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은혜와 진리의 말씀

113강, 너는 애굽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고

윤주만목사 2019. 6. 24. 07:58


113, 너는 애굽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고

 

신명기 16:9-12절을 보면

칠 주를 계수할찌니 곡식에 낫을 대는 첫날부터 칠 주를 계수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칠칠절을 지키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 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고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과 및 너희 중에 있는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찌니라 너는 애굽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고 이 규례를 지켜 행할찌니라

 

절기는 너무 중요합니다.

그러나 분명히 깨달아야 하는 것은 그 절기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의미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에는 3대 절기가 있습니다. 그 첫 번째가 유월절이고 그 다음이 칠칠절이고 그 다음이 초막절입니다.

 

칠칠절을 맥추절이라고도 합니다.

그런데 심각한 것은 아직도 이스라엘이 지키고 있는 그 맥추절을 그대로 지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만약 절기를 그대로 지켜야 하면 그 절기에 따르는 규례도 그대로 지켜 행해야 합니다. 쉽게 말씀을 드려서 양을 잡아서 제사를 드려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절기는 그냥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내 마음대로 지키고 싶어서 지키는 것이 아니고 또한 그 절기에 대한 규례를 내 마음대로 변개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양을 잡아서 그 희생의 피를 드리지도 않으면서 맥추절을 지키겠다고 하는 것은 한 마디로 말씀을 드려서 하나님께서 지키라고 하신 그 절기를 멸시하는 행위입니다

 

지키려면 그대로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지키지 않는 것은 좋습니다.

사람들은 그렇게 말 합니다 비록 양을 잡아서 희생을 드리지는 않더라도 맥추절을 지키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절기에 대해 모르는 사람입니다

 

제사 제도는 폐해졌습니다.

아직도 제사 제도에 있는 절기를 그대로 지키고 있는 것은 한 마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거절하는 행위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 자기 육체로 폐해 버리신 그 절기를 지키겠다고 하는 것은 십자가를 믿지 않겠다고 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육의 사람과 영의 사람은 다릅니다.

육의 사람은 이런 절기를 자기 육체로 지키려고 하고 있고 영의 사람은 이 절기에 대한 의미를 알기를 사모하고 있습니다. 육에 사람은 무엇이든지 자기 육체로 해야 무엇을 하는 것 같고 믿음도 좋은 것같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절기를 지킵니다.

그런 절기를 지킴으로 해서 자기의 신분을 나타내고 싶어 합니다.

맥추절을 지키는 사람들의 상식으로는 맥추절을 안 지키는 사람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아니 심지어는 이단이라고 공격을 하게 됩니다. 자기가 다른 복음에 빠져 있으면서도 영의 사람을 이단으로 공격을 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육적 이스라엘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아직도 육적 이스라엘을 따라 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그 의미를 알려고 하기 보다는 육적 이스라엘과 같아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영적 이스라엘은 그 의미를 소중히 생각을 하고 있지만 육적인 이스라엘은 의미보다도 행위에 집착을 하게 됩니다.

 

그들은 절기를 지켜야 합니다.

의미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바로 자기 육체로 지키는 절기입니다.

그러면서 자기들은 의미를 알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실제 의미를 알고 있는 성도라면 절대로 그 절기를 지킬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방해하고 있는 그 절기를 지키는 것 자체가 의미를 모르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절기는 폐해 졌습니다.

육적으로 지키는 것은 폐해졌습니다. 이제 영적인 이스라엘은 구약의 그림자의 절기를 보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있습니다. 절기 하나하나는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예표 한 것입니다 그 안에서 예수를 발견하면 되지 절기를 지키고자 하는 것은 다시 육적인 이스라엘로 돌아가겠다는 것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절기도 제사 제도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교회 안에 이 제사 제도가 남아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초대 교회를 보시기 바랍니다. 어느 사도가 절기를 지켰다고 말 합니까? 물론 예수님께서 하늘에 올라가시기 전에는 절기를 지켰습니다. 절기는 그림자이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살아계시는 그 순간 까지는 아직도 이스라엘에게는 유효하기 때문에 지켰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승천을 한 이후를 보시기 바랍니다.

어느 성경에서 절기에 대해서 한 말씀도 하지 않고 있고 사도들이 절기를 지켰다는 말씀도 없습니다. 실체가 분명히 보이는데 누가 그림자를 보고 따라가려고 하겠습니까?

 

절기를 지키는 것은 아직 실체를 못 보았다는 증거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분명히 보고 있다면 그 예수를 가르치고 있는 절기는 더 이상 보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예수를 분명히 보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자꾸 그림자를 따라가고 있는 것입니다 절기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예수가 보였다면 더 이상 절기를 보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미로가 있습니다.

그 길에서 출구를 찾아가고 있습니다.

