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5:12절을 보겠습니다. (신 357쪽)
“때가 오래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될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가 무엇인지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이니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못 먹을 자가 되었도다”
단단한 식물입니다
우리가 듣고 있는 영의 말씀이 그렇습니다. 왜 사람들이 때가 오래 되었는데도 마땅히 선생이 되어야 할 텐데 그렇지 못하는가 하면 단단한 식물을 도무지 사람의 이성으로는 먹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영의 일을 알아서 믿는다는 것이 마치 식물로 하면 단단한 식물을 먹는 것과 같이 어렵다는 뜻입니다.
영의 일이 그렇습니다.
더구나 초대 교회입니다. 이 시대는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아예 없습니다. 그래도 초대 교회는 사도들이 있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사도들이 복음을 전해도 사람의 이성을 가지고 듣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그것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습니다.
왜 못 먹습니까?
사도들이 얼마나 잘 가르쳤겠습니까? 그런데도 이것이 영의 일이다 보니까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를 먹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초보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왜 초보에서 벗어나지를 못하는가 하면 믿음으로 역사를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영의 일을 믿으려고 하지 않고 그것을 사람의 지혜로 이해를 하려고 하다보니까 이러한 일이 있습니다.
정말 어렵습니다.
누군가 그래도 복음이 있는 목사와 대화를 했습니다. 성경은 가장 쉽게 푸는 사람이 지혜가 있다고 말을 했습니다. 정말 성경을 푸는 사람은 늘 생각하고 있어야 합니다. 어려운 문자를 쓰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지적인 능력이 없는 사람이 들어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게 푸는 사람이 지혜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어렵습니다.
저 역시도 그렇게 성경을 풀려고 하고 있지만 역시 단단한 식물일 수밖에 없습니다. 왜 단단한 식물인가 하면 영의 일이기 때문에 믿음으로만 역사를 하기 때문에 단단한 식물이라는 말씀입니다. 사람이 감성적으로 쉽게 느끼고 이해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영이라는 것이 내세의 일이기 때문에 사람의 언어로 표현이 안 되기 때문에 단단하기만 합니다.
단단한 식물입니다
우리 성도는 그것을 먹어야 합니다. 때로 사람의 이성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믿음으로 역사를 해야 합니다. 내 안에서 하나님께서 역사를 해 주심으로 해서 단단한 식물인 영의 말씀이 믿어지는 역사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비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비교를 어떻게 설명하기가 참으로 어렵습니다. 어렵더라도 우리는 그대로 이 영의 일이 믿어져야 합니다.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 어떠하다는 것을 내 안에서 역사하는 믿음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선물입니다
그것은 영생입니다. 이것이 범죄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지 않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습니까? 저 역시도 많은 생각을 하고 있지만 그것이 잘 설명이 안 되어서 이렇게 밖에 말씀을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영의 비밀을 알고 있고 우리에게 주어진 생명이 무엇이라는 것을 아는 성도는 사도 바울의 말씀이 이해가 되리라고 믿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입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일입니다. 그것이 어떻게 범죄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과 비교가 될 수 있습니까? 설명할 수는 없지만 생명과 사망은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영생이라는 것이 이렇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지혜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사람의 지혜라는 것이 얼마나 미천한가를 알아야 합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우리가 영생을 얻는다고 하고 있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안다고 하지만 마치 장님이 코끼리 다리를 만지는 것과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말씀하고 있지만 우리는 겨우 구원을 받을 정도만 성경에서 알고 있습니다.
한 사람이 범죄를 했습니다.
그리고 죄가 세상에 들어왔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서 사망에 이르렀습니다. 아담 한 사람이 죄를 짐으로 해서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습니다. 그리고 사망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이 은사는 다릅니다. 우리가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죄는 아담이 짐으로 해서 세상에 들어왔고 모든 사람이 지어서 사망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이 은사는 어떻습니까?
