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로마서 강해(오직 믿음)

46-1,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윤주만목사 2024. 9. 4. 08:26

로마서5:15절을 보겠습니다. (245)

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는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이 많은 사람에게 넘쳤으리라

하나님은 사랑입니다

이 사랑을 사람들이 말로는 참 잘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있는 문자를 보고 말로는 잘하고 있지만 실제 이 사랑을 깨닫고 있는 사람은 지극히 적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서 진리를 깨닫지를 못하고 있는 사람은 이 사랑에 대해서 절대로 깨달을 수 없습니다.

말은 누구나 합니다.

그러나 그 사랑을 아는 것은 누구에게나 주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어떠한 사랑을 받고 있는가를 잘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로마서를 보면서도 성경이 풀어지지가 않아서 그저 문자를 가지고 이야기를 하고 있고 이 사랑을 미사여구를 쓰면서 사람의 감성을 자극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담 한 사람입니다

그로 말미암아 세상에 죄가 들어왔습니다. 그 죄로 사망이 왔습니다. 아담의 육체의 사망을 통해서 사람의 영의 생명이 죽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죽은 자인 우리 인생을 살리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 주시고 십자가를 지게 하셨습니다.

죄를 모르고 있습니다.

도덕적인 죄에 대해서는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 자기 육체와의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망이 그 도덕적인 죄로 인하여 우리에게 오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담이 도덕적인 죄를 지었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생명에 대한 언약을 어기는 죄를 지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주신 언약은 생명입니다.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지 말라고 말씀을 하시면서 그것을 따먹으면 정녕 죽으리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담은 범죄를 하고 말았고 사망이 왔다고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담이 죄를 지었습니다.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습니다. 어떤 죄를 지었는가 하면 생명에 대해서 패역 하는 죄를 지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창세기에서 가인의 죄를 보았습니다.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이기 전에 이미 하나님께서는 가인의 죄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가인의 죄입니다.

아벨을 죽은 죄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인은 생명에 대해서 죄를 짐으로 해서 사망이 왔습니다. 그가 아벨을 죽은 것은 도덕적인 죄입니다. 제가 그 죄를 지어도 된다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죄가 무엇인가를 우리는 바로 알아야 합니다. 아벨을 죽인 죄보다 땅의 소산으로 제사를 드린 것이 더 큰 죄입니다.

아벨을 죽인 죄입니다.

설령 그런 죄를 지었어도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것을 보여주신 것이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 한 편 강도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가인이 땅의 소산으로 제사를 드린 죄는 사함을 받을 수 없는 죄라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죄를 모릅니다.

죄가 율법이 있기 전에 세상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율법이 없을 때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참으로 어려운 말씀이지만 우리는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성경은 영의 일을 가르쳐 주고 있고 생명을 얻는 사람의 본분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기 때문에 늘 지혜를 구하면서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율법이 없을 때입니다.

죄를 죄로 여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율법이 있으면서도 죄를 죄로 여기지 않고 있습니다. 율법을 성경에서 보았으면 자기가 무슨 죄를 지었는가를 알아야 하는데 이 시대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않고 있습니다. 율법을 보고도 죄를 죄로 여기지 않고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망입니다

이 죄를 지으면 모두가 사망에 이릅니다. 사망이 왕 노릇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않았을지라도 그들이 모두가 죄를 범했기 때문에 사망에 이르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구원을 받지 못하는 죄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죄가 어떤 죄라는 것조차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담입니다

그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죽었습니다. 그가 선악과를 따먹어서 죽은 것이 아니라 우리 역시 아담과 같은 죄를 지어서 모든 사람이 죽었습니다. 물론 도덕적인 죄를 지어서 우리 육체가 죽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담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은 다 죽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담과 같이 범죄를 하는 사람은 다 죽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었습니다.

아담과 같이 육체로 행하는 사람은 다 죽는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육체에 속한 모든 사람은 아담과 같이 죽는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담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죽었다는 말씀은 육체로 행하는 모든 사람은 죽는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담은 육체입니다

그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입니다. 그러니까 영으로 살리심을 받은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기 위한 예표라는 말씀입니다. 아담을 통해서 모든 사람이 죽는 것을 나타내면서 오실 자의 표상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오실 자의 표상인 아담을 보았으면 우리는 오실 자를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오실 자를 너무도 모르고 있습니다.

