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로마서 강해 -

로마서 강해 138강, 밤이 깊고 낮이 가까왔으니

윤주만목사 2018. 10. 11. 08:16


로마서13:12절을 보겠습니다. (257)

밤이 깊고 낮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처음 믿을 때입니다

우리도 처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불행하게도 복음을 듣지를 못했습니다. 아니 이 시대는 아예 복음을 듣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복음을 듣지를 못하면 그는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구원에 가까이 갈 수 없습니다.

 

초대교회입니다

그때는 그래도 사도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성령을 받아 진리로 인도함을 받고 있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아예 복음을 전하지를 않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신앙생활을 오래 한다고 해서 그가 처음 믿을 때보다 구원이 가까웠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복음을 듣지 못하면 아무리 시간이 많이 지나도 가까이 가지를 못 합니다

 

조건입니다

우리가 구원에 가까이 갈 수 있는 조건이 있습니다. 먼저 복음을 듣고 위에 있는 권세에 굴복을 해야 합니다. 이렇게 복음을 듣고 있는 성도들에게 사도 바울이 이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이지 복음을 듣지도 않은 사람에게는 해당이 안 되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교회에 나왔습니까?

수십 년을 신앙생활을 했습니까? 그렇다고 해서 여러분이 처음 믿을 때보다 구원이 가까이 왔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의 그 많은 사람들이 나면서부터 하나님을 믿었지만 그들은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에 참예를 함으로 해서 구원을 받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은 진짜 모태 신앙입니다 사실 이 모태 신앙이라는 말도 성경적으로 맞지 않습니다. 누가 모태에서부터 복음을 깨달을 수 있습니까? 그 어머니가 복음을 알고 어두움에 일에 참예를 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 아이에게 복음이 전해지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이스라엘은 조상 대대로 하나님을 믿었지만 구원에서 점점 더 멀어지기만 했습니다.

 

신앙생활의 년 수입니까?

그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구원에 가까이 가는 것이 아니라 점점 더 멀어지고 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사람들이 쉽게 매너리즘에 빠지고 있습니다. 복음을 들어도 율법에 쉽게 빠지는 것이 사람인데 복음을 듣지도 못한 사람은 아주 쉽게 율법의 포승에 묶이기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감각이 없습니다.

성경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이 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네게 비취시리라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자는 것이 어두움의 일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구원입니다

우리는 정말 가까이 가야 합니다. 어떻게 가까이 가야 하는가 하면 잠자는 상태에서 깨어 가까이 가야 합니다. 자는 것이 무엇인가 하면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에 참예를 하는 것입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영생은 율법과의 싸움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에서 벗어나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이제 우리가 처음 믿을 때보다 구원에 가까이 가고 있습니까? 이 시대 교인들에게 똑같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이 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 교인들은 점점 더 많은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가까이 가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육체의 행위로 가까이 가려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교회 안에서 더 많은 일을 하면 가까이 가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영의 일을 우리에게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구원에 가까이 가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처음 믿었습니다.

나면서부터 교회에 다녔다고 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어느 사람은 성인이 되어서 교회에 나갔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솔직히 이 시대 기독교라는 종교에서 율법을 지키지 않는 교회가 있습니까? 우리는 처음부터 복음을 듣지를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과 마찬가지로 기독교는 대대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말씀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 기독교인들에게 해당이 되는 말씀이 아닙니다. 그들은 성경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로마서1장의 복음도 모르고 있습니다. 교회에 나오면 처음 복음을 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아예 복음을 들을 기회조차 주어지지가 않고 있습니다.

 

그들이 성경을 압니까?

수십 년을 교회 안에서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아니 20세 때에 신학에 가서 공부를 하고 수십 년을 목사가 되어 살았습니다. 그런 그들이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로마서1장의 말씀을 보고 문자 그대로 보면서 동성연애를 하는 사람들을 정죄를 하고 있습니다. 제가 동성연애를 찬성한다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문자 그대로 보고 있습니다.

 

그것이 동성연애에 대한 말씀입니까?

그것조차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는 그들이 이 로마서를 보면 뭐 합니까? 로마서를 보고 영의 일을 깨닫습니까? 믿음을 깨닫고 율법은 진노를 받는다는 것을 깨닫고 있습니까? 이 시대는 처음 믿을 때가 있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다른복음에 깊이 빠져 들어가고 있습니다.

 

로마서1장을 배웁니다.

그것이 처음 믿을 때입니다 그러니까 사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서 들었습니다. 그것이 초대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처음 믿을 때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그 복음이 전해지지가 않고 있습니다. 아니 처음부터 다른 복음을 전하고 그것을 듣고 있습니다. 처음 믿을 때가 있는 것이 아님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믿음입니다.

이 시대 오직 믿음을 받아들입니까? 그래도 10여 년 전만 해도 구원은 믿음으로 받습니다. 하면 그래도 사람들이 반박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아주 자연스럽게 구원을 믿음만으로 받습니까? 라고 묻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가까이 가시기 바랍니다.

어떻게 가까이 가야 합니까? 위에 있는 권세에 굴복을 해야 가까이 갈 수 있습니다. 이제는 자다가 깰 때가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율법을 지키다가 이제는 빛으로 비추심을 입을 때가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가까이 가야 합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도리어 뒤로 물러가고 있습니다. 교회는 사도들이 죽으면서 급격하게 되로 물러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구원에 가까이 가야 하는데 급속하게 뒤로 물러가 율법주의로 점점 더 깊이 빠져 지금의 교회는 이스라엘 못지않게 율법을 지키고 있고 그 율법을 지키는 행위가 점점 더 많아지고 있습니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밤이 깊고, 낮이 가까이 왔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둠의 행실을 벗어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읍시다.”

