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은혜와 진리의 말씀

45강,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 하였느니라

윤주만목사 2019. 5. 12. 06:05


45,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 하였느니라

 

히브리서 12:14-17절을 보면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너희는 돌아보아 하나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있는 가 두려워하고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고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러움을 입을까 두려워하고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식물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라 너희의 아는 바와 같이 저가 그 후에 축복을 기업으로 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 하였느니라

 

구약은 그림자입니다

에서와 야곱의 말씀은 너무도 잘 아는 말씀입니다

창세기를 통해 그 말씀을 기록하신 이유는 그것을 경계로 삼아 내가 진정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있는가를 깨닫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모든 인물은 하나님의 경륜을 나타내시기 위한 선택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모든 것은 때가 있고 기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 모두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 때와 기회를 누구에게나 주시고 있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모르고 지나치고 있습니다. 아마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복음이 들어오기 전에 우리나라에 살던 조상들은 그럼 어떤 기회를 받았느냐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분명 우리가 볼 때는 그들은 기회조차 박탈을 당한 것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 인생들 모두가 하나님을 더듬어 찾을 수 있게 이 세상 모든 자연 만물과 우주를 창조하셨다는 것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자연의 이치와 우주의 별만 보고도 창조주를 충분히 찾을 수 있지만 사람들의 마음은 영혼에 대한 관심보다는 그저 내 앞에 있는 현실에 치우쳐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찾지 않았을 뿐입니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저 우주에는 별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지구 60억 명으로 계산을 해도 과학자들이 밝혀낸 것만 해도 한 사람당 약 3조개라는 별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그 창조주를 찾고자 하는 사람에게 전도자를 보내 주시지 않았겠습니까?

 

다만 사람이 영혼에 대해 관심이 없을 뿐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구 어디에 있을지라도 그 택하신 자들을 버리시지 않고 건져 내신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아직도 문명을 받아들이지 않는 저 아마존의 수소 종족이라고 해도 창조주를 찾고자 하는 마음을 가졌다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그들에게 전도자를 보내 주실 것입니다

 

회개할 기회는 충분합니다.

그러나 무엇을 회개해야 하고 자기가 어떻게 행해야 하는 가를 모르기 때문에 또 스스로 하나님을 찾고자 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에 은혜를 구하지 않고 오히려 자기 자유의지를 의지하다가 결국에는 멸망의 길로 빠져 들어가고 마는 것입니다

 

시편 86:13절을 보면

이는 내게 향하신 주의 인자가 크사 내 영혼을 깊은 음부에서 건지셨음이니이다

 

하나님이 우리 인생을 얼마나 사랑하십니까?

내 영혼을 깊은 음부에서도 건져 내시기를 원하십니다. 다만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지 않는 것이 문제지 하나님께서 능력이 없으셔서 전도자를 보내 주시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는 분명한 이유가 있어야 합니다.

성경은 도덕 교과서가 아닙니다. 마치 성경을 도덕 교과서로 오해를 하고 율법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성경을 보는 분명한 이유는 내 영혼이 구원을 받기 위해서 이고 구원을 받으려하면 내가 어떻게 행해야 하는 가를 성경에 기록된 말씀들을 통해 경계를 삼기 위해서 성경을 보고 그 안에서 지혜를 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 성경을 보는 본질을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성경에 나온 인물들의 삶을 본받으라고 성경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들을 통해 어떻게 섭리하시고 또 그들을 어떻게 구원하시는가 하는 그 깊은 경륜을 깨닫기 위해서 우리가 성경을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어떻습니까?

그 인물을 닮아가려고 그 행위에 집착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나는 아브라함과 같을 수 없습니다. 이삭과도 그리고 야곱과도 같을 수 없으며 그런 사람들을 닮아가야 한다면 성경에 나오는 허다한 인물들을 다 따라가려면 차라리 하나님을 안 믿는 것이 편할 것입니다

 

그들을 통해 동일한 믿음을 얻고자 성경을 보는 것입니다

그 한사람, 한사람의 행위와 성품을 본받기 위해 또 따라 하기 위해서 성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어떻게 해서 하나님을 믿을 수 있었는가 또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어떻게 은혜를 내려 주셨는가를 성경을 통해 배워가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히브리서 본문 말씀도 바로 그것을 경계하기 위한 말씀입니다

 

14,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고 말씀을 합니다.

