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은혜와 진리의 말씀

32강, 네 모든 불의를 제하시고

윤주만목사 2019. 5. 5. 07:49


32, 네 모든 불의를 제하시고

 

호세아 14:1-3절을 보면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네가 불의함을 인하여 엎드러졌느니라 너는 말씀을 가지고 여호와께로 돌아와서 아뢰기를 모든 불의를 제하시고 선한 바를 받으소서 우리가 입술로 수송아지를 대신하여 주께 드리리이다 우리가 앗수르의 구원을 의지하지 아니하며 말을 타지 아니하며 다시는 우리의 손으로 지은 것을 향하여 너희는 우리 신이라 하지 아니하오리니 이는 고아가 주께로 말미암아 긍휼을 얻음이니이다 할찌니라

 

이스라엘이 음행에 깊이 빠져 있던 시대에 호세아 선지자를 일으키시고 그를 통해 이스라엘의 회개를 촉구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음행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너무도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 사람이 하나님과 이 세상을 함께 섬기고자 하면 하나님께서는 질투를 하시고 있습니다.

 

당연한 것입니다

내가 내 목숨 보다 더 사랑하는 여자가 있는데 그녀가 음행을 한다면 아마 그 배신감은 배가 더 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자기도 그 여자를 별로 많이 사랑하지 않고 또 자기도 다른 여자에게 마음을 두고 있다면 설령 자기 여자가 음행을 한다 해도 물론 그것을 그냥 용납해 줄 사람은 없겠지만 그래도 한 여자만을 사랑하며 살아온 남자와는 감정이 다를 수 있습니다

 

우리 신앙인들이 깨달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내가 무엇을 조금 잘하고 못하고는 하나님께서도 우리 인생이 얼마나 연약하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계시기 때문에 그것을 이해해 주시지만 그러나 그 마음이 하나님을 떠나 버리면 하나님께서는 참지를 못하십니다.

 

그러나 인생들은 마음을 주려고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기 행위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노력이 음행의 결과를 가져오는데도 깨닫지 못하고 더 빠르게 음행의 길로 접어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자기가 음행을 행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음행이라고 깨닫지 못하고 그 음행을 더 많이 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자기 행위라 불의한 것임을 깨닫지 못합니다.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선지자들을 보내셔서 돌아오라고 말씀을 하시지만 이스라엘은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나님께 돌아갈 수 있느냐고 반문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자기들은 하나님을 잘 섬기고 있다고 하는 그것이 하나님께 불의를 행한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서로 동문서답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늘 그래왔습니다

자기는 잘 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이 잘못 되었다고 책망을 하셨습니다. 가인은 자기 제사가 동생 아벨의 제사보다도 더 잘 드렸다고 생각을 했는데 하나님께서는 아벨의 제사를 받으셨습니다. 결국 가인의 제사는 하나님 보시기에 불의 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가인은 깨닫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그 일로 자기 동생 아벨을 죽이는 최초의 살인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만약 자기 제사가 하나님보시기에 불의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면 결코 동생 아벨을 죽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니 회개를 하고 하나님께 내 제사가 왜 불의 했는가를 물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인이 보기에는 분명 자기 제사가 더 좋았기 때문에 분이 나서 참지를 못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자기들이 정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보내실 때마다 그 선지자를 영접한 것이 아니라 선지자들을 핍박하고 심지어는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만약 자기들이 불의하다는 것을 깨달았다면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들을 죽이는 일은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누가복음11:50-51

창세 이후로 흘린 모든 선지자의 피를 이 세대가 담당하되 곧 아벨의 피로부터 제단과 성전 사이에서 죽임을 당한 사가랴의 피까지 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과연 이 세대가 담당하리라

 

왜 선지자들을 죽였습니까?

