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은혜와 진리의 말씀

110강,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윤주만목사 2019. 6. 21. 07:08


110,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디모데전서 6:17-19절을 보면

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 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

 

성경은 도적 교과서가 아닙니다.

제가 도덕적으로 아무렇게나 살아도 된다는 것을 말씀드리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 학문만으로도 얼마든지 도덕적으로 깨끗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인정해야 합니다.

 

세상에는 의로운 사람들이 많습니다.

저 사람은 법 없어도 살 사람이야, 이런 말을 듣는 사람 중에는 기독교인이 아니라도 얼마든지 많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율법주의에 빠져 있는 기독교인들은 자기들이 아니면 의로운 삶을 살지 못하는 것처럼 호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이 세상 것을 논하고 있지 않습니다.

만약 세상에 속한 것을 논하고 있다면 성경은 참으로 이율배반적으로 기록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에 있어 부정을 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하긴 요즘에는 어떻게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을 수 있느냐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추세입니다

 

구원에 행위가 포함이 된다면 우리는 더 이상 믿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성경을 해석해서 그것을 가르치고 있는 사람들 중에는 은근히 행위를 강조를 하고 자기들의 기준에서 벗어나고 있는 사람들은 마치 구원을 못 받을 것처럼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주장하는 이유는 성경 안에서 구원론을 정확하게 정립을 하지 못 하였기 때문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구원입니다

이 구원은 하나님이 우리 인생들에게 하시는 명령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이 절대적인 명령을 가슴 깊이 새기기 보다는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 행위를 강조함으로서 이 구원론이 점점 흐려져 나중에는 어떻게 해야 구원을 받는지 조차 모르게 되고 이 구원에 대해서 별로 관심도 갖지 않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마치 자기들이 다니는 교회에 나온 것으로 구원을 보장 받는 것으로 오해를 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무엇 하러 오셨습니까?

그 분명한 목적은 잃어버린 양을 찾아 구원하러 오셨다고 분명히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율법주의에 빠지게 되면 이 구원보다는 자기들이 행하고 있는 율법의 의가 더 소중하게 생각이 되고 이 행위가 마치 구원과 연결이 되는 것으로 착각에 빠지게 만듭니다.

 

거의 모두 다 그렇습니다.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 말로는 하고 있지만 다른 사람들이 어떤 행위를 잘못을 하면 저렇게 해서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겠어! 그 사상이 뿌리 깊게 박혀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말로는 하지만 실제 행위를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자기 스스로 인정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가져오는 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내가 저 사람의 어떤 행위를 보고 저렇게 살아서 어떻게 구원을 받겠어! 하는 그 말이 완전함을 요구하는 율법에 비추어 보면 그 율법이 또 나에게 똑 같이 그렇게 말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내가 정죄를 하는 그 정죄가 율법이 나를 정죄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함부로 말을 하고 있는데 결국 그들은 율법에 의해서 똑 같은 정죄를 받게 되고 완전함에 이르지 못하면 진노를 받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은 어렵지 않습니다.

왜 어렵게 느껴지냐면 아직 성령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어려운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나가 가면 너희에게 또 다른 보혜사를 보내 주신다고 말씀을 하시고 그 보혜사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 하시리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또한 야고보서에 너희가 지혜를 구하면 하나님께서 꾸짖지 않고 주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성경을 볼 때 이해가 안 되고 해석인 안 되는 것은 아직 보혜사가 오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그리고 내가 지혜를 구하지 않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약속을 하시면 반드시 지켜 주십니다. 지혜를 주시겠다고 하셨으면 반드시 구하는 자에게 지혜를 주시고 또 보혜사를 보내 주시겠다고 하셨으면 구원을 받은 성도들에게는 진리의 성령이 반드시 오십니다.

 

성경은 어렵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고아와 과부의 아버지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만약 성경이 어렵다면 고아나 과부가 과연 이 성경을 보고 구원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솔직히 어느 정도 학문을 익힌 사람이라면 진심으로 자기 영혼을 위해 성경에서 지혜를 구한다면 반드시 성령께서 오셔서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실 줄 저는 확신을 합니다.

 

어려운 것이 아니라 구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성령에 대해서 거의 무지 합니다. 너무 모르기 때문에 어디부터 알아야 하는 가에 대해서 난감해 하고 있고 그렇게 허송세월을 보내다 보면 그 다음 부터는 이제 자기가 성경을 보고 지혜를 구하려 하지는 않고 그저 맹목적으로 가르치는 자의 말을 따라가게 됩니다.

