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1:3.)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5)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로마서 강해(오직 믿음)

82-2, 거짓말을 의뢰하는도다

윤주만목사 2024. 12. 28. 10:26

예레미야7:8절을 보겠습니다. (1061)

너희가 무익한 거짓말을 의뢰하는도다

히브리서7:18절을 보겠습니다. (359)

전엣 계명이 연약하며 무익하므로 폐하고

남 유다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이 율법주의에 빠져서 헤어 나오지를 못하는 것을 보시고 그들을 율법을 상징하는 나라 바벨론의 포로가 되게 하시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성경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남 유다가 왜 망했는가를 성경을 보는 사람들이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들이 죄를 지어서 망 했습니까?

그들이 이 시대 기독교인들보다 하나님을 진심으로 믿지 않아서 망하게 되었습니까? 정말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우리보다 도덕적인 죄를 더 많이 져서도 아닙니다. 또 그들이 우리보다 진심이 부족해서 멸망을 당한 것도 아닙니다. 사람들이 성경을 거의 문자적으로 보다보니까 그들이 이 시대 기독교인들보다 더 타락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들이 망한 이유입니다.

9절부터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도적질 하며 살인하며 간음하며 바알에게 분향하고 너희가 알지 못하는 다른 신들을 좇으면서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에 들어와서 내 앞에 서서 말하기를 구원을 받았다고 해서 멸망을 당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이렇게 하지 않고 있습니까?

실상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을 하신 것을 더하면 더 했지 덜 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 이 시대 기독교는 성경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바벨론에게 포로가 되어 가고 있는 이스라엘은 이렇게 했어도 자기들은 하나님을 아주 잘 믿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도적질을 합니다.

이 시대 기독교인들이 도적질을 하지 않고 있습니까? 너희가 살인을 하며, 이 시대 기독교인들이 살인을 하지 않고 있습니까? 간음하며, 이 시대 기독교인들이 간음을 하지 않고 있습니까? 거짓 맹세하며, 이 시대 시독교인들이 거짓 맹세를 하지 않고 있습니까? 바알에게 분향하며, 이 시대 기독교인들이 바알에게 기도를 하지 않고 있습니까? 너희가 알지 못하는 다른 신을 섬기면서. 이 시대 기독교인들이 다른 신을 섬기지 않고 있습니까?

답답합니다.

예레미야만 답답한 것이 아니라 이 시대 복음을 알고 있는 성도들 역시 기독교라는 종교를 보면 마음이 답답합니다. 그들에게 아무리 진리를 전해도 그것을 알아들을 수 있는 지혜가 없고 또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지도 않고 있습니다.

너희가 무익한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 무익한 거짓말로 인하여 도적질을 하고 있고 살인을 하고 있고 간음을 하고 있고 알지 못하는 다른 신을 섬기고 있으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가는 남 유대의 백성들이 얼마나 율법을 잘 지켰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지금 예레미야 선지자가 율법을 지키고 있는 이스라엘이 어떠한 일을 하고 있는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무익한 거짓말입니다.

그것에서 이 모든 것이 다 나오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일이 도적질을 하는 일이고 율법을 지키는 일이 살인을 하는 일이며 율법을 지키는 일이 간음을 하는 일이며 율법을 지키는 일이 거짓 맹세를 하게하고 있고 율법을 지키는 그 탐욕이 바알에게 분향을 하는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무익한 거짓말로부터 다 나오고 있습니다.

그 무익한 것이 무엇인가 하면 전엣 계명이라고 히브리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익합니다. 이 시대 교회 안에서 율법을 문자 그대로 지키라고 하는 모든 말이 다 거짓말입니다 그것을 무익한 거짓말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것을 전엣 계명은 연약하고 무익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그것이 어떠한 죄를 짓고 있는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 그대로의 율법을 지키라고 하는 것이 거짓말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왜 거짓말인가 하면 그 율법으로는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습니다.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면 생명을 얻을 수 없습니다.

거짓말입니다

생명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거짓말입니다. 생명을 얻을 수 없는 것으로 끝이 난다면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에게 주님께서 마태복음에서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여러분이 정말 바로 알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 가를 알아야 합니다.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아주 잘 믿었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이렇게 됩니까?

전엣 계명은 연약하고 무익합니다. 그런데 이 무익한 종이 무엇을 했는가 하면 전엣 계명을 지켰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교회 안에서 평생을 율법을 지키면서 살았습니다. 그런 그에게 주님께서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이 아닙니다.

이 시대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절대로 생명의 달란트를 남길 수 없습니다. 율법을 지킴으로 해서 의롭다 하심을 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주님께서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두려워하지 않고 있습니다.

