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5:17절을 보겠습니다. (신 308쪽)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히브리서7:16절을 보겠습니다. (신 359쪽)
“그는 육체에 상관된 계명의 법을 좇지 아니하고 오직 무궁한 생명의 능력을 좇아 된 것이니”
육체가 되었습니다.
노아 시대의 모든 사람이 다 육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세상에 죄악이 관영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체가 된다는 것을 이해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갈라디아서 강해를 할 때 육체의 소욕에 대해서 말씀을 했습니다.
육체의 소욕이 무엇입니까?
지금 이 시대 교회 안에서 하고 있는 모든 행위로 나타나고 있는 행위들이 다 육체의 소욕입니다. 그 육체의 소욕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것이 무엇인가 하면 육체에 상관된 계명의 법입니다 이 계명의 법이 성경에 문자로 기록이 되어 있는 율법이라는 것을 누구나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는 성경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창세기에서 노아의 홍수 때에 하나님께서 사람들이 육체가 되었다고 하는 그 말씀을 보고도 어떻게 하는 것이 육체가 되는 것임을 모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육체의 소욕을 따라 살아가고 있는 것을 육체라고 말씀하고 있고 그 중심이 율법을 지키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율법이 언제 반포되었습니까?
모세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고 나서 광야에서 반포를 했습니다. 그 율법이 있기 전에 죄가 세상에 있었습니다. 율법이 있기 전에 이미 사람들은 육체로 하나님을 섬겼다는 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가 그랬는가 하면 세상에 죄악이 관영할 정도로 그렇게 되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쉽게 말씀을 드립니다.
갈라디아서를 우리는 이미 강해를 통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창세기에서 노아의 홍수 때에 사람이 육체가 되었다는 말씀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서를 통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체의 소욕을 따라 사는 사람들에게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노아 시대에 육체가 되었다는 말씀은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있는 사람들과 같이 육체의 소욕을 따라 살아가고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이 있기 전입니다
그들은 이미 육체의 소욕을 따라 살면서 육체가 되었습니다. 죄라고 하니까 도덕적인 죄를 짓는 것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율법이 없었지만 그들은 이미 율법을 지키면서 살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정말 성경을 바로 알지 못하면 사망에 이른다는 것을 명심하고 늘 깨어 지혜를 구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강해를 안 본 사람은 이해를 못 합니다
하나님께서 감사하게도 야고보서를 쓰게 하시고 갈라디아서를 쓰고 이렇게 로마서를 강해를 하게하고 있습니다. 그런 강해가 없었다면 아마도 이 말씀을 모르고 지나갔을 것이 분명합니다. 아니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을지라도 정확하게 말씀을 드리는 데는 한계가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율법이 있기 전입니다
가인은 이미 율법에 따르는 것과 같이 제사를 드렸습니다. 땅의 소산을 가지고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 제사가 죄라는 것을 성경을 보면서도 도무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육체로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는 그 모든 행위가 죄입니다. 율법이 있기 전에도 세상에 죄가 있었다는 것을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떤 죄가 있었습니까?
비록 율법은 없었지만 어떻게 죄를 범했습니까? 우상에 대해서 말씀을 많이 드렸습니다. 이제 우리는 우상이 무엇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사람의 행위가 우상이라는 것을 성령의 감동을 받고 있는 성도는 알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섬깁니다.
아마도 그 시대도 여러 가지 행위로 섬기지 않았을까 생각을 해 봅니다. 비록 율법은 없었지만 사람의 행위가 분명히 있었습니다. 그것이 우상이 되어서 사람들은 서로 따라 하려고 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저도 5000년 전의 일이라 그리고 성경에서 명확하게 말씀을 하고 있지 않아서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지금과 같이 자기들이 은혜를 받았다고 하면서 감사해서 한다고 하는 행위가 많았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것이 다 우상이 되었습니다.
비록 율법은 없었지만 아직 율법이 반포가 되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할 수만 있다면 자기 육체로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을 나타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것이 율법에 따르는 행위가 아닐지라도 사람의 심리라는 것이 지금이나 그때나 같다는 것을 알면 됩니다.
