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로마서 강해(오직 믿음)

43-1,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윤주만목사 2024. 8. 24. 17:39

로마서5:8절을 보겠습니다. (245)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랑리라는 말씀은 잘 알고 있지만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깨닫고 있는 사람은 지극히 적은 것 같습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죄인입니다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냥 어떤 도덕적인 죄를 하나 지었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그렇게 생명에 대해서 죄인이라서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죄인이라고 하니까 내가 도덕적인 어떤 죄를 지은 것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런 죄인이 아닙니다.

사형 선고를 받은 죄인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세상의 이성을 가지고 우리 죄인을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셨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은 죄에 따라 다릅니다. 사형 선고를 받은 죄인도 있고 그리고 벌금만 내면 되는 죄인도 있고 그냥 훈계로 끝나는 죄인도 있습니다. 성경은 그런 죄인을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연약할 때입니다

사형 선고를 받아서 반드시 죽어야 할 때입니다 그때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를 진 우리를 위해서 죽으셨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어떠하다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것을 말씀하기 위해서 계속해서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습니다.

선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혹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세상에서는 그런 사람들이 가끔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이치로 살인한 자를 위해서 죽는 자는 없습니다. 또 간음을 한 자를 더구나 자기 부인과 간음을 한 자를 위해서 죽는 자는 없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크다는 것을 우리가 조금이라도 깨달아야 합니다.

누가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부모라도 못하는 일입니다 자기 아들이 의롭게 살았는데 그가 사형 선고를 받았다면 부모는 그 아들을 대신해서 죽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자기 아들이 살인을 했는데 아들을 대신해서 죽겠다는 말 조차도 못하는 것이 세상에 이성이라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육신의 부모입니다

살인한 자를 대신해서 죽을 수 없습니다. 그 아들을 대신해서 죽겠다고 하면 세상이 가만히 있지를 않습니다. 그 아들을 위해서 죽는다고 하면 누가 그것을 용납하겠습니까? 그러나 사상이 달라서 그 아들이 사형 선고를 받았는데 아들을 대신해서 죽겠다고는 부모가 말할 수 있습니다. 실제 세상은 독제 정권이 들어서면 이러한 일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부모라도 못 합니다

우리나라에도 극악무도한 사형수들이 지금도 감옥에 있습니다. 그들의 부모가 그들을 위해서 죽는다고 해 보시기 바랍니다. 세상은 그 부모를 칭찬하는 것이 아니라 더 욕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런 우리를 대신 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게 하셨습니다.

로마서의 말씀입니다

3장에서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라고 미리 말씀을 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이제 5장에 와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말씀을 하려고하니까 그 사랑을 깨달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죄 입니다 그래서 율법을 보고 죄를 깨달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율법을 보고 죄를 깨달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죄를 안 짓기 위해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제가 살인을 하라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성경을 모르면 오해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아니 솔직히 말씀을 드려서 이 시대 교인들이 이 로마서를 본다 해도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이해를 하지 못하는 것은 그들이 율법을 지키고 있는 것 한 가지만 보아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렇게 율법을 지키는 행위가 영적으로 살인을 하는 행위라는 것을 누가 깨달을 수 있겠습니까?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누구를 위해서 죽으셨는가를 알면 됩니다. 그러면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어떤 도덕적인 죄를 진 것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아니라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해서 사형 선고를 받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인생은 모두가 그런 죄를 진 사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죄인들을 위해서 죽으셨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율법을 지키면서 의인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의로 의인이 되었던 이스라엘이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서 빤히 알면서도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 율법의 행위가 하나님의 사랑을 거절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이 누구를 위해서 죽으셨습니까? 의인을 위해서 죽으셨습니까? 선인을 위해서 죽으셨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처음부터 율법을 지키지 못한 죄인을 위해서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것을 구약 성경에서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그들이 율법을 지키면서 의인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죄를 지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더 의롭게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는 악을 행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계속해서 말씀을 드리지만 그 율법을 지키는 것이 조금 더 의롭게 사는 문제라면 우리는 분명히 율법을 지켜야 합니다. 또 그렇게 되면 사도 바울이 기록한 모든 성경 아니 모든 선지자들이 기록한 성경을 우리는 더 이상 보아서는 안 됩니다

율법 의롭다 함입니다.

의롭다 함을 받으면 생명을 얻고 의롭다 함을 받지 못하면 사망이 찾아온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율법을 보는 시각을 바꾸지 않으면 절대로 이 율법주의에서 벗어나지를 못 합니다 이제까지 거의 모든 교회가 바로 이 문제 때문에 율법을 지켰습니다.

