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은혜와 진리의 말씀

30강, 너희는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윤주만목사 2019. 5. 4. 17:41


30, 너희는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야고보서 1:22-25절을 보면

너희는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누구든지 도를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으니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양이 어떠한 것을 곧 잊어버리거니와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니 이 사람이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루터는 야고보서를 지푸라기 복음이라고 말 했습니다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는 말씀을 의지해서 종교개혁을 했는데 야고보서를 보면 오직 믿음만 가지고는 무엇인가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고 그래서 야고보서를 강해를 하지 않고 지푸라기 복음이라고 야고보서를 마치 복음과 반대 되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지금 이 시대도 마차가지입니다

야고보서 하면 마치 구원론을 말씀하는 로마서와 반대되는 것으로 오해를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말씀만 하면 성도들이 아무렇게나 살기 때문에 야고보서를 기록해서 행위에 대해 말씀을 하셨다고 그럴듯하게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꿈 보다 해몽이 좋다는 말이 있습니다

마치 성경도 꿈보다 해몽이 좋은 것처럼 자기 마음대로 사람의 생각에 따라 해석을 하는 것을 보면 안타깝기만 합니다. 아무리 꿈이 좋아도 해몽을 잘 못하면 나쁜 꿈이 되고 아무리 꿈이 나빠도 해몽을 잘하면 좋은 꿈이 될 수 있는 것이 바로 성경해석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꿈이 아닙니다.

성경은 잘못 해석을 하면 그 영혼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구원론에 있어 문제가 있을 정도로 해석을 하게 되면 그가 아무리 신앙생활을 잘했다 해도 그 한 가지 말씀으로 영생을 잃어버릴 수 있는 것이 바로 성경해석입니다

 

성경해석의 가장 기본적인 것이 있습니다.

오직 예수를 믿어서 구원을 받는데 있어 방해가 되고 그것을 반대하는 말씀의 해석을 했다면 그 사람은 무조건 해석을 잘못한 것입니다 오직 믿음에 어떤 행위가 플러스 되거나 또 은사가 플러스 되거나 한다면 그것은 무조건 해석을 잘못한 것입니다

 

야고보서도 성경 말씀입니다

성경이 스스로 오직 믿음을 방해하고 있다면 그것은 성경이 될 수 없고 만약 그런 말씀이 성경에 있다면 우리가 믿는 믿음은 헛것이 되고 맙니다. 기독교는 믿음의 종교입니다 그런데 오직 믿음이라는 말씀이 침해를 받는다 하면 우리는 더 이상 예수를 믿을 필요가 없습니다.

 

믿으면 무엇 할 것입니까?

어차피 행위에서 우리는 완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내가 조금 행하고 있는 행위를 보면서 마치 나는 할 수 있을 것이라 오해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죄를 한 번도 안 져본 아담과 하와도 단 하나의 법에 의해 죄를 짓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죄악 중에 출생한 내가 행위를 잘 할 수 있다는 것은 자기를 모르고 하나님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사람들은 착각을 합니다.

자기가 조금 행하고 있는 선의 모양을 보면서 선을 행할 수 있다고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성자처럼 보이는 그 사람도 하나님께서 에덴에 선악과를 하나 두면 그것을 따먹고 만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선악과를 안 따먹을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사단은 인생보다 강합니다.

우리는 육적인 존재고 사단은 영적인 존재입니다

육적인 내가 영적인 사단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한 마디로 자기 능력이 하나님과 다를 것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과 똑 같습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지금도 하나님과 같아지려고 행위의 바벨탑을 쌓고 있습니다.

 

그리고 높이 올라가는 바벨탑을 아주 자랑스럽게 보고 있습니다.

자기가 행하는 선이 보이고 의롭게 행하는 그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그는 바벨탑을 쌓고 있는 홍수 후에 사람들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는 타락한 인생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22, “너희는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너희는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도가 무엇인가를 알아야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는 자가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이 도를 마치 율법으로 오해를 하는데 있어 문제가 됩니다.

 

행하라고 말씀을 하니까 행하는 것은 율법으로 단정을 지어 버립니다.

믿음은 마음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율법이 몸으로 행하는 것이라면 믿음은 마음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누구를 믿는다 할 때 그것을 몸으로 행합니까? 아니면 마음에서 믿어 마음으로 행합니까? 사람들은 행한다고 하니까 몸으로 행하는 것만을 생각합니다.

 

성도는 도를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을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쉽게 말씀을 드려서 복음의 말씀을 들었는데 그 말씀을 마음으로 믿지를 않고 듣고 나서 허탄한 이야기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누가 그랬습니까?

사도들도 성령이 오시기 전까지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소리를 전해 듣고 허탄하게 생각을 했습니다.