자기들은 정의롭고 선지자들의 말이 틀리기 때문입니다 만약 선지자들이 전하는 말씀에 그들이 감동을 받아 회개를 했다면 그들을 결코 선지자들을 죽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들의 행위가 분명히 바르다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 선지자들을 죽이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들이 불의하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왜 자기들의 불의를 깨닫지 못하는 가를 이해해야 합니다. 쉽게 말씀을 드리면 깡패가 나쁜 짓을 해서 먹고 사는데 경찰이 그를 잘 타이르고 이제 그런 일을 하지 말고 성실하게 일해서 먹고 살라고 하면 그는 자기도 그 짓이 나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고개를 숙입니다. 설령 그 일을 계속할지라도 그 앞에서는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이런 것은 누구나 다 깨닫습니다.

가인이 제사를 드리고 나서 하나님께서 자기 제사를 받지 않았을 때는 분을 내고 그것을 참지 못하고 자기 동생을 마음에 거리낌도 없이 죽입니다. 그러나 자기 동생을 살인하고 난 후에는 하나님께서 그를 꾸짖으실 때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비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보이는 죄는 아주 잘 압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영적인 죄에 대해서는 전혀 깨닫지 못합니다. 오히려 그것을 잘못 되었다고 하면 분을 내게 되어 있습니다. 마치 가인과 같이 분을 낸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실 가인이 살인을 한 죄보다는 제사를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신 죄가 더 큽니다

 

살인을 한 죄는 그 육체에 죄의 대가를 받지만 제사를 받지 아니한 죄는 영적으로 사망을 당하게 됩니다. 살인을 한 것은 그것으로 육체에 보응을 받게 되지만 제사를 하나님께서 받지 아니하시면 그것을 영혼이 사망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살인한 죄는 나중에 후회를 하고 뉘우치지만 제사를 잘못 드린 죄에 대해서는 전혀 깨닫지를 못하는 더욱 더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육체의 죄에 대해서는 회개를 아주 잘 합니다.

그러나 영적인 죄에 대해서는 그것이 죄라는 사실 조차 깨닫지 못합니다. 그것이 죄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선지자들이 그것을 죄라고 하니까 참지를 못하고 그 선지자들을 죽이는 것입니다 자기는 정직하고 의롭다고 생각하는 그것을 선지자들이 책망을 하니까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고 오히려 그 선지자가 이상한 사상에 빠져 있는 것처럼 보이게 됩니다.

 

정직한 자기 행위를 나쁘다고 하는 선지자를 누가 그냥 두겠습니까?

이것은 성령이 임하지 않고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지금 이 시대도 사람들은 자기 눈에 보이기에 정직한 것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가 볼 때는 정직하게 보여도 하나님께서 보실 때는 불의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자는 가인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습니다.

 

불의함을 모릅니다.

호세아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영적인 불의함을 깨우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열방으로부터 침략을 당하고 이제 멸망을 눈앞에 둔 시점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영적인 불의를 깨닫게 하셨지만 이스라엘은 전혀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성도님들이 바로 깨달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만약 죄가 불의한 것이라면 이스라엘은 그리고 그것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다면 이 세상은 호세아 시대까지 내려올 수도 없었습니다. 아니 그 이전에 벌써 멸망을 당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런 육적인 불의를 가지고 하나님께서 판단을 하셨다면 사사 시대가 다 가기도 전에 세상은 멸망을 당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죄의 불의에 대해서는 이미 창세전에 예수 그리스도를 예정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 모든 사람의 죄에 대한 불의를 짊어지고 가실 것을 예정하신 분이 그런 불의로 이스라엘을 멸망시키시겠습니까? 지금 호세아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불의하다고 하시는 말씀은 그런 육적인 죄보다는 영적으로 그들이 불의했기 때문에 선지자를 보내신 것입니다

 

