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로마서 강해(오직 믿음)

30-2,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

윤주만목사 2024. 7. 12. 07:57

로마서3:27절을 보겠습니다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뇨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그렇다면 사람이 자랑할 것이 어디에 있습니까? 전혀 없습니다. 무슨 법으로 의롭게 됩니까? 행위의 법으로 됩니까? 아닙니다. 믿음의 법으로 됩니다.”

그런즉

앞 내용으로 미루어 뒤 내용의 근거를 짐작해 낼 수 있을 때 쓰여 앞뒤 문장을 이어 주는 말이라고 사전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정말 성경을 볼 때는 국어를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아니 국어를 모르면 인터넷에서 사전을 치면 검색이 그대로 되고 있습니다. 단어 하나라도 그냥 무심코 지나치지 말고 국어를 아는데 힘쓰시기 바랍니다.

국어를 알아야 합니다.

히브리어 헬라어 안다고 해서 성경을 알 수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우리나라 언어로 번역이 되고 있는 개역 성경만 보아도 그리고 몇 가지 성경만 참고를 해도 국어만 바로 알고 있으면 성경을 풀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 목사들은 국어를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국어도 모르는 그들이 자기 지식을 자랑하기 위해서 히브리어 헬라어를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무엇에 대해서 그런즉 입니까?

1장에서 복음에 대한 말씀과 불의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2장에서 율법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율법에 대한 그런즉을 말씀을 하면서 할례는 마음에 할찌니 신령에 있고 의문에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로마서입니다

모든 성경이 다 그렇습니다. 계속해서 연결을 해서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보고 있는 성경은 다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창세기에 있는 말씀이 다르고 로마서에 있는 말씀이 다르지 않습니다. 또한 로마서1장의 말씀과 3장의 말씀이 다 연결이 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이제 계속해서 그런즉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무엇에 대한 그런즉입니까?

319절부터에 대한 말씀을 하고 나서 이제 그런즉이라고 말씀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19절 말씀부터의 말씀을 근거로 해서 이제 뒤에 말씀을 하고 있는 말씀들을 짐작해 낼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을 뚝딱 잘라서 보지 마시기 바랍니다.

율법으로는 그의 앞에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차별이 없는 의가 주어지고 있다고 사도 바울이 로마서3장에서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의를 얻었는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를 얻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의롭다 하심을 얻었습니다.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의가 어디서 왔는가 하면 율법 외에 나타난 하나님의 한 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하나님의 의가 어떻게 나타났는가 하면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죽을 죄를 지은 우리를 대신 해서 나무에 달려 저주를 받으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도입니다

그리고 가라지입니다. 이 둘이 추구하고 있는 의는 분명히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교회 안에 있는 가라지는 성도가 전하고 있는 의에 대해서 도무지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니 우리가 알고 있는 의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 저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더니 진짜 정신이 이상해졌다고 이야기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세상에 의인입니다

성도는 그들을 악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십일조를 잘 내고 주일을 잘 지키고 있는 그 사람들을 악하다고 하면 누가 인정을 하겠습니까? 성령이 우리 안에 오셔서 진리 가운데로 인도를 하지 않으면 사람의 이성으로는 이해하려고 해도 안 되는 것이 바로 이 의에 대한 문제입니다.

율법을 지킵니다,

그것을 누가 나쁘다고 말을 하겠습니까? 그래서 십계명을 폐하라고 하면 그럼 살인을 해도 되느냐고 묻는 것이 모든 사람의 생각입니다. 언제 살인을 해도 된다고 했습니까? 하지만 율법 아래서 그 의를 따라가고 있는 사람의 생각에는 살인을 하라고 하는 것과 같이 들려지게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성도는 어떻습니까?

그들이 살인자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사람이 율법을 지키고자 하는 그것이 도리어 살인을 하는 행위가 되고 간음을 하는 행위가 되고 우상숭배를 하는 행위가 된다는 것을 어떻게 깨달을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영의 비밀을 알고 있는 성도는 의문에 쓴 계명의 율법을 지키는 일이 그렇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하나님께서 의를 나타내 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 믿는 우리를 의롭다 하시려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의롭다 하심을 받는 성도들에게 사도 바울이 묻고 있습니다. 그런즉 자랑할 데가 있느뇨 있을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게 되는 것은 자랑할 것이 하나도 없다는 말씀입니다.

