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요한복음 강해

8강, 요1:16, 구원입니다

윤주만목사 2019. 5. 26. 21:23


8, 요한복음 1:16절을 보겠습니다. (142)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생명입니다

이 생명에 대해서는 아무리 강조를 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믿고 있는 사람입니다 제가 이 세상에서 복음을 전하고 저로 인하여 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는 사람이 수만 명이 된다 해도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저에게 있는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물론 그럴 일은 없습니다.

제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에 대해서 전하고 그것을 듣고 믿음으로 해서 생명을 얻은 사람들이 있는데 제가 생명을 얻지 못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그럴지라도 저는 이 생명에 대해서 계속해서 성경에서 확증하고 또 확증을 하면서 살아가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구원입니다

이 구원에 대해서 말을 한다고 심지어는 구파가 아니냐고 묻고 있습니다. 파에 가서 설교를 한번이라도 들어 본 사람들이 그렇게 이야기를 하면 그래도 이해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구파에 대해서 그저 막연하게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은 것으로 제가 구원에 대해서 강조를 하고 또 강조를 한다고 해서 마치 구파인 것과 같이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세상입니다

아니 교회입니다 그 안에서 여러분이 구원을 받았다고 서로 인정을 하고 성도라고 불러주면 뭐 합니까? 성경에서 말씀을 하는 생명에 대해서 모르고 있다면 그는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자가 되고 주님이 오실 때 바깥 어두운 곳에 쫓겨나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입니다

요한복음을 무엇으로 시작을 하고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생명이 사람들의 빛이라고 말씀을 하면서 빛이 어두움에 비취매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어두움입니다. 그 어두움은 스스로가 아무리 성경을 본다고 해도 이 생명에 대해서 깨달을 수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의 안에 생명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가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이 주님을 보고 이렇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엇에 대해서 은혜입니까?

우리가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을 얻는데 있어서 은혜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은혜가 충만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인생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모두가 은혜를 받을 수 있고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이 은혜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은혜라는 단어는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이 은혜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우리 인생들에게 주시는 은혜가 무엇인가를 아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은혜를 받았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에게 은혜를 주셨습니까? 그럼 내 안에 반드시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이 있어야 합니다. 이 생명이 없다면 여러분은 은혜를 받은 자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이 생명은 어떤 생명인가 하면 거듭난 영이라고 말씀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 생명이 어느 생명인가도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영입니다

그 영이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적인 표현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생명을 어떻게 얻을 수 있는가 하면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해서 생명을 얻을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육신의 생명입니다

그 생명은 죽으면 썩어 버리고 맙니다. 그러나 이 생명은 썩지 않는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죽지도 않고 썩지도 않는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구원을 받았다고 말은 하면서도 이 생명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이 생명을 얻습니다.

그것을 하나님께로서 난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로서 난 자가 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은혜가 충만해서 우리 인생 모두가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아니 율법을 바로 알면 충분히 깨달을 수 있는 말씀이지만 사람들은 율법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입니다

그 은혜로 우리가 생명을 얻고 있습니다. 그 외에는 어떤 방법으로도 우리는 생명을 얻을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구속의 일을 이루심으로 해서 그리고 그것을 빛으로 비취심으로 해서 우리가 구원을 받고 그것이 은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은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아니고는 우리는 어떻게 해도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은혜를 받기를 사모하기 보다는 자기들이 하나님을 믿는 열심으로 행위를 잘해서 구원을 받으려고 하다가 모두가 사망의 길로 가고 있습니다.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모든 진리가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진리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생명을 얻는데 있어서 진리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이 생명에 있어서 진리라는 것을 말씀을 하면서 충만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성경을 보고 있지만 이 진리에 대해서 거의 무지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진리로 인도함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아니 진리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는 그러니까 우리가 생명을 얻는데 있어서 진리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진리를 어디서 알아야 하는가 하면 성경에서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사도 베드로의 말씀과 같이 대다수의 사람들이 성경을 억지로 풀어서 사망의 길로 가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모든 선지자들은 그리고 성경은 그에 대해서 증거를 하고 있습니다. 세례 요한 역시도 주님 앞에 와서 그에 대해서 증거를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누군가 하면 자기보다 앞섰다고 하면서 그가 하나님이라는 것을 증거를 하고 있습니다.

 

증거를 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거를 해야 하고 그는 하나님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인데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다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삼일 만에 영으로 부활하심으로 해서 우리 역시 그의 영이 거하시게 되었고 그 영이 주님이 오시는 날에 신령한 몸을 입고 부활을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우리는 모두 그의 충만함에서 선물을 받되, 은혜에 은혜를 더하여 받았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가 왜 세상에 오셨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저 이 세상에 오셔서 자기를 나타내시기 위해서 오셨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사도 요한은 처음부터 그가 창조주 하나님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그가 오신 것은 우리에게 영의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오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목적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왜 믿어야 하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저 세상의 종교가 있고 세상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고 있고 내 이성에도 그것을 받아들이기가 쉽고 해서 종교 하나를 가지고 신앙생활을 해 보겠다 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면 그는 무익한 일을 하게 됩니다.

