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로마서 강해(오직 믿음)

57-1, 형제들아 내가 법아는 자들에게 말하노니

윤주만목사 2024. 9. 29. 08:24

로마서7:1절을 보겠습니다. (247)

형제들아 내가 법 아는 자들에게 말하노니 너희는 율법이 사람의 살 동안만 그를 주관하는 줄 알지 못하느냐

죄의 삯입니다.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그 삯이 사망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성경을 몰라서 그 삯을 받기 위해서 율법을 지키는 일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그 삯이 사망이라는 것을 몰라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율법은 지키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삯이 사망이라고 분명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알면 절대로 율법을 지키지 않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있는 무지한 자들은 부녀와 간음을 하면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어떠한 일을 한다는 것을 모르고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성령이 오셔야 합니다.

왜 주님께서 우리에게 보혜사를 보내 주셨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에서 너희가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않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오시지 않은 모든 사람은 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있는 율법을 지키는 모든 사람들은 자기들이 성령을 받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오셔야 합니다.

그런 성도만이 율법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에 대한 기초가 없다보니까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은 자기들이 성령을 받았다고 하면서 이 세상 샤머니즘적인 행위들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령을 받았다고 하는 그들이 도리어 하나님을 멸시하는 행위들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율법도 모릅니다.

성령도 모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도 모릅니다. 이 시대는 성경을 보고 있지만 어느 것 한 가지도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이 없이 그저 자기들의 이성을 따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스라엘보다 더 견고한 율법주의로 빠져 들어가고 있습니다.

바리새인입니다

그들은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율법을 지켰습니다. 이 시대 바리새인입니다. 성경에서 자기들이 원하는 율법을 지키고 있고 또 성경에서 없는 것을 자기들의 종교에 의해서 만들어서 그것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그 모든 행위를 율법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더 철저해졌습니다.

자기들이 지키는 것을 안 지키는 사람을 보면 분을 참지 못 합니다. 그리고 그것에 반대를 하면 적대시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십일조 한 가지만 해도 그것에 열심히 내고 있는 사람들은 십일조에 대해서 누군가 반대의 글을 올리면 모두가 혼연일체가 되어서 그 글의 부당성에 대해서 성경에서 조목조목 반박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미 도가 넘어섰습니다.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성경과는 전혀 다르게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성경을 볼 생각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분명히 의문을 가질 수 있는데도 이미 목사가 우상이 되어서 그가 하는 모든 말은 성경의 권위보다 더 높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율법입니다

그것의 삯은 사망입니다. 여러분들이 어떠한 마음으로 율법을 지키는 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으면 율법을 지키는 모든 사람은 반드시 그 삯으로 사망을 당하게 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구원을 받기 위해서 의롭다 하심을 얻기 위해서 지키지 않는다 해도 천국에서 상금을 더 받기 위해서는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삯이 사망이라는 것을 사도 바울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만 그렇게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율법에서도 증거를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왜 지킵니까?

성도로서 살기 위해서 지키고 있습니까? 성도로서 살기 위해서 지키고 있는 그 삯이 사망이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이 어떠한 핑계를 대고 율법을 지키는 타당성이 있는 이유를 이야기를 한다 해도 성경은 그 삯이 사망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단 한 가지의 율법이 여러분을 사망으로 끌고 간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율법을 지키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람들 스스로가 율법을 지키는 것을 원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사람의 이성에 바른 길로 보이기 때문에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율법의 행위로 필경은 사망의 길로 간다는 것을 이 시대 교인들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죄의 삯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사입니다. 교회 안에 있는 두 사람을 비교를 해서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죄를 짓는 사람이 있고 하나님의 은사를 받는 사람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둘을 함께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죄를 지면서 그 삯을 받고 있는 사람은 절대로 하나님의 은사를 받을 수 없습니다.