 

밤이 깊었습니다.

이제 밤이 지나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초대교회에 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이 시대 기독교가 아닙니다. 기독교인들은 성경을 자기들의 편리한대로 잘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만 들어오면 그리고 자기들이 원하는 신앙생활만 하면 낮이 가까이 온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절대 아닙니다.

이 시대 기독교인들에게 낮이 가까왔다고 하는 말씀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러니까 초대교회에 사도들로부터 복음을 듣고 믿은 성도들에게 구원에 가까웠다고 말씀을 하면서 이제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같이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을 하고 있는 기독교인들에게는 해당이 안 되는 말씀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도입니다

우리에게 이제 밤은 깊었습니다. 그러니까 밤이 다 지나갔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낮에 있습니다. 어떤 낮에 있는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참 빛을 비춰주심으로 해서 복음을 믿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평생을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만 낮에 가까운 것이 아니라 점점 더 깊은 잠을 자고 있습니다.

 

영생입니다

이것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처음 믿을 때보다 구원에 가까이 가야 합니다. 어떻게 가까이 가는가 하면 성경에서 복음을 더 많이 깨달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종교가 되어 있는 기독교는 자기들의 교회 안에만 들어오면 성경을 전혀 모르는 사람도 구원을 받은 것으로 미혹을 하고 있습니다.

 

오직 믿음입니다.

이 시대는 이것조차도 부인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종교에 점점 더 세뇌가 되면서 믿음으로만은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율법을 잘 지키고 있는 자기들에게는 보상 심리가 있어서 오직 믿음을 싫어하고 있습니다.

 

이사야9:2절을 보겠습니다. (978)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하던 자에게 빛이 비취도다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이 왜 이방에 포로가 되었습니까? 성경을 보고도 그들이 왜 이방에 포로가 되었는가를 모른다면 그는 소경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목사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이스라엘이 왜 이방에 포로가 되었는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들은 종교에 의해서 철저하게 세뇌가 되었고 종교의 신학을 배우다보니까 그것을 알 수 없습니다.

 

죄를 지어서 입니까?

그것이 아니라 그들이 율법주의에 빠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이 시대 기독교인들보다 죄를 더 많이 지었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율법을 알았고 정말 성경의 문자 그대로 율법대로 살려고 노력을 했고 그것이 죄가 되어서 흑암이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은 흑암을 행했습니다. 그러니까 어두움에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정말 부족하지 않을 정도로 율법을 잘 지켰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성경을 문자 그대로 보면서 마치 이스라엘이 자기들보다 죄를 더 많이 지어서 하나님으로부터 징계를 받아 이방의 포로가 된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어떠했습니까?

그것을 이사야 선지자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흑암을 행하던 백성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율법을 지키던 백성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모세오경을 정말 외울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자기들의 목숨과 같이 생각을 하면서 철저하게 지키려고 했습니다.

 

왜 그렇게 했습니까?

성경을 이 세상 초등학문으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이성을 가지고 성경을 보면서 자기 조상 아브라함이 어떠한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는지를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처음부터 율법을 잘 지켰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이 시대 역시 성경을 문자적으로 보면서 이스라엘이 마치 자기들보다 율법을 잘 못 지킨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절대 아닙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이스라엘의 청년이 와서 영생에 대해서 묻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십계명을 말씀하시니까 그는 자기가 어려서부터 다 지켰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만 어려서부터 율법을 다 지켰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보통입니다

일반의 이스라엘 사람은 모두가 그렇게 율법을 지켰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성경을 보고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청년만 마치 그렇게 율법을 지킨 것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절대 다수의 이스라엘 사람은 정말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기 위해서 율법을 아주 잘 지켰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이사야 선지자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율법을 잘 지키던 백성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시대 기독교인들이 큰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이스라엘보다 하나님을 더 잘 믿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생각하는 믿음의 기준으로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

 

안 됩니다

이 시대 기독교인은 무엇으로 해도 그들에 비하면 게임이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이 믿음이라고 하는 것으로 비교를 해도 조족지혈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정도로 비교가 되지 않는 것을 가지고 성경의 문자를 보면서 자기들이 이스라엘보다 하나님을 더 잘 믿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흑암에 행합니다.

그러면 이스라엘은 정말 율법으로는 흠이 없을 정도로 살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이 오셨을 때 그 청년보다도 이스라엘은 율법을 잘 지키면서 살았습니다. 지금 기독교인들의 믿음이라고 하는 것을 가지고 이스라엘과 비교를 하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 기독교인입니까?

솔직히 이런 말씀을 드리면 그렇지만 그들은 정말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닙니다. 그것을 요한계시록에서 덥지도 않고 차지도 않다고 하면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이 시대 기독교인들에게 딱 맞는 말씀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실상은 믿지를 않고 있는 사람입니다 아니 믿음이 무엇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면 율법을 잘 지킵니까? 솔직히 말씀을 드려서 자기들이 정한 자기에게 이롭게 성경을 풀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율법을 잘 지키지도 않고 있습니다. 정말 요한계시록의 말씀과 같이 너를 토하여 내친다는 그 말씀 그대로입니다

이스라엘은 율법이라도 잘 지켰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율법을 잘 지키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 그들이 자기들이 흑암에 행하고 있다는 것조차 모르고 교회 안에서 막연하게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다.

 

이제 주님이 오셨습니다.

