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은혜와 진리의 말씀

43강, 주의 길이 공평치 않다 하는 도다

윤주만목사 2019. 5. 11. 06:41


43, 주의 길이 공평치 않다 하는 도다

 

에스겔 18:25-32절을 보면

그런데 너희는 이르기를 주의 길이 공평치 않다 하는 도다 이스라엘 족속아 들을찌어다 내 길이 어찌 공평치 아니 하냐 너희 길이 공평치 않은 것이 아니냐 만일 의인이 그 의를 떠나 죄악을 행하고 인하여 죽으면 그 행한 죄악으로 인하여 죽는 것이요 만일 악인이 그 행한 악을 떠나 법과 의를 행하면 그 영혼을 보전하리라 그가 스스로 헤아리고 그 행한 모든 죄악에서 돌이켜 떠났으니 정녕 살고 죽지 아니하리라 그런데 이스라엘 족속은 이르기를 주의 길이 공평치 않다 하는 도다 이스라엘 족속아 나의 길이 어찌 공평치 아니 하냐 너희 길이 공평치 않은 것이 아니냐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국문할찌라 너희는 돌이켜 회개하고 모든 죄에서 떠날 찌어다 그리한즉 죄악이 너희를 패망케 아니하리라 너희는 범한 모든 죄악을 버리고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할찌어다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어찌하여 죽고자 하느냐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죽는 자의 죽는 것은 내가 기뻐하지 아니하노니 너희는 스스로 돌이키고 살찌니라

 

하나님은 온전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나 사람은 그 온전함에 이르지 못하기 때문에 그 행위를 보면서 누가 조금 더 의롭냐 아니면 누가 조금 더 악하냐를 비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가 다른 사람에 비해 많이 의롭게 살았으면 설령 작은 실수 하나 쯤은 덮어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고 합니다.

분명히 맞는 말입니다 그렇다고 누가 더 먼지가 많이 나냐 덜 나냐를 비교 해서 누가 더 의롭냐 악하냐를 말한다면 그것은 순전히 사람의 생각이고 사람의 판단입니다. 지금 에스겔의 말씀은 이스라엘이 평소 조금 더 의롭게 살았는데도 나쁘게 산 사람이 회개를 했다 해서 그를 어떻게 구원해 줄 수 있냐고 하면서 하나님은 공평하지 않다고 하는 말입니다

 

물론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의 존재를 모르고 자기 죄를 모르고 하나님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의 생각입니다 지금도 그런 말을 합니다. 특히 예수를 믿는다 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어떻게 악하게 살다가 회개를 하였다고 그가 천국에 갈 수 있느냐는 말을 합니다.

 

그럼 뭐 하러 선하게 살려고 노력하느냐고 말합니다.

실컷 자기 마음에서 누리고 싶은 대로 악하게 살다가 죽을 때 쯤 해서 나이가 들어서 예수를 믿으면 될 것이 아니냐고 말 합니다 그런 말을 한다는 자체가 예수를 믿지 않겠다는 말과 같은 것입니다 어떻게 예수를 믿는 사람의 생각에서 그런 말을 할 수 있습니까?

 

예수이름의 뜻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십니다 내가 믿는 예수는 내 죄에서 나를 구원해 주실 분이라는 말씀입니다 자기가 조금 선하게 산 것 같아도 역시 그도 죄에서 구원을 받아야 할 사람이라는 말씀입니다 욥과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악에서 떠난 사람도 자기 죄에서 구원을 받아야 할 자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면 하나님은 공평하지 않습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성경은 정의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보기에 조금 더 의로울 수는 있어도 그가 욥과 같은 의를 가졌어도 그 역시도 의인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인정해야 합니다.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나쁘게 살다가 회개를 하고 구원을 받는 사람과 선하게 살다가 한 가지 악에 빠져 사망을 당하는 사람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사람의 눈으로 보면 하나님은 불공평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떻게 살았으면 사형을 당하는 그런 사람이 단지 십자가에서 예수님께 당신의 나라에 임할 때 나를 기억 하소서 한 마디에 그가 천국에 갈 수 있겠습니까? 고아와 고부를 돕고 율법을 어려서부터 지킨 청년은 지옥에 가고 제 멋대로 살다가 십자가형을 받는 그 사람이 천국에 갈 수 있습니까?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이해하는 사람은 그것을 받아들이고 하나님께서는 지극히 공평하시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나 역시도 의인이 아니고 그 역시도 의인이 아니기 때문에 모두 죽어야 할 사람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이 세상 죄를 다 지고 가심으로 말미암아 나도 회개를 해서 예수를 믿어 의에 이르고 그도 역시 회개를 해서 의에 이른다는 것을 믿는 성도는 하나님은 너무도 공평하신 분이십니다