미로 안에 있을 때는 출구를 잘 찾지 못하고 있지만 일단 출구를 찾게 되면 더 이상 미로 안에서 헤매지 않아도 됩니다. 그런데 아직도 그림자와 같은 미로 속에서 헤매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수가 보이는데 왜 예수를 가르쳐 주는 그것을 따라가고 있습니까?

예수가 안 보일 때는 예수를 가르쳐 주는 절기가 필요하겠지만 이제 확실하게 눈으로 보았는데 예수를 가르쳐 주는 절기를 따라가고자 한다면 그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그냥 예수에게로 직접 가면 되는데 굳이 절기에게 다시 갔다가 예수를 찾으려하는 그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아이가 길을 잃었습니다.

그러면 자기 집에 대해서 사람들에게 물어 보아서 찾아갈 것입니다 그렇게 찾다가 자기 집이 이제 보입니다. 그런데도 다시 자기 집을 물어서 찾아가겠습니까? 자기 집이 보이면 물어 보지 않아도 그냥 집으로 들어가면 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묻고 있습니다.

예수를 아직도 찾지 못했기 때문에 그것을 가르쳐 주는 절기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뚜렷이 보고 있는데도 그 십자가를 가르쳐 주는 절기를 따라가고 있다는 것은 정말 이해하기 힘든 일입니다. 그런데도 그 절기를 지키는 자기들을 보면서 지혜롭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어리석은 사람들입니까?

 

히브리서 7:12절을 보면

제사 직분이 변역한즉 율법도 반드시 변역하리니

 

제사 제도가 바뀌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까지는 육적으로 제사를 드렸지만 하늘에 올라가신 이후로는 이제 육적으로 드릴 필요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에서 분명히 고치어 바꾸라고 한 그 제사 제도가 아직도 교회 안에 그대로 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영의 사람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육적인 이스라엘을 쫓아가고 있습니다.

이제 당연히 폐해 버려야 하는 제사 제도에 있는 그 맥추절을 아직도 지키고 있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안 믿겠다고 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변역을 한 그 제사 제도를 아직도 변역을 하고 있지 않다면 그는 예수를 믿는 사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제는 절기는 지켜서는 안 됩니다

사도바울은 갈라디아에서 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헛될까 하노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절기를 아직도 지키고 있는 것은 복음을 헛되게 만드는 일입니다. 그런데 아무 생각이 없이 교회력을 만들어서 절기를 지키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이 세상의 기념일 까지도 교회 안에 들어와 절기로 지키고 있습니다.

 

거듭 말씀을 드리지만 절기는 그림자입니다

이제 그 실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에게는 더 이상 지켜서는 안 되는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 있지만 우리는 절기의 의미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더 확실하게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9,“칠 주를 계수할찌니 곡식에 낫을 대는 첫날부터 칠 주를 계수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칠칠절을 지키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 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고

 

아직은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입니다

예수라는 실체가 보이지 않고 있던 시대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절기라는 그림자를 통해서 예수를 볼 수 있게 인도하셨습니다. 칠칠절을 왜 지키라고 하셨는가를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이 칠칠절의 의미를 바로 알게 되면 예수 그리스도가 더 확실하게 밝히 보입니다.

 

유월절에 첫 단을 드립니다.

보리농사를 해서 처음 익은 곡식을 드리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첫 단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유월절 어린 양으로서 하나님께 드린 첫 열매입니다. 그 열매가 드려지고 난 후에 오십일 째 되는 날에 칠칠절을 지킵니다.

 

이때는 보리 추수가 다 끝이 난 후입니다

보리농사를 시작해서 첫 단을 유월절에 드리고 그리고 오십일 동안 추수를 해서 그 보리를 빻아 떡을 만들어 드리는 것을 칠칠절이라고 합니다. 쉽게 말씀을 드리면 유월절에는 보리의 첫 익은 첫 단을 드리고 칠칠절에서는 추수를 다 해서 그것을 떡으로 만들어서 드립니다.

 

오늘은 칠칠절에 대한 말씀입니다

유월절에 대해서는 이미 많이 말씀을 드렸고 또 제사 제도에 대해서는 후에 다시 기회가 있으면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오늘 가장 중요한 것은 칠칠절을 지키느냐 안 지키느냐 하는 문제가 아니라 칠칠절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바로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 날은 추수가 다 끝이 난 날입니다

유월절에 첫 단을 베기 시작해서 칠칠절에는 이스라엘의 보리 추수가 다 끝이 난 후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 날을 맥추절로 지키라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유월절은 처음 익은 곡식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렇다면 칠칠절은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가 된 성도가 드려지는 날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유월절에는 첫 단을 드렸지만 칠칠절에는 떡을 만들어서 드립니다. 이 떡은 예수와 내가 하나가 되어 드려지는 그런 날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먹었습니다.