그리고 이사야의 말씀과 같이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하던 자에게 빛이 비취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세상에 참 빛을 비춰주셨습니다. 그렇게 하심으로 밤이 깊고 낮이 가까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낮입니다

이제는 낮입니다 이스라엘은 이 낮을 몰랐습니다. 하지만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참 빛을 비춰주시고 낮과 같이 우리가 살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밤이 깊고 낮이 가까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가 되고 그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해서 낮이 가까이 왔습니다.

 

밤이 지나갔습니다.

주님이 2000년 전에 오셨다 하늘에 올라 가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참 빛을 비춰주셨습니다. 성경은 이 빛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는 참 빛입니다 그 빛이 비춤으로 해서 우리에게 낮이 가까이 왔지만 기독교라는 종교가 탄생이 되면서부터 도리어 뒤로 물러가 이스라엘과 같이 율법을 지키다가 모두가 침륜에 빠지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이 이 세상에 오시지 않았다면 우리에게 낮은 없습니다. 우리는 흑암에 행하다가 모두가 사망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이방에 모든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이스라엘과 같이 흑암에 행하고 있습니다.

 

말로만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실제 그들의 행위를 보면 다 흑암에 있습니다. 밤이 깊고 이제는 낮이 가까이 와야 하는데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셨다가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 승천하신지 2000년이 되고 있지만 교회는 점점 더 이스라엘과 똑같은 모습으로 가고 있습니다. 이제는 주님이 오셨을 때와 마찬가지로 어느 누구도 율법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1:16절을 보겠습니다. (399)

그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취는 것 같더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요한복음에서는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어두움에 있습니다. 우리의 이성으로는 이 빛을 볼 수 없습니다. 아니 성경의 문자를 보고 주님이 빛이라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어떻게 빛인가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밤입니다

우리 인생의 이성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지혜가 있다 해도 이 밤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을 통해서 그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모든 구속을 이루시고 부활하셔서 천국으로 올라가신 그것을 믿는 성도들에게 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이 시대 기독교인입니까?

그들은 이스라엘과 같이 아직 흑암에 행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빛을 비춰주시고 있지만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점점 더 흑암에 깊이 들어가고 있습니다. 낮이 가까왔다고 하니까 자기들이 교회 안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으로 그 신앙의 연조를 따지면서 낮이 가까웠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절대 아닙니다.

그들에게 하고 있는 말씀이 아닙니다. 낮이 가까우려면 반드시 위에 있는 권세에 굴복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위에 있는 권세에 굴복을 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그 권세를 거스리는 행위를 교회 안에서 하고 있습니다.

 

권세에 굴복하시기 바랍니다.

위에 있는 권세에 굴복을 하시기 바랍니다. 다른 말씀으로 하면 복음에 복종을 하라는 말씀입니다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은 복음에 복종하는 사람이 아니라 복음에 거스리는 사람이라는 것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낮이 가까왔습니다.

어떻게 가까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해서 가까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 것에는 반드시 흑암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조건이 따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율법을 지키지 말아야 한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이성입니다

그것은 마치 흑암에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 이성에서 벗어나 성령의 감동을 받아야 밤이 지나가고 낮이 가까이 올 수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로마서를 13장까지 복음을 전하면서 이제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로마서13장까지 알기 전에는 우리는 모두가 밤이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밤이 깊어야 합니다.

이제 성도는 밤에서 지나가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베드로후서에서 또 우리에게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 비취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가하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낮이 가까왔습니다.

그러나 평생을 교회 안에서 설교를 듣는다고 하는 그들에게 낮은 좀처럼 가까이 오지를 않고 있습니다. 도리어 더 깊이 흑암에 들어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시대는 밤이 무엇이고 낮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그저 성경의 문자를 아는 것으로 자기들이 지혜가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입니다

그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형상을 환상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 환상도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라는 것을 이해하고 보아야 합니다. 그 얼굴에 해가 힘 있게 비취는 것 같더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해가 힘 있게 비취면 어떻게 됩니까?

 

낮입니다

우리 인생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입니다 해가 힘 있게 비취면 그것은 낮이 왔다는 말씀입니다 그와 같이 이 세상에 있는 해가 힘 있게 비취는 것과 같이 우리 영의 일에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는 낮이라는 것을 의미적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해를 찾을 수 있습니까?

그것이 아닙니다. 해가 힘 있게 비취어야지 우리가 그 해의 영향 아래 있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낮입니다 우리가 낮인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해가 떠야지 낮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만약에 해가 뜨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런 일은 없겠지만 그것은 낮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낮이 가까왔습니다.

우리에게 이미 낮이 왔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을 보고 성령의 감동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알고 있는 성도는 이미 낮이 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미 이 모든 일을 이루시고 이제 하늘에 계시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이미 낮이 왔습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복음을 듣고 있는 성도들에게 낮이 가까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구에게 하고 있는 말씀입니까?

이제까지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는 복음을 들은 사람들에게 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로마서를 보고도 복음을 전혀 못 보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고 그 문자를 아는 것으로 아니 교회에 나와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으로 낮이 가까왔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복음을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위에 있는 권세에 굴복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복음을 듣고 있는 사람도 없고 위에 있는 권세에 굴복을 하고 있는 사람도 없습니다. 사도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들은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하고 있는 말씀이지 성경을 보고 그 문자를 알고 있는 이 시대 교인들에게 하고 있는 말씀이 아닙니다.

 

힘 있게 비취고 있습니다.