 

믿는 것이 어렵습니까?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려 하기 보다는 자꾸 자기가 행한 의로운 것을 보기 때문에 그것을 보고 비교하기 때문에 나쁘게 살다가 회개를 해서 구원을 받는 사람을 받아들이기가 힘이 듭니다. 그리고 자기가 이제까지 행한 의로운 일을 기억하면서 혹시라도 지옥에 갈 수 있다는 사실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25, “그런데 너희는 이르기를 주의 길이 공평치 않다 하는 도다 이스라엘 족속아 들을찌어다 내 길이 어찌 공평치 아니 하냐 너희 길이 공평치 않은 것이 아니냐 만일 의인이 그 의를 떠나 죄악을 행하고 인하여 죽으면 그 행한 죄악으로 인하여 죽는 것이요 만일 악인이 그 행한 악을 떠나 법과 의를 행하면 그 영혼을 보전하리라 그가 스스로 헤아리고 그 행한 모든 죄악에서 돌이켜 떠났으니 정녕 살고 죽지 아니하리라

 

여기 두 사람이 나옵니다.

한 사람은 의인이요 한 사람은 악인입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성경은 말씀을 하고 있는데 어떻게 의인을 나올 수 있습니까? 우리는 성경을 볼 때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생각하면서 보지 않으면 성경이 말씀하고자 하는 뜻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악이냐 죄냐 하는 문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의인이냐 악인이냐 하는 말씀이 더 핵심적인 말씀이라는 것을 분별하야 합니다. 이 의인과 악인은 의인은 하나는 믿음을 가진 사람이고 하나는 믿지 않고 행위를 따라 가고 있는 사람입니다 물론 성경은 한번 의인은 영원한 의인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의인이 다시 타락할 수는 없습니다.

 

이 말씀은 의인이 타락을 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자 하는 말씀이 아니라 악인이 회개를 해서 구원을 받으라는 것을 가르쳐 주는 말씀입니다 이런 말씀을 보고 사람들은 의인도 다시 타락을 할 수 있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타락한 사람은 처음부터 의인이 아니라 사람이 보기에 의인처럼 보였던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의롭다 칭한 사람은 절대로 다시 타락할 수 없습니다.

 

악인이 회개를 해서 구원을 받는 것을 공평치 않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율법적으로 의롭게 살려고 노력한 사람입니다 그런 그들에게 자기 마음대로 사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회개를 하고 구원을 받는다 하니까 그것이 기분이 나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구원해 쥐겠다고 하니까 평소 의롭게 살려고 노력한 사람의 입장에서는 기분이 나쁘기 때문에 하나님이 공평치 않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지금 이스라엘은 율법주의에 빠져 있습니다.

