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로마서 강해(오직 믿음)

44-1,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윤주만목사 2024. 8. 28. 08:17

로마서5:10절을 보겠습니다. (245)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살리는 것은 영입니다

구원을 얻는다고 하니까 이 세상의 사상이 그대로 교회 안에 들어와서 자기가 구원을 받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바로 알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이 썩는 것을 나라고 할 것인가 썩지 아니할 것을 나라고 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육체는 썩습니다.

성경에 분명히 썩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썩는 육체가 나라고 한들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어차피 썩어 없어지는 것을 나라고 한다면 그는 썩는 그것을 바라고 사는 사람에 불과합니다. 성경은 이 썩는 것을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아니 썩는 육체를 구원한다고 말씀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람의 이성입니다

육체와 정과 욕심을 잘라 버리지 못 합니다 그 죽은 자의 시체가 어떻게 된다는 것을 빤히 알고 있으면서도 그 썩은 것이 나라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영의 일입니다. 아니 영의 생명에 대해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영을 살리십니다.

육체를 살리는 것이 아니라 영을 살리셔서 구원을 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지식을 가지고 성경을 보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세상은 자기가 무엇을 해서 그 사람이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그런 세상의 지혜가 아니라 하늘의 지혜를 가르쳐 주고 있고 그것은 영의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기독교는 육체의 종교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영이신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육체로 자기 종교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영의 일은 전혀 모르고 육체의 일만 하고 있습니다. 살리는 영의 일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썩어 없어지는 자기 육체가 구원을 받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구원입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이것은 생명입니다. 그냥 생명이 아니라 내가 영원히 살아야 하는 생명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성경을 너무 쉽게 보고 있습니다. 조금만 주의 깊게 보고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면 되는데도 모두가 종교에 빠져 영의 일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육체의 일을 하고 있습니다.

아담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아담이 죄를 짓고 사망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아담과 함께 살고 싶어 하십니다. 그런데 그 아담이 이미 죄를 짐으로 해서 더 이상은 하나님과 살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영의 생명을 주셨습니다.

아담은 흙으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성령으로 잉태하셨습니다. 물론 흙으로 지으심을 받은 아담의 형상을 그대로 입고 오셨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 아담의 형상을 우리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주셨습니다. 여기까지는 누구나 다 알고 있습니다.

부활입니다

주님이 어떻게 부활을 하셨는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영으로 살리심을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체로 살리심을 받은 것이 아니라 영으로 살리심을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살리심을 받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을 우리에게도 똑같이 보내 주심으로 해서 그 영이 구원을 받습니다.

주님도 육체는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영으로 살리심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어떻게 죽고 어떻게 사는 가를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성경에 분명히 기록이 되어 있어도 주님께서 다시 사신 것과 자기들이 구원을 받는 것은 다른 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같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어떻게 부활을 할 것인가를 보여 주셨습니다. 그래서 부활의 첫 열매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 열매가 누구입니까? 우리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해서 의롭다 하심을 받아 그리스도의 영의 생명이 탄생이 되었습니다. 그 영이 지금은 잠자는 것과 같이 있다고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오실 때입니다

그 영이 잠자는 자들 가운데서 깨어나 하늘의 신령한 몸을 입고 부활을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늘의 신령한 몸입니다. 우리가 지금 입고 있는 이런 몸이 아니라 신령한 몸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저도 그 신령한 몸이 어떤 몸인지를 모릅니다.

아니 설명이 안 됩니다

내세의 일은 인생들의 언어로는 표현이 안 되기 때문에 하늘의 신령한 몸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우리 언어로 표현이 되어서 우리가 쉽게 이해할 수 있다면 성경은 이렇게 기록이 되지 않고 그 영에 대해서 정확하게 표현을 해서 말씀을 하고 그것을 믿을 수 있게 하셨을 것이 분명합니다.