왜 힘 있게 비취고 있는가 하면 우리는 모두가 밤에 있습니다. 밤에 있는 우리 인생들을 구원하시려면 주님께서 힘 있기 비춰주셔야 합니다. 우리가 보고 있는 성경을 통해서 힘 있기 비춰주시고 있지만 영의 눈이 감겨져 있어 이 빛을 못 보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2:9절을 보겠습니다. (379)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로마서2:19절을 보겠습니다. (241)

네가 율법에 있는 지식과 진리의 규모를 가진 자로서 소경의 길을 인도하는 자요 어두움에 있는 자의 빛이요

 

어두움의 일입니다

이 시대는 어두움의 일이 무엇인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이 다 비유로 되어 있다 보니까 문자적으로 율법이 어두움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 않으니까 율법을 지키면서도 그것이 어두움의 일이라는 것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왜 우리를 택하셨습니까?

우리는 성도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자가 아니라 복음을 위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가 얼마나 귀한 사람인가를 사도 베드로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택하신 족속이 있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종교에 빠져 있습니다.

 

성도입니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성경을 모두가 문자적으로는 알고 있지만 자기가 어두움에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어두운데서 불러냈습니다.

그것을 어디로 생각하고 있습니까? 이 세상에서 자기들을 불러서 이제 교회 안에 들어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생활을 하는 것으로 마치 이 말씀이 자기들에게 해당이 되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상이 다 불교적인 생각인데도 그런 사상을 바탕에 깔고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교회입니다

우리가 다니고 있는 교회입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교회는 구원의 방주가 아닙니다. 우리가 보고 있는 이 세상의 교회는 쉽게 말씀을 드리면 이스라엘이 다 죽은 광야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애굽이라는 세상에서 나와서 교회에 들어왔습니다. 그것이 광야입니다 그 광야에서 우리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에 들어가야 합니다.

 

교회입니다

그곳은 광야지 가나안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광야에 60만 명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몇이나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에 들어갔는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세상에서 보고 있는 교회의 실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이 왜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 했습니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반포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들이 다 지킨다고 했다가 광야에서 모두가 죽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율법의 행위를 했기 때문에 광야에서 죽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교회의 실상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보고 있는 교회가 어떠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이라는 교회가 어떠하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의지하며 하나님을 자랑했습니다. 그러니까 율법을 지키면서 자기들이 하나님을 믿는 백성이라고 세상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유대인입니다

그들은 율법을 아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 그대로의 율법을 지키는 일에 열심을 냈습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네가 율법에 있는 지식과 진리의 규모를 가진 자로서 소경의 길을 인도하는 자요 어두움에 있는 자의 빛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두움의 빛입니다

율법도 빛이 나고 있습니다. 아니 사람의 이성에는 사람이 지키는 그 율법의 행위가 빛이 나고 있습니다. 그 빛을 보고 사람들은 마치 그 빛이 참 빛인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그것을 어두움에 있는 자의 빛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문자 그대로의 율법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을 네가 율법에 있는 지식과 진리의 규모를 가지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율법이 소경의 길을 인도하는 것이고 어두움에 있는 자의 빛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율법을 너무 모릅니다.

주님이 자기 땅에 자기 백성에게 오셨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모두가 어두움에 있었습니다. 그런 유대인들에게 주님께서는 빛으로 오셔서 빛을 비추어 주셨지만 율법을 지키는 유대인들은 어두움에 있어서 깨닫지를 못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은 어두움입니다.

왜 율법이 어두움인가 하면 그 율법의 행위로는 우리가 의롭다 하심을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는 것은 빛입니다 그러나 생명을 주지 못하는 모든 것은 다 어두움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성경을 보면서도 무엇이 어두움인 줄을 모르고 있고 도리어 율법을 지키는 일에 열심을 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점점 더 심해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구원이 없다고 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래도 예전에는 이 문제에 대해서 논쟁이라도 했는데 이 시대는 모두가 흑암 중에 있어서 아니 율법에 있는 지식과 진리의 규모를 가지고 있어서 모두가 소경이 되어 있습니다.

 

율법 어두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빛입니다 성경을 보면서도 이것을 모르고 있다면 그는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아니 그가 아무리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해도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유대인과 무엇이 다릅니까?

주님 앞에 찾아온 청년이 내가 영생을 얻으려면 무슨 일을 해야 하느냐고 했습니다. 그 청년에게 주님께서 십계명에 있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자 그 청년이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켰다고 하면서 아직도 무엇이 부족 하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그 청년입니다

그가 하나님을 안 믿었습니까? 그도 유대인으로서 하나님을 믿으면서 살았습니다. 그런 그가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자기가 율법을 다 지켰다고 하면서 아직도 무엇이 부족 하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그는 소경의 길을 인도하는 자이며 어두움에 있는 자의 빛을 보고 있습니다. 주님 앞에 와 있으면서도 참 빛을 전혀 못 보고 있습니다.

 

그만 십계명을 지킵니까?

이 시대 십계명을 안 지키는 교회가 있습니까? 제가 그 의미를 지키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문자 그대로가 아니라 성령의 감동을 받아 그 의미를 알고 지켜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 역시 이 청년과 같이 문자 그대로의 율법을 지키면서 어두움에서 나오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모든 교회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교회입니다 이스라엘이 먼저 율법주의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613가지 전체 율법을 지키고자 율법주의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이방의 교회입니다 누룩 한 덩이가 온 덩이를 부풀게 해서 역시 율법을 지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어두움의 일입니다

이제 그것을 우리는 반드시 벗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어두움의 일을 벗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로마서를 보고 있는 사람들이 어두움의 일을 벗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어두움의 일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한 일은 어두움의 일이고 자기들이 한 일은 믿음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싸움입니다.