그들은 율법에 기록된 대로 어려서부터 가난한 자를 돕고 고아와 과부를 보살피며 또 율법에 기록된 모든 것을 힘써 행하면서 살아왔습니다. 그런 자기들의 모습을 보면서 스스로 의인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늘 말씀을 드리지만 이스라엘의 육적인 것은 우리의 영적인 것을 의미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들의 기준의 의인과 악인을 그대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은 율법을 잘 지키는 사람이 의인이요 율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 악인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자는 의인이요 믿지 않는 자는 악인입니다 의인과 악인이라는 단어는 같이 사용하고 있지만 그들은 율법이요 우리는 믿음입니다. 먼저 이런 부분들을 이해고 성경을 보아야 쉽게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들이 율법을 안 지킨 것은 지금 우리로 말하면 온전히 믿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그들이 율법을 잘 지켜서 의인이라고 한 것은 지금 우리에게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은 성도라고 생각을 해야 합니다 구약을 보면서 그 안에 감추어져 있는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본다면 결국 율법주의 사상에 빠지고 맙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이 말씀은 의인이 타락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한 말씀이 아니라 악인이 회개를 해서 구원을 받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먼저 깨닫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그 말씀이 바로 32절에 하나님은 죽는 자의 죽는 것을 기뻐하시기 않고 사람들이 회개를 해서 사는 것을 기뻐하신다는 말씀입니다 먼저 마지막 절을 보고 말씀을 보아야 성경을 바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모든 사람이 회개를 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받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무엇이라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하나님의 행사가 불공평하게 보이고 그것에 대해 매우 불쾌하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이제까지 노력한 것을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어 버리니까 더 기분이 나쁜 것입니다 정말 개차반처럼 산 사람과 평생을 선하고 의롭게 살려고 노력한 나를 같이 평가한 다는 자체가 더 기분이 나쁘고 내가 더 후한 대접을 받기를 원하는 마음에서 나온 생각입니다 지금도 교회 안에서 조금 행실이 나쁜 사람이 구원을 받았다고 하면 마음이 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마음속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저런 사람이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참 공평하지 않습니다. 더구나 그 사람이 구원을 받아서 천국에서 누리는 것과 내가 구원을 받아서 천국에서 누리는 것이 똑 같다고 하면 더 기분이 나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불공평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 영혼을 보존하리라...

지금 에스겔의 말씀은 영혼 구원에 대한 말씀입니다

영혼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방법 밖에는 없습니다. 어차피 사람이 보기에 의인이라고 하는 사람이나 악인이라고 하는 사람이나 예수를 믿지 않고는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누가 더 육체적으로 의롭냐 악하냐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율법으로는 의롭다 함을 받을 육체가 하나도 없는데도 그들의 눈은 율법에 가려져서 영혼 구원을 어떻게 받아야 하는 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모두가 죄인이고 악인인데 그들은 율법을 보면서 서로를 비교 판단하면서 악인이 회개를 해서 구원을 받는 것을 보며 하나님이 공평하지 못하다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눈으로 보면 공평합니다.

그러나 율법의 눈으로 보면 모든 것이 다 불공평합니다. 믿음의 눈으로 보면 어차피 나도 천국에 갈 수 없는 악인이요 죄인이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가고 세상에서 모두가 욕하는 그 사람도 믿음으로 천국에 갈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율법의 눈은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하면서 가장 조심해야 하는 것은 내 존재를 망각하는 것입니다 내가 조금 행하고 있는 의로운 행실을 보고 그것에 취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아주 조금이라도 부정하게 만드는 일입니다 완전히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와가 에덴에서 뱀에게 미혹이 될 때 완전한 부정이 아니라 아주 작은 부분에서 부정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구원은 오직 예수입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 미혹하는 자들은 예수만 믿어서는 안 되는 것처럼 아주 작은 부분을 침해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를 믿고 이것을 하면 더 좋고 예수를 믿고 저것을 하면 더 좋다는 그 말에 거의 모든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은혜 되지 못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예수 안에서는 모두가 공평합니다.

모두가 죄인이고 악인인 사람이 예수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은 너무도 공평한 일입니다 그러나 비교를 해서 내가 조금 더 의롭고 내가 조금 더 선하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에 하나님께서 구원하시는 그 경륜은 불공평하게 되어 있습니다.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습니다. 모두가 죽어야 할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내가 평생 신앙생활을 잘 했어도 그것으로 나를 살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내 몸을 불사를 정도로 모든 것을 다 내어 주며 이웃을 사랑했어도 그 역시도 죄인이요 악인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의가 가려진다면 차라리 안 하느니만 못합니다. 예수를 믿는 공평한 것을 방해하고 있다면 그것이 나를 사망으로 끌고 가는 그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모두가 죄인이고 악인인데 그 사람들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하시겠다는 하나님의 뜻이 어찌 불공평할 수 있겠습니까?

