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요한복음 강해

3강, 요1:5.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윤주만목사 2019. 4. 21. 21:20


3,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요한복음 1:5절을 보겠습니다. (142)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반드시 그의 안에 있는 생명이 나에게 있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을 시작하면서 그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나서 바로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태초에 있는 생명입니다

이 생명이 얼마나 소중하다는 것은 제가 굳이 말씀을 안 드려도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생명에 대해서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예수 안에 있는 생명과 자기 육체의 생명을 연결 지어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육체의 생명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안에 있는 생명이 있습니다. 이 생명은 전혀 다른 생명이라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 두 가지의 생명이 있다는 것에 대해서 이 시대는 아무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저 생명이라고 하면 다 생명이 되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두 개의 생명입니다

우리는 육체의 생명이 있습니다. 그 생명은 야고보서의 말씀과 같이 잠깐 보이다가 사라지는 안개와 같은 생명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육체가 살아 있는 동안에만 있다가 죽으면 그것으로 끝이 나고 사라져 버리는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거의 모든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이 생명이 천국에 가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절대 아닙니다.

이 생명은 죽으면 썩어 없어진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썩어 없어지는 생명으로는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얻을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육체의 생명이 천국에 가는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기독교라는 신학교에서 모두가 그렇게 가르치고 있기 때문에 성경을 봐도 깨달을 수 없습니다.

 

우리 성도입니다

반드시 거듭나야 합니다. 그것은 내 육체의 생명이 아니라 태초에 있는 생명으로 다시 나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주님께서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라고 말씀을 하면서 이 영의 생명으로 거듭나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이 거듭남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아니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듣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구원을 받았다고 하면서 영생을 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영원한 생명도 없는 그들이 육체의 생명을 보면서 그 육체의 생명으로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행위를 하는 것으로 구원을 받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이 영의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혈과 정을 끊어버리지를 못하고 육체를 가지고 천국에 들어가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태초에 있는 영의 생명에 대해서 알고 믿음으로 성령의 역사로 우리 안에 이 영의 생명이 거하게 하심으로 구원을 하시고 있지만 이 영의 일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입니다

우리 인생들 모두가 구원을 받기를 원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성경을 보면서도 이 영의 생명에 대해서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아니 거대한 종교의 교리에 묶여서 영의 생명이 있는지도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의 안에 생명이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해서 우리가 그의 안에 생명을 얻을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의 안에 있는 생명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이 생명이 나에게 있어야 구원을 받을 수 있는데도 이 생명을 모르니까 생명을 사모하는 마음도 없습니다.

 

믿음입니다.

내가 교회 안에서 아무리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 뭐 합니까? 이스라엘이 성경을 보고 하나님을 믿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 생명에 대해서 전혀 몰랐습니다. 구약 성경을 보고 있는 그들이 이 생명에 대해서 몰랐다는 것은 그래도 이해가 가지만 이제 명확하게 이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는 신약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모른다는 것은 사실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이 구약을 보고 이 생명에 대해서 안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성경을 상고하면서 지혜를 구하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면 충분히 알 수 있는데도 이스라엘보다 더 성경을 문자적으로 보고 자기들의 이성을 따라 성경을 해석하고 있습니다.

 

영이요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에서 복음을 듣고 믿으면 성령이 우리 안에 오시고 그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그리스도의 영이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이 생명이 영원한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생명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태초에 있는 생명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 어렵습니까? 절대로 그렇지가 않습니다. 마치 우리가 어두운데 있다가 빛을 보는 것과 같이 쉽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시고 그 성령을 받은 사람이 예언의 은사가 있어서 그가 이 생명에 대해서 전하면 듣고 믿으면 됩니다.

 

어렵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을 어렵게 하지 않았습니다. 고아도 구원을 받을 수 있고 과부도 구원을 받을 수 있고 가난한 자도 구원을 받을 수 있게 빛을 비춰주시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기들의 이성으로 생각을 하면서 이 빛을 보는 것을 꺼려하고 있습니다. 아니 빛을 애써 안 보려고 하고 있습니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니, 어둠이 그 빛을 이기지 못하였다.”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고 말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생명이 있는데 이 생명은 사람들에게 빛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다른 의미도 있겠지만 빛을 보는 것과 같이 우리는 이 생명을 쉽게 얻을 수 있다는 뜻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빛을 못 보고 있습니다.

 

빛입니다

이 빛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빛이라는 단어를 보고 한 가지로만 생각하기에는 너무 의미가 다양하게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빛이라는 단어를 보고 한 가지로 말을 하면서 모든 것을 다 이것이다 라고 하기에는 빛이라는 단어가 의미하고 있는 내용이 많다는 것을 성경에서 보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쉽게 생각하지마시기 바랍니다. 저 역시도 강해나 설교를 쓸 때는 많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때로는 사람인지라 성경과 다른 의미로 말씀을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다시 확인을 하는 과정에서 그런 것들을 어느 정도는 발견을 하고 수정을 하고 있습니다.

 

이 빛이라는 단어도 그렇습니다.

요한복음 강해를 시작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는 말씀으로 시작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이 빛에 대해서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는데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4절에서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저도 국어를 잘 모릅니다.

