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육은, 살인하지 말찌니라
출애굽기 20:13절을 보면
“살인하지 말찌니라”
살인하지 말라.
이것이 율법에 나와 있어서 안 합니까? 아마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다면 그는 정말로 양심이 없는 사람입니다. 살인을 하면 어떻게 된다는 것을 꼭 이 십계명이 있어야 안다고 하면 그는 정말로 율법에 매여 있는 사람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사고로 죽는 것을 봐도 끔찍합니다.
현대는 자동차가 워낙 많다 보니까 하루라도 자동차 사고로 안 죽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끔찍한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자의적이 아니더라도 운전에 의해서 사람이 죽어도 사람은 그것으로 인하여 한동안 트라우마를 겪게 되어 있습니다.
내 실수가 아닙니다.
그럴지라도 사고가 발생을 해서 한 생명이라도 끔찍하게 죽었다면 한 동안은 운전을 하는 것 자체도 힘이 들 수 있는 것이 사람이 죽는 일입니다. 하물며 사람을 자기 손으로 죽였을 때 그것이 어떠한 결과를 가져 온다는 것을 모를 사람은 없습니다. 꼭 사람이 아니더라도 살아 있는 생명을 죽인다는 것은 쉽지가 않습니다.
그런 경험이 있습니다.
아주 오래된 일입니다. 그때 낚시를 잠깐 했는데 낚시를 가서 향어를 잡아 왔습니다. 향어가 약 40센티 정도 되는데 그것을 요리를 해서 먹으려고 살아 있는 향어에 칼을 댔는데 도저히 자를 수가 없었습니다. 향어가 뛰는데 그것을 칼로 찌르려면 바동거리는데 그것을 할 수 없어서 결국 포기를 하고 다른 사람이 와서 해 주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더구나 사람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일은 너무도 큰 충격이고 아무리 강한 심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고 해도 당시에는 제 정신이 아니라서 그렇게 했을지라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후회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한 사람을 죽인 것으로 끝이 나는 것이 아니라 주변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끼치게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누가 살인을 하라고 하겠습니까?
아마도 그것을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상대도 안할 것입니다. 또한 그렇게 가르치는 종교가 있다면 그것은 사이코페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어린 아이라도 알 수 있는 이 기본적인 일을 누가 감히 반대를 하고 이것이 폐해 졌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그래서 더욱 도덕법이 살아 있다고 합니다.
아니 교회 안에서 십계명이 살아 있다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너무도 타당하고 또 인생의 이성으로 볼 때 지극한 주장입니다. 그런데 이 십계명이 폐해 졌다고 하면 어떻게 생각을 하겠습니까? 아마도 교회 안에 있는 다수는 이 십계명이 폐하여 졌다고 하면 당장에 그럼 살인을 해도 되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아니 마치 살인을 하는 사람으로 취급을 합니다.
교회 안에서 율법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십계명이 폐해졌다고 하면 마치 육적인 살인을 해도 되는 것으로 가르치는 것으로 오해를 하게 됩니다. 또 그런 육적인 살인이 아무 정죄가 되지 않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거듭 말씀을 드립니다.
이 십계명은 폐해졌습니다. 만약 안폐해 졌다고 하면 그것이 더 큰 문제가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안폐해 졌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성경을 어느 한 부분만 보고 있는 사람입니다. 문자적인 십계명은 분명히 폐해 졌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제가 지금 살인을 해도 된다는 것이 아니라 십계명이 안폐해지면 어떠한 결과를 가져 오는 가를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너무도 모르고 있습니다.
계명입니다.
그것은 그림자입니다. 만약에 이 그림자를 실체로 보려고 하다가는 문제가 심각해집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구약의 그림자는 그림자로서 보아야 하고 그것을 통해서 우리에게 영적으로 주시고자 하는 의미를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십계명은 폐해졌습니다.
이것을 명제로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그렇기 않고는 어느 누구도 성경을 바로 해석할 수 없게 되고 또 쉽게 율법주의에 빠지게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십계명이 살아 있다고 주장을 하는 사람은 그들에게 이 십계명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다른 계명을 살리기 위해서 자기들을 위해서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것을 또한 깨달아야 합니다.
