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4:1절을 보겠습니다.
“그런즉 육신으로 우리 조상 된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 하리요”
이 세상에서는 없습니다.
그가 아무리 믿음의 조상 이스라엘의 조상으로 부르심을 받은 아브라함이라 해도 그런 일이 없다는 것을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말씀을 보면서도 교회 안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이 다 행위에 빠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이 행위를 하면서 무엇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까?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하고 있다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행위를 한다는 말 자체가 성립이 될 수 없는데 말이 안 되는 말을 말이 되게 하고 있는 것이 이 시대 교인들입니다 자기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고 믿음이라고 하면 다 믿음이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만일입니다
아브라함에 행위로서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면 그는 분명히 자랑할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도 안 되는 것을 이 시대는 자기들이 하겠다고 하면서 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도 절대로 그렇게 되지 못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 이 시대는 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하고 있는 행위에 무엇이 따라 온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반드시 의롭다 함이 따라오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교회 안에서 무심히 하고 있는 아니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그 행위 하나가 의롭다 하심이 따라오고 있고 아브라함도 행위로는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했다고 절대로 그런 일이 없다고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버리시기 바랍니다.
아니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이 행위를 하지 말라고 하는 뜻으로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절대로 그런 일이 있을 수 없는데 왜 행위에 하고 있습니까? 행위에 대한 생각을 바로 정립을 하지 못해서 그저 자기들의 이성에 따라 그 행위가 좋다고 생각하면서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없습니다.
어느 누구도 자랑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믿음의 법으로서 의롭다 하심을 받게 하고 있습니다. 만일 아브라함에 행위로서 의롭다 하심을 얻었으면 자랑할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일이 세상에서는 없다는 것을 먼저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이 이렇게까지 말씀을 하고 있는데도 사람들은 행위에 빠져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립니다.
교회 안에서 육체의 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진심으로 믿고 싶어서 하고 있습니까? 어니 조금도 거짓이 없는 마음으로 행위를 하고 있습니까? 그렇게 했을지라도 여러분이 행위를 하는 순간에 의롭다 하심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행위를 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성도는 영의 일을 믿는 것이지 하나님을 위한다고 하는 행위라도 해서는 안 됩니다. 사람들이 이 행위에 대해서 너무 쉽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말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서 하는데 뭐가 나쁘냐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나쁘지 않습니다.
사람의 이성으로는 분명히 좋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어떻게 말씀을 하고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사람의 이성에 아무리 그것이 옳다 해도 성경이 아니라고 하면 아닙니다. 성경에서 행위를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만일이라도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이 말씀은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갈라디아서3:18절을 보겠습니다.
“만일 그 유업이 율법에서 난 것이면 약속에서 난 것이 아니리라 그러나 하나님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에게 은혜로 주신 것이라”
하나님 앞에서는 없습니다.
왜 없는가 하면 그 유업이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아브라함에게 주신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는 자랑할 것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의 행위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면 아브라함은 분명히 자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세상에 있을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은혜입니다
우리가 창세기를 보아서 잘 알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에 의롭다 하심을 받을 만한 행위를 한 것이 없습니다. 굳이 이야기를 할 수 있다면 멜기세덱에게 십분의 일을 드린 그것입니다. 그러나 그것 역시 예표로 보여 주신 것이지 아브라함의 행위라고 보기에는 문제가 많이 있습니다.
은혜입니다
이 시대는 은혜를 모르고 있습니다. 은혜라는 단어는 잘 알고 있지만 은혜가 무엇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거저 주시는 것을 은혜라고 에베소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에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은 아브라함의 어떤 행위도 포함이 되지 않고 순전히 하나님께서 거저 주시는 것이기 때문에 은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구원입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이 영생에 대해서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영생을 모르다보니까 은혜라는 단어는 알아도 자기가 어떻게 은혜를 받았는가를 모르고 아무 것에나 은혜라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자기가 어떤 행위를 하고도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가 되는 것으로 생각하고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셨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은혜가 아닙니다.
자기 스스로 행위를 한 것이지 은혜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기들이 율법의 행위를 하고도 그 행위를 하게 한 것이 하나님이라고 하면서 은혜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면서도 그것을 은혜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어떻게 은혜입니까?