그래서 한글개역성경을 볼 때마다 조금 답답한 면이 있습니다. 바로 이런 조사를 잘 이해를 못하기 때문에 성경을 풀 때 어려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국어를 조금 더 잘 알고 있다면 그래도 어느 정도는 쉽게 성경을 풀 수 있다고 생각을 하는데 그렇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저는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가 보고 있는 한글개역성경은 정말 잘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오히려 국어를 너무 모르고 있지 않은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국어도 모르는 그들이 히브리어와 헬라어를 배우다 보니까 성경은 더 난해해질 수밖에 없고 성경을 해석하는 사람들의 생각이 각각이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람에게 빛입니다

이 빛을 봄으로 해서 우리가 생명에 대해서 알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에게 이 빛이 비추는데 그 빛을 보면 사람들은 생명을 볼 수 있고 그 생명에 대해서 알 수 있고 믿을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일서1:5절을 보겠습니다. (388)

우리가 저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이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하나님이라는 것을 먼저 알고 이 요한복음의 강해를 들어야 한다고 저는 말씀을 드립니다. 1-2강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라는 것을 집중적으로 말씀을 드렸습니다. 먼저 그것을 알고 요한복음을 보아야지 그것을 모르고 삼위일체의 사상에 빠져서 요한복음을 보면 도무지 깨달을 수 없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입니다

그가 쓴 성경에 대해서는 우리 성도들이 다 알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요한일서, 요한이서, 요한삼서, 그리고 요한계시록입니다 요한계시록은 내세의 일을 그리고 환상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용이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머지 성경은 내용을 보면 사도 요한이 기록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요한일서입니다

요한복음하고 거의 비슷하게 시작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은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라고 시작을 하고 있고 요한일서는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은 태초에 말씀이라고 하고 있고 요한일서는 태초에 생명의 말씀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빛이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빛에 대해서 바로 알아야 합니다. 물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세상에 빛으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역시도 빛이라고 말씀을 하고 주님이 오셔서 그것을 사도들에게 전하시고 사도들이 이제 우리에게 다시 전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빛에 대해서 알아야 합니다.

지금 성경은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모든 성경은 영원한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저 빛이라는 헬라어의 단어를 보고 그냥 막연하게 빛이라고 하면 성경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생명입니다

요한복음에서도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요한일서에서도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 말씀을 하고 난 후에 하나님은 빛이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영원한 생명에 대해서 하나님은 빛이시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입니다

왜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셨습니까? 그리고 우리 인생들을 지으셨습니까? 그것은 단 한 가지입니다 바로 이 태초에 있는 생명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그것 외에는 이 세상을 창조하실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계실 수 있는 분이고 또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불위하신 분입니다

 

그런 하나님입니다

그분께서 우리 인생들을 창조하신 단 하나의 이유는 우리 인생들을 통해서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해서 태초에 있는 생명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서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우리 인생들을 진토로 지으셨습니다. 먼저 이것을 알고 나서 빛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어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이런 기초입니다

기초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그저 빛이라는 단어를 보고 그것을 이해하고 깨닫는다는 것은 사실 쉽지가 않습니다. 그저 성경에 단어로 기록이 되어 있고 그 단어의 의미를 어느 정도 아는 것으로 막연하게 빛이라고 하는 것은 생명에 대해서 우리가 바로 알 수 없는 일이 되고 맙니다.

 

하나님은 빛입니다

왜 빛 이신가를 알아야 합니다. 어느 것에서 빛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바로 이 태초에 있는 생명에 대해서 빛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인생들이 구원을 받는 그 영원한 생명에 대해서 모든 것이 빛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생명을 우리에게 주시는 일을 하시는 분으로서 그분은 빛이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생명이 있습니다.

우리 인생의 생명이 아니라 태초에 있는 생명입니다 그 생명은 하나님 안에 있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생명에 대해서 빛이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기를 원하시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은 빛이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6:18절을 보겠습니다. (358)

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치 못할 사실을 인하여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하여 가는 우리로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그것은 우리 인생들에게 천국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천국을 주시겠다는 것은 다시 말씀을 드리면 영원한 생명을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시고 우리 인생을 지으실 때부터 이것을 위해서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이 약속입니다

이것에 대해서 히브리서에서는 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치 못할 사실을 인하여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하여 가는 우리로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인생이 영생을 얻기 위해서 소망을 얻으려고 피하여 가는 우리에게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분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성경입니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이것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생명에 대해서 하나님은 거짓말 하실 수 없는 분이라는 것을 우리가 믿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거짓말 하실 수 없는 분이라는 것을 우리가 믿기 때문에 소망을 얻으려고 피하여 가는 우리로 큰 안위를 받게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서 말씀합니다.

우리가 이 소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가나니 그리로 앞서 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 가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주님께서 먼저 이 영원한 생명에 대해서 밝히시는 본을 보여 주심으로 해서 우리가 안위를 받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생명입니다

태초에 있는 생명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인생들이 가지고 있는 생명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이 생명은 영원한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을 통해서 계속해서 이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거짓말을 하실 분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이 생명을 바라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이 생명에 대해서 알고 그 빛에 비췸을 입음으로 해서 이 생명을 얻고자 피하여 가는 우리에게 안위를 주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어떻게 안위를 주시고 있는가 하면 휘장 사이로 난 길로 먼저 주님께서 들어가심으로 해서 우리 역시 그렇게 이 영원한 생명에 대해서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생명의 빛입니다

이 생명을 우리가 얻는데 있어서 하나님은 빛이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빛이라는 것을 먼저 알고 우리는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 생명에 대해서 빛이시기 때문에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하나님을 믿으면 우리는 어두움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생명에 대해서 어두움이 조금도 없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들에게 빛으로 비춰주시고 있습니다. 그 빛을 보면 우리는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빛이신 하나님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빛입니다

무슨 빛이신가 하면 생명에 대해서 빛이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에서 하나님을 알아가고 있습니다. 왜 알아가고 있는가 하면 그분은 빛이시기 때문에 그 빛을 보고 따라가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 빛에 비췸을 얻으면 생명을 얻을 수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말씀합니다.

