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1:3.)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5)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로마서 강해(오직 믿음)

82-1, 성령 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하노니

윤주만목사 2024. 12. 28. 10:25

로마서9:1-2절을 보겠습니다. (251)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내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하노니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사도바울은 로마서8장을 통해서 영의 일에 대해서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게 아주 자세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의 일이기 때문에 그 어느 누구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체가 아닙니다.

우리는 물론 육체로 살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육체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하실 때 함께 죽었다는 것을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고 말씀을 하니까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자기 육체와 영혼을 혼합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합니까?

자기들의 육체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을 보이고자 하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고 특히 자기들이 원하는 기도를 하고 나서 그것에 대해서 응답을 받은 것을 이야기를 하면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어느 누구도 끊지 못해서 응답을 받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육체는 죽었습니다.

성경에서 육체가 죽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으면 죽어야 합니다. 죽지 않고 살아서 그 육체로 무엇인가를 하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사망의 길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도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육체의 일에 모두가 빠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에서 왜 끊을 수 없습니까?

그것이 영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말씀 그대로 우리 안에 탄생이 되어 있는 하나님의 영이기 때문에 그 어느 것도 그것을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끊을 수 없는가 하면 그 영을 악한 자가 만지지도 못하게 하나님께서 영으로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영을 모릅니다.

자기 육체를 악한 자가 만지지도 못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 육체는 악한 자가 만지고 말 것이 없이 이미 죽었습니다. 악한 자의 의해서 이미 저주를 받아 죽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또 다시 악한 자가 만질까봐서 하나님께서는 악한 자가 만질 수 있는 아담의 씨가 아니라 영으로 하시고 있습니다.

그것을 시편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환난 날에 나를 그 초막 속에 비밀히 지키시고 그 장막 은밀한 곳에 나를 숨기시며 바위 위에 높이 두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우리를 그 초막 속에 비밀히 지키시고 있습니다. 또 그 장막 은밀한 곳에 우리를 숨겨 두심으로 악한 자가 우리를 찾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영입니다

만약에 또 아담의 씨와 같은 것으로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면 또 악한 자가 우리를 만져서 우리가 사망의 길로 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 주셔서 십자가를 지게 하시고 삼일 만에 영으로 부활하게 하심으로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 주셔서 영으로 난 자가 되게 해 주셨습니다.

아담으로 많은 사람이 세상에 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많은 영들이 탄생이 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 영이 어떻게 탄생이 되는가 하면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 주셔서 우리가 성경을 볼 때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깨닫게 함으로 해서 우리에게 영의 생명이 탄생이 되고 있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악한 자가 만지지도 못하는 그런 영으로 생명을 주시고 있습니다. 만약에 그 영이 아니라면 우리는 또 사단에게 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영이라는 신비로운 것으로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고 있습니다.

칼뱅주의에서 성도의 견인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알미니안 주의에서는 이 성도의 견인에 대해서 부정하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어떻습니까? 물론 칼뱅주의가 더 설득력이 있다고 모두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칼뱅주의를 가르치고 있는 신학교에서도 이 성도의 견인에 대해서 아주 애매모호하게 가르치다 보니까 알미니안 주의의 반박에 대해서 명확하게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칼뱅주의가 맞습니까?

저는 칼뱅의 오대 강령이 맞는다고 한때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편지를 예전부터 보셨던 분들은 알고 있지만 아카데미 강의 앞에 설명에 칼뱅의 오대 강령을 기초로 해서 성경을 해석한다고 했지만 사이트를 개편하면서 그것을 다 지워버렸습니다.

왜 지웠다고 생각합니까?

성도의 견인에 대한 주체가 아주 모호하게 설명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칼뱅주의 자체가 신체의 부활을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성도의 견인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신체의 부활이냐 영의 부활이냐를 먼저 알아야 성도의 견인에 대해서 말을 할 수 있습니다.

칼뱅주의입니다.

