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은,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출애굽기 20:1-3절을 보면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일러 가라사대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신[神]은, 우주 만물과 인류를 창조하고 구원하는 존재를 말하고 있습니다. 신은 구원을 전제 조건으로 하고 있습니다. 만약 신이라고 하지만 구원이 없다면 그것은 신이라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신에 대한 바른 정의를 해야 하나님을 바로 믿을 수 있습니다. 신을 믿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반드시 구원을 해 주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통해서 그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신을 모르기 때문에 신에 대해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들어와 있지만 신이 무엇을 해 주고 있는 가를 모르고 있기 때문에 우상을 섬기게 되어 있고 교회 안에서 다른 신을 섬기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신을 왜 믿습니까? 그런 명제를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왜 신을 믿고 있는가 하는 문제를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이 믿고 있다고 하는 하나님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신을 모르고 믿는다는 것은 한 마디로 말을 해서 자기가 왜 신을 믿고 있는가 하는 것을 모르고 있는 사람입니다. 인생이 바라는 것이 있습니다. 만약 인생이 인생 그것으로 끝이 난다고 생각을 하면 이 세상에는 신을 믿을 사람이 거의 없을 것입니다. 인생 이후에 있을 또 다른 것을 생각하기 때문에 신을 믿고 있고 자기들이 바라는 극락이라든지 천국이라든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에는 신이 참 많이 있습니다. 또 자기를 신이라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신이라 하면 반드시 구원에 대해서 명확하게 가르쳐 주어야 하고 그것을 인생들이 믿을 수 있게 해 주어야 합니다. 만약에 구원에 대해서 정확하게 가르쳐 주지 않고 있다면 그는 신이라 할 수 없습니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 구원에 대해서 전제를 삼고 있다면 이 세상에 과연 얼마나 많은 신이 있습니까? 결국 하나님 한 분 밖에는 신이라고 칭하는 이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인생 이후의 세계에 대해서 모든 종교가 말을 하고 있지만 그들이 말하고 있는 구원론이라는 것은 모두가 다 인생의 공로, 즉 대가가 들어가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신이 해 주어야 합니다. 구원하는 존재를 신이라고 합니다. 쉽게 말씀을 드리면 내 스스로 노력해서 구원을 받는다면 그것은 신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내 능력은 없는데 그가 나를 구원해 주었다면 신이 됩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신이라고 하는 것을 보면 다 자기들의 능력이 있어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뭔가를 해야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 같이 주장합니다. 신은 그것이 아닙니다. 구원이라는 단어의 뜻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사람이 물에 빠져 있습니다. 물론 그를 구하는 방법이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튜브를 던져서 구해 줄 수 있고 또 긴 줄을 던져서 그가 붙잡도록 해서 그가 그 줄에 의지를 해서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구원이 아닙니다. 내가 조금 도와주어서 그가 구원을 받았다면 그것은 도움이지 구원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물에 빠져 죽게 되어 있는 사람을 튜브를 던져서 그가 나오도록 해 주었거나 또 줄을 던져서 그것을 붙잡고 있는 그를 이끌어 내서 구해 준 것은 구원이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구원이 아니라 도움이라는 것을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나는 튜브를 의지할 힘도 없고 또 밧줄을 잡을 힘도 없습니다. 아니 그런 것으로는 구할 수 없는 처지에 있을 때 구원해 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쉽게 말씀을 드리면 태평양 한 가운데 있는 사람에게 튜브가 무슨 소용이 있고 밧줄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물론 잠시 도움을 줄 수 있지만 그 튜브가 과연 그를 구원할 수 있습니까? 아무리 좋은 튜브가 있다 해도 그는 태평양 한 가운데서 죽고 말게 됩니다. 구원이라는 것은 그렇습니다. 조금 몇 가지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아무 힘이 없는 그를 구원해 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사자가 열 마리 있습니다. 사자에게 둘러 싸여 있는데 칼을 준다고 해서 그가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까? 총이 있다고 해도 구원을 받기는 힘이 들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신입니다. 반드시 신은 나를 구원해 주어야 합니다. 그것에 대한 확신이 없이 신을 믿고 있다면 그는 신을 믿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을 해 주지 못하는 존재는 신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이스라엘을 통해서 보여 주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 분명히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신이라는 것을 이 말씀에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왜 신인가를 이 말씀에서 우리가 깨달아야 합니다.