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너희는 귀를 기울리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십계명 강해

제7계명/간음하지 말찌니라

윤주만목사 2017. 9. 25. 05:14



제칠은, 간음하지 말찌니라

 

출애굽기20:14절을 보면

간음하지 말찌니라

 

간음하지 말라

십계명의 모든 계명이 그렇듯이 이 간음에 대한 문제도 우리가 깊이 생각을 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특히 이 간음에 대해서 아주 싫어하고 계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십계명의 모든 계명은 모두가 영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간음이란,

혼인한 사람이 배우자가 아닌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있는 한 이 간음의 문제는 늘 발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성경에서도 이 간음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하나님께서는 특히 이 간음을 한 사람에게 대해서 분명한 벌을 내리라고 율법을 통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배우자가 아닌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서 그 가정이 깨지게 되는 일이 너무도 많기 때문에 이 간음에 대해서 그저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는 세대입니다.

 

유머가 있습니다.

사랑의 유효기간이 3년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물론 세상 사람들이 자기들의 정당화를 위해서 만들어 낸 말입니다. 정말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3년이 아니라 평생 동안 사랑하면서 살아갈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 쉽게 변하고 있고 또 자기 배우자에게 대해서 사랑을 느끼지 못하면 다른 사람을 찾게 되어 있습니다.

 

율법은 가혹합니다.

성경에서 간음한 자를 처벌을 하는 것은 현대인의 시각에서는 너무 가혹하다고 할 정도입니다. 사실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간통죄가 존재는 하고 있지만 사실 그것도 거의 사장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고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이 간통죄는 형사법이 아니라 민사로 다루어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간음하지 말라라는 계명은

십계명에 있기 때문에 성도는 육체적으로도 간음을 하지 않는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이 십계명은 분명히 폐지되었습니다. 육적인 십계명은 이미 폐지가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성도들이 방종을 하고 교회 안에서 간음을 하게 된다면 진리가 가려지게 되기 때문에 십계명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계명들은 육적으로도 우리가 정말 조심해야 합니다.

 

성도는 복음을 위해 삽니다.

그 복음이 방해가 되는 그 어떤 일도 우리는 조심해야 하고 또 그렇게 살아가야 내가 가지고 있는 진리를 다른 사람에게 전할 수 있습니다. 내가 배우자가 있는 다른 사람과 관계를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어느 누구도 내가 전하는 진리를 바로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이 세상은 율법주의입니다.

그런 사상이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는데 내가 도덕적인 법을 어기면 다른 사람은 내가 전하는 말을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 너무도 분명합니다. 육적으로 간음을 한다 해서 내가 구원을 받지 못하는 것 때문에 간음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도덕적인 문제로 내가 가지고 있는 진리를 전하기 위해서 성도는 그렇게 살아가야 합니다.

 

인생은 약합니다.

특히 사랑에는 거의 모든 사람이 약합니다. 그런 마음이 없는 소수자를 빼고는 누구나 로맨스를 꿈꾸면서 살아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우리나라만 보아서 이 산업이 너무 발전을 하고 있는 것을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누가 거부할 수 있습니까?

서로가 마음이 동해서 아무도 모르게 사랑을 하고 싶은데 그것을 거부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다윗이 있습니다. 그는 그 당시 패권국의 왕이었습니다. 자기가 얼마든지 마음만 먹으면 예쁜 여자를 취할 수도 있는데 그런 왕도 간음을 한 것을 성경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인생이 그렇습니다.

여자가 없어서 간음을 했겠습니까? 다윗의 주변에는 늘 여자가 있었지만 그는 자기에게 가장 충성을 하는 신하의 부인과 간음을 함으로서 그로 인하여 탄생된 아이가 죽고 또 그것으로 인하여 자기 처들이 백주에 자기 아들 압살롬에게 강제로 욕을 보이게 됩니다. 사람이 배가 부르면 그 다음에 생각이 나는 것이 성욕이라고 하며 그것으로 인하여 이 세상이 없어지는 그날까지 이 문제는 늘 사회에 영향을 주게 됩니다.