 

성경을 쉽게 이해하려고 합니다.

어느 말씀에 조금이라도 의문이 생기면 그것을 어떻게 하든지 해결을 할 생각은 하지 않고 대충 넘어가려고 합니다. 그러면서 성경을 어렵다고 생각을 하고 그러다 이단들이 성경을 다르게 해석을 하면 거기에 미혹이 되어 빠져 들어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늘 강조를 드리지만 성경은 구원론입니다

내가 성경을 해석할 때 구원론과 연결이 안 되고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에 반대가 되는 해석이 나왔다면 그 해석은 무조건 잘못된 해석이라고 보면 맞습니다. 나의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살리라는 이 말씀에 배치가 되는 해석이 나왔다면 그 해석은 잘못된 해석입니다

 

다른 것은 조금 이해 못할 수도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다 이해하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구원론을 이해하지 못하고 바로 정립을 하지 못하면 그가 하는 신앙생활은 들의 풀과 같이 아무 것도 아닐 수 있습니다. 묵시적 말씀을 전부 다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요한계시록을 속이 시원할 정도로 해석을 하는 사람을 이제껏 보지 못 했습니다 백이면 백이 다 다릅니다. 그렇다고 그 사람들 중에 한 사람만이 구원을 받느냐 하면 그것이 아닙니다. 설령 조금 해석을 잘못할지라도 구원론에 문제가 없다면 그는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만큼 구원론은 중요합니다.

중요한 정도가 아니라 만약 내세가 없다면 우리는 인생을 헛것으로 산 것이 되고 짐승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습니다. 아니 인간의 존재 가치는 너무 허무해서 사실 포기를 한다 해도 누가 뭐라고 할 수 없습니다. 어차피 짐승과 같다면 조금 더 살고 덜 살고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특히 성도는 더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서 수많은 고난과 환란을 겪으면서 살아가고 있는데 내세가 없다면 그 고난과 환란을 감수해야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차라리 빨리 포기를 하고 고난과 환란을 적게 받는 것이 좋은 것 아닙니까? 죽는 날까지 고난 속에 산다면 그리고 짐승과 같이 사라진다면 뭐하려고 고난을 끝까지 감수합니까?

 

내세가 있기 때문입니다.

혹독한 고난과 환란이 있어도 더 좋은 내세를 소망하면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기꺼이 감수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히려 그 고난과 환란을 기쁨으로 여기고 살아가는 것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성도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포기를 할지라도 우리는 소망이 있기 때문에 기꺼이 감수 합니다

 

그런 구원론을 가르치지 않고 있습니다.

또 구원론에 대해서 강조를 하면 이단인 이상한파로 몰아가고 있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성도는 구원론 자가 되어야 합니다. 자기 영혼 구원을 늘 생각하면서 살아가야 하고 또 다른 사람들을 구원시키기 위해 내 모든 것을 헌신해야 합니다.

 

제가 말씀을 드리는 것은 교회의 숫자를 늘리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는 구원의 방주가 아닙니다. 교회는 광야입니다. 그 광야에서 구원을 받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몇이나 구원을 받았는가를 늘 생각하시고 내 영혼의 문제에 대해서 늘 깨어 진리를 향해 나가시기 바랍니다.

 

17, “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이 세대 부한 자들이 누구입니까?

재물이 많은 사람입니까? 만약 재물이 많은 사람이라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요셉 그리고 다윗 왕 솔로몬 왕 또 이스라엘의 수많은 왕들이 다 포함이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 부자들이 얼마나 많이 나오고 있습니까?

 

육적은 눈으로 보면 재물입니다.

그러나 생각해야 할 것은 부자라고 해서 구원을 받는데 있어 문제가 됩니까? 만약 부자가 구원을 받는데 문제가 있다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아마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게 됩니다. 우리나라에서 가난한 사람이라 해도 거의 세끼의 식사는 해결을 합니다. 그러나 이 지구상에는 하루 두 끼 식사도 해결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태반입니다

 

이 말씀을 가지고 이용을 합니다.

봐라 부자는 물질에 소망을 두다가 망하니까 너희가 있는 재물을 교회에 헌금을 해서 하나님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갖지 말고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사용하게 헌금을 하라고 합니다.

 

이 재물이 진짜 돈 입니까?