누구의 의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의입니다. 그 의를 예수 믿어서 내가 가져왔습니다. 그런즉 자랑할 것이 있습니까? 자랑할 것이 있다고 하는 사람은 문제가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 성도는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자 되었기 때문에 자랑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구원입니다

사도 바울은 지금 구원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는데 있어서 자랑할 것이 있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있을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복음을 깨닫고 그 복음에서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러 살게 되었는데 있어서 자랑할 것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더구나 우리는 이방 죄인입니다.

그 죄인을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를 흘려주셨습니다. 그의 피로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케 되어서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탄생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 우리가 자랑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자기들이 하고 있는 행위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왜 자랑합니까?

구원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의를 모르기 때문에 자기들의 의를 가지고 자랑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의를 알고 있다면 절대로 자랑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썩어 없어지는 어두움의 빛인 자기들의 율법의 행위를 가지고 자랑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2:8-9절을 보겠습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자랑할 데가 없습니다.

정말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구원이 우리에게 났다면 당연히 자랑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우리 영혼의 구원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마치 성도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 도덕규범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성경이 그것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사도 바울이 기록한 성경은 우리가 보아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율법을 지키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고 하는데 성경을 본들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신학교입니다

목사들이 설교학 시간에 배우고 있습니다. 설교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배우고 있습니다. 그때에 대부분의 신학생들이 질문하는 것이 있습니다. 아마도 신학교에서 설교학을 배워본 사람이라면 자기가 질문을 하지 않았어도 남들이 하는 질문을 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달에 설교를 10번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배분을 해서 설교를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아마도 거의 모든 신학교에서 그렇게 가르치고 있을 것이 분명합니다. 성도의 생활에 대해서 약70%를 전하고 복음에 대해서 30%를 전하는 것이 옳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정말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성경 어디에 그렇게 성도의 생활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저 역시도 신학을 공부할 때는 그것이 정당하다고 생각을 했는데 성경에서 복음을 알고 난 이후에는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인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평생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평생 동안에 복음만을 들어도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 세상 초등학문인 성도의 삶을 배울 시간이 어디 있습니까? 그렇게 경우가 없는 사람이 교회 안에 들어옵니까? 자기 눈이 있고 보는 귀가 있고 이성이 있다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몰라서 그것을 목사가 가르쳐야 압니까?

그것을 배우려고 왔습니까?

차라리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것이 그에게 더 유익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그런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지 않습니다. 제가 보는 성경과 그들이 보는 성경이 달라서가 아니라 성령의 인도함을 받지를 않아서 그렇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정말 평생을 구원에 대해서만 말씀을 드려도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를 기록했습니다.

율법을 지키느냐 지키지 않느냐 그 문제를 가지고 기록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율법을 지켜서는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율법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의가 무엇이고 율법 외에 나타난 한 의가 무엇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율법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 무엇입니까?

사도 바울은 구원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구원을 받는가를 가르쳐 주기 위해서 율법의 의가 무엇이고 또 율법 외에 나타난 하나님의 한 의가 무엇인가를 이렇게 자세하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구원을 말씀하기 위해서 율법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이지 율법을 지키라고 이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성경을 강해하는 목사들이 다 율법을 지키게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자기 생각대로 거꾸로 보면서 스스로 구원에서 멀어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왜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하는가를 말씀하기 위해서 율법에 대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율법으로는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왜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없는가 하면 율법을 지키면 저주를 받기 때문에 율법으로는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없다는 말씀이며 그러면 율법을 왜 주셨는가 하면 율법으로 죄를 깨달아서 내가 살인한 자라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해서 주셨고 그런 살인한 자는 보수자를 피해서 빨리 도피성으로 피하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 은혜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랑할 것이 있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자랑할 것이 하나도 없다고 분명하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만약에 우리의 행위가 조금이라도 들어가 있다면 자랑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구원에 있어서는 우리의 행위가 조금도 들어가지 않은 하나님의 의를 믿음으로 받느냐는 말씀입니다.

우리에게서 난 것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너희가 율법을 잘 지켜서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너희가 십일조를 내서도 아니고 주일을 지켜서도 아니고 교회 안에서 하고 있는 여러 가지 율법의 행위를 해서가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선물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내가 살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은 선물이 아닙니다. 내 스스로는 어떻게 해도 하늘에 갈 수 있는 깨끗한 영이 탄생이 될 수 없습니다. 영의 비밀을 알아야 아니 거듭나는 영이 어떻게 탄생이 되는 줄을 알아야 에베소서의 말씀이 와 닫습니다. 아니 믿어지는 역사가 있습니다.