생명의 떡인 예수 그리스도를 먹어서 예수와 성도는 모두가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 하나가 되는 의미로 떡을 만들어서 드려지는 날이 바로 칠칠절입니다

 

그 복을 헤아리는 날이기도 합니다.

어떤 복입니까? 육적으로 보이는 보리 추수에 대한 복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영혼의 복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교회에서는 마치 이 맥추절을 육체의 복으로 생각하고 첫 추수하고 드려지는 예물로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그런데 육적으로 사상에 미혹이 되어 있는 사람들은 자기가 육적으로 받은 복을 생각을 하면서 이 맥추절을 지키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세상 사람들보다 자기들이 받은 복을 생각하고 그것을 계산을 하는 어리석은 일을 행하고 있습니다.

 

헌금을 강요합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 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마음으로 예물을 드리라고 그 복을 마치 이 세상의 복으로 착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이 절기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예표 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이 이 세상의 축복입니까? 이 세상의 복이 아니라 하늘의 복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슨 복을 주셨습니까?

칠칠절은 유월절에 첫 열매인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께 드려지고 난 후에 모든 추수가 끝이 난 후 그것을 떡으로 만들어서 드리는 것은 바로 성도들이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을 예표 한 것입니다 성도의 영혼이 구원을 받는 것을 예표한 절기입니다.

 

그것이 복입니다

성도의 영혼이 구원을 받은 것이 복입니다

그러나 율법주의와 기복주의에 빠져 있는 사람들은 이 복을 마치 이 세상의 복으로 오해를 하고 있고 그렇게 복을 받은 교인들에게 헌금을 강요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어 지고 있는 절기입니다.

 

칠칠절은 성도가 드려지는 날입니다.

그 성도를 떡으로 만들어서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어 드려지는 것을 모형으로 칠칠절을 지키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자기가 받은 복을 모르고 이 세상에서 조금 누리고 있는 복을 계산하는 그런 절기로 변질이 되었고 그 절기를 이용해서 교회들이 부를 축적하려고 합니다.

 

레위기 23:17절을 보면

너희 처소에서 에바 십분 이로 만든 떡 두개를 가져다가 흔들지니 이는 고운 가루에 누룩을 넣어서 구운 것이요 이는 첫 요제로 여호와께 드리는 것이며

 

흔들어서 드리는 것을 요제라 합니다.

이 요제는 부활을 상징하는 말씀입니다 유월절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한 제물로 드려져서 부활을 했다면 이제 예수 그리스도에게 붙은 성도들이 떡으로 만들어져서 요제로 드리는 것입니다

 

다른 떡은 누룩을 넣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칠칠절의 요제는 누룩을 넣어서 구우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슨 의미냐 하면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구원을 받기를 원하신다는 말씀입니다 누룩과 같이 부풀어져서 그 열매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구원 받기를 원하시는 절기의 예표입니다

 

다른 제사에는 누룩 없는 떡을 만들어서 드리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칠칠절의 요제 만큼은 누룩을 넣어서 부풀려서 구운 떡을 만들어서 드리기를 원하십니다. 그만큼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구원을 받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복음을 전해도 그것을 받아들이지를 않습니다.

 

전도입니다

가능한 많은 사람들을 우리는 전도해야 합니다.

그냥 교회 안에 들여다 놓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알곡으로 드려지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뭐라 말씀을 하셨습니까?

내가 처소를 예비하러 가신다고 하면서 너희 거할 곳이 많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을 수 있을 만큼 그 처소가 많지만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이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아니 교회가 아직도 그림자를 보고 따라가고 있습니다.

 

칠칠절의 의미는 모르고 절기를 지킵니다.

왜 칠칠절을 만드시고 그 절기를 지키라고 하셨는가를 깨닫지 못하고 그저 형식적인 절기를 지키고 또 교회가 절기를 만들어서 지키고 있습니다. 내가 구원을 받은 그 날이라는 것도 모르고 그저 땅의 복을 헤아려 자원하는 마음으로 헌금을 내는 그런 절기를 지키고 있습니다. 그 자원하는 것도 은근히 강압에 의해서 자원을 하게끔 만들고 있습니다.

 

구원을 받는 절기입니다.

내가 하늘에 드려지는 절기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그 절기를 모르고 자기가 무엇을 해서 구원을 받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구원은 과거형입니다. 이미 이루어진 구원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런데 과거형의 구원을 믿지 않고 미래형의 구원을 이루려고 노력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다수입니다

 

이 절기를 아는 성도는 이미 구원을 받은 것으로 확신을 합니다.

칠칠절을 통해 이미 하나님께 드려졌는데 아직도 자기 구원을 확신하지 못하고 있고 심지어는 자기가 무슨 잘못을 하면 구원이 탈락을 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칠칠절의 의미를 전혀 모르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거절하는 사람입니다

 

11,“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과 및 너희 중에 있는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찌니라

 

어떤 날입니까?