육체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담은 영으로 사신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 주기 위한 하나의 표상인데 그 아담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아담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죽은 것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삶을 얻는데 있어서 오실 자의 표상이지만 아담을 보고도 예수 그리스도를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대표성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대표성을 가지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체의 사람인 아담을 통해서 영으로 살리심을 받은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 대표 한 사람을 우리가 성경에서 바로 앎으로 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가 어떻게 생명을 얻는 가를 알 수 있어야 합니다.

아담은 한 사람입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 역시도 한 사람입니다. 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죽습니다. 그리고 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삶을 얻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아담은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표상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담으로 우리 모두가 어떻게 죽었는가를 앎으로 해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가 살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공동번역을 보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은총의 경우와 아담이 지은 죄의 경우와는 전연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아담의 범죄의 경우에는 그 한 사람 때문에 많은 사람이 죽었지만 하나님의 은총의 경우에는 예수 그리스도 한 사람의 덕분으로 많은 사람이 풍성한 은총을 거저 받았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은총의 힘이 얼마나 더 큽니까!”

이 은사입니다.

아담이 지은 범죄와 같지 아니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 비교가 되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사람이 죄를 지어서 죽습니다. 그것으로 끝입니다. 그러나 그 죄인을 살리시는 일이 얼마나 더 큰 일입니까?

우리는 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죄를 지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을 사랑하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영이 살아났습니다. 이것이 말로는 참 쉽습니다. 더구나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더욱 쉽게 느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알아야 합니다.

우리 육체는 죄로 인하여 아주 죽어 버립니다. 썩어 없어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썩어 없어지는 것에게 썩지 않는 생명을 주시는 것은 정말 상상도 할 수 없는 큰 은총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성경에서 그저 지식으로 알고 있으니까 그런가 보다하고 쉽게 넘어갈 수 있지만 절대로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다시 사는 일입니다

아니 전혀 새로운 생명으로 사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능치 못하시는 일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죄로 인하여 죽은 우리 인생들을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리시는 일은 그냥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그 죄의 값을 지불하시고 영으로 살리심을 받으심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놀라운 비밀입니다.

구원입니다

이 시대 교인들은 너무 쉽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죄인이 죽었습니다. 사망이 왔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육체의 생명이 있으니까 이것이 실감이 잘 나지가 않고 있습니다. 죽었다는 것은 완전하게 없어졌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사망을 당한 우리 인생들을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살리심으로 우리에게 그 영의 생명을 주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육체로는 안 됩니다

우리 육체는 이미 흙이 되었고 육체가 되었습니다. 그것으로는 영원히 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 대다수의 교인들이 그 육체가 사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그 육체가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영으로 살리심을 받음으로 말미암아 그의 영이 우리에게 임하는 역사입니다.

그 생명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은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은사는 아담이 지은 범죄와 같지 않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담은 한 사람이 범죄를 함으로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선물이 넘쳤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떤 선물이 넘쳤는가 하면 영의 생명으로 우리를 살리셨다는 말씀입니다.

로마서6:23절을 보겠습니다. (247)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은사입니다.

이 시대는 은사에 대해서 너무 제 각각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은사는 선물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쉽게 국어적인 뜻은 높은 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내려주는 선물이라고 말을 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은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은사입니다

그것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생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이 받은 최고의 선물은 이 은사입니다. 성경의 모든 말씀은 다 영생을 말씀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이제까지 죄에 대해서 말씀을 했습니다. 그리고 아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그 죄가 들어오고 모든 사람이 사망에 이르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 사랑은 우리 육체를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생명을 사랑하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심으로 우리 안에 생명이 탄생이 되었는데 그것을 선물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은사는 아담이 진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생입니다

이 시대 기독교인들이 다 자기들이 영생을 받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입니다. 그러나 범죄를 하고 있는 상태에서는 절대로 영생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가인과 같은 범죄를 하고 있는 상태에서는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은사를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범죄하고 있는 그들이 영생을 얻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영생입니다

우리는 정말 이 영생에 대해서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 시대는 성경을 너무 모르고 있으면서도 막연하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막연함이 결국에는 자기 영혼을 망하게 하고 있지만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영생의 은사가 얼마나 크고 소중한가를 알아야 하는데 영생을 너무 쉽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영생입니다

성경은 이 은사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서도 영생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서도 자기에게 어떤 은사가 임했는가를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이 어떠하다는 것을 모르고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를 아는 것으로 영생을 받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망입니다

우리 인생들은 육체가 사망을 당했습니다. 사망을 당한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습니다. 이것은 사실 사람의 말로 표현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입니다. 아니 육체가 살아 있는 사람이 이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인다는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육체입니다

그것이 죽는 것과 영원한 생명이 사는 것을 비교를 해서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육체가 죽는 것은 죄로 인하여 그 삯으로 죽습니다. 육체는 연약하기 때문에 당연히 죽어야 합니다. 그런데 죽어야 하는 그 육체의 사람인 우리 인생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이 은사를 주셨습니다. 다시 죽는 생명이 아니라 영원히 사는 생명을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그 범죄와 같지 않습니다.

