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1:3.)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5)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로마서 강해(오직 믿음)

81-2, 오른손으로 구원하소서

윤주만목사 2024. 12. 25. 10:00

시편60:5절을 보겠습니다. (845)

주의 사랑하시는 자를 건지시기 위하여 우리에게 응답하사 오른손으로 구원하소서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긴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 육체를 사랑하십니까? 그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탄생이 되어 있는 그리스도의 영을 사랑하십니다.

육체가 아닙니다.

이 시대는 자기 육체를 사랑하시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 육체를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사도 바울이 우리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영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라고 말씀을 하니까 마치 아담의 자손인 우리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탄생이 되어 있는 영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십니까?

성경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우리 육체는 썩어 없어진다고 성경은 분명히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썩어 없어지는 것을, 죄를 지어서 율법의 저주를 받은 것을 하나님께서 사랑하십니까?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런 말씀을 보고 자기 육체를 사랑하신다고 하면서 그 육체가 사랑을 받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영의 일입니다

육체의 일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그 육체로 사랑을 받으려고 하다가 저주를 받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점도 없고 흠도 없는 영광 그 자체이신 분입니다. 그런데 그 분이 우리 썩어 없어질 육체를 사랑하시겠습니까? 정말 성경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우리라고 하니까 아담의 자손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담의 자손인 우리는 하나님께서 사랑하시지 않습니다. 그것을 사랑하시는 것으로 오해를 하기 때문에 이 시대 기독교가 육체로 별의 별일을 다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누구를 사랑하시는 가를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로마서8장입니다.

사도 바울은 영의 일을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것을 육체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랑하시는 자에게서 그 육체가 많은 것을 받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율법으로, 그리고 재물로 부자가 되려고 하고 있습니다.

시편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의 사랑하시는 자를 건지시기 위하여 우리에게 응답하사 오른손으로 구원해 달라고 간구를 하고 있습니다. 주의 사랑하시는 자가 누군가 하면 우리 육체가 아니라 우리 안에 탄생이 되어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구원입니다

시편에서 육체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구약은 그림자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구약에서의 육체의 구원은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영의 구원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의 사랑하시는 자를 구원해 주시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너무 당연합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은 주님이 나를 사랑해 주셔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자를 이 시대도 구원을 해 주시고 있습니다. 내가 구원을 받고 싶다고 해서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자를 구원해 주시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우리를 사랑하시고 있습니다. 우리 아담의 씨를 사랑하신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탄생이 되어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을 사랑하시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는 육체와 그 정과 욕심을 이미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죽었습니다.

그 죽은 자를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우리 영을 사랑하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도 이 시대는 성경을 거의 다 육적으로 보고 있고 자기 육체가 사랑을 받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주의 사랑하시는 자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긴다는 말씀은 우리가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른 손으로 구원을 해 주십니다.

오른 편은 구원을 상징하는 편입니다.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긴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체를 보면 넉넉히 이기지를 못 합니다 그러나 영을 보는 성도는 넉넉히 이기고 있다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신명기15:7-8절을 보겠습니다. (286)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땅 어느 성읍에서든지 가난한 형제가 너와 함께 거하거든 그 가난한 형제에게 네 마음을 강퍅히 하지 말며 네 손을 움켜쥐지 말고 반드시 네 손을 그에게 펴서 그 요구하는 대로 쓸 것을 넉넉히 꾸어 주라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넉넉히 이깁니다.

복음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 목사들은 아무리 성경을 보아도 복음을 못 보고 있습니다. 복음을 보아야 믿을 수 있는데 모두가 소경이 되어서 성경을 아무리 많이 보아도 성경에서 복음이 안 보이고 있습니다.

늘 말씀드립니다.

성경을 수백 번 읽으면 뭐 합니까? 아니 자기 평생을 오직 하나님을 위해서 산다고 하면서 성경만 연구를 하면 뭐 합니까? 성경에서 복음이 안 보이고 있다면 그는 어리석은 자며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이제까지의 거의 모든 신학자들이 남겨 놓은 책들과 주석, 그리고 강해서를 보아도 복음을 알고 있는 사람이 없었던 것으로 보여 지고 있습니다.

왜 넉넉히 이기는 줄을 모릅니다.