십일조를 드리는 것이 은혜입니까? 주일을 지키는 것이 은혜입니까? 절대로 은혜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은혜가 아니라 저주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저주를 받는 행위를 하고서도 은혜라고 하면 다 은혜가 되는 것이 이 시대 교인들의 생각입니다.
성경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모든 성경은 영생을 주시고자 우리에게 하시고 있는 말씀입니다. 영생을 받은 그것 외에는 은혜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자기가 어떤 행위를 한 것으로는 은혜가 될 수 없습니다. 물론 성경을 보면서 복음을 깨닫고 그것을 교제하고 있다면 그것은 은혜가 될 수 있습니다. 주의 만찬을 먹을 수 있게 하고 있다면 그것은 은혜입니다.
그러나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교회 안에서 하고 있는 행위는 은혜가 아닙니다. 예배가 은혜입니까? 찬송이 은혜입니까? 기도가 은혜입니까? 성찬식을 하는 것이 은혜입니까? 그런 행위들은 은혜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은혜는 거저 주셔서 영생을 얻는 그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어느 누구도 자랑치 못하게 하기 위해서 은혜로 아브라함에게 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탄생이 되고 그 영이 주님이 오시는 날에 영접을 받아 하늘의 신령한 몸을 입고 부활을 하는 그것을 은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육의 일이 아니라 영의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없습니다.
어느 누구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왜 없는가 하면 구원을 알면 답은 간단합니다. 내 안에 탄생이 되는 그리스도의 영이 내가 무엇을 해서 탄생이 될 수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우리의 구원이 신체의 구원이라면 혹시 자랑할 수 있을 것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구원은 우리 안에 탄생이 되어 있는 그리스도의 영이 신령한 몸을 입고 받는 것입니다. 우리 육체의 행위와는 그리고 우리 육체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구원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 육체와 조금이라도 연결 고리가 있다면 자랑할 것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전혀 없이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탄생이 되는 영이기 때문에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내 신체가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면 혹시 자랑할 것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아니 이 시대 교인들은 자기들의 신체가 구원을 받는다고 하니까 그것을 자랑하고 싶어서 육체의 행위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주님을 만나서 자랑하겠다고 하면서 그것을 믿음이라고 하면서 행위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우리 신체의 구원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랑할 것이 더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만약에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에서처럼 아브라함이 구원을 받고 거지 나사로가 구원을 받으면 혹시 자랑할 것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거지로 살면서도 주님을 믿었다고 하면서 거지 나사로가 자랑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비유입니다
예수님께서 실제 그렇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비유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실제 이 세상에 사는 나사로가 구원을 받아 아브라함의 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비유를 통해서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아브라함도 아니고 나사로도 아닙니다. 그들 역시 그리스도의 영이 탄생이 되어서 그 영이 주님이 오시는 날에 구원을 받습니다.
자랑할 것을 찾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분명히 자랑할 것이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만약에서 아브라함의 신체가 구원을 받는다면 자랑할 것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가 행함이 있는 믿음을 보이기 위해서 자기 독자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고 했던 것을 자랑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주님을 만나서 주님 제가 제 아들 이삭이라도 하나님이 번제로 드리라고 할 때 드렸습니다. 하고 자랑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어떻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하나님 앞에서는 자랑할 것이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 앞에는 자기 신체가 부활을 해서 가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 신체가 가면 분명히 자랑할 것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 세상에서 모두가 종교에 빠져 있는데 나는 복음을 깨닫고 율법을 지키지 않고 주님의 복음을 믿어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분명히 자랑할 것이 됩니다. 그러나 그 신체가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자랑할 것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베드로전서1:23절을 보겠습니다.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거듭남입니다.
순수 우리말로는 두 번 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한번 아담의 자손으로 태어나고 또 다시 하늘의 썩지 아니할 씨로 탄생이 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담의 자손으로 태어난 우리 신체는 썩어질 씨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구원입니다
썩어질 씨가 받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것은 말씀 그래도 썩어 없어집니다. 이 시대는 이 거듭남에 대해서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무엇이 어떻게 거듭나는 줄도 모르고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썩지 아니할 씨로 탄생이 되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구원은 썩어질 씨가 받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말씀 그대로 썩어 없어집니다. 그리고 썩지 아니할 씨로 탄생이 되어 있는 그 생명이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썩지 아니할 씨는 썩는 씨가 한 어떠한 행위도 가지고 있지를 않습니다. 썩지 아니할 씨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입니까?
