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은혜와 진리의 말씀

112강,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윤주만목사 2019. 6. 23. 06:31


112,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사도행전 5:1-6절을 보면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그 아내 삽비라로 더불어 소유를 팔아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매 그 아내도 알더라 얼마를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 베드로가 가로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임의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 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아나니아가 이 말을 듣고 엎드러져 혼이 떠나니 이 일을 듣는 사람이 다 크게 두려워하더라 젊은 사람들이 일어나 시신을 싸서 메고 나가 장사하니라

 

성경을 보면서 두려워합니다.

특히 본문의 말씀은 너무 많이 들어 온 말씀이며 이 말씀으로 인하여 교인들이 늘 자기가 혹시 죄를 받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사로 잡혀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이 두렵습니까?

만약 여러분의 마음에 혹시라도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다면 여러분은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이런 성경 말씀을 잘못 오해를 해서 두려워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면 솔직히 말씀을 드려서 차라리 교회에 나오지 않는 것이 그에게 더 좋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말로는 너무 잘 알고 있지만 실제 신앙생활을 하는데 있어서는 혹시 하는 마음이 늘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런 마음을 갖게 되는 이유는 성경을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또 일부 탐욕에 물든 돼지 같은 목회자들이 겁박을 주고 있기 때문에 그런 말을 듣고 나도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부부 같이 저주를 받지 않을까 하면서 두려워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재물을 원하십니까?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뭐라고 하셨습니까?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으로 입성을 하실 때 수많은 사람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면서 호산나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하면서 찬송을 불렀습니다. 그러자 그것을 못 마땅하게 생각한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저들을 조용히 하게 해 달라고 하자 예수님께서 저들이 아니면 돌들로라도 나를 찬송하게 할 수 있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돌을 일으켜서 찬송케 하실 수 있는 분이 하나님입니다

만약 제자들이 복음을 전하는데 있어 정말 돈이 없다면 하나님께서는 필요에 따라서는 돌이 변해서 금이 되게도 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온 우주 천하를 다 말로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돌이 변해서 금이 되게 하는 것은 아주 쉬운 일입니다

 

죽은 자도 살리셨습니다.

그런 하나님께서 무엇을 못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의 생각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이 말씀을 이용해서 돈을 갈취하려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에 나온 사람들에게 이 말씀을 아주 적절하게 이용을 하면서 겁박을 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돈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일 보다는 재물에 더 관심이 많기 때문에 하나님의 일을 빙자해서 교인들에게서 쌈짓돈을 빼앗고 있습니다. 더구나 이런 말씀을 하게 되면 교인들은 두려워서 라도 돈을 더 잘 가져다 바치고 있습니다. 제가 표현이 좀 심하더라도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지금 한국 교회는 돈에 찌들어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들이 하는 이야기는 같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서는 헌신이 필요하다고 말 합니다

제가 그것을 굳이 반대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당연히 복음을 전하려고 하면 재물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생각과 사람의 생각은 다르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복음을 전하는데 있어 돈이 필요한 것은 분명하지만 꼭 돈으로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초대 교회는 가난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절대로 물질의 노예가 되지 않았고 있는 만큼의 한도 내에서 사역을 감당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도들 중에 어느 누구도 물질을 강요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아니 솔직히 말씀을 드리면 사도들 중에 십일조를 받았다는 기록도 없습니다. 한국 교회가 그토록 목을 매고 있는 그 중요한 십일조를 왜 사도들이 받았다는 말씀이 없는 가를 곰곰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이 문제입니다

좋은 일에 더 정욕에 빠지는 것을 모릅니다.

나쁜 일만 정욕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은 오히려 좋은 일에 더 정욕 적으로 빠지고 있고 그 일을 안 하면 큰 일이 날 것 같이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나쁜 일은 그렇게 까지 정욕에 빠지지 않습니다.