우리는 이 어두움의 일을 벗는 싸움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구원을 받으려면 반드시 이 싸움에서 이겨야 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기독교라는 종교는 이 어두움의 일과 싸우지를 않고 있습니다. 아니 자기들이 정한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마치 이단이 되는 것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누룩 한 덩이입니다

그것은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율법 한 가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누룩 한 덩이가 온 덩이를 퍼지게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누룩 한 덩이도 율법이고 온 덩이도 율법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한 덩이라도 있는 사람은 모두가 어두움에 있는 사람입니다

 

누가 율법을 안 지킵니까?

안식일 교회가 율법주의입니까? 그들만 누룩이 한 덩이가 있습니까? 정말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누룩 100덩이를 가지고 온 덩이를 부풀게 하고 있습니다. 그럼 정통이라는 교단은 어떻습니까? 그들은 누룩 50덩이를 가지고 온 덩이를 부풀게 하고 있습니다. 어차피 누룩이 있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성도입니다

우리는 누룩이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50덩이가 있는 것이 누룩이 없는 것입니까? 우리는 누룩이 없는 자입니다 누룩이 적은 자가 아니라 누룩이 없는 자라고 분명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누룩이 50덩이가 있는 것을 가지고 자기들은 마치 누룩이 없는 것으로 생각하고 율법을 지키지 않는 것으로 말을 하고 있습니다.

절대 못 벗어납니다.

사람의 이성으로는 이것에서 절대로 벗어나지를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자기가 누룩이 있는 자인가 없는 자인가 그것조차도 분별이 안 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왜 그런가 하면 주님께서 그들을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주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지혜입니까?

율법을 지키면서도 그것이 어두움의 일이라는 것을 절대로 깨달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그가 지혜가 있다 해도 아니 신학 박사라 해도 이 율법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이제까지 모든 신학자라고 하는 사람들이 어두움에서 나오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주님께서 우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셔야 합니다. 사실 주님께서 우리 안에서 역사를 하지 않으면 우리는 절대로 어두운데서 빠져 나올 수 없습니다. 반드시 주님께서 우리를 불어내어 주셔야 나올 수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그 한 가지만 보아도 그는 택하신 백성이 아닙니다. 어두운 데서 불어냈다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 이 시대는 율법을 지키면서도 자기들이 성도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누룩이 적다고 해서 어두운 데서 불려 나왔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더러움입니다.

깨끗한 백지 위에 점이 하나 있어도 더럽습니다. 점이 여러 개 있어도 더럽습니다. 깨끗한 백지를 원하는 사람입장에서는 마찬가지입니다 점이 하나 있다고 해서 그것을 받을 수 없습니다. 율법이라는 것이 그렇다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성경의 정의는 율법으로는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고린도후서6:14절을 보겠습니다. (292)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마태복음23:28절을 보겠습니다. (40)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교회 안에 있는 일입니다

고린도후서는 교회 안에 있는 일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지 교회와 세상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거의 모든 사람들이 어떻게 성경을 보고 있습니까?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는 그 말씀을 교회 안에 들어온 사람은 믿는 사람이고 세상에 있는 사람은 믿지 않는 사람으로 보고 있습니다.

 

소경입니다

아무리 성경을 보아도 그 말씀이 무슨 말씀인가를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고 하니까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믿는 사람들과 일을 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회사를 차리면 그 회사에 직원들까지 기독교인으로 채용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믿는 자입니다

그리고 믿지 않는 자입니다 의가 있습니다. 그리고 불법이 있습니다. 빛이 있습니다. 그리고 어두움이 있습니다. 다 무엇을 가지고 비교를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와 율법을 비교를 해서 이 두 가지 중에 하나가 있으면 하나는 없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교회 안에는 믿지 않는 자가 많이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미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고 있던 그때에도 교회 안에는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믿지 않았는가 하면 의를 믿지 않고 자기들이 행위로 불법을 행했기 때문입니다

 

누가 불법을 행하고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에게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율법을 지켰습니다. 그것을 주님께서는 불법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태복음7장에서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다 내게서 떠나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두움의 일입니다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는 율법을 절대로 지키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교회 안에서 모두가 율법을 지키고 있고 그런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절대 아닙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율법을 지키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이렇게까지 말씀을 드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성도님들이 이해를 하셔야 합니다.

 

싸움입니다.

아니 전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영의 생명에 관한 일입니다 이보다 더 큰 전쟁이 어디 있습니까? 아무리 강조를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이 싸움에서 지면 사망이 오는데 이 일을 가볍게 넘길 수 있습니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이미 믿음에 대해서 저버린 자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좋은 것이 좋습니까?

그것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도 분명히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두움의 일을 벗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빛의 갑옷을 입을 수 없기 때문에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성경을 너무 쉽게 보고 있습니다.

 

불법을 행하고 있습니다.

바리새인은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613가지 율법을 다 지키고 있습니까? 그리고 이 시대 기독교인은 그 중에 50가지 정도를 지키고 있습니까? 바리새인이 불법을 행했다면 이 시대 역시 불법을 행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바리새인도 빛이 어두움을 비추매 어두움이 깨닫지를 못 했습니다 이 시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주님은 이제 하늘에 올라가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그 빛을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성경에서 그 빛을 보는 것이 아니라 어두움에 일을 하고 있습니다.