 

누가복음 24:11절을 보면

사도들은 저희 말이 허탄한 듯이 뵈어 믿지 아니하나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을 하셨다는 말을 제자들에게 전했지만 제자들은 그 이야기를 허탄하게 생각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내가 삼일 만에 부활할 것이라고 분명히 가르쳐 주셨는데도 제자들은 마리아의 이야기를 허탄하게 생각하고 믿지를 않았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과 3년 반을 함께 있었습니다.

그들도 허탄하게 생각이 되는데 지금 이 시대 예수님께서 율법을 완성하시고 내가 지킬 율법을 다 지키시고 내게 자유를 주셨다는 말씀을 얼마나 허탄하게 생각이 되겠습니까?

 

마음으로 믿어지지가 않는 것입니다

도를 들었으면 마음에서 믿어 져서 그것을 마음에서 행해야 하는데 믿지를 못하니까 자기를 속이는 자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어떻게 속이는 자가 되느냐면 아주 작은 자기 행위를 보면서 마치 자기 행위가 바른 것으로 자신을 속이고 만다는 말씀입니다

 

성도는 도를 들었으면 믿어야 합니다.

그러나 도를 듣고도 믿지를 않고 마음으로 행하지 않고 자신을 속이는 율법의 행위를 따라가려 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행위로는 의롭다 함을 받을 사람이 한 사람도 없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도를 듣고도 그것을 마음으로 행해서 믿지를 않고 율법을 지켜서 의롭다 함을 받으려고 하는 행위가 바로 자신을 속이는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골로새서2:3-4절을 보면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취어 있느니라 내가 이것을 말함은 아무도 공교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

 

예수만 믿으면 됩니다.

그의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자꾸 속이는 자들은 예수만으로 부족하다는 것을 강조를 하게 되고 그렇게 하는 것이 바로 속이는 일입니다 예수만 믿으면 구원을 받고 또 예수 한분만으로 모든 것이 다 가능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도 속이는 자들은 오직 예수만으로 안 되는 것처럼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 믿음의 도를 내 마음에서 받아들이는 것이 바로 행하는 것입니다 내가 예수를 믿지 않는다면 그가 어떤 일을 한다 해도 그는 그 도를 행하는 자가 될 수 없습니다. 먼저 예수를 믿어야 하는데 그 믿음의 도를 듣고도 마음에서 행하지 않고 자신을 속이는 율법에 빠져 다른 보화를 찾으려고 합니다.

 

예수 안에 모든 것이 다 있습니다.

그러나 그 도를 듣고도 마음에서 행하지 못하기 때문에 나를 속이는 율법에 다시 빠져 들어가는 것입니다 율법으로 구원을 받을 육체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행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바로 나를 속이는 일이 된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믿음의 도를 들으면 무엇 합니까?

그것을 마음으로 믿어 행하지 않고 다시 율법을 따라 가고자 한다면 그는 자신을 속이는 일이 되고 말 것입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는 믿음의 도를 듣고도 그것을 마음으로 행치 않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는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자신을 속이는 그 일에 빠져 들어 갑니다.

 

23,“누구든지 도를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으니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양이 어떠한 것을 곧 잊어버리거니와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말씀을 마음으로 믿어 행하지 아니하는 사람은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것과 같다는 말씀입니다 거울로 자신을 보면 자기를 알 수 있는데 그 모양이 어떠한가를 금세 잊어버리고 맙니다.

 

거울 속에 있는 자신을 보면 죄인입니다

그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죄인의 모습으로 보여 지면 단번에 거룩함을 얻는 믿음의 도를 듣고 그것을 마음으로 받아들이며 행해야 하는데 그냥 거울 속에 있는 자신의 모습만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난 후에 그것을 어떻게 해야 하는 가를 모른다는 말씀입니다

 

죄인의 모습을 잊어버리고 의인이 될 수 있는 것으로 착각을 합니다.

거울 속에 비춰진 자기 모습을 잊어버리고 자기를 스스로 깨끗하게 만들려 한다는 말씀입니다 성도는 먼저 나를 알아야 합니다. 거울 속에 비춰진 내 모습에 대해서 성경적인 판단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는 그 말씀을 인정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믿음의 도를 마음으로 믿으면 됩니다.

그러나 그것을 마음으로 행하려 하기 보다는 거울 속에 비춰진 죄인의 모습을 잊어버리고 오히려 의인이 되려고 노력을 합니다. 마음으로 행하면 간단한 것을 죄인의 모습으로 보였던 자신을 잊어버리고 마음으로 행하려 하기 보다는 자기 육체로 행해서 거울 속에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바꾸려 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거울을 볼 필요가 없습니다.