돌아오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온전히 돌아오지 못한 그것이 바로 불의입니다 의롭지 못한 것을 의롭다 하는 것이 바로 불의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육적인 것을 통해서 우리의 영적인 것을 깨닫게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육적으로 불의한 것과 의로운 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지금 이 시대는 영적으로 의로운 것과 불의한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께 돌아 올 수 없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완전히 버렸습니까? 아닙니다. 그들은 육적으로 음행에 빠져 있었습니다. 하나님도 섬기면서 이방 신을 섬기고 또 신상을 만들어서 세우고 또 육적인 죄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런 불의에 빠져 있으면서도 이스라엘은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은 단 한 번도 하나님을 완전하게 떠나 본 적이 없는 백성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더욱 잘 섬기기 위해 열심을 낸 그것이 우상이 되고 이방 신을 섬기는 일이 되었다는 것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해 돌아오라고 깨우치셔도 돌아오지를 못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영적으로 불의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징치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불의했기 때문에 지금 앗수르를 통해서 이스라엘을 멸망시키시기 전에 호세아를 통해 이스라엘이 돌아 올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앗수르가 자기들을 구원해 줄 것이라고 착각에 빠져 있습니다.

 

너는 말씀을 가지고 여호와께로 돌아와서 아뢰기를 모든 불의를 제하시고 선한 바를 받으소서

 

무엇을 가지고 돌아옵니까?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몰랐습니다. 복음을 몰랐다는 말씀입니다 그들이 불의했다는 것은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있었지만 그들의 눈은 가려지고 귀가 들리지 않고 혼미한 심령을 가지고 있어 말씀을 바로 깨닫지 못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씀을 바로 깨닫지 못하면 자기들이 하는 하나님에 대한 열심히 바로 우상 숭배가 될 수 있고 이방 신을 섬기는 행위가 될 수 있는데도 우상을 섬기고 있으면서도 오히려 자기는 하나님께 헌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모르기 때문에 우상을 섬기고 있고 우리 안에 이방 신의 사상 샤머니즘이 그대로 있으면서도 자기는 의롭다고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우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외에 것이 영광을 받으면 그것이 우상입니다. 교회 안에서 영광을 받는 것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러나 그것을 전혀 우상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을 위한 헌신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부자 된다는 사상은 이방신을 섬기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께 열심을 잘하고 헌금을 많이 내면 부자가 된다는 것은 이스라엘이 바알을 섬기는 것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는 이방 신의 사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말씀을 모르면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씀이 바로 서 있지 않고 그것이 기초가 되어 있지 않으면 자기도 모르게 우상을 섬기고 이방신을 섬기는 불의를 행하고 말게 됩니다. 말씀이 누구입니까?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를 내 마음에 가지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면 하나님께서 내 모든 불의를 제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내 안에 예수가 없으면 모든 것은 다 불의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예수가 없이 교회에서 충성을 하고 헌신을 하고 모든 것을 다 잘하면 무엇입니까? 그것은 불의한 일을 하는 것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습니다. 이스라엘이 얼마나 하나님께 열심을 다 했습니까? 그러나 그들에게는 바른 말씀이 없어 예수를 죽이는 악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말씀이 없이 교회 안에 있는 사람은 무익한 종입니다

예수가 없이 교회 안에서 어떤 일을 한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아주 무익한 종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 종을 예수님께서 바깥 어두운 곳에 내어 쫓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 전체는 예수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 말씀이 없이 하나님께 돌아왔다는 것은 한 마디로 우상을 섬기고 있는 것이요 이방신을 섬기고 있는 것과 다를 것이 없는 것입니다

 

말씀을 가지고 하나님께 돌아오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모든 불의를 제하여 주십니다. 예수가 없이 하나님께 몸만 돌아와 봐야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교회 안에 들어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예수를 가지고 돌아 왔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예수를 내 안에 가지고 온 성도를 하나님께서 모든 불의를 제하여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예수가 없으면 하나님께서 받으시지 않습니다.

교회 안에서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를 받으신다고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흠 없는 어린 양이 아니고는 받지 않습니다. 만약 흠 있는 것을 드리면 하나님께서는 재앙을 내리십니다. 나는 흠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흠이 없습니다.

 

나를 드리려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재앙을 부르는 일입니다 흠 있는 나를 드린다는 것은 하나님을 경홀히 여기는 것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나는 선한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선하십니다. 선하지 않은 것을 선하다고 드리는 것은 영적인 죄를 짓는 일입니다

 

교회 안에서 나를 드리려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내 것을 드리려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은 흠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절대 받으시지 않는다는 것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는 선한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내 안에 예수는 선하십니다. 나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예수 선한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성도만이 받으십니다.