살인,
이것에 대해서 우리는 성경을 통해 자세히 찾아보겠습니다.
출애굽기 12-14절을 보면
“사람을 쳐죽인 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나 만일 사람이 계획함이 아니라 나 하나님이 사람을 그 손에 붙임이면 내가 위하여 한 곳을 정하리니 그 사람이 그리로 도망할 것이며 사람이 그 이웃을 짐짓 모살하였으면 너는 그를 내 단에서라도 잡아내려 죽일지니라”
살인자는 반드시 죽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성경의 정의입니다. 십계명이 살아 있다고 하면 살인자는 반드시 죽여여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살인자를 보고도 죽이지 않으면 그는 오히려 십계명을 어기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죽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십계명이 살아 있습니까?
왜 그렇게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사형 제도에 대해서 반대를 하고 있습니까? 십계명이 살아 있다면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대로 살인을 한 자는 반드시 죽여야 합니다. 십계명이 살아 있다고 하면서 한편에서는 살인자들을 위해서 그들의 인권을 이야기 하면서 아니 하나님 외에는 생명에 대해서 주관할 수 없다고 하면서 사형 제도를 반대를 하고 있습니다.
한국교회는 지금 둘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한쪽에서는 사형 제도를 반대를 하고 있고 또 한쪽에서는 성경에 살인한 자를 죽이라고 했으니까 사형 제도를 실행해야 한다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 근거가 바로 이 말씀입니다. 살인한 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주장하는 사형제도는 이 말씀과는 조금 다르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살인을 했다고 다 사형을 선고 받습니까?
정말 극악무도한 살인범을 제외하고는 사형을 판결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논리대로라면 살인을 한 사람은 반드시 죽여야 하니까 정상이 참작이 되어서는 안 되고 반드시 사형에 처해져야 합니다. 우리나라 법의 근간을 흔들어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판사의 판결도 잘못 되었기 때문에 반드시 사형에 처해야 합니다.
사형 판결을 받은 사람만 살인을 했습니까?
실제 살인을 한 사람가운데 불과 10%도 안 되는 사람이 사형 판결을 받고 있습니다. 이것 자체가 성경적으로 문제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형을 반대하는 쪽이나 사형을 찬성하는 쪽이나 정말 성경이 어떻게 말씀을 하고 있는가를 바로 알고 주장을 해야 합니다.
그 이웃을 짐짓 모살하였으면 너는 그를 내 단에서라도 잡아내려 죽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모살이라는 말씀은 내가 살해할 의도가 있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자동차 사고가 나서 죽는 것은 모살이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어떤 사람을 죽이려고 계획을 하고 그것을 실행에 옮겼을 때를 모살이라고 합니다. 성경은 그런 사람을 내 단에서라도 끌어내어 죽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레위기24:17절을 보면
“사람을 쳐 죽인 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요”
반드시 죽여야 합니다.
사람을 어떤 흉기로 쳐 죽인 사람은 반드시 죽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성경 문자 그대로입니다. 그러나 한기총에서 주장하고 있는 사형제 찬성은 재판에 의해 판결을 받은 살인자를 사형에 처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이미 성경에 어긋났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이 사형제를 찬성하려고 하면 반드시 사람을 쳐 죽인 자는 모두가 사형 판결을 내려서 죽이라고 주장을 해야 성경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무엇이 성경적입니까?
그저 어느 한 부분을 주장하는 것이 성경적이 아니라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다른 사람을 죽인 자에 대한 말씀을 그대로 적용을 해야 합니다. 이것이 성경적이라는 것입니다. 단순히 성경에 살인자를 죽이라고 했으니까 사형제를 실행해야 한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살인한 사람은 모두를 죽이게 하는 것이 성경적이라는 것을 먼저 깨달아야 합니다.
성경에도 과실치사가 있습니다.
민수기 35:6절을 보면
“너희가 레위인에게 줄 성읍은 살인자로 피케 할 도피성으로 여섯 성읍이요 그 외에 사십이 성읍이라”
이 도피성에 대해서는 다시 말씀을 하겠습니다.
