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5:13절을 보겠습니다. (신 245쪽)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느니라”
죄가 들어왔습니다.
아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들어왔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법적으로 하면 아담은 반드시 사망을 당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율법을 어기신 것이 아니라 율법에 도피성을 만들어서 그릇 살인한 자로 대제사장이 죽기 까지 거기에 살도록 했습니다.
아담만 죄를 지었습니까?
아담이 죄를 짐으로 해서 모든 사람이 아담과 같이 죄를 지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은 다 죄인입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무슨 죄를 지었는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이야 그렇다고 해도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구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자기의 죄를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죄를 죄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안다고 하는 그들이 죄를 전혀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니 더 많은 죄를 짓기 위해서 경쟁을 하고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다고 하면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데 죄를 짓지 않으려고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의인이 없습니다.
모두가 죄를 지어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습니다. 나는 아니라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나는 사망을 당할 죄를 짓지 않았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이 그렇다고 하면 그런 것입니다 자기 스스로가 모를 뿐이지 성경은 이 세상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죄를 지었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는 의인이 없습니다. 모두가 무엇을 말씀하고 있는가 하면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의인이 되어야 생명을 얻을 수 있는데 죄를 지어서 사망이 찾아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소소한 도덕적인 죄를 진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사망에 이르는 죄를 지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습니다.
사실 법대로 하면 모든 사람이 사망에 이르러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은혜를 받을 수도 없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단 한 번에 죽게 하셨습니다. 그것을 율법으로 정하셔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죄인입니까?
그럼 나는 이미 사망을 당했습니다. 지금 육체의 생명이 있다고 해서 살아 있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 육체의 생명은 헛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 육체에 생명이 있는 것으로 자기가 살아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어리석습니다.
성경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모든 사람이 죽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죽었습니다. 아담도 죽었고 사도 바울도 죽었고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도 죽었고 또 아직 태어나지 않은 사람들도 역시 죽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세상은 모릅니다.
모든 사람이 왜 죽었는가를 모릅니다. 지금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죽었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초대 교회에 복음이 전해질 때만 해도 모든 사람이 다 죽었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기독교가 되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것을 받아들이지를 않고 더 살려고 기를 쓰고 있습니다.
죽었습니다.
우리는 이미 사망을 당해서 죽었습니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우리는 죽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렇게 사형 선고를 받고 죽은 자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생명에 대해서 우리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살리셨습니다.
어떻게 살리셨습니까?
영으로 살리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심으로 우리도 모두 죽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럼으로 해서 우리도 역시 다시 살아나게 되었고 이것이 육체의 일이 아니라 영의 일입니다
육체는 죽었습니다.
그렇게 육체가 죽은 자는 그 육체에 애착을 가지지 않습니다. 이제 살 수 있는 방법은 그 육체가 아니라 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영의 일을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육체로 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육체는 이미 죽었으니까 그것은 썩어 없어지게 버려두고 이제는 영으로 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영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까 사망을 당한 그 육체에 더욱 애착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내가 영원히 살 수 있는 영을 알았으면 이제 육체는 죽은 것으로 버릴 수 있는데 이 영의 비밀을 모르다보니까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세상과 같이 자기들의 육체를 가지고 살려고 바동거리고 있습니다.
성경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이 죽음으로 모든 사람이 죽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 생각을 가지고 성경을 보려고 하지 마시고 성경에서 어떻게 말씀을 하고 있는가를 깨닫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성경을 성경으로 보려하지 않고 있고 자기들의 생각을 가지고 성경을 보면서 성경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나는 죽었습니다.
아담의 나는 사망을 당했습니다. 언제 사망을 당했는가 하면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나도 함께 죽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런 성도만이 자기 육체를 가지고 행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 육체가 사망을 당하지 않고 계속해서 살아 있는 그 모든 행사가 다 악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망을 당했습니다.
나는 아니라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사람은 아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입니다 성경에서 모든 사람에게 사망이 이르렀다고 하면 나도 그 모든 사람에 포함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나를 빼고 모든 사람이 아니라 나 역시도 그 모든 사람에 포함이 되어서 사망에 이르렀다는 것을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성경이 이해가 안 됩니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사람의 이성으로 이해를 하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분명히 모든 사람이 죽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왜 모든 사람이 사망에 이르렀는가를 알기 위해서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는 성도가 그것을 깨닫고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율법이 있기 전에도 죄가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가 죄로 여겨지지 않았습니다.”
성경이 참 어렵습니다.