선물입니다

그 단어를 알면 뭐 합니까? 그런 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런 것을 아는 것으로 사람의 감성을 자극하는 말을 하는 것으로는 여러분에게 해만 끼치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어떻게 탄생이 되어서 그 영이 어떻게 구원을 받는 줄을 알아야 이 선물이라는 말씀을 알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구원입니다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다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목사들이 오직 예수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말을 화면 뭐 합니까? 행위를 하게 만들고 있다면 그는 에베소서의 말씀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성경은 구원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으니까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교회 안에서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 행위를 하고 있다면 그는 성경을 왜 보고 있는지 모르고 있는 사람입니다.

성경을 왜 봅니까?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어서 보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아야 구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보고 있습니다. 이 성경에 모세의 율법이 있고 선지자들의 글이 있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기록한 말씀이 있기 때문에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왜 보고 있는지를 모르고 성경을 보면 어떻게 하든지 행위를 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성경은 구원에 이르게 하는 지혜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구원이 행위에게 난 것이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을 보고 행위를 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어떤 행위라도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그 행위로 자랑하게 되어 있습니다. 성경은 행위를 하지 말고 믿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행위를 하지 말라고 말씀합니까?

자랑을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행위를 하는 순간에 사단이 자랑하게 만든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 시대는 수많은 행위들을 하고 있습니다. 그 행위들을 믿음이라는 말로 포장을 해서 하고 있습니다.

자랑할 데가 없습니다.

이 말씀은 행위를 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행위를 하는 자는 반드시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지만 이 시대는 종교적인 행위에 너무 깊이 빠져 있고 그것을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정도가 아니라 이제 그런 행위를 하지 않으면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이야기까지 서슴없이 하고 있습니다.

오직 예수라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차라리 그 말을 하지 않는 것이 더 낫습니다 왜 오직 예수라고 힘주어서 이야기를 하면서 행위를 하게 만들고 있습니까? 구원을 어떻게 받는지를 모르기 때문에 교회 안에서 그렇게 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구원을 받은 성도라면 행위에게 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절대로 하지 않습니다.

행위가 무엇인가 모릅니까?

내 육체로 하는 모든 것이 다 행위입니다. 그것을 믿음이라고 이야기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람이 의지를 가지고 하는 것을 행위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쉽게 말해서 우리가 속된 말로 멍 때린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렇게 멍 때리는 것 말고 내가 인지를 하고 하는 모든 것이 다 행위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내가 인지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예배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찬송가를 부르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것이 기도를 하는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십일조를 하는 것을 알고 있고 각종 헌금을 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 것이 다 행위라는 말씀입니다.

구원입니다

행위에 있지 않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행위를 하게 되면 자랑하게 되어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구원에 대해서 자랑치 못하게 하기 위해서 행위를 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시대는 이스라엘의 바리새인 못지않게 행위에 깊이 빠져 있고 그것을 종교는 믿음이라고 포장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일서2:16절을 보겠습니다.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온 것이라

세상의 모든 것입니다

성경을 정말 냉정하게 보시기 바랍니다. 그저 스쳐 지나치듯이 보지 마시고 이 말씀이 무슨 말씀인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성경을 자기들의 생각대로 보다가 모두가 사망의 길로 가고 있습니다.

교회도 세상에 있습니다.

그것을 하늘에 있는 것이라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나 역시도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교회에 나와서 예수 믿는 것을 사람들은 마치 불교에서 말하는 것과 같이 속세를 떠나 이제 하나님을 믿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가 아무리 교회 안에서 성도로 살아가고 있다 해도 그가 하는 모는 행위는 다 세상에서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나 세상에 있습니다.