그런 문제가 아닙니다.

의롭다 하심을 받느냐는 문제입니다 성경은 정의를 하고 있습니다. 율법으로는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다고 분명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율법 아래 있는 우리 인생은 반드시 죽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반드시 죽어야 하는 우리 인생들에게 새로운 것을 보여 주셨고 그것이 우리 안에 탄생이 되어 있는 하나님의 영입니다

육체는 율법 아래 있습니다.

그래서 모두가 죄인이라서 반드시 죽어야 합니다. 그런 우리 인생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해서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탄생이 되게 하셨습니다. 우리 육체는 율법 아래 있어 사형 선고를 받았지만 그 영은 율법 아래 있지 않게 함으로 해서 영원히 살게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이 영의 탄생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모르고 계속해서 율법주의에 빠지고 있습니다. 그 율법의 행위로는 저주를 받는다고 분명하게 말씀을 하고 있어도 율법을 지키고 있는 담대함을 보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떠한 사랑을 주셨는가를 모르기 때문에 이 시대 교인들이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이러하여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실증하셨습니다

반복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6절에서는 우리가 연약할 때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8절에서는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생명에 대한 연약함입니다. 그리고 생명에 대해서 죄인 되었을 때입니다 이 세상을 살면서 도덕적인 죄를 몇 가지 진 것으로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율법을 그렇게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율법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런 성도만이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라는 이 말씀을 바로 깨달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라는 그 말씀은 우리가 사형 선고를 받아서 죽어야 할 때라는 말씀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죄가 아닙니다. 성경은 죄인은 죽는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는 사람들이 문자는 잘 알고 있지만 그 안에 있는 뜻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죄인 되었습니다.

세상의 상식을 가지고 성경을 보지마시기 바랍니다. 세상에서는 같은 살인을 했어도 사형 선고를 받는 사람이 있고 또 무기 징역을 받는 사람이 있고 또 징역을 몇 년 받아서 감옥에서 살다가 형기를 마치고 다시 새 삶을 찾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죄인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죄인이라고 할 때는 반드시 죽어야 하는 죄인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계속해서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생명이 죽는 죄인을 말씀하는 것이지 이 세상의 죄인과 같이 형기가 서로 다른 죄를 진 것을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생각에서 벗어나지를 못하면 그 사람은 죽을 때까지 율법을 지키게 되어 있습니다.

베드로전서2:24절을 보겠습니다. (379)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입니다

우리가 사형 선고를 받았을 때입니다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죄인입니다 그러면 반드시 나무에 달려 죽어야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죽어야 하는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우리 죄를 담당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냥 죄인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죄인이라는 말씀을 보면 막연하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죄라고 하는 것부터 잘 알아야 합니다. 그런 막연한 죄인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죽어야 하는 죄인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죽을 죄를 짓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나무에 달려 죽으셨다면 어떻게 됩니까? 그것은 주님께서 괜한 일을 하신 것밖에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시대는 자기들이 죄인이라고 하면서도 주님이 십자가에서 괜히 자기 혼자서 지신 것으로 만들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이 세상 죄가 큽니까?

그래서 주님이 우리를 대신해서 나무에 달려 친히 죽으셨습니까? 세상 죄가 커서가 아닙니다. 내 개인의 죄가 그렇다는 것을 성경은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기독교인들이 말은 참 잘 합니다. 자기를 위해서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고 합니다. 그런 그들이 자기 죄가 죽을 죄인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세상에 죄를 짓지 않은 의인은 아주 없습니다.

이 죄가 그저 세상의 죄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세상에 나무에 달려 죽을 죄를 짓지 않은 사람이 아주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이는 우리 죄로 인하여 죽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죽을 죄를 지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셨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죄로 죽으셨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우리가 죽을 죄를 지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죽으셨습니다. 그냥 막연하게 죄인이라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은 다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율법을 보고도 자기가 죽을 죄를 지었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면 그는 성경을 아무리 보아도 계속해서 율법을 지키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그저 하나님은 사랑이라는 성경의 문자를 앵무새처럼 말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정도는 이 세상에서 어느 정도 지적인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다 할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그것이 아니라 어떠한 사랑을 보여 주셨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 사랑입니다

우리 죄인을 위해서 대신 죽으셨습니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것은 죄에 대하여는 죽고 의에 대하여는 살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죄에 대해서는 이미 죽은 자가 되었습니다.

