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은혜와 진리의 말씀

77강, 내 아들아 어찌하여 음녀를 연모하겠으며

윤주만목사 2019. 5. 28. 06:36


77, 내 아들아 어찌하여 음녀를 연모하겠으며

 

잠언 5:20-23절을 보면

내 아들아 어찌하여 음녀를 연모하겠으며 어찌하여 이방 계집의 가슴을 안겠느냐 대저 사람의 길은 여호와의 눈앞에 있나니 그가 그 모든 길을 평탄케 하시느니라 악인은 자기의 악에 걸리며 그 죄의 줄에 매이나니 그는 훈계를 받지 아니함을 인하여 죽겠고 미련함이 많음을 인하여 혼미하게 되느니라

 

신앙은 인정하는데서 부터 출발입니다

내 앞에 주어지는 하나님의 모든 섭리를 받아들이는데 부터 신앙의 출발이 되는 것이며 만약 그것을 극복을 하고 또 벗어나려고 하는 순간부터 타락의 길을 걸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믿음을 모르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내 앞에 주어지는 하나님의 섭리를 인정하지 못하기 때문에 믿음이 자기 안에 자리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내 눈에 좋은 것을 내 생각에 좋은 것을 따라가려고 하는 순간부터 믿음이라는 것은 도저히 깨달을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많은 분들이 질문을 합니다.

정말 그들의 상담을 받다보면 얼마나 천국을 소망하고 있는 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도무지 믿음이 안 생긴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믿으려고 노력을 해도 믿음이 자기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지를 않다고 호소를 하는 것을 듣게 됩니다.

 

물론 믿음은 들음에서 납니다.

그 들음이라는 것은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어야 믿음이 마음에 자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복음의 말씀을 들어도 믿음이 자리하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인정을 하지 않는데 있습니다.

 

사람은 눈으로 봅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믿기 보다는 눈으로 보는 것을 믿는 것에 너무도 익숙해져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자꾸 자기 눈으로 보는 것을 통해서 믿으려 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복음의 말씀을 들어도 자기 눈으로 보려고 하는 순간부터 절대 믿음이 자리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람이 타락을 하는 이유는 보는 눈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보지를 못하면 하나님께서 나를 인도하시는 대로 그대로 따라갈 수 있지만 보는 눈이 있어서 자기 눈에 좋은 것을 보게 되면 그쪽으로 마음을 빼앗기게 되어 있습니다.

 

안 보고 살 수는 없습니다.

제가 아무 것도 보지 말고 살라고 드리는 말씀이 아닙니다.

보는 것은 그대로 보고 그것을 그대로 인정을 하고 하나님께서 또 다른 길로 나를 인도하시는 섭리를 받아들이는 마음을 가지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하루아침에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늘 말씀을 보면서 내 길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인정하려는 마음을 가지다 보면 그렇게 되어 집니다.

 

물론 믿음은 하나님께서 주십니다.

그러나 내 마음에 확증할 수 있는 믿음이 없다는 것은 아직도 내 눈으로 보는 것을 따라가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자기 눈에 좋게 보이는 것을 인정을 하고 또 자기 생각에 좋은 것을 막연하게 좋다고 생각하는 그 자체가 바로 믿음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믿음은 마음으로 믿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마음으로만 믿으려고 하지 않고 자기 눈으로 보지 않는 것은 절대로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쉽게 말씀을 드려서 같은 복음 전도자라고 해도 자기 눈에 좋게 보이고 자기 생각에 인정을 할 수 있는 사람의 말을 들으려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가 전하는 말씀을 보고 분별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형편과 또 사회적으로 공인이 되어 있는 것과 그를 통해 나타나고 있는 모든 모습을 보면서 따라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말에 기왕이면 다홍치마라는 말이 있듯이 눈으로 보게 되는 순간 다홍치마를 보게 되어 있다는 말씀입니다 겉모습을 먼저 보고 그를 신뢰하고 따를 것인가를 결정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은 눈으로 보려고 하는 순간 절대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지혜로서 하나님의 능력으로서 내 마음에 자리하게 되는 것이지 내 눈으로 무엇을 보고 믿으려고 하는 순간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믿어지겠지만 수십 년을 함께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내가 보고 있는 그것의 실수나 잘못을 보게 되고 그렇게 되면 믿었던 그것이 실망으로 변해 자기가 믿었던 것을 의심하게 됩니다.