 

생명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단 한 가지는 생명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이 영의 생명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믿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오직 이 생명만을 생각하면서 어떻게 생명을 얻을 수 있을까를 생각해야 합니다.

 

사도 요한은 그것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하나님께로부터 난 생명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생명이 우리에게 보여진 것이 영광이라고 하면서 그것을 독생자의 영광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생명을 받고 있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받고 있는가 하면 그의 충만한 데서 받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우리에게 주는 생명이 가득차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에게는 영의 생명이 충만하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데서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골로새서 2:10-11절을 보겠습니다. (326)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 그는 모든 정사와 권세의 머리시라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적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충만

가득히 차다는 뜻으로 사전에서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까지 사도 요한이 무엇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영의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그 영의 생명에 대해서 주님께서 이 세상에 참 빛으로 오셔서 우리에게 비취시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생명입니다

우리는 아담으로부터 난 생명이 있습니다. 그 생명은 마치 사라지는 안개와 같이 잠시 보이다가 흙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렇게 잠시 보이다가 사라는 것을 실상이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사도 요한은 그런 생명이 아니라 영원히 있는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이 생명이 있는 자를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생명이 있어야 합니다.

이 생명이 없다면 그는 성도라고 할 수 없고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생명에 대해서는 사도 요한도 사람의 이성으로 더 이상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생명이라고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역시 그렇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알 수 없습니다.

저 역시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이 생명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인생의 언어로 설명을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에서 사도 요한이 영으로 부활을 하신 주님을 보고 같더라. 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환상으로 보았지만 사람의 언어로 설명이 안 되니까 같더라. 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이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생명이 있어서 우리가 주님이 오실 때 부활의 영광에 참예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생명을 사람의 이성으로 깨달아서 믿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감동으로 비유의 말씀을 성경에서 보고 듣고 함으로 해서 이 생명이 우리 안에서 있다는 것을 믿을 수 있게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입니다

이 생명이 있는 자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생명에 대해서 저 역시도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 없고 그리고 성도님들에게 제가 어떻게 느낀다고 이야기를 할 수 없습니다. 저 역시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오직 믿음으로만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입니다

이 생명을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받았는가 하면 충만한데서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데서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쉽게 말씀을 드리면 그는 생명 그 자체이고 그에게는 생명이 있음으로 해서 우리가 생명을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의 안에서는 생명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 생명을 우리 인생들에게 주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셔서 구속의 일을 이루셨습니다. 그것을 참 빛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시는 모든 일이 참 빛이라는 말씀이며 그럼으로 해서 우리가 생명을 받았는데 충만한데서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부족함이 없습니다.

생명에 대해서 가득차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경은 그에 대해서 기록한 말씀인데 그가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모든 일을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럼으로 해서 우리가 생명을 받았는데 사도 요한은 우리가 다 충만한데서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가득차 있습니다.

그가 가득차 있습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도 골로새서에서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 그는 모든 정사와 권세의 머리시라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적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께서 율법을 온전케 하심으로 해서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으심으로 생명의 빛을 우리에게 비취시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생명입니다

그의 충만한데서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구원에 대해서 늘 기초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무엇을 잘 해서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가 이 세상에 오셔서 참 빛을 비취심으로 우리가 그 빛으로 생명을 얻을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부족하면 어떻게 됩니까?

그가 이 세상에 오셔서 참 빛을 비춰주시지 못하면 어떻게 됩니까? 우리는 구원을 받고 싶어도 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 인생은 어떻게 해도 우리 스스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늘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어떻게 하셨는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모든 것을 잘한다고 해도 주님께서 단 한 가지라도 부족한 것이 있다면 우리는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도 요한은 그의 충만한데서 우리가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사도 바울도 역시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해졌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생명입니다

우리는 육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육체의 생명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늘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영의 생명과 우리가 가지고 있는 육체의 생명을 비교하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생명이라는 단어로 같이 사용을 했다고 해서 마치 그것이 그것인 것으로 생각을 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쉽게 생각을 합니다.

구더기가 정말 많이 있습니다. 수천억 마리가 있다고 생각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 구더기의 생명이 우리 인생의 생명과 비교할 수 있습니까? 구더기 전체가 다 죽는다 해도 인생 하나의 생명과는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인생이 가지고 있는 생명입니다 지금까지 우리 지구에 몇 명이 살았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천억 명이 살았다 해도 이 영의 생명과는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천억과 영의 생명 하나는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고 있어야 합니다. 왜 그러가 하면 그 천억은 죽으면 다 썩어 없어지지만 영의 생명은 영원히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이 생명입니다

그의 충만한데서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우리 각 사람에게 참 빛을 비취셨습니다. 그 생명에 대해서 충만한데서 비취심으로 해서 우리가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우리가 받은 이 생명은 어떤 것으로도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생명입니다

그런데 그 생명을 우리가 어떻게 받았는가 하면 그의 충만한데서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우리를 구원하시는 모든 구속의 일을 다 이루심으로 해서 우리가 마치 충만한 빛에 비췸을 받는 것과 같이 생명을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출애굽기40:35절을 보겠습니다. (146)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수 없었으니 이는 구름이 회막 위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함이었으며

 

성막입니다

저의 육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편지에서 이미 이 성막에 대해서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 성막의 모든 기구 하나하나는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시는 일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통해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어떤 일을 하셨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모든 기구입니다

그 기구가 의미를 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일을 통해서 우리가 구원을 받고 있습니다. 영생이 무엇입니까?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전은 저의 육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전입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시는 구속의 일이 다 기구를 통해서 그 의미로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 성막이 있음으로 해서 우리가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성막을 모세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짓게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광야라는 교회에서 우리는 이 성막을 지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짓습니까?