언제 죽었습니까?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 2000년 전에 우리는 죄에 대하여 죽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죄를 짓기도 전에 우리는 죄에 대해서 죽었습니다.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나는 죽을 죄를 지었는데 내가 죄를 짓기도 전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죄에 대하여 죽은 자가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어느 종교에서 이러한 사랑을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까? 세상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사랑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랑을 모르면서도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이 시대 기독교인들보다 이스라엘은 문자적으로 성경을 더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마귀의 자식이라는 것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왜 사랑을 하셨습니까?

하나님께서 왜 죽을 죄를 진 우리 인생들을 위해서 대신 죽으셨습니까? 우리 인생들과 같이 살기 위해서입니까? 그것이 아니라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육체는 죄에 대해서 죽었습니다.

그리고 의에 대하여 살고 있습니다.

사람이 사는 것은 육체가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는 내가 죽었다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내 육체와 정과 욕심은 이미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죄에 대하여는 죽었습니다.

우리 육체는 이미 죽을 죄인이 되어서 죽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그 죽은 육체로 살려고 무던히도 애를 쓰면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죄에 대해서 죽었다고 말씀을 하는데 살고자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육체가 죽었다는 것이 믿어지지가 않으면 율법을 지키게 되어 있습니다.

이제는 의에 대하여 살고 있습니다.

죄인인 내 육체는 죽고 이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그리스도의 영이 살아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에서 이 영의 비밀을 모르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안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들을 사랑하십니다. 그러나 육체를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에 대하여 죽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육체가 아닙니다.

그 육체를 사랑하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것이 아닙니다. 그 육체는 이미 죄에 대하여 죽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도무지 받아들이지를 못하고 있고 그 말씀을 깨닫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의에 대하여 산다는 말씀도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입니다

그러나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죄를 져서 죽어야 하는 우리 육체를 사랑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죄가 있는 우리 인생을 사랑하실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랑을 하고 싶어도 율법 때문에 사랑할 수 없습니다. 율법으로 하면 우리는 반드시 죽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육체를 살리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율법을 범하는 일이 되고 그렇게 되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역시도 무의미 하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영입니다

거듭나게 하심으로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우리 육체는 썩어 없어지지만 그런 것이 아닌 영원히 썩지 않고 더럽거나 쇠하지 않는 것으로 우리에게 주시고 사랑하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무엇을 사랑하시는 줄도 모르고 그저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말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탄생이 되었습니다. 그 영을 사랑하셔서 우리와 영원히 살기를 원하시고 있습니다. 우리 육체가 아니라 거듭난 영을 사랑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이 영의 탄생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그것은 순전히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영의 탄생을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이 영이 산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거듭남이 무엇인가도 모르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반드시 죽어야 합니다.

죄에 대해서 죽어야 합니다. 그리고 반드시 의에 대하여 살아야 합니다. 그 말씀은 죄를 진 우리 육체는 죽어서 썩어 없어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영이 우리 안에 하늘로부터 탄생이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신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영을 살리기 위해서입니다.

죄를 진 육체를 살리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것은 죄로 인하여 죽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도 모르고 성경에 문자를 보고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아무리 말을 해도 그가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확증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의로 인하여 살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말씀입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오셔서 하나님의 사랑을 알 수 있게 감동을 해서 우리 마음에 부어주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영의 일입니다

성령이 오시지 않고는 어느 누구도 깨닫지를 못 합니다 반드시 성령이 오셔서 성령으로 난 영이 있는 성도만이 이 영의 일을 깨달을 수 있고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죄를 진 신체를 살리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죄로 인하여 죽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영, 점도 없고 흠도 없는 그 영으로 살게 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3:18절을 보겠습니다. (381)

그리스도께서도 한 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영의 일입니다

막연하게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왜 성경이 지혜를 말씀하고 있고 지식을 말씀하고 있고 총명을 말씀하고 있는가를 아시기 바랍니다. 솔직히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거의 다 샤머니즘에 빠져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제가 볼 때는 전혀 아닙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아니라 기독교라는 종교에 의해서 그들의 교리를 따라 이 세상 종교에서 생활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 글을 보고 기분이 나빠도 어쩔 수 없습니다. 자기가 어떻게 구원을 받는지도 모르는 그들은 이스라엘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막연하게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이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다고 하는 이 말씀도 이해를 못하고 있는 그들이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까?

