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로마서 강해(오직 믿음)

32-1,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 하리요

윤주만목사 2024. 7. 17. 09:59

로마서4:1절을 보겠습니다.

그런즉 육신으로 우리 조상 된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 하리요

오직 믿음입니다.

우리 인생들이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왜 오직 믿음인가를 사도 바울이 로마서3장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이 말하는 바를 말씀하면서 율법을 단 한 가지라도 지키는 사람은 반드시 그 의로 살아야 하고 또 그 한 가지만 지켜서는 안 되고 모든 율법을 항상 다 지켜야 하는 의무가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의롭게 되는 방법입니다

그것은 율법을 다 지켜서 되는 방법도 있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되는 방법도 있습니다. 계속해서 이 율법에 대해서는 바르게 말씀을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율법에 대해서 너무 많은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율법을 바로 알지 못하면 사망을 당하기 때문에 말씀을 드리고 또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으시기를 바랍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반드시 의롭다 함이 따라온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내가 어떤 마음을 지켰든 성경을 보고 율법을 지키면 의롭다 함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는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대로 가난한 자를 배부르게 하기 위해서 도왔다 해도 반드시 의롭다 함을 받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습니다.

자기가 율법으로는 의롭다 함을 받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이제 율법을 버리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의 의를 얻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으로는 안 된다는 것을 아는 성도만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가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의롭다 하심입니다.

성경은 그것을 어떻게 받아야 하는가를 분명하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율법으로는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제 율법 외에 나타난 한 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다 영의 일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신체가 아니라 우리 신체는 이미 죄를 범해서 저주를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습니다. 그 신체가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탄생이 되는 그 영이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어서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구원을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영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 주셔서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습니다. 그것을 예수님께서는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으면서도 무엇이 의롭다 하심을 받는지를 모르고 있다면 그는 구원을 받을 수 없는 불쌍한 인생이 되고 만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의롭다 하심을 받았습니다.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자 되었습니다. 율법의 행위가 아닌 오직 믿음의 법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다고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어떻게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는 가를 바로 알아야 하고 또 그것은 반드시 율법의 행위를 버렸을 때 내 안에서 일어나는 하나님의 역사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습니다.

그런 성도들에게 율법을 폐할 수 있겠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절대 그럴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 때문에 로마서3장까지 사도 바울이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는 말씀을 했어도 사람들이 깨닫지를 못하고 다시 율법을 지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어느 한 말씀을 잘못 해석함으로 인하여 이제까지 복음이 다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을 잘못 기록한 것이 아니라 성경을 서로 반대가 되게 기록을 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성경을 보고 깨닫지를 못해서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을 뒤집어 버리고 다시 행위를 강조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율법을 폐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문자적으로 그럴 수 없다고까지 말씀을 하니까 더욱 더 사람들은 율법을 폐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아니 도리어 굳게 세운다고 말씀을 하니까 이제는 반드시 율법을 지켜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고 율법을 지키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330절까지의 모든 말씀은 율법을 지키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31절 말씀 하나로 모든 것을 다 뒤집어 버린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인데도 조금도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아니 문자적으로 보면 생각하고 말 것이 없다 보니까 이때는 율법을 지키면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다 하고 이제 와서는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이 그렇습니다.

31절의 말씀을 문자 그대로 보면 반드시 율법을 지켜야 합니다. 아니 율법을 지키지 말라고 하는 사람이 도리어 이상한 사람입니다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어도 성도로서 이 세상을 살아가려면 율법을 지켜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고 지키는 것 뿐 아니라 굳세 세워야 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은 폐하여 졌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사람은 율법이 말하는 바대로 율법 책에 기록이 되어 있는 모든 율법을 항상 다 지키지 못하면 반드시 저주를 받습니다. 그런데 율법을 폐하지 않고 율법을 도리어 굳게 세운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성경을 보면서도 생각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앞에서 무슨 말씀을 했는가도 모르고 있습니다.

율법을 폐할 수 없습니다.

그럴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다고 해서 율법을 아예 안 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율법을 보아야 하는가 하면 율법을 보면 그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가 담겨져 있고 무엇보다도 영의 일이 있기 때문에 그 영의 일을 알아서 도리어 율법을 굳세게 세워야 합니다.

살인하지 말라는 율법을 보았습니다.

율법을 폐하여 졌고 율법으로는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다고 해서 이 율법을 안 보면 어떻게 됩니까? 내가 그릇 살인한 자라는 것을 모르게 되고 또 도피성으로 피할 수 없게 됩니다.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워서 우리가 도피성으로 피해서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표면적 율법이 아닙니다.

