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너희는 귀를 기울리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십계명 강해

제3계명/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윤주만목사 2017. 9. 25. 05:01



제삼은,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출애굽기20:7절을 보면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나 여호와는 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율법은 그림자입니다.

구약의 율법은 지금 신약을 사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율법을 문자 그대로 보는 것은 성경을 이 세상에 경전과 다르지 않게 보고 있는 사람입니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모든 율법은 그것을 그대로 지키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어떻게 하나님을 믿어야 하는 가를 발견해야 합니다.

 

율법

바로 깨닫지 못하면 사망입니다. 거의 모든 사람이 교회에 나왔지만 이 율법에 대한 문제가 바로 정립이 안 되어 있기 때문에 결국에는 멸망의 길로 가고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가장 큰 문제는 성경을 사람의 이성으로 보고 있다는데 있습니다. 세상의 지식으로 공부를 해서 성경을 가르치고 있다면 그는 불교의 경전을 가르치는 사람과 다르지 않습니다.

 

십계명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이 십계명을 받아들이고 있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의 사상이 너무 편협이 되어 있습니다. 더구나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받은 계명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것을 너무도 신령하게 생각을 하고 지키고자 노력을 하고 있고 또 이 십계명을 지키지 않으면 마치 사망에 이를 것처럼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분명히 이 계명은 우리가 지켜야 합니다. 그러나 육적인 그대로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누가 감히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고 있겠습니까? 그렇게 부를 사람도 없고 그것 때문에 십계명 중에 3계명을 이렇게 말씀을 하고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십계명을 주신 목적을 모르고 있는 사람입니다.

 

성경에서 그런 사람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른 사람이 있습니까? 아마 문자 그대로라면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른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는 제3계명이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지 부르지 말라고 하셨습니까? 아무도 그렇게 부르는 사람이 없는데 굳이 제3계명에 이 말씀을 기록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부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 되게 만들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실제 성경에서는 문자 그대로는 없지만 분명히 이스라엘도 그랬고 이 시대도 역시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고 있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 많이 있기 때문에 계명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있습니다.

누가 그 아버지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겠습니까? 최소한의 인격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절대로 그렇게 부르지를 않고 있습니다. 더구나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을 믿고 있는 사람들이 감히 하나님의 이름을 어떻게 망령 되게 부를 수 있습니까? 하지만 이 시대 역시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 되게 부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차라리 하나님을 안 믿을 것입니다.

굳이 교회에 나와서 그 이름을 망령 되게 부르기 보다는 믿지를 않지 무엇 하러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 되게 부르겠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이 계명을 보면서 자기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신앙생활을 하면서 한 번도 망령 되게 부른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누가 그렇게 부릅니까?

이 세상 사람들이 그렇게 부르고 있습니다. 지금도 인터넷을 보면 하나님의 이름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너무 망령 되게 부르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막의 잡신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또 예수 그리스도를 사생자라고 부르면서 자기들이 표현할 수 있는 세상의 망령된 말을 다 사용하면서 그 이름을 욕되게 하고 있습니다.

 

계명이 그들을 위해서 입니까?

그들이 그렇게 부르는 것도 물론 망령 되게 부르는 것임이 맞지만 그것은 모르고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성경을 모르고 있고 하나님의 사랑을 모르고 있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하는 단 한 가지 이유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이들이 가식적으로 이 세상에 보이기 때문에 그것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고 있습니다.

 

누가 그렇게 만들고 있습니까?

이 세상 사람들이 교인들로 인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 되게 부르고 있는 것은 그들의 죄라기보다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의 죄라는 것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들의 그런 소리를 들으면서도 애통해 하지도 않고 있고 통탄해 하지도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그들을 비난하고 자기들은 잘 하고 있는데 그들이 오해를 하고 있다고 치부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9:41절을 보면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소경되었더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저 있느니라

 

누구 죄입니까?

그들은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에 죄가 아닙니다. 그들은 아직 소경으로 있기 때문에 그들이 비난을 하고 명령 되게 부르고 있는 것은 사실은 죄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또 그렇게 하는 자체가 죄가 아니라는 것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누가 죄인입니까?