요한복음에서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생명을 얻으려면 우리 인생들이 이 빛을 보고 생명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빛을 본다는 것은 빛을 봄으로 해서 알아간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빛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도 내가 참 빛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생명에 대해서 그렇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에서 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아는가 하면 우리는 이 빛을 통해서 알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원한 생명입니다

그 생명을 우리는 얻어야 합니다. 어떻게 얻어야 하는가 하면 빛을 보고 얻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빛이 무엇인가 하면 성경은 주의 말씀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말씀을 하신 것과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하신 모든 일들이 우리에게 빛이 되고 있고 그 빛을 보면 생명을 얻을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우리 사람들은 빛을 보고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 빛이 누군가 하면 바로 하나님이고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빛과 같이 비춰주시고 있습니다. 어두움에 있는 우리 인생들에게 참 빛을 비춰주시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빛이 어두움에 비췹니다.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당연히 그 빛을 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이것이 영의 일이다 보니까 사람들이 이 빛을 볼 수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빛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참 빛입니다 그런데 이 빛이 우리가 눈으로 보는 빛이 아니라 영의 일이기 때문에 우리 인생들이 이 빛을 깨달을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상식입니다

어두움에 있습니다. 그 가운데 빛이 비췹니다. 그러면 어두움에 있는 사람은 당연히 그 빛을 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빛이 영의 일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이 빛을 보고도 깨달을 수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상식적으로는 빛을 보면 사람들은 그 빛을 보게 되어 있지만 성경은 영의 일이라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창세기1:3절을 보겠습니다. (1)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하나님입니다

태초에 가장 먼저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생명을 볼 수 있는 빛을 가장 먼저 있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빛을 먼저 있게 하시고 나서 이 세상을 지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천지를 창조 하셨습니다.

가장 먼저 하신 일이 바로 빛입니다 이 빛을 통해서 하나님을 볼 수 있게 그러니까 생명에 대해서 알 수 있게 하셨습니다. 이 빛을 창조하심으로 해서 생명에 대해서 나타내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6일 동안 이 세상에 모든 것을 지으셨습니다. 그리고 아담과 하와를 에덴동산에 있게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빛입니다

태양이 아닙니다. 창세기를 보면 태양과 달과 별이 지어지는 것을 이어서 볼 수 있습니다. 그 태양의 빛이 아니라 이 빛은 하나님이 먼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빛에 대해서 바로 이해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왜 빛을 먼저 창조를 하셨는가 하면 바로 우리를 구원하신다는 것을 약속으로 빛을 창조 하셨습니다.

 

영원한 생명입니다

에베소서에서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우리를 예정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인생들을 구원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예정이 있었고 그것을 가장 먼저 빛으로 보이셨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기로 작정을 하셨습니다.

 

에덴동산입니다

동산 중앙에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두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빛을 통해서 생명을 알 수 있게 하셨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이 빛에 비췸을 받았음으로 해서 영원한 생명에 대해서 알았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의 체질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게 되어 있습니다.

 

빛이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아담과 하와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었다는 것을 성경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그대로 또 요한복음에서 빛이 어두움에 비추되 어두움이 깨닫지를 못하더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빛을 보면 그 빛을 보아야 하는데 이것이 영의 일이다 보니까 우리 인생들은 깨달을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도 마찬가지입니다

분명히 빛을 보았습니다. 아니 그 빛 아래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은 영의 일을 깨달을 수 없습니다. 아니 영의 생명에 대해서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들에게 빛을 비춰주시고 있지만 그리고 하나님 자체가 빛이시지만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이 빛을 못 보고 있습니다.

 

왜 못 봅니까?

인생의 눈으로 볼 수 있는 빛이 아닙니다. 영의 일이기 때문에 아무리 빛이 비추어도 그것을 볼 수 있는 능력이 사람에게는 없습니다. 아니 지혜가 사람에게는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이 세상에 그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오셔서 빛이 어두움을 비추었지만 어두움이 깨닫지 못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빛입니다

모든 성경은 비유와 예표로 보여 주시고 있습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이 빛을 창조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장 먼저 하신 일이 빛을 창조하셨는데 이 빛이 바로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는 그 빛을 의미를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인생들에게 태초에 있는 생명을 주시기 위한 모든 예정을 이 빛을 통해서 보여 주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빛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도 내가 빛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요한복음을 시작하면서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유일하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먼저 알고 믿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스스로가 빛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을 구원하신다는 의미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우리 인생은 이 빛을 볼 수 없습니다. 아니 깨달을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서 이 빛을 비춰주시고 있지만 사람들이 성경을 보면서도 빛을 도무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영의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빛은 비춰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빛을 못 보고 있습니다. 어디를 통해서 이 빛이 비춰지고 있는가 하면 성경을 통해서 이 빛이 비춰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는 사람들이 이 빛을 보기보다는 어두움에 있어서 깨닫지를 못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전도서8:17절을 보겠습니다. (956)

하나님의 모든 행사를 살펴보니 해 아래서 하시는 일을 사람이 능히 깨달을 수 없도다 사람이 아무리 애써 궁구할지라도 능히 깨닫지 못하나니 비록 지혜자가 아노라 할지라도 능히 깨닫지 못하리로다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그리고 그분이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생명은 영의 생명입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은 육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육과 영의 차이를 여러분이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것의 차이를 설명한다는 것 자체가 이상하겠지만 육은 영을 도무지 깨달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창조주입니다

그리고 피조물입니다 그 차이가 얼마나 큰 가를 우리가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지금 우주를 보고 있습니다. 최근에 과학자들에 의해서 밝혀진 것이 암흑물질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은하와 은하 사이에서 중력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 우주를 보고 있습니다.

