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성막에 대하여

제11강, 속죄소

윤주만목사 2017. 1. 30. 15:05

출애굽기25:21-22절을 보겠습니다. (구 120쪽)

“속죄소를 궤 위에 얹고 내가 네게 줄 증거판을 궤 속에 넣으라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

 

하늘이 모형과 그림자입니다.

성막의 모든 모형들은 다 하늘의 것의 그림자라는 말씀입니다 성막 지붕을 빼면 이제 속죄소 하나만 남아 있습니다. 지성소에 들어가면 증거궤가 있고 그리고 그 위에 속죄소가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다 하늘의 참 형상인 예수 그리스도를 그림자로 보여주고 있는 모형들입니다.

 

은혜입니다

이 성막의 모든 식양들을 보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깨닫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아무리 성막의 모든 모형을 다 안다 해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나에게 임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늘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이 성막을 짓게 하신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주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이제까지 모형을 보았습니다.

그 모형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입은 성도들이 주님께서 앞서 가신 길을 따라 참 하늘의 장막에 들어가는 것을 이 성막을 통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고는 어느 누구도 지성소 안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모형으로 보여 주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참 하늘의 장막에 들어가셨습니다.

그 하늘은 우리가 알 수 없기 때문에 성경에서 모형과 그림자로 보여 주고 있습니다. 하늘의 일을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가 있으면 좋은데 그렇지가 못 합니다. 지금 이 시대 천국에 갔다 왔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고 예수 그리스도를 보았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것은 다 거짓말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영의 일입니다.

그것을 우리가 알아들 수 있는 언어가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굳이 모형과 그림자를 통해서 보여 주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인생의 언어로는 도무지 설명이 안 되기 때문에 모형과 그림자를 통해서 아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해 주시고 있습니다.

 

오직 믿음입니다.

우리 인생들이 하늘의 일에 대해서는 믿음이 아니고는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누군가 마치 하늘의 일을 본 것 같이 이야기를 하고 있다면 이미 그 자체로 거짓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막을 통해서 하늘의 것을 아주 조금이나마 희미하게 알 수 있게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시고 있습니다.

 

미혹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영의 일은 인생의 언어로는 도무지 설명이 안 되는 일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이 세상에 오셔서 다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또 성경 어디에도 하늘의 것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말씀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것은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가 알아들을 수 없기 때문에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사람들은 보고 믿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늘의 것을 우리에게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역사를 하시면 가능하겠지만 설령 그것을 보았다 해도 우리는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영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영의 일을 사람의 이성으로 규정을 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경을 보고 규정을 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지혜가 뛰어난 사람이 성경을 보아도 그것을 규정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창세기부터 여러 가지 예표들을 통해서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성도들이 믿을 수 있게 역사를 해 주시고 있습니다. 성경이 얼마나 오묘한가를 알아야 하고 인생의 지혜로는 이 성경을 수백 번 수천 번을 읽는다 해도 깨달을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믿음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늘의 일을 알 수 있게 하는 유일한 방법이 바로 믿음입니다. 이 믿음이 아니고는 어느 누구도 하나님을 믿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믿음의 비밀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게 믿음이 있는 자체가 하나님께서 비밀을 가르쳐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비밀입니다

우리가 보고 있는 성경은 비밀입니다 비밀이라는 것은 잘 이해를 해야 합니다. 이 성경을 보고 누구나 영의 일을 알 수 있다면 그것은 절대로 비밀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어려서부터 성경을 보았지만 그들에게는 비밀이 열리지가 않아서 율법주의로 빠지고 말았습니다. 이 시대도 마찬가지로 이 믿음의 비밀을 알지 못하면 절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비밀입니다

아무나 믿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얼마나 비밀인가를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깨달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이 성막을 보고도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못 했습니다.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못한 이유는 바로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비밀로 감추어 두셨기 때문입니다.

