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요한복음 강해

6강, 요1:12. 세상입니다

윤주만목사 2019. 5. 13. 14:37


6, 요한복음 1:12절을 보겠습니다. (142)


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세상입니다

사도 요한은 이스라엘을 세상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이 어딘가 하면 사람들이 다니고 있는 교회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불교의 사상에 빠져 세상이라고 하니까 속세를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교회입니다

그 안에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셨는데 알지 못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라는 세상은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한다는 것을 성경이 말씀을 하고 있으면 그대로 받아들이고 왜 알지 못하는가를 성경에서 깨닫는 성도가 지혜롭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있습니까?

누가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있습니까? 누가 예수 안에 있는 생명에 대해서 알고 있습니까? 어거스틴이 그것에 대해서 말을 했습니까? 칼뱅이 말을 했습니까? 웨슬레가 말을 했습니까? 아니면 이 시대 사람들이 가장 많이 알고 있는 로이드 존슨이 알고 있었습니까?

 

그들은 몰랐습니다.

칼뱅주의자들이 그리고 알미니안주의자들이 저를 비난하고 욕을 하고 저를 업신여긴다 해도 아니 제게 테러를 가한다 해도 저는 그들이 몰랐다고 밖에는 말씀을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 중에 어느 누가 이 요한복음을 보고 영의 생명에 대해서 말을 했습니까?

 

거듭남입니다.

우리 인생에게 거듭남은 하나님의 신비로운 생명을 주시는 놀라운 역사이고 비밀입니다 그런데 이것에 대해서 바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사람이 누가 있었습니까? 그들은 이 영의 생명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막연하게 생명이라고 말을 했습니다. 어느 생명인지도 모르면서 영원한 생명이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들은 세상입니다

이스라엘과 마찬가지로 종교에 빠져 있는 세상에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 요한은 분명히 세상은 그를 알지 못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들이 만들어 놓은 교리에 빠져 성경보다 그 교리를 먼저 생각을 하면서 보고 있습니다. 그렇게 성경을 보는 그들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에 대해서 알 수 있습니까?

 

그들이 성도입니까?

하나님의 백성입니까? 이스라엘과 같이 종교인으로서 하나님의 백성은 맞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사도 요한이 말씀을 한 것과 같이 세상에 있어서 그를 알지 못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그들이 남겨 놓은 글들을 보면 이 생명에 대해서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압니까?

영의 생명에 대해서도 모르는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안다고 말을 할 수 있습니까? 절대로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은 그저 성경의 문자를 보고 예수 그리스도를 안다고 했고 믿는다고 하면서 종교를 세운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종교입니다

어거스틴에 의해서 천주교는 급속하게 성장을 했습니다. 그리고 칼뱅에 의해서 장로교가 발전을 했습니다. 또한 웨슬레에 의해서 감리교가 생겨났습니다. 그리고 그 외에 여러 종파가 생겨났고 그들은 나름대로 교리를 만들어서 신학교에서 가르치고 있고 그 교리를 배우고 나온 사람들이 교회를 세우고 목회를 하면서 복음을 전한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모릅니다.

사도 요한의 말씀과 같이 그들은 성경에 기록이 된 그대로 알지 못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알지도 못하는 그들의 열심이 하나님에 대한 열심으로 세상은 점점 더 견고하게 종교가 되었습니다. 그것을 요한계시록에서는 두 짐승으로 말씀을 하고 있고 실제 유대교와 기독교를 통틀어서 짐승이 되었지만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시편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짐승과 같다(4912)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모여 있는 교회를 사도 요한이 요한계시록에서 환상으로 보고 두 짐승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이렇게 짐승이 된다는 것을 성경이 미리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짐승에게 사로 잡혀 있으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참 빛으로 오셨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들을 구원하시기 위한 모든 구속의 일을 주님이 오셔서 하실 것으로 빛으로 나타내셨습니다. 그 빛은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빛이 아니라 영의 일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렇기에 주님께서 각 사람에게 빛을 비취지만 사람들이 깨닫지를 못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알지 못 합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하신 구속의 일을 알지 못합니다. 영의 일을 빛과 같이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나타내 주시고 있지만 이 성경을 보면서도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성경에서 문자를 보고 아는 사람의 이성적 지식을 가지고 자기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있다고 하면서 믿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이 알지 못 합니다.