모르고 부르는 것은 죄가 아닙니다. 그들은 소경이 되어 하나님을 모르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그들이 어떻게 부르든 그것은 죄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기독교인들의 잘못된 행동을 보고 그것을 비판하다 보니까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 되게 부르고 있는데 그것은 그들이 아무 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신이라고 인정도 하지 않습니다.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지만 세상 사람은 그것을 모르기 때문에 자기가 부르고 싶은 대로 부르고 있고 그것은 마치 아주 어린 아이가 자기 아버지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것과 같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른다 해서 마치 그들이 큰 죄를 짓는 것으로 오해를 해서는 안 됩니다.

 

성경은 누가 봅니까?

바로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봅니다. 또 누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있습니까? 이 세상 사람이 부르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 있는 사람이 부른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기서 부른다는 뜻의 의미를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그냥 동네 아저씨 부르듯이 부르는 것이 아니라 자기 필요에 따라 부르고 있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있습니다.

그 이름을 보이지 않는데서 부르는 것과 마주 대하고 부르는 것은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세상 사람이 부르는 것은 마치 보이지 않는데서 부르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것은 그들의 생각에는 하나님을 유일하신 참 하나님으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부르고 있습니다. 그렇게 부른다 해서 그것이 죄가 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마주 보고 부를 때는 다릅니다.

뭔가 서로가 필요에 의해서 부르게 됩니다. 사실 이명박 대통령을 안 보이는데서 욕을 한다 한들 그것이 죄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보이는데서 그렇게 부르면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하나님의 존재가 어떻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이 세상 사람들이 부르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아버지를 왜 부릅니까?

물론 좋아서 부를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를 부를 때는 필요에 따라 부른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자기의 앞날을 상의를 하기 위해서도 부르고 또 자기가 필요한 것을 부탁하기 위해서도 부르고 또 아버지에게 자기가 잘못한 것이 있으면 그것을 용서를 받기 위해서 부르기도 합니다.

 

그렇게 부릅니다.

교회에 나온 사람들은 여러 가지의 이유를 가지고 하나님을 부르고 있는데 그때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 되게 부르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부르는데 누가 망령 되게 부르겠습니까? 그런데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망령 되게 부르고 있습니다.

 

새번역입니다.

너희는 주 너희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못한다. 주는 자기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자를 죄 없다고 하지 않는다.”

 

너희는 주 너희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못한다고 말씀합니다.

자기 마음대로 부르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참으로 깊은 뜻이 있습니다. 내 마음대로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아무 때나 불러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아들이 아버지의 이름을 아무 때나 부르면 어떻게 됩니까? 세상에도 그런 아들이 없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는 아무 때나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있습니다.

 

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의 이름을 아무 때나 부르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 아이가 어린 아이라면 아버지는 예뻐서 아무리 많이 불러도 대답을 해 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아이가 때가 오래 되어서 이제 아버지를 어떤 때 불러야 하는 줄을 아는데 심지어는 물을 먹을 때도 부르고 배가 고파도 부르고 자기가 어떤 일을 해야 하는데도 부르고 계속해서 부른다면 아버지는 대답을 하지 않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줄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아들에게 주고 싶은 것이 있고 주기 싫은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아들이 아버지가 주기 싫은 것을 자기가 필요해서 아버지를 계속해서 부른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아버지는 차라리 외면을 하고 대답을 하지 않을 것이 너무도 분명합니다.

 

이것을 모릅니다.

왜 아버지를 불러야 하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이렇게 모르고 부르는 것을 망령되이 부른다고 성경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지만 이렇게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 되게 부르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미가3:7절을 보면

선견자가 부끄러워하며 술객이 수치를 당하여 다 입술을 가리울 것은 하나님이 응답지 아니하심이어니와

 

응답을 하지 않습니다.

왜 하나님을 불러야 하는 가를 모르고 부르고 있다면 그들의 부름에 응답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왜 하나님을 불러야 하는 가를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망령 되게 부르고 있고 그렇게 불러서 응답을 받는 것을 보고 자기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정당하게 불렀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응답이 무엇입니까?

무엇에 대해서 응답을 하고 있습니까? 이 문제를 바로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실제 교회 안에서 응답을 받았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응답을 해 주시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라 영의 일에 대해서 응답을 해 주시고 있습니다.

 

영의 일입니다.

육의 일을 가지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망령 되게 부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이 육의 일을 가지고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 되게 부르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어떻게 망령 되게 부르고 있는지 조차 깨닫지를 못하고 있고 거의 모든 교인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 되게 부르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씀을 하는 망령이 무엇인가를 보겠습니다.