우리 인간이 볼 수 있는 것은 그저 빛입니다 그 빛만을 보고 있다가 이제 겨우 암흑물질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것도 대단한 발견이라고 천문학계에서는 일대의 사건으로 규정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 우주에서 생명의 근원을 찾겠다고 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어느 누구도 그것에 대해서는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찾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생명의 근원입니다 그러니까 생명이 있었는가 없었는가와 생명이 존재를 하고 있는가를 찾고 있습니다. 그 생명이 다 무슨 생명입니까? 육에 속한 생명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육에 속한 생명을 찾는 일도 어렵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물론 우리 인간들이 우주를 탐사하기 시작한 것이 불과 100년도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것이 인생입니다

미디어에서 방송을 할 때 우주에 대한 것을 할 때는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 인생의 존재라는 것이 얼마나 미약하다는 것을 잘 느낄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창조주의 생명과 우리 인생이 겨우 100년을 살고 죽는 생명은 너무도 큰 차이가 있습니다. 마치 빅뱅이 있었던 135억 년의 차이와 같다고 보면 맞을 것 같습니다

 

상상이 안 됩니다

저는 늘 그렇게 생각을 하면서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제가 아무리 지혜가 있다고 해도 사람의 지혜로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을 수 없다는 것을 인정을 하고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기들에게 있는 알량한 지혜와 지식을 가지고 성경을 보려 하고 있고 하나님에 대해서 알려고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입니다

빛으로 우리에게 비추어 주시고 있습니다. 영원한 생명에 대해서 비추어 주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그것을 볼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아니 깨닫지를 못한다는 것을 먼저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도 요한이 그것을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스라엘이라서 깨닫지를 못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인생 전체가 다 깨닫지를 못한다는 것을 인정을 해야 합니다.

 

우리 인생입니다

다 어두움에 있습니다. 어두움에 있는 인생들은 하나님이 하시는 영의 일을 깨달을 수 없다는 것을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깨달을 수 있다고 하는 사람이 더 이상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볼 때 그 말씀에 대해서 인정을 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이라서 그들이 깨닫지를 못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인생 전체가 다 깨닫지를 못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빛이 비췹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것을 우리 인생이 깨달을 수 있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다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영의 일에 대해서 영의 생명에 대해서 그렇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심지어는 어떻습니까? 주님께서 제자로 부르신 사람들도 성령이 오시기 전에는 어렵다고 하면서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육을 가지고 있는 인생과 영이신 하나님의 차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을 구원하시는 일을 우리 인생의 지혜로는 도무지 깨달을 수 없습니다. 비록 빛이 성경을 통해서 비추고 있지만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이제 요한복음에서 성령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성령에 대해서는 나중에 충분히 말씀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영의 일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을 구원하셔서 우리에게 태초에 있는 생명을 주심으로 해서 우리가 영생을 하는 일입니다 이 일은 마치 우리가 저 우주를 보는 것과 같습니다. 지금 인생들이 보고 있는 우주 뒤편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는 것과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주를 눈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 빛을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빛만 보고 우리가 별들에 대해서 다 깨닫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바로 이와 같이 육의 사람이 영이신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깨달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비록 성경을 통해서 그 빛을 비춰주시고 있지만 성경을 본다 할지라도 우리는 그것을 깨달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깨닫지 못하더라

우리는 어떻게 해도 깨달을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만 깨닫지를 못하는 것이 아니라 이 시대 기독교인 역시 깨달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가 아무리 지혜가 있어서 세상에서 천재라는 말을 듣는 사람이라고 해도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기본적인 생각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인정을 하면서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이 시대 목사들은 자기들이 신학이라는 곳에서 아주 조금 배운 것으로 마치 성경의 모든 말씀을 다 아는 것과 같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자의 이야기와 같은 가를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입니다

성경이 그렇다고 하면 그런 것으로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는 깨달을 수 없으니까 포기를 해야 합니까? 그래서 성경은 지혜를 구하라고 하고 있고 또 주님이 오셔서 성령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성령이 오시면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 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혜가 있습니까?

신학을 공부를 했습니까? 제발 웃기는 이야기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런 것으로 우리가 빛을 볼 수 있다면 이 시대 기독교라는 종교가 태어나지도 않았고 이스라엘은 다 하나님을 잘 믿었고 그들이 주님으로부터 저주를 받지도 않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뭐라 합니까?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에서 이 세상 초등학문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다 이 세상 초등학문에 빠져서 영의 일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빛으로 오셔서 우리에게 빛을 비춰주시고 있지만 사람들은 그 빛을 도무지 못 보고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 인생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또 인정을 하면서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저는 그렇습니다.