생명을 얻을 수 없는 거짓말을 하면서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있습니다. 아니 도리어 자기들이 하나님을 잘 믿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오시지 않고는 사람의 이성으로는 이 복음의 비밀을 도무지 깨달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시대를 보시기 바랍니다.

연약하고 무익한 전엣 계명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거의 모든 사람이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아니 예레미야 시대를 보시기 바랍니다. 진리를 찾고 공의를 구하는 자가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하나님께서 내가 이 성을 사해 주시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입니다

믿음이 있는 성도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왜 남 유다가 바벨론의 포로가 되었는가 하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예레미야에게 하는 말을 잘 보시기 바랍니다. 자기들이 얼마나 하나님을 잘 믿고 있는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 시대에 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럼 이 시대는 과연 몇 명이나 되겠습니까? 율법을 지키지 않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아니 율법을 지키면서도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율법을 율법이라고 생각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수많은 율법을 지키면서도 그것을 율법으로 생각하지도 않고 있습니다.

다 율법입니다

십일조 율법입니다. 주일 율법입니다. 예배 다 형식에 맞추어진 율법입니다. 헌금 율법입니다. 제가 일일이 다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아마도 그럴 것입니다. 제가 이것을 율법이라고 하면 저보고 이상한 사람이라고 말할 것이 분명합니다. 종교의 거대한 세력에 포승으로 묶여서 자기 이성까지도 망각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믿음이라고 하면 믿음이 되고 있습니다. 좀 심하게 들릴지 몰라도 저 북한에 주체사상과 지금의 기독교 안에 있는 사상은 거의 같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들이 사람을 우상화하는 것과 이 시대 율법을 지키면서 우상을 섬기고 있는 것이 같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주체사상입니까?

그것은 기독교 안에 있는 율법주의와 같습니다. 김일성 일가를 우상화하는 것과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자기들이 한 행위를 자랑하고 우상화 하는 것이 무엇이 다릅니까? 저는 지금의 기독교는 거의 공상주의의 사상이 그대로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행동도 통일하고 있습니다.

말도 통일을 하고 있습니다. 거기에다가 생각까지도 거의 통일이 되고 있습니다. 뭐가 다르다고 생각합니까? 기독교인들이 저를 비난하고 저에게 어떠한 위해를 가한다 해도 저는 지금의 기독교인들을 그렇게 밖에 안 보고 있습니다.

제가 교회를 비판합니까?

저는 교회를 비판하지 않았습니다. 복음이 전해지고 있는 교회를 한 번도 비판하지도 않고 판단도 하지 않았습니다. 거짓말을 하고 있는 종교를 비판한 것입니다. 그것이 잘못이라고 하면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무익합니다.

전엣 계명은 연약하고 무익합니다. 왜 연약한가 하면 우리에게 생명을 줄 수 없기 때문에 연약하고 무익합니다. 그 무익한 것을 지키라고 하고 있다면 거짓말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삼가 지키고 있는 율법이 있다면 다 거짓말을 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거짓을 말하고 있습니까?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있습니다. 로마서8장까지 보면 사도 바울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쓴 성경을 보는 이 시대 거의 모든 사람이 다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사도 바울은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쓴 로마서를 보고 이 시대 거의 모든 목사들이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율법을 지키지 말라고 분명하게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다 율법을 지키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 거짓말이 도적질을 하고 있고 살인을 하고 있고 간음을 하고 있지만 깨닫지를 못 합니다.

요한계시록20:10절을 보겠습니다. (420)

또 저희를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지우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거짓말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말씀이라는 것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왜 이 시대 모든 사람이 율법을 지키고 있는가를 보시기 바랍니다. 율법을 지키는 그것이 사람에 이성에는 분명히 옳습니다. 저 역시도 사람의 이성에 따르면 율법을 지키라고 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아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 이단이나 정통이나 모두가 한 가지 공통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율법을 지키는 일입니다. 어느 이단이 율법을 안 지키고 있습니까? 그리고 어느 정통이라는 교회가 율법을 안 지키고 있습니까? 다만 정도의 차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누가 더 많이 지키고 누가 적게 지키고 또 누구는 적당히 지키는가에 따라 이단과 정통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공통점입니다

율법을 안 지키는 교회가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정도의 차이가 약간 있지만 모두가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정통이라는 교회에 있는 사람들이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구원파가 율법을 안 지킵니까? 절대 아닙니다. 다만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율법은 무익합니다.

그런데 예레미야 선지자가 남 유다에게 너희가 무익한 거짓말을 의뢰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이 왜 포로가 되었는가 하면 거짓말을 의뢰했기 때문에 율법을 상징하는 나라의 포로가 되어서 살아보라고 포로가 되게 하셨습니다.