전제 조건입니다

나에게서 죄가 없어야 합니다. 죄가 있는 상태에서는 하나님의 은사가 나에게 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죄를 짓고 있는 상태에서는,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고 있는 상태에서는 하나님의 은사는 절대로 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이 시대는 모두가 죄의 삯을 위해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하나님의 은사를 받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비교를 할 때는 어느 한 가지를 하면 어느 한 가지는 절대로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니까 내가 하나님의 은사를 받고 싶으면 죄를 지어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모두가 율법을 지키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사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영생이 여러분에게 있어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영생을 얻었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이 영생의 전제 조건에 죄의 삯이 없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죄의 삯으로 이미 사망을 받은 사람은 영생을 얻을 수 없습니다.

사망 판정을 받았습니다.

그가 어떻게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 그래서 사도 바울이 먼저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인데 그 삯을 받지 않아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영생을 받았다고 말 합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 중에서 자기는 영생을 받지 않았다고 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정말 의문이 드는 일부 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종교에 의해서 세뇌가 되어서 영생을 받았다고 말을 합니다. 또 모든 사람이 영생을 받았다고 하는데 자기만 받지 않았다고 하면 이상하니까 그들에게 동화가 되기 위해서 영생을 받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영생의 전제 조건입니다

그에게서 죄의 삯이 없어야 합니다. 이미 사망을 당한 자는 영생을 받을 수 없습니다. 죄의 삯이 없는 성도만이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얻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의 피 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에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것이 포함이 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어서 세례를 받은 성도만이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성경을 보면서도 그 피에 대해서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저 앵무새와 같이 그의 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지 그 의미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나는 율법을 아는 사람들에게 말을 합니다. 율법은, 사람이 살아 있는 동안에만 그 사람을 지배한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형제들아

사도 바울이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형제입니까? 아무나 형제라고 하지 않습니다. 교회 안에 있다고 해서 다 형제가 아닙니다. 교회 안에서 다른 복음에 미혹이 되어 있는 사람은 형제가 아니라 원수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형제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1장에서 하고 나서 이제 7장을 시작하면서 처음으로 하고 있습니다. 6장까지의 말씀을 알고 나서 죄를 짓지 않고 하나님의 은사를 받은 성도들에게 사도 바울은 형제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교회에 나왔다고 해서 다 형제가 아닙니다. 반드시 구원을 받은 성도만이 형제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2:11절을 보겠습니다. (354)

거룩하게 하시는 자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하나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형제입니다

사도 바울이 너희가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거룩함을 받아 영생을 얻은 성도를 사도 바울이 이제 형제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다고 다 형제가 아닙니다.

기독교인은 기독교인들끼리 형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는 종교인인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은 성도입니다. 사람들은 성경을 너무 모르다보니까 자기들이 다니는 종교 안에 있는 것으로 형제라 부르기를 좋아하고 있습니다. 물론 같은 종교 안에 있으면 형제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닙니다.

죄의 삯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과 하나님의 은사를 받기 위해서 일하는 사람은 전혀 다릅니다. 같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해서 형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아니 그들은 하나님을 믿고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율법의 종이 되어서 살아가고 있는 종교인이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유대교입니다

그리고 기독교입니다. 이 둘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전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유대교도 죄의 삯을 위해서 일을 했고 기독교 역시 죄의 삯을 위해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또 기독교 안에는 온갖 이단들이 다 있습니다. 그들 역시도 죄의 삯을 위해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성도는 그들과 형제가 될 수 없습니다.

누가 형제입니까?

세상의 상식으로 생각해도 하나에게서 나야 형제라 부를 수 있습니다. 그것을 히브리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사도 바울이 로마서6장을 마치고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형제라고 부르는 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들은 이제 복음을 듣고 하나님의 종이 되어서 율법을 지키지 않고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기에 형제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하나에서 나야 합니다.

히브리서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맏 형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왜 맏형이라고 부르고 있는가 하면 하나에게 났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거룩하게 하시는 자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하나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형제가 되시기 바랍니다.

성경에는 형제라는 말씀이 참 많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신약성경만 해도 우리가 다 셀 수 없을 정도로 형제들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사도들은 우리 이방인들이 형제가 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런 문자를 안다고 해서 아니 성경에 형제라고 기록이 되어 있다고 해서 다 형제가 아닙니다.

반드시 나야 합니다.