 

시대가 악 합니다.

아니 사람이 있었던 이후로 항상 그래왔습니다.

뱀이 하와를 미혹할 때도 선악과를 보니까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웠습니다. 그전까지는 하와가 선악과를 안 보았지만 뱀을 통해 보게 되니까 생각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안 봤다면 선악과를 따먹지 않았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뱀을 통해 선악과를 보는 순간 하와는 그것을 도저히 뿌리칠 수 없을 정도로 혼미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깨달아야 하는 것은 지금 이 순간에도 사단은 자꾸 하와와 같이 우리에게 다가와서 눈으로 보게 하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보니까 지혜롭습니다.

무슨 말씀이냐면 이스라엘이 율법의 의를 보니까 참으로 지혜롭게 보였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도무지 영접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자기들의 눈으로 율법의 의를 차라리 보지 않았다면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와서 은혜를 구했을 텐데 율법의 의를 보니까 그것이 너무 지혜롭게 보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지혜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볼 수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사야서에 흠모할 만한 것도 없고 마른 줄기에서 나온 싹 같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보고 자기들의 율법의 의를 보고 비교를 해 보니까 도저히 예수님을 영접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흠모할 만한 것이 하나도 없는데 어떻게 영접을 할 수 있습니까? 바로 이렇게 사단은 사람들의 눈을 통해 미혹을 하고 있고 또 그것을 보는 것으로 혼미하게 만들어서 믿음을 가질 수 없게 만들고 있습니다.

 

잠언은 비유입니다

잠언 1:6절을 보면

잠언과 비유와 지혜 있는 자의 말과 그 오묘한 말을 깨달으리라

 

분명히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비유를 비유로 해석을 하지 않고 문자 그대로 해석을 하면 도저히 그 말씀을 깨달을 수 없습니다. 성경은 거의 모든 말씀이 비유로 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데 거의 문자적으로 해석을 하기 때문에 자기가 바른 길을 가고 있는지 조차 분별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성경이 얼마나 오묘한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문자적으로 해석을 하면 해석이 되고 또 비유로 해석을 하면 비유로 해석이 된다는 것입니다 저는 성경말씀을 볼 때 마다 하나님의 지혜의 깊고 오묘함을 깨닫게 됩니다. 제가 비유가 다 답이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느 것은 또 문자 그대로 해석을 해야 답이 될 수 있습니다. 문자냐 비유냐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해석의 답이 무엇인가가 중요합니다.

 

해석의 답은 예수입니다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는 예수를 믿어서 천국에 갈수 있다는 답이 나오면 문자로 해석을 했든지 비유로 해석을 했든지 그것이 성경에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자 하는 말씀입니다

 

내 아들아 어찌하여 음녀를 연모하겠으며 어찌하여 이방 계집의 가슴을 안겠느냐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영이라는 말씀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영을 눈으로 보려고 하는 순간 바른 신앙을 가질 수 없게 된다는 것을 깨닫기 바랍니다. 보이지 않는 영을 눈으로 보고 확인을 하고자 한다면 그것 자체가 모순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눈으로 보려 합니다.

누가 그랬습니까? 예수님의 제자 빌립도 하나님을 자기에게 보여 달라고 말을 하니까 예수님께서 나를 보고도 아버지를 보여 달라고 하느냐고 말씀을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말씀을 늘 보면서도 또 자기 눈으로 하나님을 보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영적 타락으로 가는 길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음녀는 어떻습니까?

만약 음녀가 거지처럼 하고 있다면 음행을 하고 싶어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을 폄하하고자 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저 지구 어디인가에 정말 우리 눈으로 보기에 도저히 마음을 줄 수 없는 여자가 나를 유혹하고 있다면 아마 음욕이 생기기보다는 어떻게 하든지 그 자리를 피하고 싶어 할 것입니다

 

돈을 준다고 해도 싫다고 도망 갈 것입니다

그러나 내 눈에 보기에 정말 예쁘게 생긴 여자가 미혹을 한다면 거의 모든 남자는 넘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쉽게 말씀을 드려서 미스코리아가 가장 아름답게 자기를 치장하고 나와서 남자를 미혹한다면 안 넘어갈 남자가 과연 있겠습니까?

