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은혜와 진리의 말씀

40강, 술 취하지 말라

윤주만목사 2019. 5. 9. 06:53


40, 술 취하지 말라

 

에베소서 5:15-21절을 보면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성도는 자기가 어떻게 행해야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참 쉬운데도 이스라엘은 자기들이 약속한 율법에 스스로 그물이 되어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을 참 어렵게 만들어 버렸고 그로 인하여 율법주의에 빠져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는 악행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은 자기들의 행위로 인하여 버림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이 시대도 내가 어떻게 행할 것을 주의하지 않으면 이스라엘과 같이 주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성도가 자기가 행할 일과 행하지 말라야 할 일을 분별하지 못한다는 것을 그 영혼을 사망에 빠뜨리는 일입니다

 

교회 나온다고 다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이 교회는 이단이 아니라 정통이라고 생각하는 교회를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라는 교회는 하나님으로부터 선택을 받은 선민이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죽이는 악을 저지르고도 그것이 하나님을 위하는 일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만약 이스라엘이 자기들이 행하는 것을 주의해서 살폈더라면 예수를 십자가에 죽이는 일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성경은 심오합니다.

성령이 임재를 하시고 난 후에는 그것이 쉽게 깨달아 지지만 성령이 임하지 않은 사람은 성경을 자기 평생을 연구하고 수백 독을 읽어서 어디에 무슨 말씀이 있는가를 알 정도로 된다 해도 복음의 비밀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 또한 성경입니다

 

그 이유는 성경은 비밀로 감추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 자체가 구어체이고 시적인 말씀으로 거의 모든 말씀은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구약은 그림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림자에서 실체를 찾는 것은 그 실체를 아는 사람은 쉬울 수 있어도 그 실체가 무엇인가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것이 성경입니다

 

실체를 알면 쉽습니다.

수선화 꽃을 잘 아는 사람은 그림자만 보고도 그 꽃이 수선화라는 것을 알 수 있지만 꽃을 모르는 사람은 그림자를 보고는 도무지 그것이 무슨 꽃인가를 알 수 없습니다. 그렇게 실체를 모르게 되면 혼란스럽게 되고 그때는 다른 사람이 그것이 나팔꽃이라고 하면 나팔꽃으로 알게 됩니다.

 

그것을 나팔꽃으로 알고 있었는데 또 다른 사람이 그건 나팔꽃이 아니라 능소화라고 하여서 그것이 정말 능소화처럼 보이기 시작하면 이제는 말씀 자체가 이랬다저랬다 말 하는 사람에 따라 전혀 다른 것으로 해석이 되면 이제는 무엇을 하는 것이 바른 것인가를 분별할 수 없게 됩니다. 자기가 행하는 그 일이 바른 것인지 아니면 나쁜 것인지도 모르고 나팔꽃이라고 하면 나팔꽃이 되고 능소화라고 하면 능소화가 되어 버립니다.

 

나팔꽃이 끌면 끄는 대로 능소화가 끌면 끄는 대로 그것이 바른 가 틀린가를 분별할 생각도 안 하고 그저 따라가게 됩니다. 자기 영혼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늘 주의해서 자기가 하는 행위를 살펴보겠지만 이생의 삶도 고달픈 사람들에게는 그럴 여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난 가장 중요한 이유는 바로 구원입니다

 

더구나 교회에 나와서 구원을 받지 못한다면 그는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자가 되고 맙니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것은 하나님께 너무도 열심을 다해 최선을 다 했던 이스라엘이 버림을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 대적 관계에 있었던 사람은 다름이 아닌 바로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그들만큼 하나님을 잘 섬긴 사람들이 어디 있습니까?

박하와 회향과 근체의 십일조를 드리고 안식일과 절기들을 철저하게 지키고 이레에 두 번을 금식을 하고 또한 율법적으로도 흠이 없이 살았습니다. 그런 이스라엘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았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찾아온 부자 청년은 어려서부터 율법을 다 지키고 고아와 과부를 보살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버림을 당했다는 것을 우리는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하는 일입니다

 

