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은혜와 진리의 말씀

44강, 처음 보다 더 심하리라

윤주만목사 2019. 5. 11. 06:42


44, 처음 보다 더 심하리라

 

베드로후서 2:20-22절을 보면

만일 저희가 우리 주 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그 중에 얽매이고 지면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리니 의의 도를 안 후에 받은 거룩한 명령을 저버리는 것보다 알지 못하는 것이 도리어 저희에게 나으니라 참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저희에게 응하였도다

 

꽃이 필 때는 참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그 꽃이 땅에 떨어져 지는 썩어가는 모습을 보게 되면 오히려 고개를 돌리게 됩니다. 썩어져 냄새가 나는 꽃을 보면 차라리 피지 않는 것만 못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꽃이 피었을 때 사람에게 즐거움을 주었다는 자체만으로도 그 꽃은 자기 사명을 다 한 것입니다

 

과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사과 열매가 먹음직스럽게 달려 있는 것을 보기만 해도 흡족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다 처치하지 못하고 썩어서 냄새가 나면 어디 버리기도 곤란할 정도로 더럽기만 합니다.

 

우리 인생은 꽃과 사과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살아 있는 동안에는 건강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살면서 선을 행하고 의로운 일을 행함으로 법 없이도 살 선한 사람이라는 칭찬을 받았어도 그가 죽고 나면 반드시 땅에 묻어야 합니다. 그가 최고의 지성과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살았어도 땅에 묻지 않으면 냄새가 나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인생이 이것으로 끝이 난다면 참으로 허망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믿는 성도들에게는 썩어져 가는 육체만 있는 것이 아니라 늘 새로운 영혼이 있습니다. 비록 육체는 세월을 견디지 못하고 썩어져 땅 속에 들어가야 하지만 하늘로부터 새 생명을 공급해 주는 영혼만은 영원히 깨끗함을 간직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유입니다

만약 우리에게 영혼이 없다면 그리고 영원한 생명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사도 바울은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 짐승과 다를 것이 없이 그저 정욕에 따라 살다가 썩어져 버려 소멸이 되고 말 것입니다

 

세상의 것은 모두 그렇습니다.

썩은 고기를 먹고 사는 독수리나 하이에나도 그렇고 아침 이슬과 같이 깨끗한 것을 먹고 자라는 아름다운 꽃도 그렇고 지성과 감성을 갖고 만물의 영장이라고 살아가고 있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세상에 모든 동 식물들은 모두가 더러워지고 맙니다.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을 산다고 하는 주목 나무도 결국에는 쓰러지게 되어 있고 나중에는 결국 땔감으로도 못 쓰게 바람에 쓸려 사라지고 맙니다. 에덴에서 죄가 들어 온 이후로는 생명을 가지고 있는 모든 존재는 그렇게 결국에는 더럽게 되고 맙니다. 거기서 피할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사망에서 피할 수 있는 살아 있는 생명체는 없습니다.

모든 생명체는 살아 있는 동안에는 그래도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자기 생명에 대한 도도함을 나타내고 있지만 죽음이 온 후에는 어느 누구도 쳐다보기를 꺼려할 정도로 더럽게 되고 맙니다. 그것이 이 세상에 사는 모든 생명체입니다

 

그 중에서도 사람이 가장 더러울 것입니다

불과 사흘이 지나기도 전에 썩은 내가 진동을 해서 곁에 두고 있을 수 없어 땅에 파묻든지 아니면 화장을 해서 모두 태워 버려야 합니다. 인생이 행한 결과는 그렇습니다. 지금 내가 선을 행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그것도 결과가 그렇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인생 자체가 더럽습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얼마나 더러운 가를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선을 행하고 법을 잘 지키고 가난한 사람을 돕는 자기 모습을 보면서 깨끗하다고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내 몸을 불사를 정도로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이웃을 사랑한다 해도 그것 역시 더럽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23:27절을 보면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외식이 무엇입니까?

사전적인 뜻은 바깥쪽을 장식하다는 말입니다

기독교인들이 오해를 하는 것이 바리새인들이 하는 행위는 외식을 하는 것이고 자기들이 하는 행위는 믿음으로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 행위는 바깥쪽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내가 행위로 내 믿음을 나타내려 하는 것과 바리새인의 행위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내가 믿음으로 행하고 있다고 하는 그것도 어차피 바깥쪽을 장식하는 것입니다 내 육체를 통해 나타나고 있는 모든 행위는 모두가 외식이라는 말씀입니다

 

바리새인의 행위와 내 행위가 다르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자체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라는 것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바리새인들도 여러분들과 같은 성정을 가졌고 그들도 하나님을 믿기 위해서 열심을 낸 것이 바로 외식입니다 그들이 외식을 했다면 내 행위 또한 외식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 모든 행위는 더럽습니다.