 

물론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감히 넘볼 수 없는 여자가 미혹을 하게 되면 다 넘어 갑니다.

안 넘어 간다고 하는 사람은 정상 적인 남자가 아닙니다. 보통의 남자라면 우리나라 최고의 미인이 미혹을 하게 되면 아마 정신이 혼미해 져서 앞뒤를 가리지도 않을 것입니다

 

바로 음녀가 그렇습니다.

음녀가 미혹을 하면 그 아름다움을 보고 다 넘어 갑니다.

바로 이 아름다움이 무엇이냐면 율법의 의입니다 율법적으로 거의 완전한 사람이 나타나게 되면 거의 모든 사람들은 그를 존경을 하면서 따라가게 되어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오직 믿음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그랬던 것처럼 사단은 지금도 역시 율법의 의를 주어서 믿음과 율법 사이에서 정신이 혼미하게 만들어 버리고 있습니다. 너무 아름답기 때문에 음녀가 참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자기 눈으로 보니까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너무 지혜롭게 보인다는 말씀입니다

 

음녀는 여러 남편을 섬기는 여자를 음녀라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외에도 율법도 섬기고 또 교회 안에 있는 사람을 섬기기도 하고 오직 예수가 아니라 여러 가지 자기 눈에 좋게 보이는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보이는 모든 것을 다 섬기고 있습니다. 음녀는 사람의 눈에 그렇게 좋게 보인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이 참으로 보입니다.

너무 아름다우니까 지금도 어느 교회를 보면 그들이 하는 행위들을 보면서 너무 아름다우니까 그것에 취해 정신을 못 차리는 것을 보게 됩니다. 교회 건물을 보기도 하고 또 목사를 보기도 하고 자기 교회에서만 하는 어떤 특별한 행위를 보니까 분명히 차이가 나는 것입니다 하와가 선악과를 보는 것과 같이 참 지혜로 보인다는 말씀입니다

 

행위에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주 껌뻑 죽습니다. 자기 교회만이 하는 어떤 특별한 행위를 보면서 그것이 참 지혜인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어느 교회는 이단과 싸우는 그런 모습을 보여주면서 미혹을 하고 있고 어느 교회는 성경 공부를 하는 것으로 미혹을 하고 있고 어느 교회는 해외 선교를 하는 것으로 미혹을 하고 있습니다.

 

본질을 흐려 버립니다.

그런 행위를 눈으로 보는 순간 진리가 가려진다는 말씀입니다

어떤 것이 내 눈에 보이기 시작하는 순간 절대로 진리는 볼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하기기 바랍니다. 하와가 선악과를 눈으로 보는 순간 생명나무를 볼 수 없었습니다.

 

내가 하는 모든 신앙생활은 선악과입니다

그것은 생명나무가 아니라 선악과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 선악과를 보지 말라야 내 영혼에 생명나무 예수가 보일 수 있습니다. 음녀는 생명나무를 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선악과를 보게 해서 사람들의 영혼을 사망으로 끌어 내리고 있습니다.

 

음녀는 선악과를 더 아름답게 보입니다.

최대한 아름답게 보여야 사람들을 미혹시킬 수 있기 때문에 할 수 있다면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하고 지혜롭게 보이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 음녀에게 미혹이 되어서 자기들이 눈으로 보는 것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이방계집은 너무도 보기에 좋습니다.

과학이 얼마나 발전을 하고 있으며 문화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습니까? 컴퓨터, 텔레비전, 휴대폰, 최신 디지털기기 아이패드까지 이런 과학과 문화가 결합이 되어서 사람들을 미혹시키고 있고 세상에 빠져 들어가게 만듭니다.

 

바로 기복주의입니다

교회도 지금은 돈이 없으면 안 되는 시대가 되고 말았습니다.