영입니다

그리고 내세입니다. 어느 누구도 그것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도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도 설명을 하지 못하는 영의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아니 주님은 분명히 말씀을 하실 수 있지만 아마도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려 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니 믿음을 달라고 구해야 합니다. 믿음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역사입니다. 내가 믿고 싶다고 해서 이것이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반드시 하나님께서 역사를 하셔 야지만 우리가 믿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내가 가면 진리의 성령을 너희에게 보내 주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내 안에 오십니다.

그때 내가 믿어지는 역사가 있습니다. 그것을 성령으로 난 영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영을 구원해 주십니다. 이 영에 대해서는 더 이상을 이야기를 해서는 안 됩니다. 성경에서 영이라고 말씀을 하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됩니다. 사람의 이성으로 이 영을 이해하려고 해서는 절대로 이해가 되지 않고 도리어 진리에서 벗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근거가 되어서 구원을 받았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근거가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으로 살리심을 받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으로 살리심을 받은 것과 같이 우리도 그와 같이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성경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원수일 때에도 하나님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해하게 되었다면, 화해한 우리가 하나님의 생명으로 구원을 얻으리라는 것은 더욱더 확실한 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습니다.

성경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오직 예수인가 하면 다른 방법으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지 않고는 어떻게 해도 우리는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말로만 오직 예수가 아닙니다. 그로 말미암아 라는 말씀을 바로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그가 아니면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내가 구원을 받는 근거가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어떻게 구원을 받았는가 하면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 되었을 때 그 아들을 죽이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더불어 화목하게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말씀합니까?

지금 사도 바울은 계속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습니다. 그런 원수를 위하여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더불어 화목하게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어떠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원수입니다

누가 원수를 살리기 위해서 그의 아들을 죽이시겠습니까? 하나님이 우리 인생들을 얼마나 사랑하시는 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원수가 되었을 때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죽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것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더불어 화목하게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레위기19:18절을 보겠습니다. (176)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나는 여호와니라

성경이 얼마나 심오합니까?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 인생이 성경을 보고 안다고 하지만 실상은 겨우 구원을 받을 정도만 깨닫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것도 성령이 오신 성도가 그렇지 지금 기독교인들은 겨우 문자를 아는 정도를 가지고 자기들이 지혜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오셔야 합니다.

그래야 이 성경을 보고 영의 생명에 대해서 그마나 조금이라도 알 수 있고 진리로 인도함을 받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 정도가 어느 정도인가 하면 청동거울을 보는 것과 같이 희미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구원을 받은 성도가 성경을 보고 진리로 인도함을 받는 것이 그와 같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원수입니다

왜 원수가 되었습니까? 율법의 행위 아래 있다가 진노를 받게 되어서 원수가 되었습니다. 조금 더 명확하게 말씀을 드리면 사단이 우리 인생들의 마음을 미혹해서 율법을 지키게 함으로 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믿지 못하고 있는 그 상태가 원수라는 말씀입니다.

죄를 지어서 원수입니까?

그것은 정말 초보라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그 초보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으면 성경을 아무리 보아도 소경으로 살아다 구덩이에 빠지게 되어 있습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성경은 두 가지의 의에 대한 싸움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율법의 의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의입니다. 왜 우리가 원수가 되었는가 하면 율법의 의를 가짐으로 해서 마귀의 자녀가 되어서 원수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율법주의에 빠져 있는 이스라엘에게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서 났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마귀는 하나님의 의를 믿지 못하도록 율법을 지키게 하고 있습니다.

원수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습니다. 아니 우리 뿐 아니라 이스라엘도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습니다. 이 세상에 육체를 입고 태어나는 순간에 우리는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왜 원수가 되는가 하면 우리 인생들은 본능적으로 율법을 지키려 하고 있습니다.