한번 이야기 해 보시기 바랍니다. 교회에서 좋은 일을 하겠다고 하는데 반대를 해 보시기 바랍니다. 심지어는 이단이라고 공격을 받기 십상입니다. 그들이 왜 이단이라고 공격을 하느냐면 정욕에 빠져 있기 때문에 그 정신이 혼미해져 있어 그것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참지 못하는 것입니다

 

제가 간증을 가끔 듣습니다.

간증이 좋아서 듣는 것이 아니라 그 간증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를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그 열심이 정욕에서 나온 것이라는 것을 꿈에도 생각을 못 하고 있습니다. 반대하는 사람들을 이기고 그 일을 추진해서 어떤 결과를 얻은 것에 대해서 무척이나 자랑스럽게 생각을 하고 마치 하나님께서 그 일을 도와 주셨다고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일을 만듭니다.

그리고 자기가 무엇을 하기 좋아 합니다.

그 생각이 얼마나 사단에 미혹이 되어 있는 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 싸움을 내가 하신다고 했습니다. 너희는 바라보고만 있으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자기들이 싸워서 들어가려고 하다가 광야에서 멸망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이 하셔야 합니다.

내가 무슨 일을 하려고 하기 보다는 하나님께서 하실 수 있도록 기다리는 성도가 지혜로운 성도입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있는 가라지들은 자기가 무엇을 하려고 하다가 멸망의 길로 가게 됩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말씀도 그와 같은 유형의 말씀이고 우리에게 분명한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왜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밭을 팔았습니까?

아마 가난한 사람들이라면 팔 밭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그래도 그 당시에 어느 정도 토지를 소유한 중산층 이상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재물이 있는 사람이기에 더욱 선한 일에 열심을 내게 되었고 그 일이 자기들을 올무에 빠뜨리는 결과를 가져 왔습니다.

 

4장 마지막을 보면 그 당시 레위인 이었던 바나바가 자기 재산을 팔아서 예루살렘 교회에 드리고 그 재산을 통해서 당시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 구원 받는 사람들을 도울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믿음이 있는 성도들이 자기 재산을 내 놓아서 그 당시 어려움을 겪고 있었던 예루살렘의 초기 기독교인들을 도와주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을 본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도 자기들의 재산을 팔아 사도들에게 바치려 하다가 나중에 그 밭을 팔고 난 후에 그 얼마를 감추어 두었다가 베드로가 추궁을 하자 속이려 하다가 결국 죽임을 당하고 마는 사건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의 중요한 뜻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헌금을 할 때 마다 이 말씀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늘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혹시라도 자기도 아나니아와 삽비라와 같이 되지 않을까 한번쯤은 누구나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헌금을 하면서도 자원하는 마음이 아니라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혹시라도 내가 잘못 되지나 않을까 고민을 하게 됩니다.

 

사단이 주는 마음입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죽은 이유가 있습니다.

내야 하는 헌금을 내지 않아서 죽은 것이 아니라 그들은 반드시 드려야 하는 것을 속이고 드리지 않았다가 죽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내 돈을 가지고 얼마를 드려야 하는 가 고민을 하다가 조금 숨기고 드려서 죽임을 당했다면 아마 이 시대 살아 있을 사람이 별로 없을 것 같습니다.

 

1,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그 아내 삽비라로 더불어 소유를 팔아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그 밭을 팔 때 그것을 다 드리기로 이미 마음을 먹었습니다. 마음속으로 생각을 한 것이 아니라 서원을 했습니다. 이미 그 밭을 팔 때 초대 교회에 바치기로 서원을 하고 밭을 팔았습니다. 이 밭이 상당한 가격의 밭이었기 때문에 이미 사도들도 알고 있었고 성도들도 그들이 밭을 팔아서 교회에 바치기로 한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서원을 했다는 말씀은 했지만 베드로가 나중에 밭을 판값에 대해서 물어 보는 것으로 보아서는 서원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만약 서원을 하지 않았다면 베드로가 굳이 아나니아와 삽비라에게 밭을 판값에 대해서 물어 볼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또 당시 관습을 보면 밭을 파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정말 특별한 일이 아니고는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기 밭을 팔지 않는 것을 성경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그냥 자기들 마음으로 내가 이 밭을 팔아서 초대 교회에 드리겠다고 한 것이 아니라 이미 사도들 앞에 서원을 하고 밭을 팔았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밭을 팔고 나니까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제 추론적이기는 하지만 자기들이 생각했던 것 보다 더 많은 가격으로 밭이 팔렸던 것 같습니다. 쉽게 말씀을 드리면 지금 돈으로 하면 1억을 받을 수 있는 밭이 2억 이상을 받은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이 사람들이 갑자기 돈을 보고 나서 아깝게 생각이 든 것입니다