제가 물론 세상적으로 지혜자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공부를 많이 한 사람도 아닙니다. 그러나 성경을 볼 때는 제가 가지고 있는 아주 작은 지혜라도 지식이라도 다 내려놓고 성경을 보면서 지혜를 구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려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먼저 성경을 인정하시기 바랍니다.

성경도 인정하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을 믿을 수 있고 하나님에 대해서 알 수 있습니까? 성경에서 지혜자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깨달을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도 요한은 빛이 어두움에 비추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이 성경입니다

그러면 그것을 먼저 받아들이고 성경을 봐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 인생은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인정을 하면 그때는 하나님께 성령을 구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마치 교회에만 나와서 주여 주여 하면 성령을 받은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자기들 마음대로 해석을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44:18절을 보겠습니다. (1022)

그들이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함은 그 눈이 가리워져서 보지 못하며 그 마음이 어두워져서 깨닫지 못함이라

 

 

예수 그리스도

빛이 어두움을 비추매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는 이 말씀을 보고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까? 성경을 보면서 아니 요한복음을 보면서 사도 요한이 말씀을 하고 있는 이 생명의 빛에 대해서 모르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다 압니다.

그저 표면적으로 보이는 문자의 뜻은 누구나 다 알고 있습니다. 빛이 어두움을 비추매 어두움이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무엇에 대해서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까? 이 영의 생명에 대해서 깨닫지를 못하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우리를 위해서 구속을 이루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영의 일을 모른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표면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모른다는 것이 아니라 영의 일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함은 그 눈이 가리어져서 보지 못하며 그 마음이 어두워져서 깨닫지 못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상을 섬기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우상이라는 것을 그들은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보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어떤 눈이 가리어져서 못 보고 있습니까? 영원한 생명에 대한 영의 일에 있어서 눈이 가리어져서 보지 못하고 그 마음이 어두워져서 깨닫지를 못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말씀을 드립니다.

성경은 영의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사도 요한이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것이 영의 생명인지 육의 생명인지도 이 시대는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이 생명에 대해서 빛으로 비추고 있지만 사람들은 이 빛을 보고도 그러니까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보고도 이 생명에 대해서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만의 일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무엇이 우상이라는 것을 몰랐겠습니까? 그들은 우상이 무엇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 시대도 우상이 무엇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알고 있는 우상을 하나님께서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영의 생명을 얻을 수 없게 하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하고 있는 행위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이사야 말씀 그대로입니다 이 시대 역시 사도 요한이 말씀을 하고 있는 요한복음을 보고 있지만 그들이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함은 그 눈이 가리어져서 보지 못하며 그 마음이 어두워져서 깨닫지 못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실상입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을 하고 있는가 하면 자기들이 이 영의 생명에 대해서 알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우상에 대해서 알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빛을 보고도 깨닫지를 못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하나님을 믿으면서 구원을 받기를 사모한다고 하는 그들이 그 눈이 가리어져서 보지 못하며 그 마음이 어두워져서 깨닫지 못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바로 보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는 성경을 보는 시각부터가 바뀌지 않으면 안 됩니다 아니 성령이 그들에게 오시지가 않아서 이스라엘과 똑같이 성경을 보고 있으면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주여, 주여 하고 있고 자기들에게 영원한 생명이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 태초에 있는 생명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는 그들이 그저 생명이라는 단어만 보고 그렇게 말을 하고 있습니다.

 

또 어떻게 생각합니까?

이스라엘은 깨닫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자기들은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 주셔서 깨닫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깨닫고 있다고 하는 그들이 영의 생명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자기들의 신체가 구원을 받는다고 하면서 천국에서 만나자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 신체를 가지고 주님을 만나겠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성경으로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성경에서 그렇다고 하면 이스라엘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나 역시 그렇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이 영의 생명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으로 빛을 보고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기독교 교리입니다

그 교리부터 버리지 않으면 여러분은 다 멸망의 길로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칼뱅주의입니까? 알미니안주의입니까? 그런 것은 다 쓰레기로 버리시기 바랍니다. 저는 신학교에서 배운 기독교조직신학을 다 버린 사람입니다 그것을 보고 성경에서 이 영의 생명에 대해서 안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빛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는데 있어서 빛입니다 그러니까 완전하게 우리를 구원하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그 빛이 성경을 통해서 비춰지고 있지만 영의 일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이 빛을 볼 수 없습니다. 이사야의 말씀과 같이 그 눈이 가리어져서 보지 못하며 그 마음이 어두워져서 깨닫지 못하고 있으면서도 그저 성경의 문자를 아는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온갖 일을 다 하고 있습니다.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깨닫지를 못하면 어떻게 됩니까? 사망에 이른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이 생명에 대해서 빛을 비춰주시고 있지만 깨닫지를 못하면 주님의 말씀과 같이 바깥 어두운 곳에 쫓겨나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깨달을 수 없습니다.