 

조금 행하는 선을 가지고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런 사상에 빠지면 불의가 무엇이라는 것을 모르게 됩니다. 내가 하는 모든 행위는 불의합니다. 그런데 자기 눈에 선하게 보인다 해서 그것을 드리려 하는 행위는 스스로 재앙을 부르는 어리석은 일입니다 오직 예수가 아니고는 선한 것을 하나님께 드릴 수 없습니다.

 

말씀이 없는 사람은 자기를 드리려 합니다.

자기가 행하는 조금 선한 것을 드리고자 노력합니다. 그러나 말씀이 있는 성도는 내가 한 모든 것이 불의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내 것을 드리려 하지 않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드리려 합니다. 바로 예수를 믿음으로 받아들인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입술로 수송아지를 대신하여 주께 드리리이다

 

이스라엘은 진짜 수송아지를 드리는데 열심을 다 했습니다. 흠 없는 수송아지를 잡아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것이 하나님을 잘 섬기는 일이라 생각을 하고 그것에 온 정성을 다 했습니다. 그런데 호세아 선지가가 뭐라고 합니까? 우리가 입술로 수송아지를 대신하여 드리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수송아지를 드리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입술로는 예수를 시인하지 않고 아직도 법에 매여 수송아지를 드리려고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늘 마찬가지이지만 가장 어리석은 사람은 자기 행위를 의지하는 사람입니다 자기가 드리는 수송아지를 보면서 자기 믿음이 좋다고 생각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교회 안에 다수를 이루고 있습니다.

 

시편 21:2절을 보면

그 마음의 소원을 주셨으며 그 입술의 구함을 거절치 아니하셨나이다 (셀라)”

 

마음에 소원이 무엇입니까?

교회 안에 있는 가라지는 마음에 소원이 이생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알곡은 그 마음에 소원이 바로 천국입니다 이생의 것을 구하느냐 아니면 천국의 것을 구하느냐 내 자신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성도의 마음의 소원은 어떻게 하든지 천국에 가는 것입니다

 

천국에 가려면 오직 예수를 믿어야 합니다.

내 입술로 수송아지를 대신해서 드린다는 말씀은 수송아지를 드리는 것은 율법입니다 내 입술로 수송아지를 드리는 것을 대신하는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내가 드리는 수송아지보다 내 입술로 예수를 시인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제사라는 말씀입니다

 

육적인 제사를 드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영적인 시대를 살고 있으면서도 아직도 이스라엘과 같이 육적인 제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마치 수송아지를 잡아 드리는 것과 같이 보기에도 좋은 한편의 장대한 오페라를 보는 것 같은 예배를 드리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 제사로는 여러분이 살 수 없습니다. 아니 하나님께서는 그런 수송아지를 드리는 그런 제사를 받으시는 것이 아니라 상하고 통회하는 심령을 받으신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마음에 소원이 있는 성도만이 입술로 그 소원을 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육적인 소원이 아니라 영적인 소원이며 천국에 가기를 소망하는 성도의 마음입니다 수송아지를 드리려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가장 어리석은 사람들은 아직도 자기들이 무슨 이스라엘 사람인 줄 착각을 하고 수송아지보다 더한 것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앗수르의 구원을 의지하지 아니하며 말을 타지 아니하며 다시는 우리의 손으로 지은 것을 향하여 너희는 우리 신이라 하지 아니하오리니

 

사람을 의지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또 세상에 강한 자를 의지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비록 이 세상에서는 환난과 고난 가운데 있을지라도 내 영혼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 있는 다수는 영혼의 구원 보다는 자기 육체의 어려움에서 구원을 받기 위해 지금도 이곳저곳을 찾아다니고 있습니다.

 

말을 타지 마시기 바랍니다.

말을 탄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말은 아무나 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재물과 명예를 얻은 사람만이 탈 수 있는 권위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또한 말은 옛날 전쟁에서 지금의 전차와 같이 무서운 무기이기도 합니다.