 

어두움의 일입니다

그 중에 어느 한 가지라도 하고 있다면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왜 구원을 못 받는가 하면 빛과 어두움은 사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어두움의 일을 벗으시기 바랍니다.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을 불법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일을 불법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반드시 이 불법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이 어두움의 일을 벗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불법이 무엇이라는 것을 모르고 율법을 지키는 일에 열심을 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12:46절을 보겠습니다. (169)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 무릇 나를 믿는 자로 어두움에 거하지 않게 하려 함이로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빛입니다 우리가 볼 수 있는 그런 빛이 아니라 우리 영생의 일에 있어서 빛이라는 말씀입니다 사람들은 이런 말씀을 보면 이 빛을 자기들의 눈으로 확인을 하려하고 있습니다. 아니 자기들이 하는 신앙생활의 행위를 보면서 어두움에 거하지 않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누구에게 하고 있는 말씀입니까?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율법을 지키고 있는 이스라엘에게 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 시대 우리가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마찬가지로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에게 똑같이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나는 세상의 빛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의 빛입니다 무엇에 대해서 그렇다는 말씀입니까? 그것을 12장 마지막 절에서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줄 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생에 있어서 주님은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 무릇 나를 믿는 자로 어두움에 거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나를 믿는 자로 어두움에 거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는 어두움에 거하지 않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율법을 지키고 있는 이스라엘에게 하신 말씀이지만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도 똑같이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그 사람은 반드시 어두움에 거하지 않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지 않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분명하게 말씀을 하고 있는데도 율법을 지키고 있으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은 성경을 보고 있지만 그들의 눈은 소경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어두움을 모릅니까?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빛이 어두움을 비추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이 시대 성경을 통해서 빛을 비추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고 있는 이방인들이 어두움이 되어서 빛을 보고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깨닫지를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어두움에 거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나를 믿는 자로 어두움에 거하지 않게 하셔서 그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영생을 얻게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어두움의 일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문자입니까?

그것을 안다고 해서 지혜가 있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의 문자를 몰라서 이 시대 기독교인들이 어두움에 거하고 있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그 의미를 모르니까 자기들이 어두움에 있는지 빛에 있는지를 모르고 교회 안에서 어두움의 일을 하는데 깊이 빠져 있습니다.

 

영생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영생입니다 우리 인생들을 위해서 왜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 주셨습니까? 그것은 우리 인생은 모두가 율법의 저주를 받아 죽었기 때문입니다 그 죽은 자를 하나님의 영으로 살리셔서 천국으로 인도를 하시기 위해서 주님을 보내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그들이 어두움의 일에 깊이 빠져서 나오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어두움입니다.

이 세상도 물론 어두움에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하고 있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유대인들이 다 어두움에 있는 것을 보시고 나를 믿는 자는 어두움에 거하지 않게 하려고 오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이 시대를 보면 모두가 어두움에 있습니다. 어두움에 깊이 빠져 있으면서도 자기들이 어떻게 어두움에 있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어두움에 있는 그들이 세상 사람들을 보면서 그들은 어두움에 있고 자기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율법을 지키는 사람들에게 하고 있는 말씀이지만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생명에 대해서 입니다.

어두움에 거하지 않게 하시는 것은 생명에 대해서 그렇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는 반드시 어두움의 일을 벗어야 합니다. 어디서 그렇게 해야 하는가 하면 교회 안에서 그렇게 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보고도 누가 어두움에 있는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주님이 오셨습니다.

이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반드시 어두움에 있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이 오신 것은 나를 믿는 자로 어두움에 거하지 않게 하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라고 하면 반드시 어두움에 있어서는 안 됩니다

어두움의 일을 벗으시기 바랍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교회 안에서 율법의 행위를 버리시기 바랍니다. 성경에서 이 어두움에 대해서 많은 말씀을 하고 있는데 그 의미를 모르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성경을 너무 유아적으로 보고 있어서 그 안에서 진리를 도무지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5:11절을 보겠습니다. (315)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에베소 교회입니다

이미 초대 교회 안에는 율법주의가 들어왔습니다. 사도들이 있는 그때에 벌써 율법주의가 들어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율법주의를 사도들이 싸워서 육적으로 이길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이 복음을 알면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진리가 이깁니까?

절대로 아닙니다. 그것을 이미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서 보여주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누구입니까? 그가 복음을 전한 그 교회 안에 율법주의자가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진리로서 그들을 굴복시켰는가 하면 그렇지를 못해서 결국에는 예루살렘에 가서 다른 사도들을 만나서 이 문제를 의논을 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율법주의입니다

그들과 싸워서 우리가 이길 수 있습니까? 며칠 전에도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리스도편지를 통해서 복음을 보고 있습니다. 그분 역시 그 복음을 전하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진리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핍박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도가 진리를 알고 있다고 해서 율법주의자들과 싸워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어두움의 일입니다

그것을 에베소서를 통해서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두움의 일은 율법을 지키는 일입니다 그 일을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떤 열매가 없는가 하면 영생에 대한 열매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입니다

무엇이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입니까? 그것을 에베소서55절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는 하나님 나라를 기업으로 받지 못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영생을 얻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누가 이 일을 하고 있습니까?

이미 에베소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이 일을 했다는 말씀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에게 하는 말씀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음행을 하고 더럽고 탐을 내고 우상을 숭배를 하는 자가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만약에 교회 안에 이런 사람이 없다면 사도 바울은 성경을 정말 이상하게 기록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교회 안에서 아주 극소수의 사람이 이 일을 하고 있다면 사도 바울은 쓸모없는 성경을 기록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성경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왜 하나님 나라를 기업으로 받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기록했는가 하면 교회 안에 있는 절대 다수의 사람들이 음행을 하고 더럽고 탐을 내고 우상을 숭배하기 때문에 이 말씀을 기록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실제 이 시대 모두가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 이 일을 하지 않는 교회가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도 어떻습니까?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를 기업으로 얻지 못한다는 말씀을 보고도 전혀 감각이 없습니다. 아니 자기들은 음행을 하지 않고 더럽지도 않고 탐을 내지도 않고 더구나 우상 숭배를 하지 않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모두 다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얻지 못한다는 그 일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을 하고 있으면서도 성경을 보는 눈이 소경이 되어서 자기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이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이 모두가 율법을 지키는 일을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전혀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입니다

천국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천국을 기업으로 얻지 못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어두움의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은 천국을 기업으로 얻지 못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책망을 하지도 않고 있고 도리어 더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벗으시기 바랍니다.