오늘은 살인하지 말라는 십계명의 6계명에 대해서만 말씀을 나누기로 하겠습니다. 살인한 자는 반드시 죽이라고 말씀을 했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일부러 그 사람을 죽이려고 한 것이 아니라 실수로 다른 사람이 죽에게 한 일이 세상을 살다보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현대어로 과실치사라고 합니다.
쉽게 말씀을 드리면 지금 이 시대 운전을 합니다. 그런데 실수를 해서 자동차가 충돌을 해서 그 안에 타고 있는 사람이 죽었습니다. 내가 일부러 죽이려고 한 것이 아니라 자동차가 속도를 내고 달리다 보니까 뜻하지 않은 상황이 발생을 해서 사람이 죽게 되었습니다. 이때를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도피성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도피성이 여섯입니다.
요단강을 경계로 해서 건너편에 세 개 그리고 요단 안쪽에 세 개의 도피성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과실치사로 인하여 다른 사람을 죽이게 한 사람이 도피를 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재판장이 재판을 해서 그 진위를 따지게 했습니다.
그런데 알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이 사람이 실수로 사람을 죽였습니다. 그때 죽은 사람의 형제가 가까이 있어서 그 사람을 죽였다면 형제는 무죄라는 말씀입니다. 반드시 실수로 사람을 죽였다 해도 그 사람은 빨리 이 도피성으로 피해서 자기가 일부러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는 것을 재판을 통해서 판결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 사람이 고살한 자면 그 단에서 끌어내어 죽이라고 말씀합니다.
재판관이 판단을 해 보니까 그 사람이 고살한 자면 형제가 도피성에 있는 사람을 끌어내어 죽여도 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을 죽이는 살인죄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얼마나 엄격하게 하셨는가를 성경을 통해서 바로 알아야 합니다.
판결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과실치사로 밝혀졌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자유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설령 그가 고살한 것이 아니라 해도 살인을 했기 때문에 도피성에 있어야 안전 합니다. 만약에 과실치사로 판결을 받았다 해서 도피성 밖으로 나가면 그 형제가 원한을 가지고 죽여도 형제에게 죄를 묻지 않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은 도피성에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당시 대제사장이 죽으면 자유하게 도피성에서 나갈 수 있다고 성경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율법적으로 말씀을 하고 있는 살인에 대한 법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살인에 대한 율법이 이렇다는 것을 최소한 알고 살인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야 하고 또 사형 제도에 대해서도 자기주장을 할 수 있습니다.
율법에는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율법으로 이렇게 모세를 통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럼 성경에서 살인한 자들을 찾아보겠습니다. 과연 그들을 어떻게 처리 하셨는가를 성경을 통해서 바로 알아야 합니다. 과연 십계명이 살아 있다면 그래서 살인한 자를 반드시 죽여야 한다면 우리는 심각한 문제에 부딪치게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 세상의 최초의 살인자가 있었습니다.
창세기 4:8절을 보면
“가인이 그 아우 아벨에게 고하니라 그 후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
가인과 아벨이 제사를 드립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사는 받으시고 가인의 제사를 받지 않으시니까 그것이 분이 났습니다. 그러다가 기회를 보아서 아벨을 들어서 만나 쳐 죽였습니다. 그리고 아무도 모르고 땅에 묻어 버렸습니다. 가인은 고살한 자입니다. 이미 그의 마음에는 아벨을 죽이겠다는 마음이 있었고 그것을 그대로 실행에 옮겼습니다.
물론 십계명이 반포되기 전입니다.
그러나 이미 계명은 에덴에서부터 아담에게 있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아담이 첫 언약인 계명을 어김으로 해서 에덴에서 쫓겨나고 반드시 죽게 되는 육체의 죽음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아담은 계명을 어김으로 해서 죽음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가인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가인은 고살한 자이기 때문에 반드시 죽여야 합니다. 이때 아무도 몰랐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직접 나타나셔서 가인에게 내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인이 아벨을 죽였다는 것을 알고 가인에게 찾아 오셔서 아벨을 찾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하셔야 합니까?