이스라엘이 어떤 행위를 잘못해서 버림을 받았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금 한국 교회의 교인들 보다 그들은 더 선하고 의롭게 살아가고 있었고 하나님을 잘 섬겼습니다. 이스라엘은 자기가 행하는 것이 바른 일인가를 주의 깊게 살피지를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에게는 지혜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구약 성경을 달달 외울 정도로 어려서부터 성경 공부를 한 그들이 지혜가 없었다는 것은 사실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깨달아야 하는 것은 성경을 다 외운다 해서 지혜가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성경을 많이 보면 물론 다른 사람들 보다는 지혜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인 것은 맞지만 그 성경에서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 지혜 없는 자가 될 수도 있고 지혜 있는 자가 될 수도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은 구약을 보면서 실체로 보았습니다.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고 성경에 기록된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에만 지혜가 좋았습니다. 그러나 구약 성경에서 가르쳐 주고자 하는 하나님의 깊은 복음의 비밀을 아는 데는 어리석었습니다. 율법을 연구하고 그것을 지키는 것에는 아주 탁월했지만 그 안에서 복음을 발견하지를 못했습니다.

 

양을 잡아서 번제 단에 드리면서도 예수를 몰랐습니다.

성막에서 제사장들이 정성스럽게 하나님께 제사는 드렸지만 그 성막 자체가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전혀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제사 드리는 일에는 최선을 다 해서 하나님께 드렸으며 그 일이 바른 것인가 아니면 바르지 않은 일인가를 분별하지 못했습니다.

 

이사야1:11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수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수 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하나님께서 수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가 불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자기들이 힘써 제사를 드리는 것이 잘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하나님께서는 수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가 부르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는 말씀입니까? 아니면 싫어하신다는 말씀입니까?

 

이스라엘은 자기들이 행하는 것을 주의하지 않았습니다.

지혜가 없었기 때문에 제사에는 최선을 다 했지만 그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 되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지금 이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드리는 예배가 내가 드리는 헌금이 정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인가를 주의하지 않는다면 지혜 없는 자가 되어서 이스라엘과 같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당하고 말 것입니다

 

지혜 있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그러나 지혜 없는 자는 수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으로 하나님을 배부르게 할지라도 오히려 그것으로 진노를 받게 됩니다. 지혜가 없는 자는 지금 이 시대도 수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을 드리면서 하나님의 배를 부르게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서 스스로를 믿음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16,“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베드로후서1:8절을 보면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

 

인생의 목적이 어디 있습니까?

바로 영혼을 구원받는 것에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태어나서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는 세월을 아껴서 내 영혼이 구원을 받을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영생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게으른 자들은 영혼에 대해서 너무 나태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들이 나태한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닙니다.

교회에 나와서 너무 많은 일을 하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데 있어 게으르게 되는 것입니다 율법을 행하려고 하다 보니까 예수를 아는데 있어서는 자연스럽게 게으른 자가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영생은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 나와서 율법을 지키고 그것을 행하다 보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데 있어서 방해가 되고 있습니다. 사람이 볼 때는 정말 열심인 그들이 하나님이 보실 때는 게으른 자가 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이 얼마나 하나님께 열심을 다했습니까? 그러나 그들은 예수를 아는데 있어서는 게으른 자가 되어 악한 일을 하고 말았습니다.

세월을 아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오셨을 때나 지금이나 때는 악합니다. 무슨 말씀이냐면 사람이 하는 모든 행위는 악하다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나는 지금 선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그것도 악한 것임을 바로 분별하고 깨달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회에 전했을 때만 악한 것이 아니라 이 시대도 때는 악합니다.

 

세월을 아껴서 예수를 아는데 힘쓰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공부한다고 예수를 아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서 예수를 발견하는 것이 예수를 아는 것입니다 이스라엘보다 성경을 더 많이 공부한 사람들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나 그들은 예수를 알기 보다는 성경에서 율법을 연구했습니다. 지금도 사람들은 성경에서 예수를 찾기 보다는 율법을 연구하고 그것을 지키고자 힘쓰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어리석은 자가 누구입니까?

사전적인 뜻은 슬기롭지 못하여 둔한 사람을 어리석다 합니다.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를 향해서 어리석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왜 어리석은 자가 되었냐면 복음을 듣고 예수를 믿는다 하면서 다시 율법주의에 빠져 들었기 때문에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를 책망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3:1-3절을 보면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내가 너희에게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은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갈라디아 교회는 성령으로 시작해서 다시 육체로 돌아가려 했습니다.

육체로 마치겠느냐는 말씀은 다시 율법주의에 빠져 행위를 의지하겠느냐는 말씀입니다 갈라디아 교회는 성령의 감동으로 복음을 믿었는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을 믿었는데 예수를 믿는다 하면서도 다시 율법의 행위를 따라 행하려 했습니다.

