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은혜와 진리의 말씀

102강, 어느 여자가 열 드라크마가 있는데

윤주만목사 2019. 6. 13. 07:48


102, 어느 여자가 열 드라크마가 있는데

 

누가복음 15:8-10절을 보면

어느 여자가 열 드라크마가 있는데 하나를 잃으면 등불을 켜고 집을 쓸며 찾도록 부지런히 찾지 아니하겠느냐 또 찾은즉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잃은 드라크마를 찾았노라 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

 

드라크마(drachma)는 희랍의 은전입니다

누가복음 15장에서만 등장하는데, 동일 희랍의 화폐 단위에서 비교할 때 이것은 1/100 므나, 1/6000 달란트에 해당하는 가치를 지니고 한편 희랍의 드라크마는 로마의 은전 데나리온과 같은 화폐 가치를 갖습니다.

 

이 말씀은 누가 복음에만 나오는 말씀입니다

물론 비유의 말씀입니다 성경은 거의 비유의 말씀으로 되어 있어서 이 말씀이 무엇을 비유로 했는가를 정확히 알지 못하면 바른 해석이 나올 수 없고 그렇게 되면 진리를 아는데 있어 방해가 됩니다.

 

므나의 비유 달란트의 비유가 각각 다릅니다.

므나의 비유는 행함이 있는 믿음이라면 달란트의 비유는 생명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서 달란트를 마치 은사로 오해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은사와 생명은 너무 큰 차이가 있고 달란트의 비유를 은사로 해석을 하다가는 큰 문제가 발생을 합니다.

 

물론 마태, 마가, 누가 복음에서 비슷한 말씀들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같은 말씀을 서로 다른 저자가 기록을 하면서 약간의 사상적 차이로 똑같이 기록을 하지 않을 수 있지만 누가복음에서 말씀을 하는 드라크마의 비유와 같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고자 하는 분명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지금 이 말씀의 배경은 예수님께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있는 것을 보고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원망을 하면서 하나님으로부터 오신 구세주라면 당연히 자기들과 함께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도 예수님께서 구세주로 온 것을 어느 정도 인정을 하고 있지만 그런데 하나님을 열심히 믿고 있는 자기들에게 오시지 않고 세리와 죄인들과 교제를 나누고 있느냐는 말입니다

 

이 시대도 그럴 것이라 철썩 같이 믿고 있을 것입니다

교회에 잘 다니고 또 예배에 빠지지 않고 그래도 교회 안에서 칭찬을 받고 있는 사람이라면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 자기가 영접을 받을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으며 조금도 의심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니 자기들은 주님과 함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태복음 7장에서 주님과 함께 있었고 또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을 하고 한 사람들을 주님께서 내가 너희를 도무지 모른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의 바리새인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이 시대 바리새인들도 역시 똑 같은 착각에 빠져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저 사람은 분명히 구원을 받을 것이라 모든 사람이 인정을 하고 있지만 실제적으로 그가 구원을 받을 수 없는 일을 이미 보여 주셨습니다.

 

그 당시 바리새인과 서기관은 남달랐습니다.

모든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았고 또 당연히 그들은 천국에 갈 것이라는 것에 조금도 의심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하고 있는 신앙적 행위들을 볼 때 어느 누구도 그들이 천국에 가는 것에 대해서 의심을 할 필요조차 느끼지 못 했습니다.

 

흠 없는 율법의 의를 가졌습니다.

또한 신앙적 행위들을 볼 때 그들은 분명히 하나님의 사람들이었습니다.

당연히 메시야가 오시면 자기들을 찾을 것을 의심하는 사람들은 없었으며 그랬기 때문에 더욱 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예수님께서 죄인과 세리와 함께 있는 것을 용납하기 힘들어 했습니다.

 

성경은 교훈입니다

이스라엘은 이 시대를 사는 성도들에게 경계를 삼아야 하는 대상이기도 합니다. 그들을 보면서 우리는 그들과 같이 어리석음에 빠지지 않고 그들이 무엇을 잘못해서 예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았는가를 성경을 통해 깨달아야 합니다.

 

나는 다르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이 그랬던 것과 같이 이 시대도 역시 자기들의 오만함에 빠져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교회에 들어 왔다는 단 한 가지 이유만으로 자기가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마치 구원이 보장이 된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들은 원망을 할 것입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원망을 합니다.

어느 정도로 원망을 하느냐면 슬피 울며 이를 갈면서 원망을 하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교회 밖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 이스라엘과 같이 교회 안에 있는 사람입니다

 

모르면 원망을 합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면 원망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왜 오셨는가를 몰랐기 때문에 원망을 했습니다. 당연히 자기들을 영접해 주어야 하는데 죄인과 세리를 영접하는 것을 보고 원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느 여자가 열 드라크마가 있는데 하나를 잃으면 등불을 켜고 집을 쓸며 찾도록 부지런히 찾지 아니하겠느냐

 

드라크마는 무엇입니까?