물론 사람과 사람 사이에 내가 정답게 지내서 화평할 수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화평할 수 있다는 것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사람은 아무리 화평을 하려고 해도 남의 떡이 커 보인다는 우리 속담이 있는 것과 같이 비교하는 눈을 가지고 있어서 화평할 수 없습니다.

 

물론 어느 면에서는 화평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역시도 또 다른 면에서는 절대로 자기주장을 굽히지 못하면서 화평하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골로새서 1:20절을 보면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무엇으로 화평을 이룰 수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가 아니고는 화평을 이룰 수 없습니다. 내가 모든 사람들과 화평을 이루려고 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의 은혜 가운데 있어야 가능하다는 말씀입니다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 모든 것을 다 내어 준다고 화평할 수 있습니까?

내 형제가 다섯 있는데 내가 돈을 많이 벌어서 그 형제들에게 똑 같이 나눠 준다고 화평할 수 있습니까? 똑 같이 나눠 주어도 한쪽에서 불만이 생길 수 있고 또 가난한 형제를 더 많이 주어도 또 다른 쪽에서 불만이 있는 것이 사람입니다

 

우리는 육적으로도 할 수만 있다면 화평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런 화평은 그 당시에는 화평하게 보일지라도 잠시 후에 보면 또 새로운 불만이 생겨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화평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라는 말씀입니다 예수 안에서 누리는 화평만이 다른 사람에게 불만을 주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복음을 아는 성도만이 행할 수 있는 화평입니다

그리고 본문 말씀을 자세히 보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그것을 행하라는 말씀이 아니라 화평이 무엇인가 거룩함이 무엇인가를 알고 좇아가라는 말씀입니다

 

거룩함에 대해서는 계속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단번에 십자가에서 자기를 드리심으로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다고 과거형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화평을 주셨고 또 거룩함을 주셨습니다. 그것을 좇아가라는 말씀은 그것을 받아들이라는 말씀입니다 그것을 모든 사람들과 함께 나누라는 말씀입니다 그 사람만이 주를 볼 수 있다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성경은 영적인 말씀입니다

물론 육적인 말씀도 있지만 거의 모든 말씀이 영적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내가 화평할 수 있고 또 내가 거룩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이 모든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내가 거저 얻는 은혜의 선물입니다 그것을 모든 사람들과 나누라는 말씀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화평을 주셨습니다.

죄인이 내가 하나님과 화평할 수 있게 휘장을 찢어 놓으셨다는 말씀입니다 또한 내가 그 십자가로 말미암아 단번에 거룩함을 얻었습니다. 그것을 좇지 않고 그것을 나누지 않는 사람은 주님을 볼 수 없습니다. 지금 교회 안에는 자기들이 화평을 하려고 노력을 하고 자기들 스스로 거룩해 지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화평과 거룩함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하는 그런 행위는 모두가 율법주의에서 나온 발상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육적으로도 우리는 그렇게 살아가야 하겠지만 영적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아가지 않는 사람은 결국 버림을 받고 말 것입니다 주를 보지 못할 것이라고 분명하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15, “너희는 돌아보아 하나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있는 가 두려워하고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고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러움을 입을까 두려워하고

 

가장 두려운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내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일입니다

왜 이 말씀을 성경에 기록하셨는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교회에는 나왔지만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들이 많다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이 그랬습니다.

교회에 나온 다고 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다고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장자로 선택한 민족이지만 다수가 은혜에 이르지 못하고 결국 멸망의 길로 가버리고 말았습니다. 아직까지도 유대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있는 것을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가장 불쌍한 자는 세상 사람이 아닙니다.

교회에 나왔지만 그래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며 찬송을 하고 살았지만 은혜에 이르지 못해 구원을 받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얼마나 불쌍하냐면 예수님께서 그들을 향해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 단지 교회에 나온 것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자기 모습을 보면서 마치 은혜를 받은 자로 착각을 하고 있는 사람이 많다는 것입니다

 

에서는 야곱의 형입니다

이삭의 장자이면서 이삭으로부터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당연히 축복을 받았어야 하는데 그는 은혜에 이르지 못 하였습니다 교회에 나왔으면 당연히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경계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이유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고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러움을 입게 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거룩함을 입은 사람입니다

로마서 11:16절을 보면

제사하는 처음 익은 곡식 가루가 거룩한즉 떡덩이도 그러하고 뿌리가 거룩한즉 가지도 그러하니라

 

내가 거룩함을 입은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거룩하기 때문에 거룩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나는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는 뿌리입니다 그 뿌리에 붙어 있는 가지는 뿌리가 거룩하니까 가지도 거룩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뿌리로 말미암아 거룩함을 입으려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구하기보다는 쓴 뿌리인 사람의 의를 구하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 많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도가 이 세상에서 선하고 의롭게 사는 것 지극히 당연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나를 거룩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반드시 깨달아야 합니. 나를 거룩하게 하는 것은 바로 내 뿌리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내가 그 진액을 받기 때문에 그 가지인 내가 거룩하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쓴 뿌리가 납니다.