이방의 교회 역시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 성도들에게 성령을 보내 주시고 진리로 인도함을 받게 하심으로 해서 이 빛을 깨닫게 하시고 있습니다. 그럼으로 해서 우리가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을 얻을 수 있게 하시고 그 생명으로 우리가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에 신령한 몸으로 부활을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고자 하는 목적과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목적이 서로 달랐습니다. 그리고 성경을 보고 주님을 기다린 것이 아니라 자기들이 이성으로 생각을 하면서 주님을 기다리다가 영접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자기 백성입니다

조상 대대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이스라엘이 자기 땅에 오신 하나님을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도 영접을 하지 않은 주님을 이 시대는 그저 성경의 문자를 보고 예수 그리스도를 안다고 하면서 자기들이 영접했다고 말을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고 있고 그 믿는 행위가 도리어 어두움이 되고 있지만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성경대로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성경에서 영접지 않았다고 하면 왜 영접지 않았는가를 알기 위해서 지혜를 구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성경을 자의적으로 보고 이스라엘은 영접지 않았어도 자기들은 지혜가 있어서 영접을 하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그러나 그를 맞아들인 사람들, 곧 그 이름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셨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성경을 성경대로 받아들이는 습관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러니까 성경에서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 하였다고 말씀을 하면 우리 역시 영접지 아니한다는 것을 기본으로 생각을 하고 성경을 보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사람입니다

인생은 모두가 같습니다. 나는 다르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다르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자기 스스로가 신이라고 생각을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 인생에 대해서 모두가 같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지 어느 누가 다르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같습니다.

모두가 벌레입니다. 모두가 지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또 모두가 이성이 없는 짐승과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과 사람이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성경을 보고 하나님을 믿고 영의 일을 아는 그러니까 빛을 보는 것에서는 모두가 같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나는 다르다

뭐가 다릅니까? 생김새가 다릅니까? 목소리가 다릅니까? 생각하는 것이 다릅니?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다 거짓을 말하고 있는 진짜로 악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이 누군가 하면 성경에서 말씀을 하는 광명의 천사로 위장을 하고 있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접지 않습니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방인이 영접을 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쉽게 말을 해서 그렇습니다. 내 아버지를 내가 공경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남의 아들이 내 아버지라고 하면서 공경을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우리 인생은 모두가 체질이 진토라는 것을 성경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접하시기 바랍니다.

제가 이 말씀을 하면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저에게 무슨 봉창두드리는 이야기를 하느냐고 시비를 걸 것이 분명합니다. 자기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기 때문에 교회에 다니고 있고 믿는다고 하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10:40-41절을 보겠습니다. (16)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영접지 아니하였습니다.

주님께서 자기 땅에 오셨으나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아서 잘 알고 있지만 주님께서 이스라엘 땅에 계시는 동안에 누가 스스로 찾아 와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아무도 영접지 아니 하였다는 것을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사도 요한의 말씀 그대로 입니다.

주님께서는 앞에서 말씀을 드렸지만 흠모할 만한 것도 없고 마른 줄기 같아서 아무도 영접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참 빛을 비취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 빛을 깨달은 제자들이 있어서 그들이 주님이 부활하시고 난 후에 복음을 전파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영접하지 않습니다.

지금도 영접을 한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기독교인이 우리나라에 천만 명이 된다고 하지만 사실은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범죄를 하는 사람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말씀을 합니다.

주님이 이제 복음을 다 전하고 나서 제자들이 복음을 전파를 합니다. 그런 그들에게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부활하시고 난 후에 성령이 제자들에게 오시고 그들이 세상에 복음을 전파를 했습니다. 그때 그들을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복음의 씨를 뿌리는 동안에는 사람들이 영접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제자들이 복음을 전함으로 해서 듣고 믿음으로 영접을 하게 되었습니다.

 

너희를 영접합니다.

그러니까 복음을 전파하는 제자들을 영접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제자들을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정말 성경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누가 영접을 했습니까?

주님께서 삭개오를 찾아갔습니다. 그때 삭개오가 영접을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주님의 제자들과 그리고 주님의 말씀을 들은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영접했느니까 천국 복음을 듣고 주님이 부활하시고 난 후에도 몇 날을 기다리다가 성령을 받았습니다.

 

초대 교회입니다

그래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이방에 처음 복음이 전파가 되던 때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복음을 듣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영접을 하고 복음을 듣고 믿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영접하는 자

사실 우리는 국어의 문법을 잘 알아야 합니다. 영접을 하는 자가 많이 있다는 말씀입니까? 거의 없다는 의미의 말씀입니까? 사도 요한은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지만 실제 이 말씀과 같이 영접을 하는 자가 거의 없다는 것을 의미적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쉽지 않습니다.

사실 이 영의 생명에 대해서 그리고 영의 일에 대해서 누가 믿을 수 있습니까? 더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풍채도 없고 흠모할 만한 것도 없고 마른 줄기 같은 자가 나타나서 내가 하나님이라고 하는데 누가 영접을 하겠습니다. 실제 그들이 돌로 치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몇 번이나 돌로 치려했습니까?

더구나 주님께서 말씀을 하시는 것을 들어보면 자기들과는 전혀 다르게 말씀을 하시고 있습니다. 영의 일을 말씀을 하니까 도무지 알아들을 수도 없고 마치 동문서답을 하는 것과 같이 대화를 하다 보니까 이스라엘은 더욱 더 영접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는 자들은 영접을 할 수 있었습니다.

