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은혜와 진리의 말씀

37강, 사울은 왜 버림을 받았는가?

윤주만목사 2019. 5. 8. 06:08


37, 사울은 왜 버림을 받았는가?

 

사무엘상 13:8-15절을 보면

사울이 사무엘의 정한 기한대로 이레를 기다리되 사무엘이 길갈로 오지 아니하매 백성이 사울에게서 흩어지는지라 사울이 가로되 번제와 화목제물을 이리로 가져오라 하여 번제를 드렸더니 번제 드리기를 필하자 사무엘이 온지라 사울이 나가 맞으며 문안하매 사무엘이 가로되 왕의 행한 것이 무엇이뇨 사울이 가로되 백성은 나에게서 흩어지고 당신은 정한 날 안에 오지 아니하고 블레셋 사람은 믹마스에 모였음을 내가 보았으므로 이에 내가 이르기를 블레셋 사람은 나를 치러 길갈로 내려오겠거늘 내가 여호와께 은혜를 간구치 못하였다 하고 부득이 하여 번제를 드렸나이다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왕이 망령되이 행 하였도다 왕이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하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 하였도다 그리하였더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위에 왕의 나라를 영영히 세우셨을 것이어늘 지금은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하신 바를 왕이 지키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그 백성의 지도자를 삼으셨느니라 하고 사무엘이 일어나 길갈에서 떠나 베냐민 기브아로 올라 가니라 사울이 자기와 함께한 백성을 계수하니 육백 명 가량이라

 

성경은 본문 말씀만 보고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말씀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울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은 이 말씀도 사실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도저히 납득하기 힘든 말씀입니다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은 사무엘이고 전쟁의 다급한 상황에서 사무엘이 약속대로 왔다면 사울이 굳이 번제를 드릴 이유도 없었을 것입니다

 

지금 전쟁에서 수적으로 이스라엘은 위급한 상황에 빠져 있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은 떨고 있었고 심지어는 전쟁에 나온 백성들이 도망을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약속을 한 사무엘은 약속을 한 이레가 지나도록 오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 원인 제공자가 누구입니까?

 

아마 이런 위급한 처지에 있다면 누구라도 무엇인가를 해 보고자 했을 것입니다 백성들은 떨고 그래서 숨어 있고 또 많은 백성들이 도망을 가고 있는 그런 처지에 있을 때 약속을 한 사무엘은 오지를 않고 이런 상황에서 사울이 아니라 어느 누구라도 무엇인가를 해서 백성들에게 힘을 주고 싶었을 것입니다

 

나는 아니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울은 지극히 평범한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만약 그것이 잘못이라면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모두가 버림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만약 번제를 드린 것이 잘못이라면 사울뿐 아니라 우리 모두가 버림을 당할 사람입니다

 

번제는 제사지만 마치 기도와 같은 것입니다

사울이 번제를 드린 것은 하나님께 간절한 기도를 드린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신앙인들이 어려움에 빠지면 누구나 그것에서 벗어나기 위해 예배를 드리고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했다고 해서 사울이 버림을 당했다면 나 역시 버림을 받을 것입니다

 

사울이 번제를 드린 것이 정말 버림을 당할 만큼 잘못을 한 것입니까?

사람들은 그렇게 말 합니다 제사장이 아닌 왕이 번제를 드린 것은 제사장의 권한을 침해했기 때문에 버림을 당한 것이라고 말 합니다 그리고 마치 이 시대도 제사장이 있는 것 같이 성도들을 미혹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특별한 사람만이 예배를 드리고 인도할 수 있는 것처럼 말하고 일반 성도들이 예배를 드리거나 어떤 일을 하면 제사장의 권한을 침해해서 사울과 같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을 것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만인 제사장 시대입니다

물론 사울이 왕이 되었을 때는 구약 시대 이고 분명히 제사장이라는 직분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에는 자세히 나오지 않았지만 이 전쟁에 제사장들이 한 사람도 참여를 하지 않았겠습니까? 사울이 번제를 드렸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그것이 실제 사울이 드렸는지 아니면 전쟁에 나온 제사장 들을 시켜서 드렸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

 

성경에 많은 왕이 번제를 드린 예가 나옵니다.