문자 그대로의 율법을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면적 율법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살인을 하지 말라는 율법의 이면적 율법은 영혼을 살인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 율법을 도리어 굳게 세워서 이제는 더 이상 살인을 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우상 숭배하지 말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우상 숭배를 이 시대는 거의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는 성령의 감동을 받아 율법을 보고 우상 숭배가 무엇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제는 율법을 도리어 굳게 세워야 합니다. 우상 숭배를 하지 않기 위해서 율법을 지키지 않고 있고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과는 더 이상 교제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누가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는 사람입니까?

문자 그대로의 율법을 그대로 지키는 사람이 그래서 보이는 우상을 섬기지 않은 사람이 율법을 굳게 세우는 사람입니까? 율법을 지키는 사람의 행위가 우상이라는 것을 알고 이제 더 이상 율법을 행위를 하지 않은 사람이 율법을 굳게 세우는 사람입니까? 이 시대는 우상이 무엇이라는 것조차 모르다 보니까 이 말씀을 깨달을 수 없습니다.

율법을 굳게 세우시기 바랍니다.

문자 그대로의 율법이 아닙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깨닫고 있는 이면적인 율법을 굳게 세우라는 말씀입니다 그 율법을 굳게 세워야 우리는 전에 그릇 살인을 한 자로서 도피성으로 피해서 보수자가 따라오는 것을 피해서 살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어느 율법을 굳게 세워야 하는 줄을 모르고 다시 이스라엘과 같이 율법주의로 가고 있습니다.

현대인의 성경을 보겠습니다.

그러면 우리 조상 아브라함에 대해서는 어떤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까?”

그런즉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느 말씀에 대해서 그런즉 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로마서319-26절까지의 말씀을 계속해서 연결을 해서 그 말씀에 대해서 그런즉 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그런즉 이라는 부사가 나오고 있습니다. 이 부사는 앞 내용으로 미루어 뒤 내용의 근거를 짐작해 낼 수 있을 때 쓰여 앞뒤 문장을 이어 주는 말입니다

어떻게 의롭다 하심을 얻었습니까?

로마서 319-26절의 말씀을 기억하면서 그런즉 이라는 단어를 생각하면서 보아야 합니다. 이제까지 사도 바울은 성도가 믿음으로 어떻게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는가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아브라함을 예표로 해서 아브라함이 그러면 어떻게 의롭다 하심을 얻었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늘 말씀을 드립니다.

히브리어 헬라어 조금 아는 것으로 자랑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으로는 성경을 바로 풀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국어를 알아도 성경을 바로 풀 수 없는데 그가 아무리 박사라 해도 히브리어 헬라어를 우리나라 말과 같이 자유롭게 구사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은 국어입니다

방언의 은사를 받은 사람들이 이 성경을 편찬 했습니다. 우리가 보고 있는 성경은 사실 구원을 받는데 있어서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설령 히브리어를 모르고 헬라어를 모른다 해도 국어로 편찬이 되어 있는 성경만 보아도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지혜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바로 아시고 헛된 일에 시간을 낭비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방언을 하면 유식해 보입니다.

그리고 지적으로 보이는 것은 사실입니다 저 역시도 그런 마음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 방언을 자유롭게 구사하기까지 시간이 너무 아까운 생각이 듭니다. 제가 그것을 시간을 낭비하면 지금 쓰고 있는 설교는 작성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한때는 조금 공부를 하려고 하다가 이제는 방언을 하는 사람들에게 맡기고 저는 포기를 하고 있습니다.

빌립보서3:12절을 보겠습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아브라함입니다

사도 바울이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가 무엇을 얻었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성경이 무엇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는 줄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 영혼의 구원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생입니다

오직 그것만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모든 것을 이 세상에서 다 한다 해도 구원을 얻지 못한다면 더욱 불쌍한 자가 되고 만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반대로 아무 것도 못했을지라도 영생을 얻었다면 그는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입니다

그 말씀을 통해서 명확하게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이 바로 영생입니다 부자가 있습니다. 그가 누구입니까? 교회 안에서 행위를 통해서 남들로부터 하나님을 믿는 성도라 인정을 받고 살아가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의 행위가 얼마나 좋은지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자색 옷입니다

그것은 왕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으면 천년동안 왕 노릇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이 이 부자는 세상에서 구원을 받은 성도로 살았습니다. 그리고 베옷을 입었습니다. 누가 보아도 구원을 받을 성도와 같이 살았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그가 음부의 고통 중에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상처가 있는 나사로는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을 주어먹고 살았는데 그는 아브라함의 품에 있었습니다. 그가 어떻게 이 세상에서 살았는가는 중요하지가 않다는 것을 분명하게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역시 부자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무엇을 위해서 삽니까?