 

2,“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매 그 아내도 알더라 얼마를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

 

이 밭은 이미 서원을 한 밭입니다

얼마를 받든지 아나니아는 그대로 바쳐야만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야 하는 것은 밭을 팔고 사게 하는 것도 하나님의 역사라는 것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내가 밭을 팔고 싶다고 해서 밭이 팔아 지는 것이 아닙니다. 요즘 같은 불경기에는 아파트를 팔고 싶어도 제 가격을 받지 못해 팔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밭이 팔렸습니다.

그런데 생각했던 것 이상의 가격을 받다 보니까 얼마를 감추어도 모를 것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시세가 1억인데 2억을 받았다면 당연히 사람들이 모를 것이라고 생각을 하게 되어 있고 또 더 많은 이익을 보게 되다 보니까 자기가 바치려 했던 1억 이상은 굳이 바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것입니다

 

아마 그 액수를 숨겼으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물론 제 생각이 전적으로 맞다고 주장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여러 정황을 볼 때 그렇지 않고는 감출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막상 더 많은 돈을 받게 되다 보니까 부부가 생각할 때 굳이 다 바치는 것보다는 시세에 맞게 바치는 것이 옳다고 생각을 하고 감추었습니다.

 

이 일로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죽었습니다.

만약 서원을 한 것이 아닌데 그 밭을 판값에서 얼마를 감추었다고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죽었다면 우리는 정말 두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헌금을 드릴 때 마다 두려워서 어떻게 드리겠습니까? 밭을 팔아서 드릴 정도면 서원을 한 것이지 그냥 자기들 마음에서 자원을 해서 드리지 않습니다.

 

3,“베드로가 가로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베드로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땅 값이 얼마에 팔렸는지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사실 서원한 것이기에 베드로가 알 수 있는 것이지 그냥 자기 마음에서 감동을 받아 밭을 팔아서 베드로 앞에 가져왔다면 베드로는 절대로 알 수 없는 일입니다

 

밭 값의 얼마를 감추었느냐는 문제가 아닙니다.

이 문제는 서원을 하고 난 후에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나중에 보니까 그것이 아깝게 느껴져서 서원을 한 것을 감춘 것입니다 일단 서원을 하면 그것은 자기 것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내가 드릴 것에서 얼마나 안 드렸다고 죽은 것이 아닙니다.

헌금 문제로 두려워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이 문제는 헌금을 조금 드리고 많이 드리고 하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서원을 하고 난 후에 그것을 감춘 것입니다 그 서원한 것을 지키지 않아서 죽임을 당한 것이지 내가 얼마를 내야 하는데 조금 적게 냈다고 해서 이와 같은 일이 나에게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서원을 했기 때문에 베드로가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의 얼마를 감추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서원을 했기 때문에 하나님을 속인 것이 되지 서원을 하지 않았다면 속였다고 말할 수 없는 일입니다. 교회 안에서 함부로 서원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특히 반 강요에 의해서 어쩔 수 없이 서원을 하게끔 만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전도서 5:4-6절을 보면

네가 하나님께 서원하였거든 갚기를 더디게 말라 하나님은 우매자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서원한 것을 갚으라 서원하고 갚지 아니하는 것보다 서원하지 아니하는 것이 나으니 네 입으로 네 육체를 범죄케 말라 사자 앞에서 내가 서원한 것이 실수라고 말하지 말라 어찌 하나님으로 네 말소리를 진노하사 네 손으로 한 것을 멸하시게 하랴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우매자입니다

차라리 서원을 하지 않았으면 좋았습니다. 서원을 하지 않았다면 그들이 밭을 팔고 난 후에 생각이 바뀌었더라도 그래서 얼마를 감추었더라도 죽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4장에서 사람들이 밭과 재산을 팔아 바치는 것을 보고 나서 자기들도 칭찬을 듣고 싶어서 서원을 하고 난 후에 그 밭을 팔았습니다.