로마서에서 사도 바울이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긴다고 하니까 무엇을 이기는 줄도 모르고 어떻게 이기는 줄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저 자기들의 종교가 부흥이 되고 더 많은 일을 하는 것을 보면서 넉넉히 이기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이스라엘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을 알아야 합니다.

특히 구약에서 비유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구약을 보면 뭐 합니까? 이런 율법을 보고 자기들이 지키려고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누가 지키는 가에 대해서 기초가 없다보니까 누가 가난한 자이고 누가 부자인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꾸어 줍니다,

자기가 재물이 조금 있다고 해서 그것을 꾸어 주는 것을 보면서 아니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는 행위를 하면서 이 율법을 보고 그래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노력하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을 받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생입니다

어떻게 영생을 얻을 수 있는가 하면 성경에서 복음을 보고 믿어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영생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성경을 보아도 다 소경이 되어서 문자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 문자가 사망으로 끌고 간다는 것을 모르고 문자를 알고 그것을 자기 육체로 행하는 것을 보고 구원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사도 바울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긴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느 말씀을 보고 사도 바울이 지금 이 말씀을 하고 있는가 하면 신명기의 말씀을 보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긴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가난합니다.

막연하게 가난하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가 가난하다고 해서 가난한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가난하다고 말씀할 때는 분명히 가난한 자가 누군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신명기의 율법은 이스라엘 백성 중에 가난한 자가 있으면 넉넉히 꾸어 주라고 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넉넉히 꾸어 주어야 합니다.

왜 넉넉히 꾸어 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게 하기 위해서 넉넉히 꾸어 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가난한 인생들이 구원을 받을 수 있게 넉넉히 꾸어 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주님으로부터 꿀 생각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는 가난한 자입니다

우리는 거지 나사로와 같이 가난합니다. 무엇으로 가난한가 하면 율법의 의로 가난하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인생은 율법에 비추어 보면 모두가 다 가난한 자입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율법을 지킴으로 해서 부자가 되어 있습니다.

가난합니다.

어느 정도로 가난한가 하면 거지와 같이 가난합니다. 우리는 구원을 받을 수 없을 정도로 가난합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으려면 반드시 주님으로부터 꾸어야 합니다. 그때 주님은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게 넉넉히 꾸어 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입니다

이 율법을 주님이 지키셨습니다. 주님은 이 세상사람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을 정도로 꾸어 주고도 남는 분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주님으로부터 넉넉히 꿀 생각을 하지 않고 자기들이 율법을 지킴으로 해서 부자가 되고 있습니다. 신명기에서 율법으로 이미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넉넉히 꾸어 주라고 정해 있지만 이 율법을 보고도 모릅니다.

넉넉히 이깁니다.

왜 넉넉히 이깁니까? 주님이 넉넉히 꾸어 주시기 때문에 우리가 넉넉히 이깁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이 세상에 오셔서 부요한 자로서 가난하게 되셨습니다. 그렇게 가난하게 되신 것은 우리를 부요하게 하기 위해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구하는 대로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요구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복음의 비밀을 알고 있는 성도는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을 만큼 꾸고 있습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넉넉히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게 꾸어 주시고 있고 그렇게 꾸어서 부요하게 된 성도는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넉넉히 이기고 있습니다.

로마서8:4절을 보겠습니다. (249)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구해야 합니다.

우리가 율법을 지켜서는 안 됩니다. 안 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저주를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안에 영이 탄생이 되는 역사는 주님께서 부요하신 자로서 우리에게 그 손을 펴서 꾸어 주심으로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졌다는 말씀입니다.

바로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율법의 요구를 이루지 못하면 반드시 죽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셨습니다. 어떻게 이루어지게 하셨는가 하면 주님은 부자로서 우리 가난한 자들에게 손을 펴서 넉넉히 꾸어 주심으로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셨고 또한 영이 탄생이 되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질 수 있습니까?

우리 육체는 반드시 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 있는 영은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루었습니다. 어떻게 이루었는가 하면 주님이 부자이신데 우리에게 꾸어 주셔서 우리가 부요하게 되어서 내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탄생이 되었고 그렇게 생명이 있는 성도는 넉넉히 이길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넉넉히 이깁니다.