강해를 쓰면서 늘 느끼고 있지만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무심하게 쓰고 있는 말씀이 뒤에 가서는 이상하게 서로 반대가 되는 것을 보게 되면 도무지 이해가 안 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이 말씀도 강해를 거의 한편을 다 쓰고 난 후에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허탈해 집니다.
이제까지 썼던 강해를 다 지우고 새로 쓴다는 것이 때로 무척이나 힘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힘이 드는 그것보다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셔서 성경을 깨닫게 해 주시는 그것이 더 크기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글을 새로 쓰고 있습니다. 이렇게 성경이 어려운데도 사람들은 너무 쉽게 성경을 보고 있고 자기들이 하고 싶은 말을 아무렇게나 하고 있습니다.
이해가 안 됩니다
그래서 억지로 풀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의 생각에 따라 이야기를 하고 모르면 그저 오직 예수라는 그 말 한마디만 하면 모든 것이 다 덮어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사소한 것들이 모이다보면 진리에서 완전하게 벗어나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냥 지나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모르면 정말 간절한 마음으로 지혜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베드로후서에서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른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멸망을 당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을 얻기 위해서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생명입니다
우리는 이 생명을 얻기 위해서 끝까지 달려가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이 생명에 대해서 너무 쉽게 자기들이 얻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청년의 때 광야 사십 년 동안에 우리는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힘써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풀고 있습니까?
억지로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해가 안 되면 반드시 지혜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차라리 성경을 풀지 않는 것이 더 낫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으려면 그만큼 성경을 많이 알아야 합니다. 문자를 많이 아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있는 뜻을 많이 알아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죄입니다.
사도 바울이 아담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왔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죄로 인하여 사망이 온 것과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통상적으로 알고 있는 죄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죄가 율법이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이해하기 힘이 드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죄가 율법이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습니다. 우리가 세상의 상식으로는 조금 이해가 안 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요한복음8:17절을 보겠습니다. (신 158쪽)
“너희 율법에도 두 사람의 증거가 참되다 기록하였으니”
죄가 율법이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하기 바로 전에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자를 끌고 왔습니다. 이 여자를 끌고 와서는 예수님께서 이 여자를 어떻게 처리하는 가를 알기 위해서 율법을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모세의 율법입니다
이러한 여자를 돌로 쳐 죽이라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이 일에 대해서는 굳이 더 이상 말씀을 드리지 않아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난 후에 주님께서 나는 세상에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어떤 상황입니까?
어찌 되었든 바리새인들이 볼 때는 주님이 율법을 어기고 있습니다. 모세의 율법에는 간음하다 잡힌 여자를 반드시 돌로 쳐 죽여야 합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돌로 쳐 죽이지도 않고 도리어 이 여자에게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으로는 반드시 정죄를 해서 돌로 쳐 죽여야 하는 이 여자를 정죄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율법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자기들이 율법을 알기 때문에 이 여자가 죄를 지었다는 것을 알고 끌고 왔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 여자를 정죄하지 않고 살려 주시면서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어두움에 다니고 있습니까?
율법에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를 그대로 보고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힌 여자를 끌고 온 사람들에게 어두움에 다니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바리새인들이 네가 너를 증거 하니 네 증거가 참 되지 아니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너희 율법에도 두 사람의 증거가 참되다 기록하였으니 주님의 증거가 참되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조금 어렵습니다.
그럴지라도 잘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지금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서 말씀하고 있는 죄가 율법이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다는 그 말씀을 하기 위해서 요한복음의 말씀을 보고 있습니다. 지금 누가 죄를 짓고 있습니까?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자가 죄를 짓고 있습니까? 바리새인들이 죄를 짓고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나는 세상에 빛이라고 말씀을 하면서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혀서 끌려온 여자가 죄가 있는 것이 아니라 어두움에 있으면서 그 여자를 끌고 온 서기관과 바리새인에게 죄가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죄를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은 이 죄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은 생명에 대한 말씀이라는 것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세상의 이성으로 볼 때는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혀온 여자가 죄가 있습니다. 그리고 바리새인과 서기관은 죄가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도리어 간음하다가 잡힌 여자를 끌고 온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 어두움에 다니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너희 율법에도 두 사람의 증거가 참되다 기록하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이 누구의 율법입니까?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정죄를 한 그 율법이 누구의 율법입니까? 예수님께서 하나님께서 반포하신 율법이라고 하시지 않고 너희 율법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죄입니다.