그 쓴 뿌리가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 쓴 뿌리가 나서 사람을 괴롭게 하고 또 더럽힌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사람을 괴롭게 합니까?

모든 율법을 항상 다 지킬 수 없는데 그것을 지키라고 요구하는 것이 바로 사람을 괴롭게 하는 것입니다 율법을 다 지킬 수 있다면 괴로울 것이 없겠지만 단 한 가지라도 지키지 못하면 그 양심에 가책을 받아서 스스로 괴로운 것입니다

 

율법은 사람을 괴롭게 합니다.

그것을 다 지키려면 얼마나 괴롭습니까?

사람들은 자기가 조금 지키는 율법의 모양을 보고 마치 자기가 율법을 잘 지키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율법은 한 가지라도 살리는 그 순간에 모든 율법이 다 살아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내가 살인을 안 했습니까?

그것으로 내가 평안을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거짓말을 했으면 살인한 자와 같기 때문에 그리고 가난한 이웃을 돕지 않았으면 그것도 죄가 되기 때문에 율법을 지키고자 하는 순간 괴롭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럽게 됩니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에 옷으로 깨끗한 옷을 입었습니다.

그러나 쓴 뿌리가 나서 율법으로 사람을 괴롭게 하기 시작하면 그 율법을 완전하게 지킬 수 없기 때문에 스스로 더럽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율법으로도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도 같이 깨끗해지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다른 것이 음행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의에다 율법의 의를 포함하려는 것이 바로 음행입니다 깨끗한 옷을 이미 입었는데도 또 쓴 뿌리가 나서 율법의 의로 옷 입으려고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더럽게 만드는 것임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오직 예수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 오직 예수가 아니라 예수만 믿어서 되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만 믿어서 안 되면 예수님께서는 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폄하하려는 율법주의 적 사고에서 나온 발상입니다

 

이미 깨끗한 자입니다

그런데 사람의 탐욕이 더 깨끗해지려고 하다가 오히려 이미 깨끗해 져 있는 자신을 더럽게 만들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 충분한데도 율법의 의를 더하려고 하는 모든 행위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거절하겠다는 뜻과 같은 것입니다

 

음행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한 남편 예수 그리스도로 충분한데 쓴 뿌리가 나서 사단에게 미혹이 되어 율법주의에 빠지고 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바로 이스라엘이 모두가 사단에게 미혹이 되어서 율법을 지키다 그 쓴 뿌리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를 거절하는 악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16,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식물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라

 

음행하는 자가 누구입니까?

두 남편을 섬기는 여자를 음부라 말 합니다

지금까지 쓴 뿌리가 무엇인가를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 쓴 뿌리가 바로 음행을 하게 하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율법의 남편과 예수 그리스도의 남편 두 남편을 섬기고 있는 것입니다

 

율법의 남편은 죽었습니다.

아직도 율법이 살아 있다고 하는 사람들의 주장이 얼마나 허구인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율법에는 안식일에 불을 피우는 자도 돌로 쳐 죽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이 살아 있다고 주장을 하려면 안식일에 불을 피우는 자는 세상이 그냥 두더라도 교회 안에 있는 사람은 그가 그것을 범하면 끌어다가 돌로 쳐 죽여야 율법이 살아 있는 것이 성립이 됩니다.

 

구속력이 없는 법은 죽은 법입니다

예전에 통행금지가 있었는데 지금 그 법이 효력을 상실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경찰이 12시 넘어서 통행을 한다고 구속을 해서 구류를 살게 한다면 그냥 살 사람이 있겠습니까? 당연히 항의를 하고 또 그렇게 구류를 살았다면 국가를 상대로 손해 배상을 청구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통행금지 시간에 다니지 말라고 주장을 하면서 율법이 살아 있다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 통행금지 법을 잘 지키면서 자기가 마치 신앙생활을 잘 하고 있는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 얼마나 어리석고 웃긴 행동을 하고 있는 것입니까?