 

시편 49:15절을 보겠습니다. (837)

하나님은 나를 영접하시리니 이러므로 내 영혼을 음부의 권세에서 구속하시리로다 (셀라)”

 

시편 27:10절을 보겠습니다. (821)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

 

영접하는 자

사도 요한은 우리 인생이 하나님을 영접하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미 11절에서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 인생은 앞에서 말씀을 드린 것과 같이 어두움에 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먼저 알고 이 말씀을 보아야 합니다.

 

생명입니다

영의 생명에 대해서 우리는 흑암에 있는 백성과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우리가 스스로 주님을 영접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래서 참 빛을 각 사람에게 비취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비췬다 해도 역시 우리가 그 빛에 비췸을 받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사도들입니다

그들이 이 세상에 주님이 부활하시고 난 후에 복음을 전파를 했습니다. 그때 많은 사람들이 사도들을 영접을 했고 그들을 통해서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 역시 하나님께서 역사를 하시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아니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해서 사도들이 전하는 복음의 말씀을 듣고 믿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 인생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그리고 참 빛을 비취시고 있지만 우리는 그 빛을 깨달을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주님을 영접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시편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영접하시리니 이러므로 내 영혼을 음부의 권세에서 구속하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영접을 합니까?

우리가 삭개오의 사건을 성경에서 보았습니다. 물론 삭개오가 예수님을 영접을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경을 잘 보면 주님께서는 삭개오를 만나려고 그리고 오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자를 찾아서 오셨고 주님께서 삭개오를 부르시자 삭개오가 영접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내가 주님을 영접을 합니까?

물론 복음을 전하는 자를 통해서 복음을 듣고 영접을 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시편에서는 그렇게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영접하시리니 이러므로 내 영혼을 음부의 권세에서 구속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영접하십니다.

나를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나를 영접해 주시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 내가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영생을 얻은 그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영접해 주셨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어떻습니까?

사도 요한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 인생이라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영접해 주심으로 해서 우리가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영원한 생명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구원입니다

알미니안 주의에 있는 사람들은 내 자유의지가 포함이 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거의 칼뱅주의는 사라지고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제가 칼뱅주의가 맞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 역시 영의 일을 모르기 때문에 그들이 말하고 있는 교리가 맞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입니다

쉽게 말을 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일입니다 우리가 자녀가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쉽게 생각을 하면 됩니다. 내가 내 의지로 우리 부모에게서 태어났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부모의 의지로 내가 태어나게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영접하는 자가 없습니다.

아니 우리 인생의 이성으로는 의지로는 우리는 생명의 빛에 대해서 깨달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시편의 말씀과 같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영접해 주심으로 해서 우리가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원한 생명입니다

그것에 대해서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도 요한이 말씀을 하고 있는 생명에 대해서는 내 부모도 나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 부모입니다

그분들이 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연좌제로 해서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까? 그것이 절대로 아니라는 것을 성경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시편에서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내 부모가 버렸다는 말씀이 아니라 생명에 대해서는 그렇다는 것을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합니다.

 

영의 생명입니다

그 영의 생명을 사람들의 빛으로 보여 주시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이성으로는 이 빛을 볼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깨닫지 못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하나님께서 나를 영접해 주셔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접하는 자라고 하니까 마치 내가 이성이 있어서 영접을 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미 앞에서 우리 인생은 빛을 깨달을 수 없어서 영접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겨주심으로 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영접을 받아서 구원을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자기 생명에 대해서 내 부모는 나를 버렸지만 여호와께서는 나를 영접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접하는 자가 있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물론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니까 그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구원을 받으려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그에게도 성령을 보내주셔야 한다는 것을 우리가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성령을 보내 주시지 않으면 사도들이 아무리 복음을 잘 전한다 해도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요한복음 1장입니다

우리는 정말 성경을 잘 보아야 합니다.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이 있습니다. 이 생명을 빛으로 보게 하시고 있고 그 빛을 비취시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깨닫지를 못하더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지만 세상이 그를 알지 못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또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전부 무슨 말씀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았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12절에서 영접하는 자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 스스로는 이미 영접할 수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사도 요한은 영접하는 자를 말씀을 하고 있고 그 이름을 믿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잘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영접하는 자가 있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이제 뒤에서 이 영접하는 자가 누군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앞에 있는 말씀만 보고 자기들이 영접할 수 있는 것으로 아니 영접을 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장은 우리 사람들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영접을 했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영접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영접해 주시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인생의 이성으로는 하나님을 영접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영접을 해 주심으로 해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게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접에 대해서 바로 알아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조카 롯이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그래서 자기 집에서 기르는 사병을 데리고 가서 그들을 쳐서 다시 포로로 잡혀갔던 사람들을 찾아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때 누가 누구를 영접을 했습니까?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에게 와서 영접을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국어의 뜻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영접이라는 단어는 맞아서 대접하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맞아서 대접을 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구원을 받는 성도들을 귀히 여기시고 있습니다. 그래서 비록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시지만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을 그렇게 귀히 여기시고 영접을 해 주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접이라는 것이 그렇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기들이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아니 교회 안에서 영접을 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생명에 대해서 알고 있습니까? 그리고 빛이 비추고 있지만 우리가 그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까? 또한 세상이 그를 알지 못했다고 사도 요한을 통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1:21절을 보겠습니다. (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시편 106:8절을 보겠습니다. (881)

그러나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위하여 저희를 구원하셨으니 그 큰 권능을 알게 하려 하심이로다

 

요한복음 1장입니다

사람들이 그렇게 한다는 말씀입니까?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빛이 어두움에 비추매 어두움이 깨닫지를 못합니다. 주님께서 세상에 오셨으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말씀합니다.