누구의 죄입니까?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자는 누구의 죄입니까? 이스라엘의 율법을 범한 죄인입니다. 그것을 예수님께서 너희 율법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 율법을 어긴 죄는 누구의 죄입니까? 사람의 죄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죄를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사람의 죄가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범한 죄가 있습니다.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자는 사람의 죄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그 여자를 끌고 온 서기관과 바리새인은 하나님께 범죄를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주님께서는 어두움에 다니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12절의 죄입니다.
그 죄는 모든 죄를 함께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죄와 하나님께 범죄한 것을 같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고 나서 사도 바울이 13절에서 죄가 율법이 있기 전에 세상에 있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죄는 어두움에 다니고 있는 죄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죄입니다.
물론 도덕적으로 짓는 죄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두움에 다니고 있는 죄도 있다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도적적인 죄를 진 여자에게는 정죄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어두움에 다니고 있는 바리새인들에게는 생명이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정말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죄가 율법이 있기 전에 세상에 있었습니다.
이 말씀을 보고 거의 모든 사람이 도덕적인 죄가 율법이 있기 전에 세상에 있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 죄가 세상에 있었던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지금 그 도덕적인 죄를 말씀하고 있는가를 성경을 보면서 바로 분별을 해야 합니다.
이 죄는 이미 말씀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도덕적인 죄에 대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4장에서 이미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그 죄를 진 사람일지라도 우리는 믿음으로 생명을 얻는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제 사도 바울은 아담이 어떤 범죄를 했는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죄가 율법이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습니다.
이것을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까? 아니 세상 사람들은 혹시 모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정말 이 죄에 대해서 끊임이 없이 생각을 한 사람이라면 다 알고 있습니다. 성철 스님이 죽으면서 내 죄가 수미산보다 더 높다고 말을 하고 죽었습니다. 그는 성경에 있는 율법대로 산 사람이 아니지만 자기 죄가 어떠하다는 것을 죄에 대해서 깨달은 사람입니다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에서 정의를 하고 있는 말씀을 알고 있습니다. 죄를 범치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아주 없다는 말씀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남들은 혹시 모를지라도 자기는 압니다. 내가 무슨 죄를 짓고 살아가는 가를 남들은 속일 수 있을지 몰라도 자기 자신은 양심에서 가책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나이가 많은 목사들의 간증을 가끔 들어보면 자기가 마치 죄가 없는 것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천주교 같은 경우에도 자기들이 성인이라고 말하고 있는 그 사람들은 죄가 없다고 말을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성경을 보지도 않고 있고 성경에서 어떻게 말씀하는 가를 모르고 있는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죄가 율법이 있기 전에 세상에 있었습니다.
그것을 성경을 보는 사람들이 몰라서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더구나 초대 교회는 복음을 들었습니다. 로마에 있는 성도들은 자기들이 누구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시대 성경을 보는 사람들 역시도 자기가 죄인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무슨 죄를 지었는지도 모르면서도 성경이 죄인이라고 하니까 죄인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죄가 있었습니다.
율법이 있기 전에도 세상에 죄가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도덕적인 죄를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죄를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에게 하시는 말씀과 같이 어두움에 다니고 있는 죄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창세기4:3절을 보겠습니다. (구 5쪽)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죄가 율법이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가인과 아벨을 성경에서 보면서 가인이 아벨을 죽인 것만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가 자기 동생을 죽인 것도 죄가 됩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의 죄입니다. 그 전에 가인은 하나님께 죄를 범함으로 해서 하나님께서 그 제물을 받지 않으셨습니다.
죄가 세상에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인의 제물을 받지 않으셨습니다. 왜 받지 않으셨습니까? 그가 하나님께 죄를 지었기 때문에 받지 않으셨습니다. 만약에 그가 죄를 안 지었다면 하나님께서는 가인의 제물을 받으셨습니다. 하지만 가인은 죄를 지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셨습니다.
7절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분을 내고 있는 가인에게 너는 죄를 다스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가인이 죄를 지었습니다. 율법이 있기 전에 그는 죄를 지었다고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무슨 죄를 지었는가 하면 도적적인 죄가 아닙니다. 아직 가인이 아벨을 죽이기 전에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네 죄를 다스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가인이 아벨을 죽였습니다.
그것을 가지고 사도 바울이 죄가 율법이 있기 전에 세상에 있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그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정말 성경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벨을 죽이기 전에 가인에게 네 죄를 다스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가인의 죄입니다.