 

가정이 깨집니다.

배우자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있는 상태에서는 그것이 한 번의 불장난이라 해도 같이 살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가정이 깨지는 것을 싫어 하셨고 그것 때문에 간음에 대해서 가혹하게 율법을 통해 처벌을 했다고 보아야 합니다. 이 가정은 우리 인생의 가정도 중요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 성도와의 관계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적인 간음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설령 자기가 그것을 이기지 못해서 간음을 했다 해도 그것이 구원을 받는데 있어서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영적인 간음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생명을 잃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남자를 사랑하는 신부는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고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의 진노를 사게 된다는 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율법이 간음에 대해서 어떻게 하는 가를 먼저 찾아보겠습니다.

 

레위기 20:10절을 보면

누구든지 남의 아내와 간음하는 자 곧 그 이웃의 아내와 간음하는 자는 그 간부와 음부를 반드시 죽일지니라

 

율법입니다.

간음한 자는 간부와 음부를 반드시 죽이라고 율법에 정해져 있습니다. 지금도 아랍 민족들은 간음한 자들을 땅에 구덩이를 파 놓고 그 안에 몸을 파묻어 놓고 머리만 나오게 하고 마을 공동체 사람들이 간음한 사람을 돌로 쳐서 죽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코란에 나와 있는 율법대로 그대로 시행을 하고 있습니다.

 

끔찍합니다.

그만큼 율법은 인정사정을 보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은 법에 있는 그대로 시행을 하고 있습니다. 나라 법도 없고 그들은 자기들의 종교에 따라 율법을 그대로 시행을 하고 있습니다. 그 코란이라는 것이 바로 우리가 보고 있는 모세오경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바로 율법이 이렇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율법에 빠져 있는 사람들의 사상이 이렇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자기가 지키고 있는 율법을 모든 사람이 똑같이 지키기를 원하고 있고 만약에 그것을 지키지 않으면 그들은 분노를 표출하고 있습니다. 율법은 이렇게 결국 사람들에게 진노를 가져다주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나는 했습니다.

그것이 그냥 한 것이 아닙니다. 자기도 그렇게 하고 싶었지만 그것을 끝까지 이기고 했는데 저 사람이 그것을 이기지 못했을 때는 자기가 한 수고가 무색해 지기 때문에 그것이 너무 분한 것입니다. 율법의 기능 중에 하나라는 것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참지를 못합니다.

반드시 죽이게 되어 있습니다. 더구나 나는 그 율법을 지키기 위해서 정말 수고를 했는데 내가 볼 때 저 사람은 수고도 해 보지도 않고 자기 마음에 따라 움직인 것이 너무도 화가 나는 것입니다(4:5). 자기만큼 수고를 하면 분명히 안 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하기 때문에 율법은 그렇게 분노를 가져다주고 율법에 기록된 대로 돌로 쳐 죽이고 있습니다.


간음은 가혹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히 이 간음에 대해서 이렇게 가혹할 정도로 말씀을 하고 있는 그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결코 우리 육적인 문제 때문이 아니라 영적인 문제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이 간음에 대해서 특별히 더 율법을 통해서 당신의 마음을 나타내고 있다고 보면 맞습니다.

 

반드시 죽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간음을 한 자를 반드시 죽이지를 않았습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다윗입니다. 다윗은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와 간음을 했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죽이지 않았습니다. 율법으로는 분명히 죽여야 하는 죄를 지었지만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그 죄를 용서를 빌기도 전에 용서를 해 주시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하셨는가를 보겠습니다.

요한복음 8:3-4절을 보면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간음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이 여자를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간음을 하다 현장에서 잡혀온 여자를 끌고 예수님 앞에 왔습니다. 그들이 왜 이 여자를 잡아 왔는가를 먼저 깨달아야 합니다. 이미 예수님께서는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안식일을 가볍게 여기고 있고 또 율법의 규례들을 지키지 않고 있는 것을 보면서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서 이 여자를 잡아 왔습니다.