 

디모데전서4:7-8절을 보면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라.....

이 망령 된 것이 무엇이냐면 육체의 연습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은 있으나 금생과 내생의 약속은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이 육체의 연습을 위해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있다면 그는 하나님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새번역입니다.

몸의 훈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 훈련은 모든 면에 유익하니, 이 세상과 장차 올 세상의 생명을 약속해 줍니다

 

몸을 훈련하는 것이 망령된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이 몸을 훈련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 이 몸의 훈련을 위해서 하나님을 부르고 있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고 하면 모든 것이 용납이 되고 있습니다.

 

 

성경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이 성경은 교회 안에 있는 사람이 보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 들어와 있지만 자기 몸을 훈련을 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있다면 그는 하나님을 망령 되게 부르고 있는 사람입니다. 교회 안에서 교인으로 보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모두가 인정하는 교인이 되기 위해서 자기 몸을 훈련을 하고 있습니다.

 

왜 훈련을 합니까?

자기기 하나님을 바로 믿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이 육체의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기뻐하고 있지만 그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모르고 일단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으려고 하니까 육체를 경건하게 하려고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무엇입니까?

기도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를 했습니다. 또 금식을 했습니다. 사실 금식을 한다는 것은 쉽지가 않습니다. 그러나 한번 해 본 사람은 그 다음에는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이런 육체의 연습을 통해서 자기를 성도라고 나타내기 위해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이런 것을 하게 해 달라고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처음 교회에 나오면 힘이 듭니다.

세상에서 술을 먹고 담배를 피우고 세상에 습관에 젖어 있던 사람들이 교회에 나오면 그것을 따라 하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너무 힘이 드니까 이런 것을 하게 해 달라고 하면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도 그랬습니다.

새벽 기도를 참석하는 것이 너무도 힘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늘 기도를 하면서 새벽기도를 참석하게 해 달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자기 육체를 위해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망령 되게 부르고 있는 것이고 이것이 죄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교회 안에서 이런 것을 위해서 얼마나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있습니까?

육체로 종교인이 되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께 잘 하기 위해서 그렇게 한다고 하지만 실제는 모두가 자기 육체의 연습을 하고 있는 것임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특히 이 시대 교회 안에 여러 가지 프로그램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 것을 통해서 육체의 연습을 하면서 자기의 육체를 통해서 하나님을 잘 믿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 그것을 위해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있습니다.

 

처음 교회에 나옵니다.

그런데 주일을 지키는 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바로 이렇게 힘이 들 때 자기 육체의 연습을 위해서 내가 주일을 잘 지킬 수 있게 해 달라고 하는 그 기도가 육체의 연습이 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제가 지금 예배를 드리는 자체가 나쁘다고 이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고 또 한 날을 정해서 예배를 하는 것이 잘못 되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육체를 연습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위해서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나는 교회 안에서 저것을 정말 못하는데 하게 해 달라고 그것을 연습을 하면서 하나님께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망령 되게 부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실 그것이 이 시대 우상으로 보여 지고 있고 그것을 얻기 위해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육체의 연습은 우상 숭배입니다.

이것을 얻기 위해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있다면 그는 이 시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 되게 부르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 거의 모든 교인들이 이것을 위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큰 죄인가를 모르고 그저 자기를 위해서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디모데전서6:20절을 보면

디모데야 네게 부탁한 것을 지키고 거짓되이 일컫는 지식의 망령되고 허한 말과 변론을 피하라

네게 부탁한 것이 무엇입니까?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에 이르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진리를 발견해서 구원을 얻는 것이 사도바울이 디모데에게 부탁을 한 것입니다 성경을 보고는 있지만 지식의 망령되고 허탄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시대 어떻습니까?

예수를 전하고 있지를 않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의 지식을 가지고 예수와 썩어서 전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 지식을 나타내고 싶어서 그런 것을 구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또 성경을 인생의 지식으로 알려고 구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아니라 허탄한 말과 변론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디도서1:14절을 보면

유대인의 허탄한 이야기와 진리를 배반하는 사람들의 명령을 좇지 않게 하려 함이라

 

유대인이 무엇을 알았습니까?

그들은 율법에 대해서 너무도 정통했습니다. 율법을 얼마나 잘 연구를 했는가를 성경을 통해서 알고 있습니다. 이 율법에 대해서 배우고 그것을 이야기 하고 하는 것이 모두가 다 허탄한 것입니다. 이것을 알고 지키게 해 달라고 기도를 하면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있습니다.