영접하는 자 그 이름을 믿는 자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접하는 자가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우리 인생의 이성으로는 영접할 수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마치 이런 말씀을 보고 문자를 아는 것으로 자기들이 영접을 하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이름을 믿는 자입니다

이름을 믿는 자가 있다는 말씀입니까? 없다는 말씀입니까? 지금 요한복음은 계속해서 사람들이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라고 말씀을 하시고 내가 너희 하나님이 되려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냈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믿지를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이 하나님께서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고 말씀을 하면서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되겠다고 말씀을 하셨지만 그들이 믿었습니까? 성경은 그들이 믿지 아니함으로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사도 요한도 계속해서 그렇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접하는 자도 없습니다.

그리고 그 이름을 믿는 자도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 있어서 그렇게 하라고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사람이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마태복음에서 무엇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어떻게 했습니까?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로 믿지를 않고 도리어 예수 그리스도를 참람하다고 하면서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일을 했습니다.

 

그 이름을 믿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 이름의 뜻이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믿을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이미 흠 없는 율법의 의를 가지고 살았습니다. 또한 구원에 대해서도 깨닫지를 못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구원입니다

그들이 바라는 구원은 무엇이었습니까? 이사야 시대부터 해서 이스라엘은 주변 강대국으로부터 침략을 받고 그들의 종이 되어서 살았습니다. 그리고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 살았습니다. 바벨론의 포로에서 돌아온 후로도 그들은 늘 주변국으로부터 핍박을 받고 살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오셨습니다.

강철 제국이라고 하는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는 때입니다 그들은 다윗과 같은 왕이 나와서 자기들을 구원해 주심으로 해서 자기들이 이 세상에서 가장 강대한 나라가 되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지금도 그것을 추구하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이 그 이름을 믿었습니까?

물론 이스라엘은 육적이었기 때문에 그 이름을 믿을 수 없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들이 기다리고 있던 다윗과 같은 왕과 예수 그리스도는 전혀 달랐기 때문에 그 이름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스라엘은 성경을 보고 모든 것을 육의 일로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그 아들의 이름입니다.

마태복음에서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구원에 대해서 이스라엘이 생각을 하는 구원과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구원과는 너무도 큰 차이가 있습니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이방인들이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구원이라는 단어를 보고 자기들이 구원을 받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어떻게 구원을 받는지도 모르는 그들이 구원을 받았다고 하면서 천국에 간다고 굳게 믿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이름을 믿습니까?

이스라엘은 안 믿는 것이 지극히 정상입니다 그럼 이 시대 기독교인들이 그 이름을 믿고 있습니까?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라는 이 이름을 믿고 있느냐는 말씀입니다 아마도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다 이 이름을 믿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알아야 합니다.

지금 사도 요한은 무엇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영의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참 빛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빛이 어두움에 비취매 어두움에 깨닫지를 못하더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생명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빛이 무엇인가도 모르고 있는 그들이 그 이름을 믿는다고 할 수 있습니까?

 

세상이 그를 알지 못했습니다.

어느 세상입니까? 이스라엘이라는 세상이 그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럼 이 시대 세상은 알고 있습니까? 이 시대 역시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그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저 성경에 문자로 기록이 되어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있으면서 그것을 아는 것으로 자기들이 그를 알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앞에 있는 말씀을 먼저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성경이 그렇다고 하면 그런 것입니다 성경이 이스라엘에 대해서 그렇게 말씀을 하고 있으면 이방인 역시 그렇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성경을 그렇게 보고 있지를 않고 있습니다. 자기들의 이성에 따라 자기들이 좋은 대로 성경을 보고 있고 자기들은 성경과 다르게 하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이름을 믿고 있습니까?

누가 그 이름을 믿고 있습니까? 무엇이 구원을 받는지도 모르는 그들이 그 이름을 믿는다고 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우리의 영의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그 생명을 우리에게 주셔서 우리가 구원을 받아 영생을 얻게 하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생명에 대해서 그리고 이 생명을 비취고 있는 빛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성경의 문자를 보고 그 이름을 믿는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영이신 하나님입니다 그리고 영의 생명을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셔서 모든 구속의 일을 이루셨습니다. 우리가 우리 죄로 죽어야 하는데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모든 구속의 일을 이루셨습니다. 그것은 육의 일이 아니라 영의 일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그 이름을 믿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구원자라는 뜻이 있습니다. 이 이름의 뜻대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그러니까 자기 이름을 위해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그렇게 믿지를 않고 있습니다.