 

예수님께서 죄를 지었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그토록 율법에 메여 있는 것을 깨버리시기 위해서 그런 것을 보여 주셨지만 이스라엘은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율법으로 인하여 정말로 화가 나 있었습니다. 자기들이 생명을 걸고 지키고 있는 율법을 예수님께서 너무 하찮게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에 화가 나 있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시험하기 위해서입니다.


율법대로 하면 이 여자를 반드시 돌로 쳐 죽여야 합니다. 과연 예수님께서 이 여자를 돌로 쳐 죽이는 가를 보고 싶었습니다. 돌로 쳐 죽여야 율법을 지킨다고 할 수 있는데 만약에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것으로 예수님을 정죄를 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율법입니다.

더구나 이 율법은 하나님과 이스라엘간의 언약입니다 만약 이 율법을 어긴다면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으로부터 온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혀온 여자를 끌고 와서 시험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8:10-11절을 보면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소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라

 

율법으로 고소했습니다.

율법은 이렇게 우리 인생들을 고소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도들이 반드시 기억하고 있어야 하는 것은 내가 지키고 있는 단 한가지의 율법이 살아 있으면 모든 율법은 살아나서 이렇게 나를 고소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만약 고소를 해서 율법대로 하면 반드시 죽어야 한다는 것도 또한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자 이 여자를 잡아 왔던 사람들이 하나 둘씩 다 물러가고 이 여자만 남았는데 예수님께서 이 여자에게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겠다고 하시면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고 하시고 이 여자를 살려 주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율법대로 하면 이 여자는 반드시 돌로 쳐 죽여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율법대로 안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율법대로 하기를 바라고 이 여자를 끌고 왔지만 예수님께서는 율법대로 하시지 않고 이 여자를 살려 주셨습니다. 분명히 율법대로 하면 죽어야 하는 여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심으로 이 율법을 폐하실 것을 아시고 이 여자를 정죄하지 않았습니다. 또 예수님 스스로 이 세상 모든 죄를 지고 가실 것을 아시고 그렇게 하셨습니다.

 

왜 정죄를 안 하셨습니까?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이 세상 죄를 지고 가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 때문에 이 세상에 오셨는데 예수님께서 율법대로 처리를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자기 육체로 율법을 폐하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리고 죄를 진 우리 인생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율법은 그림자입니다.

이제 그것은 폐해졌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간음한 여자를 통해서도 율법이 폐해질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이 율법에 매여 있는 사람이 있고 또 십계명이 살아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만약 십계명이 살아 있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예수님을 정죄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살아 있으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반드시 이 여자를 돌로 쳐 죽여여 합니다. 율법에 기록한 대로 이 여자는 돌로 쳐 죽어야 마땅합니다. 십계명이 살아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예수님이 잘못되었다고 주장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은 일관성이 있어야 합니다.

내가 십계명이 살아 있다고 하려면 바리새인과 서기관과 같이 이 여자를 돌로 쳐 죽이기 위해서 끌고 와야 합니다. 그리고 이 시대 혹시라도 주변에 간음한 사람이 있다면 그를 끌어다가 교회가 정죄를 해서 돌로 쳐 죽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하지도 못하고 있으면서 살아 있다고 하는 것은 한 마디로 우리 집에 금 두꺼비가 있다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제가 간음을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비록 이 세상에서도 간통이라는 죄가 이제는 사라지고 있지만 그럴지라도 도덕적으로 비난을 받는 것은 너무도 당연합니다. 또한 형사 재판은 받지 않을지라도 민사 재판이 있어서 반드시 보상을 해야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폐했습니다.