죄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 하셨습니다. 그렇게 하신 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신 일입니다 그렇게 주님께서는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 살리심을 받았다면 예수 그리스도와 내가 하나라면 나 역시도 그렇다는 말씀입니다

믿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내가 하나입니다 그렇다면 주님께서 육체로는 죽이심을 당하셨으면 우리 역시 육체로는 죽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영으로 살리심을 받았으면 우리 역시 영으로 살리심을 받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나 믿지를 않고 있습니다. 자기 육체가 죽었다는 것도 믿지 않고 영으로 살리심을 받았다는 것도 믿지 않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영으로 살리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거꾸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 육체가 죽지를 않고 있습니다. 그 육체가 살아서 죄를 짓게 하는 율법을 지켜서 저주를 받게 하고 있습니다.

내가 너희 안에 너희가 내 안에

이 말씀을 알면 뭐 합니까? 문자로 그것을 아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도리어 그 아는 것이 걸림이 되고 있습니다. 차라리 모르면 세상 죄인으로 살다가 죽으면 그것으로 끝이 나는데 알량한 사람의 이성의 지식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거절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자기에 대한 사랑을 우리에게 확증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신 것이 무엇인가 하면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이 시대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있습니까? 육체가 살아서 율법을 지키고 있는데 그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안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의 육체가 죽지 않으면 절대로 영으로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내 육체와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 압니다

문자는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의 사랑을 우리에게 어떻게 확증하셨는지도 모르면서 문자를 아는 것으로 자기가 하나님의 사랑을 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도 성경을 보면 알 수 있는 그것을 가지고 지혜가 있다고 자랑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그렇게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것은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럼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인 성도는 역시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았다는 말씀입니다 이 영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기독교입니다

사실 그들에게 복음을 전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잘 알고 있습니다. 이 영의 일을 말씀을 드리면 도무지 이해를 하지 못 합니다 사실 이해를 한다는 것이 더 이상한 일입니다 성경을 거의 육의 일로만 보아온 그들에게 영의 일을 말씀을 드리면 동문서답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요한일서4:9절을 보겠습니다. (392)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이런 말씀을 너무 쉽게 보고 있습니다. 우리를 살리려 한다고 말씀하니까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셔서 우리 죽은 신체를 살리시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 죽은 신체를 살리십니까?

성경 어디에 우리 육체를 살리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는 이 말씀을 보고 자기 육체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는 그리스도의 사람입니다 육체는 이미 마귀에게 내어 주어 죽었습니다. 주님께서 육체로 죽으실 때 우리도 함께 죽었습니다.

그 죽은 육체를 살리십니까?

성경 어디에도 육체를 살리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를 살리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 우리 육체를 살리신다고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도 모르면서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사랑하신다고 성경의 문자를 보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십니다.

우리의 무엇을 살리시는 줄을 모르고 막연하게 우리를 살리신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 무엇을 살리시는 줄도 모르면서 성경에 그렇게 기록이 되어 있으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살리신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사는 줄도 모르고 그저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고 하니까 집단 최면에 걸려 구원을 받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살리는 것은 영입니다

우리 육체가 아닙니다. 육체는 이미 죽었습니다. 그 죽은 것을 살리시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죄가 있는 우리 육체를 살리시겠다는 것이 아니라 죄가 없는 그리스도의 영을 살리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정말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잘한 것 물론 있습니다.

그러나 남들이 알지 못하는 죄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육체를 살리시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천국은 잘한 것만 밝혀지는 것이 아니라 죄도 다 그대로 드러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만약에 우리 육체가 구원을 받으면 내가 지은 죄가 낱낱이 다 들어나게 됩니다.

자신 있습니까?

천국에서 영원히 사는데 자신이 있습니까? 내 죄가 드러나도 천국에서 살 수 있는 자신이 있느냐는 말씀입니다 여러분들은 잘 살아서 자신이 있는지 몰라도 저는 자신이 없습니다. 만약에 그런 천국이라면 저는 차라리 포기를 하고 이 세상에서 죄인으로 살다가 죽고 말겠습니다. 세상에서도 밝혀지지 않은 죄가 천국에서 영원히 살면서 모든 사람에게 밝혀진다면 저는 솔직히 그런 천국은 가고 싶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착각합니다.