 

지금의 교회를 보시기 바랍니다.

누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할 수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기 이름을 위해여 우리 죄인을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이름의 뜻도 모르고 있습니다.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라는 이름의 뜻도 모르면서 구원을 받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2절을 보겠습니다. (261)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저희와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예수의 이름입니다.

그 이름을 믿는 것이 무엇입니까? 먼저는 마태복음의 말씀과 같이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분명히 우리를 죄에서 구원할 자로 오셔서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위해서 죽으셨습니다. 겨우 이것 하나를 아는 것으로 예수 이름을 믿는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자기 백성입니다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러면 그 이름을 믿는 자는 어떻게 됩니까? 그 이름을 믿는 자는 자기가 거룩하여졌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을 하셨습니다. 어떻게 구원을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그저 막연하게 성경의 문자만 보지마시기 바랍니다.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그들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렇게 하심으로 해서 우리가 거룩함을 입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을 하심으로 해서 우리가 예수 안에서 거룩함을 입음으로 해서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이름을 믿습니까?

그럼 먼저 우리 죄에서 그가 구원을 해 주셨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럼으로 해서 우리가 어떻게 되었는가 하면 거룩함을 입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죄를 십자가에서 지고 죽으심으로 해서 우리가 이제는 거룩함을 입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육체가 거룩함을 입었다는 것이 아니라 그를 믿음으로 우리 안에 그의 영이 거하시고 그 생명이 거룩한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생명입니다

그것을 믿지 않으면 그 이름을 믿는 자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이 거룩함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자기 안에 있는 생명 그러니까 사도 요한이 4절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생명이 거룩한 생명이라는 것을 믿어야 하는데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이름을 믿습니까?

반드시 우리 안에 그의 거룩한 생명이 거하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믿는다고 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내가 그 이름을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의 거룩한 생명이 거하시고 있지 않다면 그것은 믿는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입니다

계속해서 요한복음을 말씀을 할 때는 이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 생명은 그저 문자로 생명이라고 생각을 하지 마시고 영의 생명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죄 사함이 있고 그럼으로 해서 그의 안에 거룩하신 이의 생명이 거하는 역사가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도 죄가 없으신 분입니다. 흠도 없고 점도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거룩하시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이름을 믿는다고 하면서 그의 거룩하신 생명이 거하지 않고 있다면 그는 그저 겉으로 이 세상의 종교인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인생입니다

그 인생을 성경은 진토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진토라는 것은 거룩해 질 수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이름을 믿는다는 것은 그가 이 세상에 오셔서 하신 모든 일을 믿는다는 것이고 그것은 어두움에 있다가 빛에 비췸을 받는다는 것이고 그것은 그의 생명이 거하시게 된다는 말씀이며 이 생명은 거룩한 생명이라는 말씀입니다

 

성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입니다. 왜 성도라고 부르고 있는가 하면 바로 이 거룩한 생명이 그의 안에 있기 때문에 성도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저 이 세상에서 교회에 나와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신앙생활을 하는 모습을 보고 성도라고 부르는 것이 아니라 그의 이름을 믿고 그가 하신 구속의 일을 믿음으로 해서 거룩한 생명이 있는 성도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이름의 뜻입니다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그 이름의 뜻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 이름을 믿음으로 해서 내 안에 어떠한 생명이 거하시는 가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성경은 이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이 생명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그저 생명이라는 단어만 보고 있습니다.

 

로마서 9:8절을 보겠습니다. (251)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

 

그 이름을 믿습니다.

아마도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다 그 이름을 믿는다고 말할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 이름을 믿는다는 것이 무엇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저 교회에 나와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하면 그 이름을 믿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절대 아닙니다.

그럴 것 같았으면 이스라엘은 다 하나님을 믿는 백성이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정도를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이야기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교회 안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으로 자기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이름을 믿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그들이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성경의 문자를 보고 아는 것으로는 분명히 그들은 하나님의 자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로마서에서 뭐라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사도 바울이 하나님의 자녀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약속의 씨로 여기심을 받은 자라야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로마서를 보고도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사람이 거의 대다수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잘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육신의 이삭이 있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자녀입니까? 그는 아브라함의 육신의 자녀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로마서의 말씀을 보고 어떻게 생각을 하고 있는가 하면 육신의 이삭을 보면서 하나님의 자녀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들입니다

이스마엘이 있고 이삭이 있고 그리고 후처에게서 난 아들들이 6명이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생명에 대해서 정말 잘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에 대해서 성경에서 바로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데 하나님의 자녀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 오해가 결국에는 구원을 받을 수 없게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브라함입니다

8명의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 중에 이삭이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누가 하나님의 자녀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이삭이 있습니다. 성경에서 이삭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이삭이 하나님의 자녀입니까? 아브라함에게서 육신으로 난 이삭이 하나님의 자녀입니까?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은 다 육신의 자녀입니까?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육신의 자녀입니다 이삭 역시 육신으로 났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럼 이삭은 아브라함이 육신으로 낳지 않고 영으로 낳았습니까?