 

쉽게 말씀을 드리면 예수를 믿는다 하면서도 율법을 지키고자 노력했다는 말씀입니다 성령께서 감동을 주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고 그것을 받아들이다가 갈라디아 교회에 율법주의자들이 들어오니까 다시 그 율법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를 믿으면서도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말에 미혹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지금도 교회 안에는 어리석은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 믿으면 구원을 받을 수 있는데도 어느 특별한 율법을 지켜야 하는 것처럼 미혹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만 가르쳐 주고 있는데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믿는다 하면서도 율법을 버리지 못하고 율법에 속한 것을 지키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어리석은 자는 자기가 어리석다는 것을 모릅니다.

모를 수밖에 없습니다. 율법주의에 미혹이 되어 있는 사람에게는 율법을 잘 지키는 것이 하나님을 잘 믿는 것인데 어떻게 자기가 어리석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겠습니까? 그것이 잘 하는 일이라고 생각을 하기 때문에 절대로 자기가 어리석다는 것을 모릅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물론 성경에는 많은 뜻이 기록되어 있지만 하나님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성도가 예수를 믿어서 영생을 얻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런데 어리석은 자는 예수만 믿어서 되냐 율법도 지켜야 한다고 하면서 성령께서 믿음을 주셨는데도 자시 율법의 행위를 행하고자 합니다.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기를 원하십니다. 영생을 받지 못한다면 그는 주의 뜻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가 아무리 세상에서 신실한 성도처럼 보였을지라도 천국에 가지 못한다면 그는 주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주님의 뜻을 이해하고 영생을 얻기에 게으르지 않기를 바랍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술하고 성령하고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갈라디아서에서 너희가 육체로 마치겠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바로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믿는 것과 율법의 행위를 따라가는 것을 지금 술 취하는 것과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는 말씀으로 하고 있습니다. 율법에 취하면 술 취하는 것과 같이 됩니다.

 

술에 취하면 얼마나 자기를 과시합니까?

율법을 잘 지키는 사람들이 얼마나 자기를 과시하고 있습니까? 내가 주일을 빠지지 않고 지키고 있고 내가 새벽 기도를 빠지지 않고 있고 내가 십일조를 한 번도 빠뜨리지 않고 드리고 있고 내가 교회를 위해 이런 일을 하고 하면서 얼마나 자기를 과시합니까?

 

예수님께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향해 잔과 대접은 깨끗하나 그 안은 탐욕과 방탕이 가득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에 취하게 되면 그 겉 모습은 깨끗하게 보일 수 있지만 그것으로 인하여 마음에 부자가 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받아들이지를 않습니다. 예수를 믿지 않는 자체가 바로 방탕한 일입니다

 

성령의 충만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성령께서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가르쳐 주시기 때문에 내가 예수를 믿어 의에 이를 수 있게 감동하여 주시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오직 예수만을 믿으려 하지 않고 술에 취해 교회 안에서 비틀거리며 자기를 과시하고 있습니다.

 

성령께서는 모든 진리 가운데로 나를 인도하십니다.

성경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를 알 수 있도록 감동하여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술에 취한 자들은 성경을 보아도 예수가 보이기보다는 율법만 보이게 됩니다. 그래서 구약을 율법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마치 구약이 율법인 것으로 오해를 하고 그 어리석음에서 빠져 나오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율법에 취하면 술에 취한 것과 같이 됩니다.

요한계시록에서는 율법을 진노의 포도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지키는 단 한가지의 율법이 바로 진노를 가져 온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면 어리석음에 빠져 술 취한 자처럼 교회 안에서 자기가 지키는 그 율법의 의를 보며 과시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성도가 선하고 의롭게 사는 것과 율법을 지는 것은 다릅니다.

율법이 아니더라도 성도는 이 세상 법을 지키면서 얼마든지 더 의롭고 선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면 율법에 취해 그것을 조금 지키는 자신의 모습을 과시하면서 자기가 얼마나 어리석은 가를 깨닫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오직 믿음이 아니고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의 행위냐 듣고 믿음이냐 둘을 대비해서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행위도 잘하고 듣고 믿으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성경 말씀을 잘 이해하지 못하면 결국 사망의 덫에 걸리게 됩니다.

 

율법은 다 폐해졌습니다.

만약 한 가지라도 남아 있다면 우리는 모든 율법을 항상 다 지켜야 합니다. 어는 율법은 지켜야 하고 어느 율법은 안 지켜도 된다고 생각하는 자체가 율법을 모르는 어리석은 자입니다 율법 613개 중에 내가 살리고 싶은 것만 살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을 팔만 살릴 수 있습니까? 다리만 살릴 수 있습니까? 아니면 눈만 살릴 수 있습니까?

