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은혜와 진리의 말씀

109강,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윤주만목사 2019. 6. 20. 06:19


109,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요엘 2:12-14절을 보면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며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찌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 주께서 혹시 마음과 뜻을 돌이키시고 그 뒤에 복을 끼치사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소제와 전제를 드리게 하지 아니하실는지 누가 알겠느냐

 

요엘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향하신 경고의 말씀입니다

심판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결국에는 시온에 하나님의 나라가 건설됨을 가르쳐 주고 있고 하나님께서 얼마나 이스라엘을 사랑하시는 가를 잘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경고는 누구에게 하겠습니까?

잘 하는 사람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잘 못하고 있는 사람에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선과 세상 사람들이 알고 있는 선은 많은 차이가 있기 때문에 그리고 성경 자체가 시적인 언어로 그 경고를 그대로 드러내지를 않고 있기 때문에 무시를 하고 있습니다.

 

모릅니다.

요엘서를 보면 누구에게 경고를 하는지 이해를 하기 힘이 듭니다.

바로 이런 시적인 언어 때문에 이스라엘은 이 경고의 말씀을 듣고도 자기들에게 하시는 경고라는 것을 전혀 깨닫지 못 했습니다 지금도 성경을 보면서 이 말씀을 누구에게 하는 말씀인가를 깨닫지 못하게 되면 결국 이스라엘과 같이 멸망의 길을 가게 됩니다.

 

요엘서는 기록 연대가 B. C 830년 경으로 보고 있습니다.

물론 그것이 정확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른 설은 바벨론 포로 귀한 후 약 B. C 400년경으로 보는 견해도 있지만 전체적은 말씀을 자세히 보면 전자가 맞을 것으로 추정을 하고 있습니다.

 

몰론 그런 것은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성경을 볼 때 늘 그 안에 담겨져 있는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 힘써야지 그 외적인 것에 너무 치우쳐서는 안 됩니다 결국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저자를 통해 기록된 것이기에 정확한 연대나 저자를 꼭 안다는 것은 솔직히 무의미 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누구에게 하시는 말씀이냐는 것입니다

12절을 보면 늙은 자들에게 경고를 하시고 있고 또 5절에는 취한 자들에게 경고를 하시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 늙은 자들이 누구며 취한 자들이 누구인가를 깨닫지 못해서 결국 하나님으로부터 진노를 받고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 갔고 또 포로 생활에서 돌아 온 후에도 성전이 파괴되고 제사가 폐해지는 수모를 겪게 되고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후에는 예루살렘의 멸망으로 재앙을 당하게 됩니다.

 

성경은 예언대로 되어 졌습니다.

미리 선지자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예언을 해 주시지만 그 메타포를 찾지 못해서 결국에는 멸망을 당하고 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것은 경계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스라엘이 왜 멸망을 당하고 그들이 아직도 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못하고 있는 가를 성경을 통해서 배워야 하고 또 그런 말씀들을 바로 깨달아 앎으로서 이스라엘이 당했던 저주를 당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예표입니다

그들을 보고 우리는 그들과 같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이 왜 멸망을 당했는가? 그 이유를 모른다면 결국 우리도 똑 같이 멸망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해석이 안 됩니다

내가 성경을 하나라도 바로 해석을 하지 못하면 그것이 내 영혼을 파멸로 이끌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요엘서는 쉽게 말씀을 드려서 늙은 자들은 이 시대의 원로급 목사들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자들을 가르쳐서 늙은 자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첫 째로 하시는 경고의 말씀입니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사람이 늙게 되면 타성에 젖고 변화를 두려워하고 또 이제 까지 자기들이 해오던 고정관념에 사로 잡혀 있고 또 자기들이 해온 모든 행사가 그런 대로 잘 되어 지는 것을 눈으로 보고 있는 그들에게는 영적으로 무감각해 지게 되어 있습니다.

 

바로 엘리 제사장과 같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그 자녀들의 잘못을 보고 사람을 보내 책망을 하고 있지만 그 자녀들을 징계하지 못하고 그저 평안히 안주 하려하다가 결국 온 집안이 저주를 받게 됩니다. 바로 이런 늙은 자들이 많았던 그 시대에 요엘 선지자를 통해 회개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또 한 부류는 바로 취한 자들입니다

이 취한 자들에 대한 경고는 신약에 와서 사도 바울도 경고를 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술 취하지 말라 너희는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같은 말씀을 보면서 마치 이것을 진짜 술로 오해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두 가지에 취하게 됩니다.