이제는 그 보이는 성막을 짓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성령이 임하심으로 해서 우리가 성전이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안에 성전이 있다는 말씀은 우리 안에 예수의 생명이 거하시고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전입니다

반드시 우리 안에 지어져야 합니다. 그 성전이 지어짐으로 해서 우리 안에 예수의 생명이 거하시고 있습니다. 그 성막을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지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모세가 그 성막을 하늘의 모형을 따라 다 지었습니다. 그 후에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우리의 생명입니다. 그런데 이 성막이 저의 육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생명을 얻는데 있어서 모형이 바로 성막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성막을 모세가 광야에서 다 짓고 나자 구름이 회막 위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생명입니다

우리가 생명을 얻는데 있어서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사도 요한은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데서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이스라엘에게 광야에서 이 생명의 충만함을 다 보여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성경에서 그를 보고 있는 성도는 그의 안에 생명이 충만함이 있다는 것을 믿고 있고 그 충만한데서 생명을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이 성막에 대해서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의 충만함이 어느 정도인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출애굽기입니다

이 성막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기구 하나하나를 다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구속의 일을 이루시는 모형과 그림자입니다 그 성막을 보고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야 합니다. 그런 성도만이 여호와의 영광이 그 성막에 충만함을 볼 수 있고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을 얻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구원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구원을 받는데 있어서 모든 것을 다 이루셨습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도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데서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성경을 보고도 이 성막에 대해서 전혀 모르다보니까 그저 성경의 문자를 아는 것으로 그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모릅니다.

그의 충만함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는 구속의 일을 이루셨는데 그것이 얼마나 충만한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생명에 대해서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구원을 받았다고 교회 안에서 말을 하고 있고 세상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면서 자랑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 안에 있는 생명입니다

그 생명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 생명이 어떤 생명인가를 우리가 조금이라도 이해를 하고 있다면 사도 요한이 우리에게 하고 있는 말씀이 무슨 말씀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생명에 대해서 모르다보니까 사도 요한이 말씀을 하고 있는 이 말씀의 의미를 전혀 모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8:9절을 보겠습니다. (294)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

생명입니다

그의 충만한데서 우리가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 이루셨습니다.

그가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가 생명을 얻는 모든 일을 다 이루셨습니다. 그것을 참 빛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빛을 우리 각 사람에게 비취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모든 구속의 일을 다 이루시고 우리가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을 받는 것을 그의 충만한데서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부요하신 자입니다

충만하다는 말씀과 같습니다. 그가 부요하심으로 해서 우리 가난한 자들에게 꾸어 주심으로 해서 우리가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을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우리가 이 생명을 받은 것에 대해서는 어떤 말로도 설명이 안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은혜라는 말로도 다 표현할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쉽게 이야기를 하는 은혜라는 단어로도 표현할 수 없어서 사도 요한은 은혜 위에 은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구원입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이 거하는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그것을 하나님께로서 난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을 은혜라고 단순하게 말씀할 수 없어서 사도 요한은 은혜 위에 은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은혜라는 단어로도 다 말씀을 할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생명입니다

모르는 사람은 사도 요한이 하고 있는 말씀을 모릅니다. 왜 사도 요한이 은혜 위에 은혜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앞에서 말씀을 드렸지만 빛이 어두움에 비취매 어두움이 깨닫지를 못하고 있는 인생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참 빛으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각 사람에게 비취시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빛에 비췸을 받고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의 이성으로는 그 빛을 볼 수도 없고 깨달을 수 없기 때문에 영접하지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이 알지 못 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고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 있지만 그 단어를 알고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있습니까? 이 시대 누가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있습니까? 그런 우리 인생들이 구원을 받습니다. 어떻게 받고 있는가 하면 그의 충만한데서 우리가 깨달을 수 없는 영의 생명을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생명을 받는 일입니다

그것은 우리 인생의 어떤 언어로도 설명이 안 됩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은혜 위에 은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이 생명이 어떠한 생명이라는 것을 알고 성령의 감동을 받고 있는 성도만이 지금 사도 요한이 말씀을 하고 있는 은혜 위에 은혜라고 하는 이 말씀이 그래도 조금이나마 가슴에 와 닫을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입니까?