돈을 따라가는 세상 물질에 깊이 빠져 들어서 거기서 헤어 나오지를 못하고 그 가슴에 푹 안겨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그런 것을 다 무시하고 살 수는 없습니다. 그럴지라도 그것에 마음을 빼앗겨서는 안 됩니다.

 

누리는 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닙니다.

내 신앙의 본질이 넘어질 정도로 그것에 마음을 빼앗겨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이 세상 문명은 최고의 아름다움을 보여 주면서 사람들의 눈을 자극하고 있습니다. 교회도 그것에 합류를 해서 교회가 성처럼 지어지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여자를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이 여자는 생리적인 여자를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변질이 되어 있는 교회와 또 세상 문화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교회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것에 한번 빠지게 되면 자기 눈으로 본 것을 신뢰하게 되면 절대로 믿음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음녀에게 그리고 이방 계집에게 미혹이 안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대저 사람의 길은 여호와의 눈앞에 있나니 그가 그 모든 길을 평탄케 하시느니라

 

섭리를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눈을 보고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길이 하나님의 눈앞에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라는 말씀입니다

 

지금 내가 환난 중에 있습니까?

너무 고통스러워 정말 죽고 싶습니까?

지금 내가 가고 있는 그 길 도저히 내가 받아들일 수 없는 이 길을 하나님께서 지금 보고 있다는 것을 믿으라는 말씀입니다 어느 정도 까지 받아들여야 하느냐면 말로만이 아니라 초대 교회 성도들이 순교를 당하면서도 하나님께서 자기를 보고 있다는 것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런데 음녀를 보면 이방계집을 보면 도저히 인정을 할 수 없습니다.

같이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데 누구는 축복을 받아서 기도 하는 대로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지는 것을 보게 되면 도저히 내가 걷고 있는 이 길을 하나님께서 보시고 있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게 됩니다. 십일조를 천만 원 하는 그 사람을 보면 그는 하나님이 보고 있고 십일조를 못하는 나를 보면 하나님께서 보지 않는 것으로 오해를 하게 됩니다.

 

눈으로 보면 하나님이 나를 보고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힘듭니다.

음녀를 보세요, 너무 아름답고 정말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것처럼 보이는데 나는 너무도 초라하기만 합니다. 사람들이 그렇게 눈으로 보면서 따라가기 때문에 하나님의 경륜을 깨달을 수 없고 또 믿음을 가지지 못해서 스스로 의심을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내 길을 평탄케 하고 있습니다.

그 길이 어떤 길입니까? 음녀와 같이 아름답게 보이는 것이 아니라 내 영혼의 길을 평탄케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내 육체의 길이 아니라 영혼이 길이 평탄하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눈으로 보기 때문에 자기 영혼의 길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육체의 길을 보면 음녀에게 미혹이 됩니다.

그러나 내 영혼의 길을 보는 성도는 자기 길이 얼마나 평탄한 가를 분명히 깨닫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 평탄한가 하면 이미 내가 천국에 들어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내가 한 것이 아무 것도 없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이미 천국에 들어가 있다면 얼마나 평탄 합니까?

 

그런데 믿지를 못 합니다

믿지를 못하는 이유는 음녀의 아름다움을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방 계집의 가슴에 안겨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 영혼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자꾸 눈으로 자기 육체를 보기 때문에 도무지 평탄하지가 않는 것입니다

 

과연 평탄한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모든 것을 다 가진 사람이라고 해도 또 막상 그 곁에서 함께 있다 보면 그도 힘들게 걸어가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내가 볼 때는 저 정도만 되면 걱정이 없을 것 같아도 그 역시도 또 다른 고민을 하고 걱정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육체로는 누구도 평탄한 길을 걸을 수 없습니다.

 

사람이 사는 것이 수고와 고생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평탄한 길을 걸어갈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내 육체의 길을 평탄케 하실 것 같았으면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시면 안 되고 사람들에게 빵을 주고 병을 고쳐 주고 또 육체의 필요한 것을 채워 주면서 아직 까지도 이 세상에 있었어야 합니다.