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구원해 주신 하나님이라고 분명히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종이 되었던 우리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이십니다. “나는 너를”이라고 합니다. 누가 구원을 합니까? 분명히 “나는 너를” 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노력을 해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오직 신의 능력으로 구원을 받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신의 능력으로 나를 구원해 주어야 신이라고 부를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나와 네가 함께 너를 애굽의 종 되었던 곳에서 구원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 않고 나는 너를 애굽의 종 되었던 곳에서 구원을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유일 하신 참 하나님입니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 나를 구원해 줄 신은 하나님 밖에 없다는 것을 믿는 그것입니다. 그리고 구원에 대해서 반드시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해 주셔야 신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애굽의 종에서 구원을 해 주신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애굽이 무엇입니까? 물론 이 세상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애굽의 종이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종이라는 말의 뜻을 사람들이 잘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종이라는 것을 모르면 안 됩니다. 종은 주인의 소유라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현대 국가에서 종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조차 금기시 하고 있습니다. 종은 물건과 같습니다. 그리고 그 집에 짐승과 같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종은 주인의 소유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인이 종을 샀을 때 그 종은 주인의 소유가 되어서 주인 마음대로 할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종이 말을 안 듣습니다. 그럼 그 종을 죽이는 것은 주인의 마음입니다. 종을 죽인다 해도 어느 누구도 주인에게 항의를 하거나 주인을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바로 이것이 종입니다. 미국에 흑인 노예가 있었습니다. 그들이 불과 200여 년 전만 해도 주인의 소유였다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현대 사회에 와서 인간의 존엄성을 이야기 하다 보니까 이 노예 제도가 없어졌지 사실 노예는 늘 있어왔고 노예는 주인의 소유물입니다. 그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신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기 위해서 내가 누구인가 하면 너희를 애굽의 종 되었던 곳에서 인도하여 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무도 할 수 없는 것을 신이 임해서 이스라엘을 종에서 건져 구원을 해 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애굽에서 이스라엘이 나올 수 있는 가능성은 제로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당시 애굽은 강대국이었습니다. 우리나라도 일제 강점기를 겪었습니다. 그때 우리는 힘이 없어서 우리 스스로는 도저히 구원을 받을 수 없었다는 것을 역사를 통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이스라엘도 자기들 스스로의 힘으로는 애굽의 종 되었던 곳에서 나올 수 없었습니다. 우리나라는 미국이라는 강대국의 힘에 의해서 일본의 종에서 건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달랐습니다. 신명기4:34-35절을 보면 “어떤 신이 와서 시험과 이적과 기사와 전쟁과 강한 손과 편 팔과 크게 두려운 일로 한 민족을 다른 민족에게서 인도하여 낸 일이 있느냐 이는 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의 목전에서 행하신 일이라 이것을 네게 나타내심은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그 외에는 다른 신이 없음을 네게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유일하신 참 신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어떤 신이 시험과 이적과 기사와 전쟁과 강한 손과 편 팔로 한 민족에게서 다른 민족을 구원해 준 일이 있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사실 애굽이라는 강한 대국에서 이스라엘이 나올 수 있는 가능성은 없습니다. 애굽은 강한 군대를 가지고 있었지만 실제 이스라엘은 무기도 변변한 것이 없었고 또한 군인도 없었습니다. 이 말씀의 뜻을 알아야 합니다. 애굽은 사자와 같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양입니다. 사자가 양을 잡아먹으려고 한다면 양은 스스로 사자에게서 건짐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은 전혀 없습니다. 사자와 양이 마주치게 되면 더구나 사자가 배가 고픈 상태에 있다면 양은 도무지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바로 이와 같은 상황입니다. 이스라엘은 애굽의 상대가 되지 못 했습니다. 