그것으로도 다 말씀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사도 요한은 은혜 위에 은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 인생들에게 이 영의 생명을 주시는 모든 구속의 일을 알고 있는 성도는 그래도 조금이라도 깨달을 수 있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편지의 성도입니다

이제까지 많은 말씀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야고보서, 갈라디아서, 로마서 강해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시고 있다는 것을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믿음으로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복음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어떻게 구원을 받았는가를 알고 있습니다. 아니 주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정말 어떠한 일을 하셨는가를 성경을 통해서 깨닫고 있습니다. 그런 성도만이 이 생명에 대해서 알고 있고 그 생명을 어떻게 받았는가를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데서 그러니까 부족하지 않은데서 받았습니다.

 

그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우리가 생명을 받은 것을 사도 요한은 은혜 위에 은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사도 요한이 말씀을 하고 있는 이 은혜 위에 은혜라는 말씀을 알 수 있으려면 성경에서 주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구원을 해 주셨는가를 다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 성도만이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라는 말씀을 어느 정도 깨달을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은혜 위에 은혜입니다

이 말씀을 깨달으려면 반드시 구원을 받은 성도만이 알 수 있는 말씀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앞에서 사도 요한도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입니다

그들이 누구입니까? 바로 앞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인데 빛이 어두움에 비추매 어두움이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 각 사람에게 참 빛을 비취시고 있습니다. 이 빛에 비췸을 받고 생명을 얻은 성도들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립니다.

우리 인생들입니다. 어느 누구도 이 생명에 대해서 알 수 없습니다. 아니 우리 인생의 언어로는 설명이 안 됩니다. 그래서 이 생명에 대해서 빛으로 비취시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마치 흑암에 있는 것과 같이 어두움에 있어서 깨달을 수 없습니다.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에 대해서 알 수 없습니다. 우리 인생의 지혜로는 그가 아무리 세상에서 지혜가 있다고 해도 그에 대해서 알 수 없습니다. 실제 이 시대 역시 그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람이 없다고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그에 대해서 모르니까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그를 삼위일체의 한 위에 성자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를 모릅니다.

사람들이 영접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비단 이스라엘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 시대 신약 성경을 보고 있는 이방인들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주셔서 구속의 일을 다 이루시게 하시고 우리에게 참 빛으로 비취시고 있습니다. 그 빛이 충만한데서 비취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럼으로 해서 우리가 생명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설명이 안 되는 영의 생명에 대해서 그의 충만한데서 받았다고 사도 요한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그의 충만한데서 우리가 생명을 받은 것을 사도 요한은 은혜 위에 은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입니까?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안 되니까 아니 그렇게 말을 할 수 없으니까 사도 요한은 은혜 위에 은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은혜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의 충만한데서 받은 생명을 보고 사도 요한은 은혜 위에 은혜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자기들이 무슨 은혜를 받았는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은혜 위에 은혜입니다

어떠한 은혜로도 우리가 받은 생명에 대해서 말할 수 없습니다. 그것을 여러분이 은혜라는 말로 한 마디로 할 수 있습니까? 구원에 대해서 아는 성도는 그리고 내가 받은 생명이 태초에 있는 생명이 어떤 생명이라는 것을 아는 성도는 그것이 성령 안에서 믿음으로 역사를 하고 있는 성도는 은혜라고 쉽게 말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저는 그렇게 믿습니다.

제가 이 복음을 깨닫고 영생을 얻은 것은 기적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아니 기적이라는 말로도 표현이 안 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모두가 천국을 나름대로는 사모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영생을 얻는 사람이 얼마나 적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가 얼마나 특별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영의 생명을 우리가 정확하게는 알 수 없지만 우리 인생의 언어로 상상이 안 되는 생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생명을 그의 충만한데서 내가 받았습니다.

 

은혜입니까?

저는 정말 이 은혜라는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없다고 말씀을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모르겠습니다. 자기가 쉽게 구원을 받았다고 생각을 하는 사람에게는 그 정도의 표현으로도 충분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저에게는 은혜 위에 은혜가 되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도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 시대 저 같은 사람에게 이 복음을 주셨는가를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고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 주심으로 해서 복음을 전하고 있지만 저는 제 자신을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은혜 위에 은혜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영의 생명입니다

저도 표현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사도 요한은 요한계시록에서 주님께서 부활을 하신 형상을 환상으로 보았습니다. 물론 그 말씀도 다 비유의 말씀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생명에 대해서는 어찌되었든 환상으로 본 사람입니다

 

그리고 생명에 대해서 알고 있습니다.

비록 주님의 제자로서 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았을지라도 사도 요한은 이 생명에 대해서 표현은 할 수 없지만 믿음으로 역사를 하기 때문에 충분히 이렇게 말씀을 할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오직 믿음이 있는 사람만이 표현할 수 있는 말씀입니다

 

시편 56:13절을 보겠습니다. (842)

주께서 내 생명을 사망에서 건지셨음이라 주께서 나로 하나님 앞, 생명의 빛에 다니게 하시려고 실족지 않게 하지 아니하셨나이까

 

생명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충만한데서 우리가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임하시는 태초의 생명의 영광을 보고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입니다

은혜 위에 은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은혜 위에 은혜입니다 사실 헬라어로는 이 말씀이 잘 표현이 안 되고 있습니다. 헬라어를 공부를 한 사람들은 잘 알겠지만 헬라어의 전치사로는 지금 사도 요한이 말씀을 하고 있는 은혜 위에 은혜라고 하는 말씀이 잘 설명이 안 되고 있습니다.