 

말을 탄자와 창이나 칼을 들고 싸우는 자는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 세상의 강한 것을 타고 자기를 나타내지 않겠다는 말씀입니다 지금도 교회 안에서 말을 탄자같이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좋은 말을 타고 그것이 얼마나 편리하고 좋은 것인가를 아는 사람은 그것으로 기뻐할 수 있습니다. 성도는 그런 세상 것으로 자기를 나타내고 기뻐해서는 안 됩니다

 

자기 손으로 지은 것을 지나치게 섬기고 있습니다.

물론 이스라엘은 진짜 우상을 만들기도 했지만 지금은 교회가 우상이 되고 있습니다. 교회를 거룩하다고 하고 있습니다. 거룩한 것은 신 밖에는 없습니다. 거룩하지 않은 것을 거룩하다고 하는 것은 그것을 신으로 섬기는 것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은 자기들이 믿는 신을 거룩하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하나님 한 분 이외는 거룩한 이가 없는데도 거룩하지 않은 것을 거룩하다고 아무 거리낌이 없이 말하고 있습니다. 거룩하다고 말하는 것은 그것이 그들의 마음에 신으로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예배를 드리는 장소가 어찌 하나님과 같이 거룩한 것이 될 수 있는지 냉정하게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거룩하다는 말을 함부로 사용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주 쉽게 사용하는 거룩한 그것이 하나님 이외에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이 된다면 그 사람의 결국은 불을 보듯 뻔한 일입니다 구약은 그림자입니다 그 그림자를 보고 지금 이 시대 실체를 바로 보시기 바랍니다.

 

이는 고아가 주께로 말미암아 긍휼을 얻음이니이다 할찌니라

 

이 세상 모든 사람은 고아입니다

영적인 고아입니다 죄로 인하여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없는 고아가 되고 말았습니다. 영적인 아버지를 잃어버린 고아라는 것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고아는 자기 부모를 자기 스스로 찾을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은 선민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호세아 선지자는 이스라엘을 고아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왜 고아냐 하면 그들은 하나님께 돌아오지를 않았고 그들의 마음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말씀이 없었기 때문에 아버지와 화목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의 마음에는 믿음이 없었습니다.

행위로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또 수송아지를 잡아서 제사를 드리고 있었지만 그들의 마음에는 하나님과 화목케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없었기 때문에 고아와 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그런 이스라엘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풀어 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고아는 불쌍한 자입니다

누군가가 긍휼을 베풀어 주어야만 그 고아를 양자 삼을 수 있습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모두가 고아입니다 그런 고아와 같은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풀어 주셔서 아버지가 되어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겨 주셔야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네 불의를 제하시는 것도 하나님이십니다.

또한 고아와 같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자로 살아가는 나를 불쌍히 여기셔서 구원해 주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을 내 아버지로 만날 수 있는 방법은 내 안에 말씀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영의 아버지 하나님을 잃어버린 자는 모두가 고아입니다 그 고아가 긍휼히 받을 수 있는 것은 물론 아버지께서 불쌍히 여겨주셔야 합니다. 그렇게 불쌍히 여김을 받으려면 내가 수송아지를 잡아서 드리는 제사 보다는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제사를 드린다고 예배를 드린다고 내가 아버지께로 돌아 온 것이 아닙니다.

내 안에 예수가 있어야 돌아온 성도입니다 이스라엘의 수는 바다 모래 같지만 그들이 모두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었지만 그들에게는 온전한 예수가 없었습니다. 예수가 없다 보니까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을 낸 것들이 우상 숭배가 되고 다른 신을 섬기는 일이 되고 사람을 의지하는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내 안에 예수를 간직하시기 바랍니다.

그런 성도만이 하나님께서 그를 불쌍히 여기시고 구원의 손을 내밀어 주실 것입니다 오늘도 주일이라고 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예배를 드린다고 교회당으로 모일 것입니다 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예배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를 찾고 계신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내 예배를 하나님이 받으시는 믿음의 예배인가를 분별하시고 예수를 믿어서 천국에 가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