그럼 이것으로 더 이상 간음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이 모든 율법은 영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림자를 걷어 내고 실체를 보아야 합니다. 육적인 간음이 아니라 영적인 간음을 생각해야 합니다. 또 반드시 이 영적인 간음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닫고 성경에서 이 영적인 간음을 한 자를 어떻게 하는가를 바로 깨달아야 내 영혼을 보존할 수 있습니다.

 

호세아 1:2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비로소 호세아로 말씀하시니라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음란한 아내를 취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 이 나라가 여호와를 떠나 크게 행음함이니라

 

이스라엘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나라가 여호와를 떠나 크게 음행을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난 것을 가르쳐서 음행을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다른 우상을 섬기고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음행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것이 음행입니다.

이스라엘에 하나님을 떠났습니까? 그들은 한 번도 하나님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얼마나 하나님을 잘 섬겼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영을 생각하지 않고 육을 생각하다가 자기들이 하나님을 떠나 있는 줄을 전혀 깨닫지를 못했습니다. 지금 이 시대도 육에 빠져 있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간음을 하고 있으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누가 간음을 합니까?

이 세상 사람들입니까? 그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영적으로 간음을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그들은 육의 것을 추구하고 있고 그것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이런 그들의 행위가 바로 행음을 하고 있다는 것을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호세아를 통해서 그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호세아 2:2절을 보면

너희 어미와 쟁론하고 쟁론하라 저는 내 아내가 아니요 나는 저의 남편이 아니라 저로 그 얼굴에서 음란을 제하게 하고 그 유방 사이에서 음행을 제하게 하라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관계입니다.

아내와 남편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얼굴에는 음란이 있고 그들의 유방 사이에는 음행이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얼마나 음행이 심했는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러나 이상하게도 이스라엘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언제 음행을 했느냐고 오히려 하나님께 되묻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의 음행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이 시대도 음행을 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아니 자기들이 하고 있는 음행을 아주 잘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오히려 더 음행에 열심을 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시대는 음행이 무엇인가를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마치 이스라엘이 그랬던 것 같이 역시 음행을 하면서도 자기들의 행위를 모르고 있습니다.


호세아 2:8절을 보면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은 내가 저에게 준 것이요 저희가 바알을 위하여 쓴 은과 금도 내가 저에게 더하여 준 것이어늘 저가 알지 못하도다

 

저가 알지 못하도다

이스라엘은 자기들이 행음을 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바알을 위해 쓴 금과 은이 하나님께서 주신 것인데 이들이 알지 못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바알을 대 놓고 섬겼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육적인 풍요를 바라고 그것을 위해 하나님께 제사를 한 것이 바로 바알에게 한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자기들의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을 하나님께서 주셨는데 이들은 하나님께 제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바알을 위해서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실제 바알을 위해서 했다는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서 제사를 하고 하는 그 모든 율법의 행위가 바알에게 제사를 하는 것이었다는 말씀입니다.

 

이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에 나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하나님을 부르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바알에게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의 제사입니다.

그들은 분명히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왜 그렇게 제사를 드렸는가 하면 육적으로 풍요를 누리기 위해서 육적으로 잘 되기 위해서 그렇게 제사를 드렸다는 말씀입니다. 지금 이 시대 교회 안에 이런 음행이 얼마나 많이 있는 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자기 육체를 위해서 하나님께 예배를 하는 것은 모두 바알에게 제사를 하는 것이고 그것은 영적으로 간음을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영적으로 간음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자기들이 하고 있는 것이 간음이라고 절대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것은 하나님께 너무도 지극 정성으로 제사를 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누가 보아도 하나님을 잘 섬기고 있는 그 행위들이 다 간음이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이 시대도 하나님을 위해서 하고 있는 그 행위들이 다 간음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위해서 하고 있다고 하고 있고 그렇게 교회에서 가르치고 있는 그것들이 내 이성으로 볼 때 정말 하나님을 잘 섬기고 있는 그런 행위들이 다 영적으로 간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영의 일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육을 쫓아갔습니다. 그것이 바로 행음을 한 것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도 역시 육을 쫓아가면서 이스라엘보다 더 행음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아주 대 놓고 두 남편을 섬기고 있습니다. 그래도 이스라엘은 한 남편을 섬기기라도 했지만 이 시대는 두 남편을 섬기는 일을 아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성도는 신부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남편입니다. 신부는 당연히 자기 남편만을 생각해야 하는데 이 시대는 다른 남편을 섬기고 있으면서도 자기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라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간음을 하고 있으면서도 자기가 간음을 하고 있다는 것을 도무지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7:1-2절을 보면