가인이 땅의 소산으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받으시지 않았다고 하지만 사람이 볼 때는 그것을 받으셨는지 안 받으셨는지를 모르게 되어 있습니다. 지금 예배를 해도 그것을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예배인줄을 사람의 이성으로는 알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하나님께서 직접 나타나시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해가 안 됩니다
지금도 육체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은 이 로마서 강해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을 따라 행하고 있는 성도는 이 죄에 대해서 충분히 깨달을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비록 율법이 있기 전이지만 세상에 죄가 어떤 모양으로 있었는가를 충분히 깨달을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율법이 있습니다.
그 율법이 있기 때문에 우리 성도가 율법을 문자 그대로 지키는 것이 죄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만약에 율법이 없었다면 아마도 죄를 지면서도 그것을 죄라고 깨닫는 것이 더욱 힘들이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우리 성도들이 지금 율법을 있고 그것을 아니까 죄라는 것을 쉽게 깨달을 수 있지만 율법이 없다면 죄를 죄로 생각하지도 않을 수 있습니다.
신명기22:5절을 보겠습니다. (구 295쪽)
“여자는 남자의 의복을 입지 말 것이요 남자는 여자의 의복을 입지 말 것이라 이같이 하는 자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가증한 자니라”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였습니다.
죄는 율법이 있기 전에 세상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율법이 없을 때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참 어려운 말씀이지만 아니 육체를 따라 사는 사람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말씀이지만 성령의 감동을 받는 성도는 깨닫게 해 주시고 있습니다.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율법이 없을 때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니까 사람이 죄를 지었는데도 법이 없으면 그것을 죄로 여기지 않는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이치는 그렇습니다. 사회가 다양화 되고 발전을 하다보니까 새로운 죄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그런 것을 생각하면서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짓고도 죄로 여기지 않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거의 모든 사람입니다
로마서를 보고 거의 모든 사람이 다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로마서 강해에서 이 말씀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다 그렇게 이야기를 할 것이 분명합니다. 율법이 없을 때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않는다는 세상의 이치를 따라 당연한 말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이 없습니다.
로마서3장에서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죄를 깨달아야 하는데 율법이 없으니까 어떻게 됩니까? 죄를 지면서도 그것을 죄로 여기지 않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도적질 하지 말라는 율법이 없으면 어떻게 됩니까? 영혼을 도적질을 하고도 그것이 죄라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율법에 가입을 했습니다.
로마서5장20절에서 다시 자세하게 말씀을 드릴 예정입니다 율법에 가입을 한 것은 죄를 더하기 위해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율법이 없습니다. 그러면 죄를 죄로 여기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이 없다보니까 죄를 죄로 여길 수 없습니다.
잘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지금 도적적인 죄를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육체의 일을 하고 있는 죄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체의 일을 하면서 영혼을 도적질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이 없으면 죄를 죄로 여기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율법이 있으면 죄를 죄로 여기게 됩니다.
성경이 참 어렵습니다.
누가 율법이 없고 누가 율법이 있습니까? 잘 이해를 하셔야 합니다. 바리새인들에게는 율법이 없었습니다. 그러다보니까 죄를 죄로 여기지 않았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는 율법이 있습니다. 도적질하는 죄를 보면 죄로 여기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어렵게 말씀을 하고 있지만 성도는 성령의 감동으로 말씀을 바로 깨닫고 있습니다.
여자는 남자의 의복을 입지 말 것이요
남자는 여자의 의복을 입지 말 것이라 이같이 하는 자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가증한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율법이 있고 누가 율법이 없습니까? 아마 이 말씀을 보고도 거의 모든 사람들이 트렌스젠더가 여자의 옷을 입는 것을 보면서 가증하다고 말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성경은 육적인 일의 말씀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제까지의 거의 모든 교회에서의 설교를 보면 다 육적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할 일이 없으셔서 그깟 여자가 남자 옷을 입는 것과 그리고 남자가 여자 옷을 입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여자가 남자 옷을 입는다 해서 그것이 무슨 큰 일이고 남자가 여자 옷을 입는다 해서 하나님께서 그것을 가증히 여기시겠습니까?
간음을 한 여자입니다
그 여자도 정죄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한편 강도도 구원을 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육체적으로 짓는 그 어떤 죄도 하나님께서는 이미 다 사해 주셨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믿고 있는 성도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여자가 남자의 옷을 입고 있고 남자가 여자의 옷을 입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옷을 입고 있으면서도 율법을 모르니까 죄를 죄로 여기지 않고 있습니다. 이 문제는 나중에 다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지금은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율법을 보고 있습니다.