 

골로새서1:26-27절을 보겠습니다. (신 325쪽)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옴으로 감취었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어떻게 풍성한 것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비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취웠던 비밀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사람들이 성막을 보고도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그들에게 있지를 못하는가 하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비밀로 감추어 두셨기 때문에 아무리 성막의 모든 기구에 대해서 잘 안다 해도 이것은 하늘의 모형과 그림자이기 때문에 사람의 지혜로는 깨달을 수 없습니다

 

이 시대 사람들이 성경을 문자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수도 없이 비유와 비밀이라는 말씀을 하고 있는데 사람들은 그것을 문자 그대로 보고 있습니다. 성경이 얼마나 오묘한가 하면 문자를 그대로 보아도 절묘하게 해석이 되고 있습니다. 그렇게 보는 사람들이 다 사망에 이른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지만 이 시대 역시 이스라엘과 다를 것이 없이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비밀을 모르면 안 됩니다.

그 비밀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성경 전체가 다 예수 그리스도를 감추어 두었습니다. 성경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가 나와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비밀을 모르기 때문에 아무리 보아도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이 시대 설교자들을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말하는 자가 거의 없습니다

 

세상의 지혜 있는 자가 성경을 봅니다.

그들이 깨달을 수 있다면 영의 비밀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다면 이 성경은 비밀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지혜가 있다고 하는 사람도 그가 사람의 이성으로 이 성경을 보고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없기 때문에 비밀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종교가 아닙니다.

그런 종교적인 행위를 가지고 믿음이라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금 이 시대를 보면 다 종교적인 믿음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비밀인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도 못하는 그들이 예수를 믿는다고 종교적인 행위에 취해서 사망의 길로 가고 있으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이 비밀이 성도들에게 나타났습니다.

이스라엘에게 나타난 것이 아니라 성도들에게 나타났습니다. 이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 비밀이 나타난 것이 아니라 성도들에게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솔직히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믿음의 비밀을 모르고 있습니다. 또한 그런 종교적인 행위로 인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거절을 하고 있으면서도 자기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입으로 시인하는 것으로 마치 믿음이 있는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비밀을 모릅니다.

그러다 보니까 이 시대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바로 삼위일체 교리입니다. 성경을 보고 사람의 이성으로 영의 일을 규정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악한 생각에서 이 삼위일체 교리가 나왔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사람이 얼마나 교만하면 하나님을 자기들이 규정을 하고 있습니까?

 

지렁이 같은 야곱입니다

벌레와 구더기 같다고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인생들이 성경을 보고 하나님을 자기들의 생각에 따라 삼위일체라고 교리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교리로 인하여 수많은 순교자들이 나왔습니다. 교회가 교리를 만들어 놓고 그 교리에 반한다고 해서 그들을 종교 재판에 넘겨 죽였습니다. 심지어는 한 마을 전체를 아이들까지 모조리 죽이는 일을 했습니다.

 

왜 그런 일을 합니까?

하나님의 비밀인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기 때문에 사람이 만들어 놓은 교리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성도들을 죽였습니다. 마치 이스라엘이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죽이면서도 그것이 하나님을 위하는 일이라고 생각을 하면서 했던 것과 같이 이 삼위일체 교리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다는 것을 여러분이 깨달아야 합니다.

 

냉정하게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지금 진리를 알고 있습니다. 설령 이 진리에 반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서 그들을 죽이겠습니까? 성경 어디에 이단이라고 해서 그들을 죽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그 교리로 그런 일들이 자행이 되었다는 것은 그 교리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스스로 증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이단이 오면 그들에게서 피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도가 죽일 힘이 있습니까?

초대교회를 보시기 바랍니다. 성도들은 어느 사람도 죽일 수 있는 힘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교회사를 보아도 종교인들이 자기들이 만들어 놓은 교리에 반하는 사람들을 죽였지 성도들은 그저 피해 다녔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실제 교회사를 보면 그것이 과연 바른 교회인가 하는 것을 우리가 냉정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신학에서 배우고 있는 교회사와 교리가 과연 정당한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분명히 성도들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모릅니다.