바로 이 세상에 있는 죄인들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원을 하실 죄인 열이 있는데 그 하나를 잃어 버렸다면 여자가 등불을 켜고 짐을 쓸며 부지런히 찾지 않겠느냐는 말씀입니다

 

이 여자는 누구입니까?

바로 이 세상에 있는 교회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해야 하는 가장 첫 번째 일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는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합니다. 교회는 잃어버린 드라크마를 찾기 위해 등불을 켜고 부지런히 찾아야 합니다.

 

이것이 교회가 해야 하는 일입니다

물론 교회가 해야 하는 많은 일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일을 먼저 하지 않는다면 그 교회는 교회로서 기능을 상실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혼인 잔치의 비유에서 보면 하나님께서 혼인 잔치에 그 종들을 보내서 사거리에 나가서 사람들을 불어 모읍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전도를 하고 있다고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도 하나님께서는 종들을 보내 교회 안으로 사람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가 기능을 잘 하지 못하면 청함을 받은 사람은 많으나 택함을 입은 사람은 적게 됩니다.

 

저는 개척 교회에서 동역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가장 안타까운 것이 있다면 실제 전도를 해서 교회에 들어오는 사람 보다 하나님께서 보내 주시는 사람이 더 많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한번 예배를 참석을 하면 다시 교회에 오지를 않고 있습니다. 물론 목회자는 자기가 개척 교회라는 것을 탓하고 있지만 제가 보기에는 만약 개척 교회가 문제라면 그 사람은 처음부터 교회에 들어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개척 교회인 줄 알고 왔습니다.

자기 건물도 아니고 상가 임대 건물에 작은 교회라는 것을 알고 왔지만 그들이 실망을 하고 돌아 간 것입니다 또한 전도를 해서 교회 안에 들어왔어도 역시 실망을 하고 돌아갑니다.

 

그 이유를 모릅니다.

바로 이 여자와 같이 등불을 켜고 부지런히 찾지를 않았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구원에는 관심이 없고 그저 숫자 놀음만 하려고 하다 보니까 찾지를 못하고 돌려보내고 있습니다.

 

등불을 켜 놓아야 하는데 등불이 꺼져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의 빛이 비추고 있어야 하는데 교회에 와 보아야 예수는 안 보이고 사람만 보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실망을 하는 것이고 또 찾을 수도 없게 되는 것입니다

 

아니 좀 심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자기들부터가 구원을 모르고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와도 그를 어떻게 구원을 해야 하는가를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다 버려야 하는데 영혼을 사모하고 오는 사람들의 길을 막고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만들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다 버리셨습니다.

구원에 방해가 되는 율법을 폐해 버리시고 또 영혼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자기 몸을 십자가에서 제물로 드렸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교회는 열심은 있는데 구원에 대한 열심히 아니라 종교적 열심이 넘치고 있습니다. 아편에 중독이 되어 있는 사람들과 같이 행위에는 아주 열심을 내고 있는데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등을 켜 놓고 있지는 않습니다.

 

누가복음 2:32절을 보면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하니

 

여자가 등불을 안 켜고 있습니다.

드라크마를 찾겠다고 열심은 다하고 있지만 실제 그들의 집에 들어가 보면 등불이 안 켜져 있다는 말씀입니다 교회는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의 빛이 비추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의 빛만 밝게 빛나고 있습니다.

드라크마는 찾을 생각도 하지 않고 그저 숫자 놀음에 빠져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열심을 다해서 전도를 하고 있지만 실제 그 안에 있는 드라크마에 대해서는 무관심합니다. 그저 교회 안에 끌어다 놓으면 다 된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여자의 집에는 잃어버린 드라크마가 있습니다.

교회 안에는 잃어버린 영혼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 영혼을 찾으려면 등불을 켜야 하는데 지금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밝은 빛이 비추기보다는 사람들의 빛으로 가려 있습니다. 교회 안에만 있으면 굳이 찾을 필요가 없습니다. 아니 찾으려 하지도 않습니다.

 

교회 밖에 있는 사람을 끌어 들이려 고는 꽤 노력을 합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있는 잃어버린 드라크마는 찾을 생각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교회에 예수가 없는데 자기 자체부터가 꺼져 있는 등불인데 무엇을 잃어 버렸는지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등불을 켜야 합니다.

그 등불은 사람들이 행하는 행위의 빛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빛이 비추어야 여자가 깨닫고 그 안에 있는 잃어버린 드라크마를 찾으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도 모르는 여자가 어떻게 드라크마를 찾을 수 있겠습니까?