개혁주의 교회에서만 이 성도의 견인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로마서에 있는 말씀을 근거로 해서 하나님의 사랑에서 아무도 끊을 수 없다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칼뱅주의의 성도의 견인도 그 주체를 명확하게 설명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신체의 견인이냐 영의 견인이냐는 너무도 중요한데 그것에 대해서 명확하게 말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성도의 견인입니까?

어느 것도 예수 그리스도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없습니까? 그러나 칼뱅주의에서 말하고 있는 성도의 견인은 신체의 견인에 더 가깝다고 보아야 합니다. 아주 미묘한 부분이지만 영의 일을 명확하게 하지 않으면 이 성도의 견인이라는 칼뱅주의의 교리도 사람을 미혹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그가 지금 우리 신체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어느 누구도 끊을 수 없다는 말씀은 우리 신체가 아니라 우리 안에 탄생이 되어 있는 악한 자가 만지지도 못하는 하나님의 영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칼뱅주의의 성도의 견인도 잘못된 교리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신체가 아닙니다.

우리 안에 탄생이 되어 있는 그리스도의 영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영의 비밀을 알고 있는 성도는 굳이 성도의 견인을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우리를, 아니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탄생이 되어 있는 영을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는 것을 믿을 수 있습니다.

칼뱅주의의 오대 강령입니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알미니안 주의는 말을 할 필요성도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성경에 근접한 것이 칼뱅주의의 성도의 견인인데 알미니안 주의는 아예 그 자체도 부정하고 있는 사람들인데 그들이 어떻게 이 영의 일을 알 수 있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탄생이 되어 있는 영을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이 영을 하나님께서 끝까지 견고케 하신다는 말씀이지 우리 신체가 아닙니다. 칼뱅주의 역시 신체의 부활을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그들이 말하고 있는 성도의 견인이라는 것도 실상은 잘못된 교리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단입니다

성경을 아주 애매모호하게 풀어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에덴에서도 하와를 미혹할 때 하나님의 말씀을 아주 약간만 틀어서 이야기를 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거기에 모든 사람이 다 미혹을 당하고 있다고 보면 맞습니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내 양심이 성령을 힘입어서 이것을 증언하여 줍니다. 나에게는 큰 슬픔이 있고, 내 마음에는 끊임없는 고통이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성경에서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모든 것이 다 성경에서 기초를 세워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먼저 신학이라는 곳에서 기초를 세우고 나서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성도의 견인을 주장할 수밖에 없고 그 신체가 부활을 한다는 것을 주장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복음입니다

사실 사람의 이성으로 이것을 이해하고 깨닫는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먼저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사람의 육체의 행위로 나타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보니까 거짓을 말을 하는지 참을 말하는지를 도무지 모르게 되어 있습니다.

이 시대 기독교인입니다

아마 설교를 듣는 아니 성경을 배우는 자기들도 무엇을 배우는지를 모르고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여기서는 이 말을 하고 있고 저기서는 저 말을 하고 있고 도무지 어느 것이 맞는 말인가를 알 수 없고 어느 말씀이 기초가 되는가도 알 수 없어서 아주 혼미한 상태에서 성경을 보고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8장을 통해서 영의 일을 말씀을 하니까 사람들이 이 말씀을 이성으로 본다고 해도 깨달을 수 없습니다. 아니 이해를 한다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참입니다.

그리고 거짓입니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참과 거짓을 어느 누가 사람의 이성으로 깨달을 수 있습니까? 이 시대 역시 모두가 거짓말에 속고 있으면서도 어느 누구도 그것이 거짓이라는 것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참이 무엇이고 거짓이 무엇인가를 인가를 모르고 막연하게 성경을 이야기를 하면 참이고 세상에서 하는 주장은 거짓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일서5:20절을 보겠습니다. (394)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

참이 무엇입니까?

이 시대는 참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저 막연하게 자기들이 교회 안에 있으면 그리고 그 안에서 성경을 문자적으로 설교를 듣고 있으면 그리고 그 안에서 예배를 드리고, 찬송가를 부르고, 기도를 하면 참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유일하신 참 하나님입니다.