죄는 모든 사람이 지었습니다. 그러면 이 은사도 모든 사람이 했습니까? 그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영생을 얻었다는 말씀입니다. 범죄는 내가 해서 사망에 이르렀지만 생명은 내가 의롭다 함을 얻어서 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을 얻었기 때문에 비교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범죄입니다
아담도 범죄를 했고 나도 범죄를 했습니다. 그러나 은사입니다. 나는 범죄를 함으로 해서 사망에 이르렀습니다. 이미 사망에 이른 나는 어떻게 해도 이 은사를 내 스스로 받을 수 없습니다. 왜 비교할 수 없는가를 여러분이 알고 있어야 합니다.
비교가 됩니까?
절대로 비교가 되지 않고 있습니다. 내 스스로 생명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비교할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아니고는 생명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에 범죄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과는 같지 않다고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 사랑을 안다는 것은 정말 단단한 식물을 먹는 것과 같습니다. 아무리 세상에서 지혜가 있다 해도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시지 않으면 이 사랑에 대해서 깨달을 수 없습니다. 또한 아담 한 사람이 범죄를 함으로 해서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그 죄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사망이 이르렀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이 더욱 크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범죄를 알아야 합니다.
내가 어떠한 범죄를 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런 성도만이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을 어떻게 사랑하셨는가를 조금이나마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시대는 율법을 보고도 자기가 어떤 범죄를 범했는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까 성경을 아무리 보아도 그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을 수 없습니다.
창세기2:17절을 보겠습니다. (구 3쪽)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심판입니다
아담이 범죄를 함으로 해서 심판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아담의 육체는 정녕 죽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육체의 죽음이 찾아 왔습니다. 아담은 진토입니다. 성경말씀과 같이 흙으로 사람을 지어서 생명을 주셨습니다.
한 사람입니다
처음 아담 한 사람으로 죄가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아담은 심판을 받았습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심판은 한 사람을 인하여 정죄에 이르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면 아담 한 사람으로 인하여 유죄 판결을 받아 심판을 받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비교를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계속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말씀을 하면서 아담 한 사람이 범죄를 함으로 해서 우리 인생들의 육체가 모두 죽게 되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정죄를 알아야 하나님의 사랑을 알 수 있기 때문에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을 하는가 하면 아담 한 사람으로 많은 사람이 죽었다는 것만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아담이 범죄를 해서 우리가 죽었습니까?
물론 틀린 말이 아닙니다. 그러나 아담이 범죄 함으로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아담 한 사람은 우리를 대표하는 한 사람입니다. 우리 인생 모두를 대표하는 사람이 아담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들이 착각합니다.
자기가 에덴에 있으면 선악과를 따 먹지 않을 수 있는 것과 같이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마치 아담만 범죄를 하고 자기는 범죄를 하지 않을 수 있는 것과 같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담은 우리 인류를 대표하는 한 사람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고 있어야 합니다.
아담 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한 사람입니다. 대표하는 두 사람이 이렇게 있습니다. 그런데 아담 한 사람은 범죄를 해서 죽었습니다. 그것은 아담 한 사람만 범죄를 했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가 동일한 범죄를 하지 않았지만 우리가 만약에 에덴에 있었다면 역시 동일한 범죄를 했다는 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성경을 너무 쉽게 생각합니다.
아담 한 사람의 범죄로 많은 사람이 죽었다고 말씀을 하니까 모든 책임이 아담에게 있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은 나 역시도 에덴에서 같은 조건에 있었다면 선악과를 따먹었다는 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안 따먹을 수 있습니까?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자기가 진토라는 것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따먹게 되어 있습니다. 아담과 동일한 범죄를 짓지 않았어도 모든 사람이 죄를 범했으면 아담과 동일한 범죄를 지었다는 것을 또한 인정을 해야 합니다. 가끔 보면 사람들은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은 것으로 자기가 마치 피해를 보는 것과 같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대표입니다
아담은 우리 인생의 대표가 되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범죄를 했으면 우리 역시 범죄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서 이런 대표성을 모르게 되면 영의 일을 도무지 깨달을 수 없습니다. 성도가 왜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는가 하면 바로 영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죄를 짓지 않았고 그 영이 우리 안에 있기 때문에 죄를 짓지 않았습니다.