하나님께 로서 난 자라야 형제라 부를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형제라고 부를 수 있는 단 한 가지의 조건이 하나님께 로서 난 자라야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로서 낳지도 않은 사람을 형제라고 부를 수 없습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성경은 육의 일이 아니라 영의 일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영생입니다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입니다. 이 영생을 받은 성도를 사도 바울이 형제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영생도 없는 자는 형제가 될 수 없습니다. 율법을 지키면서 이미 사망을 당한 자를 어떻게 형제라 부를 수 있습니까?

성경은 냉정합니다.

정말 어떤 때는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냉정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합니다. 생명이라는 것이 그렇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더구나 영원한 생명입니다. 그 생명에 관한 일인데 소홀히 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가 영생을 얻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성경을 그렇게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영생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이 영생에 대해서 사도 바울이 어떻게 얻을 수 있는가를 6장까지에서 다 말씀을 했습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러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복음을 보고 믿음으로 살게 된다고 말씀을 하면서 그 믿음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죄입니다.

우리 인생의 죄를 어떻게 했는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의 의와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의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또 아브라함을 예표로 해서 우리가 어떠한 믿음을 가져야 믿음으로 살 수 있는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율법입니다

이 율법이 무엇이라는 것을 자세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율법의 종이 되는 자는 그 삯이 사망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종에서 벗어나서 하나님의 은사를 받아야 합니다. 그런 성도만이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사도 바울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영생을 얻은 성도는 하나님께 로서 난 자이기 때문에 형제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하나에서 났습니다.

우리는 모두가 하나에게 났습니다. 육으로는 아담의 자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로서 난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을 로마서를 통해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하나님께 로서 난 자가 어떻게 날 수 있는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면서는 절대로 하나님께 로서 날 수 없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육적인 형제가 아닙니다.

같은 종교 안에 있는 그런 형제가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에서 났기 때문에 형제입니다. 이 형제는 죄의 삯을 버렸습니다. 죄를 짓지 않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교회 안에서 죄를 짓고 있는 사람은 성도의 형제가 될 수 없습니다. 아니 그런 사람은 하나님께 로서 낳지를 않았습니다.

죄의 종이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율법을 지키지 마시기 바랍니다. 정말 계속해서 강조를 해서 말씀을 드리지만 율법을 단 한 가지라도 지키는 사람은 죄의 종입니다. 그가 받을 삯은 천국에 아니라 사망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왜 이렇게 율법에 대해서 강하게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가 하면 율법을 한 가지라도 지키면 사망을 당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한다는 추상적인 말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도로서 이 정도는 해야 한다는 그것 하나가 여러분을 사망에 이르게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아무리 형제라는 단어가 많다고 해서 무조건 형제가 된 것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했던 이스라엘이 주님께 어떻게 했는가를 알면 답은 아주 쉽습니다. 그런데도 율법을 지킨다면 그는 어쩔 수 없이 사망에 이르게 되어 있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법아는 자들에게 말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법아는 자들이 거의 없습니다. 성경에서 율법을 보고 있지만 그것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 그대로의 율법을 아는 것을 가지고 자기들이 법을 아는 것과 같이 제사법이니 시민법이니 도덕법이니 하면서 고상한 척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7:49절을 보겠습니다. (157)

율법을 알지 못하는 이 무리는 저주를 받은 자로다

대제사장들입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잡아 오지 못하자 그 내부에서 여러 가지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너희도 예수 그리스도에게 미혹이 되었느냐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바리새인 중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가 있느냐고 하면서 율법을 알지 못하는 이 무리는 저주를 받은 자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대제사장들입니다

그들은 어려서부터 성경을 보았습니다. 아니 성경에 있는 그대로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 늘 성경을 보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데 있어서 어느 한 가지라도 율법대로 하지 않는 것이 없게 하기 위해서 늘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율법을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이들이 율법을 알고 있습니까? 문자 그대로의 율법은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제사를 그대로 드리려고 하니까 율법을 얼마나 자세하게 알고 있겠습니까? 사실 우리가 구약 성경을 보아서 잘 알겠지만 제사를 율법대로 드린다는 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물론 그것을 조상 대대로 하면 또 쉽게 할 수 있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이들이 율법을 알고 있습니까?