 

그러나 그것을 음행이라고 생각을 못하고 있습니다.

죽은 율법의 남편과 새 남편인 예수 그리스도를 함께 섬기면서도 전혀 양심에 가책을 느끼지 못하고 오히려 그것을 감사해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 행위를 자랑하고 칭찬을 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것이 바로 음행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기가 음행을 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음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열심이라고 생각을 하면서 더욱 더 깊은 나락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습니다. 내가 율법의 한 가지라도 살려서 그것을 지키고자 하는 순간 사망의 그물에 걸려든다는 것을 깨닫기 바랍니다.

 

에서와 같은 자가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한 그릇 식물이 무엇입니까? 단지 팥죽 한 그릇을 말씀하는 것입니까? 우리의 양식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나는 생명의 떡이니 이 떡을 먹는 자마다 영생을 하리하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에서는 한 그릇 식물에 장자의 명분을 팔아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를 망령된 자라고 성경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에서는 장자입니다 그리고 더구나 자기 아버지 이삭으로부터 사랑을 받았습니다. 자기가 장자의 명분을 얻는 것을 아주 가볍게 생각을 했습니다. 장자라는 이 세상적인 명분 때문에 영혼에 대한 것도 당연히 받을 것이라 생각을 했다는 말씀입니다

 

누가 그랬습니까?

바로 이스라엘이 그랬고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난 후에도 기득권이 있는 교회가 이제까지 지금도 그렇게 행해오고 있습니다. 물론 정통이라는 것은 너무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 정통이라는 것에 빠져 버리면 그 교회에서 당연히 구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을 하다가는 에서와 같이 한 그릇 식물에 자기 영혼을 파는 자와 같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정통 무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라는 정통도 율법이라는 다른 식물을 먹다가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악행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에서는 당연히 이삭으로부터 축복을 받아야 하지만 은혜를 사모하기 보다는 자기가 가진 세상적인 것을 더 의지하다가 결국 버림을 받고 말았습니다.

 

이단은 아예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정통 교회에 다닌다고 그것이 마치 내 구원을 보장해 줄 수 있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은혜를 구하지 않는다면 그는 반드시 에서와 같이 버림을 받게 될 것입니다

 

17, “너희의 아는 바와 같이 저가 그 후에 축복을 기업으로 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 하였느니라

모든 일에는 기회가 있습니다.

물론 지금 이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는 얼마든지 기회가 있습니다.

에서가 버림을 받게 된 것을 기록하신 이유는 바로 에서와 같은 자가 되어서 회개를 할 기회를 잃지 말라는 경계의 말씀입니다 그는 너무나도 배경이 좋았습니다.

 

그것을 식물로 삼았다는 말씀입니다.

생명의 양식인 예수 그리스도를 식물로 삼았다면 그는 처음부터 은혜를 구하고 망령되게 행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버지로부터 사랑을 받았고 장자로 태어났기 때문에 그 보이는 모습이 그에게는 식물이 되어 은혜를 저버리고 만 것입니다

 

내가 지금 정통 교단에 있습니까?

그리고 교회에 나와서 그 안에서 신앙생활을 아주 잘하고 있습니까?

분명히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그것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내 영혼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새기고 또 가슴 깊이 새겨야 합니다.

 

에서는 불행한 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에서를 통해 경계를 삼고 회개할 기회가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 많은 사람들은 자기가 음행을 하고 있으면서도 또 망령되게 행하고 있으면서도 분별을 하지 못하고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고 그저 맹목적으로 따라가고 있습니다.

 

에서는 남의 일이 아닙니다.

분명 지금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은혜가 무엇인가도 모르고 입술로만 은혜를 외치는 그들에게는 은혜가 이르지 못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내게 임하려면 내게서 율법의 쓴 뿌리가 제거 되어야 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거룩함을 얻어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고 그 화평이 사람들에게 전해져야 합니다.

 

기회를 잃지 마시기 바랍니다.

교회를 나온 것이 기회를 잡은 것이 아닙니다. 청함을 받은 사람은 많으나 택함을 입은 사람은 적다고 분명히 말씀을 하셨습니다. 교회에 나온 것은 회개할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에 나와서 회개는 하지 않고 망령되게 다른 식물을 탐하다가는 버림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회개하십시오.

그것은 내가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은혜에 이를 수 있는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임을 깨닫고 그 은혜를 사모하시는 것이 바로 성도가 해야 하는 회개입니다 그 회개를 하시고 은혜에 참여한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