 

하나님을 속였습니다.

차라리 처음부터 서원을 하지 않았다면 굳이 하나님을 속일 필요도 없고 또 자기들이 생명까지 죽임을 당할 이유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우매 자들은 우선 서원을 하고 난 후에 밭을 팔고 나니까 마음이 바뀌어 그 값의 얼마를 감추고 말았습니다.

 

함부로 서원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특히 교회 안에서 서원을 강요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꾐에 넘어가는 것은 결국 자기 영혼을 파는 우매한 자가 될 수 있습니다. 마음에서 자원하는 마음이 들면 그때 자기가 임의로 팔아서 바쳐도 되는 것을 굳이 서원을 하는 우매자가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도 도무지 맹세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는 맹세를 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으며 또 서원을 하게 해서 다른 사람들을 진노에 빠뜨리게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서원을 한다고 해도 말려야 하는데 오히려 서원을 부추기고 있고 그렇게 서원하는 것을 마치 믿음이 좋은 것으로 착각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남들이 하면 자기도 하고 싶어 합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경우도 이미 4장 말미에서 다른 성도들이 자기 재산을 팔아서 교회에 내는 것을 보고 객기를 부리다가 결국 재물을 막상 손에 쥐고 보니까 욕심이 생겨서 서원한 것을 갚지 않아 진노를 받게 된 것입니다 차라리 처음부터 아무 말 안하고 있다가 밭을 팔아서 얼마를 드렸으면 자기 생명을 보존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4,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임의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 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베드로가 하는 말입니다

땅이 그대로 있을 때도 네 것이 아니냐. 그리고 판 후에도 네가 임의로 할 수 없더냐. 처음부터 차라리 서원을 하지 않았으면 굳이 하나님을 속이지 않아도 되었지 않았느냐는 말입니다

 

사람에게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거짓말을 한 것이라는 말씀은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사도들 앞에서 밭을 팔아서 교회에 바치겠다고 서원을 했다는 뜻입니다 지혜로운 성도 같으면 혹시 모를 일을 위해서 조용히 밭을 팔아서 얼마를 드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매한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우선 서원을 하고 난 후에 밭이 팔리고 나니까 생각이 바뀐 것입니다

 

어차피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그것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권한이 내게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은 일단 서원을 하고 난 후에는 그것이 내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내 것을 내 마음대로 드리는 것과 내 것이 아닌 것을 내가 드리는 것 중에 어느 방법을 택하겠습니까?

 

교회 안에는 우매 자가 많습니다.

어리석어서 사리에 어두운 사람들은 우선 자기를 나타내기 위해서 겁 없이 서원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 조석지변이라고 했는데 어떻게 자기 마음이 변할 줄 모르고 어리석은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서원을 하지 않고 바치기로 자기 마음에만 가지고 있다 땅을 팔았다면 후에 얼마를 감추었다 해도 하나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이런 일이 왜 일어나는 가를 알아야 합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말씀을 통해 교회 안에서 어떻게 행해야 하는 가를 깨닫기 바랍니다. 남이 무엇을 한다고 해서 자기도 그것을 보이고 싶어서 미리 서원을 하는 경우를 보게 되는데 그것이 자기 영혼에 있어 올무가 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사람을 속인 것이 아닙니다.