 

베드로전서 1:10-11절을 보면

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얻으실 영광을 미리 증거 하여 어느 시, 어떠한 때를 지시하시는지 상고하니라

 

부지런 합니다.

한국 교회 교인들만큼 부지런한 사람들이 어디 있겠습니까?

새벽기도부터 해서 일주일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세상 사람들의 표현에 빌리자면 아예 교회에 미쳐 있습니다. 그럴 정도로 부지런 한데 자기들이 무엇에 부지런해야 하는 줄 모르고 있습니다.

 

베드로가 무엇에 부지런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상고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구원에 대해서는 전혀 부지런하지 않고 행위에 대해서는 너무 부지런해서 모두가 미쳐 있습니다. 성경 공부를 한다고 해도 그저 행위를 가르치기에 바쁘지 구원에 대해서는 가르치려 하지도 않습니다.

 

구원에 확신이 없습니다.

교회는 그 안에 들어온 교인들을 모두 구원을 받게 해야 합니다.

이 여자처럼 구원에 대해서 부지런히 가르쳐서 잃어버린 드라크마를 찾아야 합니다. 바로 이것이 교회의 사명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교회에 들어 온 것으로 마치 구원을 받은 것으로 착각을 하고 교회 안에 들어오면 그 다음부터는 행위를 배우느라 정신이 팔려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무엇 하러 오셨습니까?

 

누가복음 19:10절을 보면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분명히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가 세상 사람들을 교회 안으로는 끌어 들이려고 부지런을 떨고 있지만 실제 교회 안에 있는 잃어버린 자들에게는 너무도 무관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교회 안에 등불이 안 켜져 있기 때문입니다 등이 안 켜져 있는데 무엇을 찾을 수 있겠습니까?

 

주님이 오신 분명한 목적입니다

그 주님께서 이 세상에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들이 등불을 켜서 잃어버린 드라크마를 찾으려 하지는 않고 그저 숫자 놀음에 빠져 교회 안에 들어오면 다 구원을 받은 것으로 착각에 빠지게 만들고 있습니다.

 

세뇌가 아닙니다.

내 다짐이 아닙니다.

성경 안에서 말씀을 보면서 확증을 해야 구원에 확신이 있는 것입니다

그저 입으로 내가 구원을 받았다고 말하는 그것이 마치 구원에 확증인 것으로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구원의 확신은 말씀을 통해 성령께서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면서 감동을 받아 확증이 되는 것입니다

 

물론 전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집에 있는 드라크마를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집에 열 드라크마를 주셨는데 여자가 그것을 잃어버린 줄도 모르고 있다는 것은 교회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모르고 있는 어리석음에 빠져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것에 대해 열심을 내시기 바랍니다.

교회는 그 안에 들어온 사람들을 구원해야 하는 분명한 목적이 있습니다. 또한 그것을 위해 부지런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등불을 켜서 비추고 부지런히 찾아서 잃어버린 드라크마를 찾아야 합니다. 드라크마를 찾을 생각은 하지도 않고 세상에 나가서 그저 한명이라도 더 교회 안으로 끌어 드리려는 열심에 빠져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만 명을 채우면 무엇 할 것입니까?

그 만 명이 모두 잃어버린 드라크마라면 그것은 교회가 아닙니다. 그저 종교 집단에 불과 합니다. 하나님께서 교회 안에 열 드라크마를 주셨으면 교회는 등불을 켜고 부지런히 구원에 대해서 연구를 해서 혹시라도 잃어버린 드라크마가 있다면 찾아야 합니다.

 

교회가 다른 것에 관심이 너무 많습니다.

잃어버린 드라크마는 찾으려 하지 않고 아니 잃어버린 줄도 모르는 영적인 무지 상태에 빠져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이 교회에 열 드라크마를 주셨으면 그 열 드라크마가 모두 구원을 받았는가? 등불을 켜서 부지런히 찾아야 합니다.

 

그것이 예수가 있는 교회입니다

행위에 대해서 부지런을 떨기 보다는 구원에 대해서 부지런하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는 너무 행위에 빠져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잃어버린 드라크마는 찾으려 하지 않고 마치 교회 안에 들어온 것으로 구원을 받은 것으로 미혹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들어와 어떤 행위들을 하면 구원을 받은 것으로 가르치다 보니까 행위에는 열심을 내고 있지만 그 안에는 실제로 예수 그리스도의 빛이 비추고 있지를 않습니다.

 

교회로서 사명을 깨닫기 바랍니다.

교회 안에 있는 열 드라크마가 다 구원을 받아야 하는데 그 중에 잃어버린 드라크마가 있다면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그것이 다행히 한 드라크마라면 그마나 괜찮을 수 있겠지만 만약 그 한 드라크마를 소홀히 여기다 모두가 잃어버린 드라크마가 된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입니다.