우리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영은 율법을 완전히 지키신 이의 영입니다. 아무리 율법이 강하다 해도 율법을 다 지키면 저주를 내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율법을 다 이루심으로 말미암아 우리 안에 탄생이 되어 있는 영 또한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룬 자가 되어서 넉넉히 이긴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체입니다

절대로 율법을 지키지 못 합니다 그 육체는 반드시 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 거하시는 영입니다. 그 영은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루었습니다. 어떻게 이루었는가 하면 우리 가난한 자에게 주님께서 손을 펴서 꾸어 주심으로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루었다는 말씀입니다.

넉넉히 이깁니다.

우리는 반드시 집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넉넉히 이깁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있는 우리 성도는 넉넉히 이기게 되어 있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실 때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아버지를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고 말씀을 하시면서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이기셨습니다.

그 이기신 이의 영이 우리 안에 있습니다. 그런데 그 영이 질 수 있습니까? 구원에 대해서 반드시 이기게 되어 있습니다. 넉넉히 이기는 줄을 모르는 사람은 믿음이 없는 사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율법을 완전케 하셨다는 것을 믿는 성도는 넉넉히 이긴다는 것을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체는 집니다.

반드시 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긴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기는 것은 무엇이 이기는가 하면 우리의 영이 이긴다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자기 육체로 이기려 하다가 모두가 지고 있습니다.

요한일서54절을 보겠습니다. (393)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고린도전서15:57절을 보겠습니다. (284)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입니다

이 시대는 우리가 무엇에서 이겨야 하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영의 일에 있어서 이기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육체의 일을 이기려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영의 일을 이기라고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육체의 것을 벗어버리지를 못하고 그 육체를 이기려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넉넉히 아깁니다.

무엇에서 넉넉히 이깁니까?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입니다. 이 율법에서 넉넉히 이기게 해 주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이 우리에게 사망을 당하게 하고 있는데 그 율법에서 우리를 이기게 해 주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내가 율법을 지켜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율법을 완전케 하심으로 우리가 이긴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십계명을 보고 죄를 안 짓고 있습니까? 이 세상의 이성으로는 분명히 이기는 모습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율법을 지키는 사람은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모든 율법을 항상 다 지켜야 하는 의무가 있습니다. 그 의무에 비추어 보면 지금 지키고 있는 그 율법은 이기는 것이 아니라 실상은 지는 것임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이기는 것을 모릅니다.

이 시대 특히 자기들이 십계명을 지키는 것을 보면서 이기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하나님이 성령을 보내 주셔서 자기들이 십계명을 지킬 수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과 반대가 되는 말을 하고 있는데도 자기들이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입니다

죄를 깨달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십계명을 보면서 자기들이 성령을 받아서 지키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지키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실상은 하나도 지키지 못하고 있으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이긴다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내가 이기는 것이 아니라 이김을 주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기게 해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이김을 주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한글이 이해가 안 됩니까? 이기게 해 주시는 것이 아니라 이김을 주시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기신 것을 우리에게 주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물론 성경에 이기게 하신다는 말씀도 있지만 엄밀히 말씀을 하면 이김을 주시는 것이 더 맞습니다.

율법입니다

우리가 이길 수 있습니까? 아니 성령이 오셔서 우리가 이 율법을 온전하게 다 지킬 수 있습니까? 그럼 이김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이길 수 있게 역사를 해 주시고 있는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믿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넉넉히 이깁니다.

이것은 내가 이기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요한일서에서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넉넉히 이기는데 어떻게 이기는가 하면 믿음으로 이기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믿음을 하나님께서 주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넉넉히 이깁니다.

내가 이기는 것입니까? 그것이 아니라 우리의 이김은 믿음인데 이 믿음을 하나님이 주시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다고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넉넉히 이길 수 있는 믿음을 누가 주시는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주시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기셨습니다.

그 이긴 것을 성령을 보내 주셔서 믿게 역사를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모든 일이 영의 일입니다. 이 영이 우리 안에 있으면 우리가 넉넉히 이긴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이 있는 성도만이 넉넉히 이길 수 있는 믿음을 주시고 있습니다.

오직 믿음입니다.

이 모든 일을 믿어야 이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일이 무엇인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지피지기라 했습니다. 나를 알고 적을 알아야 이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일이 무엇을 말씀하는 줄도 모르는 사람들이 그저 성경에 문자로 기록이 되어 있는 말씀을 보고 우리가 넉넉히 이긴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믿음입니다.