내 지혜로는 우리 인생의 지혜로는 깨달을 수 없습니다. 겨우 어느 정도인가 하면 천문학자들이 저 우주에 있는 별을 빛으로 보고 아는 정도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정도로는 아무 것도 깨달을 수 없습니다. 이 생명에 대해서 깨달으려면 반드시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어떻게 성령을 받는가도 모르고 있고 자기가 성령을 받았는지도 안 받았는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2:14절을 보겠습니다. (265)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

 

잠언 4:19절을 보겠습니다. (915)

악인의 길은 어둠 같아서 그가 거쳐 넘어져도 그것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느니라

 

육에 속한 사람입니다

누가 육에 속한 사람입니까?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구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 자랑하지 못하게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미 초대 교회 안에도 이렇게 육에 속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성령의 일입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오셔서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이 시대는 성령이 오셔서 하시는 일도 모르고 있습니다. 성령이 오셔서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를 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진리가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입니다 진리의 하나님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주님께서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령이 오시면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왜 알게 하시는가 하면 그것이 영생이기 때문입니다

 

영의 생명입니다

이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진리의 성령을 보내 주시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빛이 비추어도 우리의 지혜는 어둡기 때문에 깨달을 수 없어서 하나님께서 진리의 성령을 보내 주시면 우리 안에서 일을 하게 된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무슨 일을 합니까?

진리에 대해서 가르쳐 주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육에 속한 사람은 그러니까 교회 안에서 육체의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못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육체에 속한 사람에게는 성령이 오실 수 없고 성령이 오시지 않으면 그는 이 영의 생명에 대해서 깨달을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에 속한 사람입니다

교회 안에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고 있지만 육에 속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잠언에서는 악인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악인인가 하면 사도 바울이 로마서 7장에서 내가 마음으로는 선을 행하고 싶지만 내 속에는 선한 것이 없어서 도리어 악만 행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악인이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사람이 하고 있는 모든 행위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하고 있는 행위가 그렇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의 행위가 그러니까 자기가 복음을 전하면서 하는 행위까지도 악이라고 규정을 하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입니다

우리 인생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다 무엇을 하고 있는가 하면 악만 행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잠언에서 악인의 길은 어둠 같아서 그가 거쳐 넘어져도 그것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느니라 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구에게 하고 있는 말씀인가 하면 교회 안에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모든 사람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악인입니다

성경에 이 악인에 대해서 얼마나 많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그가 거쳐 넘어져도 그것이 무엇인지를 깨닫지를 못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거쳐 넘어져도 그것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누구에게 하는 말씀입니까?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모든 사람에게 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런데도 거쳐 넘어져서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른다고 한 그 말씀 그대로 교회 안에 있는 악인들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아니 도리어 예수 그리스도를 아주 잘 믿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고 서로 자랑을 하면서 성도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어두움이 깨닫지 못 합니다

이스라엘만 어두움에 있습니까? 그렇게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 역시 거의 모든 사람들이 다 어두움에 있습니다. 어두움에 있으면서도 자기가 어두움에 있는 줄을 모르기 때문에 빛이 비추어도 그것을 깨달을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악인의 길입니다

어두움 같아서 그가 거쳐 넘어져도 그것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도 요한의 말씀과 같이 빛이 어두움에 비추매 어두움이 깨닫지 못한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빛이 무엇인지 어두움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로마서 2:19절을 보겠습니다. (241)

네가 율법에 있는 지식과 진리의 규모를 가진 자로서 소경의 길을 인도하는 자요 어두움에 있는 자의 빛이요

 

로마서 3:20절을 보겠습니다. (243)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어두움이 깨닫지를 못했습니다.

누구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주님께서 이스라엘에 오셨습니다. 그러나 그 이스라엘이 어두움에 있어서 깨닫지를 못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영의 생명의 빛을 가지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러니까 영의 생명에 있어서 빛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주님이 오셨을 때 그들은 어두움에 있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오셔서 이 영의 생명에 대해서 빛으로 비춰주셨지만 어두움에 있는 사람들이 깨닫지를 못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어떤 어두움에 있었는가 하면 율법을 지키는 어두움에 있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입니다

그것이 왜 어두움입니까? 이 시대는 율법이 어둡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율법이 왜 어두움인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이 율법의 문제가 먼저 해결이 되어야 영의 생명에 대해서 깨달을 수 있는데 율법이 어둡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생명입니다

주님이 태초에 이 영의 생명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이 영의 생명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셔서 구속의 일을 이루셨습니다. 그 중에서 주님께서 하신 일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율법을 완전케 하심으로 해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입니다

 

의롭다 하심입니다.

주님은 율법을 완전케 하셨습니다. 그분은 죄가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럼으로 해서 의롭다 하심을 받으셨습니다. 어떻게 의롭다 하심을 받으셨는가 하면 육체로는 십자가에서 죽이심을 당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주님이 가지고 계시는 영의 생명이 의롭다는 것을 확인을 했다는 말씀입니다

 

영의 생명입니다

이 생명은 점도 없고 흠도 없는 생명입니다 그런데 이 생명을 누가 증거를 해 주었는가 하면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의인으로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으셨습니다. 그러니까 주님의 생명이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는 말씀이며 의롭다 하심을 받은 그 생명은 영원한 생명이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태초에 이 생명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이 생명의 말씀을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다 이루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사도 요한이 요한일서에서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 이 생명이 나타나신바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원한 생명입니다

이 생명을 우리가 보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모든 선지자들이 이 생명에 대해서 증거를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 우리가 이 생명에 대해서 성경에서 보고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믿고 있고 그 믿음이 우리의 실상이 되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생명입니다

우리가 빛을 보고 생명에 대해서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우리 안에 영이 탄생이 되었습니다. 이 영이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무엇인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태초에 있던 생명에 대한 말씀에 대해서 이 세상에 오셔서 나타나신바 되었고 이제 그 생명을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해서 우리 안에 거하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이 생명입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생명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것을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의롭다 하심을 받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생명에 대해서 사도 요한은 우리에게 증거를 해 주고 있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이 생명이 우리 안에 거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태초에 있는 생명입니다

이 생명은 의로운 생명입니다 의로운 생명은 죽지를 않습니다. 이 생명을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해서 그러니까 주님께서 이 생명의 빛에 대해서 우리에게 비춰 주시는데 우리가 성령의 감동으로 이 생명에 대해서 믿음으로 해서 이 생명이 우리 안에 거하는 역사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씀을 드립니다.