반드시 고살한 자이기 때문에 인정을 보아주어서는 안 되고 가인을 죽이셔야 합니다. 만약 가인을 죽이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스스로 모순에 빠지게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가인을 죽이지 않고 살려 주셨습니다.
창세기 4:15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렇지 않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만나는 누구에게든지 죽임을 면케 하시니라”
아마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이때는 율법이 없었을 때라고 주장할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미 에덴에서부터 첫 언약에 대한 것을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게 되면 당연히 죽게 된다는 것을 알았기에 가인이 하나님께서 내 죄가 중해서 하나님께서 나를 살려 주셔도 나를 만나는 자가 나를 죽일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 가인에게 하나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을 것이라고 하면서 그를 살게 해 주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누구도 가인을 만나서 가인을 죽이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만약에 율법이 하나님의 법이라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가인을 이때 죽이셨어야 하는 것입니다.
율법에 대해서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반포를 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법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 법은 사단에게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한 법입니다. 사단은 우리를 영원히 죽에 하려고 하고 있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살리시고자 원하십니다. 그런데 이 율법을 통해서 사단은 죽이고자 하고 있고 하나님께서는 이 율법의 모든 피 값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갚게 하셨습니다.
십자가입니다.
율법은 우리 모든 죄의 값을 갚기 위해서 정해 놓으신 것입니다. 사단이 이 율법을 통해서 우리를 정죄를 하고 하나님께서는 이 율법의 요구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다 이루게 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시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가인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만약에 율법이 하나님의 법이라면 이 당시 가인은 반드시 죽었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가인을 살려 주셨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셔서 이 세상 모든 죄를 지고 가실 것을 미리 예정 하셨기 때문에 가인의 살인죄도 이미 용서를 하셨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율법으로는 반드시 죽어야 하는 가인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 살려 주셨습니다.
가인만 살인을 했습니까?
우리가 다윗을 얼마나 대단한 사람으로 보고 있습니까? 그런데 그 다윗도 고살한 자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물론 자기가 직접적으로는 하지 않았어도 분명히 고살한 자입니다.
사무엘하 11:14-15절을 보면
“아침이 되매 다윗이 편지를 써서 우리아의 손에 부쳐 요압에게 보내니 그 편지에 써서 이르기를 너희가 우리아를 맹렬한 싸움에 앞세워 두고 너희는 뒤로 물러가서 저로 맞아 죽게 하라 하였더라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와 간음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아이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숨기려고 우리아를 전쟁에서 불어 밧세바와 동침을 하게 하려고 했다가 우리아가 너무 충성스러워 아직 왕의 백성이 전쟁 중에 있는데 어떻게 내가 내 아내를 품을 수 있겠느냐고 거절을 합니다.
안 되니까 우리아를 죽게 했습니다.
우리아가 전쟁터로 다시 돌아가는데 편지를 써서 요압에게 보냅니다. 그리고 우리아를 선봉에 서게 해서 적에 의해서 죽게 했습니다. 다윗의 말대로 요압은 우리아를 선봉에 서게 해서 전쟁이 치열할 때 그가 적에 의해서 죽게 했습니다. 이것은 누가 보아도 고살한 자입니다. 물론 직접은 안 죽였다 해도 다윗이 죽인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사무엘하 12:13절을 보면
“다윗이 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하매 나단이 다윗에게 대답하되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 당신이 죽지 아니하려니와”
다윗은 반드시 죽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역시 다윗도 살려 주시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이 회개를 하기도 전에 이미 죄를 사해 주셨다고 나단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에는 고살한 자를 반드시 죽이라고 말씀을 하셨는데 하나님께서는 죽이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다윗이 죄를 용서를 빌기도 전에 사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제가 살인을 해도 된다고 이 말씀을 드리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율법에는 살인한 자는 반드시 죽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십계명이 폐해졌다 해도 우리는 살인을 해서는 안 됩니다. 만약 살인을 하면 이제는 십계명이 우리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우리를 구속하고 심지어는 사형을 시킨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살인하는 죄 용서 받을 수 있습니다.