이 칠칠절은 하나님 앞에서 즐거워하는 날입니다

그런데 이 칠칠절을 지키면서 자기가 이 세상에서 받은 것을 보면서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받은 것이 별로 없으면 자기 삶이 고난 중에 있으면 전혀 즐겁지가 않은 것입니다

 

이 세상을 보니까 즐겁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늘을 보고 있는 성도는 이 칠칠절이 지나고 나면 즐거워하게 되어 있습니다. 내 영혼이 구원을 받았는데 어찌 즐겁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구원을 받은 성도만이 누릴 수 있는 즐거움입니다.

 

알면 즐겁습니다.

모르기 때문에 전혀 즐겁지 않고 또 육적인 사람의 경우에는 자기가 받은 이 세상의 축복을 보면서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보고 자원하는 마음으로 헌금을 드리면서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한심한 일입니까? 영적인 말씀을 육적으로 보면서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은 나그네입니다 그 나그네가 자기 집에 온갖 보화로 가득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자기가 가고 있는 나그네의 길이 아무리 고달플지라도 마음으로는 즐거워하게 되어 있습니다. 자기 집에만 가면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처량해 보여도 그 나그네는 속으로는 즐거운 것입니다

 

바로 그 즐거움을 누리라는 말씀입니다

누구와 누립니까? 내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과 함께 누리라는 말씀입니다 가능한 많은 사람들을 구원으로 인도해서 그들과 함께 하나님 앞에서 즐거워하라는 말씀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소외 받고 있는 노비와 객과 그리고 고아와 과부와 함께 그들의 영혼 구원을 믿으면서 즐거워하라는 말씀입니다

 

바로 이 날이 칠칠절입니다

그런데 이 맥추절의 의미는 전혀 모르고 아직도 구원을 받기 위해서 노력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다수를 이루고 있습니다. 자기가 절기를 안 지키면 그리고 교회에서 하는 일을 하지 않으면 구원에서 탈락을 할 까봐 행위에 집착을 하고 있습니다.

 

칠칠절의 의미는 받아들이려하지 않고 칠칠절이라는 절기를 지키면서 자기 육체의 즐거움에 빠져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믿으려 하지 않고 그림자인 절기를 지키는 그 행위에 빠져 자기 육체의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 것이 바로 지금의 교회입니다 내 영혼이 구원을 받고 또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구원을 받는 그 날을 즐거워하라는 말씀입니다

 

어떻게 구원을 받습니까?

유월절 어린 양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음으로 받아들여서 구원을 받습니다. 그런데 첫 열매인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또 그와 하나가 되려고도 하지 않고 아직도 구약의 절기를 행위로 지키면서 자기들의 육체의 복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돈 놓고 돈 먹기를 합니다.

그리고 하는 말이 자원하는 마음으로 예물을 드리면 하나님께서는 배로 아니 십 배로 백배로 갚아 주신다고 미혹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전부와도 바꿀 수 없는 천국이라는 복을 받고도 아직도 부족해서 또 요구를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천국을 모릅니다.

천국이라는 내가 일해서는 받을 수 없는 복을 받은 성도는 하나님 앞에서 큰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복을 모르기 때문에 즐거워할 수도 없고 자기가 받은 복을 객과 고아와 과부에게 나누어 줄 수도 없는 것입니다

 

12,“너는 애굽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고 이 규례를 지켜 행할찌니라

 

사람은 모두 사단에게 종 되었습니다.

그 종 되었던 것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해방이 되어 이제 구원을 받았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애굽에서 종 되었던 것을 모릅니다. 마치 이스라엘과 같이 내가 아브라함의 자손인데 왜 종이냐고 예수님께 따져 묻는 것과 같이 자기 존재를 모르고 있습니다.

 

이 칠칠절은 구원을 받은 절기입니다.

우리 성도가 하나님께 떡으로 만들어져 드려지는 날입니다

이 세상 사단에게 종 되어서 사망으로 갈 수밖에 없는 사람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유월절 어린양으로 드려짐으로서 해서 내가 추수가 끝난 후에 예수와 함께 부활을 하는 것을 예표 하는 절기입니다.

 

얼마나 기쁜 절기입니까?

그러나 이 시대는 자기 육체의 것을 보고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자기 영혼이 구원을 받은 것을 생각하지도 않고 그저 육체의 것을 보면서 즐거워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칠칠절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제 구원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늘의 복을 주셨습니다. 그 복을 받은 성도는 나만 구원을 받을 것이 아니라 누룩을 썩어 만든 떡과 같이 이 세상 모든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복음을 위해 헌신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칠칠절을 통해 구원을 확신하기고 또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그 복을 나누어 주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