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은혜와 진리의 말씀

100강,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윤주만목사 2019. 6. 10. 08:09


100,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마태복음 5:38-42절을 보면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며 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법은 융통성이 없습니다.

만약 법에 융통성이 있다면 그 법은 더 이상 법이 될 수 없습니다.

쓰레기를 길거리에 함부로 버리면 경범죄로 처벌을 받게 되는데 그것을 이해해 주라고 하면 더 이상 쓰레기를 버리는 행위는 죄가 될 수 없습니다. 그가 착하든 아니면 몰랐든 간에 쓰레기를 버리면 처벌을 받을 때 그 법이 효력이 있습니다.

 

신호 위반을 했습니다.

당연히 경찰관이 딱지를 발부해서 벌금을 내게 해야 하는데 아냐 그 중에는 생계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 있어서 안 되니까 범칙금을 발부하는 것을 보아주라고 하면 그 법은 이제 실효성이 없는 것입니다 법은 그 법을 그대로 집행할 때 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법은 이렇게 해도 되고 저렇게 해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이라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당신 마음대로 법에 대해서 변경을 한다면 누가 하나님을 공의의 하나님으로 믿을 수 있겠습니까?

 

법은 언약입니다

그냥 일방적으로 선포를 한 것이 아니라 언약에 의해서 법이 집행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버지가 과년한 딸에게 너 10시까지 들어오라 하고 만약에 안 들어오면 어떤 처벌을 하겠다고 한다면 그것은 법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에 10이후에 들어 왔는데 자기가 정해 놓은 법으로 딸에게 어떤 위해를 가하다가는 오히려 아버지가 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법에는 딸이 10까지 집에 들어오라고 하는 법이 없습니다. 법이 없는데 자기 마음대로 법을 만들어서 그것을 행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만약 그런 일로 문제가 된다면 아버지는 법에 의해 처벌을 받게 됩니다.

 

기독교인들이 오해를 하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 마음대로 법을 정하고 그것을 마음대로 실행을 하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율법은 물론 하나님께서 천사의 손을 빌어 모세를 통해 반포를 하셨지만 그 율법을 지키겠다고 언약을 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입니다

 

피로 언약을 했습니다.

서로 변치 않는 언약을 했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변치 않는 언약을 했을 때 이스라엘은 율법을 지켜야 하는 의무가 있는 것이고 이 법을 하나님이라도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마음대로 바꾼다면 하나님 스스로 언약을 파기한 것이 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마음대로 바꿀 수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하나님이 마음이 조금 누그러들면 이 법은 집행을 안 하고 마음에 안 들면 냉정하게 집행을 하고 하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율법을 오해 했다가는 영혼이 사망을 당하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마시고 율법에 대해서 바로 이해를 해야 합니다.

 

파기한 법은 더 이상 법으로서 효력이 없습니다.

언약을 했어도 어느 쪽에서든지 이제 더 이상 이 법을 따르지 않겠다고 하면 그것은 법으로서 효력이 없어집니다. 그리고 법을 마음대로 변경을 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물론 이 세상은 국회가 있어서 입법을 하고 있지만 하나님과 인생은 타협을 하고 입법을 하고 그런 관계가 아니라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5장을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특히 율법주의에 미혹이 되어 있는 사람들은 한 결 같이 마태복음 5장에서 예수님께서 율법에 대해서 말씀을 하신 것이 율법을 더 강화 했다고 말하는데 그것은 법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들의 말입니다

 

예수님이 법을 강화할 수 있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게 됩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피로 언약을 한 그 율법을 예수님 마음대로 이렇게 고치고 저렇게 고치고 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합니까? 그런데도 마태복음 5장을 보면서 그럴 수 있다고 이야기 합니다.

 

예수님은 성자입니다

그런데 성부가 이스라엘과 언약한 법을 마음대로 고칠 수 있습니까?

고칠 수 있다고 말한다면 그는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과 예수님과의 관계를 안다면 어느 누구도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회사가 있습니다.

사장이 사원들과 계약을 하고 일을 합니다.

그런데 사장의 아들이 와서 내 아버지와 계약을 한 것은 이제 필요 없고 내가 말하는 것을 들으라고 하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아마 그 아들의 말을 들을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보는 앞에서는 듣는 척은 할 수 있어도 자기 마음에서는 사장과의 계약이 중요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예수님께서 율법을 마음대로 고쳤습니까?

마태복음 5장을 보고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면 여러분은 복음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그럴 권리도 없고 또 그렇게 해서도 안 됩니다. 왜 그러냐면 율법은 하나님과 이스라엘과 피로 언약을 했기 때문입니다. 피로 언약을 했다는 말씀은 생명을 걸고 언약을 했다는 말씀입니다

 

생명이 관계된 것이 바로 율법입니다

그 율법을 예수님께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피로 언약을 한 것은 한쪽에서 일방적으로 파기를 했을 때 언약이 깨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것도 법을 입법한 쪽에서 파기를 해야지 준행 자는 마음대로 파기를 할 수 없습니다.