그 역시도 썩을 씨입니다. 사도 바울입니까?그 역시도 썩을 씨입니다. 만약에 그 썩을 씨가 구원을 받는다면 사도 바울은 정말 자랑할 것이 많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썩을 씨가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는 자랑할 것이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무엇이 구원을 받는지도 모르면서 구원을 받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썩을 씨입니다.
그것이 구원을 받으면 하나님 앞에서도 자랑할 것이 있습니다. 특히나 사도 바울 같은 경우에는 그가 어떻게 복음을 전했는가를 성경에서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그가 한 행위를 보면 충분히 자랑하고도 남습니다. 그러나 그 썩을 씨로 된 사도 바울의 신체가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자랑할 것이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구원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모르기 때문에 사람들이 자랑하려고 행위에 빠지고 있습니다. 아니 자랑은 하지 않더라도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자기가 이렇게 믿었다고 말을 하고 싶다고 합니다, 그런 생각이 얼마나 샤머니즘적이라는 것을 모르고 아무 생각이 없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없습니다.
왜 없는가 하면 은혜이기 때문에 없습니다. 그 은혜가 무엇인가 하면 내 안에 썩지 아니할 씨가 탄생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썩지 아니할 씨가 행위로 탄생이 된다면 자랑할 수 있겠지만 오직 믿음으로 탄생이 되기 때문에 우리는 자랑할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의롭다 하심입니다.
그것은 내 안에 영원한 생명이 탄생이 되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늘의 썩지 아니할 씨가 탄생이 되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씨가 하늘의 신령한 몸을 입고 부활을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 앞에 우리가 자랑할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썩어 없어지는 우리 신체가 한 어느 한 행위라도 가지고 구원을 받는다면 자랑할 수 있습니다.
정말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이 구원에 대해서 모르면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나와 있으면서도 자기가 어떻게 구원을 받는지를 아는 사람이 지극히 적습니다. 아니 썩을 씨로 된 그 신체가 구원을 받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랑하고 싶어서 더 행위에 열심을 내고 이 세상에서 불교에서 처럼 더 많은 공덕을 쌓으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가지고 천국에 가려고 합니다.
거기 가서 주님을 만나서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합니다.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의롭다 하심을 받는 것이 무엇이라는 것을 모르다 보니까 불교에서 말하는 그런 생각을 가지고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그 사상이 그대로 교회 안에 있다 보니까 사람들이 모두가 행위에 빠져 있고 더욱 열심을 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구원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그럼 하나님 앞에서 자랑할 것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의롭다 하심을 받는 것을 바로 알면 굳이 자랑하려고 하지도 않고 행위에 빠지지도 않을 수 있습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내 신체가 아니라 내 안에 탄생이 되는 그리스도의 영이 의로운 영이 탄생이 되고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럴 일 없습니다.
절대로 없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우리 썩어지는 신체가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썩지 아니할 씨로 탄생이 된 그러니까 성경으로 난 영이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바로 알면 자랑할 것이 없다는 것을 알고 행위를 버리고 성경에서 복음을 깨닫고 믿을 수 있습니다.
로마서4:3절을 보겠습니다.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이 저에게 의로 여기신 바 되었느니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성경이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하나님께서 그를 의롭다고 여기셨다" 하였습니다.”
성경입니다
이 시대는 성경을 성경으로 보고 있지를 않습니다. 성경을 그저 참고서쯤으로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성경에 이르기를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다 같은 말씀입니다. 우리에게 왜 성경을 주셨는가를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이 시대를 보시기 바랍니다.
이방에 복음이 전파되고 2000년 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러나보니까 수많은 신학자들이 나왔고 자기들 나름대로 성경을 해석해서 글로 남겨 놓았습니다. 그리고 종교가 되어 있는 기독교는 성경을 자기들 마음대로 풀어서 교리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신학교입니다
거기서 무엇을 배웁니까? 성경을 배운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배우는 것은 성경이 아니라 이제까지 신학자들이 남겨 놓은 사상을 배우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는 성경보다 그런 글들이 더 권위가 있다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성경이 어떻게 말하는가는 중요하지 않고 자기가 배운 신학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휴거가 있습니까?