대제사장들은 율법을 모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제사 한 가지만 해도 그들은 율법을 몰랐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셨지만 조상 대대로 지켜온 율법대로 제사를 드리고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제사를 어떻게 드려야 하는지도 모르기 때문에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 그대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율법을 알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율법을 알기 때문에 문자 그대로의 율법을 지켰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율법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이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율법을 모르는 그들이 이 대제사장들과 같이 율법을 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몰라서 십일조를 하고 있고 율법을 몰라서 주일을 지키고 있는 그들이 자기들과 같이 하지 않은 사람들을 보면서 율법을 모른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누가 율법을 모릅니까?

사실 성경의 문자 그대로라면 정통이라고 하는 교회는 율법을 모릅니다. 왜 사람들이 안식일 교회로 가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들은 최소한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율법대로 살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정통이라는 교회는 사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아주 이상하게 율법을 주장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정통의 교회에 다니고 있습니까?

여러분이 아직 안식일 교회에 가서 교제를 안 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말하는 그대로 그들은 율법주의라고 하면서 이단이라고 하고 있지 안식일 교회에 가서 교제를 하는 순간 지금 정통이라고 하는 교회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고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율법을 누가 더 잘 압니까?

안식일 교회가 율법을 더 잘 알고 있습니다. 정통이라는 교회는 율법이 폐하여졌다고 하면서 사실 따지고 보면 아주 어정쩡하게 율법을 지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차라리 율법이 폐하여 졌다는 말을 하지나 말지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그런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된다면 정통의 교회가 이중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안식일 교회가 율법을 알고 있습니까?

그들은 이스라엘이 알고 있던 그런 율법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율법을 모르는 무리는 저주를 받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 시대 정통이라고 하는 교회는 율법을 알고 있습니까? 사실 안식일 교회보다도 설득력이 없이 율법을 알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법을 아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의 대제사장은 율법을 모르고 살았습니다. 그들이 만약에 율법을 알았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먼저 영접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율법을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 그대로의 율법을 지키면서 율법을 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문자 그대로 지키는 율법이 죄라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지키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십계명을 알고 있습니까?

과연 이 시대 십계명을 알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리스도편지에 십계명에 대해서 설교를 올려 드렸습니다. 그런데 이 십계명에 대해서 알고 있는 교회가 있습니까? 십계명이 살아 있다고 하면서 십계명을 지키겠다고 하는 이 시대 정통의 모든 교회가 사실은 법을 모르기 때문에 그것을 어려서부터 가르치고 지키게 하고 있습니다.

법을 아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려면 반드시 법을 알아야 합니다. 법도 모르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은 거짓에 속고 있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이 시대는 법을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6장까지 율법에 대해서 말씀을 했습니다. 그리고 7장을 시작하면서 형제들아 내가 법아는 자들에게 말한다고 하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은 법을 몰랐습니다. 이 시대 기독교인들입니다. 그 안에는 이단도 다 포함이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이단들도 다 포함을 해서 역시 그들도 법을 모르고 있습니다. 법을 알면 어떻게 합니까?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것을 알면 절대로 율법을 지키지 않습니다. 그러나 법을 모르기 때문에 율법을 지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로마서를 강해하고 있습니다.

구약의 율법을 많이 인용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사도 바울이 이 로마서를 기록할 수 있었던 것은 구약을 보고 율법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가 율법을 몰랐을 때는 바리새인 중에 바리새인으로서 흠 없는 율법의 의를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율법을 알고 나니까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의가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했습니까?

자기가 이제까지 바리새인으로 살면서 지켰던 흠 없는 율법의 의를 배설물과 같이 버렸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법을 몰랐을 때는 사도 바울도 바리새인으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법을 알고 나니까 그 법의 삯이 사망이라는 것을 알고 난 이후로는 그것을 버릴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로마서를 통해서 율법을 지키지 말라고 아주 강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법아는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사실 율법을 안다는 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저 역시도 아직까지도 구약의 율법을 보면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말씀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래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것만 알아도 율법을 지키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다 알 수는 없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 주셔서 역사를 하면 모든 성경을 알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정도는 구원을 받을 정도지 사실 그 이상은 모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죄의 삯이 사망이라는 것만 알아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레위기18:5절을 보겠습니다. (174)

너희는 나의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사람이 이를 행하면 그로 인하여 살리라 나는 여호와니라

갈라디아서3:21절을 보겠습니다. (305)

그러면 율법이 하나님의 약속들을 거스리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만일 능히 살게 하는 율법을 주셨더면 의가 반드시 율법으로 말미암았으리라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반포하셨습니다.