아담은 범죄를 합니다.
그러면 아담의 육체를 입고 있는 모든 사람은 범죄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의의 사람입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있는 그리스도의 사람은 범죄를 하지 않고 의의 사람이 됩니다. 그리스도의 예수의 사람이라고 하니까 아담의 육체를 보고 말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아담의 사람이고 내 안에 있는 영이 그리스도의 사람입니다.
비교를 하고 있습니다.
아담 한 사람으로 많은 사람이 심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많은 범죄에서는 은혜가 뒤따라 와서 무죄판결을 내렸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망과 생명에 대해서 비교를 하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받은 영생이 어떤 것인가를 말씀을 해 주고 있습니다.
로마서3:23절을 보겠습니다. (신 243쪽)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영생입니다
많은 범죄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에 이름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생을 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많은 범죄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을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선물입니다
그것은 우리 인생들에게 주어지는 영생입니다. 이 영생은 범죄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과 같지 않습니다. 아담이 범죄 함으로 해서 육체의 심판이 이르렀고 모든 육체가 사망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사는 많은 범죄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우리는 많은 범죄를 했습니다. 그 범죄에서 의롭다 하심을 주시는 것이 은사라는 말씀입니다. 우리에게 주시는 영생이라는 말씀입니다. 범죄를 했으면 반드시 죽어야 합니다. 그러나 많은 범죄를 인하여 하나님의 은사가 주어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참 어렵습니다.
설명을 하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사도 바울이 우리가 받은 영생을 은사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또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을 선물이라고 하면서 하나님의 사랑이 어떠하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영생은 우리 인생이 많은 범죄를 지었지만 의롭다 하셔서 받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생을 어떻게 받았습니까?
우리가 의롭다 하심을 받아서 받았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우리는 많은 죄를 범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범죄 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으로 영생을 주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많은 범죄가 있기 때문에 우리가 의롭다 하심을 받고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역설입니다
많은 범죄가 있었기 때문에 아니 모든 사람이 범죄를 했기 때문에 우리가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만약에 어느 한 사람이라도 범죄를 하지 않았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세상에 오시지 않았고 우리는 영생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좀 역설적이지만 사실 많은 범죄가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영생을 얻고 있습니다.
모릅니다.
이 시대도 율법을 잘 지키는 사람은 성경을 아무리 보아도 복음을 깨달을 수 없습니다. 어떻게 우리의 많은 범죄로 인하여 영생이 주어진다는 것이 믿어질 수 있습니까? 그러나 사도 바울이 그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 모두가 범죄를 했기 때문에 은사가 주어졌고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감사한 일입니다
만약에 하나님께서 아담보다 더 강한 자를 이 세상에 두셨다면 은사는 우리에게 주어지지가 않았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아담보다 더 강한 자가 스스로 영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그가 영생을 얻는다면 주님이 오셔서 십자가에서 구속의 일을 이루시는 것은 불의한 일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했습니다.
그리고 많은 범죄입니다. 그것이 있었기 때문에 이 시대 우리 성도가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이 말씀이 도무지 이해가 안 됩니다. 하지만 주님의 은혜가 임하고 있는 성도들에게는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고 많은 범죄에서 내가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는 것이 믿어지고 있습니다.
영생입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역설입니다. 만일 우리 중에 어느 한 사람이라도 범죄를 하지 않았다면 우리에게는 이 은사가 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이 은사는 많은 범죄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에 이름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주의자의 생각에서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만 성경은 그렇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생을 어떻게 받습니까?
예수님께서도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 시키러 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의인을 부르러 오셨다면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실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 아니 의인을 찾아 오셨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자의 은혜는 불의한 것이 되고 만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고 있어야 합니다.
죄인입니다
많은 범죄입니다. 세상의 상식으로는 조금 황당하게 들릴지 몰라도 우리 성도들에게는 이 은사가 은혜입니다. 많은 범죄가 없었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도 구원을 받을 수 없고 이성이 없는 짐승과 같이 멸망을 당하고 말았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많은 범죄에서 우리에게 은사를 주시고 있습니다.