성도는 영생을 얻기 위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기가 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지를 망각하고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 너무 많이 있습니다. 영생을 얻기 위해서 산다고 하는 그들이 부자가 되기 위해서 서로 경쟁을 하고 있고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그것을 자랑하고자 간증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행위입니까?

그것은 더러운 옷과 같다고 이사야서에서 분명히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으로는 의롭다 하심을 받는 것이 아니라 저주를 받는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평생을 십일조를 하고 평생을 주일을 지키면서 살고 평생을 주의 일을 하면서 살았습니까? 그것이 도리어 더러운 옷이 되어서 이 부자와 같이 음부의 고통 중에 들어간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영생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에서도 아브라함이 얻은 것이 무엇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서도 목적을 모르고 살아가고 있다면 그는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자가 되고 만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차라리 예수 그리스도를 안 믿는 것이 그에게 더욱 유익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습니까?

영생을 얻었다는 것을 이제부터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조상이라고 하는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는가 하면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아 영생을 얻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교회 안에만 들어오면 마치 자기가 영생을 얻은 것으로 생각하고 이제 더 이상 영생에 대해서는 생각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빌립보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간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영생을 못 얻었습니까? 그가 구원의 확신이 없어서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영생을 얻었지만 그는 자기 구원에 대해서 늘 확증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입니다

성도가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그것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 다 영생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평생 성경을 보면서 정말 이것을 붙잡으려고 좇아가야 합니다. 구원의 확신이 없어서가 아니라 구원을 받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이미 구원을 받은 자입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부정하고 흔들려서 이 말씀을 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사도 바울도 알고 있지만 성경에서 영생의 말씀을 다 깨닫는다는 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평생을 성경에서 그 말씀을 알기를 힘쓰는 성도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입니다

그가 무엇을 얻었습니까? 그것을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가 영생을 얻었다는 것을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믿지를 않고 있습니다. 오직 믿음이 아니고는 영생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성경을 보고 알면서도 율법에 대한 바른 정의가 되어 있지 않다 보니까 저주를 받는 율법을 함께 지키면서 음행의 늪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습니다.

영생입니다

거지가 되어도 영생을 얻어야 합니다. 우리말에 꿩 잡는 게 매라는 말이 있습니다. 나사로와 같이 거지가 되어도 구원을 받으면 됩니다. 거지가 되지 않으려고 하다가 구원을 받지 못한다면 그는 정말로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거지면 어떻습니까?

율법주의자들이 볼 때는 어차피 우리 성도는 방종주의자처럼 보이고 있습니다. 아니 율법을 하나도 지키지 않기 때문에 그들이 볼 때는 우리 성도는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는 사람입니다 모든 사람이 그렇게 생각할지라도 우리는 이미 꿩을 잡았습니다. 사도 바울이 지금 그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영생입니다

그것을 잡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마음을 다른 곳에 빼앗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도는 영생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정말 거지와 같이 모든 것을 다 잃는다 해도 영생을 얻을 수 있다면 그것을 좇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도는 세상 사람이 보아도 영생을 얻을 사람과 같이 안 보인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제까지 우리가 무엇을 가지고 교제를 했습니까?

바로 이 영생을 얻기 위해서 교제를 했습니다. 만약에 우리도 종교인들과 같이 그렇게 되기를 바랐다면 지금 우리의 교제는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니 그런 교제를 하기 위해서 아까운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면 차라리 세상에서 평안하게 사는 것이 더 유익합니다.

다 버리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단 한 가지 영생을 잡이 위해서 좇아가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어차피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다 썩어 없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 썩을 위해서 일을 하지 말고 썩지 아니할 영생을 위해서 좇아가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본질을 잃어버리고 자기들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거대한 종교에 포승으로 묶여 끌려가고 있습니다.

오직 영생입니다

목사가 되면 뭐 합니까? 장로가 되면 뭐 합니까? 아니 세상 모든 사람들로부터 성도라는 칭함을 받으면 뭐 합니까? 그리고 교회 건물을 짓고 교회를 위해서 모든 것을 다 하면 뭐 합니까? 그런 것은 정말 쓰레기와 같이 버리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이 얻는 것을 얻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왜 성경에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고 그를 통해서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고 있는가를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쓰레기로 버려야 하는 그것에 시체와 같이 썩어 냄새가 나는 그것에 마음 빼앗기지 마시고 오직 내 생명에 대해서 그것을 붙잡으러 좇아가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요한복음5:39-40절을 보겠습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성경을 왜 봅니까?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이 시대는 성경을 왜 보는 줄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자기가 교회에 나와서 성경을 보면서도 왜 성경을 보아야 하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성경에 누구에게 대해서 증거를 하고 있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이 성도의 삶입니까?