 

아닙니다.

이삭 역시 육신으로 낳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에게서 사라를 통해서 낳은 이삭 역시 육신의 자녀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이삭을 보고 하나님의 자녀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물론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이 하나님을 믿는 것은 분명히 맞습니다. 그리고 그의 안에 예수의 생명이 있는 것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육신입니다

이삭 역시 육신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인생은 모두가 육신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육신을 보고 하나님의 자녀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 육신이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와 같이 이 세상을 살아갈 수는 있을지라도 그 육신을 보고 하나님의 자녀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어렵습니다.

이제까지 이 영의 생명에 대해서 처음 들어본 사람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아니 신체의 구원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교회 안에서 그렇게 들어왔던 사람들에게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알아야 합니다.

이삭의 육신이 구원을 받았습니까? 이삭의 육신이 천국에 들어갔습니까? 절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삭은 약속을 받았습니다. 생명에 대해서 약속을 받은 자입니다 그럼으로 해서 그의 안에는 예수의 생명이 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를 약속의 씨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이지 이삭이라는 육신을 보고 약속의 씨라고 하는 말씀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삭입니다

그의 안에 약속의 씨가 없다면 그러니까 예수의 생명이 없다면 그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반드시 약속의 씨가 있어야 하고 그의 안에 예수의 생명이 있어서 하나님의 자녀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신의 자녀입니다

거기에는 아브라함이 육신으로 사라를 통해서 난 이삭도 포함이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이삭을 보고 약속의 씨라고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삭 안에 있는 예수의 생명을 보고 약속의 씨로 여기심을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우리 육신은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만약에 이 육신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문제가 심각해 질 수 있습니다. 이 육신은 한번 죽는 것이 정해져 있고 또 죽으면 썩어 없어진다고 성경이 말씀을 하고 있는데 하나님의 자녀가 죽어서 썩어 없어진다고 하면 우리의 구원은 거짓이 되고 만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저 윤주만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아닙니다. 제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이 있다고 해서 저 윤주만이라고 하는 사람은 절대로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윤주만은 아담의 씨고 죽으면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말씀을 하신 것과 같이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는 말씀과 같이 썩어서 흙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 흙입니다

썩어 없어지는 흙입니다 안개와 같이 잠시 보이다가 사라지는 흙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우리 인생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으로 생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사도 요한은 처음부터 영원한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이 생명이 있는 자를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제 안입니다

예수의 생명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저 윤주이라는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 안에 예수의 생명이 거하시기 때문에 그것을 굳이 구분을 하지 않고 하나님의 자녀라고 부르고는 있지만 저 윤주만이라고 하는 사람은 죽으면 썩어 없어집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일서 3:1절을 보겠습니다. (390)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니라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교회 안에 있다고 하나님의 자녀가 아닙니다. 로마서에서 사도 바울이 무엇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승리자입니다. 그러니까 구원을 받은 성도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라고 분명히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구원해 주신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자기들이 이스라엘 백성이라고 하면서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는 그들이 다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하나님의 자녀입니까?

반드시 예수의 생명이 거하고 있는 성도만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영의 생명이 없는 자는 그가 아무리 교회 안에서 모든 사람들로부터 성도라고 하는 소리를 듣는다 해도 그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말입니까?

사람이 인정을 해 주는 것입니까? 그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한다면 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가를 성경에서 증거를 받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사람의 감성에 따라 이야기를 하는 모든 말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사도 요한이 요한일서에서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가를 알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정말 우리는 이 사랑에 대해서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짐승과 다르지 않습니다. 정말 구더기 같고 벌레 같은 인생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그저 그렇게 살다가 어두움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우리 인생들을 사랑하셔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생명입니다

이것을 모르고 하나님의 사랑을 이야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썩어 없어지는 육체를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썩어 없어지는 그러니까 흠이 있고 점이 있는 그 육체가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한 생명을 주심으로 해서 우리가 영생을 할 수 있게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생명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 이름을 믿음으로 해서 우리에게 무엇이 오는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처음부터 이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그들이 생명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생명이 있어야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저 윤주만입니다

절대로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제가 아무리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살아간다고 해도 이 윤주만이라는 육체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아담의 자녀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죽으면 그것으로 끝이 나고 썩어 없어집니다.

 

사도 요한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만 알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도 알지 못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입니다

저 윤주만이라는 사람을 모릅니까? 제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제가 누구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도 요한은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에 대해서도 알지 못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해가 됩니까?