 

법을 파기할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뿐입니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이 있다면 죄에 대해서 자기가 대신 갚아줄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파기를 할 수 있습니다. 내가 1억을 빚졌습니다. 나는 갚을 능력이 없는데 누가 대신 갚아주면 그 법은 더 이상 효력을 상실하게 되고 법이 나를 구속할 수 없습니다.

 

만약 5000만원만 갚아 주었다면 어떻게 됩니까?

법에 대해서 효력을 정지하고 싶어도 할 수 없습니다. 법은 아직 5000만원이 남아 있기 때문에 계속해서 나를 강제 할 수 있는 권한이 있습니다. 법을 바로 이해해야 복음을 알 수 있고 또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무엇인가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입법자가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모든 죄를 대신 갚아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갚아 주었기 때문에 법에 대해서 폐기를 할 수 있습니다. 만약 갚아줄 능력도 안 되는 사람이 법을 폐기하려고 했다가는 오히려 법에 의해서 심판을 받게 됩니다.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눈에는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고 언약을 했습니다.

 

출애굽기 24:23-25절을 보면

그러나 다른 해가 있으면 갚되 생명은 생명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데운 것은 데움으로, 상하게 한 것은 상함으로, 때린 것은 때림으로 갚을지니라

 

이것이 율법입니다

이 율법은 이스라엘과 하나님이 피로 언약을 했습니다.

생명을 걸고 언약을 했다는 말씀입니다 법이 강화가 되려면 반드시 이 법을 그대로 지켜야 하고 이 보다 더 중한 것으로 처벌을 해야 법이 강화 되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법이 강화 되었습니까?

예수님은 법을 강화하신 것이 아니라 폐기를 했습니다.

강화라는 말을 할 때는 그 법의 처벌이 더 무거워 졌을 때 하는 말입니다 그런데도 자기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조차 모르고 그저 세뇌를 당해서 강화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만약 법이 살아 있다면 이 법을 그대로 행하든지 아니면 이 보다 더 강화를 해서 눈에는 눈하고 또 이 하나를 더 상하게 하라고 해야지 강화 되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를 상하게 했으면 율법에는 이로 갚으라고 했으니까 이 법이 살아 있거나 강화가 되었다면 이로 갚든지 아니면 이에다 다른 것을 더 플러스해서 갚아야 강화 되었다는 말이 성립이 됩니다.

 

말의 의미도 모르고 사용을 합니다.

예수님께서 율법을 강화했습니까? 만약 그렇게 생각을 한다면 여러분은 율법주의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강화한 것이 아니라 율법을 폐해 버리시고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자기 육체로 율법을 폐하시고 이제 율법에서 벗어난 성도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가를 가르쳐 주는 말씀이지 율법을 강화한 말씀이 아닙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며

 

율법은 오른 뺨을 치면 반드시 같이 오른 뺨을 쳐야 합니다.

그것이 율법입니다 만약 이것이 강화가 된다면 어떻게 되어야 하느냐면 오른 뺨을 치고 또 왼뺨도 치라고 해야 율법이 강화된 것입니다 오른 뺨을 맞았는데 나도 오른 뺨을 안 때린다면 그 율법은 폐기를 한 것입니다 왼 뺨을 돌려 대라는 말씀은 나중에 생각을 하고 오른 뺨을 친 것에 대해서만 생각을 하시기 바랍니다.

 

율법은 반드시 오른 뺨을 같이 쳐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오른 뺨을 치라고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것은 율법을 강화한 것이 아니라 율법을 폐기 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자기 육체로 율법을 폐기하시기 때문에 지금 이 말씀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십자가를 지십니다.

우리 대신 빚을 갚아주시기 때문에 율법을 폐해 버릴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입법자는 하나님이시지만 그 법에 모든 것을 다 갚아 주시는 분이 바로 예수님이시기 때문에 폐해 버릴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범칙금이 나와서 누군가 대신 갚아 주었다면 법은 더 이상 강제하지 못 합니다.

 

예수님께서 오른 뺨을 대신 맞아 주었습니다.

우리 영혼의 생명을 잃는 오른 뺨을 대신 맞아 주었으니까 이제 너희는 육체의 왼 뺨을 돌려 대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질고를 대신 지시고 가셨습니다. 내 영혼이 맞아야 하는 오른 뺨을 대신 맞아 주시고 내 영혼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이제 이렇게 은혜로 구원을 받은 성도는 이 세상에서 왼 뺨을 돌려 대라는 말씀입니다

 

왜 왼 뺨을 돌려 대야 합니까?