육체는 범죄를 하면 사망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아담이 범죄를 함으로 해서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모든 사람이 범죄를 함으로 해서 사망이 찾아왔습니다. 죄를 진 인생이 죽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그 인생들에게 생명을 주는데 그 생명은 다시 죽는 생명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이라는 말씀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한 사람의 범죄로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아담 한 사람이 범죄를 함으로 해서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대표성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 은사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는 것이 아담이 범죄 한 것과 다르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골로새서3:3절을 보겠습니다. (327)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아담이 범죄를 했습니다.

그 범죄로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잘 보아야 합니다. 많은 사람이 죽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들의 육체가 살아 있는 것을 보면서 이 죽었다는 것을 잘 이해를 못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살았습니까?

물론 육체는 살아 있습니다. 사람의 이성에 따라 살았다고 하면서 성경을 보면 이해를 할 수 없습니다. 한 사람의 범죄로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다는 말씀을 잘 이해를 못하고 있습니다. 육체가 살았다고 해서 살았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성경은 늘 말씀을 드리지만 영의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의 생명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영의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 범죄로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담 한 사람의 범죄로 인하여 그것이 원인이 되어서 아담으로 말미암아 태어나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살 수 없습니다.

육체는 살아 있습니다.

그 육체가 살아 있는 것을 보면서 살았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성경은 영의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체가 아무리 건강하게 살아서 지식이 있고 그리고 성경을 보면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해도 그리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을 보면서 살았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영의 생명이 그 안에 거하지 않으면 다 죽은 사람이라는 것을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살아 있습니까?

이 세상 사람이 살아 있습니까? 그들은 산 사람이 아니라 죽은 사람입니다. 잠시 보이다가 사라지는 안개와 같은 것을 보면서 살았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살았다고 할 때는 영원히 죽지 않아야 살았다고 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한 사람의 범죄입니다

아담의 범죄로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아담 한 사람의 범죄로 많은 사람이 죽었다는 말씀은 아담이 범죄 함으로 해서 세상에 죄가 들어와서 모든 사람이 죄를 짐으로 해서 사망이 찾아왔다는 말씀입니다. 죽었다는 말씀은 더 이상 하나님의 생명이 우리 안에 거하지 않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육체를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영을 생각하는 성도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 육체가 살아 있다고 해서 살았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 육체는 다 죽었습니다. 골로새서에서도 너희는 죽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 육체가 죽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죽었다는 의미를 모르고 있습니다.

영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의 생명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영원히 사는 그리스도의 생명이 없다면 그는 죽은 사람입니다. 또한 그리스도의 생명이 있다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육체가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아담의 범죄로 인하여 우리 육체는 죽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영생입니다

그것은 내 안에 탄생이 되는 그리스도의 영이 주님이 오실 때 깨어나 부활의 신령한 몸을 입는 그것입니다. 우리 육체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오직 믿음으로 우리 안에 새 생명이 탄생이 되고 있습니다. 그 생명이 살아 있는 것이고 우리 육체는 죽었다는 것을 받아들어야 합니다.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신체의 구원을 생각하다보니까 이런 말씀들이 이해가 되지 않고 있습니다.

신체의 구원이 아닙니다.

만약에 신체의 구원이라고 한다면 우리가 죽었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육체가 다시 살아난다면 죽었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담이 죄를 지었습니다.