선지자입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교회 안에 있는 사람은 세상에 대해서 선지자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나는 평신도로 살았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교회에 들어오는 순간에 그는 선지자가 됩니다. 세상에 대해서 선지자가 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다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율법을 지키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 율법을 지키는 것으로 끝이 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요한계시록에 거짓 선지자가 어떠한 형벌을 받는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거짓말을 했던 모든 사람은 다 거짓 선지자입니다.

나는 안 했습니까?

그 또한 거짓말입니다. 율법을 지켰다면 그는 거짓말을 하는 것과 같이 행동을 했기 때문에 거짓 선지자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차라리 세상죄인으로 살지언정 거짓 선지자는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가 세세토록 고난을 당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기록한 선지자들입니다

그들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성경을 보는 거의 모든 사람이 거짓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 거짓이 무엇인가 하면 연약하고 무익한 전엣 계명을 지키는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교회 안에서 그런 거짓말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전혀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아니 어떻게 생각합니까?

자기들이 하나님을 제일 잘 믿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안식일 교회는 안식일을 지키는 자기들이 성경대로 하니까 하나님을 제일 잘 믿는다고 하고 있고 하나님의 교회는 자기들이 성경대로 유월절을 지키니까 제일 잘 믿는다고 하고 있고 또 침례교는 자기들이 성경적으로 침례를 하니까 하나님을 가장 잘 믿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정통의 교회 어떻습니까?

이제 주님이 부활하신 날에 예배를 한다고 하면서 자기들이 제일 잘 믿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교회마다 자기들이 정한 율법을 지키는 것을 보면서 자기들이 하나님을 가장 성경적으로 잘 믿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다 무엇입니까?

다 율법을 지키면서 그 행위를 하면서 자기들이 하나님을 잘 믿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율법이 거짓말이라는 것을 모르고 다 자기들이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잘 믿는다는 것도 모르면서 모두가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7:10절을 보겠습니다. (293)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사도 바울입니다

그 역시도 사람입니다. 왜 자기 동족인 이스라엘을 생각하지 않았겠습니까? 누구나 마찬가지입니다. 이 복음을 알고 있다면 가장 먼저 전하고 싶은 것이 내 가족과 친척입니다. 사실 복음을 알고 있는 모든 성도들의 근심이라고 해도 맞습니다.

저 역시도 마찬가지입니다

늘 제 가족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친지들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사촌 동생이 암으로 죽었습니다. 정말 그때도 많이 가슴이 아팠습니다. 이제 겨우 쉰의 나이에 육체적으로 사망이 왔습니다. 그러나 그 동생의 육체가 사망을 당한 것보다 더 마음이 아팠던 것은 교회 안에서 율법주의자로 살다가 죽었다는 사실입니다.

큰 근심입니다

아마도 여기에서 교제를 하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저와 같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서 가르쳐 주고 싶은데 듣지를 않고 있습니다. 저 역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전하려고 해도 하도 똑똑한 사람들이 많다 보니까 감히 이야기를 꺼내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목사들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습니까? 더구나 저는 늦은 나이에 신학을 공부를 했습니다. 그들이 볼 때는 그저 그런 목사로 보입니다, 아니 이제 나이가 들어서 할 일이 없어서 남들과 같이 신학교를 나와서 목사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지금 이것으로 자기 마음에 큰 근심이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알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를 부르시고 그에게 복음이 계시가 되게 성령을 보내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가 복음을 알고 나니까 자기가 얼마나 큰 은혜를 입었는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은혜를 입은 것은 개인적으로는 기쁜 일입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이스라엘을 보니까 아직까지 거의 모든 사람이 자기가 예전에 바리새인으로 있을 때와 같이 있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지키면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율법을 잘 지키고 있는 자신들을 보면서 구원을 받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구원입니다

율법을 지키는 사람은 자기들의 행위를 보면서 구원을 받았다고 생각하고 있고 그 율법에 더 열심을 내서 지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복음을 알고 나니까 그들이 저주를 받아야 합니다. 구원은 둘째 이야기입니다. 차라리 사도 바울의 민족이 이스라엘이 아니었다면 이 마음이 덜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들이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선민이라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모두가 저주를 받게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방의 사도로 세움을 입었지만 늘 자기 민족을 보면 큰 근심이 되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하고 있는 모든 행위가 다 무엇입니까?

살인을 하고 있습니다.

도적질을 하고 있습니다. 간음을 하고 있습니다. 우상숭배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들은 유일하신 하나님을 믿는다고는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어떻게 될 것인가를 알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큰 근심이 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가슴이 아픕니다.