하나는 율법에 취하는 자들이 있고 또 다른 하나는 성령에 취한 자들이 있습니다. 지금 요엘서는 바로 이 율법에 취한 자들에게 하시는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그때도 그랬듯이 지금도 역시 사람들은 율법의 진노에 포도주에 취해 비틀거리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자기들은 취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율법에 취해 있으면서도 그것이 하나님에 대한 열심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자기들은 술에 취해 있다고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그 진노의 포도주에 마취가 되어 그것을 먹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람들의 심리입니다

 

이스라엘이 얼마나 율법주의에 빠져있었습니까?

이스라엘을 율법주의라고 하는 그들이 지금도 율법주의에 빠져 있는 것을 봅니다. 그러면서 이스라엘은 율법주의고 자기들이 하는 행위는 율법이 아니라 믿음이라고 호도를 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한 마디로 말씀을 드리면 남이 하면 불륜이고 자기가 하면 로맨스인 것입니다 내가 하면 믿음으로 하는 것이고 남이 하면 율법입니다 그런 생각에 빠져서 자기 자신이 율법주의에 빠져 있다는 것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이 시대는 음행의 깊은 늪으로 점점 빠져 들어가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요엘 선지자의 경고를 듣고도 그들은 전혀 깨닫지 못했습니다.

아니 이 말씀이 자기들에게 하시는 말씀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다가 결국에는 하나님으로부터 진노를 받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며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돌아오지를 않았습니다.

그들은 매일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하나님을 믿는다 했지만 실제 제사장들은 율법에 빠져 있었고 그 율법을 통해 배운 이스라엘은 모두가 진노의 술에 취해 비틀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돌아오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 늙은 자들이 누구며 취한 자들이 누구인가를 몰랐기 때문에 자기들은 하나님을 잘 믿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돌아 올 생각도 하지 못했습니다. 이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자기들을 향해서 돌아오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도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있는 늙은 제사장들과 그 율법에 취한 자들은 자기들이 하나님께 돌아와 있기 때문에 굳이 돌아올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고 이 말씀은 다른 사람들을 향해서 하는 말씀으로 오해를 하고 말았습니다. 요엘 선지자를 통해 하시는 하나님의 경고를 바로 해석을 했다면 그들은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도 경고를 했습니다.

술 취하지 말라고 분명히 경고를 하고 있는데도 이 시대는 율법의 술에 취해 있으면서도 일반 세상의 술에 취한 사람들을 오히려 정죄를 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얼마나 독한 진노의 술에 취해 있는지 조차 분별을 하지 못하고 오히려 더욱 더 열심을 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제라도 금식을 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이레에 이틀을 금식을 했지만 그 금식은 그저 율법에 매인 금식이었습니다. 지금도 금식을 하고 있지만 그 금식을 왜 해야 하고 금식이 무엇을 할 수 있는 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기복주의에 빠져 자기 육신의 정욕을 위해 대다수의 사람들이 울며 금식을 하느라고 금식 기도원이 넘쳐 나고 있습니다.

 

금식은 어떤 금식이 되어야 합니까?

이사야 58:6절을 보면

나의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사람에게 보이려고 금식을 합니다.

그리고 자기가 무엇을 위해 금식을 해야 하는 가를 모르고 그저 남들이 이 문제를 가지고 금식을 하니까 자기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금식을 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어야 합니다.

악이 무엇인가를 모르면 금식을 해 보아야 그 의미가 없습니다.

내가 하는 모든 행위는 악 합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모든 일은 선합니다. 이 문제가 정립이 안 되기 때문에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내 행위가 악하다는 것을 먼저 인정을 해야 하는데 선을 행하기 위해서 그리고 율법적으로 의로워 지기 위해서 또 의로워 지기 위해서 금식을 하고 있습니다.

 

금식은 하고 있지만 어떤 금식이 되어야 하는 가를 모릅니다.

자기 행위가 악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먼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는 금식이 될 수 있는데 자기 행위를 선하게 하기 위해서 금식을 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더 선하게 살고 싶어서 더 의롭게 보이고 싶어서 금식을 하는 것은 한 마디로 금식을 해야 하는 이유를 모르는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이레에 이틀을 금식을 하면서 살았습니다. 바로 율법적인 금식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멍에의 줄을 끊어야 합니다.

그러나 오히려 멍에를 더 무겁게 매고 싶어서 금식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무거운 짐을 벗어나기 위해서 금식을 해야 하는데 오히려 율법을 더 잘 지키기 위해서 금식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율법에 의해서 압제를 당하고 있으면서도 오히려 율법을 더 사모하면서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 금식을 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율법의 포로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금식을 하면서 더욱 더 율법에 포로가 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아이러니컬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바로 요엘서를 바로 해석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그런 금식을 율법적으로 행했고 그것을 예수님께서 회칠한 무덤이라고 저주를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도 안 변했습니다.

이스라엘과 똑 같이 행하고 있으면서 다만 자기들은 예수를 믿는다는 그 한 가지 이유만으로 자기들이 하는 금식이나 모든 행위들이 로맨스가 되어서 깊은 음행의 늪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금식을 안 했습니다.