그리고 너희는 나의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사람이 이를 행하면 그로 인하여 살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하나님의 규례와 법도를 지키면 삽니다. 사람들이 왜 율법을 지키고 있는가 하면 나의 규례와 법도를 지키면 산다고 말씀을 하니까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지키지 못하면 어떻게 됩니까? 산다는 말씀만 볼 것이 아니라 지키지 못했을 때는 어떻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사람들은 산다는 그 말씀만 보고 영생을 얻기 위해서 이스라엘의 부자 청년과 같이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켰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왜 율법을 어려서부터 지켰는가 하면 살기 위해서 지켰습니다.

그리고 율법을 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거의 모든 사람도 성경을 보면서 문자로 기록이 되어 있는 것만을 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율법을 지켜야 살 수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안식일 교회 같은 경우에는 이런 말씀을 보면서 율법을 철저하게 지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삽니까?

절대로 못 삽니다. 그것을 갈라디아서를 통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만일 능히 살게 하는 율법을 주셨더면 의가 반드시 율법으로 말미암았으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살게 하는 율법을 주신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죽게 하기 위해서 율법을 주셨습니까?

그것이 아닙니다. 로마서에서 율법으로는 죄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 주셨습니다. 또한 율법에 가입한 것은 범죄를 더 하게 하기 위해서 주셨고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넘치게 하기 위해서 주셨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성경을 보면서도 율법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신약 성경이 없으니까 모른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이방인입니다

이제 모든 성경을 다 볼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는 얼마나 성경을 보기가 쉽습니까? 사실 너무 쉽게 성경을 볼 수 있다 보니까 성경이 얼마나 귀한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 안에 있는 말씀이 생명을 위하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말씀인데도 그저 문자를 보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성경을 볼 수 있는 시대에 태어난 것은 은혜입니다. 인쇄술이 발달을 했다 해도 일반 사람들이 쉽게 성경을 볼 수 있는 시대는 불과 100년도 안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성경을 이스라엘보다 더 문자 그대로 보면서 자기들이 율법을 안다고 하면서 십일조를 드리고 있고 주일을 지키고 있고 온갖 율법을 행위로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모르는 자들입니다

문자 그대로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은 율법이 말하는 바를 모르고 있습니다.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은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명확하게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데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심판도 두려워하지를 않고 있습니다.

법을 아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이 법을 말씀하지 않았습니까?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율법을 지키면 사망을 당하는 가를 율법을 통해서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스라엘과 마찬가지로 이 시대 사람들 역시 법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율법을 지키는 자는 어떻게 된다는 것을 사도 바울이 로마서를 통해서 충분히 말씀을 했습니다. 6장까지의 말씀을 바로 깨닫는 성도만이 법아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형제들아 내가 법아는 자들에게 말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시대는 법아는 자들이 없어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사망입니다

살게 하는 율법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율법을 지켜서는 절대로 살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율법을 누가 지키는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키심으로 해서 우리가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율법을 지키시는 것을 알지 못하고 성경을 보면서 자기들이 율법을 지키려 하고 있습니다.

문자를 아는 것이 아닙니다.

율법은 그림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보고 그 문자를 아는 것은 이 세상 초등학문이라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그런 문자를 아는 것이 아니라 율법에서 그림자를 걷어내야 율법을 아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율법을 문자로 알고 있었고 이 시대 기독교인 역시 율법을 문자로 알고 지키고 있습니다.

법아는 자들이 아닙니다.