제 곁에 있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도 전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왜 전하지를 못하고 있는가 하면 유대인들이 볼 때는 사도 바울은 변절자나 마찬가지입니다. 사도 바울의 고백에서 보았듯이 그가 바리새인으로 있을 때 어떻게 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런 사도 바울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그것도 자기들이 생각하는 이단이라고 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을 잡으러 가다가 변절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것을 보고 사도행전에서도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 사도 바울을 죽이려고까지 했습니다.

변절자입니다

이단에 갑자기 빠진 사람입니다. 사도 바울 곁이 있던 사람들이 사도 바울을 볼 때는 그렇게 밖에는 안 보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방에 복음을 전하면서 늘 자기 민족을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들에게 이미 사도 바울은 변절자나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사도들은 다릅니다.

그들은 처음부터 예수님의 제자였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살아 계실 때 늘 함께 다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 바울과는 다릅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은 내게 큰 근심이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 복음을 깨닫고 성령의 감동을 받고 있는 성도들이라면 누구나 느끼고 있는 같은 심정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안타깝습니까?

제가 차라리 복음을 모르면 낫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이 복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다른 복음에 빠져 있는 교회에 있는 사람들에게 전할 수가 없습니다. 아니 전하고 싶어도 그들이 이상한 이단에 빠진 사람 취급밖에 안 하고 있습니다.

복음입니다

이 시대 비슷한 것이라도 들어봤다면 그래도 우리가 전하는 것이 쉬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들어오고 난 이후로 지금까지 이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율법을 지키지 말라고 하고 있고 율법을 지키는 것이 악이라고 하면 미친놈이 되고 맙니다.

그 근심입니다

사도 바울은 큰 근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사도 바울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가지고 있는 우리 모든 성도들에게 있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교제를 하고 있는 우리도 이 근심이 크지만 사람으로는 안 되니까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습니다.

내 부모입니다

그리고 내 형제입니다. 또 내 자식입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복음을 전한다는 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우리는 할 수만 있다면 이 복음을 전해서 그들이 율법주의에서 벗어나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게 하고 싶은데 사람으로는 안 됩니다. 정말 이 생각을 할 때마다 가슴이 아프고 때로는 화가 나기도 합니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제가 복음을 모르면 차라리 낫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복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율법을 지키는 그들이 어떠한 결말을 당할 것이라는 것을 너무도 빤히 알고 있는데 전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자기 민족에게 그런 마음이 있었다면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가족에게 그리고 아는 사람에게 이 마음이 있습니다.

거짓입니다.

그들의 믿음이 거짓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거짓이라는 것을 한 마디로 설명할 방법이 없습니다. 복음이라는 것은 하루아침에 깨달아 지는 것이 아니라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사도 바울 역시도 주님을 만나고 난 이후에 많은 시간동안 복음을 알기 위해서 성경을 봤습니다.

구원입니다

물론 단번에 주시는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그러나 영생을 얻기 까지는 성경에서 많은 말씀들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깨닫게 하기 까지는 너무 많은 시간이 필요로 하고 있고 또 이미 종교의 포승에 묶여 있는 그들을 사람으로는 꺼낼 수 없기 때문에 더욱 큰 근심이 되고 있습니다.

오죽하면 그런 말을 하겠습니까?

우리가 이 복음을 다 기록으로 남겨 놓았다가 유언으로 하겠다는 말을 농담 삼아서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과 같은 큰 근심을 하기 때문에 그렇게라도 해서 그들이 이 복음을 보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제가 기도를 하고 있는 사람들을 구원해 주실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베드로후서2:7절을 보겠습니다. (385)

무법한 자의 음란한 행실을 인하여 고통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습니다.

무슨 고통입니까? 사람들은 사도 베드로가 한 이 말씀을 많이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이것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고 이상하게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들의 눈에 보이는 문자만 보고 음란한 행실을 인하여 롯이 고통을 받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 음란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서 음행을 한다고 생각하고 있고 그래서 자기들은 동성연애를 하지 않으니까 세상에 있는 성소수자들을 비난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있음으로 해서 자기들이 고통을 받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성소수자입니다

저 역시도 인간적으로는 그들을 옹호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아니 솔직히 말씀을 드려서 별로 만나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을 보고 있고 또 복음이 무엇이라는 것을 알고 있고 더구나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무엇이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 역시 은혜를 받은 자이기 때문에 사람을 육체로 판단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자기들이 꽤나 거룩한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고 예수님께서도 육체대로 판단을 하시지 않은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은 바리새인들과 같이 육체로 판단을 하고 있습니다.