이레에 이틀을 금식하면서 살았지만 그들의 금식은 아무 의미가 없는 그저 율법에 의한 금식이었을 뿐입니다 그러나 지금도 역시 금식을 한다고 하는 그들의 이유를 보면 역시 이스라엘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다만 스스로 로맨스에 빠져 이스라엘은 율법주의라고 정죄를 하고 있습니다.

 

금식을 하지도 않았고 울지도 애통하지도 않았습니다.

아니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 못 했습니다. 자기들은 너무도 하나님을 잘 믿고 있다고 굳은 신념에 사로 잡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너무도 제사를 잘 드리고 너무도 율법을 잘 지키고 있는 그들로서는 울 이유도 애통할 이유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고아와 과부를 정죄하는 수단으로 사용했습니다.

자기들처럼 하지 못하는 고아와 과부 그리고 나그네를 정죄하면서 봐라 하나님께서 금식을 하라 하지 않으냐 울면서 금식을 하라고 하지 않느냐면서 그들은 금식을 할 때 슬픈 기색을 띠며 자기들이 이레에 이틀을 금식하고 있다는 것을 보였습니다.

 

이 말씀이 자기들에게는 해당이 되는 말씀이 아닙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무엇을 잘 못하고 있는 가를 모르는 사람은 자기 는 울지도 않고 애통하지도 않고 마음을 찢지도 않고 있습니다. 참으로 한심한 것은 자기 육신의 죄 문제를 가지고 그렇게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영적인 문제를 가지고 울며 애통하며 마음을 찢어야 하는데 그들이 울며 애통하는 것의 모든 문제는 거의 다 육신의 죄에 대한 문제를 가지고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단순한 문제가 아닌데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거절하는 행위인데도 오히려 그렇게 하는 모습을 보면서 칭찬을 하고 있는 참으로 한심한 세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 성도는 내 죄에 대한 문제는 이미 십자가에서 다 사해 졌다는 것을 믿고 그것으로 금식을 하면서 울지를 않고 오히려 자기를 통해서 나타나고 있는 영적인 죄악들을 인하여 그것이 어쩔 수 없이 나타나고 있는 것을 애통해 하고 있습니다.

 

육신의 죄를 위해 금식을 하는 것은 한 마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부정하겠다는 말씀입니다. 지금 요엘서에서 금식을 누구에게 하라고 하시느냐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죄를 짓고 사는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에게 금식을 하라고 하는 말씀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어른들 늙은 제사장들과 율법을 잘 지키고 그 율법에 취해 있는 자들에게 울며 애통해 하며 금식을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영적인 말씀입니다

이런 말씀은 육적으로 해석을 하면 도저히 이해가 안 됩니다

자기는 너무도 잘하고 있는데 이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으며 자기들은 취하지 않았다고 믿고 있는데 어떻게 그들이 금식을 하며 울며 애통해 할 수 있겠습니까?

 

자기는 구원을 받았다고 믿고 있습니다.

늙은 제사장들이 어느 누구가 자기 구원을 의심하겠습니까?

그리고 그 늙은 제사장들에 의해 율법을 배우고 그것을 지키고 있고 그로 인하여 칭찬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 과연 자기 영혼에 대해서 울며 애통해 할 수 있겠습니까? 이 말씀은 그들에게 하시는 말씀이 아니라 이 세상에 자기들 보다 못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밖에 안 보이는 것입니다

 

내 잘못을 알아야 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도저히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아는 사람만이 구원을 위해 애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율법을 잘 지키고 이스라엘의 선민으로서 더구나 제사장으로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사람들에게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말씀입니다 아니 자기들에게 하시는 말씀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을 안 합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시대의 늙은 자들은 절대로 회개를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울지도 않고 애통해 하지도 않고 이미 자기들이 해 놓은 여러 가지 행위들을 보면서 구원을 받았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이 말씀은 자기들을 향해 하시는 말씀으로 받아들이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구원을 받은 자로서 조금도 부족하지 않은 삶을 살아가고 있는 그들에게는 이해하기 힘든 말씀이며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찌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

 

이스라엘은 옷을 찢었습니다.

지금도 역시 자기들의 옷을 찢기 위해서 금식을 하고 있습니다.

금식을 하라고 말씀을 하시니까 왜 금식을 해야 하는지를 모르고 자기 죄에 대해서 그것을 보고 찢기 위해서 금식을 하고 있습니다.

 

옷은 무엇을 상징 합니까?

바로 율법의 의입니다 무슨 말씀이냐면 자기 죄를 보고 그것을 깨끗하게 하기 위해서 금식을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금식을 한다고 우리 죄가 깨끗해 질 수 있습니까? 내 죄로 더러워진 옷이 찢어 질 수 있습니까?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내 죄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사해 집니다.