 

한글개역성경입니다

아니 한글로 번역이 되어 있는 성경이 우리가 이 말씀에 대해서 더 잘 이해를 할 수 있게 번역이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새번역에서는 은혜에 은혜를 더하여서 받았다고 번역이 되었고 공동번역에서는 넘치는 은총을 받고 또 받았다고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한글입니다

저는 늘 감사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한글을 쓴다는 것은 그만큼 다양한 표현을 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다양한 표현이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 가는데 있어서 많은 도움을 주고 있지만 사람들은 이 한글의 위대함을 잘 모르고 있습니다.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구한다고 말씀을 합니다.

이 말씀 그대로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이 세상에서 배우고 있는 지혜가 도리어 자기들을 망하는 길로 가게 만들고 있습니다. 한글로 번역이 되어 있는 성경을 보면 히브리어와 헬라어보다 하나님을 믿는데 있어서 더 쉬운데도 사람들은 자기들이 더 많이 배운 것을 자랑하고 싶어서 히브리어와 헬라어를 쓰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헬라어로는 우리가 사도 요한이 우리에게 말씀을 하고자 하는 뜻을 알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한글은 참으로 놀랍게도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아는데 있어서 아니 깨닫는데 있어서 더 도움이 되고 있는 언어라는 것을 알아야 하지만 사람들은 한글을 너무 쉽게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앞에서도 말씀을 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은혜를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이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은혜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도 누구에게 신세를 지거나 갚을 수 없는 혜택을 입으면 은혜라는 말을 사용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얻은 생명은 그 은혜라는 한 단어로 표현을 한다는 것이 너무도 미약하기 때문에 사도 요한은 은혜 위에 은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생명입니다

이 시대는 하나님께로서 난 자에게 있는 생명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저 역시 생명이라고 밖에는 표현할 수 없지만 이 생명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생명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인생은 기껏해야 팔십 년을 살고 있습니다.

 

태초입니다

빅뱅이 135억 년 전에 있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하나님께서는 언제까지 계실지를 우리는 상상할 수 없습니다. 그런 시간 속에서 우리 인생의 팔십년이라는 것은 헛것과 같고 지나가는 그림자 같다는 성경말씀이 딱 맞는다고 저는 믿고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135억 년 전입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모든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부터 시작을 해서 또 끝이 어딘지도 모르는 시간까지 모든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 생명을 우리에게 주시겠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생명은 우리 인생들이 가지고 있는 그런 연약하고 죽는 생명이 아니라 썩지 아니하고 쇠하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 팔십년입니다

우주의 시간에서는 하나님의 시간에서는 점 하나로도 표현이 안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천년이 하루 같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루도 안 되는 우리 인생의 시간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인생으로 우리가 살아가고 있고 팔십 년을 살다가 죽으면 썩어서 흙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그런데 태초의 생명을 주시고 있습니다. 그 태초의 생명은 이 태초가 지어지기 전에부터 주님 안에 있던 생명입니다 그리고 그 생명은 영원히 있는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생명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 독생자를 보내주셨고 그것이 우리 인생들에게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시편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내 생명을 사망에서 건지셨음이라 주께서 나로 하나님 앞, 생명의 빛에 다니게 하시려고 실족지 않게 하지 아니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어두움에 있기 때문에 빛을 볼 수 없기 때문에 반드시 사망을 당해야 하고 한번 죽은 것이 정해져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인생입니다

이 시대는 인생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성경을 모르다 보니까 사망에 대해서도 그리고 영의 생명에 대해서도 또 부활에 대해서도 전혀 모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지금 사도 요한이 말씀을 하고 있는 은혜 위에 은혜라는 말씀이 가슴에 와 닫지도 않고 도무지 무슨 말씀을 하고 있는지를 모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인생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반드시 사망을 당해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사망을 당한 인생이 마치 부활을 하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사망을 당한 인생이 주님이 오시는 날에 잠자다가 깨는 것으로 성경을 알고 있고 그런 그들이 무슨 은혜를 알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죽습니다.

그리고 인생은 죽으면 그것으로 끝이 난다는 것을 성경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시편에서는 주께서 내 생명을 사망에서 건지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도 오해를 해서 사망에서 건지셨다고 하니까 우리 육체가 죽으면 잠을 자고 그 잠을 자는데서 우리가 깨어나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 말씀이 아닙니다.