이 시대도 성도들이 어디에 있는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모르고 있습니다. 성도가 많다면 바람이 임의로 불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충분히 알 수 있지만 성도가 너무 적기 때문에 이 세상의 교회는 하늘의 성도들을 볼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한국교회가 천만 명입니까?

그것은 종교인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 이스라엘과 같은 종교인이 천만 명이지 성도는 거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도 분명히 청함을 받은 자는 많으나 택함을 입은 자는 적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구원을 받을 자가 적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시대는 교회 안에만 있으면 마치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속죄소입니다.

지성소는 정사각형으로 길이 넓이가 약 4.5미터 정도 되는 것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막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 성소를 짓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성소에 휘장을 치고 지성소와 분리를 하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앞에서 배웠듯이 성소 안에는 진설병 상과 등대와 그리고 분향단이 있습니다. 그리고 성소와 지성소를 가리는 휘장이 쳐져 있습니다.

 

지성소 안입니다

그 안에는 속죄소가 있습니다. 그 속죄소를 시은좌라고도 합니다. 우리가 보고 있는 거의 모든 성경은 속죄소라고 번역이 되어 있지만 저는 시은좌라고 번역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영어 번역본에서는 거의 시은좌로 번역이 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속죄소라고 하기보다는 시은좌가 더 맞지 않은가 생각을 합니다.

 

히브리어 원어로 보았을 때도 시은좌가 더 맞습니다.

속죄소라고 하는 뜻보다는 시은좌라고 하는 뜻이 더 맞는다고 생각합니다. 왜 속죄소라고 번역을 하는지 조금 의문이 됩니다. 성막의 모든 것이 다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고 있다면 속죄소보다는 시은좌가 더 합당한데도 번역상의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여 지고 있습니다.

 

상관없습니다.

우리가 성막에 대해서 바로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번역상에 속죄소로 되어 있다 해도 이미 그것에 대해서 성경에서 의미를 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다면 별 문제가 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것을 속죄소라고 하는 이유는 아마도 일 년 일 차례 대제사장에 이스라엘의 백성의 죄를 사하기 위해 들어가서 이 앞에서 피를 쏟아 부어서 그런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제사입니다

우리는 이미 번제단에서 속죄가 이루어졌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대제사장이 일 년 일 차례 속죄소에 들어가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에 들어가시는 것을 예표를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인생들의 죄를 속죄하는 것하고는 의미가 다릅니다.

 

성령론에서 배웠습니다.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보지 못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번제단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 모든 죄를 지고 가셨습니다. 그런데 또 지성소 안에 있는 속죄소에서 속죄를 해야 한다는 것은 사실 이해가 안 되는 일입니다. 그것은 실제 우리의 죄를 위해서 속죄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께로 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지성소에 들어가는 것은 그것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지 마치 또 다른 속죄가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물론 분명히 이스라엘의 대제사장이 일 년 일 차례 이스라엘의 백성의 죄를 위해서 속죄소에 들어갔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예수님께서 하늘에 있는 참 장막에 들어가신 것입니다 그렇게 예수님께서 들어가심으로 해서 우리에게 의가 주어져서 천국 백성으로 우리도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속죄소는 사실 이스라엘의 의식을 볼 것이 아니라 그 의미를 정확하게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시은좌라고 하겠습니다.

우리 개역 성경에 시은좌라는 말씀이 없다고 해서 제가 성경에 없는 말씀을 여러분에게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먼저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번역 상에 문제입니다 분명히 시은좌라고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성막을 바로 이해를 한다면 속죄소라는 번역 보다는 시은좌라는 번역이 더 맞는다는 것을 다시 말씀을 드립니다.

 

시은좌가 있습니다.

이 시은좌는 증거궤를 덮는 덮개라고 보아도 됩니다. 실제 증거궤에는 덮개가 없고 이 시은좌로 덮고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증거궤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 하나님께서 친히 쓰신 증거판이 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덮개가 바로 시은좌입니다.