율법이 없습니다.
그러면서 교회 안에서 여자가 남자의 옷을 입고 있어도 남자가 여자의 옷을 입고 있어도 그것을 죄로 여기지 않고 있습니다. 지금은 율법이 있으니까 잘 이해가 안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율법이 없다고 생각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니 율법이 없을 때입니다
노아 시대에 모든 사람이 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했습니까? 육체가 되었습니다. 육체가 되었다는 말씀은 육체의 일을 하면서 하나님을 믿었다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육체의 소욕을 따라 사는 사람을 성경에서 비유로 아직 구원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여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가인의 제사입니다
그것은 육체의 일입니다 그렇게 육체의 일을 하면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니까 하나님께서 그 제사를 받으시지 않았습니다. 구원을 받지 못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생각합니까? 가인은 하나님께서 바로 응답을 하셨지만 노아 시대까지 사람들은 그렇게 제사를 드리면서 자기들이 구원을 받았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가증합니다.
죄를 죄로 여기지를 않습니다. 아직 율법이 없으니까 여자가 남자의 옷을 입으면서도 그것을 죄를 죄로 여기지 않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육체의 일을 하고 있는 자신을 보면서 구원을 받은 성도라고 하는 그 자체가 여자가 남자의 옷을 입는 것이며 하나님께 가증한 일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남자는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구원을 받았다고 믿음으로 아벨의 제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런 그가 가인의 제사와 같은 일을 한다는 것은 가증한 일인데 율법이 없으니까 그런 죄를 지면서도 죄로 여기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잘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누가 율법이 있고 누가 율법이 없습니까? 율법을 지키는 사람이 율법이 있습니까?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알아서 율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 율법이 있는 사람입니까? 사도 바울이 지금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의 일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로 하면 율법을 문자 그대로 지키고 있는 사람이 율법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비유를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율법이 없을 때를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는 율법이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누가 율법이 있고 누가 율법이 없는 사람인가를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율법을 문자 그대로 지키고 있는 사람은 율법이 없는 사람이고 율법의 의미를 알고 있는 사람은 율법이 있는 사람이라는 말씀입니다
죄를 죄로 여기지 않습니다.
이 시대 여자가 되어 있으면서도 남자의 의복을 입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구원을 받지도 못했으면서 아직도 문자 그대로의 율법을 지키면서 자기가 구원을 받았다고 교회 안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는 사람은 자기가 여자인 것을 모르고 죄를 죄로 여기지 않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을 지키는 사람들입니다
성경은 비유로 해서 여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직 이 세상 초등학문 아래 있는 사람을 여자로 비유를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여자는 자기가 구원을 받았다고 하는 것은 남자의 의복을 입는 것과 같은 말을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이 여자는 율법을 모르기 때문에 죄를 죄로 여기지 않고 있습니다.
성도는 압니다.
진리로 인도함을 받고 있는 성도는 율법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자가 남자의 옷을 입으면 가증하게 여기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죄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율법이 없을 때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않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시대 율법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율법이 있습니까?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율법을 보고 있지만 그들에게는 율법이 없습니다. 율법을 보고 있다고 해서 율법이 있는 것이 아니라 율법을 보고 죄를 깨달아야 율법이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율법을 보고도 죄를 깨닫지를 못하고 있다면 율법이 없는 사람과 마찬가지입니다
로마서5:14절을 보겠습니다. (신 245쪽)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그러나 아담 시대로부터 모세 시대에 이르기까지는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않은 사람들까지도 죽음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아담은 장차 오실 분의 모형이었습니다.”
율법이 없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아서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아담으로부터 해서 모세에 이르기까지 율법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율법을 처음으로 반포하신 것이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시고 광야에서 모세를 통해서 반포하셨습니다. 그때까지 율법이 없었다는 것은 성경을 본 사람이라면 다 알고 있습니다.