지금 사도 요한이 무슨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난 생명과 하나님께로서 난 자에게 있는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난 자는 사망을 당하고 죽으면 썩어 없어진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인생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독생자를 보내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독생자의 영광을 보니까 그러니까 독생자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일을 보니까 그것이 우리에게 은혜가 되고 있고 그 독생자의 은혜가 우리가 생명을 얻는데 있어서 진리인데 충만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님께로서 난 자가 되는 일에 있어서 충만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은혜 위에 은혜입니다

우리 인생은 죽으면 썩어 없어집니다. 짐승과 벌레와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우리 인생들에게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보내주심으로 해서 그가 우리를 구원하시는 모든 일을 이루심으로 해서 우리에게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생명입니다

독생자의 영광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인생은 죽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죽는 우리 인생이 하나님께로서 난 자가 되고 있다는 말씀이며 그것이 하나님의 독생자의 영광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독생자의 생명으로 우리가 다시 나는 것을 독생자의 영광이라고 말씀을 하면서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생명입니다

우리 인생은 죽으면 썩어 없어집니다. 생명 자체가 없어진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가 그가 오셔서 이루신 구속의 일을 진리로 인도함을 받아서 믿음으로 해서 그가 이루신 일로 그러니까 그의 은혜로 우리 안에 생명이 있는 것이 진리이고 이것을 사도 요한은 은혜 위에 은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아니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시편에서 주께서 내 생명을 사망에서 건지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사도 요한은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난 자는 죽으면 썩어 없어지고 하나님께로서 난 자가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태초의 생명으로 나는 것을 은혜 위에 은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시편 40:2절을 보겠습니다. (831)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케 하셨도다

 

은혜 위에 은혜러라

참으로 생각을 할수록 이 이상의 표현이 없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성경은 정말 우리에게 은혜가 무엇인가를 잘 말씀을 해 주고 있습니다. 더구나 우리가 쓰고 있는 한글은 다른 언어보다 더 표현을 잘 할 수 있음으로 해서 성경만 바로 보고 지혜를 구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기를 원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은 하나님의 독생자의 영광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가지고 계시는 태초의 생명을 우리에게 보여 주시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에서 이 생명에 대해서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봐요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오신 일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보고 쉽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저 교회 안에 있으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마리아의 몸을 통해서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이 세상에 육신을 입고 오신 일은 우리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쉽게 표현이 안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너무 쉽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아니 믿지도 않으면서 믿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으니까 자기들의 이성으로는 하나님이 이 세상에 육신을 입고 오셨다는 것을 깨닫지도 못하면서 믿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이 이 세상에 오시지 않았으면 그리고 우리를 구속하시는 모든 일을 이루시지 않았다면 우리는 그저 이 세상에서 잠시 보이다가 사라지는 존재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굳이 존재할 가치도 없는 인생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135억년입니다

그리고 수많은 생명체들이 있습니다. 그중에서 우리 인생입니다 물론 인류가 아담으로부터 해서 6천년이 되었다고 하지만 우리 개개인으로 치면 가장 많이 산 사람이 겨우 천년을 살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어떻게 되었는가 하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누가 있습니까?

아담의 흔적이 있습니까? 노아의 흔적이 있습니까? 아브라함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까? 우리 인생이라는 것이 그렇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주의 형제 야고보는 우리 인생을 보고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사라지는 안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입니다

나폴레옹입니다 공자입니다 소크라테스입니다 어거스틴입니다. 물론 그들이 이 세상에 살았다는 것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남겨 놓은 업적과 그리고 글을 통해서 그들의 사상을 알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들이 있었다는 것은 역사를 통해서 우리가 알 수는 있을지 몰라도 그들이 지금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숨을 쉴 수 있습니까? 따뜻한 물을 한잔 마실 수 있습니까? 아니 그 무덤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지금이라도 다시 배워서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까?

 

다 끝이 났습니다.

우리 인생이 아무리 위대한 삶을 살았다 해도 인생이라는 존재는 그렇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욥기에서는 벌레라고 그리고 구더기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문명을 일으키고 발전을 시키면서 지적인 존재로 살아가고 있는 인생이지만 그 결말이 어떠하다는 것을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지적인 능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들이 볼 수 있게 하나님에 대해서 깨달을 수 있게 성경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성이 있고 지적인 능력이 있는 인생이 성경을 보고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사도 요한은 그런 우리 인생은 어두움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창세기에서는 어떻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 악에 대해서 악인에 대해서 악한 일에 대해서 얼마나 많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인생입니다

지적인 능력이 있습니다. 그리고 생각하는 사고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인생이지만 하나님께서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시고 우리 인생들에게 태초에 있는 생명을 주시기를 예정을 하시고 인생들에게 하나님을 나타내시고 계시지만 인생들은 어떻게 하는가 하면 창세기의 말씀과 같이 우리는 항상 악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그 인생들이 하는 행위가 항상 악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체질적으로 그렇게 태어났다는 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인생의 이성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시기 위해서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 성경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이 성경을 보고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그 사람들이 어떻게 하는가 하면 항상 악만 행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봅니다.