 

증거궤는 지난 시간에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 궤 자체가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두 돌판이 들어 있는 증거궤를 덮고 있는 것이 시은좌입니다. 증거궤에 대해서는 이미 말씀을 드렸기 때문에 오늘은 시은좌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이 시은좌가 어떤 형상인가를 먼저 알 필요성이 있습니다.

 

출애굽기25:17-20절을 보겠습니다. (구 120쪽)

“정금으로 속죄소를 만들되 장이 이 규빗 반, 광이 일 규빗 반이 되게 하고 금으로 그룹 둘을 속죄소 두 끝에 쳐서 만들되 한 그룹은 이 끝에, 한 그룹은 저 끝에 곧 속죄소 두 끝에 속죄소와 한 덩이로 연하게 할지며 그룹들은 그 날개를 높이 펴서 그 날개로 속죄소를 덮으며 그 얼굴을 서로 대하여 속죄소를 향하게 하고”

 

정금으로 만들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정금은 다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속죄소를 만드는데 금으로 그룹 둘을 속죄소 두 끝에 쳐서 만들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시은좌에는 그룹 둘이 있는 형상으로 금으로 쳐서 만들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사야37:16절을 보겠습니다. (구 1010쪽)

“그룹 사이에 계신 이스라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주는 천하 만국의 유일하신 하나님이시라 주께서 천지를 조성하셨나이다”

 

성막의 모든 식양은 다 예수 그리스도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제까지 우리가 성막의 모든 형상을 성경을 통해서 배워왔습니다. 그런데 그 형상들이 다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지난 시간에 증거궤도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럼 이 시은좌는 누구를 상징하고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주님께서 그룹 사이에 계시다는 것을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주님이 계신 곳이 바로 이 시은좌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룹 사이에 계신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룹 사이에 계시다는 말씀이 성경이 많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아니 하나님께서 계신 것을 말씀을 할 때는 반드시 이 그룹이 나오고 있습니다.

 

누구의 보좌입니까?

이 그룹 사이에 누가 계십니까?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만들어 놓고 삼위일체라는 이상한 교리에 묶여서 빠져 나오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325년 니케아 공회에서 아타나시우스에 의해서 만들어진 삼위일체로 인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성도는 유일하신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다.

만약에 유일하신 하나님을 믿지 않고 있다면 그는 절대로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저는 유일하신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유일하신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삼위일체라는 교리를 믿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영을 우리 사람의 이성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까? 그렇다고 하는 사람은 영이라는 그 말을 이해를 못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왜 영을 우리가 규정을 하고 설명을 하려고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됩니다. 제가 미리 말씀을 드렸지만 영은 우리 사람의 이성으로는 도무지 설명이 안 되고 오직 믿음으로만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성막에서 각 모형을 통해서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우리 인생들이 알 수 있게 지혜로운 자들과 슬기로운 자들로 하여금 이 성막을 짓게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영의 일은 믿음으로 받아들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유일하십니다.

삼위일체라는 말은 사람이 만들어 냈습니다. 영이신 하나님을 사람이 어떻게 알 수 있다고 감히 규정을 하고 있습니까? 그 자체가 얼마나 교만한 일인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성경에 계시 되어 있는 하나님을 믿어야지 자기가 조금 지혜가 있다 해서 성경을 본다고 해서 하나님을 규정을 하는 일을 해서는 안 되고 또 그런 미혹에 넘어가서도 안 됩니다.

 

삼위일체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유일하신 하나님을 안 믿는 것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유일하신 하나님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 왜 자기들 마음대로 삼위일체라고 규정을 하고 있습니까? 자기들이 하나님을 보았습니까? 인생들의 교만이 극치에 다른 것이 바로 이 삼위일체 교리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경에 어디 삼위일체가 있습니까?

설령 그렇게 표현이 되어 있는 말씀들이 많이 있다 해도 그것은 인생들이 만들어 놓은 이상한 하나님이라는 것을 우리가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유일하신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시대는 삼위일체를 믿고 있다 해도 별로 틀린 말이 아닙니다. 삼위일체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는 다르다는 것을 진실로 성도들이 깨달아야 합니다.