그렇다면 돈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이 시대 교회는 돈을 더 밝히기 때문에 사람들로부터 조롱거리가 된지 오래 되었습니다. 돈에 소망을 갖지 말라고 하는 교회가 어떻게 하면 헌금을 더 거둬 드릴까 고민을 하고 있고 그 많은 헌금으로 이 세상에다 건물을 짓고 또 기도원을 짓고 교인들의 편의를 위해 대형 주차장을 짓고 있습니다.

 

왜 이 재물이 돈이 아닌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19,“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

 

이 재물이 돈이 아니라는 증거입니다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재물이 많고 적음이 우리의 구원과는 아무 상관이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 재물이 돈이라면 이 문제는 구원론이기 때문에 문제가 심각해집니다.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라고 분명히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내가 돈을 소유해서는 안 됩니다. 재물에 소망을 두는 자는 생명을 취할 수 없기 때문에 돈을 소유해서는 안 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만약 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재물에 소망을 둔 사람이요 구원을 받을 수 없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앞 뒤 문맥을 보면 구원 문제입니다

그런데 재물이 우리가 사용하는 돈이라면 과연 이 문제에 대해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런 말씀을 돈으로 해석을 해서 돈을 소유한 것을 정죄하듯이 말하는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스스로 정죄에 빠지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오게 합니다.

 

이 재물은 돈이 아닙니다.

정함이 없는 재물은 바로 사람이 행하는 율법의 의입니다.

우리는 다 부정한 자입니다

 

이사야 64:6절을 보면

대저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쇠패함이 잎사귀 같으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

 

이 세상에 정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다고 우리의 의는 더러운 옷 같다고 이사야 선지자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바로 우리가 행하는 모든 행위의 의는 재물이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 재물은 정함이 없는 것인데 율법주의에 빠져 있는 사람들은 그 행위가 정함이 있는 것으로 오해를 합니다.

 

오직 한 분만이 정함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 창세 이레 모든 사람은 정함이 없습니다. 아담으로부터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 까지 존재하는 이 세상 모든 사람의 의는 정함이 없습니다. 다 부정한 자 같아서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만이 흠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흠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한 제물로 받으시고 그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을 의롭다 여기신다고 성경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율법주의자들은 자기들이 행하고 있는 행위들이 정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자기들이 헌금을 하는 것이 정하다고 생각합니다.

정하지 않은 재물을 헌금으로 내면 마치 정함을 받을 수 있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그 어떤 것을 행한다 해도 우리는 정함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내가 정함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 방법 밖에는 없습니다.

 

그러나 율법주의자는 정함이 없는 행위에 열심을 냅니다.

누가 마음이 높아집니까? 돈이 많은 사람이 마음이 높습니까? 아니면 의롭게 산 사람이 마음이 높습니까? 돈이 아무리 많아도 의롭게 산 사람에게는 감히 마음을 높일 수 없습니다. 그것은 사람이 가지고 있는 양심입니다

 

가장 마음이 높은 자는 돈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 자기의 행위가 떳떳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자기는 죄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마음이 높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자기 행위가 온전하지 못하면 마음이 높아질 수 없습니다, 그러나 행위가 깨끗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마음이 한껏 높아지게 됩니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교회에 나가서 헌금을 많이 했을 때 마음이 높아집니까? 아니면 죄 지은 것이 없고 교회에서 흠 잡힐 만한 것이 없을 때 마음이 높아집니까? 돈이 많은 것보다 자기가 율법적으로 도덕적으로 깨끗하다고 생각할 때 교회에 나가서도 당당하게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사람을 가르치는 말씀입니다

 

자기 죄를 모릅니다.

모르기 때문에 마음에 높아집니다. 또한 자기가 지키고 있는 율법의 의를 보면서 자기는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을 하고 지극히 당연한 성도라 부름을 받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바로 이런 사람들이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고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의 의는 더럽습니다.

정함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율법주의에 빠져 있는 사람들의 상태는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율법을 보면서 정하다고 믿고 있습니다. 복음이 있는 성도는 자기가 아무리 선한 행위를 하더라도 그것이 정하다고 생각하지를 않습니다. 그러나 율법주의는 정하다고 서로 칭찬을 해 주고 있습니다.

 

내가 재물을 소유하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가 만든 재물은 정함이 없는 것이고 더러운 옷과 같은 것입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조금 하면 그것으로 재물을 삼고 있고 그것을 잊어버리지 않고 쌓아 두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내가 전도를 몇 명 했어, 내가 예배를 빠지지 않았어, 내가 가난한 자를 도왔어, 내가 교회에 봉사를 하고 헌신을 했어, 하면서 자기 재물을 쌓아 두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혹시라도 자기 재물을 누가 알아주지 않으면 섭섭해 합니다.