 

율법을 위해 하나님을 부르고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이 율법이 자기들에게 어떻게 다가온다는 것을 모르고 이 율법을 위해서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 되게 부르고 있으면서도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사람들이 이 율법을 위해서 얼마나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있는 가를 바로 깨닫기 바랍니다. 이 율법을 통해서 자기가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것을 나타내고 싶어서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깨닫지 못 합니다

베드로전서1:18절을 보면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율법입니다. 이 율법이 어떠하다는 것을 모르고 이스라엘은 이것을 위해서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사실 이 시대도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이 율법을 위해서 얼마나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있습니까? 이런 망령된 것을 위해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있다면 그는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 되게 부르고 있는 사람입니다.

 

주일을 지키게 해 달라고 합니다.

새벽 기도를 할 수 있게 해 달라고 합니다. 금식을 하게 해 달라고 합니다. 또 자기 믿음의 증표라고 하면서 십일조를 하게 해 달라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폐하신 것을 하게 해 달라고 부르는 그것이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 되게 부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모두가 육체의 것입니다.

이렇게 교회 안에 믿음이 아닌 육체의 것을 위해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있다면 그는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이고 또 하나님을 자기 필요에 따라 마치 우상과 같이 부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우상들의 이름을 부르면서 빌고 있는 그것을 교회 안에서 똑같은 것을 구하면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있다면 그는 망령된 자입니다.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유대인의 유전을 위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가 율법을 잘 지키게 해 달라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사실은 누구에게 하는 것인가를 너무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것이 다 우상이고 우상에게 구하는 것을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구하고 있다며 그는 하나님을 망령되게 일컫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얼마나 망령된 일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내가 신앙생활을 잘 하고자 하는 그것도 다 없어지는 것임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그런 것이 바르게 정립이 안 되어 있으면 자기 행위를 위해서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 되게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에베소서5:3절을 보면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이라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의 마땅한 바니라

 

그 이름을 부르고 있습니다.

더구나 하나님께 구하면서 부르고 있습니다.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을 부르고 있습니다. 음행은 율법을 지키고자 하는 것이 음행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의는 더럽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또 내 육체를 위해서 그것이 잘 되게 하기를 바라는 모든 것이 탐욕입니다.

 

이것이 어떻게 보입니까?

사람의 눈에는 너무도 좋게 보이고 있습니다. 자기 육체를 성도와 같이 보이게 하는 것인데 왜 나쁘겠습니까? 그러나 이런 것을 위해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있다면 그는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 되게 부르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모든 보이는 것입니다.

그것을 사람의 눈에 잘 보이게 하기 위해서 그것을 구하고 있다면 그것이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하는 것이라 해도 그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 되게 부르는 것임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위해서 하는 일이라고 하면 모든 것이 다 가하다고 생각을 하고 그것을 위해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2:16절을 보면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식물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라

장자의 명분을 팔았습니다.

사람이 무엇이 중요한 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이 시대도 성도의 명분을 팔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한 그릇 식물을 위해서는 성도 그까짓 것 아무 것도 아닌 사람들이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한 그릇 식물을 위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있다면 그는 하나님을 망령 되게 부르고 있는 사람입니다.

 

구원을 얻기 위해 식물을 탐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지만 참 떡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먹기를 좋아하기 보다는 이 세상의 것을 먹기를 바라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당장 곶감이 달다고 영혼의 것은 나중에 생각할 것이고 당장 배가 고프니까 자기 장자의 명분을 너무도 소홀하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도가 무엇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있지만 성도가 무엇인가를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성도라는 것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한 그릇의 식물이 더 중요합니다. 그 식물을 먹기 위해서는 성도라는 그것까지도 쉽게 내 던지고 있습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분명히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음행하는 자와 한 그릇 식물을 위해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교회 안에는 들어와 있지만 이렇게 자기가 당연히 받아야 하는 천국의 것을 팔아 버리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세상의 육체의 것을 구하려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있는 것이 바로 에서와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에서와 같은 자가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금 교회 안에 그런 자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자기에게 필요한 것이 있으면 성도도 내 버리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도가 무엇인가를 모르고 그저 이 세상에 식물을 위해 그것을 팔아 버리고 있습니다. 내 모든 육체적인 행위가 식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식물을 통해서 자기가 구원을 받은 성도와 같이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도

거룩한 백성입니다. 육체가 거룩하다는 것이 아니라 그 영혼이 거룩하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자기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영을 생각하기 보다는 자기 육체를 위해 식물을 먹기를 좋아하고 있습니다. 인내하지 못하고 잠시의 즐거움을 위해서 성도라는 것을 팔아 버리고 있습니다.