내가 다니는 교회 역시도 세상에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나도 아버지께로 좇아온 것이 아닙니다. 내가 보고 있는 교회 역시도 아버지께로 좇아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지금 이 시대는 그것을 가지고 자랑하고 있습니다. 아버지께로 좇아온 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자랑을 하고 있는 그들이 성도라고 스스로를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하고 있는 행위의 모든 것 그리고 보고 있는 교회가 다 어디로부터 온 것인가 하면 세상으로 좇아온 것임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세상입니다

그리고 하늘입니다 그것도 분별이 안 되는 사람이 성경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지금 사도 요한이 누구에게 이 말씀을 하고 있는 줄을 모릅니까?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이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세상의 모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다 세상에 모든 것입니다. 나 역시도 세상의 것이고 눈으로 보고 있는 교회들도 다 세상에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세상에 있는지 하늘에 있는지도 모르면서 성경을 어떻게 봅니까? 여러분이 다니고 있는 교회 그리고 여러분이 하고 있는 모든 행위가 다 세상으로 좇아온 것임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늘로 좇아온 것이 무엇입니까?

오직 예수 그리스도밖에는 없습니다. 예수님은 하늘에서 오셔서 다시 부활을 하셔서 하늘에 올라 가셨습니다. 그리고 그 외에 모든 것은 다 세상의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가지고 교회 안에서 자랑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것으로 자랑치 못하게 하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을 받게 하시고 있지만 사람들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내가 어디서 왔는지 모릅니까?

그래서 영의 일이라는 것을 믿음으로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이 믿음의 비밀을 모르면 평생을 세상을 좇아가다가 사망에 이르게 되어 있습니다. 자기가 하고 있는 그런 행위들이 세상으로부터 좇아 왔다는 것을 모르고 교회 안에서 행위를 하고 있고 그 행위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자랑치 마시기 바랍니다.

간증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간증 역시 자랑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것을 누가 했습니까? 세상으로 좇아온 자기가 해 놓고서 마치 아버지께로 온 것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 자랑에 다 사망의 길로 가고 있으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세상의 것에 정욕을 부리고 있습니다.

영의 일입니다

그것은 하늘의 일입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신 일입니다. 그 주님이 지금 하늘에 계십니다. 세상으로 좇아온 자기들이 하고 있는 행위들을 가지고 마치 하늘로 좇아온 것으로 생각하고 자랑하느라 모두가 정신이 팔려 있습니다.

자랑할 데가 없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는데 있어서 자랑할 데가 없습니다. 성도로서 사는 것을 자랑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 역시 세상으로 좇아온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그런 것을 자랑하지 말라고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받은 자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교회는 점점 더 율법의 행위에 빠져 들어가고 있습니다.

빌립보서3:3절을 보겠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당이라

개들을 삼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구원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개들이 누구입니까? 행악하는 자들이고 손할례당입니다. 그러니까 율법을 지키고 있고 자기 육체에 할례를 하는 사람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개들을 누구라고 말씀하고 있는지 비유도 모릅니까? 그 정도 비유도 모른다면 차라리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것이 그에게 더 유익이 됩니다.

시편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개들이 에워싸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개들이 누구입니까? 주님이 오셨을 때 율법주의에 빠져 있던 이스라엘을 개로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한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에서도 개들이 나사로의 헌데를 핥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율법주의자들이 나사로를 정죄 했다는 말씀입니다.

교회 안에는 개들이 늘 있습니다.

이제까지 모든 교회 안에는 늘 개들이 있어서 주님을 에워싸고 성도들의 헌데를 핥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개들이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기도를 하면서 내가 이레에 이틀을 금식하고 소득의 십일조를 드렸나이다.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개들이 주님께서 십계명을 말씀하니까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켰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오직 예수입니다

성도는 오직 예수만 자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개들은 자기들이 하고 있는 행위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자기 육체를 신뢰하지 않기 때문에 자랑하고 말 것이 없습니다. 육체를 신뢰해야 자랑할 수 있는데 신뢰할 것이 없는데 무엇을 자랑하겠습니까?

신뢰입니다

믿고 의지한다는 말입니다. 자기 육체를 믿고 의지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성도는 내 육체가 무엇을 한다 해도 그것을 신뢰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설령 사도 바울과 같이 그렇게 고난을 당하면서 복음을 전하고 순교를 한다 해도 이 육체를 신뢰하지 않습니다. 왜 신뢰하지 않는가 하면 구원을 우리 육체가 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육체입니까?

다 썩어 없어집니다. 그것을 신뢰한다는 사람이 더 이상합니다. 썩은 시체를 보고 신뢰하겠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정말로 이상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왜 사람들이 행위를 하고 있는가 하면 자기들의 육체를 신뢰하기 때문에 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그 육체를 신뢰하지 않으면 굳이 행위를 하지 않아도 됩니다.