그러나 영의 생명에 대해서 알고 있는 성도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 성도는 이 말씀이 무슨 말씀인가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 안에 있는 생명에 대해서 세상은 알지 못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은 교회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이 시대 교회는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자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도 모르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습니까?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그렇다고 그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할 수 있습니까? 세상이 알지 못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자녀를 알지 못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를 알지 못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이 시대 교회를 그대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은 그 이름을 믿고 있다고 하면서 자기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었다고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에게 말씀을 하신 것과 같이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저 윤주만은 세상이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있는 제 안에 있는 예수의 생명에 대해서는 세상이 모르고 있습니다. 그들은 제가 이 예수의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해도 도무지 이해를 못하고 있고 받아들이려고도 하지 않고 도리어 이단이라고 공격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에 대해서 사도 요한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의 생명을 말씀을 하는데 그들은 모릅니다. 그리고 이 영의 생명이 사람들의 빛인데 그들은 어두움에 있어서 빛이 비추매 어두움이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합니다. 또한 사람들이 영접하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그런데 영접하는 자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앞에서 말씀을 한 모든 것을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에게 그러니까 예수의 생명이 있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그저 자기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하면서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13절을 보겠습니다. (142)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이들은 혈통에서나, 육정에서나, 사람의 뜻에서 나지 아니하고, 하나님에게서 났다.”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사도 요한이 이제 하나님의 자녀가 누군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분명하게 하나님의 자녀가 누군가를 말씀을 해 주고 있지만 사람들은 그저 교회 안에서 자기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으로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혈통입니다

육정입니다 이 모든 것은 사람의 뜻으로 난 자입니다 그러니까 저 윤주만을 누구의 뜻으로 났습니까? 이 시대 기독교인 중에는 샤머니즘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상을 보면서 자기가 한나와 같이 기도를 해서 아이를 낳았다고 하면서 사람의 뜻으로 낳지 않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기도해서 낳습니까?

그 기도를 누가 했습니까? 사람의 생각을 가지고 기도를 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께서 언제 성경에 기도를 해서 아이를 낳으라고 말씀을 했습니까? 아니면 환상으로 나타나셔서 직접 기도를 해서 낳으라고 말씀을 하셨습니까? 아니면 아브라함과 같이 직접 나타나셔서 내가 내년 이때에 아들을 주시겠다고 하셨습니까?

 

설령 그렇게 해서 났어도 마찬가지입니다

혈통이 무엇입니까? 그리고 육정이 무엇입니까? 혈통, 한 조상에서 비롯하여 그 피를 이어받아 내려오는 계통이라고 사전에서 말을 하고 있습니다. 육정, 인간의 몸에 관하여 느끼는 욕정이라고 사전에서 말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모두가 다 이렇게 태어났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의 뜻입니다.

우리 부모의 뜻에 의해서 태어났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부모는 낳기 싫은데 어디서 갑자기 생겨난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어찌 되었든 부모의 뜻에 의해서 태어났습니다. 그것이 바로 사람의 뜻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이를 낳고 싶습니다.

사람이 결혼을 하고 살면 당연히 아이를 낳고 싶어 합니다. 그것을 지금 사도 요한이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났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아무리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고 구원을 받아 내 안에 예수의 생명이 거하고 있을지라도 내 육신은 사람의 뜻으로 났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셨습니까?

성경 어디에서 하나님이 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그것은 다 영의 일에 대해서 예표로 보여 주시고 있는 말씀이지 우리 인생은 모두가 사람의 뜻으로 났습니다. 내 부모가 나를 낳기 싫으면 결혼도 하지 않았고 낳으려고 하지도 않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인생입니다

그것을 보고 하나님께 로서 났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어느 누구라 해도 다 사람의 뜻으로 났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우리는 사람의 뜻에 따라서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에 의해서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우리가 태어난 것이 아니라 사람이 그러니까 우리 부모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싶어서 낳습니다.

 

혈과 육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인생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다고 분명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신체의 구원을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 신체는 하나님께로서 난 자가 아니라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난 자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의 뜻으로 난 자입니다

그 사람은 절대로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습니다.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도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혈과 육으로 난 인생들이 천국에 간다고 하면서 천국에서 만나자고 말을 하고 있고 그 인생의 몸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겠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절대 그런 일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이 4절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생명이 누군가 하면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저 자기들이 교회 안에 있으면 이 성경의 문자를 아는 것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입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께로서 난 자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는 아담으로부터 해서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난 윤주만이라는 사람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 하나님께로서 난 자가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나님께로서 난 자가 바로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1:23절을 보겠습니다. (378)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입니다

이제 요한복음 3장에서 거듭남에 대해서 말씀을 할 예정입니다 그때 또 다시 한 번 말씀을 할 기회가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께로서 난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혈과 육에 속한 생명이 아니라 그러니까 우리 인생이 가지고 있는 생명이 아니라 영의 생명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거듭남입니다.