율법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세상에 죄가 있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지금은 성경에 율법이 기록이 되어 있는데도 세상에 죄가 있습니다. 율법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사람들은 죄를 짓고 있습니다. 로마서5장에서의 죄는 도덕적인 죄를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육체의 일을 함으로 해서 성령을 거스리는 죄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를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율법을 주시기 전이나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이 시대 뿐 아니라 이스라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주시기 전이나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아니 도리어 더 많이 죄를 짓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합니다.
율법이 있으면 죄를 안 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율법이 있음으로 해서 죄를 더 많이 짓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니 율법이 있으나 없으나 차이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지금 로마서에서 사도 바울이 하고 있는 말씀은 성령이 오시지 않으면 도무지 깨달을 수 없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오묘합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생명에 대한 말씀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생명을 생각하면서 성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저 그 문장에 있는 문자를 보고 있습니다. 그것이 스스로에게 올무가 되고 있지만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그들에게는 없습니다.
율법입니다
아담이 에덴에서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모세가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기까지는 율법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율법이 있지만 마치 율법이 없는 것과 같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담의 범죄입니다
에덴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 먹지 말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따먹으면 정녕 죽으리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아담에게 정녕 죽으리라고 말씀을 하셨지만 아담은 선악과를 떠먹었습니다.
선악과입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입니다 그것은 생명에 대한 언약이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따먹으면 죽고 따먹지 않으면 아담은 영원히 살 수 있었습니다. 아담의 범죄는 무슨 범죄인가 하면 죽고 사는 문제의 범죄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입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이렇게 죽고 사는 문제가 있습니다. 아담은 예표입니다 오실 자의 표상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해서 죽게 되었습니다. 사망이 왕 노릇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이 말씀 그대로 아담은 죽고 말았습니다. 구약의 사람의 육체의 죽음은 이 시대 영의 일을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성경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종교는 그가 세상에서 사는 동안에 조금 더 선하고 의롭게 살아가게 하기 위해서 신앙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것이 아닙니다. 그가 얼마나 더 선하고 의롭게 사는 가를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생명을 얻을 수 있느냐 아니면 죽느냐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담의 범죄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분명히 죽고 사는 문제입니다 아담이 구원을 받지 않았다는 것이 아닙니다. 아담은 하나님께서 분명히 구원을 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의 육체가 죽는 것은 우리의 영이 죽는 것을 예표로 해서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호세아6:7절을 보겠습니다. (구 1262쪽)
“저희는 아담처럼 언약을 어기고 거기서 내게 패역을 행하였느니라”
아담의 범죄입니다
그것은 정녕 죽어야 하는 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의 육을 통해서 우리의 영의 일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담은 정녕 죽어야 하는 죄를 지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가죽 옷을 지어 입혀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의에 옷을 입혀 주셨습니다. 아담이 정녕 죽어야 하는 죄를 지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사랑해 주셨습니다.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을 사랑하시지 않았다면 아담은 범죄를 한 순간에 정녕 죽어야 하고 우리 인생들은 더 이상 태어나지를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담에서 먼저 사랑을 보여 주셨고 또 우리 인생들을 사랑하시기 위해서 만세 전부터 그러니까 아담을 짓기 전부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정을 하셨습니다.
죽어야 합니다.
그러나 죽이지 않았습니다. 왜 죽이지 않았는가는 이미 말씀을 드렸습니다. 율법대로 하면 정녕 죽어야 하지만 율법에 우리가 살 수 있게 정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짓기 전부터 우리 인생들을 어떻게 사랑하실 것인가를 예정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아담의 죄입니다.
선악과를 따먹는 죄를 지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아담은 에덴에서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아담의 자손들이 태어났지만 그들은 선악과를 보지도 못 했습니다 아담의 죄는 그것으로 끝이 났습니다. 에덴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에 사람들은 선악과를 따 먹고 싶어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담의 범죄는 아담만이 지은 죄입니다.
에덴이 사라졌기 때문에 아니 선악과가 없어졌기 때문에 아담의 자손들은 아담과 같은 죄를 짓지 않았습니다. 아담이 지은 죄를 더 이상 짓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아담이 지은 죄를 짓지 않았어도 사망이 왕 노릇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호세아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아담과 같은 죄를 짓지 않았는데 사망이 왕 노릇했는가를 호세아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담과 같은 죄를 짓지 않았지만 아담처럼 언약을 어기고 거기서 내게 패역을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담과 같은 죄를 짓지는 않았지만 아담과 같이 언약을 어김으로 해서 패역을 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망이 왕 노릇했습니다.