그때에도 솔로몬 왕이 번제를 드렸다 히스기아 왕이 번제를 드렸다고 나오지 어느 제사장의 이름이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당연히 제사장들이 번제를 드린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우선 번제를 꼭 제사장이 드려야 하는 가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아마 이 말씀을 들으면서 거의 모든 사람들은 사울이 번제를 자기가 드린 것 때문에 제사장의 권한을 침해해서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당했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을 것입니다 과연 그 주장이 타당성이 있는 가를 우리는 성경말씀을 통해 살펴보아야 합니다.

 

열왕기상 18:32-33절을 보면

저가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여 그 돌로 단을 쌓고 단으로 돌아가며 곡식 종자 두 세아를 용납할 만한 도랑을 만들고 또 나무를 벌이고 송아지의 각을 떠서 나무 위에 놓고 이르되 통 넷에 물을 채워다가 번제물과 나무 위에 부으라 하고

 

너무도 잘 아는 말씀입니다

아합 왕 때에 이세벨에게 유혹이 되어 바알을 섬기고 있던 왕의 바알 선지자들과 엘리야가 갈멜 산에서 각자의 신에게 번제를 드려서 불로 응답하는 신이 진짜임을 대결하는 말씀입니다 제가 결론을 말씀 드리지 않아도 수 없이 들은 말씀이라서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엘리야가 누구입니까?

성경에는 디셉 사람 엘리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제사장 자손이 아니라는 것은 거의 모든 성경 신학자들의 공통된 이야기입니다 제사장도 아닌 엘리야가 번제 단을 쌓고 하나님께 번제물을 드리는데 하나님께서 불로 응답을 하셨습니다.

 

만약 사울이 제사장이 아니라서 번제를 드린 것이 잘못이라면 하나님께서는 이 번제에 응답을 하시지 말았어야 합니다. 어떻게 제사장도 아닌 사람이 번제를 드리는데 그것을 불로 응답을 할 수 있습니까? 더구나 사울이 번제를 드린 것으로 왕에서 버림을 받았다면 엘리야의 이 번제는 하나님께서 절대로 응답을 하시지 말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랬다저랬다 자기 마음에 내키는 대로 하시는 분이십니까?

사울은 안 되고 엘리야는 됩니까? 만약 그런 하나님이라면 우리는 더 이상 하나님을 믿을 수 없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믿어야 한다는 말입니까? 저 사람이 하는 것은 되고 내가 하는 것은 안 된다면 그것도 순전히 하나님의 마음에서 결정을 한다면 우리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저 사람이 예배를 드리면 받고 내가 드리면 안 받고 한다면 어떻게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그렇게 막연하신 하나님이 아니라 분명한 기준을 가지고 있는 분이십니다 만약 사울이 번제를 드린 것이 문제가 되었다면 우리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사울도 제사장이 아니고 엘리야도 제사장이 아닌데 한 사람은 안 되고 한 사람은 된다면 여러분이 어떤 기준으로 하나님 앞에서 행할 수 있겠습니까?

 

사울이 번제를 드린 것이 잘못입니까?

아마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세뇌를 당해 있을 것입니다 사울이 번제를 드린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번제는 누구나 드릴 수 있는 제사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꼭 레위 자손 제사장이 드려야 하는 것이 아니라 제사장이 아니라도 누구나 번제를 드릴 수 있습니다.

 

예배를 목사만 드립니까?

그럼 왜 구약 예배는 집사가 인도를 하고 드립니까?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는 목사가 꼭 드려야 하고 가정에서 드리는 예배는 집사가 드려도 괜찮다는 말씀이 성경에 어디 있습니까? 이런 성경말씀을 가지고 권위를 세우려고 하는 자체가 얼마나 위험한 사상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만약 예배를 목사만 드릴 수 있다면 구역 예배를 집사가 권사가 그리고 장로가 드리는 그 사람들은 모두 사울과 같이 버림을 당하고 말 것입니다

 

성경 말씀을 이용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니 그런 것에 이용을 당하지 않으려면 내가 성경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나중에 주님 앞에 가서 몰랐습니다. 그렇게 배워서 그랬습니다. 그런 말이 통할 것 같습니까? 여러분이 몰라서 그랬든 아니면 그렇게 배워서 그랬든 사울과 같은 자가 되면 버림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울이 버림을 당한 것은 번제 때문이 아닙니다.