형제들아 내가 법 아는 자들에게 말하노니 너희는 율법이 사람의 살 동안만 그를 주관하는 줄 알지 못하느냐 남편 있는 여인이 그 남편 생전에는 법으로 그에게 매인 바 되나 만일 그 남편이 죽으면 남편의 법에서 벗어났느니라


기독교인들이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가 생명을 얻는데 두 가지 방법이 있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 전에는 이 세상 모든 사람은 의롭고 선하게 살아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안 믿고를 떠나 사람들의 생각은 의롭고 선하게 살면 자기들이 이야기 하는 극락이든지 천국이든지 갈 수 있다고 말 합니다.

 

이것이 전 남편입니다.

이제까지 이 세상 사람들이 천국에 가는 방법을 그렇게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사도바울이 전 남편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율법을 잘 지켜서 천국에 들어가는 것을 전 남편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철저하게 율법주의에 빠졌고 율법을 어긴 죄인은 절대로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율법을 왜 지킵니까?

하나님을 믿는 성도로 의롭게 살기 위해서요? 그것은 거짓말입니다. 사람들의 마음에는 내가 이렇게 율법을 잘 지키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생각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자기는 예수를 믿어서 천국에 간다고 입으로는 그렇게 말하고 있어도 하지만 그 마음에는 율법을 잘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사로잡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모든 사람이 이렇게 법에 매여 있습니다.

율법이라는 전 남편의 법에 매여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천국에 가기 위해서 율법이라는 전 남편을 섬기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남편을 보면서 자기의 행위의 옷이 좋으면 그 남편이 자기를 천국으로 인도해 줄 것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에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려고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을 누구도 숨길 수 없습니다.

 

그 남편이 죽었습니다.

어떻게 죽었는가를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지만 사람들은 성경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이전에 내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전 남편이 죽었다는 것을 부정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아직도 전 남편을 잊지를 못하고 있고 그 남편이 자기 눈에 보이기 때문입니다.

 

골로새서 2:14절을 보면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죽었습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께서 천국에 갈 수 있는 다른 남편을 완전하게 죽이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믿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기본이 되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 말씀을 흔들어 버리면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율법이 어떻게 되었는가 하는 기초가 바로 이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전 남편입니다.

율법은 우리가 천국에 가는 전 남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남편으로는 아무도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을 또한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기들의 눈에 보이는 전 남편이 너무 좋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아직도 전 남편에 의지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로마서 7:3절을 보면

그러므로 만일 그 남편 생전에 다른 남자에게 가면 음부라 이르되 남편이 죽으면 그 법에서 자유케 되나니 다른 남자에게 갈찌라도 음부가 되지 아니하느니라

 

전 남편이 죽었습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새 남편이 되셨습니다. 우리 인생들은 전 남편에게 매여 있다가 이제 새 남편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전 남편을 십자가에 못 박음으로 해서 우리는 새 남편에게 시집을 갔습니다. 그러나 이 두 남편을 다 섬기면 음부가 된다고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율법

예수 그리스도 이 둘을 다 섬기고 있다면 그는 음부입니다. 간음을 하고 있는 여자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얼마나 음행을 하고 있습니까? 율법의 전 남편을 얼마나 많이 섬기고 있습니까? 남편이 있는데 다른 남편을 섬기고 있다면 그는 간음한 여자입니다.

 

야고보서 4:4절을 보면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는 것이니라

 

세상이 무엇입니까?