 

만약 한 사람이라도 스스로 구원 받을 만한 의인이 있다면 하나님은 불공평하신 분이십니다. 태어나면서부터 그렇게 살아온 의인이 있는데 죄를 짓다가 악을 행하다가 그것을 버리고 살았다 해서 구원을 해 주신다면 하나님은 분명 불공평하신 분이십니다 한 사람도 그런 사람이 없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오셔서 이 세상 죄를 지고 가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족속은 이르기를 주의 길이 공평치 않다 하는 도다 이스라엘 족속아 나의 길이 어찌 공평치 아니 하냐 너희 길이 공평치 않은 것이 아니냐

 

하나님은 공평하신 분이십니다

이 세상에는 율법의 의로는 한 사람도 의인이 없기 때문에 공평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생각처럼 의인이 있다고 생각을 하니까 하나님은 너무도 불공평하신 분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율법의 행위로 의롭다 생각을 하니까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주 불공평한 것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율법의 눈으로 믿음을 보면 불공평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눈으로 믿음을 보면 지극히 공평합니다. 율법의 행위로 보면 하나님의 구원은 불공평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보면 하나님은 너무도 공평하신 분이십니다. 모두가 죄인이고 모두가 악인이라서 죽어야 하는 사람을 어떻게 구원을 하실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믿음이 아니고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모두가 죽어야 합니다.

그런데 저 사람이 조금 더 선하게 살았다고 그 사람을 살리는 것이 공평한 것입니까? 모두가 죽어야 한다면 모두 죽는 것이 지극히 공평한 것입니다 죽어야 하는데 조금 잘 했다고 살려 주는 것은 오히려 불공평한 처사가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모든 사람의 죄, 모두가 죽어야 하는 사람들의 모든 죄를 지고 가시고 그리고 모두 없애 주신 후에 믿음이라는 것을 통해 구원해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는 것입니다 그럼 이렇게 생각할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아무렇게나 살아도 되겠네, 그러나 아무렇게나 살면 이 세상에서 분명히 그에 따르는 보응을 받게 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도적질 하면, 사기를 치면 감옥에 가게 되어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개차반으로 살면 그만큼 대우를 못 받게 되어 있습니다. 누가 그 사람과 대화를 하려고 하고 사귀고자 하겠습니까? 우리는 막 살라고 해도 막 살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살면 내가 어떻게 된다는 것을 뻔히 알기 때문에 막 살고 싶어도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율법주의자들은 막 산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가 연약해서 하지 못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는 지식이 없기 때문에 정죄를 하고 있습니다.

 

30,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국문할찌라 너희는 돌이켜 회개하고 모든 죄에서 떠날 찌어다 그리한즉 죄악이 너희를 패망케 아니하리라 너희는 범한 모든 죄악을 버리고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할찌어다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어찌하여 죽고자 하느냐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국문할찌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마지막 심판대에서 그렇게 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모든 사람은 마지막 심판대에서 하나님으로부터 국문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 사람이 행한 대로 국문을 하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행위는 우리는 믿음입니다.

 

이스라엘은 몸으로 행했고 우리는 마음으로 행하고 있습니다.

행한다고 하니까 몸으로만 행하는 것을 생각하는데 우리는 마음으로 행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습니다. 마지막 심판대에서는 그 사람이 믿었느냐 안 믿었느냐 그 마음에서 행한 대로 하나님께서 국문을 하십니다. 만약 행위대로 심판을 받는다면 의인은 하나도 없기 때문에 모두가 지옥에 갑니다.

 

우리는 행위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습니다.