모르겠습니다. 솔직히 저는 그렇게 살지를 못해서 자신이 없습니다. 그러나 나름대로 잘 산 사람은 자신이 있다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마음에 있던 죄, 그리고 아무도 모르는 그 죄를 천국에 있는 구원을 받은 성도들이 다 알고 있다면 저는 솔직히 얼굴을 들고 다니지 못할 것 같습니다. 아니 그곳은 천국이 아니라고 믿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사람의 생각을 가지고 말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에서 어떻게 말씀하고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셔서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에서의 말씀과 같이 육체로는 죽고 영으로 살리려 하심이라는 말씀입니다

신학이 무엇입니까?

그것이 성경보다 우선이 되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기독교의 교리가 성경보다 권위가 있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성도는 성경을 보고 성령의 감동으로 이 영의 일을 깨닫고 있습니다. 그가 신학 박사면 뭐하고 신학교 교수면 뭐 합니까? 자기가 어떻게 구원을 받는지도 모르고 있다면 미련한 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를 살리시는 것입니다

어떻게 살리셨는가 하면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죽으심으로 우리 역시 그리스도와 함께 그 육체가 죽고 영으로 살리심을 받은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 역시 영으로 살리심을 받는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아마도 그리스도편지를 많은 사람이 본다면 이단이라고 정죄를 할 것이 너무도 분명합니다. 이 영이 산다는 그것으로 이단이 되고 있습니다. 기독교 조직신학에서 그들이 배운 것이 신체의 구원이기 때문에 이단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만 이단이 아니라 율법을 지키는 것이 악한 일이라는 것도 이단입니다

성령도 마찬가지입니다

진리의 영이라고 하면 이단이 됩니다. 성경 어디에도 하나님이라고 비유조차도 없는데 자기들이 만들아 놓은 그 교리 때문에 이단이 되고 있습니다. 이단이 되라고 하면 기꺼이 됩니다. 그러나 지혜가 있는 성도는 어느 말씀이 성경과 맞는가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면서 묵상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 분은 생명입니다 어느 생명인가 하면 육체의 생명이 아니라 영원히 죽지 않는 생명이라는 말씀입니다 그 생명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요한복음에서 처음부터 거듭남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거듭나는 것이 무엇인지 조차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요한일서3:1절을 보겠습니다. (390)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니라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떠한 사랑을 주셨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 죽어야 하는 사형 선고를 받은 죄인을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셔서 죽게 하셨습니다.

성도입니다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와 세상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절대로 아닙니다. 그렇다면 성경은 틀렸습니다. 세상이 교회에 있는 사람들을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라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성경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보고 있습니다.

교회도 세상입니다

다수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 시대도 기독교라는 종교가 다수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 기독교가 바로 세상입니다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만 알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있습니까?

알고 있다고 하는 그들이 어떻게 신체의 구원을 말하고 있습니까? 교회라는 세상은 성도들을 알지 못 합니다 아니 설령 알아도 도무지 그들은 이해하지도 못하고 깨달을 수도 없습니다. 이 영의 일을 아무리 그들에게 이야기를 해도 도무지 무슨 말씀인 줄을 알지 못 합니다

복음을 전해 보시기 바랍니다.

율법 한 가지만 해도 전혀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면서도 율법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똑같은 성경을 보고 있지만 전혀 다르게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같은 성경을 보면서도 정 반대로 이야기를 할 수 있는지 그것도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가 하면 하나님께 로서 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자기들도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지만 서로 다르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지키고 있고 우리는 율법을 안 지킵니다. 그들은 외식을 하고 있고 우리는 외식을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율법을 안 지키고 외식을 하지 않은 것을 보면서 믿음이 없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영의 일입니다

사실 이 영의 일은 성령이 오신 성도와 그렇지 않은 사람과는 전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성령이 오시지 않은 사람의 입장에서는 자기들이 아는 것을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두 사람이 대화를 하면 서로 동문서답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누가 이깁니까?

육체적으로는 성도가 집니다. 분명히 진리를 전하고 있지만 다수를 이루고 있는 세상에서는 그들이 주인이기 때문에 우리는 지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지는 것을 보면서 그들은 더욱 우리를 알지 못 합니다 그들의 상식으로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이긴다고 배웠기 때문에 세상에 지는 우리를 알려고도 하지 않고 알지도 못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누가 하나님의 자녀인가를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떠한 사랑을 주셨는가를 알고 있는 우리 성도가 자녀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았습니다. 그 영으로 우리 역시 살리심을 받은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며 그 사랑을 받은 자가 주님이 오시는 날에 구원을 받아 부활의 형상을 입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