의롭다 하시고 있습니다.
우리는 범죄를 했는데 의롭다 하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이 이 선물이 범죄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과 같지 않다는 것을 이제 어느 정도 알 수 있습니다. 범죄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그 죄로 사망에 이르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은사입니다
우리에게 주시는 영생입니다. 이 영생은 그것과는 같지 않습니다. 사람의 이성의 생각과는 같지 않다는 말씀입니다. 많은 범죄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이르고 있습니다. 많은 의로서 의롭다 하심을 이르러야 하는데 많은 범죄로 의롭다 하심을 이른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은사라고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선물이라는 말씀입니다
얼마나 값진 선물입니까? 그런데도 사람들은 성경을 보면서도 이 선물을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을 사람의 이성으로 생각하면서 범죄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과 같이 생각을 하니까 도무지 이 은사를 믿음으로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영생입니다
사람의 이성으로는 이해가 될 수 없습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이 선물은 범죄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과 같지 아니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성경을 보면서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까 도무지 이 선물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많은 범죄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이루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설명을 할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이 은사를 설명할 방법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모르니까 더욱 더 설명이 안 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자기들이 영생을 얻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면서 영생을 얻었다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사람들에게는 많은 범죄가 없기 때문에 이 은사가 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안 됩니다
은사입니다. 영생입니다. 많은 범죄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렇게 영생이 주어지는 것을 선물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선물은 사람의 이성으로는 안 된다는 것을 말씀하기 위해서 범죄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과 같지 않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은 사랑입니다.
설명이 안 되는 사랑입니다
사람의 이성으로는 도무지 깨달을 수 없는 사랑입니다. 그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사도 바울이 여러 가지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저 역시도 이 말씀을 표현하는데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한 성령 안에서 행하고 있는 우리 성도님들에게 희미하게나마 깨닫게 해 주시고 있고 그 사랑 안에 거할 수 있게 역사를 하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로마서5:17절을 보겠습니다. (신 246쪽)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사망이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이 한 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아담 한 사람의 범죄 때문에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죽음이 왕 노릇 하게 되었다면, 넘치는 은혜와 의의 선물을 받는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으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게 되리라는 것은 더욱더 확실합니다.”
아담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아담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두 사람이 있습니다. 먼저 아담의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아담의 사람은 한 사람 아담의 범죄로 인하여 사망이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망입니다
우리에게 사망이 찾아왔습니다.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은 후로 사망이 왕 노릇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정말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아담 때문에 우리가 죽는 것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이 이렇게 말씀을 하고 있지만 마치 아담 한 사람으로 우리가 죽는 것으로 생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대표입니다
육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의 대표가 아담입니다. 단순히 하나님께서 처음 흙으로 지으신 아담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이 아담은 우리 인생 모두를 대표하고 있는 한 사람입니다. 그 아담이 범죄를 함으로 해서 내가 죽음에 이른 것이 아니라 우리는 아담의 자손이기 때문에 다 범죄를 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한 사람의 범죄입니다
그것은 우리 인생 모두를 대표하는 한 사람이 범죄를 했습니다. 그 한 사람에는 육체의 나도 포함이 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내가 아담과 다른 사람이 아니라 아담과 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마치 아담과 내가 전혀 다른 사람인 것으로 생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사람입니다
아담의 사람이 있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아담의 사람은 모두가 죄를 범했습니다. 모든 사람을 말씀할 수도 있지만 사도 바울은 그 대표성이 있는 아담 한 사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역시 처음 지음을 받았다면 아담과 같이 범죄를 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한 사람을 말씀할 때는 인류 전체를 대표하는 한 사람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범죄를 한 것은 인류 모든 사람이 범죄를 한 것과 같다는 것을 먼저 생각을 하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아담은 범죄를 했는데 나는 범죄를 하지 않을 수 있다고 하는 사람은 가장 악한 자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 바리새인들이 그렇게 말을 하다가 저주를 받고 말았습니다.
