 그 자체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헛되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참으로 침통하게도 이 시대는 하나라도 더 세우기 위해 열심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헛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자기 정욕에 빠져 헤어 나오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헐었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자기 육체로 율법을 헐어 버리셨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영적인 음행의 늪에 빠져서 헐었던 율법을 다시 세우고 그것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믿음이 좋다고 칭찬을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행위들이 얼마나 악하고 자기 영혼을 사망에 빠뜨린다는 것을 모르고 사단의 계략에 빠져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율법을 폐하셨습니다.

자기 육체로 휘장을 위에서 아래를 찢어 버리시고 더 이상 지성소 안에 있는 율법이 우리를 죽이지 못하게 헐어 버리셨습니다. 그 지성소 안에는 대 제사장만 들어갈 수 있는데 이제는 우리가 담대하게 그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율법을 헐어 버리셨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이 시대 얼마나 많은 율법이 교회 안에 자리하고 있습니까?

법이라는 것을 깨닫기 바랍니다. 그것을 안 하면 정죄를 하는 것은 모두 법입니다. 자기들이 만들어 놓고 그것을 못 하는 사람을 정죄하는 모든 것이 다 법입니다 그리고 반드시 이것을 지켜야 하겠다고 하는 모든 것이 다 법입니다.

 

삼가 지키는 것은 모두 법입니다

교회 안에 삼가 지키고 있는 것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삼가 지키지 말라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는데 그 죽으심을 헛되게 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깨달아야 하는 것은 내가 지키고 있는 단 한 가지 율법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헛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2:19절을 보면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향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을 향하여 살려 함이니라

 

사도 바울의 고백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헐어 버리신 율법을 혹시라도 자기가 지킬까봐 자기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향하여 죽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 다수의 교인들은 율법을 행하여 죽지 않고 있습니다. 아직 율법이 살아 있어 그것을 지키고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죽었습니다.

한번 법에 의해서 죽은 사람은 다시 법이 죽이지 못 합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와 한 몸이라고 믿는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 모든 사람의 죄를 대신해서 죽으실 때 자기도 함께 죽었다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바로 그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향하여 죽었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은 죽었습니다.

내가 율법에 행하여 죽은 자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율법이 나를 죽이려고 한다고 생각하고 있어 그 율법을 지키고자 한다면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헛되게 만들고 있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법에 대해서 죽었으면 이제 더 이상 법을 지킬 필요도 없고 법이 나를 강제하지도 못 합니다

 

법의 끝은 사망입니다

그런데 그 법으로 사망을 당했는데 또 법이 나를 죽일 수 있느냐는 말씀입니다. 그럴 수 없습니다. 한번 법에 의해 사망을 당한 사람은 더 이상 법이 그를 강제하지 못 합니다. 그런데 아직도 법에 대해서 죽지 않고 그 법을 지키려고 하고 있다면 그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을 부정하는 사람입니다

 

갈라디아서 2:20절을 보면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성도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습니까?

예수님이 십자에서 죽으실 때 사도 바울은 예수를 이단이라고 공격을 했던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다고 고백을 하는 것은 바로 믿음입니다.

 

십자가에서 함께 죽은 자는 이제 자기가 사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가 사는 사람은 아직도 율법을 지키고 그 율법을 통해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고 자기 믿음을 사람들에게 보이려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에 대해서 죽었다는 말씀입니다

이제 율법에 대해서 죽은 사도 바울은 자기가 이제까지 가지고 있던 흠 없는 율법의 의를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얻기 위해서 산다고 빌립보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지 않은 사람은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헛되게 하는 사람입니다

 

그 죽음은 율법에 대해서 죽은 것입니다

율법에 대해서 반드시 내가 죽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시대 음행에 빠져 있는 사람들은 율법에 대해서 죽은 자기를 인정하기 보다는 아직도 그 율법이 살아 있어 그것을 안 지키면 큰 일이 날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절대로 믿음이 없는 사람입니다

 

성도는 믿음 안에서 삽니다.

믿음은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라고 분명히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것은 내가 어떤 행위를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는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믿으려 하기 보다는 자기 행위를 보고 믿음이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게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헛되게 만드는 일을 하는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게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게 하는 일이 무엇이냐면 율법으로 의롭다 함을 받으려 하는 모든 행위가 바로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게 하는 일입니다

 

율법 버리시기 바랍니다.

율법이 아니라도 성도는 이 세상에서 얼마든지 의롭고 선하게 살 수 있으며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성도를 보면서 복음이 전파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율법은 오히려 복음을 방해하고 있고 설령 그를 통해 말씀이 전해진다 해도 그는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고 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헛되게 하고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수많은 율법의 행위들로 헛되게 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하나님에 대한 열심이라고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내가 율법을 버리는 순간 그 율법에 대해서 죽는 그 순간 예수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은 것이 아니라 나를 구원하는 능력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내 신앙적 행위들을 분별하시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것이 확증이 되게 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