아니 법에 의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세상은 법에 의해서 살아간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 법이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대적하기 때문에 원수가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을 아무리 보아도 성령의 감동을 받지 못하는 사람은 자기가 왜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는지를 모르고 그저 죄를 지어서 원수가 되었다는 초보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율법입니다

누가 지킵니까? 이 율법에 대해서는 그리스도편지에서 아무리 강조를 해도 사람들이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이 율법을 모르는 상태에서 그가 아무리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해 보아야 결국에는 율법주의가 되고 만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율법주의에 빠져 있는 이스라엘에게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원수 되었습니다.

어떻게 원수가 되었습니까? 마귀의 자녀가 되어서 율법을 지킴으로 해서 원수가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원수 되었을 때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하게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레위기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원수를 갚지 말라

이 말씀을 보고 참으로 많이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자기 육체를 조금 해롭게 한 사람을 원수로 생각하고 있고 그런 사람에게 대적을 하지 않고 싸우지 않은 것이 원수를 갚지 않는 율법을 지키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지혜가 있다 해도 성경을 보는 지식이라는 것이 바로 그 한계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레위기의 말씀입니다

그 말씀을 보고 사도 바울이 인용을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하게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레위기에 있는 그 말씀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원수를 갚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누가 원수였습니까? 율법주의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려고 했고 결국에는 십자가에 못 박아서 죽이고 말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율법주의자가 원수라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율법에 기록이 되어 있는 말씀 그대로 원수를 갚지 않았습니다.

잘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원수를 갚았으면 어떻게 됩니까? 이 세상은 종말을 맞이하게 됩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셨을 때 어느 누구도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이 세상은 모두다 율법주의에 빠져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과는 원수가 되었습니다. 그런 원수를 갚지 않았습니다. 원수를 갚지 않고 도리어 그 원수를 위하여 죽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율법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율법을 누가 지켜야 하는 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원수를 갚지 않고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셨습니다. 어떻게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셨는가 하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그들을 구원하심으로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

성경을 그냥 기록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구약의 율법을 문자 그대로 보는 사람은 성경을 수백 번을 읽고 다 외운다 해도 성경에서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도 이 시대는 거의 모든 율법을 문자 그대로 보고 자기들이 원수를 갚지 않는다고 말을 하고 있고 이웃을 자기들의 몸과 같이 사랑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원수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원수를 갚지 않으셨습니다. 율법에 기록이 되어 있는 그대로 이 세상에 오셔서 원수를 갚지 않고 도리어 주님의 몸과 같이 사랑을 해 주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더불어 우리 원수가 화목하게 하셨습니다.

원수를 모릅니다.

누가 누구의 원수였는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태어나는 순간에 하나님과 원수가 됩니다. 그러나 그 원수를 갚지 않았습니다. 만약에 원수를 갚았다면 아담이 범죄 했을 때 이 세상은 그대로 종말을 맞이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교회 안에서 주여 주여 하고 있는 자기들이 율법을 지켜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면서 도리어 하나님과 더 원수가 되고 있습니다.

시편17:9절을 보겠습니다. (813)

나를 압제하는 악인과 나를 에워싼 극한 원수에게서 벗어나게 하소서

다윗의 시입니다

다윗은 누구를 예표 하는 왕입니까? 마태복음의 시작이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늘 다윗과 같은 왕을 기다렸습니다. 자기들을 구원할 메시야가 다윗과 같은 왕이 와서 구원해 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아니 그들은 지금도 다윗과 같은 왕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주님이 오셨습니다.

이스라엘이 대적을 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이스라엘을 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나를 압제하는 악인과 나를 에워싼 극한 원수에게서 벗어나게 해 달라고 간구를 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이스라엘에게 이렇게 될 것을 시편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원수입니다

누가 원수인가 하면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는 이스라엘이 원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만 원수가 아닙니다. 우리 역시 복음을 몰랐을 때는 하나님과 원수였습니다. 주님이 오셔서 천국복음을 전파하시고 또 성령이 우리 가운데 오셔서 그 말씀이 깨달아 지기 까지는 우리 역시 이스라엘과 다름이 없이 원수였다는 말씀입니다.