어두움의 일을 벗지 않으면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강하게 말씀을 하고 있는데도 눈이 소경이 되어서 어두움의 일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자기만 모르는 것으로 끝이 나는 것이 아니라 이 어두움의 일을 하게 하려고 많은 사람들을 종교 안으로 끌어 들이고 있습니다. 그 일에 얼마나 열심을 내고 있습니까?

 

영생의 열매입니다

율법을 지키는 사람에게는 이 열매가 없습니다. 어떻게 해야 이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까? 성경에서 성령의 감동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야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신 구속의 일을 알아야 우리 안에 영생의 열매가 맺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영생입니다

그것은 아는 것입니다 알지 못하면 절대로 영생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초등학생과 같이 성경의 문자를 많이 아는 것으로 자기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사실 성경의 문자를 많이 아는 것 역시도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어두움의 일에 참예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에서 참예하지 말라고 하면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니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에 절대 다수의 사람이 참예를 하고 있기 때문에 사도 바울을 통해서 이 말씀을 기록하게 하셨다는 것을 알고 이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이 무엇인가를 알기 위해서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교회 안에만 들어오면 아니 그 안에서 하는 행위를 보면서 자기들은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에 참예를 하지 않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실상은 교회 안에 있는 절대 다수의 사람들에게 이 말씀을 하고 있지만 세상 사람들을 보면서 그들이 자기들의 종교 안에 들어오지 않은 것을 가지고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을 하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달란트의 비유입니다

누가 열매를 맺고 누가 바깥 어두운 곳에 쫓겨났습니까? 생명의 달란트를 남긴 사람은 열매를 맺었습니다. 그러나 생명의 달란트를 남기지 못한 사람은 영생에 대한 열매가 없어서 주님께서 바깥 어두운 곳에 쫓아내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은 영생입니다

우리에게 있어 이 영생보다 더 소중한 일이 어디 있습니까? 아무리 강조를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아니 모든 성경이 이 영생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단은 교회 안에만 들어오면 마치 이 영생을 얻는 것으로 사람들을 미혹하고 있고 거의 모든 사람들이 열매 없는 어두움에 일에 참예를 하고 있습니다.

 

육체의 일입니다

내가 교회 안에서 하고 있는 모든 육체의 일입니다 그 일이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입니다 여러분이 진심으로 하고 있다는 모든 일들이 아니 성경에 문자를 보고 하나님의 성도로서 당연히 해야 한다고 하는 그 모든 일이 어두움의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일에 한 가지라도 참예를 하는 사람은 반드시 사망에 이르게 되어 있습니다.

 

어두움의 일이 아닌 것이 무엇입니까?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하신 일만 어두움의 일이 아닙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한 모든 일들이 다 빛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복음을 들은 성도들에게 사도 바울이 그러므로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어두움의 일에서 벗어나 빛의 갑옷을 입어야 합니다.

 

요한복음8:12절을 보겠습니다. (158)

예수께서 또 일러 가라사대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어두움입니다.

성경을 보고도 이 어두움의 일이 무엇인가를 모른다면 그는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분명히 어두움의 일에 참예를 하는 사람은 그러니까 어두움의 일을 하는 사람은 하나님 나라를 기업으로 얻지 못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생의 문제입니다

그냥 쉽게 넘어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분명히 영생의 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성경을 그저 문자로 보고 막연하게 자기들은 어두움의 일에 참예를 하지 않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실상은 이 시대 기독교인들 전부가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을 하고 있지만 다수의 환상 속에서 자기가 옳은 것으로 착각에 빠져 있습니다.

 

성도의 삶입니까?

그렇다면 사도 바울이 이렇게 까지 말씀을 하지 않았습니다. 만약에 어두움의 일을 벗는 것이 성도의 삶에 대한 문제라면 사도 바울은 성경에 기록도 하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성도의 삶으로 생각하면서 너무도 가볍게 지나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제목이 어떻습니까?

마치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주님이 오실 때가 가까이 왔으니까 이제 성도로서 바르게 살자고 하는 것과 같이 제목을 정해 놓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실제 이 말씀을 보고 그 위대한 신학자라고 하는 사람들 역시 그렇게 해석을 해서 가르쳤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생명의 문제입니다

그것은 어떻게 사느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아니 생명의 문제를 어떻게 사느냐로 받아들이고 있다면 그는 너무도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죽고 사는 문제를 그저 자기가 어떻게 사는가 하는 문제로 받아들이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성경을 바로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그 성경이 나를 사망으로 끌고 가고 있습니다. 나만 그렇게 사망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통해서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을 사망으로 끌고 갈 수 있다는 것을 늘 명심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 일을 너무 쉽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 로마서13장에 와서는 이제 구원의 문제가 끝이 난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주님께서는 나는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빛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 인생은 어느 누구도 스스로도 생명을 얻을 수 없고 또 다른 사람에게 생명을 줄 수도 없습니다. 이 생명에 대해서 전할 수는 있어도 그 이상은 할 수 없습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라

주님 이외는 어느 누구도 세상의 빛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빛이 될 수 있습니까?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마태복음에서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다고 해서 우리가 빛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빛의 갑옷을 입었을 때를 주님께서 그렇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빛의 갑옷도 안 입은 사람은 세상에 빛이 될 수 없습니다.