 

악인은 자기의 악에 걸리며 그 죄의 줄에 매이나니

 

죄인과 악인은 다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죄인입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들어와서 복음을 들었음에도 믿음을 갖지 않고 행위를 따라가는 자는 악인입니다 죄인은 불쌍히 여김을 받을 수 있지만 악인은 그 행위대로 악에 걸리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교회에서 설교를 듣다 보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세상 사람들을 폄하하고 그들의 죄를 지적하는 말을 많이 하고 또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기는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는 것에 안도의 한숨을 내 쉬는 것을 보게 됩니다. 목사가 그런 말을 하면 교인들은 아주 죽이 맞아서 자기가 대단한 것으로 착각을 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인 세상 사람은 죄인입니다

하나님께서 악인을 말씀하실 때는 이 세상 사람들을 보고 지칭한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두 사람이 있지만 하나는 악인이요 하나는 의입니다 악인은 자기가 악을 행하면서도 그것을 깨닫지 못 합니다

 

자기 눈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눈으로 볼 때 분명히 그것이 선하고 의롭게 보이기 때문에 아름답게 보이기 때문에 깨달을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은 죄인이 아니라 악인입니다 율법의 의가 너무 좋아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은 이스라엘은 죄인이 아니라 악인 이었다는 것을 깨닫기 바랍니다. 지금도 교회 안에는 다수가 악인으로 살아가면서 자기가 악인이라는 것을 도무지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는 훈계를 받지 아니함을 인하여 죽겠고 미련함이 많음을 인하여 혼미하게 되느니라

 

음녀는 악인으로 만듭니다.

교회 안에 있는 다수는 자기가 악인이라는 것도 모르고 지금도 음녀에게 미혹이 되어서 자기 악에 빠져 걸려들고 있습니다. 그는 아무리 예수 그리스의 복음을 전해도 훈계를 받으려 하지 않습니다.

 

믿음에 대해서 가르쳐 줘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왜 받아들이지 못하느냐면 자기 눈에 보이는 음녀가 너무 아름다워서 자기 정신이 혼미해져 있기 때문에 도무지 분별을 하지 못 합니다 사람도 정말 아름다운 미스 코리아가 미혹을 하면 거의 정신이 혼미해 지는데 영적으로 사단이 얼마나 지혜롭게 미혹을 하겠습니까?

 

정신을 못 차립니다.

오죽 하면 죄를 한 번도 안 져본 하와가 선악과를 보고 단번에 미혹이 되어 따 먹었겠습니까? 율법은 지금도 그렇게 사람들의 눈을 자극을 하면서 그 정신을 혼미하게 하고 있지만 그 맛을 본 사람들은 절대로 빠져 나오지를 못 합니다

 

지금 잠언에서 말씀을 하는 음녀는 교회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큰 음녀와 마찬가지로 거의 모든 사람들이 정신이 혼미해 져서 그곳에 한번 빠지면 아무리 복음을 가르쳐 줘도 믿으려 하지 않고 오히려 공격을 합니다.

 

지혜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미련한 자는 지혜를 구하기보다는 자기 행위를 어떻게 하면 잘 할 수 있을까 음녀와 같이 될 수 있을까 그것을 고민하면서 하나님께 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자기는 전혀 미련하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은 자기 눈으로 볼 때는 너무도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보이기 때문에 도무지 깨달을 수 없게 됩니다.

 

음녀는 아름답습니다.

남자를 미혹하려고 하면 얼마나 아름다워야 하겠습니까?

그런데도 사람들은 뻔히 그것을 눈으로 보면서도 음녀라고 생각하지를 못하고 있는 것은 미련하기 때문입니다 미련이 너무 많아서 하나님의 지혜를 도무지 깨닫지 못하고 자기도 음녀와 함께 음행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은 보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히브리서에서 보이지 않는 것의 실상이라고 말씀을 합니다.

보이지 않는 것의 실상임에도 사람들은 자기 눈으로 보는 것을 따라 음녀의 아름다운 것을 보면서 거기에 미혹이 되고 있습니다. 육적인 것과 영적인 것을 분별하시기 바랍니다. 육은 눈으로 보이는 모든 것이요 영은 보이지는 않지만 지혜로 마음에 믿어지는 것입니다

 

나를 지키시기 바랍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자기 영혼을 지키고 음녀에게 미혹 되지 않도록 눈으로 보는 것을 믿지 마시고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