교회 안에서 그리고 세상에서 모든 사람들이 칭찬을 한다 해도 그 행위는 역시 더럽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제가 선을 행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을 하지 말라고 드리는 말씀이 아닙니다. 성도는 진정으로 이웃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깨끗한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것은 어차피 썩어져 냄새가 나는 것이 되고 만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상한 사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리새인의 행위는 회칠한 무덤이고 자기들의 행위는 선한 것이라는 아주 편협 된 생각에 사로 잡혀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이 더러우면 나도 더러운 것입니다

그들이 회칠한 무덤을 만들고 있으면 내 행위도 역시 회칠한 무덤을 만들고 있다는 것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그것을 모르면 바리새인은 율법주의고 자기의 행위는 믿음이라는 오해를 하게 되어 바리새인 보다 더 회칠한 무덤을 만들게 됩니다.

 

우리는 그 더러운 것에서 피한 성도입니다

무슨 말씀이냐면 행위를 의지하는 자가 아니라 믿음을 의지하는 자라는 말씀입니다 내 모든 행위는 더럽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내 영혼은 깨끗하다는 것을 믿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바리새인과 같이 행위로 회칠한 것에서 피해야 성도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겉은 더럽습니다.

더럽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면 아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모르는 자입니다

 

스가랴 3:3-4절을 보면

여호수아가 더러운 옷을 입고 천사 앞에 섰는지라 여호와께서 자기 앞에 선자들에게 명하사 그 더러운 옷을 벗기라 하시고 또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 죄과를 제하여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 하시기로

 

당대에 대 제사장입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 앞에 설 정도면 바른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 대 제사장 여호수아도 더러운 옷을 입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당대에 대 제사장을 지낼 정도로 그리고 구원을 받을 정도로 믿음 안에서 신실하게 살았다면 그가 얼마나 깨끗한 삶을 살았겠습니까?

 

그런데 성경은 더러운 옷을 입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어느 누구도 대 제사장 여호수아의 행위를 따라갈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들은 정말 어려서부터 고아와 과부를 돌보고 나그네를 대접하고 또 율법적으로도 흠이 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 대 제사장 여호수아도 하나님 앞에 서고 보니까 더러운 옷을 입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사람의 행위입니다

행위로는 우리 모든 인생은 더럽습니다.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교회 안에서 선한 일과 의로운 일을 하는 그 사람도 더럽기는 마찬가지라는 것을 바로 깨닫지 못하면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 더러운 것에서 피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의 하나님 앞에 서도 조금도 부족하지 않는 깨끗한 것을 입은 자가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알고 난 후에 다시 행위로 돌아가면 나중 형편이 처음 보다 더 심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믿음의 도를 듣고 기뻐합니다.

그러나 대 다수의 사람들은 다시 율법으로 돌아가 버립니다. 처음에는 복음의 기쁜 소식에 뛸 듯이 기뻐하다가도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하겠다는 생각이 앞서게 되면 다시 율법주의로 돌아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를 통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에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보면 거의 모든 교회가 성령의 책망을 받고 있습니다. 그들이 처음에는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서는 듯 했지만 율법주의에 은사주의에 그리고 신비주의 기복주의에 미혹이 되어서 타락을 하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일곱 교회는 지금 이 시대의 교회라는 것을 깨닫고 나를 살펴 분별해야 합니다.

 

로마서 7:6절을 보면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의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

 

성도는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은 사람입니다

율법에 대해서 죽었기 때문에 이제 율법에서 벗어 난 것입니다 법이라는 것은 한번 사형집행을 하고 나면 그 사람이 설령 다시 살아온다 해도 사형을 시킬 수 없는 것입니다 지금 바로 그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습니다.

율법에 대해서 우리는 죽어야 하는데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대신해서 죽으심으로 우리와 한 몸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죽으심으로 내가 죽은 것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렇게 율법에 얽매여 있던 우리를 율법에서 벗어나게 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다수는 다시 율법으로 돌아갑니다.