원수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원수를 갚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대제사장이 보낸 사람들에게 붙잡히시고 있습니다. 그때 제자가 검을 빼서 대제사장의 종의 귀를 잘라 버렸습니다. 주님께서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영이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 아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로마가 강합니까?

열두 영이 더 되는 천사가 오면 로마라는 강대국도 그대로 멸망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주님을 압제했습니다. 그리고 주님을 에워싼 극한 원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주님은 열두 영이 더 되는 천사를 부르시지 않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왜 그렇게 하셨는가 하면 레위에게 있는 율법을 지키시기 위해서 그렇게 하셨습니다.

원수를 갚지 않았습니다.

만약에 주님이 원수를 갚았다면 이 세상은 벌써 종말이 왔습니다. 아니 이 시대 우리는 구원을 받은 성도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원수가 되었을 때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성경을 모르면서 감사하다는 말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런 말이 도리어 사람을 침륜에 빠지게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자기가 무엇으로 감사해야 하는 줄을 모르고 그저 맹목적으로 성경에서 감사하라고 하니까 감사하는 것은 주님을 모독하는 일이 된다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원수를 갚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죽으셨습니다. 주님께서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영이 탄생이 되었습니다. 영으로서 살리심을 받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 안에 있게 되었습니다. 그 영이 있음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5:17-18절을 보겠습니다. (291)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하나님과 더불어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화목하게 되었습니까?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안에 새로운 피조물이 탄생이 됨으로 해서 하나님과 더불어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원수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원수를 갚지 않고 네 몸과 같이 사랑하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 죽은 예수를 영으로 하나님께서 살리셨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을 그와 함께 살리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그와 함께 살리시는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으로 살리심을 받은 것과 같이 우리 안에 영의 생명이 탄생을 한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화목하게 되었는가 하면 새로운 피조물이 우리 안에 탄생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탄생이 된 피조물이 어디로부터 났는가 하면 하나님께 로서 났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우리가 육체로는 하나님과 화목하게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을 하셨습니다. 그것을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 성도도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영으로 살리심을 받았다는 말씀입니다.

육체입니다

그리고 영이 있습니다. 이 둘은 서로 화목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그런데 우리 육체로 화목하게 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아니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자기들의 육체로 화목하게 되는 줄로 알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삼일 만에 부활을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육체가 살아나셨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영으로 살리심을 받았습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의 영을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생명이 새로운 피조물이며 그 생명이 있음으로 해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육체입니다

우리 육체는 하나님께로 난 것이 아닙니다. 물론 생명의 탄생과 죽음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그러나 우리 육체는 하나님께로 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것으로는 하나님과 화목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영으로 살리심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생명이 우리 안에 있습니다.

이 생명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자기들의 행위로 하나님과 화목하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이 생명이 없다면 절대로 하나님과 화목할 수 없습니다. 성경의 문자를 보고 이 생명이 있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생명이 있으려면 사도 바울이 우리가 육체대로 알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무슨 말씀입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셨습니다. 그것은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죽지 않으면 이 생명이 여러분 안에 있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무엇에 대해서 죽어야 하는가 하면 율법에 대해서 죽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모두가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면서도 율법을 지킨다고 하지 않고 있습니다.

화목된 자가 되었습니다.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으로 살리심을 받음으로 말미암아 우리도 영의 생명이 탄생이 되어서 구원을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께서 살으셔야지 우리가 살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구원입니다

이 구원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구원은 정말 다시 말씀을 드려도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말미암아 진노를 받지 않게 하시고 구원을 해 주시고 있습니다. 그런데 무엇을 구원하시는가 하면 그리스도의 살으심으로 말미암아 그것이 근거가 되어서 구원을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근거입니다

예수님께서 살으시지 않았다면 우리의 구원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영으로 살리심을 입지 않았다면 우리 안에 영의 생명이 탄생이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이 구원에 대해서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살으심으로 인하여 구원을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모든 근거가 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루어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인가 하면 우리의 구원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13:4절을 보겠습니다. (300)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으셨으니 우리도 저의 안에서 약하나 너희를 향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저와 함께 살리라

구원입니다

아무리 강조를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 교회 안에서 어떠한 일을 했다 해도 이 구원이 없다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자가 되고 만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이 구원에 대해서 너무 소홀히 생각하고 있습니다. 교회에 나와서 예배 몇 번 드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 구원을 받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구원을 받습니까?