그래야 내가 받은 은혜를 이웃에게 전하고 그가 복음을 깨닫고 그 영혼이 구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내 왼 뺨을 돌려 대야 합니다. 내 영혼을 위해서는 예수님께서 오른 뺨을 대신 맞아 주셨으니까 너희는 한 영혼이라도 구원을 하려면 육체의 왼 뺨을 돌려 대라는 말씀입니다

 

율법을 폐하셨습니다.

그 율법을 폐해 주신 것은 은혜입니다

그렇게 은혜를 입은 성도는 당연히 왼 뺨을 돌려 댈 수 있습니다. 나를 위해 오른 뺨을 맞는 수치를 당해주셔서 내 영혼이 구원을 받았는데 나는 그것을 참지 못하고 같이 오른 뺨을 때리려고 한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무엇인가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마태복음 26:67절을 보면

이에 예수의 얼굴에 침 뱉으며 주먹으로 치고 혹은 손바닥으로 때리며

 

내가 받아야 하는 수치를 대신 받으셨습니다.

얼굴에 침을 뱉고 또 손으로 뺨을 칠지라도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그 모든 수치를 그냥 받으셨습니다. 그런데 그 은혜를 입은 성도라면 당연히 왼 뺨을 돌려 댈 줄 알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내가 왼 뺨을 돌려 댐으로 해서 그 영혼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면 성도로서 당연히 그렇게 살아가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이 더 강화 되었습니까?

제발 정신 나간 소리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 육체로 율법을 폐하시고 이제 그 은혜를 입은 성도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가를 마태복음 5장에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율법을 다시 강화를 해서 세운 것이 아니라 율법을 폐하셨습니다. 마태복음에서 가르쳐 주시는 율법에 대한 말씀을 하나하나 자세히 보시기 바랍니다.

 

어디 율법을 강화 했습니까?

안식일을 범하면 돌로 쳐 죽이라고 언약을 했는데 예수님께서는 그 안식일 보다 더 중요한 것이 형제와 화목 하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제단에 예물을 드린다는 말씀은 안식일을 지키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 안식일을 어떻게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범해도 좋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에는 안식일을 범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을 수 없습니다.

어떤 이유에서든지 안식일을 범하는 것은 용납이 안 되고 만약 안식일을 범하는 사람이 있다면 돌로 쳐 죽여야 합니다. 바리새인들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무엇을 하시면 그것을 가지고 꼬투리를 잡고 안식일을 범한다고 공격을 했습니다. 만약 안식일을 폐하지 않았다면 예수님 스스로 돌에 맞아 죽어야 합니다. 율법에 벗어나는 안식일을 얼마나 많이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는 것이 합당합니까?

 

만약 예수님이 아니었다면 그는 처벌을 받았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어느 정도로 안식일을 지켰는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24:20절을 보면

너희의 도망하는 일이 겨울에나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

 

로마에 의해 패망하는 이스라엘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로마가 예루살렘을 포위 했을 때 안식일에 사람들이 도망을 가지 않아서 모두가 죽는 불행한 일이 발생을 했습니다. 자기 생명이 죽는 전쟁 중에서도 이스라엘은 안식일을 범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는 것이 그들에게 용납이 되겠습니까?

 

마태복음 5장은 율법을 절대 강화한 것이 아닙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자기 육체로 율법을 폐하실 것을 아시고 그 폐해진 율법을 버리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가를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이지 절대로 율법을 강화한 말씀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율법을 마음대로 조정을 할 수 있는 그런 권한이 없습니다. 이 율법은 하나님과 이스라엘과 피로 언약을 했기 때문에 예수님의 권한 밖에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맹세를 해야 합니까?

하지 말아야 합니까?

서원을 하는 것을 그대로 지키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서원을 절대로 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에는 서원을 하고 그것을 지키는 규례가 다 정해져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맹세 자체를 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누가 맹세를 했습니까?

입다는 자기가 전쟁에서 이기면 처음 자기를 영접하는 사람을 번제로 바치겠다고 맹세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 외동딸이 나와서 그를 영접하면서 춤을 추는 것을 보고 매우 슬퍼했습니다. 그는 그가 맹세한 그대로 자기 딸을 하나님께 번제로 드렸습니다.

 

율법은 맹세를 하면 그대로 지키라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도무지 맹세를 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에서는 맹세를 하고 지키라고 한 그것을 예수님께서는 그 율법을 폐해 버리시고 도무지 맹세를 하지 말라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것이 어떻게 율법을 강화한 것입니까?

 

맹세를 하고 지키는 것이 강화된 것이고 또 그 지키는 것에 대해서 더 플러스해서 지키라고 하는 것이 강화된 것 아닙니까? 도무지 맹세를 하지 말라고 하신 말씀은 율법을 폐해 버리시겠다는 말씀입니다

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율법에는 송사를 어떻게 해야 합니까?