예수님께서는 이 성경이 내게 대해서 기록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 목사들은 성경을 보면서 성도의 삶이라고 하면서 도덕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누가 맞습니까? 예수님께서 성경에 대해서 분명히 가르쳐 주고 있지만 목사라고 하는 사람들이 신학을 공부하고 성경만 본다고 하는 그들이 성경에 무엇이 기록이 되어 있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안 믿었습니까? 그들은 사람의 이성으로는 하나님을 누구보다 잘 믿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영생을 얻기 위해서 하나님께 가지를 않았습니다. 성경을 보면서도 그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볼 수 없었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입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복음을 보아야 하는데 성경을 보면 다 율법을 보고 있습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에서 율법의 행위로냐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냐고 묻고 있지만 이 시대는 성경을 보면 다 율법의 행위가 보입니다.

어느 정도입니까?

성경을 보면 복음이 보여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시대 성경을 보면 다 율법의 행위를 보고 있습니다. 성찬식 한 가지만 보아도 그들이 성경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을 보고 복음이 보였다면 절대로 성찬식이라는 종교적인 의식을 하지 않을 수 있는데 그것이 율법의 행위라는 것을 모르고 그렇게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성경은 복음과 율법입니다

이 두 가지가 생명을 얻는 방법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시고 광야에서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에 너희 앞에 생명과 복과 저주와 사망이 있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생명과 복을 좇아간 것이 아니라 사망과 저주를 따라 갔습니다. 주님이 오셨을 때 그들은 영생을 얻기 위해서 주님 앞에 오지 않았습니다.

교회 안입니다

그곳에는 두 가지가 놓여 있습니다. 생명을 얻는 것과 사망을 당하는 것이 있습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율법의 행위로는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어서 저주를 받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주님께 가시기 바랍니다.

교회에 나와서 주여 주여 한다고 주님 앞에 나온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성경을 상고하시기 바랍니다. 늘 깨어 평생을 성경을 상고하면서 영생을 얻기 위해서 힘써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성경을 보면서도 주님께 가지를 않고 율법의 행위에 빠져 들어가고 있습니다.

영생입니다

다른 것을 얻으려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다 탐욕이고 정욕이라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성도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영생을 얻기 위해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고 있습니다. 그 외에 교회 안에서 하고 있는 종교적인 모든 행위는 다 정욕이고 탐욕이라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하고 있는 모든 행위가 그렇습니다.

십일조를 드리고 있습니까?

주일을 지키고 있습니까? 일주일에 그 많은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까? 그것이 다 정욕에서 나온 것임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도는 성경에서 영생을 얻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말씀을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서 복음에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의를 믿음으로 영생을 얻고 있습니다.

주님께 가시기 바랍니다.

어디로 갈 수 있습니까? 우리에게 성경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보고 있는 성경을 통해서 주님께 갈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 시대는 성경을 안 보고 있습니다. 성경을 본다 해도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아니라 율법의 행위에 빠져 들어가고 있습니다.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는 사람은 성경을 안 보는 사람과 같습니다.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왜 성경을 보아야 하는가 하면 영생을 얻으려면 주님께로 갈 수 있는 곳이 성경이기 때문입니다 설령 그리스도편지를 통해서 복음을 가르쳐 드린다 해도 성도는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부탁드립니다.

시간이 없다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충분한 시간이 있습니다. 세상일에 모든 시간을 빼앗기고 성경을 볼 시간도 없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가르쳐 주고 있는데 성경을 안 본다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정말 마음을 먹고 1년에 한번 정도 본다는 생각을 해도 30년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얻은 것입니다

그는 의롭다 하심을 얻었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면 영생을 얻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역시 이 영생을 얻어야 합니다. 모든 것을 다 버린다 해도 정말 이 영생을 얻기 위해서 좇아가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이 영생에 대해서 말씀을 해 주고 있습니다.

로마서4:2절을 보겠습니다.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얻었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아브라함이 행위로 의롭게 되었더라면, 그에게는 자랑할 것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육신으로 우리의 조상입니다

사도 바울이 자기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가 무엇을 얻었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어서 영생을 얻었습니다. 그가 영생을 얻었다는 것을 주님께서도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를 통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의롭다 함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에 어떻게 의롭다 하심을 얻었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계속해서 믿음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성경을 보면서도 자기들이 어떻게 의롭다 하심을 얻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성경을 보면 율법을 지키지 말아야 하는데 이스라엘이 그랬던 것과 같이 이방의 교회도 역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만일

현실 세계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을 이야기할 때 쓰여 지고 있는 부사입니다 그러니까 절대로 그런 일이 없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서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면 이 말씀은 아브라함도 행위로는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없습니다.