또 자기 자신을 속인 것이 아닙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서원을 하고 난 후에 하나님을 속이다가 진노를 받고 말았습니다. 그들이 처음부터 속일 생각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막상 땅을 팔고 난 후에 돈을 보니까 마음이 달라진 것입니다 성도가 항상 조심을 해야 하는 것은 지금은 내가 할 수 있을 것 같아도 사람이라는 것이 어떻게 변할 줄 모른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나도 믿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금은 반드시 할 수 있을 것 같아도 나 역시도 언제 어떻게 변할 줄 모르는 것이 바로 사람의 마음입니다 내 안에 사단이 임해서 역사를 하기 시작을 하면 내 자유의지로는 사단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지금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마음에도 사단이 임해서 속이고 있습니다.

 

장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자기들의 밭을 팔아서 교회에 바치기로 했을 때는 초대 교회에서 일어나는 역사를 보았고 또 복음의 말씀을 들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그럴지라도 사단이 임하게 되면 내가 서원을 했어도 그 서원을 깨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설령 지킨다 한들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서원을 한 것을 지키고 안 지키고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떤 존재인가를 알고 서원을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는 언제든지 사단에 의해서 넘어질 수밖에 없는 연약한 인생이라는 것을 아는 성도는 함부로 절대 서원을 하지 않습니다.

 

우매한 자는 자기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성도는 자기도 자기 자신을 신뢰하지 않기 때문에 함부로 서원을 하지 않습니다. 서원을 하기 보다는 자기 앞에 일을 자기가 마음에 감동을 받는 대로 행하기를 좋아 합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있는 우매 자들은 아나니아와 삽비라와 같이 먼저 자기 입으로 서원을 하기를 좋아하고 그러나 사단에게 미혹이 되어서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서원을 해서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만약 서원을 했는데 갑자기 자기 아들이 죽을병에 들거나 자기 가족에게 급히 필요한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하려고 합니까? 서원을 안 했으면 급작스러운 일에 쓴다 해서 하나님을 속이는 일이 되지 않지만 서원을 한 순간 그것은 자기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을 속이게 됩니다.

 

내일 일을 모릅니다.

당장 내 앞에 무슨 일이 있을 줄 모릅니다.

그런 인생이 남이 하니까 나도 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하는 자체가 어리석음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말처럼 차라리 서원을 하지 않았으면 땅이 그대로 있을 때도 네 땅이고 판 후에도 네 임의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까?

 

그러나 객기를 부립니다.

남이 좋은 일을 하면 자기도 하고 싶어서 참지를 못하고 성급하게 서원을 하다가 결국 하나님을 속이는 어리석은 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말씀을 통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성도는 무엇을 하더라도 그 일이 아무리 좋은 일이고 하나님을 위해 하는 일이라도 함부로 서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 다른 사람의 암묵적 강요에 의해 서원을 하고 난 후에 실수라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자기 생명이 달린 일을 실수하는 자는 어리석은 자입니다

 

5, “아나니아가 이 말을 듣고 엎드러져 혼이 떠나니 이 일을 듣는 사람이 다 크게 두려워하더라 젊은 사람들이 일어나 시신을 싸서 메고 나가 장사하니라

 

하나님을 속이고 살기를 바랍니까?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경우는 차라리 처음부터 자기 임의로 했으면 좋았을 텐데 우매한 자가 되어서 함부로 서원을 하다가 결국에는 하나님을 속이는 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성령을 속이고 하나님을 속이고도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하나님의 것을 가지고 속였습니다.

만약 이들이 자기 것을 가지고 속였다면 죽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매한 자는 이렇게 하나님의 것을 가지고 속이다가 결국 자기 생명을 잃고 맙니다. 내 것은 내가 자기고 있을 때 내 것입니다 그러나 내 것이라고 해도 서원을 한 이상은 내 것이 아닙니다.

 

우매 자가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혜로운 성도는 자기 것을 자지고 하나님께 드리고 우매한 자는 하나님의 것을 가지고 자기 마음대로 하려고 하다가 진노를 받게 됩니다. 지혜로운 성도가 되셔서 자기 생명을 보존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