아니 이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용서를 받았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살인을 한다면 국가는 반드시 그에게 처벌을 가할 것입니다. 성경에서 고살한 자를 죽이지도 않고 용서를 해 주시면서 왜 하나님께서는 살인한 자를 반드시 죽이라고 하셨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살인한 자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죽인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 영혼이 죽습니다.
요한계시록22:15절을 보면
“개들과 술객들과 행음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마다 성 밖에 있으리라”
살인자들과
성 밖에 있으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구원을 못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요한계시록에서 살인자는 성 밖에 있으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들은 구원을 못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럼 다윗을 용서 했다고 하는 그 말씀이 어떻게 됩니까?
성경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육적인 살인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이 아무리 정당하다 해도 우리는 살인을 해서는 안 됩니다. 십계명에도 살인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이 살인은 육적인 살인이 아니라 영적인 살인을 하는 사람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영혼을 죽이는 사람은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육적인 살인자는 용서를 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살인자는 반드시 죽게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 시대 교회 안에 영적인 살인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가 영혼을 죽이게 하고 있다는 것을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아니 그 일에 더욱 열심을 내고 있고 영혼을 죽이는 일을 하지 못해서 오히려 안달을 하고 있고 그 일을 하게 해 달라고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좀 극단적으로 말씀을 드리더라도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육적인 살인을 했다 한들 그것이 무슨 큰 문제가 됩니까? 사실 우리 육이라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가나안에 들어갈 때 이스라엘에 그 민족을 진멸하라고 하셨습니까? 영혼이 없다면 그것은 짐승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실 짐승과 무엇이 다릅니까? 단지 이성을 가지고 있다 뿐이지 영혼이 없다면 짐승이나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잔인 합니까?
하나님께서 노아의 홍수 때 인류를 모두 멸한 것이 잔인합니까? 절대로 아닙니다. 인생이라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성이 있으니까 이 인생이 정말 대단한 것 같지만 죽으면 어떻게 됩니까? 사실 빨리 죽냐 늦게 죽냐 하는 문제지 언제 죽어도 그것은 흙으로 돌아가는 짐승과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묘를 잘 썼습니다.
그리고 짐승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 세상에 무엇인가를 남겼습니다. 그래서 모두가 존경을 하고 있지만 사실 이 지구의 종말이 왔을 때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때로 인정이 없는 것 같이 보이지만 사실 개미를 수만 마리 죽인다고 해서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사야 2:22절을 보면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수에 칠 가치가 어디 있느뇨”
가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실 때 우리 인생은 가치가 없습니다. 그러나 인생이 이성을 가지고 보면 너무도 가치가 있습니다. 그것은 인생의 생각이고 우리는 이미 썩어서 죽어 있는 자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저희 죽은 자들로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라고 말씀(마8:22)을 하셨습니다. 이미 죽은 자를 죽이고 말고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무엇이 살아 있습니다.
이 육체는 어차피 죽을 인생입니다. 그것 때문에 살인하지 말라고 우리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수에 실 가치도 없는 그것이 죽고 사는 것이 무슨 큰 문제가 되겠습니까?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킬 때 하시던 말씀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의인 열만 있어도 그 성을 멸망시키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왜 지구가 아직 멸망을 안 당합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의롭다 하는 사람이 열이 더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영혼을 살인을 하고 있습니다. 아주 열심을 내면서 영혼을 죽이는 일에 자기 온 몸을 다 바치고 있습니다. 육적인 살인자가 아닐 영적인 살인자를 하나님께서 반드시 죽이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이 영혼의 살인을 하고 있으면서도 깨닫지 못 합니다.
요한계시록 9:21절을 보면
“또 그 살인과 복술과 음행과 도적질을 회개치 아니하더라”
살인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회개를 하지 않습니다. 왜 자기가 살인을 하고 있다는 것을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살인을 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영혼을 살인을 하고 있습니다. 육체의 살인도 끔찍한데 영혼을 죽이면서도 그것을 하나님에 대한 열심이라고 생각하면서 무자비하게 칼을 휘두르고 있습니다.
영혼을 죽이고 있습니다.