그가 사도 바울의 육신적 조상이라고 해도 행위로서는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사도 바울이 분명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있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아니 그가 아무리 하나님께서 부르신 자기 조상이라고 해서 그래서 그가 구원을 받은 것을 모든 사람이 인정을 한다 해도 행위로서는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정말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아브라함에 멜기세덱에게 십분의 일을 드렸습니까? 그것은 아브라함의 행위입니다 절대로 그것으로는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 멜기세덱에게 십분의 일을 드렸다는 그것만으로 자기들이 십일조를 해야 한다고 하면서 성경에 없는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런 일 없습니다.

현실 세계에서는 있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가 아무리 자기의 육체적으로 조상이라고 할지라도 행위로서는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없다고 사도 바울이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만일이라는 부사를 바로 아시고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는 계속해서 말씀을 드리지만 국어도 모르는 그들이 자기 유식함을 자랑하려고 방언을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행위로서 의롭다 하심을 얻었습니까?

절대로 아닙니다. 그가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드렸습니까? 그가 할례를 받았습니까? 그가 그런 일을 했다 해도 그것으로는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셨는가를 이 시대는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한 행위가 무엇입니까?

그가 조카 롯이 포로가 되어서 잡혀 가고 있을 때 따라가서 구해 내고 오는 길에 멜기세덱을 만나 탈취물 중에서 십분의 일을 드린 것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집에 있는 모든 남자에게 할례를 하라고 해서 할례를 행했습니다. 우리가 창세기를 보아서 잘 알고 있지만 그 외에 아브라함이 의로운 행위를 했다고 할 만한 것이 없습니다.

그런 행위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습니까?

절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만일이라는 부사를 쓰고 있습니다.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서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면 자랑할 것이 있습니다. 행위로서 그가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면 자랑할 것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앞에서 미리 만일이라는 부사를 써서 그럴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도 아닙니다.

이 시대 모든 사람이 믿음의 조상이라고 알고 있는 아브라함도 행위로는 의롭다 하심을 받을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있을 수 없지만 만일 그렇게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면 그는 자랑할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만일입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절대로 없습니다. 그가 아무리 육신의 조상이라는 아브라함이라고 마찬가지라는 말씀입니다 아브라함도 만일 행위로서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면 자랑할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도 행위로서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에베소서2:9절을 보겠습니다.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의롭다 하심을 얻었습니다.

이 말씀은 다시 말해서 구원을 받았다는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이 행위로서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면 그는 분명히 자랑할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그런 일이 없다고 하면서 앞에다 부사 만일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습니다. 절대로 그런 일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왜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행위를 하지 말라고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행위로는 어느 누구도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없으니까 행위를 하지 말라고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행위를 해도 된다는 것이 아니라 만일 행위로서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면 이 말씀은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전제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로 자랑치 못하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로마서에서는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면 자랑할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앞에 만일 이라는 부사를 씀으로 해서 그런 일이 없다는 것을 전체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없습니다.

절대로 그런 일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행위를 하지 말라는 뜻이 포함이 되어 있는 말씀이지만 성경을 보면서도 도무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서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면 이 말씀은 행위로는 그런 일이 없으니까 행위를 하지 마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입니다.

이스라엘의 조상입니다. 그가 행위로서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면 자랑을 할 만합니다, 그러나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주시는 것이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자랑할 수 없다는 것을 에베소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 어느 누구도 행위로는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행위를 버려야 합니다.

왜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자랑치 못하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주시고 있는데 사람들은 이 성경을 보고 행위에 빠져 들어가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자기들이 한 일을 가지고 간증을 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하면서 마음껏 자랑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행위로서 의롭다 하심을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그는 분명히 자랑할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그 앞에 만일이라는 부사를 써서 절대로 그런 일이 없다는 것을 전제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절대로 그런 일이 없다고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절대로 그런 일이 없는 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그 행위를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라는 말로 하면서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아브라함도 안 됩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행위에 너무 깊이 빠져 있습니다. 아브라함도 자랑치 못하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행위로서 의롭다 하시지 않고 그에게 믿음을 주시고 의롭다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성경을 보면 마치 자동화 된 기기처럼 행위에 빠져 들어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왜 아브라함을 세우셨습니까?

그가 행위로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아브라함을 세우셨습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서 만일 아브라함에 행위로서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면 자랑할 것이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행위로서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면 자랑할 것이 있지만 절대로 그런 일이 없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