완전한 율법주의가 되는 것이 아니라 일부 율법의 모양을 취하고 있습니다. 그런 자를 성경은 간음하는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는 모든 율법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죽었던 율법 중에 일부를 살리는 음행을 하고 있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나는 율법에 대해서 죽은 자입니다

그런데 다시 율법을 살리는 행위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거절하겠다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 자기 생명을 버리고 율법에 대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는데 그 율법을 다시 살려서 내가 그 율법을 지키고 있다는 것은 예수를 믿지 않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분명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얽매였던 것에서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다고 분명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얽매였던 율법에서 벗어 난 사람이 다시 율법을 지킨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렇게 율법주의에 빠진 사람들은 처음 보다 나중이 더 심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차라리 듣지를 않는 것이 좋을 뻔 했습니다.

아직 듣지를 않았으면 기회가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했다가 율법을 지키게 되면 그 사람은 다시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게 됩니다. 이것은 경험을 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습니다 차라리 율법에 미혹되지 않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면 아주 쉽게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면 대적을 하고 거절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히려 세상 사람들보다 더 심하게 반발을 하는 것을 많이 경험해 보았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게 됩니다.

왜 심하게 되는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차라리 복음에 대해서 모르면 복음을 방해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조금 안다고 하면서 얽매였던 율법을 다시 지키는 사람들은 또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이 얽매여 있는 율법을 가르치기 때문에 그 영혼의 구원을 방해하는 일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는 사람은 복음을 방해하는 자입니다

교회에 구원을 받기 위해 나왔는데 그를 율법에 얽매이게 만들어서 율법으로 진노를 받게 만든다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그냥 두시겠습니까? 그 벌이 다르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 사람들은 구원을 방해하기 때문에 그 벌을 다르게 받게 됩니다.

 

21, “의의 도를 안후에 받은 거룩한 명령을 저버리는 것보다 알지 못하는 것이 도리어 저희에게 나으니라

 

의의 도가 무엇입니까?

내가 의로워 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믿음으로 가져 오는 것이 바로 의에 도입니다 이렇게 의의 도를 안 성도는 하나님의 거룩한 명령 영혼 구원을 받게 됩니다. 영혼 구원을 받으려면 내가 반드시 율법에 대해서 죽어야 합니다. 나를 얽매였던 것에서 벗어나야 의의 도를 맏아들일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로마서 3:24절을 보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성도는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자입니다 바로 이것이 의에 도입니다 이렇게 의롭다 하심을 받은 성도는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입니다 내가 무엇을 해서 의롭다 함을 얻은 것이 아니라 값없이 의롭다 함을 얻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이 의를 바라보면 됩니다.

이렇게 의롭다 함을 얻는 성도는 하나님의 거룩한 명령 천국에 갈 수 있는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바로 이 의를 받아들이는 것이 내가 하나님의 거룩한 명령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다수는 이 의가 부족하다고 생각을 하기 때문에 다시 얽매였던 율법을 지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5:4절을 보면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

 

내가 율법을 지키는 자체가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에 대한 헌신이고 열심히 아니라 율법의 단 하나라도 지키는 것은 그것으로 의롭다 함을 얻으려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내가 구원을 받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로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오직 이것을 바라며 이것을 구하는 자만이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거룩한 명령을 지키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을 방해하는 것이 바로 율법입니다 얽매였던 것으로 다시 돌아감으로 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거절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이것은 영적인 간음입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음으로 율법에 대해서 죽은 자가 되었는데 다시 율법을 지킨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밖으로 나가겠다는 뜻입니다 율법에 대해서 한번 죽었으면 다시는 율법에 대해서 어떤 구속도 받지 말아야 하는데 다시 또 율법으로 얽매여 그것을 지키고자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의의 도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내가 천국에 가는데 있어 조금도 부족하지 않은 의를 나에게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율법주의에 미혹이 되면 그 십자가만으로 부족하게 생각을 합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믿음만 가지고 구원을 받을 수 있느냐는 의의 도를 거절하는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차라리 알지 못하는 것이 낫습니다.

내가 간음을 행하게 되면 나를 통해 교회에 나온 그 사람도 간음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무슨 말씀이냐면 내가 간음을 해서 하나님의 거룩한 명령 영혼 구원을 받지 못하면 나를 보고 교회에 나온 사람도 나에게서 배우는 그 사람도 구원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나는 하나님의 섭리를 거절하고 막는 자가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차라리 모르면 방해는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아이가 길을 잃어 버렸는데 그 아이의 부모의 집을 모르면 다른 사람에게 부탁을 해서 찾아 주면 됩니다. 그런데 잘 모르면서 부모를 찾아 주겠다고 자기가 끝까지 데리고 있다가 그 아이가 죽게 되면 부모가 볼 때 그 사람은 원수입니다

 

하나님과 원수가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달리 원수가 되는 것이 아니라 의의 도를 받은 것을 무시해 버리고 다시 얽매였던 율법으로 돌아가는 것이 바로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모든 율법의 죄를 다 지고 가셨는데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일입니다 다시 율법을 지키겠다고 하는 자체가 영혼 구원을 방해하기 때문에 하나님과 원수 되는 일입니다

 

성도는 조심해야 합니다.