한 사람이 범죄를 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지금 아담 한 사람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인류를 대표하는 한 사람 아담을 말씀을 하고 있고 우리 인류가 이 한 사람 속에 다 들어가 있다는 것을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아담이 범죄를 했습니까?
12절에서 이미 모든 사람이 범죄를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담과 동일한 범죄를 하지 않았지만 우리 역시 범죄를 했습니다. 우리는 아담보다 강한 자가 아니라 약한 자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아담은 죄를 안 지어본 상태에서 지음을 받았지만 우리는 죄악 중에 출생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을 너무 자의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깊이 생각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한 사람이 범죄를 했다고 하니까 아담에게 모든 죄가 돌아가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마치 아담이 아니었다면 자기는 범죄를 하지 않았을 것과 같이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우리는 아담의 자손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죄악의 종자입니다
아담이 죄를 지어서 죄악의 종자가 아니라 아담이 아니더라도 나는 죄를 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죄악의 종자입니다. 한 사람의 범죄로 인하여 사망이 그 사람으로 말미암아 왕 노릇하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담의 범죄가 아니라 우리 인류 전체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범죄 했습니다.
그 범죄로 인하여 사망이 왕 노릇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담의 사람은 사망이 왕 노릇하기 때문에 반드시 죽어야 합니다. 그런 우리 인생들에게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게 하고 있습니다.
요한일서5:17절을 보겠습니다. (신 393쪽)
“모든 불의가 죄로되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도 있도다”
사망입니다
모든 불의가 죄로되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도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이 문제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죄를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담이 어떤 범죄를 했는가를 성경을 보면서도 모르고 있습니다.
죄입니다.
사도 바울은 지금 도덕적인 죄를 말씀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죄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육체의 사망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영이 탄생이 되지 못하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탄생이 되지 못하는 것을 성경에서는 사망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의 범죄입니다
그것이 어떤 범죄입니까? 사람들은 아담이 선악과를 따 먹은 것이 도덕적인 죄를 지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요한일서에서 그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모든 불의가 죄로되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도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망에 이르지 않은 죄는 우리가 짓고 있는 도덕적인 죄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육체적으로 짓는 죄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담이 범죄를 했습니다.
사망이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아담이 지은 죄가 어떤 죄인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모든 불의가 죄로되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도 있는데 한 사람의 범죄로 인하여 사망이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아담이 지은 죄는 사망에 이르는 죄라는 말씀입니다.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담이 구원을 받지 못했다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은 다 사망에 이르는 죄를 지었습니다. 지금 진리로 인도함을 받고 있는 우리 역시도 예전에는 사망에 이르는 죄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복음을 깨닫고 나서는 사망에 이르는 죄를 짓지 않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담이 선악과를 따 먹은 것은 도덕적인 죄가 아니라 사망에 이르는 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셨습니다.
아담만 그런 것이 아니라 성경에서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욥입니다. 그 역시 사망에 이르는 죄를 지었지만 세상에서 가장 악한 자인 욥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사랑하셔서 구원해 주시는 가를 욥기를 통해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입니다
모두가 도덕적인 죄를 지었습니다. 물론 그 죄로 인하여 우리 육체가 죽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실상은 우리 영혼이 탄생이 되지 못하는 것이 더 큰 문제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도덕적인 죄만 짓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사망에 이르는 죄를 짓고 있다는 것을 또한 알고 있어야 합니다.
도덕적인 죄입니다.
그것이 사망이 왕 노릇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지금 영의 사망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도덕적인 죄가 사망이 왕 노릇한다는 말씀이 아니라 율법을 지키는 영적인 죄를 짐으로 해서 사망이 왕 노릇하고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육체의 사망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지금 영의 사망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이 탄생도 안 되어 있기 때문에 사실은 사망이라고 할 수 없겠지만 그러나 탄생이 되지 않은 그 자체가 사망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지금도 역시 한 사람의 범죄로 사망이 왕 노릇하고 있습니다. 아담과 같은 죄를 짓지를 않고 있지만 사망에 이르는 죄를 다 짓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사망에 이르는 죄를 지어서는 안 됩니다. 물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도덕적인 죄와 사망에 이르는 두 가지 죄에서 우리를 구원해 주시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는 사망에 이르는 죄를 지면서도 가지가 무슨 죄를 짓고 있는 줄을 모르고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를 짓는 것을 보면서 도리어 정죄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육체는 죽습니다.