만약 그것이 문제가 되었다면 엘리야도 자기가 번제를 드리지 말고 제사장을 찾아서 번제를 드렸어야 합니다. 아합 왕이 하나님의 제사장들을 다 죽었지만 분명히 남겨 둔 자들이 있다고 성경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엘리야는 어떻게 하든지 제사장들을 찾아서 번제를 드렸어야 합니다.

 

성경을 모르면 사울과 같이 버림을 당할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는 그것이 율법화가 되어서 마치 목사만이 예배를 집례 할 수 있는 것처럼 사상이 굳어져 있고 그것으로 인하여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면 그 두려워하는 그것이 그 사람에게 그대로 임하게 되고 말 것입니다 내가 무엇을 하고 안 하고 하는 그것으로 내 구원에 영향을 줄 수 있다면 이 세상에는 한 사람도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번제가 뭐 대단한 것으로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번제를 꼭 제사장이 드려야 한다고 했다면 디셉 사람 엘리야는 하나님으로부터 저주를 받았어야 합니다. 그는 제사장도 아니고 하나님께서 한 시대를 쓰기 위해 부르신 선지자입니다 선지자 보다는 그래도 기름을 부어 왕이 된 사울의 번제가 더 타당성이 있는 것입니다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왕이 망령되이 행 하였도다

 

사울이 버림을 받은 것은 번제 자체가 문제가 된 것이 아니라 지금 전쟁 상황에서 왕이 무엇을 행해야 하는 가를 몰랐기 때문입니다. 제사장의 권한을 침해한 것이 문제가 된 것이 아니라 왕으로서 이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방법을 몰랐던 것입니다

 

왕이 망령되이 행한 것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망령되다라는 말은 정신이 흐려서 말이나 행동이 정상을 벗어남. 또는 그런 상태를 말 합니다 지금은 전쟁 중입니다 그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방법은 번제를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제사장의 권한을 침해 하고 사울이 번제를 드린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전쟁과 아무 상관도 없는 번제를 드린 것이 잘못입니다

 

사울은 지금 당황하고 있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의 숫자는 월등히 많고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은 두려워서 떨고 있고 또 일부는 도망을 가고 있는 상황에서 자기가 무엇을 해야 하는 가를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 없었다는 말씀입니다 사무엘이 사울을 책망하는 것은 사울이 제사장의 권한을 침해하고 번제를 드렸다는 것을 책망하는 것이 아니라 사울이 지금 정신이 빠져 있어서 무엇을 해야 하는 가를 모르고 그냥 자기 마음에서 이렇게 하면 좋을 것이라는 생각에 번제를 드린 것 때문에 사울을 책망하고 있습니다.

 

전쟁을 나갈 때 어떻게 하라고 하셨는가를 보겠습니다.

 

민수기10:9절을 보면

또 너희 땅에서 너희가 자기를 압박하는 대적을 치러 나갈 때에는 나팔을 울려 불지니 그리하면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너희를 기억하고 너희를 너희 대적에게서 구원하리라

 

전쟁에 나갈 때에 어떻게 하라고 말씀을 합니까?

아무리 위급한 상황이라도 그 전쟁에서 이기려면 번제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나팔을 울려 불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대적과 싸울 때 나팔을 울려 불면 하나님께서 너희를 기억하고 너희를 대적에서서 구원하리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싸움에서 이기고 지는 것은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그것은 번제를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번제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사울 왕은 나팔을 울려 불면 하나님께서 그 나팔 소리를 기억하시고 이스라엘의 대적에게서 반드시 구원해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사무엘상 133절을 보면 사울은 이스라엘 온 땅에 나팔을 불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모였고 모두 싸움에 나가서 블레셋과 싸워 이기려 했는데 블레셋의 병거가 삼 만이요 마병이 육천이다 보니까 이스라엘이 두려워서 숨고 도망을 갔습니다. 누가 그렇게 했습니까? 애굽에서 출애굽을 한 일세대가 가나안을 정탐하고 와서 가나안에 있는 높은 성벽과 아낙 자손을 보고 우리가 보기에 스스로 메뚜기 같다고 말했습니다.