 

영혼 구원입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입니다

그렇다면 교회도 그 목적을 위해 부지런해야 합니다. 그것은 교회 밖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 교회 안에 있는 드라크마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작은 구멍이 둑을 무너뜨린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의 드라크마를 잃어버리고도 그것을 찾지 못하는 교회는 나머지 9개의 드라크마도 잃어버릴 것이 뻔합니다.

 

또 찾은즉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잃은 드라크마를 찾았노라 하리라

 

교회는 천국 잔치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이 세상에 있는 교회의 외형적인 모습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 있는 모든 드라크마가 천국을 소유했을 때 가능한 일입니다. 구원에 기쁨은 성령의 감동을 받은 성도만이 누릴 수 있는 기쁨입니다.

 

이것은 구원을 받은 사람만이 누리는 기쁨입니다.

보화를 캐내어 가진 사람이 그 보화를 나누어 주고 누릴 수 있는 기쁨은 이 세상의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교회 안에 한 명을 전도한 그것은 사실 별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가 복음을 깨닫고 구원에 확신을 가질 때 그것을 전해준 자의 기쁨은 말로 표현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4:36절을 보면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니라

 

예수님께서 복음의 씨를 뿌려 주셨습니다.

그 복음이 지금 이 시대까지 전해져 와서 교회가 서고 그 교회 안에서 드라크마를 찾고 있습니다. 잃어버린 드라크마를 찾아 거두는 일에 참여한 자의 기쁨은 육적으로 누리는 기쁨과는 비교할 수도 없습니다. 그것은 먼저 구원을 받은 성도만이 누릴 수 있는 기쁨입니다.

 

사도들은 그 기쁨을 누렸습니다.

그 기쁨을 누리기 위해 순교를 당하면서 까지 그 기쁨에 참여하고자 했던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는 잃어버린 드라크마가 많이 있다는 것을 깨닫기 바랍니다.

 

천국 잔치의 비유를 보시기 바랍니다.

임금이 종들을 시켜 억지로 그 자리를 다 채우지만 실제 천국 잔치에 참여한 자들 중에는 택함을 입은 자가 적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는 잃어버린 드라크마가 많다는 것을 항상 깨달아야 합니다. 그것이 내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일 한 시라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교회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진리를 알기 위해 그래서 구원을 얻기 위해서 부지런한 교회가 있고 다른 하나는 행위에 열심인 교회가 있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행위에 열심인 교회가 더 많이 있고 사람들이 구원에 부지런하기 보다는 행위에 더 부지런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행위에 빠지면 자기 사명을 잃어버립니다.

그 안에는 등불이 꺼져 있어서 드라크마가 몇이 있는 줄도 모르고 또 잃어버린 드라크마가 얼마나 되는 줄도 전혀 깨닫지 못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등불을 켜 놓고 부지런히 찾아야 하는데 자기들의 행위의 빛에 미혹이 되어서 참 빛을 보지 못하고 이스라엘과 같이 어두움을 더 사랑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등불이 켜져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행하는 행위의 빛이 아닙니다.

그러나 지금의 교회는 그 빛에 취해서 그 빛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그 안에 있는 영혼들의 결말이 어떠한가를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그 날에야 깨닫고 슬피 우는 일일 있을 것입니다

 

다른 것은 다 버려도 됩니다.

그러나 잃어버린 드라크마는 꼭 찾아야 합니다.

율법과 행위 모든 것을 다 버려도 잃어버린 드라크마를 찾을 수 있다면 그 교회가 주님의 뜻을 이루는 교회입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분명히 알고 있는 교회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

 

이제 이 드라크마가 무엇인가를 분명히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바로 죄인입니다 이 죄인은 세상 죄인을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아직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은 죄인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나와 있지만 예수를 영접하지 못한 죄인 하나가 회개를 해서 영접을 하게 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기쁨이 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는 죄인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에도 그랬듯이 지금도 죄인이 있기 보다는 의인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과 비교를 하면서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신앙적 행위들을 보면서 마음으로 부자가 되어 있는 의인들이 교회 안에 가득 차 있습니다. 자기들이 어떤 죄를 짓고 있는지 조차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사명입니다

잃어버린 드라크마를 찾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등불을 환하게 밝히고 구원에 확신을 가질 수 있도록 부지런히 성경을 통해 유일하심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으로 자라가야 합니다. 그런 교회 만이 하나님의 앞에 선 사자들과 함께 기쁨을 나눌 수 있습니다.

 

그 교회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 목적을 아는 교회입니다

행위에 부지런하기 보다는 영혼 구원을 얻을 수 있도록 성경에서 예수를 아는 지식으로 충만해 지는 그런 교회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