성경은 이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우리 성도들에게 이 생명을 얻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우리 인생들에게 하나님께서 하신 명령이고 우리는 반드시 이 명령을 지켜야 합니다.

 

 

율법입니다

이스라엘이 모두가 율법주의에 빠져 있었습니다. 주님이 오실 때 이스라엘은 율법주의의 정점에 있었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그 율법을 지키는 행위를 어두움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율법을 지키는 것이 어두움에 있는 것인가 하면 그 율법으로는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기 때문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빛이 아무리 비추어도 깨달을 수 없습니다. 율법을 단 한 가지라도 문자적으로 지키는 사람은 성경을 아무리 보아도 이 빛에 대해서 깨달을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이 빛이 어두움에 비추매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문제

이제까지 그리스도편지에서 충분히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런데도 이 율법에 대해서 모른다면 그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는 이상은 빛이 아무리 비추어도 어두움이 깨닫지를 못한다고 성경은 정의를 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생명의 빛으로 오셨습니다.

그러니까 영의 생명에 있어서 이 세상에 오셔서 그것에 대해서 증거를 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율법을 지키고 있는 이스라엘에게는 이 빛이 비취고 있지만 그들은 이 영에 생명에 대해서 깨달을 수 없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에 대해서 늘 말씀을 드리지만 현재 진행형입니다 성경은 그때에 있었던 일만을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 시대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어두움에 있어서 빛을 보고도 깨닫지 못했다면 이 시대 이방인들 역시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 있지만 깨닫지를 못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어두움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뒤에서 말씀을 하겠지만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하기 때문에 깨달을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은 전체를 말씀할 때도 율법입니다 그리고 어느 한 가지를 말씀을 할 때도 율법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기독교인입니다

그들은 요한복음의 말씀을 보고 어떻게 생각을 합니까? 자기들은 빛을 보고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들이 어두움에 있지 않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말인가를 모르고 그저 성경의 문자만을 아는 것으로 성경의 문자를 보는 것으로 이해를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율법입니다

반드시 의롭다 하심과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성도로서 이 세상에서 살기 위해서 율법을 지킨다는 말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로마서에서 율법을 왜 지키는가에 대해서 분명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으로는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나는 아닙니까?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아니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다면 그는 성경을 왜 보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그것도 로마서에서 사도 바울이 율법으로는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말씀은 율법을 지키는 사람은 다 의롭다 하심을 얻으려고 지키고 있다는 말씀과 같습니다.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율법을 지키는 이스라엘을 어두움에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생명에 대해서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없는 것을 어두움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이스라엘은 율법을 지키면서 영의 생명에 대해서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없는 상태에 있으면서도 이 영의 생명에 대해서 빛으로 오신 주님을 보고도 깨닫지를 못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나는 율법은 안 지킵니까?

이 시대 기독교인 중에는 율법을 안 지킨다고 오해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율법은 어느 한 가지를 지켜도 율법을 전체를 지킬 의무가 있다고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어느 한 가지라도 율법을 지키고 있으면 그는 율법 전체를 지킬 의무가 있고 그것을 다 지키지 못하면 생명을 얻을 수 없고 그것을 어두움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아직 못 봤습니다.

율법을 정말 하나도 지키지 않고 있는 사람들을 아직까지는 못 봤습니다. 물론 우리나라에 어딘가에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편지에서 교제를 하고 있는 성도님들을 제외하고는 어느 누구도 그런 사람을 아직 못 봤다는 것을 말씀을 드립니다.

 

삼가 지킵니다.

내가 하는 모든 행위가 다 율법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니 우리 사람이 하는 행위가 다 악하다는 것을 미리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 악한 일을 하는 자는 자기가 어떻게 되는지도 모르고 살아가고 있다고 잠언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은 다 어두움에 있었습니다. 실제 우리가 성경을 보아도 다 어두움에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제가 성경에서 그러니까 요한복음에서 어두움에 있지 않은 두 사람을 발견을 했습니다. 나중에 다시 말씀을 드리겠지만 1장 마지막에서 나오고 있는 빌립과 나다나엘 이 두 사람이 어두움에 있지 않은 것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전부입니다

주님이 오셨을 때 이스라엘 전체가 다 어두움에 있었다는 것을 성경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라고 다르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 빌립과 나다나엘과 같이 어두움에 있지 않은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를 생각하면 거의 없는 것으로 보여 지고 있습니다.

 

기독교입니까?

그들은 전부 어두움에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유대교에 빠져 다 어두움에 있었던 것과 같이 이 시대 기독교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은 다 어두움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은 율법을 지키고 있고 사도 바울은 그 율법을 어두움에 있는 빛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6:14절을 보겠습니다. (292)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성경입니다

바로 보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이 누구에게 쓴 편지입니까? 교린도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쓴 편지입니다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이 성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 있는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쓴 편지라는 것을 먼저 아시기 바랍니다.