영생에 대해서 말씀을 하면서 하나님이 참 하나님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참입니다. 그리고 우리 인생은 거짓이라는 것을 먼저 알고 있어야 합니다. 물론 사단이 거짓의 아비가 되어서 미혹을 당하고 있기 때문에 사람이 하고 있는 모든 말과 행위가 거짓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주님이 오셔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것은 참된 자를 알게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이 참 되신 분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셨습니다.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이 참 되신 분이라는 말씀입니다.

유일하신 참 하나님입니다.

참이라는 말씀은 진리를 말씀하기도 하고 진실을 말씀하기도 합니다. 다 같은 말씀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참이냐, 진리냐, 진실이냐 등은 다 같은 말씀입니다. 사도 요한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참된 자를 알게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지각을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 주심으로 우리가 참된 자를 알 수 있게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성경에 문자로 기록이 되어 있는 말씀을 보고 아는 것으로 자기들이 하나님을 알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또 심지어는 히브리어로 하나님이라고 하는 단어를 아는 것으로 하나님을 알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말하는 그런 참이 아닙니다. 참을 말씀할 때는 생명과 연결이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생명이 없다면 그가 아무리 참이라고 해도 그것은 거짓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사도 바울이 왜 내가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는가 하면 이제까지 영의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했기 때문입니다.

참된 자를 알고 있습니까?

이 시대 과연 참된 자를 알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호세아서를 보아서 알겠지만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이 시대 교인들보다 하나님을 몰라서 호세아 선지자를 통해서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성경은 현재진행형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모르고 제사와 번제만 드렸습니까? 그럼 이 시대 역시 하나님을 몰라서 제사와 번제만 드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을 보는 사람들의 생각이 참으로 악 합니다. 이스라엘은 그렇게 했어도 자기들은 하나님을 아주 잘 알고 있고 잘 믿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호세아서입니다

그것을 이스라엘만 보는 성경입니까? 이 시대 역시 우리가 호세아서를 보고 있다면 우리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솔직히 호세아서의 말씀 그대로 이 시대 역시 인애를 원하지도 않고 제사와 번제를 드리는 일에 모두가 깊이 빠져서 헤어 나오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참은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아는 것보다 제사와 번제를 드리는 일에 열심을 냈습니다. 이 시대 역시 하나님을 아는 것보다는 자기들이 드리고 있는 예배와 그리고 찬송과 기도와 헌금을 하는 일에 빠져서 그런 행위를 보고 하나님을 아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안다면 절대로 그러한 일을 하지 않습니다.

제사를 모릅니까?

사람의 육체로 교회 안에서 하고 있는 보이는 모든 행위가 다 제사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배를 드리는 것, 찬송가를 부르는 것, 기도를 하는 것, 헌금을 하는 것, 절기를 지키는 것 등 교회 안에서 하고 있는 모든 행위가 다 제사입니다. 이 시대는 참된 말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런 거짓에 모두가 미혹을 당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하니까 자기들이 교회 안에 나와서 주여 주여 하면서 주님을 찾고 예배를 하는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입니다

그것은 내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탄생이 되어 있는 역사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내가 너희 안에 너희가 내 안에 있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그 의미를 모르고 교회에 나와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행위를 하는 것으로 참된 자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아닙니다.

우리가 육체로 아무리 교회 안에 있어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려면 반드시 주님이 내 안에 내가 주님 안에 있어야 합니다. 사도 요한이 우리가 참된 자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은 내가 참을 말하고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참된 자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합니다.

그 말씀은 주님의 영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있다는 말씀이 포함이 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참된 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우리 안에 거하실 수 있는가 하면 성령이 오시면 그가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를 하셔서 그렇게 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 분이 유일하신 참 하나님입니다. 사도 요한도 그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참된 자라고 하고 있고 또 예수 그리스도를 참된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라는 것을 믿어야 하고 또 그 참된 자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성령이 우리를 참된 것을 말하게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6:55절을 보겠습니다. (154)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사도 바울은 내가 참말을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에 있는 문자를 보면서 그것을 전한다고 해서 그것이 참말이라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의 문자는 참이라고 하기보다는 거짓이 더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거짓이 많은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문자로 보고 거짓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참으로 어리석습니다.