제물을 모르고 드리는 제사가 가인의 죄입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물이 되는 제사를 드려야 하는데 가인은 사람의 생각을 가지고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 제사가 어떤 제사인가 하면 이스라엘이 문자 그대로의 율법을 지켰던 제사입니다
죄에 대해서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가인이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네 죄를 다스리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가인이 아벨을 죽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배나 받으리라고 하시면서 죄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성경을 보면서도 죄가 무엇인가를 모르고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도저히 깨달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율법이 있기 전입니다
지금 가인과 아벨이 있었던 때는 율법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벌써 하나님께서는 가인에게 죄를 다스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사람의 율법을 범한 죄를 보고 그렇게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제사를 드리고 난 후에 그 제물을 열납하시지 않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가인이 하나님을 안 믿었습니까?
아담의 자녀입니다 아담이 하나님께서 자기를 어떻게 구원해 주셨다는 것을 아주 자세하게 말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아담이 에덴에 있었던 때부터 해서 하나님께 어떻게 범죄를 해서 쫓겨나게 되었고 또 그런 자기를 하나님께서 어떻게 구원해 주셨는가를 다 말해 주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인과 아벨도 하나님을 믿고 있었고 제사를 드렸습니다.
누구에게 제사를 드렸습니까?
가인과 아벨은 하나님을 믿었던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았다면 가인은 제사를 드리지 않았을 것이 분명합니다. 아담으로부터 전해들은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가인은 죄를 지었고 그 죄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가인이 무슨 죄를 지었습니까?
그가 이 시대 교인들과 같이 하나님을 안 믿었습니까? 그는 아담의 아들이라는 것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그가 육체의 죄를 진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행위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렇게 행위로 제사를 드린 가인의 제물을 하나님께서는 열납을 하시지 않았습니다. 그 행위가 죄라는 말씀입니다
죄입니다.
죄가 율법이 있기 전에 세상에 있었습니다. 아담의 아들에게서부터 죄가 있었습니다. 물론 아담도 죄를 범했지만 그의 아들 역시도 죄를 지었다는 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가인이 아벨을 죽이기 전에 이미 죄를 지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죄입니다.
사도 바울이 죄가 율법이 있기 전에 세상에 있었다는 그 죄가 어떤 죄인가 하면 바로 가인의 죄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가인은 땅의 소산의 제물로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것이 죄라는 것을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 시대 교인들 역시 그것이 죄라는 것을 꿈에도 모르고 가인과 같이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드리고 있습니다.
땅의 소산입니다
우리가 누구입니까? 아담에게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가인의 제물과 아벨의 제물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가인은 자기의 의로 제물을 삼아 제사를 드렸고 아벨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히브리서에서 그 예물에 대하여 증거를 하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비유입니다
땅의 소산과 아벨의 예물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내 의와 예수 그리스도의 의입니다 내 의를 나타내고자 했던 가인에게 하나님께서는 네 죄를 다스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말씀을 보면서 죄가 율법이 있기 전에 세상에 있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가인의 죄입니다.
사람들은 그 동생 아벨을 죽인 것만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이전에 이미 가인은 죄를 지었습니다. 이 죄가 율법이 있기 전에 세상에 있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가인이 어떠한 죄를 지었는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땅의 소산이 무엇이라는 것을 모르고 이 시대 역시 자기들의 의를 나타내는 제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창세기6:5절을 보겠습니다. (구 8쪽)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노아 시대입니다
우리가 너무 잘 알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또 오해를 하고 있는 말씀 중에 하나라고 해도 맞습니다. 오래전에 노아의 홍수에 대한 영화가 나왔습니다. 아마도 이 노아의 홍수에 대한 영화는 가끔 가다가 제작이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영화를 보면 어떻습니까?
이 세상 사람들이 사람의 이성으로 볼 때 많이 타락하고 사람에 이성에 따르는 악을 행하는 것으로 묘사가 되고 있습니다. 성경에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했다고 말씀을 하니까 거의 모든 사람들이 문자적으로 그렇게 보고 있고 영화사들은 그런 영화를 만들어서 기독교인들의 감정을 자극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세상에 죄악이 관영합니다.
그런데 자기들은 하나님을 아주 잘 믿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세상에 이성에 따른 도덕적인 죄와 악한 행위들을 영화를 통해서 보면서 대리 만족을 누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제가 이제까지 본 노아의 홍수라는 몇 가지 영화를 보았을 때 거의 그렇게 제작이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기독교인들을 위한 영화입니다
그 영화를 보면서 자기들은 하나님을 믿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대리만족을 누리면서 하나님을 잘 믿는 자기들은 주님이 다시 오실 때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노아의 홍수를 본 기독교인들의 생각이 거의 같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는 사람들의 생각이 거기까지 밖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영화를 만들고 있습니다.