자랑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육체를 자랑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세상으로 좇아온 것을 가지고 마치 하늘로 좇아온 것으로 생각하고 그것을 자랑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령은 우리 마음에서 역사를 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지 그것을 어떤 행위로 나타나게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구원을 모릅니다,

그리고 부활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신뢰하지 않은 육체를 가지고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 성도들에게 육체를 신뢰하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 이 시대는 육체를 신뢰해서 그 육체가 부활을 한다고 까지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육체가 부활을 하니까 당연히 행위를 잘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안 됩니다

육체를 신뢰하는 사람은 반드시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성경이 누구에게 말씀하고 있는가 하면 교회 안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그 사람에게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는 사람들이 자기에게 하고 있는 그 말씀을 모르고 도리어 남들에게 하고 있는 말씀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육체가 어떻게 되는지 모릅니까?

성경은 분명히 썩을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에서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체의 행위를 하고 있는 사람은 반드시 썩어질 것을 거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썩어 집니다.

그런데 그 썩을 것을 가지고 자랑하고 있습니다. 내 눈으로 보고 있는 모든 행위입니까? 다 썩어 없어질 것입니다. 그런데 그 썩어 없어질 것을 가지고 이 시대는 자랑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과는 아무 상관도 없고 하나님과도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을 가지고 마치 하늘로부터 온 것으로 생각하고 자랑을 하고 있습니다.

부활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그럼 절대로 자기 육체를 자랑하지 않습니다. 아니 이 세상의 것을 가지고 자랑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인 내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영이 부활을 해서 하늘의 신령한 몸을 입는다는 것을 바로 알고 있으면 자랑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자랑할 데가 어디뇨 있을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자랑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신앙생활을 하는 말씀으로 보지 마시기 바랍니다, 구원에 대한 말씀으로 보면 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성경을 아무리 보아도 복음이 안 보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령을 구하고 지혜를 구해야 하지만 자기들이 조금만 지적인 능력이 있으면 그것으로 성경을 보다가 다 망하는 길로 가고 있습니다.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묻고 있습니다.

법도 아니고 행위도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도 아니고 신앙생활을 하는 행위도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구원은 그런 것으로 받은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빌립보서3:9절을 보겠습니다.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오직 믿음입니다.

다른 어떤 방법으로는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을 자랑할 수 없습니다. 왜 자랑할 수 없는가 하면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기 때문에 자랑할 수 없다고 말씀을 하면서 사도 바울이 오직 믿음의 법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법입니다

구원을 받느냐 못 받느냐 하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자기가 어떻게 구원을 받는지를 모르고 있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오직 믿음의 법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시대는 오직 믿음이라고 말은 해도 무슨 율법도 지키고 있고 무슨 행위도 아주 많이 하고 있습니다.

구원입니다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의 구원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고도 그것을 깨닫지를 못하고 있다면 그는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 믿음의 비밀을 모르면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종교인이 되는 것으로 믿음이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빌립보서에서도 같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도 바울이 구원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에서가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로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오직 믿음의 법입니다

이 믿음만이 하나님께로서 난 의가 우리에게 주어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을 믿음의 법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믿음이 아니고는 하나님께로서 난 의가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기 때문에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떻습니까?

이 시대는 너무 율법의 행위에 깊이 빠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 율법의 행위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한 행위가 덩어리를 부풀게 하고 있지만 그것으로 사망을 당하고 있지만 그저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 구원을 받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 성경을 보면서도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내가 가진 의입니다

사도 바울이 가진 의입니다. 그리고 모든 믿음이 선진들이 가지고 있는 의입니다그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면 구원을 받는데 있어 율법의 행위가 필요가 없으면 안 지키면 되는데도 성경을 보면 사람들은 율법을 지키고 싶어 합니다. 여러분에게 율법에서 난 의가 있으면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했습니다.

율법의 행위로는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이제 율법 외에 한 의가 나타나서 그 의를 믿음으로 우리가 의롭다 하심을 얻고 있습니다. 그런데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고 그것으로 자랑하고 있다면 안 된다는 것을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오직 믿음의 법입니다

그것은 오직 믿음으로 산다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깨닫기 전에는 율법의 의로 흠 없는 의를 가지고 있었지만 이제 주님을 만나고 나서는 자기가 살려고 하니까 내가 가진 의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오직 믿는 성도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next 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