성경을 전하면 다 참말을 하는 줄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하면 그가 참 선지자인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성경을 안 전했습니까? 그들이 성경 외에 있는 것을 가지고 이야기를 했습니까?

성경입니다

그들은 성경에서 벗어난다는 것을 생각하지도 못 했습니다. 모든 것을 다 성경에 기준으로 해서 성경에 있는 말씀을 가지고 이야기를 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대적할 때도 그들은 성경을 가지고 이야기를 했지만 거짓의 아비 마귀에게 미혹을 당해서 성경을 문자 그대로 보면서 말을 했습니다.

내 살은 참된 양식입니다

이스라엘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하늘에서 내려주는 만나를 먹고도 광야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은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내려 주시는 만나를 먹고도 광야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왜 죽고 말았는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몰랐기 때문입니다.

성막을 짓게 하셨습니다.

자기들의 손으로 직접 성막을 진 그들이 성막이 무엇이라는 것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이 시대 성막에 대해서 바로 알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솔직히 성막에 대해서 바로 알고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주님의 살을 먹을 수 있습니까?

사도 바울이 참말을 했습니다.

그가 로마서를 쓰고 많은 성경을 쓴 것이 참말입니까? 그것이 아니라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만 전했습니다. 그래서 로마서를 시작하면서부터 복음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왜 로마서를 시작하면서부터 복음을 말씀하고 있는가 하면 그가 하고 있는 말씀이 참말이라는 것을 증거를 해 주고 있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합니까?

그것을 참말이라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누가 오직 예수를 안 전하고 있습니까? 이스라엘 역시도 자기들이 유일하신 하나님을 믿고 있다고 했지만 그들은 참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 시대는 성막을 전하는 것 하나만 보아도 그들이 오직 예수가 아니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내 살은 참된 양식입니다

이 시대 목사들이 성경에서 이 참된 양식을 찾아서 먹이고 있습니까? 그들이 참말을 하고 있습니까?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자들이 아니라 율법을 전하는 자라는 것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기들이 참말을 듣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성경이 이해가 안 됩니까? 누구 살입니까? 누구 음료입니까? 성경은 두 가지 양식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양식이 됩니다. 또 다른 하나는 율법이 양식이 되고 있습니다. 포도주도 마찬가지입니다, 율법이 포도주가 되기도 하고 있고 또 예수 그리스도의 언약이 포도주가 되기도 합니다.

어느 것입니까?

분명하게 전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참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거짓을 함께 전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참과 거짓이 합해지면 그것이 참이 되는 것이 아니라 거짓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참과 거짓을 함께 전하면 사람들이 참을 아는 것이 아니라 거짓을 알게 되어 있습니다.

오직 예수입니다

율법이 포함이 되지 않은 것을 오직 예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오직 예수라고 말은 하고 있지만 그 의미를 모르고 성경에 문자로 알고 있는 것을 그대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오직 예수가 아니라 예수와 율법이 혼합이 되어서 음행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참말을 하시기 바랍니다.

이제까지 사도 바울이 무엇을 말씀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율법을 지키지 않은 것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복음에는 율법을 지키지 않은 것이 전제가 된다는 것을 로마서7장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참말을 해야 합니다.

참말을 해도 그 안에는 거짓에 미혹을 당하는 자가 있습니다. 하물며 거짓을 말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거짓을 말하는 곳에서는 생명을 얻을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참말을 해도 그리스도의 영이 복음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거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고린도전서5:8절을 보겠습니다. (268)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도 말고 괴악하고 악독한 누룩도 말고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누룩 없는 떡으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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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 같은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은 내가 참말을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는 사람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아니 거의 만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이미 기독교라는 종교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그것을 기초로 해서 성경을 보고 있는 목사들에게서는 참말을 듣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사람들은 목사들을 너무 신뢰를 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그가 정통의 목사라면 더 합니다. 또 그가 인간적으로 지성을 갖추고 있고 인격을 갖추고 있으면 사람들은 거의 맹목적이 됩니다. 그가 또 미국에 가서 신학을 공부하고 박사 학위까지 받았다고 하면 더 이상 믿고 말 것이 없어집니다. 그가 말하는 것은 다 참이 됩니다.