영의 일을 믿을 수 있게 육의 일을 가지고 비유와 예표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성경을 거의 문자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치 돈키호테와 같이 아무 것에나 싸워서 이기려고 하고 있고 그런 육체의 싸움에서 이기는 자신을 보면서 하나님을 잘 믿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로마서8:38-39절을 보겠습니다. (251)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삶도, 천사들도, 권세자들도, 현재 일도, 장래 일도, 능력도, 높음도, 깊음도, 그 밖에 어떤 피조물도, 우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그가 어떠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가를 우리에게 너무 잘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모든 일에서 자기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믿음으로 넉넉히 이긴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역시 확신해야 합니다.

믿음입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닙니다. 성령이 오시지 않으면 이 모든 일에서 넉넉히 이긴다는 것을 믿고 싶어도 믿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 주셔서 성경에서 복음을 알아야 이 모든 일에서 넉넉히 이길 수 있습니다.

내가 확신하노니

로마서8장은 영의 깊은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영을 좇아 살아가고 있는 성도는 고난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육체적으로는 고난을 당하고 있는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위로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내가 확신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입니다

정말 이 확신이 없이는 전할 수 없습니다. 이 모든 일에서 넉넉히 이기는 확신이 없이는 복음을 전할 수 없습니다. 이 영의 일이 보이는 것이라면 사도 바울이 이렇게 말씀을 하겠습니까? 영의 일은 말씀 그대로 영의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의 이성입니다.

그것으로 이 영의 일을 이해할 수 있습니까? 사도 바울이 왜 내가 확신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지금 사도 바울은 보이지 않는 영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신 구속의 일이며 이 일을 믿음으로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영이 탄생이 되어서 아들의 형상으로 나타나게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믿습니까?

이 시대는 로마서8장 자체가 해석이 안 되고 있습니다. 아니 설령 그리스도편지를 통해서 이 로마서8장을 바로 말씀을 드려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아니 성령이 오시지 않아서 이 말씀을 보아도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는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이것이 영의 일입니다

사람의 이성으로는 이해가 안 되고 있습니다. 그런 영의 일을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확신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이성으로 이것이 이해가 될 것 같으면 사도 바울이 내가 확신한다는 말씀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막연하게 다수가 이야기를 하는 것을 따라 하면서 확신이라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다수를 따라 가는 것이지 확신이 아닙니다. 조금 전에 말씀을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 주셔서 구원을 받는 자가 얼마나 적다는 것을 말씀했습니다.

다수입니다.

이 시대 천만 명이 있습니다. 그들이 모두가 구원을 받을 것 같으면 사도 바울이 확신한다고 말씀할 필요가 없습니다. 구원을 받는 사람이 지극히 적기 때문에 내가 확신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확신이 우리에게도 있어야 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1:5절을 보겠습니다. (329)

이는 우리 복음이 말로만 너희에게 이른 것이 아니라 오직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이니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떠한 사람이 된 것은 너희 아는 바와 같으니라

복음입니다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입니다. 왜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 복음인가 하면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구속의 일을 이루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기 때문에 복음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복음을 믿음으로 우리가 넉넉히 이기고 있습니다.

어디서 이기는가 하면 율법에게서, 사망의 쏘는 것에서 이기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이기는 것을 확신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구원의 확신이 없는 사람은 미련한 자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율법을 지키고 있는 그들이 구원에 확신이 있다고 큰 소리를 치고 있습니다.

복음입니다

말로만 이긴 것이 아닙니다.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그리스도편지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지만 그 말씀들을 보면서도 확신을 가지지 못하고 율법의 행위를 계속해서 하고 있습니다. 더 안타까운 일은 그리스도편지에 있는 말씀을 보다가 돌아서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을 생각할 때마다 정말 가슴이 아픕니다.

넉넉히 이겼습니까?

말로만 확신한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직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에서 복음을 보고 넉넉히 이겨서 구원을 받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능력과 성령을 보내 주심으로 믿음으로 확신을 하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보고 있습니까?