 

전쟁은 하나님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그랬던 것 같이 사울 왕도 백성이 두려워하고 도망을 가는 것을 보고 또 블레셋의 군대를 보고 자기가 무엇인가를 해서 그것을 만회하려고 했습니다. 전쟁과 아무 상관도 없는 번제를 드려서 백성들의 마음을 잡으려 했던 것이 잘못이라는 말씀입니다

 

번제로 백성들의 마음을 잡으려 했습니다.

사울 왕은 민수기에서 말씀한 것 같이 나팔을 울려 불고 백성들의 마음을 강하게 하고 하나님께서 이 전쟁에서 자기들 앞서 싸울 것이라는 것을 백성들에게 가르쳐 주었으면 되었습니다. 그렇게 했다면 번제를 드릴 필요도 없고 또 설령 사무엘이 늦게 왔다 해도 기다렸을 수 있었습니다.

 

구원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도 내가 무엇인가를 하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기가 드리는 예배를 보고 자기가 드리는 기도를 보고 자기가 드리는 찬양을 보고 그것으로 자기가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고 망령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아주 많이 있습니다.

 

사울의 행위가 그렇습니다.

그는 전쟁에서 이기게 하시는 하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믿음 보다는 자기가 드리는 제사를 통해서 백성들의 마음을 붙들려 했습니다. 또 자기가 드리는 번제를 하나님께서 받으시고 그 번제를 통해서 전쟁에서 이길 수 있을 것이라 착각을 했습니다.

 

지금 이 시대도 사울과 같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자기들이 구원을 받기 위해 영적인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 번제를 드리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느냐는 말씀입니다 나팔을 올려 불고 하나님께서 전쟁에서 싸우시는 것을 믿으면 이길 수 있는데 믿지를 못하니까 자꾸 이상한 행위들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도를 하면 참 좋지요.

예배를 드리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분명히 깨달아야 하는 것은 믿음이 없는 기도 믿음이 없는 예배는 모두 망령되이 행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나를 구원하신다는 것을 믿지 못하고 기도를 하고 예배를 드리고 하는 그런 행위는 다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제가 지금 기도도 하지 말고 예배도 드리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가 당연히 해야 하는 일들입니다 그러나 생명을 걸고 싸우는 전쟁에서는 그런 예배와 기도로 나를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나팔을 울려 불면 하나님께서 기억하시고 대적에게서 구원을 해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기억하시면 내 대적에게서 구원해 주십니다.

내가 사단과 싸워 이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사단은 나 보다 강하기 때문에 두렵고 떨리지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믿고 기다리면 하나님께서는 그 전쟁에서 반드시 이기게 해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왕이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하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 하였도다 그리하였더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위에 왕의 나라를 영영히 세우셨을 것이어늘

 

하나님의 명령은 무엇입니까?

구약은 그림자입니다 그들이 육적으로 생명이 구원을 받은 것은 우리 영적인 생명이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생명을 구원 받는 것입니다 사울 왕이 전쟁에서 생명을 구원 받을 수 있는 것은 번제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나팔을 울려 불어서 하나님께서 이 백성을 기억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사울 왕은 하나님의 명령을 어겼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려면 사울 왕이 번제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나팔을 울려 불고 하나님께서 구원하시는 손길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사무엘이 올 때까지 기다리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울의 눈에는 블레셋의 병거와 마병이 보였고 또 자기 백성이 두려워 떨고 도망을 가는 것이 보였습니다.

 

기드온은 삼백 명이 되는 용사를 데리고 미디안의 두 왕을 쳐 죽였습니다

사울 왕 보다 더 열악한 군대를 가지고 더 많은 적과의 전쟁에서 이길 수 있었던 것을 하나님께서 미디안을 기드온의 손에 붙이셨기 때문입니다 사울 왕의 군대는 오히려 기드온의 용사 보다 더 많았습니다.

 

그러나 사울 왕은 하나님의 구원을 믿지 않았습니다.

전쟁에서 이기는 것이 수가 많고 적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는 것을 믿지 못했던 것입니다 사울 왕이 명령을 지키지 않은 것은 구원을 자기 손으로 이루려 했기 때문입니다 구원은 하나님께 있고 전쟁에서 승리는 하나님께 있었지만 그 생명을 구원하는 명령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믿지를 않았다는 말씀입니다

 

잠언21:31절을 보면

"싸울 날을 위하여 마병을 예비하거니와 이김은 여호와께 있느니라"

 

하나님의 명령은 생명의 구원입니다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전쟁에서 이김은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내게 번제를 드려서 그것으로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전쟁의 이김은 하나님께 있음을 믿고 기다리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는 것입니다

 

예배가 여러분을 구원시킬 수 없습니다.