이 강한 애굽에게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조금 도와 주셔서 이스라엘이 힘을 내서 애굽과 싸운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스라엘이 어떻게 출애굽을 했는가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애굽을 두려워했지 애굽과 싸우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신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신은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해 주신 것과 같이 도저히 종 되었던 곳에서 스스로의 힘으로는 나올 수 없는 그를 구원해 주는 존재를 신이라고 말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 스스로가 신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종살이 하게 하시고 또 애굽의 강한 군대에서 구원을 해 주시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믿지를 않았습니다. 출애굽기5:20-21절을 보면 “그들이 바로를 떠나 나올 때에 모세와 아론이 길에 선 것을 만나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우리로 바로의 눈과 그 신하의 눈에 미운 물건이 되게 하고 그들의 손에 칼을 주어 우리를 죽이게 하는도다 여호와는 너희를 감찰하시고 판단하시기를 원하노라” 모세가 애굽 왕 바로를 만납니다. 그리고 우리의 신 여호와를 섬기기 위해서 우리가 광야로 나가겠다고 하니까 바로가 이스라엘을 더욱 심하게 괴롭게 해서 벽돌을 만드는데 짚을 주지 말라고 합니다. 그러자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와 아론이 선 것을 보고 오히려 그들에게 원망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는 말이 여호와는 너희를 감찰하시고 판단하시기를 원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인생의 눈입니다. 애굽과 이스라엘을 볼 때 자기들 스스로는 도무지 애굽의 종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 이스라엘의 생각입니다. 아니 이성적으로 볼 때 백성이 하는 말이 너무도 타당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지만 신으로 믿지를 않고 있었습니다. 만약 신으로 믿었다면 자기 조상들에게 언약한 그 약속을 반드시 신이 이루어 주실 것을 믿었어야 합니다. 신을 모릅니다. 아니 솔직히 이스라엘이 신을 안다고 하는 자체가 무모할 것입니다. 아직까지 아니 이전까지 그런 신이 없었고 또 자기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는 있었지만 실제 여호와가 있었다면 자기들이 이렇게 종 생활을 하고 있을 것으로 받아들이지를 않았을 것입니다. 그들은 여호와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느냐면 이 세상의 신과 같이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자기들의 만들어서 섬기고 있는 신과 같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구약은 그림자입니다. 이스라엘을 통해서 하나님은 유일 하신 참 신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의 강한 손에서 벗어 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이스라엘이 자기들이 싸운 것이 있습니까? 애굽에 열 가지 재앙을 내릴 때 이스라엘은 자기들에게 점점 심해지고 있는 애굽의 핍박에 오히려 원망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종으로 살기를 바랐습니다. 굳이 광야로 나가지 않아도 종 생활을 하면서 애굽의 종으로 살기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애굽에 열 가지 재앙을 내리시고 그들로 이스라엘을 억지로 내 보내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스스로 싸운 일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출애굽기14:9-12절을 보면 “애굽 사람들과 바로의 말들, 병거들과 그 마병과 그 군대가 그들의 뒤를 따라 바알스본 맞은편 비하히롯 곁 해변 그 장막 친 데 미치니라 바로가 가까와 올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눈을 들어 본즉 애굽 사람들이 자기 뒤에 미친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심히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부르짖고 그들이 또 모세에게 이르되 애굽에 매장지가 없으므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뇨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이같이 우리에게 하느뇨 우리가 애굽에서 당신에게 고한 말이 이것이 아니뇨 이르기를 우리를 버려 두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 하지 아니하더뇨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 열 가지 재앙을 내렸습니다. 애굽이 결국에는 견디지를 못하고 이스라엘이 원하는 광야로 나가게 했습니다. 애굽의 모든 장자가 죽고 난 후에 이스라엘이 애굽으로 나가고 있습니다. 이때까지도 이스라엘은 손 하나 까딱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싸울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애굽 사람들이 나가라고 하니까 급히 나가고 있었습니다. 그 후에 애굽의 군대가 다시 이스라엘을 잡으려고 옵니다. 막상 장자가 다 죽은 재앙을 당하고 이스라엘을 내 보냈지만 다시 마음을 돌이켜서 이스라엘을 다시 종으로 삼기 위해서 애굽의 군대들이 이스라엘의 뒤를 쫓아오고 있었습니다. 사실 열 가지 재앙을 보았다면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께서 싸워 주실 것이라 믿을 수 있을 만도 한데 그렇지를 못 했습니다. 두려워했습니다. 그들은 애굽의 손에 죽는 것과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는 애굽의 종으로 사는 것이 낫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상태를 너무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여호와를 부르고 있고 또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기적을 보이셨지만 믿지를 못했습니다. 