정말 구원을 방해하는 일에 대해서 조심을 해야 합니다. 나중에 그 벌이 다르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도는 모두가 제사장입니다 그런데 그 제사장이 구원을 방해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그냥 두시겠습니까? 열심을 내더라도 알고 하시기 바랍니다.

 

세상 사람들이 구원을 방해하는 것이 아닙니다.

누가 이스라엘의 구원을 방해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거절했습니까? 바로 하나님의 선민이라고 하는 이스라엘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악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세상 사람이 예수를 죽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는 이스라엘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였습니다.

 

복음을 방해하는 자는 교회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 있습니다.

주여, 주여 하면서 선지자 노릇을 하고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고 하던 그 사람들이 바로 복음을 방해하는 사람이라는 말씀입니다 교회 안에 있는 거짓 선지자들이 영혼 구원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율법주의에 빠져 사람들을 사망으로 끌고 내려가는 것입니다

 

이 세상 모든 종교는 율법주의입니다

무엇을 잘 해서 천국을 가든지 극락을 가든지 어떤 행위에 따라서 자기가 원하는 내세에 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세상의 의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과 다른 의의 도가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의로워 질 수 없으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의롭다 하심을 얻어 의롭게 되어 천국에 가는 의의 도입니다

 

그런데 얽매였던 것으로 다시 돌아가고 있습니다.

내가 지키고자 하는 단 하나의 율법이 나를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게 만든다는 것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내가 의로워 지려고 율법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성도로서 의롭게 살기 위해서 율법을 지킨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어떻게 지켰든 율법을 지키는 자는 회칠한 무덤을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22,“참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저희에게 응하였도다

 

개는 토한 것을 다시 먹습니다.

그리고 돼지는 씻겨 놓아도 다시 더러운 구덩이에 자기 몸을 눕힙니다. 의의 도를 듣고 다시 얽매였던 율법으로 돌아가는 것이 이렇다는 말씀입니다

 

개는 율법주의자를 비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돼지는 부정한 것의 대명사입니다 시편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말씀을 하면서 개들이 물어뜯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도 율법주의에 미혹이 되어 있는 자들은 참 의를 모르고 그 의를 이빨로 물어 뜯으려 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단번에 거룩함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 그 거룩함을 간직하고 있으려 하지 않고 마치 돼지처럼 다시 더러운 웅덩이에 들어가려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잘 지켜서 겉은 회칠한 무덤 같이 깨끗하게 보이나 그 속은 온갖 더러운 것이 가득하게 됩니다.

 

의의 도를 믿음으로 받아들이지를 않고 있습니다.

내 속이 깨끗하면 되는데 속을 깨끗하게 하려 하기보다는 겉을 깨끗하게 하기 위해서 오늘도 율법으로 회를 칠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런 사람들을 가르쳐서 돼지가 웅덩이에 다시 들어간다는 말씀입니다

 

내가 의롭게 된 것은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 의의 도를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성도만이 거룩한 하나님의 명령을 지킬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다 다수는 다시 예전에 우리를 얽매였던 율법으로 돌아가서 자기들이 지킬 수 있는 율법을 지키면서 겉을 회칠하고 있습니다.

 

이런 자들은 처음 보다 나중이 더 심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교회 안에는 차라리 믿지 않는 것 보다 못할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명령을 방해하는 그 자들은 나중에 하나님으로부터 받을 형벌이 다르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도는 최소한 남을 구원을 못시키더라도 방해는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 방해하는 것이 다른 것이 아닙니다.

얽매였던 율법에 대해서 죽은 자가 다시 율법을 살려서 얽매이게 만들어서 율법의 진노를 받게 만드는 일입니다 이스라엘의 열심이 모든 사람을 율법주의로 만들고 말았습니다.

 

의의 도를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의의 도를 굳게 잡아서 내 영혼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는 성도가 되시고 또한 그 의의 도를 이 세상에 전파하는 제사장의 직분을 감당하는 거룩한 백성이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