그러나 영혼은 반드시 살아야 합니다. 성경이 그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아직 영원한 생명이 탄생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사망에 이르는 죄를 짓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 성도들에게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주심으로 해서 우리가 생명 안에서 왕 노릇할 수 있게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의 범죄입니다
그 한 사람은 우리 인생을 대표하는 한 사람입니다. 우리 역시 모두가 사망에 이르는 죄를 짓고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의의 선물을 받았습니다. 그 선물을 받은 성도는 영원한 생명이 있다는 것을 사도 바울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5:5절을 보겠습니다. (신 307쪽)
“우리가 성령으로 믿음을 좇아 의의 소망을 기다리노니”
의의 선물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받은 자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디서 그렇게 받았는가 하면 사망이 왕 노릇하는데서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체는 사망이 왕 노릇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은혜로 의의 선물을 받았습니다.
그 의의 선물이 무엇인가 하면 성령으로 말미암아 난 영을 의의 선물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갈라디아서의 말씀을 주님께서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 안에 영이 탄생이 되었고 그 영으로 말미암아 믿음을 좇아 의의 소망을 기다린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의의 선물입니다
성령으로 난 영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로마서에는 그리스도의 영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범죄로 인하여 사망이 왕 노릇해서 우리 스스로는 의로운 생명을 얻을 수 없습니다. 이 생명은 반드시 선물로 받아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구원은 선물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담의 사람입니다
범죄로 인하여 사망이 왕 노릇하고 있습니다. 그런 우리 인생들을 하나님께서 사랑을 하셔서 의의 선물을 주시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그 의의 선물을 어떻게 받아야 하는 줄을 모르고 있고 그 의의 선물이 무엇이라는 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육체가 아닙니다.
성령으로 난 영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의의 선물을 반드시 받아야 합니다. 육체는 이미 사망이 왕 노릇하고 있습니다. 육체는 사망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담의 사람은 범죄를 했기 때문에 사망이 왕 노릇하고 있습니다.
반드시 죽어야 합니다.
그런 우리에게 넘치는 은혜와 의의 선물을 주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 선물로 한 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 노릇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의 범죄로 인하여 사망이 왕 노릇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 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 노릇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입니다
아담 안에 있는 모든 사람입니다. 그리고 한 분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 분으로 말미암아 생명이 탄생이 된 모든 사람입니다. 이 두 사람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사망이 왕 노릇 하고 있는 아담의 사람에게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은 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 노릇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왕입니다
히브리서7장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첫째 의의 왕이요 또 살렘 왕이니 곧 평강의 왕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의의 선물을 받은 자들이 한 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 노릇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생명 안에서 왕 노릇입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사망이 왕 노릇합니다.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생명 안에서 왕 노릇한다는 말씀은 그 생명을 다스리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다스리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생명을 다스리면 영원히 살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생명 안에서 왕 노릇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왕입니다
생명이 다스림을 받습니다. 우리가 가는 천국입니다. 신부가 신랑을 위해 단장한 것 같더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언어로 표현이 안 될 정도로 좋은 곳입니다. 그런 곳에서 생명 안에서 왕 노릇하면 누가 자기 생명을 죽게 하겠습니까? 천국에서 영원히 산다는 것을 사도 바울이 생명 안에서 왕 노릇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담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아담의 사람인 우리는 범죄를 해서 사망이 왕 노릇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주셨습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로마서 5장에서는 하나님의 은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범죄 했습니다.
그래서 사망이 왕 노릇 했습니다. 그런 아담의 사람은 죽고 이제 의의 선물을 우리가 받았습니다. 그 의의 선물이 영생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생명을 받았습니다. 어느 생명을 받았는가 하면 영원히 왕 노릇하는 생명을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next 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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