그리고 정말 하나님을 잘 믿고 싶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더욱 열심을 다 해서 보고 하나님에 대해서 알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서 구원을 받자고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 할수록 우리 인생은 어떻게 하고 있는가 하면 악만 행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인생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성경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성경을 보고 하나님을 믿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람은 성경을 보고 하나님을 잘 믿고 싶어서 그렇게 할수록 어떻게 하는가 하면 도리어 악만 행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을 우리의 본성이라고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본성은 율법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을 잘 믿는 것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성경을 보면 율법을 지키게 되어 있고 그것이 악한 일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본성이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서 아무리 지혜가 뛰어나다고 하는 사람도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어느 누구도 이 본성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성경을 보고 율법을 지키게 되어 있고 그것을 사도 요한은 어두움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렇게 어두움에 있는 것을 시편에서는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 빠져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잘 믿고 싶습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우리는 더욱 깊은 웅덩이에 빠지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고 어두움에 더욱 깊이 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우리 인생들의 본성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케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입니다

그리고 이방의 기독교인들입니다 누가 율법을 지키지 않았습니까? 하나님께서 특별히 선지자를 보내주시고 구원을 해 주시고자 하는 사람을 제외하고 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렇게 율법을 지키는 자기를 보면서 하나님을 잘 믿고 있다고 하지만 그것이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행하는 것이 악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성도만이 시편의 말씀이 깨달아질 수 있습니다. 우리 인생의 이성으로는 성경을 보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율법을 안 지킬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악한 일이고 어두움의 일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위해서 율법을 다 지켜 주셨습니다. 그럼으로 우리가 생명을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가 악을 행하지 않게 율법을 지키시고 자유하게 하는 율법을 주시고 행함이 있는 믿음으로서 구원을 받게 하신 것이 은혜라는 말씀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이 시대 누가 이 은혜에 대해서 알고 있습니까? 어느 누구도 깨닫지를 못하는 일을 이 시대 우리 성도님들이 은혜를 받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을 은혜라는 한 마디로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까?

 

안 됩니다

우리가 무슨 신세를 지거나 혜택을 받은 것도 은혜라고 합니다. 그런데 태초에 있는 생명을 우리가 얻었습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심으로 해서 우리가 참 빛에 비췸을 받고 하나님께로서 난 자가 되어서 우리 안에 태초의 생명이 있습니다.

 

은혜입니까?

저는 이 은혜라는 단어로는 표현이 부족하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도 은혜 위에 은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표현도 한글 성경에서는 가능한 표현이지 헬라어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한글을 사용하고 보고 이해를 한다는 것은 그만큼 하나님의 은혜를 더 쉽게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요한복음 1:17절을 보겠습니다. (142)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율법은 모세를 통하여 받았고,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겨났다.”

 

성경입니다

예수 안에 있는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생명을 어떻게 받았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사도 요한만큼 우리에게 영의 생명에 대해서 자세하게 말씀을 하고 있는 선지자는 없다고 믿고 있습니다.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하신 말씀을 그대로 기록을 하면서 생명에 대해서 정말 잘 말씀을 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입니다

사도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라는 말씀을 아주 명확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그대로 성경에 기록을 해서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성경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은혜입니다

무엇이 은혜입니까? 물론 첫 번째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로 오신 것이 은혜입니다 그럼으로 해서 우리가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을 볼 수 있게 하셨습니다.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 무엇인가 하면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시는 태초의 생명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독생자입니다

다시 있을 수 없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는 일은 이전에도 없고 이 후에도 다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의미에서 독생자의 영광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분이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가 하나님께로서 난 자가 될 수 있는 것이 은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함부로 사용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이 은혜라는 말을 너무 쉽게 사용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자기들이 한 행위를 보면서 은혜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이 된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아무 때나 은혜라는 말을 남발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도 요한입니다

지금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1장에서만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도 요한은 거의 모든 말씀을 이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생명을 어떻게 얻을 수 있는가 하면 하나님이 이 세상에 육신을 입고 오심으로 해서 그가 구속의 일을 이루심으로 해서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육신으로 오셨습니다.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니까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유일하신 하나님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우리에게 태초에 있는 생명을 주시고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에 그 생명으로 부활을 해서 하나님과 함께 살게 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우리 인생으로는 상상이 안 되기 때문에 우리가 받은 은혜가 잘 실감이 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요한은 이 태초의 생명의 영광이 얼마나 큰 가를 진리로 인도함을 받고 있기 때문에 그가 구원을 받은 것을 은혜 위에 은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충만함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구원을 받는데 있어서 부족함이 조금도 없다는 의미의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런 분입니다 아니 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부터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예정을 하시고 또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셔서 그 모든 구속의 일을 이루셨다는 말씀을 하고 있고 그것을 은혜라는 말로 표현할 수 없어서 은혜 위에 은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생명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 생명을 얻습니다. 그것을 은혜 위에 은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도 감히 우리의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말로 번역이 되고 있는 은혜 위에 은혜라는 말씀이 그나마 실감이 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말씀을 합니다.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너무도 평범해 보이는 말씀이고 누구나 이 말씀을 보면서 그래 하면서 쉽게 생각을 하고 넘어갈 수 있는 말씀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2:4절을 보겠습니다. (338)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하나님입니다.