 

성경에 있고 없고가 문제가 아닙니다.

분명히 우리에게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 왜 사람들이 스스로 하나님을 삼위일체라고 규정을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됩니다. 이 문제는 저를 이단이라고 말해도 좋습니다. 누가 이단인가는 진리로 인도함을 받고 있는 성도들은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모두가 다 이단이라고 해도 성경이 아니면 아닌 것입니다.

 

예수님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당시 유대교인들은 다 예수 그리스도를 이단이라고 했습니다. 이단의 괴수라고 불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더욱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려고 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정말 성경을 주의 깊게 보아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예레미야, 이사야, 에스겔, 호세아, 아모스

이런 선지자들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 당시에는 다 이단으로 규정을 받았던 사람들입니다. 성경에 이단이라고 말씀은 안 하고 있지만 실제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들이 이들을 배척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의 저자들이 그렇게 취급을 받았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종교는 대중의 힘을 빌어서 자기들과 생각이 다르면 다 이단으로 규정을 합니다. 또 사단은 그런 교리를 만들어 놓고 사람들을 다 사망으로 빠지게 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10:5절을 보겠습니다. (신 274쪽)

“그러나 저희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신 고로 저희가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

 

저희의 다수를 기뻐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제가 소수가 옳다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거듭 말씀을 드리지만 소수냐 다수냐 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내가 성령의 감동을 받고 있는 성도인가를 늘 생각하고 있어야 합니다. 다수가 정통이라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정통이라는 보장이 없다는 것을 이미 이스라엘을 통해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삼위일체 교리는 안 바뀌었습니다.

325년 니케아 공회에서 아타나시우스에 의해서 채택이 된 이 삼위일체는 아직까지 모든 교회가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천주교와 기독교가 유일하게 함께 받아들이고 있는 교리가 바로 이것입니다 그리고 장로교와 감리교가 서로 이단이라고 싸우면서도 이 교리만큼은 인정을 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단이었습니다.

1900년 중반까지만 해도 장로교와 감리교는 서로 이단이었습니다. 또 천주교도 이단이라고 했습니다. 서로 이단이라고 하면서도 유일하게 이단 논쟁에서 빠졌던 교리가 바로 이 삼위일체라는 것을 여러분이 깨달아야 합니다. 사실 교회사를 보면 이 삼위일체에 대해서 반대를 했던 교회가 거의 나타나지를 않고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예수님의 말씀과 같이 바람이 임의로 불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것과 같이 성령으로 난 사람은 이러하다는 것을 증명을 해 주고 있습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교회는 모두가 이 삼위일체에 대해서 자기들의 교리로 채택을 했다는 것은 이 모든 교회가 요한계시록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짐승으로 변했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참으로 놀랍습니다.

사도 요한이 두 짐승을 환상으로 보았습니다. 그 중에 한 짐승이 바로 이방의 교회입니다. 그런데 이 이방의 교회가 정식으로 공회를 열어 교리로 채택을 한 것이 바로 이 삼위일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까지 수억 명 아니 그 이상의 사람들이 이 삼위일체 교리를 따르면서 신앙생활을 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안 됩니다.

삼위일체는 그 자체로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부정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아무리 수십억명이 이 교리에 의해서 하나님을 믿었다 해도 아닌 것은 아닌 것입니다 물론 성경을 보면 삼위일체라는 것은 너무도 타당하지만 그것은 성경을 문자적으로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들이 말하는 이단으로 살고 싶습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구원을 받을 수 있다면 저는 그 길을 가고 싶습니다. 우리가 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는가를 늘 가슴 깊이 새기고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영혼 구원입니다 그러나 삼위일체는 가장 중심이 되고 있는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부정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유일하신 참 하나님은 성경의 기초입니다.

 

늘 제가 말씀을 드립니다.