성경 어디에 휴거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그러나 누군가 휴거를 이야기를 하니까 그때부터는 그래도 신학을 공부하고 지적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려고 하면 휴거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어느 한 사람의 주장이 휴거가 마치 있는 것처럼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휴거라는 말씀이 있습니까?
그 단어가 있느냐 없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비유라도 휴거에 대해서 의미적인 말씀이 있다면 우리는 휴거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러나 비유로도 없고 휴거라는 단어도 없는데 이 시대는 거의 맹목적으로 휴거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이 무엇을 말하는가는 중요하지 않고 자기들이 신학에서 배운 것이 중요합니다.
신학,
쓰레기로 버리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구원을 방해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을 방해하고 있다면 신학도 버리고 목사도 버려야 합니다. 성경이 무엇을 말씀하고 있는가를 알아야 하는데 이 시대는 이미 신학에서 자기들의 사상을 다 배워서 나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기초로 해서 성경을 보고 있다고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그 신학이 어떻게 말합니까?
지난번에서 말씀을 드렸지만 신학의 기초가 되고 있는 기독교신학개론이라는 책에서 신체의 구원을 말하고 있습니다. 신학교에 들어가면 모든 사람이 배우는 책입니다. 그 책을 쓴 사람이 루이스 뻘콥입니다. 그 역시도 자기가 배운 신학을 기초로 해서 조직신학 책을 썼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안타깝습니다.
성경이 무엇을 말하는가는 중요하지가 않습니다. 아니 성경을 보고 말씀을 깨달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신학에서 배운 것을 기초로 해서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썩어질 씨와 썩지 아니할 씨가 제대로 보이겠습니까?
정말 다 버리시기 바랍니다.
루이스 뻘콥이 무엇입니까? 칼뱅이 무엇이고 웨슬레가 무엇이고 로이드 존슨이 무엇입니까? 그들이 복음을 전했습니까? 율법 단 한 가지만 보아도 그들은 다른 복음을 전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칼뱅이 쓴 것을 감히 반박을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감리교 쪽에서는 웨슬레가 쓴 것을 어느 누구도 반박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성경이 무엇을 말씀하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이 시대 우리에게 똑같은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삼위일체는 믿고 있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있습니다.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다시 강조를 하지만 어느 누구의 말보다도 우리는 성경이 충실해야 합니다.
휴거 없습니다.
삼위일체 거짓입니다. 저를 이단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저를 공격한다면 그 사람들에게 저는 묻고 싶습니다. 성경이 어떻게 말씀을 하고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아타나시우스에 의해서 채택이 된 삼위일체가 맞습니까? 아니면 성경이 어떻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묻고 싶습니다, 성경에서 벗어나지를 마시기 바랍니다.
갈라디아서4:30절을 보겠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계집종과 그 아들을 내어쫓으라 계집종의 아들이 자유 하는 여자의 아들로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였느니라”
성경입니다
이 시대는 너무 많은 신앙서적들이 나와 있습니다. 그 신앙서적들이 과연 복음을 전하는 책인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입니다. 제가 이제까지 본 어느 서적도 복음적인 책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참으로 안타까운 일들은 그리스도편지를 보고 있는 분들 중에서 저에게 어느 책을 보라고 소개를 하고 있습니다.
그 책을 볼 시간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제가 권면을 해 드리고 싶습니다. 그 책을 볼 시간에 성경을 보는 것이 더 유익하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지금 우리나라에 서점에 나와 있는 책들 중에 복음을 전하는 책은 없습니다. 물론 제가 모르는 책 중에서 있을지 모르겠지만 있다면 아마도 문제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신학개론이 무엇을 말하느냐고 묻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 책은 다 쓰레기로 버려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간혹 가다가 참고가 될 책이 있다는 것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어떤 사전적인 책이지 성경을 자기 나름대로 해석한 책은 참고가 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의 영혼을 망하게 하고 있습니다.
왜 그런 책을 봅니까?