 

내가 지금 지키고 있는 율법이 바로 그런 것과 같은 일입니다

발이 살아나면 온 몸이 다 살아납니다. 눈이 살면 손이 살면 그 부분만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온 몸이 다 살아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면 어리석음에 빠져서 자기가 지키고자 하는 율법을 살려서 결국에는 다른 것들이 다 살아나서 항상 온 율법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에 진노를 받게 됩니다.

 

술 취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술에 취하면 성령의 충만함을 받는데 방해를 합니다. 내가 술에 취해 있으면 절대로 성령의 충만함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술 취하고도 성령 충만함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본문 말씀을 보면 누구나 알 수 있습니다.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시는 시편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시편에서 지혜의 시로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진정으로 주님을 사랑한다면 시로 찬미를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모든 사람이 다 시를 작시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성도들 중에 작시를 잘 하는 시를 보고 들으며 주님의 은혜를 충만히 받을 수 있습니다.

 

사랑을 하는 사람은 시를 짓습니다.

그 사랑하는 대상을 위해 시를 짓는 것은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교회는 지혜의 시를 짓지도 않고 그것으로 찬미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시를 짓고 찬미를 하는 것은 그만큼 예수 그리스도를 사모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주님을 위해 시를 지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것을 입술로 찬미를 한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입니다 초대 교회는 지혜의 시를 짓고 그것을 성도들이 찬미 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를 해야 하는 것은 하지 않고 하지 말라야 하는 것은 열심을 내서하고 있습니다. 어리석음에 빠지면 내가 행하는 일이 바른 것인가 아니면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인가를 분별하지 못합니다.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양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마음으로 노래를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신령한 노래를 곡조 있는 입술로 부르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찬송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찬양이 넘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으로 찬송을 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신령한 노래들은 마음으로 찬송을 할 수 있습니다. 이 신령한 노래가 무엇입니까?

 

고린도전서10:3절을 보면

다 같은 신령한 식물을 먹으며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예수 그리스도를 노래하는 것이 바로 신령한 노래입니다

마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 은혜에 감사하는 것이 바로 신령한 노래를 마음으로 찬송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믿음이 없이 입술로 부르는 찬송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특히 요즘 복음성가들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를 찬송하는 노래가 거의 없습니다.

 

신령한 노래를 마음으로 찬송한다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으로 믿는 다는 말씀입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바로 찬송이 되는 것입니다 찬송하니까 꼭 입술로 곡조 있는 노래를 부르는 것만을 생각하는데 내 마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 자체가 찬송하는 것입니다 내 마음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고 그것을 시로 짓고 또 믿는 그것이 바로 마음으로 찬송을 하는 것입니다

 

신령한 노래여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찬송하는 노래여야 신령한 노래입니다 내가 무엇을 하겠다. 내가 어떻게 살겠다. 하는 그런 노래는 신령한 노래가 될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찬송하는 노래가 바로 신령한 노래입니다 그것을 마음으로 찬송하라고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범사에 감사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범사라는 말을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범사는 좋을 때나 나쁠 때나 모든 때를 범사라고 합니다. 성도는 자기 환경과 처지를 보면서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내 영혼이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범사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천국을 얻은 성도는 항상 감사하면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예수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 안에서 한 지체입니다 누가 더 잘 나고 누가 더 위에 있고 하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한 지체가 아닙니다. 목사가 장로가 권사가 교회 안에서 군림을 하는 것은 예수님의 뜻이 아닙니다. 그들은 모두 술에 취한 자들입니다. 우리는 더 연약한 자를 보살피고 그를 섬겨야 합니다.

 

술에 취하지 않으면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술에 취하면 교회 안에 서열이 있어서 피차 복종할 수 없습니다. 목사가 교회 안에서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모두 율법주의사상에서 나온 것입니다 목사는 교회 안에 더 연약한 성도를 섬겨야 합니다. 어느 사도가 교회에서 군림을 했습니까? 오히려 가장 낮게 있으면서 성도들을 믿음으로 든든히 세우는 일을 했습니다.

 

술 취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령에 취해서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더 연약한 사람에게 복종하면서 복음을 전파하시기 바랍니다. 그런 성도만이 그리스도의 뜻을 알고 어리석음에 빠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 어떻게 행하는 것이 바른 가를 가르쳐 주실 줄 믿습니다. 성령의 감동을 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