자기들을 구원할 신으로 믿지를 못하고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신은 구원을 해 줍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 구원에 대해서 믿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 주시고자 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지금 이 시대도 애굽의 강한 군대에서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참 신이라는 말씀입니다. 사단입니다. 우리 인생은 사단을 당할 힘이 없습니다. 그리고 죽음이라는 공포가 늘 따라 오고 있고 그 죽음에 대해서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약의 이스라엘을 통해서 우리를 어떻게 구원해 주시고 있는 가를 가르쳐 주시고 있지만 사람들이 이 그림자를 보고 이해를 잘 못하고 있습니다. 마치 육의 이스라엘과 같이 자기들의 육체를 구원해 주실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영의 일입니다. 이스라엘의 육을 통해서 우리의 영의 일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런 성경 말씀을 보면서 우리가 하나님을 신이라 믿을 수 있고 유일하신 참 신으로 믿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너를 구원해 주신다는 것을 이스라엘을 통해서 가르쳐 주시고 있습니다. 육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이 모든 일들이 다 영의 일들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애굽의 군대를 보고 두려워했지만 하나님께서 싸우셔서 그들을 모두 홍해에 수장을 시켜 버렸습니다. 이스라엘이 광야로 나오기 까지 모두가 하나님께서 하셨습니다. 바로 이것이 구원입니다 내가 너를 구원했다는 그 말씀입니다 출애굽기14:13-14절을 보면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너희는 두려워 말라, 그리고 가만히 서서 하나님께서 너희를 위해서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신이란 바로 이렇게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이 시대도 역시 유일하신 참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을 구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구원을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육을 보고 자기들의 육의 구원을 바라고 있습니다. 영의 일입니다. 육의 이스라엘의 구원을 통해서 우리의 영이 어떻게 구원을 받는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신은 이스라엘의 의지와 상관없이 그리고 그들의 능력과 상관이 없이 오직 신의 능력으로서 또한 신이 약속한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 구원을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광야를 거쳐 가나안에 들어갑니다. 물론 가나안에 들어가기 까지 아말렉과 싸우고 모압 사람과 싸우는 일은 이스라엘이 직접 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스라엘이 강해서 그들을 이길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비록 이스라엘이 육적으로는 싸웠을지 몰라도 분명히 성경에는 그들을 이스라엘의 손에 붙이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기게 해 주셨으니까 이스라엘이 이길 수 있었던 것이지 실제 성경을 통해서 보면 이스라엘은 적국과의 싸움에서 무기도 변변치 않았지만 전쟁에서 승리를 했습니다. 성경을 왜 기록 했습니까? 이 성경은 모두가 구원에 대해서 기록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유일 하신 참 신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그것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 이 성경을 기록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참 이시기 때문에 우리를 구원해 주신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서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 구원에 대한 믿음이 바로 하나님을 믿는 믿음입니다. 신명기4:35절을 보면 “이것을 네게 나타내심은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그 외에는 다른 신이 없음을 네게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은 성도가 천국에 들어가는 예표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인도하셔서 그들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구원을 하시는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이렇게 보여주신 이유는 하나님 외에는 다른 신이 없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이스라엘의 육의 구원을 통해 우리의 영을 구원해 주신다는 것을 말씀을 해주시고 있습니다. 다른 신이 있습니까? 이 세상에 신이라 칭하는 것들이 많이 있지만 유일하신 참 하나님 외에는 다른 신이 없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이 성경을 보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성도만이 다른 신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고도 이스라엘은 다른 신을 섬겼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영혼의 구원을 보지 않고 자기 육체의 구원을 보았기 때문에 그들은 다른 신을 섬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영혼을 구원하시는 것을 알았다면 그들은 절대로 다른 신을 섬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로 영혼에 대한 일이라는 것을 깨닫는 성도는 절대로 다른 신을 섬기지 않습니다.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다른 신을 있게 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혼의 구원에 대해서만 생각을 해야 하는데 이스라엘은 육적인 구원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육적인 구원을 위해서 신을 섬겼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사실 이스라엘은 자기들의 육의 문제에 있으면 늘 다른 신을 섬겼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무슨 신을 섬겼습니까? 