그래서 사망이 왔습니다. 그럼으로 해서 모든 사람이 범죄를 함으로 해서 사망에 이르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죄가 세상에 들어옴으로 해서 모든 사람이 범죄를 해서 사망이 이르렀습니다. 사도 바울이 한 사람의 범죄로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체는 모두가 죽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그것을 창세기에서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아담의 자손은 흙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한 사람의 범죄로 모두가 흙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렇게 흙으로 돌아가는 것을 사도 바울이 너희는 죽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죽었다는 말씀을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전체에서 숫자가 많아서 많은 사람이 죽었다는 말씀이 아니라 전체가 다 죽은 것을 많은 사람이 죽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담의 자손은 다 죽었습니다. 어느 한 사람도 살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너희는 죽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죽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 안에 감추어져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죽은 자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저희 죽은 자로 죽은 자를 장사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다 죽는 자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담이 범죄 함으로 죄가 세상에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습니다. 그 죄로 사망에 이르러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아니 이 세상 아담의 자손 모두는 죽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그럴지라도 여러분의 육체는 죽었습니다. 그 죽은 육체를 가지고 무엇을 하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에서 우리는 죽었다고 하면 죽은 자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이 시대 사람들을 보면 죽은 자가 아니라 산 자로 살아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너희는 죽었다고 하면 죽어야 합니다. 죽은 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무엇에 의해서 죽었는가 하면 율법에 의해서 죄로 죽었습니다. 그 죽은 것은 이제 끝이 났습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의 생명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감추어져 있습니다.

이제는 어떻게 삽니까?

이 생명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영의 비밀을 성경에서 모르게 되면 그 사람은 평생을 교회 안에서 죄만 짓다가 사망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냥 사망만 당하는 것이 아니라 특별한 형벌을 받게 된다는 것을 성경에서 분명히 경고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골로새서2:13절을 보겠습니다. (326)

또 너희의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에게 모든 죄를 사하시고

아담의 범죄입니다

그 범죄로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모든 사람이 죽었다는 말씀입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입니다. 주님이 오실 때까지 1000억 명이 살았다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 중에 999억 명이 죽었어도 많습니다. 그것도 많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나 1000억 명 모두가 죽었어도 역시 많다든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다 죽었습니다.

물론 이렇게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다 죽은 것을 많은 사람이 죽었다고 해도 전혀 틀리지 않다는 것을 또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와 또는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이 많은 사람에게 넘쳤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죽었습니다.

아담의 우리는 죽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선물을 주셨습니다. 이 선물이 무엇인가 하면 구원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담이 범죄를 함으로 해서 모든 사람이 죽었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이 많은 사람에게 넘쳤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살리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만 살리신 것이 아니라 영으로 살리심을 받은 것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살리는 영을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이 살리는 영이 우리 가운데 거하는 것이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으로 살리심을 받았습니다.

이미 말씀을 드렸지만 분명히 베드로전서3장에서 영으로 살리심을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이 무엇인가 하면 살리는 영을 우리에게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이 영의 일을 모르면 그는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그가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까?

베드로전서1:13절을 보겠습니다. (377)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올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입니다

너희에게 가져올 은혜를 온전히 바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가져올 은혜가 무엇입니까?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 주님이 오실 때 신령한 몸으로 부활을 한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도 모르고 있습니다.

자기가 어떻게 부활의 형상을 입는가를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는 육체의 부활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우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육체는 썩어진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썩지 아니할 씨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시는 영입니다.

거듭남입니다.

이 시대 거듭남에 대해서 말을 하는 곳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서 말하는 거듭남도 성경과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 썩지 아니할 씨를 모르고 있다면 그가 아무리 거듭난 자라고 이야기를 해도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합니다.

그러니까 썩어지는 육체와 썩지 아니하는 영은 서로 다르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썩어지는 것은 한 사람 아담이 범죄 함으로 해서 많은 사람이 죽어서 썩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은사는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이 많은 사람에게 넘쳤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으로 살리심과 같이 사는 영을 우리에게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너희에게 가져올 은혜입니다

그것은 천국을 말씀하고 있고 영생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영생에 대해서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영생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의 문자는 잘 알고 있지만 영의 일을 모름으로 해서 우리에게 주어진 선물이 무엇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입니다

다른 것을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직 생명에 대해서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으로 살리심을 받음으로 말미암아 그 영이 우리 안에 거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사도 베드로가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올 은혜를 온전히 바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바라고 있지 않습니다.

무엇을 바랍니까?

사단의 은혜를 바라고 있습니다. 사단이 주는 것을 가지고 이 시대는 은혜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사단은 육체의 것을 주고 있습니다. 그것을 줌으로 해서 영의 일을 생각하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자기에게 주어지는 은혜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이 시대는 사단에게서 받은 것을 가지고 은혜라고 말을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모독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한 사람의 범죄로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그 많은 사람은 이 세상 모든 사람의 육체가 죽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영으로 살리심을 입은 것과 같이 그의 영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선물이 많은 사람에게 넘쳤습니다.