교회도 이 세상이라는 것을 깨닫기 바랍니다. 영의 일을 가지고 육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세상입니다. 교회 안에서 자기를 나타내고자 하는 모든 행위가 다 간음을 하는 행위라는 것을 야고보가 말씀을 해 주고 있습니다.

 

간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보고 영의 일을 육의 일로 행하고 있는 그 모든 행위들이 다 간음입니다. 이 세상 사람이 간음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간음을 하고 말 것도 없습니다. 교회에 나와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이제 새 남편에게 시집을 와 있으면서도 아직도 전 남편을 더 좋아하고 있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교회도 세상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이 모든 것이 세상에서 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하늘의 것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해서 믿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을 사랑하면서 간음을 하고 있으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 2:24절을 보면

너는 광야에 익숙한 들암나귀가 그 성욕이 동하므로 헐떡거림 같았도다 그 성욕의 때에 누가 그것을 막으리요 그것을 찾는 자들이 수고치 아니하고 그것의 달에 만나리라

 

그 성욕이 동하므로 헐떡거림 같다고 말씀합니다.

동물이 그 성욕이 동하면 죽음을 불사하고 싸우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자기가 죽는 것을 모르고 간음을 행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행하고 있는 그 간음을 어느 누구도 막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실제 지금 이 시대도 이렇게 간음을 하게 해 달라고 눈물을 흘리면서 기도를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막지를 못 합니다.

한번 율법주의에 빠지면 세상을 사랑하면 그것을 어느 누구도 막지를 못 합니다 마치 들 암나귀가 그 성욕을 주체하지 못하는 것 같이 이 시대 교인들이 그렇게 교회 안에서 간음을 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한번 율법주의에 빠지기 시작을 하면 그것에서 헤어 나올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것이 사람의 눈에는 너무 좋게 보이고 또 자기가 자기고 있는 율법이 자기를 높아지게 만들고 있기 때문에 스스로 생각해도 대견하고 또 사람들이 그것을 칭찬하다 보니까 사람의 정신이 혼미해져서 그것에서 벗어날 수 없고 오히려 그것을 하고 싶어서 견디지를 못합니다.

 

동물의 성욕보다 더 합니다.

실제 이 시대도 교회 안에서 이렇게 간음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만을 믿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의 이성에 따라 선하고 의롭게 살기 위해서 교회 안에서 여러 가지 율법을 지키고 있고 그것을 보면서 스스로 구원을 받았다고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간음을 하는 자기 행위를 더 잘하게 해 달라고 눈물을 흘리면서 기도를 하고 있는 것이 이 시대 교인들의 모습이라는 것을 깨닫기 바랍니다.


히브리서 13:4절을 보면

모든 사람은 혼인을 귀히 여기고 침소를 더럽히지 않게 하라 음행하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라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남편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침소를 더럽게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을 믿는 것이 아니라 율법이라는 전 남편을 너무도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간음을 하느라 침소를 더럽게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침소를 더럽게 하는 간음하는 여자들을 하나님께서 반드시 심판을 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적인 간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의가 가려지고 있는 교회 안에서 있는 율법의 의 그리고 은사들이 영적인 간음이 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 간음을 모르고 있다면 그는 평생 교회 안에서 간음만 하다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 반드시 심판을 받게 됩니다.

 

요한계시록 21:8절을 보면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간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육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영의 말씀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내게서 율법의 한 모양이라도 나타나고 있고 또 은사가 너무 빛이 나고 있다면 그것이 간음입니다. 또 다른 구원의 방법을 찾고 있다면 그는 간음하는 여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간음을 하고 있는 교인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반드시 간음을 하는 자들을 심판하시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늘 깨어 지혜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바로 알아야 내가 지금 간음을 하고 있는지 예수를 바르게 믿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받기 바랍니다. 정결한 신부는 오직 한 남편을 의지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성도가 되어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천국에서 모든 축복을 누리는 성도가 되시기를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