의인은 하나도 없기 때문에 보아야 뻔 한 것입니다 자기가 아무리 의롭게 살았다 해도 그 역시도 죄인의 모습으로 보여 집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꾸 거울을 보면서 자기 행위를 보려고 합니다. 그것으로는 율법을 온전하게 지킬 수 없는데도 거울 속에 있는 자신의 모습을 잊어버리고 또 다시 율법으로 돌아가서 지키고자 합니다.

 

신앙생활을 10년 했습니다.

아니 30년을 해 보았으면 알 것 아닙니까?

십년 전에 거울 속에 있던 자기 모습과 30년이 지난 지금의 자기 모습이 거울 속에서 어떻게 비춰지고 있는 가를 모릅니까? 그렇게 수십 년을 보았어도 또 잊어버리고 다시 자기 육체를 깨끗하게 하려고 율법을 따라가고 있는 것이 사람입니다

 

내 모습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나는 언제 보아도 죄인의 모습으로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 죄인의 모습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거울을 보았으면 그것을 잊어버리지 말아야 하는데 보고 또 봐도 잊어버리고 믿음의 도를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아니 할 수 있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스스로 속는 자가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인생은 단 한사람도 율법을 완성할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마태복음 5:17절을 보면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

 

누가 율법을 완성하러 오셨습니까?

여기 분명히 내가 (예수 그리스도) 율법을 완전케 하로 오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마치 우리 인생이 율법을 완전케 하는 것으로 오해를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만약 우리 인생 중에 단 한사람이라도 율법을 완전케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었다면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실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거울을 보면 모릅니까?

50년을 신앙생활을 하고도 몰라서 또 해 보아야 합니까?

믿음의 도를 내가 들었으면 그것을 받아들여서 율법을 완성하신 예수님의 의를 받아들이면 모든 것이 쉬워지는데 거울 속에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도 계속해서 잊어버립니다.

 

그러니 거짓 선지자들이 좋아 하는 것입니다

자꾸 잊어버리면 버릴수록 그들은 계속해서 거울을 보게 만듭니다. 거울을 보고 또 잊어버리면 또 거울을 보게 만들고 나중에는 스스로 정죄에 빠져서 지옥으로 가게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표준 새 번역입니다

이런 사람은 자기의 모습을 보고 떠나가서, 그것이 어떠했는지를 곧 잊어버리는 사람입니다

 

도를 마음으로 믿어 행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자기 모습을 거울로 보고 떠나가서 그것이 어떠했는지를 잊어버리는 사람이라는 말씀입니다 죄인의 모습을 보았으면 은혜를 구해야 하는데 죄인의 모습을 보았으면서도 그것을 잊어버리고 스스로 율법을 완전케 하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내 존재가 어떠한 가를 잊어버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나는 진토입니다 비가 오면 부스러지는 바람이 불면 흩어 날아가 버리는 진토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을 잊는 순간 율법주의에 빠져 자꾸 거울을 들여다보게 되어 있습니다. 거울을 한번 보고도 자기 존재를 깨닫지 못한다면 그는 아무리 거울을 보고 또 보아도 역시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율법으로는 완전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율법을 완전케 하셔서 그의 의를 받아들임으로 해서 나 역시도 완전한 자가 될 수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믿는 믿음의 도입니다

 

베드로후서 2:21절을 보면

의의 도를 안후에 받은 거룩한 명령을 저버리는 것보다 알지 못하는 것이 도리어 저희에게 나으니라

 

도를 들어서 알았으면 마음으로 행하면 됩니다.

마음으로 받아들여서 믿으라는 말씀입니다 그것이 바로 도를 듣고 행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거울 속에 있는 죄인의 모습을 보고도 또한 의에 도를 듣고도 그것을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거울 속에 있는 자기 자신을 깨끗하게 하려고 하는 사람은 명령을 저버리는 사람과 같다는 말씀입니다

 

도를 행하는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내가 율법을 완전케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율법을 완전케 하셔서 깨끗한 의를 가지신 그것을 내가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거울 속에 있는 죄인의 모습을 잊어버리고 깨끗해 질 수 있다고 생각을 하면서 의의 도를 저버리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18:25-28절을 보면

그가 일찍 주의 도를 배워 열심으로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나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 그가 회당에서 담대히 말하기를 시작하거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듣고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자세히 풀어 이르더라 아볼로가 아가야로 건너가고자 하니 형제들이 저를 장려하며 제자들에게 편지하여 영접하라 하였더니 저가 가매 은혜로 말미암아 믿은 자들에게 많은 유익을 주니 이는 성경으로써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증거 하여 공중 앞에서 유력하게 유대인의 말을 이김일러라

 

의의 도는 유대인을 이기는 것입니다

유대인은 율법을 자기 자신들이 완전케 하려고 흠 없는 율법을 의를 자랑했던 사람들입니다. 성도가 가진 의의 도는 유대인이 가진 흠 없는 율법의 의 보다 더 완전한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믿음으로 가졌기 때문에 이길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지고 있습니다.