가나안에 들어가 대표적으로 섬겼던 신이 바로 바알과 아세라입니다. 만약에 자기들을 구원하는 하나님께서 육적인 구원이 아니라 영혼의 구원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그들은 절대로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지 않았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영혼의 구원을 생각하기 보다는 자기들의 육적인 구원을 생각했기 때문에 바알과 아세라를 섬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른 신을 두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다른 신 자체가 거짓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구원에 대해서 깨닫지를 못하다 보니까 육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그 지방에서 섬겼던 신을 섬기게 됩니다. 지금도 교회 안에서 이렇게 육에 빠져 있는 사람들은 다른 신을 그대로 섬기고 있습니다. 왜 다른 신을 섬겼습니까? 이스라엘은 가나안에 들어가자마자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기 시작을 했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그들의 육에 대한 문제를 구원을 받기 위해서 그 지방 사람들이 섬기고 있던 바알과 아세라를 섬겼습니다. 영혼의 구원을 생각하지 않고 육의 어려움에서 구원을 받기 위해서 바알과 아세라를 섬겼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신에게 자기 육체를 구원해 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것이 교회 안에 지금도 그대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교회 안에 가장 팽배해 있는 신이 무엇입니까? 바로 바알입니다. 풍요의 신을 섬기고 있습니다. 자기 육체가 풍요로워지기 위해서 지금 이 시대 교회가 바알이라는 신을 섬기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영혼 구원입니다. 그런데 이 영혼의 구원을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육체의 어려움에서 구원을 받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실제 교회 안에서 자기들의 육체가 잘 되기를 바라고 기도를 하는 것이 전부 다른 신을 섬기고 있는 것임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빌립보서3:19절을 보면 “저희의 마침은 멸망이요 저희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저희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저희의 신은 배”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그들의 배를 자기의 하나님으로 삼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자기 육체를 위해서 빌고 있고 그것이 잘 되기를 바라고 섬기고 있는 것이 바로 신이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교회 밖에서 행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그들의 배를 채우기 위해서 신을 섬기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자기 육체를 구원해 주시는 것이 하나님께서 해 주시는 것이라고 믿는 그것이 신이라는 말씀입니다. 빌립보서3장을 보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이 육체를 신뢰하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할례를 말씀을 하고 있고 또 율법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통해 자기 육체의 영광을 나타내고자 하는 모든 것이 바로 신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자기 육체를 위해 배를 채우고자 하는 것이 이 시대 교회 안에 살며시 들어와 있는 신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신은 하나님 한 분 뿐입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있지만 그들이 누구에게 구하고 있습니까? 사실 교회는 지금 다른 신을 자기 곁에 두고 있다고 해야 맞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성경을 기록하신 목적이 바로 우리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 기록을 하셨습니다. 이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바로 깨닫고 믿으라는 이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구원을 하시는 신입니다. 다른 것을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영혼을 구원을 하시는 신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육체를 구원하는 신을 섬기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자기 배를 채우는 신을 섬기고 있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라고 사도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부르고 있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지만 실제 그들은 다른 신을 섬기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제가 그것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너는 나 외에 다른 신을 내 곁에 두지 말라”고 하신 이 말씀을 어기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자기 육체의 문제에 대한 신을 자기 곁에 두고 있고 그 신에게 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예수 그리스도를 부르고 있지만 하나님께서 가지고 계시고 또 주고 있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영혼의 것입니다. 