단 한사람도 행위로는 완전한 사람이 없기 때문에 점도 흠도 없는 그것을 용납하시기 않는 하나님의 보좌 앞에 우리는 설 수 없고 모두가 소멸이 되고 말 것입니다 마음으로 행하시기 바랍니다. 마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의에 이르시기를 바랍니다.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한 사람도 이 세상 죄악에서 떠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것을 버릴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마음을 새롭게 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깨끗한 의를 내가 가져옴으로 해서 죄악을 모두 버릴 수 있습니다. 내가 어떤 행위로 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가져옴으로 해서 내 죄악을 버릴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죄악을 버린 사람이 있습니까?

단 한사람도 죄악을 버린 사람은 없습니다. 그가 아무리 예수 안에 있다 해도 복음을 위해서 살았다 해도 죄악을 버릴 수 없습니다. 마약 그런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그는 거짓말 장입니다 내 행위의 죄악을 버릴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것을 버릴 수 있는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뿐입니다.

내가 예수를 믿어 의롭다 함을 얻으며 자연스럽게 내 죄악은 사라져 버리는 것입니다 그것은 내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되는 은혜입니다 내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예수를 믿는 방법 밖에는 없습니다.

 

디도서 3:5절을 보면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는 새롭게 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셔서 십자가를 지시게 하시고 중생과 그의 말씀으로 씻어서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새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가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되어 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못 믿기 때문에 하나님이 불공평 하게 보이는 것입니다 자기가 어떻게 새롭게 되어 진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자꾸 육체를 새롭게 하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하기 보다는 행위로 새롭게 되려고 지금도 역시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조금 변한 자기 육체의 모습에 취해 믿음이 있으면 행위가 좋아 진다고 하면서 율법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사망에 들어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행위가 나빠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때문에 그 마음과 영이 새롭게 되지 못해서 사망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음으로 나를 새롭게 할 수 있는데도 믿음이 없기 때문에 행위로 자기를 새롭게 하려고 노력하다가 결국에는 새롭게 되지 못해 사망에 들어가게 됩니다.

 

32, “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죽는 자의 죽는 것은 내가 기뻐하지 아니하노니 너희는 스스로 돌이키고 살찌니라

 

하나님은 죽는 자의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에스겔 18장의 결론입니다 의인이 다시 죄악에 빠져서 죽는 것을 지금 말씀한 것이 아니라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신다는 말씀입니다 그 악인은 교회밖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 교회 안에 있는 사람입니다 이스라엘 중에 악인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스라엘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세상에 사는 사람이 악인이 아니라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 중에 악인이 많다는 말씀입니다 늘 그래왔듯이 하나님의 백성들은 율법주의에 빠져 그것이 악한 일이라는 것을 모르고 살았습니다.

 

이스라엘의 다수는 악한 자들이었습니다.

노아의 홍수 때도 사람들은 죄악이 관영하였고 이스라엘이 출애굽을 했을 때도 모든 사람들은 악에 빠져 있었고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에 오셨을 때도 악한 자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런 악한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죽는 자가 죽는 것을 기뻐하시기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들어와 있지만 아직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모두 죽는 자들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셨듯이 교회 안에는 악인이 더 많이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성경을 보아도 늘 선지자들은 외로웠고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들을 핍박했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죽습니다.

고린도후서 135절에 너희가 믿음이 있는 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고 말씀을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고린도교회에 하는 말씀입니다 교회는 나와 있지만 자기 자신을 믿음에 있는가? 확증하지 못한 사람은 결국 버려진 자가 되고 맙니다.

 

에스겔을 통해 하신 말씀을 지금도 똑 같이 하시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죄악 중에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자체가 바로 죄악 중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이 예수를 믿고 영생을 얻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런 하나님의 마음을 모르기 때문에 교회에 나와 있지만 온전히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세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떤 죄인이라고 이 세상 죄를 지고 가신 예수를 믿고 구원을 얻기를 하나님께서는 바라고 있지만 사람들은 그것이 공평하지 못하다고 오직 예수를 믿는 것을 거절하고 예수를 믿으면서 행위를 함께 의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은 교회 안에 죽은 자가 사는 일입니다

내가 살 수 있는 믿음을 내 스스로 확증을 하시고 내가 정말 믿음에 든든히 서 있는 가 시험해 보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의 터 위에 서서 천국에 넉넉히 들어가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