우리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생입니다

반드시 진리를 알아야 합니다. 그 진리가 바로 주님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는 모든 구속의 일을 이루셨습니다. 이 일이 우리에게는 은혜가 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율법을 지키심으로 해서 우리에게 은혜가 되고 그럼으로 해서 우리가 의롭다 하심을 얻어 생명을 얻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일이 진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진리를 믿음으로 해서 진리를 앎으로 해서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이 말씀을 합니까?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왜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는데 사람들이 진리를 모르고 있기 때문에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진리를 알아야 구원을 받아 영생을 얻을 수 있는데 사람들이 진리를 모르기 때문에 디모데에게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라는 말씀입니까?

사람들이 진리를 모르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진리를 모르고 있기 때문에 디모데를 통해서 진리의 말씀을 가르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네가 진리의 말씀을 잘 가르쳐서 구원을 받게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진리를 전해야 합니다. 이 진리가 어디서 왔는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셨는데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그 율법을 지키심으로 해서 그것이 우리 인생들에게 은혜가 되고 있고 그분을 믿음으로 해서 우리가 생명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진리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은혜로 말미암아 생명을 얻는 것이 진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저 요한복음에서 주님께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는 그 말씀을 문자로 아는 것으로 주님이 진리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은혜와 진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영의 생명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성경에 진리와 거짓이 함께 기록이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사도 요한이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생명에 있어서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모든 구속의 일이 그러니까 우리에게 비취고 있는 참 빛이 진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시편에서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의 빛과 주의 진리를 보내어 나를 인도하사 주의 성산과 장막에 이르게 해 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의 빛입니다 그것이 진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빛에 우리가 비췸을 받음으로 해서 우리에게 생명이 거할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진리를 아시기 바랍니다.

그저 예수 그리스도는 진리라고 하지 마시고 성경에서 진리에 대해서 모든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한 마디로 정의를 해서 주님은 분명히 진리입니다 우리에게 태초에 있는 생명을 주시는 일에 있어서 진리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구속의 일을 하신 것이 은혜이고 그 은혜로 생명을 얻는 것이 진리라는 말씀입니다

 

그것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생명을 얻는 일에 있어서 알기를 원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진리의 영인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주심으로 해서 우리가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심을 받게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입니다

진리에 대해서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내가 가면 아버지께서 진리의 성령을 보내주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보내주시는가 하면 진리에 대해서 우리 인생의 이성으로는 깨달을 수 없습니다.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인데 이 진리가 우리에게 생명을 주고 있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도 모르고 진리를 깨달을 수 있는 사람이 없어서 진리의 영을 보내주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입니다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기를 원하시고 계십니다. 그런데 구원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면 은혜와 진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구속의 일을 아는 것이 은혜이고 그 은혜가 우리가 태초의 생명으로 구원을 받는데 있어서 진리라는 말씀이며 그것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셨다는 말씀입니다

 

에베소서 1:5절을 보겠습니다. (310)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모세의 율법으로는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이 우리에게 율법을 지키라고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셨는데 그 율법을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위해서 지키셨고 그것이 은혜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 은혜로 구원을 받는 것이 그러니까 태초의 생명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 진리이며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입니다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왜 천지를 창조하셨는가 하면 우리 인생들을 지으시고 우리에게 하나님의 영광의 주시기 위해서 지으셨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주시는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지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랑 안입니다

지난 시간에도 이 사랑에 대해서 말씀을 했습니다. 사람들은 사랑이라고 하니까 그저 사랑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법도 무시를 하는 사랑을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은 반드시 법에 의해서 사랑을 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입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셨지만 우리는 지키지 못해서 사망에 이르게 되었는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율법을 다 지키신 것이 우리에게 은혜가 되고 있습니다. 그렇게 주님께서 법을 지키심으로 해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게 되고 그것을 사랑 안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은혜와 진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은혜와 진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옴으로 해서 우리가 어떻게 되었는가를 사도 바울이 에베소서에서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입니다

이것에 대해서 사도 요한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가 되려면 거룩해야 하고 그러려면 율법을 온전히 다 지켜야 하는데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셨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다 지키심으로 해서 우리가 거룩함을 얻은 것이 은혜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 은혜가 생명을 얻는데 있어 진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생입니다

사도 요한은 우리가 하나님께로서 난 자가 되어서 영생을 어떻게 얻을 수 있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먼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은혜와 진리입니다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키지 못해서 사망에 이르게 되었는데 주님께서 율법을 다 지키심으로 해서 우리에게 은혜가 되고 생명을 얻는데 있어서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말씀을 합니다.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인데 에베소서에서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신 그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율법을 지키시고 그 의를 우리에게 주신 것이 은혜가 되고 그 은혜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강해' 카테고리의 다른 글

10강, 요1:24~25.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0) 2019.06.09
9강 요1:18. 진리 입니다  (0) 2019.06.02
7강, 요1:14, 혈과 육입니다  (0) 2019.05.19
6강, 요1:12. 세상입니다  (0) 2019.05.13
5강, 우리 인생입니다  (0) 2019.05.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