이 세상의 다른 신은 육체의 것을 줍니다. 바로 이 문제를 깨닫지 못하고 있다 보니까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다른 신이 가지고 있는 그것을 바라고 있으니까 누가 주겠습니까? 그것은 다른 신이 줄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영혼 구원에 대한 것을 주시는 신이라는 것을 깨닫기 바랍니다.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께 기도를 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기도를 하는 것을 누가 가지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 세상 신이 가지고 있는 것이라면 그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있지만 실제로는 다른 신을 곁에 두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분명히 기억하시 바랍니다. 내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기도를 하고 있지만 내가 바라는 것이 누가 가지고 있는 것이냐는 것을 모르면 안 됩니다. 그것이 다른 신이 가지고 있는 것이라면 나는 실제로 다른 신을 내 곁에 두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이 빌립보서를 통해 그들이 배가 신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체의 정욕을 위해서 바라고 있다면 그는 이미 다른 신을 곁에 두고 섬기고 있는 사람입니다. 누구에게 경배를 합니까? 성도는 당연히 하나님께 경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누구에게 경배를 하고 있는 가를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그들의 곁에는 다른 신이 있습니다. 마태복음4:8-9절을 보면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가로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천하만국의 영광을 보며 경배를 하고 있습니다. 교회도 천하만국입니다. 교인들도 천하만국입니다. 내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하는 그 영광도 천하만국입니다. 찬양도 천하만국에서 하는 것이고 기도도 천하만국에서 하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자기가 잘 되기를 바라고 또 하나님을 잘 섬기기를 바라고 하는 그 모든 행위가 다 천하만국의 영광입니다. 신을 섬기고 있습니다. 이 천하만국의 것을 얻기 위해서 신을 곁에 두고 있습니다. 입술로는 하나님을 부르고 있지만 실제로는 그 배로는 신을 섬기고 있습니다. 자기 육체를 위해서 얼마나 많은 신을 섬기고 있는 가를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내 육체를 위하는 모든 기도는 사실은 다른 신을 섬기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직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왜 믿습니까? 이 세상에서 부자가 되고 출세도 하고 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 믿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는 자기가 만든 신을 섬기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마태복음1:21절을 보겠습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구원입니다.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단 한 가지 이유는 영혼 구원입니다. 이것 외에 다른 것을 구하고 있다면 그는 이미 다른 신을 곁에 두고 있는 멸망을 받을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 교회가 다른 신을 곁에 두고 얼마나 음행을 하고 있는 가를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신명기17:2-5절을 보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어느 성중에서든지 너의 가운데 혹시 어떤 남자나 여자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그 언약을 어기고 가서 다른 신들을 섬겨 그것에게 절하며 내가 명하지 아니한 일월성신에게 절한다 하자 혹이 그 일을 네게 고하므로 네가 듣거든 자세히 사실하여 볼지니 만일 그 일과 말이 확실하여 이스라엘 중에 이런 가증한 일을 행함이 있으면 너는 그 악을 행한 남자나 여자를 네 성문으로 끌어내고 돌로 그 남자나 여자를 쳐죽이되” 다른 신을 섬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하나님께서는 율법에 말씀하신 대로 쳐 죽일 것입니다. 교회 밖에 있는 사람은 당연히 다른 신을 섬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교회 안에 있으면서도 이 세상 신을 섬기는 것과 같이 아니 이 세상 사람들이 그 신들에게 요구하는 것을 똑같이 구하고 있다면 그는 다른 신을 섬기고 있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세상 신이 무엇을 줍니까? 세상 사람들이 신에게 무엇을 구하고 기도를 하고 있습니까? 그들이 구하는 것과 내가 구하는 것이 같다면 나는 하나님 이외에 다른 신을 곁에 두고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신이 아니라 우리의 영혼을 구원해 주시는 유일하신 참 신이라는 것을 깨닫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왜 믿어야 하느냐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우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시기 때문에 믿어야 합니다. 이 구원을 위해서 우리가 유일 하신 참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주시고자 하는 가를 바로 깨닫고 다른 신을 곁에 두지 않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입어 구원을 얻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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