그런 책을 보아서 여러분이 복음을 깨달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혹시 그런 책이 있다면 사도 바울은 지금 로마서나 갈라디아서를 통해서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고 묻지 않았을 것입니다. 왜 묻지 않는가 하면 그런 책이 나오면 하나님이 더 잘 아시기 때문에 묻지 않습니다.
성경을 왜 주셨습니까?
우리가 영생을 받는데 있어서 부족함이 없게 하기 위해서 성경을 주셨습니다. 그러면 성경을 보고 성경이 어떻게 말씀하고 있는가를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그런 쓰레기 같은 책을 보면서 은혜를 받았다고 하지 말고 또 복음이 있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모든 기준은 성경입니다
성경을 몰라서 그런 책을 보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그 책으로 인하여 반드시 망하는 길로 가게 된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이 그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세월이 지나면 수많은 책들이 쏟아져 나올 것을 미리 아시고 계십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의 환상에서 많은 물 위에 앉은 큰 음녀의 심판을 보여 주셨습니다.
물이 무엇입니까?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성경을 자의적으로 해석한 많은 물위에 앉은 음녀의 심판을 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 그대로 이 시대 얼마나 많은 물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까? 책으로 그리고 인터넷으로 그리고 미디어로 하루 종일 그것만 보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보면 뭐 합니까?
성경이 무엇을 말하는지는 모르고 있습니다. 사람이 그리고 목사가 무엇을 말하는지는 너무도 잘 알고 있는 그들이 성경이 무엇을 말하는지는 모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책은 많이 보아서 지적으로는 많이 뛰어나 있지만 성경이 무엇을 말하는지는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실제 그렇습니다.
이 시대 교인들이나 목사들과 대화를 해 보면 마치 벽에 대고 말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들은 성경이 무엇을 말하는 줄은 모르고 그런 책들과 목사들의 말을 귀로 듣고 그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에서도 사도 바울이 성경에 무엇을 말하느냐고 말씀을 하면서 계집종과 그의 아들을 내어 쫓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계집종이 누군지 그의 아들이 누군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계집종과 그의 아들입니다 성경이 무엇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내어 좇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율법을 지키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왜 지키고 있습니까? 성경이 무엇을 말씀하는 줄을 모르기 때문에 율법을 지키면서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있습니다.
성경이 무엇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계집종과 그의 아들을 내어 쫓으라 계집종의 아들이 자유 하는 여자의 아들로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이 이렇게 말씀을 하고 있는데도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자기들이 성경을 백번을 읽었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수백 번을 읽으면 뭐합니까?
성경이 무엇을 말씀하고 있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율법을 단 한 가지라도 지키고 있다면 그 교회는 계집종의 교회고 그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은 다 계집종의 아들입니다. 사도 바울이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고 하면서 분명하게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기독교라는 종교는 2000년 동안 끊임이 없이 율법을 지켜왔고 이 시대 역시 율법을 안 지키면 이단이라고 공격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성경이 무엇을 말하는지를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불행하게도 우리나라만 해도 수많은 목사들이 성경을 백번 이상을 읽었지만 성경이 무엇을 말하는지를 모르고 모두가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평생을 성경만 읽으면서 연구를 하는데도 성경이 무엇을 말하는지를 몰라서 율법을 지키다가 저주를 받고 있습니다.
야고보서2:23절을 보겠습니다.
“이에 경에 이른 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응하였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같은 말씀입니다
야고보도 경에 이르기를 아브라함에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그의 의로 여기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야고보가 행함이 있는 믿음을 말씀하면서 성경에서 아브라함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을 인용을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모든 성경은 다 같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성경이 다르고 저 성경이 다르다면 우리는 성경을 볼 필요도 없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보아야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성경을 다르게 보고 있습니다. 성경을 쓴 선지자들은 성경을 다 같은 말씀으로 보고 성경이 무엇을 말씀하는가를 묻고 있는데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로마서입니다
그리고 야고보서입니다. 서로 다른 말씀입니까? 이 시대 거의 모든 목사들이 이 두 성경을 다르게 보고 있습니다. 로마서는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말을 하고 있고 그러나 너무 믿음만 강조를 하니까 성도들이 바르게 살지를 않고 방종을 해서 하나님께서 야고보를 통해서 행함이 있는 믿음을 쓰게 하셨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이 다릅니다.