누가 그렇게 하고 있습니까? 교회 안에서 다른 복음을 전하고 있는 자들이 그렇게 영혼을 죽게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율법주의 은사주의가 바로 칼을 휘두르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사람들을 잔인하게 죽이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18:6-7절을 보면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 실족케 하는 일들이 있음을 인하여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케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케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
실족케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영생을 얻기 위해서 교회에 나온 소자를 실족케 해서 사망에 빠뜨리고 있습니다. 실족케 한다는 말씀은 다른 말로 하면 영혼을 죽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교회 안에 있는 거짓 선지자들이 자기들이 알고 있는 다른 복음으로 인하여 이렇게 소자를 실족케 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에 더욱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아니 영혼을 살인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육체를 죽인 사람은 하나님께서 용서를 해 주시지만 영혼을 살인한 자는 반드시 죽이십니다. 그것이 다른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행하고 있는 율법과 은사고 또 이 세상의 사상이 그렇게 만들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 것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을 방해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 수 있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는 그 말씀입니다. 믿음이 아니고는 우리는 살 수 없습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 있는 다수가 이 믿음을 방해를 하고 있습니다. 율법으로 방해를 하고 있고 은사로 방해를 하고 있고 자기 지식으로 방해를 하고 있고 여러 가지 형태로 방해를 하면서 영혼을 죽이고 있습니다.
오직 믿음입니다.
그러나 이 믿음을 조금이라도 흠집을 낸다면 살아야 하는 영혼이 죽는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여 결국은 그 영혼을 살인을 하고 있으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 사람을 살리시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습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 믿는 것을 방해를 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12:32절을 보면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성령을 거역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교회 밖에 있는 사람은 성령을 거역하고 말 것도 없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성령을 거역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내가 성령을 거역하면 그것이 소자가 배우게 되면 그 영혼을 죽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진짜 더 끔찍한 살인을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다 거역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는 것이 성령을 거역하고 있는 것이고 그것을 지키라고 강요를 하고 있는 것이 영혼을 죽이는 살인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은사를 통해서 자기 의를 드러내고자 하는 사람이 바로 영혼을 죽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입니다.
성령을 바로 알지 못하고 있다 보니까 성령을 거역하고 있으면서도 자기는 성령을 받았다고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이렇게 하고 있느냐면 바로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영혼을 죽이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영혼에 대해서 관심도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단은 지금도 사람의 마음을 감동을 해서 진리를 거역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누가 살인 하겠습니까?
더구나 교회 안에 있는 사람이 하나님을 믿겠다고 하는 사람이 살인을 하겠습니까? 혹시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있어도 만 명에 한명 있을까 말까 합니다. 그런 희박한 일을 하나님께서 십계명으로 말씀을 하셨겠습니까? 교회 안에는 이런 살인자들이 너무도 많이 있기 때문에 영혼을 살인하지 말라고 십계명에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살인자가 많습니다.
영혼을 죽이는 자가 더 많이 있습니다. 오죽하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십계명의 돌 판에 새겨서 주셨겠습니까? 그것이 간혹 가다가 어쩌다 있는 일 같으면 그렇게 안 하십니다. 지금 이 시대도 영혼을 살인을 하고 있는 살인자들이 교회 안에 수두룩합니다. 그러나 자기가 영혼을 죽이고 있다는 것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구원을 받았습니다.
비록 그가 우리아를 전쟁에서 죽게 했을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가 회개를 하기도 전에 용서를 하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용서를 하기도 전에 미리 이 끔찍한 육체의 살인도 용서를 해 주시고 있지만 영혼을 살인하는 자들은 반드시 형벌을 받게 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선지자입니다.
소자에 비해서 교회에 먼저 나온 나는 선지자입니다. 그가 내 행위를 보고 따라하다가 죽었다면 나는 살인자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영혼을 죽이는 살인자가 되지 않으려면 반드시 진리의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모든 진리 가운데로 행해야 합니다. 설사 다른 영혼을 구원하는 일은 하지 못할지라도 살인을 해서는 안 됩니다.
진리를 아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나를 살리고 또 다른 영혼을 죽이지 않을 수 있는 일입니다. 늘 깨어 지혜를 구해서 영혼을 살리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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