 

고린도교회입니다

그들은 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처음에 복음을 전할 때만 해도 모두가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갈라디아서를 보아서 잘 알겠지만 교회 안에는 율법주의자가 들어오기 시작을 했습니다.

 

믿지 않는 자입니다

누가 믿지 않는 자입니까?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고 있지만 믿지 않는 자가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전부가 믿지 않고 있으면서도 교회 안에만 있으면 마치 예수 그리스도를 다 믿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초대교회입니다

이미 그때부터 교회 안에는 믿지 않는 자가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들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실제로는 그들은 고린도교회에 나와서 말씀을 듣고 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그들에게 편지를 보내서 교회 안에 믿지 않는 자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마 그럴 것입니다

이 시대 교회 안에서 어느 누구도 함부로 이 말을 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분명히 교회 안에 믿지 않는 자가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슨 멍에입니까?

세상일입니까? 그것이 아니라 믿지 않은 자와 교제를 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보고 거의 모든 기독교인들이 아니 목사들이 이 세상 사람들을 믿지 않는 자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 안에 있는 사람 중에서 믿지 않는 자가 있다고 하면서 그들과 교제를 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지 않는 자입니다

우리는 누가 믿지 않는 자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의와 불법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을 의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없는 것을 불법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은 성도와 율법을 지킴으로 해서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는 사람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의입니다

어떻게 의를 얻을 수 있습니까?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는 자입니다

의입니다 모두가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의와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 의롭다 하심을 얻은 의와 율법을 지키는 불법이 어떻게 함께 할 수 있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빛과 어두움입니다.

빛이 어두움을 비추매 어두움이 깨닫지를 못하더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초대 교회에 사도 바울이 이 빛에 대해서 증거를 함으로 해서 성도들이 빛에 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영원한 생명을 얻은 자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영의 생명이 있는 것과 어두움에 있는 것이 어찌 사귈 수 있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빛입니다

이제까지 빛이 무엇인가를 말씀을 했습니다. 그리고 어두움이 무엇인가를 말씀을 했습니다. 이렇게 말씀을 드려도 빛이 무엇인지 어두움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이 말씀을 받아들이지를 못하고 있다면 그는 성경에서 말씀을 하는 것과 같이 진노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율법을 지킵니까?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이것이 가능하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물론 사람들은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율법을 지키는 사람은 그가 아무리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해도 빛에 비춤을 받은 것이 아니라 어두움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함께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귈 수 있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율법을 지키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 하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 기독교 전부는 모두가 율법을 지키면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절대 아닙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 아니라 어두움에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렇게 서로 비교를 해서 말씀을 하면 어느 한 가지를 하면 어느 한 가지는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율법을 지키지 않고 율법을 지키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율법 단 한가지입니까?

그는 어두움에 있습니다. 그가 아무리 교회 안에서 주여, 주여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해도 어두움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잠언의 말씀과 같이 악인의 길은 어둠 같아서 그가 거쳐 넘어져도 그것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빛입니다

주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빛을 비춰주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어두움에 있어서 깨닫지를 못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모두가 다 이렇게 어두움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보고 있지만 그 빛을 보고 깨닫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더 어두움의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대로입니다

성경에 있는 말씀을 그냥 스쳐 지나치듯이 보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무시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에서 나쁜 말이 있으면 교회 안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이 다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나는 아니라고 하는 그 생각이 스스로를 멸망으로 빠지게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성경을 너무 편하게 보고 있습니다.

 

성경을 봤습니까?

그리고 빛이 어두움을 비추매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그러면 최소한 이 어두움이 누구인가를 정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그저 막연하게 사람의 이성에 따라 어두움을 이야기를 하지 말고 성경에서 어두움이 누군가를 알아서 내가 혹시라도 어두움에 있어서 깨닫지를 못하고 있는가를 상고해야 합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사람들이 성경을 그렇게 보고 있지 않습니다. 좋은 것은 다 자기들이 하고 있고 나쁜 것은 자기들이 아닌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하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성경을 봄으로 해서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자기에게 무슨 일이 있는지도 모르고 사망의 길로 가고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6절을 보겠습니다. (142)

하나님께로서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났으니 이름은 요한이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람이 있었다. 그 이름은 요한이었다.”

 

세례 요한입니다

그가 누군가는 성경을 보는 사람들은 거의 다 알고 있습니다. 세례 요한에 대해서는 이제 계속해서 사도 요한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배우는 사람이 아니라 성경에서 영생에 대해서 깨닫고 얻기를 원하는 성도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세상적입니다.

인간적인 이야기는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을 합니다. 세례 요한이 누군가를 우리가 굳이 알 필요가 없다고 저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예수님과 어떤 관계에 있는 사람이고 하는 그런 이야기는 영생을 얻는데 있어서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세례 요한입니다

이제 뒤에서도 계속해서 그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세례 요한에 대해서 알고자 성경을 보는 사람이 아닙니다. 모든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세례 요한 역시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기 위해서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언입니다

구약에 예언이 되어 있는 그대로 성경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구약에서 세례 요한이 먼저 와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전할 것을 예언이 되어 있기 때문에 세례 요한을 하나님께서 보내셨고 세례 요한이 주님 앞에서 생명의 빛으로 오실 분을 전파를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세례 요한입니다

그가 한 일이 무엇입니까?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그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일입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라고 믿고 있습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도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 주시고 은사를 주셨으면 이 빛에 대해서 증거를 해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