많은 사람이 구원을 받았다는 말씀입니다. 구원을 받는 사람은 아주 적습니다. 각 시대마다 구원을 받는 사람이 얼마나 적다는 것을 성경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담으로 부터해서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는 많은 사람이 구원을 받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을 사랑하셔서 오래 참으시기 때문입니다.

셀 수 없는 무리입니다

많은 사람을 가르치는 단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이스라엘까지는 어느 정도는 셀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오실 때가 언제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그때까지가 되면 셀 수 없는 무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요한계시록에서 셀 수 없는 무리가 구원을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생입니다

우리는 지금 내 영생만을 생각해야 합니다. 내가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아서 구원을 얻었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내가 영생을 받지 못한다면 누가 얼마나 많은 숫자가 영생을 받았는가 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내가 구원을 받지 못한다면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는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로마서5:16절을 보겠습니다. (246)

또 이 선물은 범죄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과 같지 아니하니 심판은 한 사람을 인하여 정죄에 이르렀으나 은사는 많은 범죄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에 이름이니라

공동번역을 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거저 주시는 은총과 아담의 죄는 그 효과에 있어서 서로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아담의 경우에는 그 한 사람 때문에 모든 사람이 유죄 판결의 심판을 받게 되었지만 은총의 경우에는 죄지은 많은 사람이 은총을 거저 입어 무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이 선물입니다

영생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이 영생은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신체의 구원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 안에 거하심으로 말미암아 그 영이 부활의 신령한 몸을 입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 무엇이라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 시대는 영생에 대해서도 모르면서도 자기들이 영생을 받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구원입니다

저도 잘 설명이 안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거저 주시는 은총과 아담의 범죄와는 비교할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은총을 받았지만 역시 사람의 육체를 입고 있는 인생이라서 이것을 설명한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사망입니다

그리고 생명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비교해서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아직은 잘 실감이 나지가 않습니다. 솔직히 육체를 가지고 있는 인생이 믿음으로 썩지 않은 생명을 얻어 구원을 받았다는 것이 어떻게 실감이 날 수 있겠습니까? 이 시대는 감성의 언어로 그것을 표현하고 있지만 사실 감히 표현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영의 일입니다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지금 죽었다가 바로 영으로 살리심을 받는다면 그것을 충분히 느끼고 이 영광이 얼마나 크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사실 이 영의 일이라는 것이 내세의 일이기 때문에 어떻게 설명을 할 수 없고 그것을 우리가 감성적으로 느끼게 할 수도 없습니다.

영화를 봅니다.

어느 사형수에 대한 영화가 있습니다. 가끔 그런 영화가 나오는 것을 우리가 보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습니까? 그가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정말 극적으로 전개가 되어서 사형을 당하지 않고 감옥에서 나오는 것을 보면서 감동을 하고 있습니다. 마치 내가 그런 상황에 있는데 다시 나오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으면서 감동을 받고 있습니다.

그렇게라도 표현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육의 일이 아니라 영의 일입니다. 실상은 사형수가 다시 풀려 나와서 자유의 몸이 되는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저도 어떻게 표현을 할 수는 없지만 지금 사도 바울이 이 선물은 범죄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과 같지 아니하다는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도 바울 역시도 이렇게 밖에는 말씀을 할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비교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정말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은 이 세상의 언어로는 표현이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더구나 우리는 죄인입니다. 한 사람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모든 사람이 죄를 짐으로 해서 사망에 이르렀습니다. 그것도 참으로 가슴 아픈 일입니다. 그런데 그 가슴 아픈 일에서 우리가 구원을 받았습니다.

영의 일은 딱딱합니다.

그래서 단단한 식물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그 말씀을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지를 모를 정도로 딱딱하다는 느낌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는 이 영이 일이 아무리 단단한 식물이라고 해도 이것을 먹을 수 있어야 합니다.

믿음은 감성이 아닙니다.

내 안에서 지식으로 믿어지는 역사가 있습니다.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으로 말미암아 내 안에서 하나님의 역사가 있는 것이 우리에게 주시는 믿음이라는 말씀입니다. 정말 때로는 단단한 식물을 먹는 것과 같이 우리는 이 영의 일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영의 일이 그렇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next 4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