그의 살으심으로 인하여 구원을 받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지 않았다면 우리는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이 그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살으셨는가 하면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으셨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육체가 산 것이 아니라 영으로 살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부활을 하시고 육체의 모습으로 보이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신령한 몸이기 때문에 우리가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부활에 대해서 그리고 영의 일에 대해서 내세에 대해서는 설명이 안 됩니다.

그것을 설명하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자기 지식으로 그것을 설명하려고 하다가 사람들이 교리를 만들어 놓고 있고 그것이 그들의 올무가 되고 있지만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영의 일은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기 지식을 자랑하기 위해서 아니 자기의 신령함을 나타내기 위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저와 함께 살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으셨습니다. 우리 역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살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사는 것이 육체가 아니라 영이라는 것을 명심하고 있어야 합니다. 이것을 육체로 이해를 하려고 하다가 모두가 사망에 이르고 있습니다.

영의 일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그와 함께 살 수 있습니까? 주님은 2000년 전에 죽으셨다가 삼일 만에 부활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와 함께 어떻게 죽고 그와 함께 어떻게 살 수 있습니까? 영의 일이기 때문에 가능하지 육으로는 아무리 이해를 하려고 해도 안 되는 일입니다.

육의 사람이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지식은 하나님과 원수가 됩니다. 그것으로 성경을 보는 사람은 반드시 망하는 길로 가게 되어 있습니다. 성경을 성경 그 자체로 보아야 하는데 그렇게 보지를 않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사도 바울이 반복해서 구원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가 구원을 받는 그것입니다. 성경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사도 바울이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로마서5:11절을 보겠습니다. (245)

이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을 얻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현대인의 성경을 보겠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기쁨도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구원을 받았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하나님의 사랑으로 우리가 구원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을 사랑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도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 사랑이 무엇인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의 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만약에 죽은 것으로 끝이 나면 우리는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냥 죽어서 피를 흘리셨다면 우리의 구원은 없습니다. 반드시 그가 다시 살아나셔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의 살으심으로 인하여 우리가 구원을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살아나심으로 해서 우리가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영으로 살리심을 받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영으로 살리심을 받았다고 말씀을 하면서 그 영이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뿐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이것만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인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그저 문자로 기록이 되어 있는 성경말씀을 아는 것으로 자기들이 구원을 받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구원을 받는 줄도 모르고 구원을 받았다고 하면서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억지입니다

구원에 확신도 없으면서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아니 자기 안에 생명이 어떻게 탄생이 되는 줄도 모르고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어떻게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로 화목을 얻게 하셨습니다.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탄생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다른 것으로는 하나님과 우리는 화목할 수 없습니다. 더구나 사람의 행위로는 하나님과 화목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영입니다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그 생명이 있어야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는데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가 화목을 얻었습니다. 주님이 아니고는 얻을 수 없는 화목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고 율법의 행위에 빠져 들어가고 있습니다.

육의 사람이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의 모든 말씀은 다 영의 일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오시지 않아서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어서 육의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들이 하고 있는 율법의 행위를 보면서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화목을 얻게 하신 것은 영의 일입니다

내가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으로 내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탄생이 되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어떻게 화목을 얻는 줄도 모르면서 교회 안에서 자기들이 드리고 있는 예배로 그리고 행위로 즐거워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하나님 안에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next 4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