아니 공격을 당하고 있습니다. 의의 도를 말씀을 하면 어떻게 믿어서만 구원을 받을 수 있느냐고 공격을 하고 또 저들은 방종을 하기 위해서 저렇게 주장을 한다고 공격을 하고 있습니다.

 

어느 의를 갖겠습니까?

내 율법의 의 입니까?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완전케 하신 율법의 의입니까? 이 두 가지는 싸울 수밖에 없습니다. 서로 대적을 하게 되어 있으며 마치 유대인들과 예수님이 싸우신 것과 같습니다. 그 결과는 유대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는 악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이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유대인들과 같은 율법주의자들과 싸워서 이겨야 합니다.

그들에게 지는 순간 내 영혼은 사망을 당하게 되어 있으며 거울을 보고 자기 자신이 어떠한가를 잊어버리는 것과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이 되고 만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니 이 사람이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우리는 성경을 통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압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하게 하시려고 율법의 속박에서 벗어나게 해 주시려고 율법을 완전케 하시고 그것을 믿음으로 내 것이 되게 하셨습니다.

 

누가 율법을 완전케 했습니까?

성경을 보았을 때 율법을 완전케 하신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 뿐입니다. 그것을 성경을 통해 보았습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도 잊어버립니다.

 

갈라디아서 5:1절을 보면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자유를 주시고자 스스로 율법을 완전케 하시고 의의 도로 율법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셨습니다. 자유 하는 온전한 율법이라는 말씀은 내가 율법을 지켜서 자유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율법을 완전케 하시고 그 율법을 폐해 버리셔서 율법에서 자유 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행하는 자입니다

그런데 믿음으로 행하려 하지는 않고 의의 도를 듣고도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그 사실이 믿어지지가 않으니까 또 거울 속에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스스로 깨끗해지려고 율법에 매이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율법의 종이 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율법을 다 지킬 수 없어 종으로서 살아가고 있으니까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대신해서 율법을 완전케 하시고 자유 할 수 있는 믿음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자유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도 그것을 마음으로 믿어 행하지 못하고 자꾸 듣고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율법은 내가 다 지켜야 자유 할 수 있습니다.

율법이 내 앞에 놓여 있는데 자유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율법을 지켜서 자유 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스스로 속이는 자입니다 과연 여러분 중에 자기가 하는 행위를 보고 마음에서 자유 함을 누리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자신 있게 대답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겨우 몇 가지 자기가 행하는 율법을 보고 자유하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스스로 속이는 일입니다 율법이라는 것은 성경에 나오는 613가지 온 율법을 항상 다 지켜야 자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 중에 어느 것 한 가지라도 내 마음에서 거리낌이 되고 있다면 결코 자유 할 수 없는 것이 율법이 가진 속성입니다

 

율법은 우리를 자꾸 종으로 만들려 합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조금 지키는 율법의 모양을 보면서 자유하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는 그 자체가 율법의 종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주일을 성수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렇지 못한 사람을 보면 자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율법에는 주일 성수를 하려면 그날 불을 피워서도 안 되고 밥을 새로 해서 먹어서도 안 되고 장거리를 이동해서도 안 되고 여러 가지 그에 따르는 규례가 있어 그것을 바로 안 다면 결코 자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스스로 얼마나 종이 되어 있는 가를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율법의 멍에에서 자유를 주셨습니다.

그것은 내가 지켜서 자유 하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온전케 하시고 그것을 내 것으로 가져 옴으로 해서 자유 할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말씀을 듣고도 쉽게 잊어버리고 마음에서 받아들이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실행하지를 못합니다.

율법에서 자유를 누리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하늘의 복을 받으려 하면 내가 율법을 다 지켜서 자유해서는 받을 수 없고 예수님께서 온전케 하신 율법의 의를 내 것으로 받아들임으로 해서 자유 하는 율법이 믿어짐으로 해서 하늘의 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다수는 믿음으로 복을 받으려 하기 보다는 자기가 행하는 율법의 의를 보면서 복을 받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거울 속에 비춰진 자기 모습을 잊어버리고 그 죄인의 모습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복을 받을 수 있을 정도로 될 수 있는 것으로 오해를 합니다.

 

도를 행하는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내가 율법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온전케 하신 율법의 의를 마음으로 믿어 내 것으로 가져 옴으로 해서 이 세상에서 자유를 누리고 또 하늘의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도를 행하는 자가 되어서 영원한 복을 누리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