그가 무슨 말을 합니까?

오직 예수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이 시대도 보면 율법주의 성향이 강한 사람일수록 오직 예수라는 말을 아주 잘하고 있습니다. 진리를 모르는 사람일수록 오직 예수라고 말을 합니다. 그 오직 예수라는 말 한 마디를 하는 것으로 마치 그가 참말을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오직 예수입니까?

이 시대 모든 목사들이 오직 예수를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과 같이 오직 예수를 전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오직 예수라고 말만 했지 실상은 그들의 설교에 온갖 누룩이 다 섞여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것을 고린도전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도 말고 괴악하고 악독한 누룩도 말고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누룩 없는 떡으로 하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 이방인들에게 누룩 없는 떡으로 하자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시대 목사들의 설교에서 누룩 없는 떡을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아니 없습니다.

누룩 없는 떡으로 하고 있는 목사가 있습니까? 이 시대 뿐 아니라 이제까지 교회사를 통해서 나타나고 있는 모든 교회는 다 누룩 있는 떡으로 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누룩이 없는 떡이 참말이 될 수 있는데 이 시대는 성경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누룩을 모릅니까?

이 정도의 비유도 모른다면 그는 차라리 예수 그리스도를 안 믿는 것이 그에게 더 유익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교회 안에는 축복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저주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저주를 생각하지 않고 있고 교회 안에 들어온 모든 사람은 축복을 받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적은 누룩이 온 덩이를 퍼지게 하고 있습니다.

아주 적은 누룩 하나가 온 덩이를 퍼지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도 말고 괴악하고 악독한 누룩도 말고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누룩 없는 떡으로 하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룩이 없는 떡으로 해야 합니다.

율법입니다

목사가 있습니까? 그가 참말을 하는지 거짓을 말하는지를 알 수 있는 가장 기초가 바로 이 누룩입니다. 그 다음에 영의 일을 생각해야지 이 누룩을 먹이고 있다면 그는 더 이상 논할 가치도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바리새인의 누룩입니다

그들이 어떤 누룩을 먹였습니까? 그들은 율법주의자입니다. 성경은 율법을 누룩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도 말고 괴악하고 악독한 누룩도 말고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누룩 없는 떡으로 하자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시대 목사들은 다 누룩이 있는 떡으로 하고 있습니다.

참말이 아닙니다.

누가 율법을 지키라고 했습니까? 어느 선지자가 우리에게 율법을 지키라고 했습니까? 물론 구약에서 문자적으로는 지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의미를 알면 그것이 율법을 지키라는 말씀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해서 율법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은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고 있는 성도입니다.

처음부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신체를 구원하시려고 한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셔서 그리스도의 영을 통해서 우리를 구원해 주시기로 만세 전부터 예정을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구원을 받게 예정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또 다시 율법을 지키라고 하겠느냐는 말씀입니다

누룩입니다

율법을 지키지 마시기 바랍니다. 묵은 누룩도 말고 괴악하고 악독한 누룩도 말고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누룩 없는 떡으로 하시기 바랍니다. 이 누룩 없는 떡이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라고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모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저 성경에 문자를 아는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살을 먹고 예수 그리스도의 언약을 아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성경을 그렇게 알 수 있다면 우리 사람의 이성으로 성경을 보고 알 수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 주실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 절에서도 성경을 해석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도울이라는 학자가 하는 이야기도 있지만 실제 절에서도 성경을 가르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것과 목사들이 말하는 것이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도리어 웬만한 목사들은 도울에게 상대로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다 누룩이 섞여 있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누룩이 섞여 있기 때문에 그 말이나 그 말이나 거의 다 비슷하게 들려지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어느 목사들은 도울이 요한복음 강해를 했는데 그것을 배우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이 시대 기독교 목사들의 한계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왜 그런가 하면 그들은 누룩 없는 떡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오직 예수라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저 자기들의 종교를 위해서 무지한 사람들에게 오직 예수라는 그 말한 마디를 하는 것으로 자기들이 참말을 하고 있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한다고 하니까 오직 예수라고 하면 아니 자기가 복음을 전한다고 하면 마치 참말을 전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시편31:6절을 보겠습니다. (823)