내 기도로도 안 되고 내가 금식을 해서도 안 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이 내 죄를 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도 역시 자기들의 옷을 찢기 위해서 금식을 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내 죄를 위해서 금식을 하는 것은 내 옷을 찢는 것입니다

 

설령 내 옷을 찢는다 해도 새 옷을 입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 의에 옷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입혀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율법주의에 미혹이 되어 있는 사람들은 금식을 하면서 자기 옷을 지금도 찢으려 하고 있습니다. 마음을 찢으려 하지 않고 애통해 하는 마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옷을 찢느라 정신이 팔려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옷을 찢어서는 하나님께 돌아 올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자기들의 옷을 찢기 위해 금식을 하면서 슬픈 기색을 띠고 자기들 스스로 회개를 해서 자기 죄를 깨끗하게 하려고 했습니다. 그렇게 해야지만 자기들이 깨끗해 질 수 있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돌아오지를 않고 있습니다.

교회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고 주님을 입술로는 부르짖고 있지만 그들의 마음은 하나님께로 돌아오지를 않고 있습니다. 은혜를 구하기보다는 옷을 찢는 자기들의 행위를 보이면서 돌아왔다고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는 노하기를 더디하시고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키셔서 재앙을 내리지 않는 분인데도 자기들의 옷을 찢으면서 그렇게 하는 자기들의 금식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자기들에게 재앙을 내리지 않는다고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그러다가 망했는데도 지금도 역시 그 짓을 하면서 하나님의 진노를 사고 있습니다.

 

돌아오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구에게 돌아오라고 말씀을 하시느냐면 바로 이 시대의 늙은 목사들에게 그리고 그 목사들로부터 율법을 배워서 율법주의에 빠져 있는 교인들에게 돌아오라고 지금도 성령께서 책망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역시 이스라엘이 듣지 않은 것 같이 이 시대도 자기들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말씀으로 오해를 하면서 돌아오지 않고 있습니다.

 

14, “주께서 혹시 마음과 뜻을 돌이키시고 그 뒤에 복을 끼치사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소제와 전제를 드리게 하지 아니하실는지 누가 알겠느냐

 

율법주의에 깊이 빠져 있습니다.

정말 진노를 받을 수밖에 없는 이스라엘입니다.

그런 이스라엘에게 요엘 선지자를 통해서 늙은 제사장들과 그리고 율법주의에 빠져 있는 그들에게 돌아오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진노를 받을 수밖에 없는 인생이지만 그러나 그들이 마음을 찢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들이면 하나님께서 혹시 마음을 돌이키셔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실 줄 알겠느냐는 말씀입니다

 

제사장들의 제사와 율법주의자들의 제사를 받고 있지 않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돌아와 마음을 찢고 회개를 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이 드리는 전제를 받으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예배를 드린다고 예물을 드린다고 그것을 하나님께서 받으신다고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안 받으셨습니다.

제사장들과 율법주의에 빠져 있는 그들이 매일 소제와 전제를 드렸지만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매일 소제와 전제를 드리고 있는 그들이 볼 때는 하나님께서 받으신다고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자기들이 드리는 소제와 전제를 하나님께서 무조건 받을 것이라고 착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헌금을 드립니다.

그리고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과연 여러분이 드리는 그것을 하나님께서 받으신다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습니까? 이스라엘이 매일 소제와 전제를 드리면서 하나님께서 받으시지 않는다고 혹시라도 의심을 하지 않았지만 요엘 선지자를 통해 또 수많은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받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경고의 말씀입니다

모르면 이스라엘과 같이 매일 소제와 번제를 드리는 자기들의 모습에 취해 이 말씀은 자기들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말씀으로 그냥 넘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타성에 젖어 있는 이 시대 늙은 자들에게 그리고 율법에 빠져 있는 자들에게 지금도 똑 같이 경고를 보내고 있습니다.

 

깨어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내 옷을 찢으려 하지 마시고 내 마음을 찢는 애통함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자기를 아는 사람만이 애통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애통하는 자는 천국이 저희 것이라고 예수님께서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도 역시 자기 옷을 찢으며 애통하고 있고 마음을 찢는 애통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고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아는 애통함이 없는 영적 암흑기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금은 성령의 시대입니다

성령께서는 지금도 책망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흑암에 있는 사람들은 성령의 책망을 듣지 못하고 자기 마음을 찢기 보다는 옷을 찢는 그런 행위에 빠져 헤어 나오지를 못 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술에 취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서 하나님께서 내게 어떤 경고를 하시고 있는 가를 바로 깨달아 내 영혼을 생각하면서 애통해 하는 그런 성도가 되어서 구원을 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