세상 초등학문을 아는 것으로 법을 안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법을 아는 모든 사람은 사망에 이르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 물론 중요합니다.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기 때문에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율법을 모르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먼저 법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성도만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법도 모르는 사람은 저주를 받습니다. 이스라엘의 제사장들이 법을 모르면서도 자기들이 안다고 했다가 주님으로부터 마귀의 자식들이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교회에 나왔으면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법을 모르면 예수 그리스도를 안다는 것은 무용지물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갈라디아서2:19절을 보겠습니다. (304)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향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을 향하여 살려 함이니라

율법입니다

법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죄를 지면 그에 대한 죄 값을 받아야 합니다. 세상의 예를 들어서 말씀을 드립니다. 어느 극악무도한 사람이 있어서 사람을 많이 죽였습니다. 그가 잡히면 분명히 사형 판결을 받아서 죽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가 죽어버렸습니다. 그러면 그에 대한 기소권이 없어지는 것이 법입니다.

가끔 그런 기사가 나고 있습니다.

총기를 소유할 수 있는 국가들이 있습니다. 그런 나라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총으로 살상을 합니다. 그러고 나서 그가 죽어 버리면 법이 더 이상 그를 기소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법이 엄하다 할지라도 죽은 사람을 더 이상은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입니다

옛 법에 부관참시라는 것이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죽어 있는 사람의 무덤을 열어서 그 사람의 신체를 잘라 버리거나 아니면 그 목을 잘라서 효수를 했던 벌이 있었습니다. 그 벌은 사실 유교의 사상이 있는 우리나라 같은 곳에서는 큰 형벌이 될 수 있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죽은 사람의 시신을 훼손한다고 해서 그의 목을 자른다 해서 벌이 더 가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죽었습니다.

이미 법에 의해서 죽었습니다. 그렇게 죽은 사람은 아무리 법이 엄하다 해도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설령 그 묘를 파내어 시신을 자른다 해도 이미 죽는 사람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물론 후손에게 어떤 경계는 될 수 있을지 몰라도 사실 죽은 사람에게는 법이라는 것은 더 이상 유효하지 못하다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그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이 사람이 살 동안만 그를 주관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그가 아무리 열 번을 죽어서도 죄의 값을 지불하지 못할지라도 더 이상의 형벌이라는 것은 무의미 합니다. 왜 사도 바울이 지금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그가 누구입니까?

바리새인 중에 바리새인이요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왜 갈라디아에서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향하여 죽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향하여 죽었기 때문에 이제 더 이상 율법이 나를 주관할 수 없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그래서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릅니다.

내가 왜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는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내가 죽으면 이제 더 이상 율법은 나를 주관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살아 있는 동안에는 반드시 율법이 나를 주관할 수 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지 않으면 반드시 율법은 나를 주관하게 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 시대 교인들입니다

이 갈라디아서의 말씀을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까? 온갖 미사여구를 써 가면서도 자기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가 어떻게 죽었는가를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말로는 죽었다고 하는 그들의 실제 행위를 보면 율법의 주관을 받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율법은 사람이 살 동안만 주관입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는 이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율법에 대해서 십자가에서 죽었습니다. 죽은 우리를 설령 부관참시를 한다 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왜 사도 바울이 내가 그리스도의 함께 죽었다고 하는가 하면 이제는 더 이상 율법의 주관을 받지 않고 하나님을 향하여 살기 위해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해서 살고 싶습니까?

먼저 전제 조건이 율법에 대해서 죽어야 합니다. 율법이 사람이 살 동안만 주관하기 때문에 이제 사도 바울은 죽고 하나님을 향하여 살기 위해서 사도 바울이 내가 율법에 대해서 죽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 말씀을 할 수 있는 것은 구약에서 율법을 보고 그 율법의 의미를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율법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이 왜 지금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6장에서 율법을 지키는 자는 반드시 사망이 왕 노릇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망이 왕 노릇하는데 자기가 율법에 대해서 죽어야지만 더 이상 사망이 왕 노릇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법을 알아야 합니다.

율법을 모르면 반드시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 그대로의 율법을 지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율법을 알면 초등학문으로서의 의문에 쓴 계명의 율법을 지키지 않을 수 있습니다. 왜 사람들이 율법을 지키고 있는가 하면 율법을 모르기 때문에 지키고 있습니다. 율법을 알면 그 율법을 지키는 것이 죄라는 것을 알면 어느 누구도 지키지 않습니다.next 5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