썩어 없어질 그 재물을 후패한 나뭇잎과 같은 그 재물을 모으느라고 지금 이 시대도 교회 안에서 서로 경쟁을 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그 재물을 모으려고 힘쓰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믿음으로 정한 재물을 후히 받고 있는 사람입니다

 

고린도후서 8:9절을 보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

 

우리 재물은 후패한 잎사귀 같습니다.

그것을 누가 재물이라고 가격을 쳐 주겠습니까?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더러운 옷과 같은 우리 재물을 부요하게 해 주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재물은 내가 모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거저 주시는 그 재물이 내 영혼을 구원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가난합니다.

그러나 흠도 없고 점도 없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부요하게 해 주시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부요하게 될 수 있는데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후히 주시고 있습니다.

자기 독생자의 생명까지도 아깝게 여기시지 않고 우리를 위해 내 주셨는데 무엇을 못 주시겠습니까? 그러나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재물을 얻으려 하지 않고 자기 스스로 노력을 해서 얻으려고 하다가 그 재물이 나중에 후패한 잎사귀 같아져서 아무 쓸모가 없게 됩니다. 어떻게 되어 지냐면 불에 태워 진다는 말씀입니다

 

참으로 심리가 이상합니다.

거저 주시는 정함이 있는 재물은 마다하고 정함이 없는 재물을 얻으려고 노력을 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서로 칭찬을 하면서 더 많은 재물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재물에 소망을 두는 사람은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18,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 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

 

내 재물은 정함이 없습니다.

그것을 쌓기 위해서 노력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그 재물은 후패한 잎사귀 같아 나중에 줄에 타고 맙니다. 우리는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는 자가 아니라 선한 일을 하는 성도입니다

 

선한 일이라고 하니까 율법을 지키는 것으로 오해를 해서는 안 됩니다

율법을 지키는 일은 악한 일입니다 그것은 정함이 없는 재물을 쌓는 악한 일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면 나중에 반드시 불에 태워 집니다. 성도는 선한 일을 해야 합니다.

 

가장 선한 일이 무엇입니까?

바로 영혼을 구원하는 일 복음을 전하는 일이 성도가 해야 하는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무엇을 나눠주어야 합니까? 바로 내 보물을 나누어 주어야 하고 또 생명이 양식을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가장 선한 일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가장 귀한 보물을 나누어 주는 일입니다

 

이것은 어떤 행위가 아닙니다.

내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행하는 행위가 아니라 정말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 하는 그 일이 바로 선한 일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가장 귀한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 예수를 다른 사람도 믿게 하는 것이 바로 선한 사업입니다.

 

교회 다니는 것과 예수 믿는 것은 다릅니다.

교회는 다니지만 예수를 믿는 사람은 적다는 것을 여러분이 깨달아야 합니다. 마치 교회 안에서 행하는 자기의 행위가 선한 일인 것으로 오해를 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모두 정함이 없는 재물이고 오직 영혼을 구원하는 일이 바로 선한 일입니다

 

그 선한 일은 누구만 할 수 있습니까?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선한 일을 하고 선한 사업을 하고 나눠주는 일을 하는 것은 선한 일을 하시는 하나님의 경륜을 내가 믿고 또 다른 사람도 믿게 하는 것이 선한 일입니다 신앙생활과 선한 일은 분명히 다르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교회에 나온 다수가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분명히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내가 누구를 교회에 데려 왔습니다.

만약 그가 구원을 받지 못했다면 내가 한 행위는 절대로 선한 일이 아닙니다. 또 내가 낸 헌금이 오히려 결과적으로 복음을 방해 한 일이 되었다면 여러분은 절대로 선한 일을 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마치 교회에서 하는 모든 일은 선한 일인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19,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

 

생명을 취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시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누구에게 가르쳐 주는 말씀입니까?

 

목회를 하고 있는 디모데에게 하는 말씀입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 중에는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 재물을 소유하고 마음이 한껏 부자가 되어 있는 사람들에게 경계를 하는 말씀입니다 내가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선한 일을 해야 합니다.

가장 선한 일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 보물 예수를 다른 사람에게 나눠 주는 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선한 사업이라는 것을 깨닫기 바랍니다. 교회 안에는 선한 일을 하는 사람보다는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고 그것을 쌓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 사람이 더 많이 있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장래에 생명이 없다면 나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이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후히 주시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합니다. 정함이 없는 재물을 버리고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모든 것을 다 얻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