어떻게 믿을 수 있습니까? 서로 다른 말씀을 하고 있는 성경을 보고 믿는다는 것이 더 기적적인 일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그런 기적이 교회 안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로마서와 야고보서를 서로 반대가 되는 성경으로 보고 있으면서도 믿고 있습니다.
로마서는 믿음입니다.
그리고 야고보서는 행함입니다. 이 둘을 아주 절묘하게 섞어서 믿음도 좋고 행함도 좋아야 한다고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도 믿고 율법도 지켜야 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까지 사도 바울이 말씀한 것을 다 뒤집어 버리는 말을 하면서도 믿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성경이 무엇을 말씀하고 있는 줄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야고보서에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그의 의로 정하셨다고 말씀을 하면서 행함이 있는 믿음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성경이 무엇을 말씀하는 줄을 몰라서 거꾸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오직 믿음입니다.
사실 야고보서는 로마서보다 더 강한 믿음을 우리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그의 의로 정하셨다고 하면서 행함이 있는 믿음이 율법을 버리는 행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성경이 무엇을 말씀하고 있는 줄을 모르고 도리어 율법을 지키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야고보가 다른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사도 바울이나 같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야고보도 창세기에서 말씀하는 성경이 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었고 사도 바울도 창세기15장에서 말씀하고 있는 아브라함에 대한 말씀을 알고 같은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전혀 다르게 반대로 성경을 말하고 있습니다.
야고보가 다른 성경을 보았습니까?
야고보도 창세기15장6절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성경이 무엇을 말하는 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 역시도 창세기15장6절 말씀을 보고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야고보와 사도 바울이 서로 다른 성경을 보았다면 그들이 말하는 것이 다를 수 있지만 같은 말씀을 보는데 어떻게 다를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다르게 보고 있습니다.
야고보도 창세기15장6절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도 창세기15장6절을 보고 똑같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두 사람이 말하고 싶은 것이 무엇입니까? 같은 말씀을 보고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를 저에게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목사들은 야고보서를 보고 행함이 있는 믿음이라고 하면서 율법의 행위를 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이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같은 성경을 보고도 그것을 깨닫지를 못하고 있다면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 시대는 성경이 무엇을 말하는 줄을 모르고 자기들이 목사들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그리고 신앙서적을 보고 아는 것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창세기15:6절을 보겠습니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성경이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사도 바울이 육신으로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조상이 어떻게 의롭다 하심을 얻었는가를 성경을 보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부탁드리지만 성경 이외에 것으로 말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도는 성경에서만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성경을 자기들의 편리에 따라 자의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입니다
이 시대 모든 사람이 믿음의 조상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가 어떻게 의롭다 하심을 받았는가를 성경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창세기15장에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으로부터 어떻게 의롭다 하심을 받았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고 이것을 그의 의로 정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그의 의로 정하셨습니까?
아브라함에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을 그의 의로 정하셨습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믿음의 조상이라고 하는 아브라함이 어떻게 의롭다 하심을 받았는가 하면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을 그의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입니다. 그가 율법의 행위를 해서가 아니라 믿으매 이것을 그의 의로 정하셨습니다.
의로 여기셨습니다.
율법의 행위로는 아브라함도 의롭다 하심을 받을 수 없습니다. 왜 받을 수 없는가 하면 3장20절에서 율법의 행위로는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도 육체입니다. 그러니까 아담의 자손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의롭다 하심을 얻었습니다.
그것을 성경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가 어떻게 의로 여기신바 되었는가를 성경이 말씀을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이 이렇게 분명하게 말씀을 하고 있지만 역시 이스라엘과 마찬가지로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그 율법의 행위로는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도무지 깨닫지를 못하고 율법을 지키는 일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풀 때는 성경을 보고 풀기 바랍니다. 성경 외에 것을 가지고 이야기를 하지 말고 성경을 보면 성경이 무엇을 말하는 줄을 알게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성경을 보고 푸는 것이 아니라 설교를 들어보면 이 세상 온갖 잡다한 이야기를 가지고 말 하고 있습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복음에 대해서 가르쳐 주고 있다는 것을 알고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next 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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