성경을 잘 보시기 바랍니다. 모세를 통해서 율법을 반포하기 전까지는 정녕 죽으리라는 말씀이 없습니다. 우리가 창세기를 보아서 잘 알겠지만 정녕 죽으리라는 말씀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어느 정도인가 하면 야곱의 장자 르우벤이 서모 빌하와 통간을 하였어도 그를 죽이지 않았습니다.
창세기에 여러 가지 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죄로 여기지 않고 마치 그러한 일이 있다는 것을 말씀한 것으로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율법이 있기 전이라서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 사건이 있었지만 정녕 죽으리라고 말씀을 하시지 않습니다. 아니 죽는다고 말씀을 하셨어도 그것을 언약으로 하지 않았습니다.
아담과 같은 죄입니다.
에덴은 사라졌고 또 하나님과 언약을 하지도 않았습니다. 모세가 율법을 반포하기까지는 아담과 같이 살고 죽는 것으로 언약을 하지 않았습니다. 언약을 하지 않았지만 그러나 분명히 죄입니다. 그러나 그 죄가 아담과 같은 죄는 아닙니다.
모세까지입니다.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왕 노릇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호세아에서 왜 그들이 죽었는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 그들에게 사망이 왕 노릇했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말씀은 이스라엘에게 하고 있는 말씀이지만 모세가 율법을 반포하기 전에 사람도 해당이 되고 있습니다.
아담처럼 언약을 어겼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들이 살기를 원하시고 있습니다. 그것을 디모데전서에서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전도서에서는 솔로몬이 마지막에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찌니라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입니다
우리를 왜 세상에 있게 하셨습니까? 그것은 오직 하나 영생을 얻게 하시기위해서입니다. 이 영생이 하나님과의 언약입니다 이 세상에 아담을 창조하시고 그를 통해서 번성케 하신 단 하나의 이유는 그의 명령을 지켜서 영생을 얻는 그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아담은 범죄를 했습니다.
그럼으로 해서 그의 육체가 죽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지 못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사랑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에게도 사망이 왕 노릇 했는데 왜 그랬는가 하면 그들이 아담과 같이 언약을 어기고 패역을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17:17절을 보겠습니다. (신 29쪽)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를 참으리요 그를 이리로 데려오라 하시다”
사람이 왜 죽습니까?
율법이 있기 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이 왜 죽는가를 이 시대는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아니 로마서에서 사도 바울이 나의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살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이 믿음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패역했습니다.
사람으로서 마땅히 하여야 할 도리에 어긋나고 순리를 거스르는 것을 사전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세상에서 말하는 패역입니다 그러면 이 단어를 그대로 알고 성경을 보면 성경에서의 패역이 무엇입니까? 조금 전에도 말씀을 드렸지만 전도서에서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찌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명령이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에서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왕 노릇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 사망이 왕 노릇 했는데 왜 왕 노릇했는가 하면 사람으로서 마땅히 하여야 할 도리에 어긋나고 순리를 거스렸기 때문에 사망이 왕 노릇 했다는 말씀입니다
사람이 마땅히 하여야 하는 도리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우리 인생들을 지으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아담의 자손들이 패역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이 사람의 본분을 모르고 패역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그렇게 하고 있습니까?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패역을 행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노아의 홍수 때에 벌써 모든 사람이 다 패역을 행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심판하시면서 노아에게 은혜를 주셔서 그의 가족으로 세상을 번성케 하셨습니다.
성경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모든 사람이 패역을 행했습니다. 어떻게 패역을 행했는가 하면 믿지를 않았습니다. 성경은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패역을 행해서 죽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정말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신 목적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사람이 본분이 무엇이라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사람은 마땅히 영생을 얻어야 합니다. 이 영생을 얻지 못하면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모든 행위가 다 패역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미 어떻게 우리가 영생을 얻을 수 있는 가를 말씀했습니다. 로마서를 통해서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4장에서는 아브라함을 예표로 해서 우리가 어떻게 믿어야 하는 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로마서를 보고 있는 사람들이 도리어 패역을 행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무엇으로 패역을 행하고 있습니까?