정말 부탁을 드리지만 복음을 바로 깨닫기를 바랍니다. 아무리 강조를 해도 복음을 깨닫지를 못하면 이길 수 없습니다. 아니 복음을 알아야 믿을 수 있고 믿음이 있는 성도만이 이길 수 있습니다. 그렇게 이기고 있는 성도는 누가 뭐라고 해도 내 안에서 하나님의 능력과 성령의 감동이 역사하기 때문에 큰 확신이 있습니다.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말로 확신한다고 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런 것은 누구라도 다 합니다. 지금과 같이 평안한 시대에 누가 무슨 말을 못 하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넉넉히 이기는 성도만이 확신할 수 있지 아무나 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이겨야 합니다.

그런데 이기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기는 줄도 모르고 무엇에서 이겨야 하는 줄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영의 싸움에서 무참하게 지고 있으면서도 확신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 육체를 보고 자기 안에 있는 영의 일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정말 안타깝습니다.

그저 말로 확신한다고 하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내가 어떻게 넉넉히 이기는 줄을 모르면서도 구원을 확신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늘 말씀을 드리지만 싸움입니다. 보이는 육적인 싸움이 아니라 보이지 않은 영의 싸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영의 일에 있어서 이기는 성도만이 확신할 수 있는 것이지 말로 확신한다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내가 확신합니다.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어떤 것으로도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끊을 수 없습니까?

이것이 영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이 내 육체가 아니라 영이기 때문입니다. 이 영이 무슨 영인가 하면 하나님의 영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이 우리에게 영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육체입니다

반드시 사망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영은 다릅니다. 그 영은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영향을 줄 수 없기 때문에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성경을 다 육체로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 육체가 사랑을 받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절대로 아닙니다. 우리 육체는 늘 말씀을 드리지만 이미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그 육체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으로 나타내기 위해서 교회 안에서 온갖 행위들을 하고 있습니다.

종교입니다

그들은 육체에 빠져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보아도 도무지 무슨 말씀을 하고 있는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영의 일을 대해서 우리 영의 생명을 그 어느 것이라도 하나님의 사랑에게 끊을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교회 안에서 성경을 보는 사람들은 자기 육체가 그렇게 사랑을 받는 것으로 애매모호하게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천사도 안 됩니다

우리를 죽일 수는 있습니다. 아니 우리 육체는 죽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 있는 영은 그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이 사랑이 끊어질 수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끊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처음부터 믿지를 않은 사람입니다. 우리 눈에는 그가 끊어지는 것과 같이 보여도 실상은 처음부터 그 안에는 믿음이 없었기 때문에 끊어진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우리 안에 탄생이 되어 있는 영을 바로 알면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끊어질 수 있다고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능력을 안 믿는 사람입니다.

믿음을 말씀할 때는 항상 능력이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못하면 그 능력이 임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을 믿으면 절대로 끊어질 수 없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이 생명에 대해서 확신을 해야 합니다.

요한일서5:18절을 보겠습니다. (393)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성도입니다

육체를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안에 탄생이 되어 있는 영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 육체의 사람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는 말씀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영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입니다

아담으로부터 난 자는 이미 악한 자에게 미혹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영의 생명을 주시고 그 생명을 악한 자가 만지지도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안에 탄생이 되어 있는 영은 사단이 만지지도 못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체는 사단에 의해서 사망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들입니다

우리 육체는 범죄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로서 난 자는 범죄를 하지 않습니다. 우리 육체가 범죄치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서 난 자인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범죄치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범죄치 아니하는가 하면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우리를 지켜 주시기 때문에 범죄치 않습니다.

범죄하면 어떻게 됩니까?

그 생명도 죽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영의 놀라운 비밀로 해서 악한 자가 만지지도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악한 자가 접근도 못하니까 우리는 범죄하지 않을 수 있고 그 어떤 것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이기 때문에 악한 자가 만지지도 못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 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심으로 우리에게 영의 생명이 탄생이 되어서 그 생명이 영생을 하게 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 사랑이 무엇인가 하면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탄생이 되어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하는 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구속을 이루시고 삼일 만에 영으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도 그와 같이 부활을 하게 하기 위해서 악한 자가 만지지도 못하는 영의 생명을 우리에게 탄생하게 하셨습니다.

영의 일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비밀입니까? 이 영의 일로 우리가 넉넉히 이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영의 일이 아니면 우리는 어떠한 방법으로도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영의 일을 가르쳐 주면서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고 말씀합니다. next 8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