기도가 그리고 찬양이 어떤 행위로도 사단과의 싸움에서 여러분을 구원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 시대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는 은근히 자기가 드리는 예배가 자리해 있고 기도가 자리해 있고 자기가 행하는 헌신과 이웃 사랑이 자리해 있습니다.

 

이김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 하나님께서 내가 지금 대적과 싸우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면 나를 도와서 싸워 주실 분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더 적은 숫자의 용사로도 더 많은 군대를 이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울 왕과 같이 자기가 드리는 번제를 통해 구원을 받으려 하는 자는 반드시 버림을 당하고 말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기억하시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것은 육적 이스라엘에게는 나팔을 부는 일입니다 나팔을 울려 불면 하나님께서 기억하시겠다고 약속을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기다리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구원을 해 주시고 그 전쟁에서 승리를 하게 만들어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사울 왕은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자기가 전쟁에서 어떻게 생명을 보존할 것인가를 몰랐습니다. 사울은 개인이 아니라 한 나라의 왕입니다 왕이 패하면 모든 백성은 포로가 됩니다. 그런 왕을 하나님께서 그냥 두시겠습니까?

 

생명을 구원하는 명령을 지키지 않아서 버림을 받았습니다.

그 명령은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나팔을 울려 불고 하나님께서 기억하시게 만들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이 시대도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기억하시게 하는 것 보다는 자기가 번제를 드려서 구원을 받으려 하고 있습니다.

 

내가 무엇을 해서는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잘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을 저버리는 일입니다 명령을 지키지 않는 자의 망령된 일입니다 가장 중요한 생명을 보존하는 명령을 지키지 못한다면 그는 버림을 당하고 말 것입니다 이 시대도 하나님께서 생명을 어떻게 구원할 것인가를 분명하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오직 믿음입니다.

그렇다면 믿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지 않는 자입니다 온전한 믿음이 없는 자는 사울 왕과 같이 명령을 지키지 않는 자가 되고 맙니다. 너무 쉬운 방법이 있는데도 사람들은 사울 왕과 같이 행위에 의지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드리는 번제를 보면서 구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자체가 망령된 행실입니다

 

누가복음23:42절을 보면

가로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하니

 

하나님이 나를 기억하고 있으면 됩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생각해 주시면 내 생명이 구원 받을 수 있습니다 내가 비록 지금 사단에게 잡혀 죽는 그 순간에 있을지라도 예수님께서 나를 생각하고 있으면 내 생명을 구원할 수 있고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는 자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한편 강도 보다 낫지 않습니까?

오히려 더 나은 형편 때문에 믿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번제를 드릴 수 있고 예배를 드릴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나를 기억하시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습니다. 기억하고 안 하고는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기가 드리는 번제가 더 중요한 것입니다

 

사울이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지 않은 것은 번제를 드린 것이 아닙니다.

만약 번제를 드린 것이 문제가 된다면 엘리야의 번제를 하나님께서는 응답하시지 말았어야 합니다. 또한 성경에는 제사장이 아니더라도 번제를 드린 사람들이 많이 나옵니다.

 

단 지파에 속한 삼손의 아버지도 번제를 드렸고 기드온이 아세라 나무를 찍어 소를 잡아 번제로 드렸습니다. 이들은 모두 제사장이 아닙니다. 만약 제사장이 아닌 사울 왕이 번제를 드린 것이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지 않은 것이라면 이들 모두는 사울 왕과 같이 버림을 당해야 합당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히브리서 11장에 믿음의 선진들로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사울 왕이 버림을 당한 것은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명령은 생명을 구원해야 하는 일입니다 전쟁에서 생명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내가 번제를 드리거나 무엇을 해서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기억하시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울 왕은 이 명령을 지키지 않아 결국 버림을 받고 후에는 전쟁에서 죽게 되고 맙니다.

 

하나님이 나를 기억하셔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사단과의 싸움에서 이기셨습니다. 그 이김을 믿는 성도가 바로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는 성도입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이기신 것을 믿는 성도는 그의 나라가 반드시 임할 것을 믿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