무법입니다

법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무슨 법이 없다는 말씀입니까? 성령의 법이 없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로마서8장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생명의 성령이 법이 없다고 사도 베드로가 롯을 인용을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그렇다는 말씀입니까?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그렇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들은 법이 있는데 세상 사람들이 법이 없어서 음행을 하고 있고 심지어는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서 음행을 하고 있다고 말을 합니다. 그래서 자기들이 고통을 받고 있다고 하면서 성소수자들을 마치 벌레 보듯이 하고 있습니다.

바리새인과 뭐가 다릅니까?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혀온 여자를 바리새인들이 그렇게 취급을 했습니다. 성경을 보면 뭐합니까? 사도 베드로가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창세기의 롯을 인용을 해서 말씀을 하고 있는데 도리어 세상 사람들을 보면서 자기들이 고통을 받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고통입니다

왜 고통을 받습니까? 그들이 성령의 법이 없어서 율법을 지킴으로 해서 저주를 받는 것으로 보니까 고통을 받습니다. 불과 유황으로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누가 거기에 들어갑니까? 거짓 선지자가 들어간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거짓 선지자가 누군가 하면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사도 바울이 누구를 보고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을 받았습니까?

지금 사도 바울이 누구를 말씀하고 있다는 것을 성경을 보면서도 모르겠습니까? 율법을 지키고 있는 자기 민족 유대인들을 보면서 사도 바울이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불과 유황 못으로 들어가 세세토록 고난을 받을 것을 빤히 보고 있기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들을 보면서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없다면 그는 아직 복음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우리 성도는 나만 구원을 받은 것으로 끝을 내서는 안 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부탁하셨습니다. 사도들만 복음을 전하는 자가 아니라 이 시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입은 우리 역시 복음을 전하는 자로 살아가야 합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어떻게 멸망을 당했습니까?

거짓 선지자가 들어가는 것과 같이 불과 유황으로 멸망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들에게는 생명의 성령이 법이 없어서 음행을 하고 있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하나님을 안 믿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당시 노아 홍수가 끝이 나고 물론 다른 신을 믿는 사람들이 생겨났지만 그래도 다수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고통입니다

그들이 당할 고난을 생각하면 우리 성도의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습니다. 차라리 예수 그리스도를 안 믿는다고 하면 낫겠습니다. 그러나 거짓 선지자가 받을 형벌을 알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자기 민족을 보면서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었습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내 친족들을 보면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게 됩니다. 우리는 분명한 복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거짓에 미혹이 되어서 사망의 길을 따라가고 있는 그들을 보면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게 됩니다. 이 마음은 복음이 있는 자만이 가질 수 있습니다. 생명이 있는 성도만이 이 고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정말 우리는 늘 기도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할 수만 있다면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내가 모든 것을 버린다 해도 그들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면 그것을 택해야 합니다. 설령 그들이 듣지를 않는다 해도 우리는 복음을 전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디모데전서3:9절을 보겠습니다. (339)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야 할지니

사도 바울의 양심입니다

그 양심이 무엇인가 하면 믿음의 비밀을 가지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 이방인들에게 이 믿음의 비밀을 가르쳐 주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의 양심에 있는 그 믿음의 비밀을 이 시대는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내 양심입니다

성령 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를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 마음에 있는 믿음의 비밀을 가지고 성령 안에서 더불어서 증거를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개인의 생각으로 이 성경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성령의 감동을 받아 이 성경을 기록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 안에서입니다.

갈라디아에서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고 묻고 있습니다. 성령 안에서 더불어 증거 한다고 하는 말씀은 진리의 성령의 감동을 받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령이 내 양심에 있는 믿음의 비밀을 주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사도 바울의 생각이라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사도 바울이 바리새인으로서 그리고 유대인으로서 성경을 많이 보았다 해도 이 복음의 비밀을 깨달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가 믿음을 가질 수 있는 것 역시 성령이 임하셨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믿음입니다.

사도 바울의 양심에 있는 것은 믿음입니다. 믿음이 있기 때문에 자기가 성령 안에서 더불어서 증거를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믿음이 있어서 자기에게 큰 근심이 있고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다는 것을 성령 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를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깨달았기 때문에 더욱 고통이 컸습니다.

우리 성도입니다

이 시대 복음을 가진 자로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역시 내 가족을 생각하고 내 친족을 생각하면 이 마음이 듭니다. 그렇기에 더욱 우리는 참말을 해야 합니다. 그들이 듣든지 안 듣든지 이 생명이 너무 귀하기 때문에 성령 안에서 우리 안에 있는 믿음으로 더불어서 증거를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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