기독교인입니다
천주교와 기독교를 합치면 엄청난 숫자입니다 최소한 20억 명 이상은 될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언론에 나온 전망치를 보니까 약 24억 명이라고 나와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 숫자는 기독교, 천주교, 정교회 등을 합친 숫자라고 합니다.
노아의 홍수입니다
그 외에도 성경에 기록된 여러 영화들이 제작이 되고 있습니다. 그런 영화를 잘만 만들면 흥행이 어느 정도는 보장이 되고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하지만 그런 영화들이 다 비성경적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도 모르는 그들이 영화를 보고 어떻게 분별을 할 수 있겠습니까? 세상에 죄악이 관영했다고 말씀을 하니까 사람의 이성을 따라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죄입니다.
노아의 홍수 때입니다 어느 죄가 세상에 관영을 했다는 말씀입니까? 여러분이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때가 언제입니까? 보통 수명이 900살이 넘는 것으로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를 보더라도 조금 오래 살면 4대가 같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900살입니다.
100살이 4대라고 보면 최소한 30대 자손과 같이 살아가고 있는 때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과연 그렇게 오래 사는데 지금 이 시대보다 도덕적인 죄를 더 많이 짓는다고 생각을 합니까? 아직은 손자가 있는 분들이 적습니다. 그러나 손자가 있어 보시기 바랍니다. 얼마나 자기 행동이 더 조심스러워지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30대 손자와 같이 삽니다.
도적질을 했다고 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제는 워낙 인구도 많고 교통도 발달을 하다보니까 사실 누가 도적질을 했는가를 잘 알 수 없습니다. 그리고 설령 도적질을 했다 해도 불과 80세 정도면 그 사람이 죽으니까 그 자손들이 잘 모르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900살 이라면 우리나라로 하면 고려시대 중반기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아직까지 살아 있다고 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니 가정을 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 당시 유명했던 사람들의 업적을 이 시대 사람들이 역사를 통해서 배우고 있습니다. 자기 조상이 큰 일을 했으면 그것이 자랑거리가 되지만 만약에 큰 죄를 지었다면 숨기려고 할 것이 분명합니다.
자기와 아무 상관도 없는 조상입니다
그 조상이 정말 끔찍한 죄를 지었다면 어떻게 해서라도 숨기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살아 있다고 해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900살까지 산다고 해 보시기 바랍니다. 물론 청년의 때에는 어느 정도 객기를 부리면서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정말 모범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혼인을 하지 않고 아이가 없을 때는 조금 더 자유롭게 살아갔습니다. 그러나 아이가 성장을 하면서는 행동 하나하나에 조심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더구나 손자가 있다면 더 합니다. 그리고 그 손자들이 수천 명에서 수만 명이 된다고 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가 과연 이 세상에서 말하는 도덕적인 죄를 지면서 살 수 있는가를 생각하면 답은 간단합니다.
성경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노아 시대에 세상에 죄악이 관영했습니다. 어느 죄악이 관영하는가 하면 도덕적인 죄악이 아니라 가인과 같이 땅의 소산으로 제사를 드리는 죄악이 관영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도 나이가 40만 넘어도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해서 조심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900살을 산다고 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도덕적인 죄를 지었겠습니까?
세상에 관영할 정도로 도적적인 죄를 지면서 살았겠는가를 생각해 보면 답은 쉽습니다. 죄가 세상에 가득차고 만연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그런데도 성경을 보는 사람들은 그렇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죄악이 무엇입니까?
가인의 죄입니다.
도덕적인 죄가 세상에 관영하지는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더구나 이 시대는 모두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지금 교회 안에서 그래도 나이가 있는 장로나 권사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 가를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이 도적적인 죄를 짓습니까? 자기 손자까지 그 교회를 다닌다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이 시대 그런 장로나 권사들이 어떤 죄를 짓습니까? 가인의 죄를 짓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가인이 아벨을 살인한 죄를 짓는 것이 아니라 땅의 소산으로 제사를 드리는 죄를 짓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지금 그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죄가 율법이 있기 전에 세상에 있었습니다.
어느 죄를 말씀하는가 하면 가인이 지은 죄가 세상에 있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지은 죄가 무엇인가를 창세기6장2절에서 미리 말씀을 해 주고 있습니다.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체의 사람의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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