내가 허탄한 거짓을 숭상하는 자를 미워하고 여호와를 의지하나이다

야고보서2:20절을 보겠습니다. (373)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 알고자 하느냐

사도 바울입니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다고 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리고 또 다 참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도 거짓 선지자가 많이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참말과 거짓말을 분별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 이 참말과 거짓말을 분별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더구나 성경을 얼마 보지도 않고 신학도 공부를 하지 않은 사람이 먹고 사는 것과 치열하게 싸우다가 일주일 내내 보내고 일요일에 겨우 교회 한번 나와서 예배를 드리고 있는 사람은 다 거짓 선지자에게 속고 있다고 보면 맞습니다.

신학을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박사 학위까지 받았습니다. 그런데도 자기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참말을 하고 있는지를 스스로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것이 교회 안의 실상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 주시지 않으면 우리 사람이 보는 성경은 소경이 코끼리 다리를 만지는 것과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시편에서 다윗도 내가 허탄한 거짓을 숭상하는 자를 미워하고 여호와를 의지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있는 사람은 무엇이 허탄한 거짓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거짓말을 듣고 있는 그들이 참말을 듣고 있다고 하면서 그 교회 안에서 평생을 신앙생활 하다가 지옥에 간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허탄한 거짓입니다.

거짓이 허탄하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까? 시편을 보고 모든 사람은 다 자기가 허탄한 거짓을 숭상하는 자들을 미워한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게 말하고 있는 그들이 허탄한 거짓을 숭상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것을 주의 형제 야고보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 알고자 하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시편에서는 다윗이 허탄한 것을 숭상하는 자를 미워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시편의 다윗의 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시대 교회 안에서 허탄한 것을 숭상하는 자를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미워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허탄한 거짓을 숭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미워하시는데 그가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까? 성경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경계의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허탄한 것을 숭상하는 자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다윗을 통해서 미워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허탄한 것을 숭배를 합니까?

그것을 주의 형제 야고보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행함이 있는 믿음이 없는 사람을 허탄한 사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나쁜 의미로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은 이 시대 교회 안에서 절대 다수의 사람들이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누가 그렇게 합니까?

교회 안에 있는 다수가 허탄한 사람이라는 말씀입니다. 어느 한두 사람이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절대 다수에 속해 있는 바다 모래 같은 사람들이 다 허탄하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소경이 되어서 아무리 성경을 보아도 이 말씀이 누구에게 하고 있는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누가 허탄한 사람입니까?

행함이 있는 믿음이 없는 사람이 허탄한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주의 형제 야고보가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에게 보낸 서신입니다. 왜 이 서신을 보냈는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아직까지 유대인의 관습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는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제 행함이 있는 율법을 버리는 믿음을 보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를 보시기 바랍니다.

야고보서의 행함이 있는 믿음을 알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설령 이것이 율법을 버리는 행함이라는 것을 간혹 가다가 알고 있는 사람이 있다 해도 율법을 완전하게 버리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아니 행함이 있는 믿음이 율법을 버리는 믿음을 말씀하는 것인 줄도 모르고 도리어 율법을 지키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입니다

그것을 지키고 있는 흩어져 있는 유대인들에게 주의 형제 야고보가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이 말씀을 하고 있는가 하면 사도행전15장에서 사도 바울이 와서 율법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때 바리새파에 있던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도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을 하는 것을 보고 베드로와 야고보가 이방인들에게 율법의 짐을 지우는 것이 옳지 않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허탄한 거짓입니다

율법은 거짓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왜 거짓인가 하면 율법으로는 생명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거짓입니다. 사람들이 왜 율법이 거짓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모든 성경은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으로는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있는 육체가 없기 때문에 율법을 허탄한 거짓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next 8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