 

주님은 세상의 빛입니다

생명을 주는데 있어 세상의 빛이라는 말씀입니다 그저 세상에 오셔서 선한 일을 하신 것이 아니라 생명에 대해서 빛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교회 안에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그저 이 세상에 성인의 한 사람으로 보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영생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영생을 주는데 있어서 빛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빛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저 성경에 문자로 기록이 되어 있는 말씀을 아는 것으로 자기들이 영생을 얻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말씀이 아니라 생명에 있어서 빛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주님을 따르시기 바랍니다.

교회 안에는 두 사람이 있습니다. 물론 이 시대는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로 알아야 합니다. 교회 안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이 있고 율법을 따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단 한 가지라도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것을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까?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쉽게 말씀을 드리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율법을 지키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 그대로의 율법을 지키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입니다

613가지만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의 문자에서 파생이 된 율법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성찬식이 대표적인 것입니다 그리고 세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와 같이 성경의 문자를 가지고 율법을 만들고 있습니다. 성도는 진리를 알아 그런 어두움에 다니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오직 예수입니다

말로만 오직 예수라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어두움에 다니고 있으면서 오직 예수라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 말이 안 되는 이야기를 하면서도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아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빛의 갑옷을 입으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생명을 얻으라는 말씀입니다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게 옷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빛의 갑옷을 입자고 하니까 자기들의 행위를 통해서 빛을 내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아니라 생명에 대해서 입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내 안에 거하시는 것을 입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시편56:13절을 보겠습니다. (842)

주께서 내 생명을 사망에서 건지셨음이라 주께서 나로 하나님 앞, 생명의 빛에 다니게 하시려고 실족지 않게 하지 아니하셨나이까

 

마태복음5:14절을 보겠습니다. (6)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빛의 갑옷을 입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망에서 건져 주시고 생명의 빛에 다니게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모두가 사망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 생명을 사망에서 건져 주셨습니다. 그것을 주님께서 마태복음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우리 성도는 세상의 빛입니다 이 말씀을 너무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이 세상의 이성으로 선한 일을 하는 것을 보면서 세상의 빛이라고 하신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어떻게 말을 합니까? 세상에서 빛이 되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빛이 됩니까?

우리가 어떻게 빛이 됩니까? 그리고 언제 우리에게 빛이 되라고 말씀을 하셨습니까?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선언을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우리 성도들에게 세상에 빛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세상에 빛으로 살아가야 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너무 편하게 보고 있습니다.

 

빛입니다

우리는 이미 세상에 빛입니다 내가 무엇을 해서 빛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를 주님께서 너희는 세상에 빛이라고 선언을 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사람의 이성으로 빛으로 살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는 이미 세상에 빛이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빛이 되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는 이제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음으로 해서 빛이 되었습니다. 빛의 갑옷을 입자고 하니까 마태복음의 말씀과 같이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 세상에서 빛으로 살아가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어떻게 빛이 되었습니까? 사망에서 생명으로 건져 주심으로 해서 우리는 빛이 되었습니다. 이 생명이 있는 성도를 주님께서 너희는 세상에 빛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체의 일이 아니라 영의 일에 있어서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거의 모든 사람이 육체의 일로 만들고 있습니다.

 

빛의 갑옷을 입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를 통해서 어떤 선한 일을 나타내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그것이 아니라 생명을 얻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생명의 빛에 거하고 있습니다. 생명의 빛이 우리에게 임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생명의 빛입니다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는데 그 옷을 입자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빛의 갑옷을 어떻게 입어야 하는 줄을 모르고 육체의 일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없다면 그 어떤 일을 한다 해도 우리는 빛의 갑옷을 입을 수 없습니다.

 

성도는 세상의 빛입니다

어떻게 세상의 빛인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망에서 건져 주셔서 생명의 빛에 거하게 하심으로 해서 생명의 빛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생명이 있는 성도를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것을 사도 바울이 빛의 갑옷을 입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5:8-9절을 보겠습니다. (315)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빛의 갑옷을 입으시기 바랍니다.

어떻게 입어야 하는가 하면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 모두는 어두움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는 주 안에서 빛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빛의 자녀가 있습니다.

그리고 어두움의 자녀가 있습니다. 교회 안에는 이 두 사람이 늘 존재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빛의 자녀보다는 어두움의 자녀가 더 많이 있다는 것을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는 빛의 자녀들처럼 행해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빛의 열매입니다

빛의 자녀에게는 이 열매가 있습니다. 이 열매는 내가 맺는 열매가 아니라 주님이 이미 맺어 주신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임으로 해서 우리에게 생명이 빛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런 말씀을 거의 문자적으로 보고 자기들의 행위를 보면서 착하고 의롭고 진실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진실입니다

자기들이 얼마나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가를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인들처럼 진심을 잘 말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왜 진심을 이야기를 하고 있는가 하면 믿음의 비밀을 모르기 때문에 그것을 이야기를 하려고 하니까 자꾸 진심이라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빛의 열매는 우리 진심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빛의 열매를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맺을 수 있는 열매가 아니라 주님께서 맺어 주신 열매입니다 사람들은 성경에서 열매라는 말씀이 나오면 자기들이 그것을 맺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되는데 굳이 자기들의 모양을 나타내려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왜 전에는 어두움이었습니까?

세상에 살아서 어두움이었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율법을 지켰기 때문에 어두움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어 생명을 얻었습니다. 이 생명이 있는 성도를 사도 바울도 역시 빛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빛의 갑옷을 입으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우리에게 생명이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믿는 사람들에게 너희는 세상에 빛이라고 말씀을 하셨고 사도 바울이 율법을 버린 성도를 빛의 갑옷을 입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