율법을 지키고 있느냐 그러면 반드시 그 의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의로 살지 못하는 그들이 율법을 지키면서 패역을 행함으로 해서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는 않았지만 패역을 함으로 해서 사망이 왕 노릇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생입니다
그것이 사람이 마땅히 지켜야 하는 도리입니다 이 영생은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율법을 지킴으로 해서 율법으로는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어서 사망에 이르고 있다는 말씀이며 그것이 패역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킴으로 해서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니까 영생을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망이 왕 노릇하고 있습니다.
영생을 얻지 못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어떤 죄를 지어서 영생을 얻지 못하고 있는가 하면 율법을 지키는 죄를 짐으로 해서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해서 사망이 왕 노릇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비록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않았지만 그들은 패역을 행하고 있습니다.
누가 패역을 행하고 있습니까?
이 시대도 믿지 않는 자들이 패역을 행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믿음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들의 영의 일을 사람의 이성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도 없고 사람의 언어로 표현할 수도 없기 때문에 이 영의 생명에 대해서 믿음으로 역사를 해서 우리를 구원하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믿음이 무엇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패역합니다.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을 얻어야 하는데 율법을 지킴으로 해서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기 때문에 사망에 이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에서 어떻게 생명을 얻어야 하는지 그리고 생명을 얻지 못하는 일이 무엇인가를 알지 못해서 사망에 이르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뭐 합니까?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패역이라는 단어가 많이 나오고 있지만 이 패역의 단어의 의미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저 사람의 이성을 따라 마땅한 도리를 하려고 노력하면서 행위를 하고 있고 그것이 더욱 더 패역하게 만들고 있지만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영의 일에 있어서 패역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이치로 패역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영의 일에 있어서 생명에 있어서 패역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거의 모든 사람이 영의 일에 있어 패역을 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15:22절을 보겠습니다. (신 282쪽)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입니다
표상, 추상적인 사물이나 개념에 상대하여 그것을 상기시키거나 연상시키는 구체적인 사물로 나타내는 일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기 위해서 아담을 통해서 연상을 시키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정말 성경을 볼 때는 한글을 먼저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요즘은 얼마나 편합니까?
인터넷에서 그 단어만 치면 사전적인 뜻을 아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수고를 하지 않으면서 자기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쉽게 말을 하고 있고 그것이 다 진리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의 단어를 먼저 사전에서 알아야 연상을 할 수 있습니다.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입니다
어떤 뜻에서 오실 자의 표상인가를 이제 뒤에서 계속해서 말씀을 드릴 예정입니다 왜 아담을 오실 자의 표상이라고 하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지금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담의 범죄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범죄로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사망이 왕 노릇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아담입니다
그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었습니다. 왜 죽었는가 하면 아담이 범죄를 했습니다. 그것은 선악과를 따 먹은 일입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않았더라도 사망이 왕 노릇 한 것은 아담과 같이 생명의 언약을 어기는 죄를 짓는 패역을 행했기 때문이라는 말씀입니다 그것을 호세아 선지자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망입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었습니다. 아담이 범죄를 함으로 해서 아담과 같이 언약을 어기고 패역을 행했습니다. 사람으로서 마땅히 영생을 얻어야 하는데 그것을 하지 못했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이 어디로부터 출발이 되었는가 하면 아담으로부터 그렇게 되었습니다. 아니 아담의 자손은 아담처럼 언약을 어기고 다 패역을 했습니다. 우리 인생은 모두가 믿음이 오기 전까지는 다 패역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망이 왕 노릇 했습니다.
아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사망이 왔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고 모든 사람이 사망에 이르렀습니다. 아담이 생명의 언약을 어김으로 해서 모든 사람에게 사망이 왔습니다. 그러면서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담 한 사람입니다
그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사망이 왔습니다. 아담이 왜 오실 자의 표상인가 하면 아담으로 말미암아 그렇게 된 것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영생을 얻기 때문에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계속해서 말씀을 드리지만 생명과 사망에 대해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육체입니다
우리는 아담의 자손입니다 그 아담의 자손은 오실 자의 표상입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영생을 얻는다는 의미에서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입니다 우리 성도는 이제 아담의 죄에서 벗어났고 오직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생을 얻고 있다는 성경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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