 

출애굽기20:7절을 보면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나 여호와는 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아직도 육체에 빠져 있어서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 되게 부르고 있습니다. 아니 망령 되게 부르고 있는지 조차 모르고 있다고 해야 맞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왜 불러야 하는지를 모르고 아무 때나 자기들의 필요에 따라 부르고 있습니다.

 

신명기20:4절을 보면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너희와 함께 행하시며 너희를 위하여 너희 대적을 치고 너희를 구원하시는 자니라 할 것이며

 

그 이름이 무엇입니까?

너희를 위하여 너희 대적을 치고 너희를 구원하는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대적이 누구입니까? 이 세상의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대적은 물론 사단도 되겠지만 직접적인 대적은 율법이 우리의 대적이라는 것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율법이 요구하는 피에서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분입니다.

 

구원을 위해서 그 이름을 불어야 합니다.

만약 영혼 구원이 아니라 다른 것을 위해서 그 이름을 부르고 있다면 그는 하나님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고 또 망령 되게 이름을 부르고 있는 사람입니다 성경이 무엇을 기록하고 있습니까? 바로 우리 영혼의 구원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호와를 언제 불러야 합니까?

바로 영혼 구원을 위해서 불어야 합니다. 그 외에 다른 것을 위해서 부르고 있다면 그는 우상을 부르고 있는 것이며 그것은 한 마디로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 되게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내 육체의 것을 위해서 부르고 있다면 그는 죄를 짓는 것입니다. 그 죄는 구원과 관계가 있는 죄이며 그렇게 망령 되게 부르는 사람은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의 대적에서서 구원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여호와가 구원자라는 말씀이 성경에 얼마나 많이 나오고 있는 가를 깨닫기 바랍니다. 이 세상 것에 대해서 구원을 하는 하나님이 아니라 영혼에 대해서 구원하시는 하나님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에서와 같이 당장의 현실의 것을 구하다가 성도를 팔아 버리고 있습니다.

 

하박국 3:18절을 보면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구약은 그림자입니다

그들의 육체의 구원은 우리의 영혼의 구원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시대는 자기 육체의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있습니다. 자기 육체의 정욕과 탐심을 이기지 못해서 교회 안에서 자기를 나타내고자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있습니다. 그렇게 부르고 있는 것이 망령 되게 부르고 있는 것인 줄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죄입니다.

구원을 받지 못하는 죄입니다. 사람들은 각자 자기 신들에게 구하는 것을 빌면서 그 이름을 부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이 세상 사람들이 자기들의 신에게 구하는 것을 똑같이 구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 되게 부르고 있습니다. 장자의 명분을 주었는데 이 세상 것을 먹으려고 하다가 그것을 팔아 버리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마태복음1:21절을 보면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왜 불러야 합니까?

내 죄에서 구원할 자로 불러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 이 시대 자기 죄에서 구원할 자로 부르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필요한 것을 위해서 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장자의 명분을 팔아 버리고 있습니다. 성경이 무엇을 말씀을 하는 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 영혼의 구원에 대해서 가르쳐 주는 말씀입니다. 그것을 위해서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있습니다.

 

성도와 가리지의 차이입니다.

성도는 자기 영혼의 구원을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고 있지만 가라지는 자기 육체의 것을 위해서 그 이름을 부르고 있습니다. 말로는 하나님을 위해서 그런다고 하면서 이름을 부르고 있습니다. 다 하나님을 위해서 한다고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서 할 일이 무엇이 있다고 그렇게 주장합니까?

 

그 자체가 악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 하시고 우리에게 은혜로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 악한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망령 되게 부르면서 자기가 이 세상에서 교인으로서 살아가는 것을 위해서 구하고 있습니다. 망령 되게 부르는 자는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죄입니다.

구원을 받지 못하는 죄입니다. 성도는 오직 영혼 구원을 위해서 예수 이름을 부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의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분복대로 감사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영혼 구원을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성도만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영혼 구원을 위해 여호와의 이름을 불러 구원을 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