우리말로 쉽게 풀어서 말씀을 드립니다. 두 번 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한번 육체로 났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또 낳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거듭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요한복음 1장에서는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먼저 난 생명은 우리의 육체의 생명을 말씀을 하고 있고 두 번째 낳는 생명은 요한복음 1장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영의 생명입니다

 

하나님의 비밀입니다

바로 이 육의 생명과 영의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빛이 어두움에 비취매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이 영의 생명에 대해서 빛을 비취시고 있지만 사람들이 이 영의 일에 대해서는 너무도 어두워서 깨닫지를 못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저 윤주만입니다

이 생명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생명이 우리에게는 지금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는 실체와 같이 보이고 영의 생명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은 생명과 같이 생각이 되지만 이 육체의 생명은 실체가 아니라 그림자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육의 생명입니다

잠시 보이다가 사라지는 안개와 같습니다. 그 생명은 진짜가 아니라는 것을 성경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진짜 생명은 어느 생명인가 하면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 안에 있는 생명이 진짜 생명이고 그 생명은 영원한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혈과 육을 가지고 있는 우리 인생으로는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저 역시 이렇게 영의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제 안에서 믿음으로만 역사를 하고 있지 이것이 실감이 나지 않는다는 것을 말씀을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이 그렇게 말씀을 하고 있기 때문에 성경대로 믿어야 합니다.

 

내 이성입니까?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고 있습니까? 그리고 이 영의 생명에 대해서 받아들일 수 없습니까? 그래도 어떻게 합니까? 성경이 이 영의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우리에게 거듭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성경대로 거듭나야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내 생각입니까?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해서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을 그냥 무시를 하겠다고 하면 그는 차라리 하나님을 안 믿는 것이 그에게 더 유익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아니 내 생각을 가지고 하나님을 믿을 것 같으면 우리는 성경을 볼 필요도 없고 하나님께서는 괜스레 우리에게 성경을 주셔서 힘들게만 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저는 누가 뭐라고 해도 성경입니다 그리고 그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믿고 싶습니다. 성경을 무시하고 성경에서 말씀을 하는 것을 깨닫지를 못하면서 하나님을 믿고 싶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려면 확실하게 믿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역시 이스라엘과 같이 망하는 길로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께로서 날 수 있습니까? 그것에 대해서 성경은 분명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형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낳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이성적으로 어떻게 낳는가를 알고 있습니다. 성인이 되어서 남자와 여자를 알고 결혼을 하면 다 알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면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께로서 난 자 그러니까 거듭나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가 말씀을 합니다.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의 생명은 썩습니다. 그것은 거듭난 생명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썩지 않는 생명입니다

우리 이성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서 썩지 않는 생명이 어디 있습니까? 하다못해 생명이 없는 금속도 썩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생명이 썩지 않는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까?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이 썩지 않은 생명으로 거듭나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것을 요한복음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경은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아는 것으로 우리에게 거듭난 생명이 거하게 되고 이 생명은 우리가 이해할 수 없지만 썩지 않고 영원히 산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왜 기록했습니까?

바로 이 생명을 얻으라고 기록했습니다. 이 생명에 대해서 우리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 생명은 영의 생명입니다 사람의 언어로 표현이 안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생명에 대해서 믿게 하기 위해서 이 성경의 모든 예표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약속을 하시고 그것을 이루시는 모든 일들을 통해서 이 영의 생명을 믿게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 믿음입니다.

우리 안에서 역사를 함으로 해서 우리 안에 예수의 생명이 거할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생명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교회에 나와서 평생을 신앙생활을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다고 하는 사람도 이 영의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면 처음 들었다고 하면서 너무 어렵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어렵습니까?

그것이 아닙니다. 다만 그들이 이 생명에 대해서 처음 들었기 때문에 어렵게 느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서 처음부터 이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기독교라는 종교에서는 이 생명에 대해서 말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 영에 대해서는 신학교에서부터 두루뭉술하게 넘어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요한일서 3:9절을 보겠습니다. (390)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

 

거듭나시기 바랍니다.

어떻게 거듭날 수 있습니까? 그것을 사도 베드로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항상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가 거듭날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거듭난 생명은 썩지 않는 영원한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입니다

반드시 이 생명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 성도만이 하나님께로서 난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시대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해서 이 생명에 대해서 빛을 보게 하시고 우리 안에 성령으로 난 영이 거하시게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입니까?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그냥 내가 하나님께로서 난 자라고 해서 하나님께로서 난 자가 될 수 있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서 난 자가 누군가를 알게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이 그것을 요한일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죄를 짓지 않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죄를 짓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니까 마치 이 세상에서 도덕적으로 짓는 죄를 말씀을 하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하나님께로서 난 자라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 율법을 지키는 죄를 짓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께로서 난 자입니까?

그럼 죄를 짓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어떤 죄를 짓지 않고 살아가고 있는가 하면 교회 안에서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하는 죄를 짓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 그대로의 율법을 지키는 죄를 짓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께로서 난 자인가를 바로 아시고 예수의 생명이 거하시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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