가난한 자라도 보아주지 말고 아주 공정하게 판결을 해서 그 판결이 나는 대로 이행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 송사에 대해서도 폐해 버리셨습니다. 판결을 하는데 까지 가지 말고 속옷을 가지기 위해 송사를 걸어오면 겉옷까지 내 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에는 제사장에게 가서 정당한 판결을 받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송사를 아예 하지 말고 설령 송가가 진행이 된다 해도 빨리 화해를 하고 그가 내 속옷을 가지고자 한다면 겉옷까지 내어 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은 법대로 판결을 하고 또 그 판결에 따라서 하는 것이 율법입니다

 

율법의 송사는 절대로 그냥 양보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율법대로 하면 누가 내 속옷을 가지고자 송사를 하면 그와 재판장 앞에 나가서 과연 내 속옷을 가지는 것이 합당한가를 판결을 받고 그 판결대로 속옷을 주면 됩니다. 굳이 겉옷까지 내어 줄 필요가 없는 것이 바로 율법입니다.

 

거듭 말씀을 드리지만 율법은 법대로 해야 합니다.

어느 누구도 그 법에 대해서 함부로 판결을 바꿀 수도 없고 또 율법에 어긋나게 판결을 해서도 안 되고 양보를 해서도 안 되는 것이 율법입니다 내 속 옷을 달라고 송사하는 사람에게 내 겉옷까지는 주는 것이 더 강화된 율법입니까? 제발 정신 나간 소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더 강화를 하려면 그것을 법으로 정해야 합니다.

법을 강화하려면 겉옷까지 주는 것을 법으로 정해야 강화된 법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나는 속옷만 주어도 내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는 만족을 합니다. 더구나 재판도 안하고 속옷을 주는데 그것을 마다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굳이 겉옷을 줄 필요도 없습니다.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

 

이스라엘은 스스로 자유자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가기 싫으면 안 가도 됩니다. 이런 율법은 아예 없습니다. 아무 관계도 없는데 억지로 가자하면 갈 필요가 있습니까? 자유 하는 사람은 절대 누가 억지로 어디를 가자고 해도 갈 필요조차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까지 해서라도 아니 십리를 동행해서라도 그 영혼을 구원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왜 십리까지 가라고 합니까?

바보가 아니라면 오리를 가자고 하는데 십리까지 갈 필요가 없습니다. 아니 오리를 가는 것도 얼마든지 거절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영혼을 그렇게 해서라도 구원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목적이 분명한 사람은 다릅니다.

설령 자기가 육체적으로는 많은 손해를 보는 한이 있더라도 그 영혼을 구원하겠다는 목적인 분명한 사람은 오리가 아니라 십리까지 아니 그 이상도 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그렇게 할 수 있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성도는 이 세상에서 존재하는 분명한 목적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영혼을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것과 같이 성도 역시도 또 다른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그가 억지로 오리를 가자하면 십리까지도 가면서 내가 가지고 있는 복음을 전파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그 마음이 만족을 누리면 당연히 내가 전하는 복음에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네가 구하는 자에게 주라고 말씀을 합니다.

마태복음 5장을 가지고 율법이 강화 되었다고 주장을 하고 또 그렇게 살아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이 말씀을 드리면 거의 꼬리를 내리는 것을 보게 됩니다.

 

달라고 하면 주는 사람을 못 봤습니다.

더구나 저는 복음을 위해 일하겠다고 하는데 그렇게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을 하고 그렇게 살아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던 그들이 실제 이 말씀대로 달라고 해 보면 어느 한 사람도 주는 것을 못 봤습니다. 그들이 얼마나 이중적인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것 하나도 못하는 그들이 율법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마태복음 5장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모두 지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마치 부자청년과 같이 예수님께서 네 가진 재물을 팔아 가난한 자에게 주고 나를 따르라고 하니까 근심하며 간 그 부자 청년과 같이 자기들이 조금 지키고 있는 율법에 취해서 마치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저도 못 합니다

그런데 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율법에 미혹된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한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도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가를 마태복음 5장에서 말씀을 하시고 정점을 찍으셨습니다. 이것을 다 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것을 분명히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자기가 다 할 수 있는 것처럼 주장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또 율법이 강화 되었으니까 더욱 더 철저하게 지켜야 한다고 정신 나간 소리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살기를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살지를 못 합니다. 그런 나를 보면서 더욱 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의지해야 합니다. 그런 성도만이 주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받고 그 영혼이 구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우리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다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다 하신 그것을 우리에게 거저 주셔서 우리 영혼을 부요하게 해 주셨습니다. 그 부요함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성도는 그 영혼이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성도는 세상에서 더욱 선하고 의롭게 살아가야 하지만 행위를 따르는 자가 되기보다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온전한 믿음을 소유한 성도에게 주님께서 은혜에 은혜를 내려 주실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