기초가 흔들리면 구원이 사라지게 됩니다. 성경말씀 중에서 우리가 흔들어서는 안 되는 말씀들이 있습니다. 그 기초가 흔들리게 되는 순간에 모든 성경의 말씀들이 흔들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삼위일체 교리는 이 기초를 통째로 흔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유일하신 하나님이 아니라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믿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단을 우습게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는 이렇게 교리 하나를 만들어 놓고 모두가 사망의 길로 가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스라엘도 그랬고 이방의 교회도 똑같이 그렇게 사단이 쉽게 무너뜨리고 있지만 사람들은 다수를 따라 가다가 모두가 사망의 길로 가고 있습니다.

 

교회는 짐승입니다.

물론 주님이 세우신 교회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요한을 통해서 교회가 짐승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다수가 다니고 있는 이 교회에 나가서 다 매매를 하고 있고 짐승의 표를 받고 있으면서도 도무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 정통이라는 교회 중에서 삼위일체를 반대하고 있는 교회는 없습니다.

 

왜 교회가 통일이 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합니까?

불과 백여 년 전만 해도 서로 이단이라고 싸우던 교회가 다 통일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통일을 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교리가 바로 이 삼위일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것만 안 건들면 웬만해서는 이 시대 이단이라는 정죄를 받지 않고 있습니다.

 

칼뱅주의와 알미니안주의는 서로가 이단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어떻습니까? 서로가 정통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정통이라고 할 수 있는 가장 기초가 무엇인가 하면 바로 이 삼위일체교리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니케아 공회에서 채택이 된 이 교리가 이렇게까지 사람들을 미혹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교회는 짐승이 되어 사람들을 사망으로 끌고 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분명히 말씀을 드립니다.

저는 칼뱅주의의 오대강령을 기초교리로 세우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칼뱅이 주장을 했던 모든 것이 다 옳다고 인정을 하는 것이 절대로 아니고 또 그가 써 놓은 여러 가지 교리적인 것을 제가 따르고 있지를 않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제가 그리스도편지에 칼뱅의 오대강령에 대해서 써 놓으니까 마치 칼뱅의 신앙고백이라든지 모든 사상을 따르고 있는 것으로 오해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유일하신 하나님이라고 분명히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것을 흔들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에 문자적으로 아닌 것 같이 기록이 되어 있다 해도 그것은 사람의 이성으로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그렇게 보여 지고 있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성도는 그런 말씀을 문자적으로 보기 보다는 지혜를 구하고 있습니다.

 

다수를 따라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분명히 그 다수는 짐승이 되어 있다고 사도요한이 환상으로 보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소수의 어떤 모임을 따르라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지혜로운 성도는 그가 진리를 전하고 있는가를 늘 성경을 보면서 그 말씀이 맞는가를 생각해야 하고 또 깨어 하나님께 지혜를 구해서 악에 빠지지 않게 해야 합니다.

 

에스겔10:14절을 보겠습니다. (구 1162쪽)

“그룹들은 각기 네 면이 있는데 첫 면은 그룹의 얼굴이요 둘째 면은 사람의 얼굴이요 셋째는 사자의 얼굴이요 넷째는 독수리의 얼굴이더라”

 

요한계시록4:6-7절을 보겠습니다. (신 403쪽)

“보좌 앞에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가 있고 보좌 가운데와 보좌 주위에 네 생물이 있는데 앞뒤에 눈이 가득하더라 그 첫째 생물은 사자 같고 그 둘째 생물은 송아지 같고 그 셋째 생물은 얼굴이 사람 같고 그 넷째 생물은 날아가는 독수리 같은데”

 

에스겔이 환상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사도요한이 환상을 보았습니다. 그곳에는 다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룹이 있는 곳에 하나님의 보좌가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룹을 천사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고 또 그룹 자체를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저도 잘 모릅니다.

성경에 그렇게 기록이 되어 있으니까 더 이상 제가 할 말이 없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이것은 환상으로 본 것이기 때문에 실제일 수도 있고 아니면 비유일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보좌에는 그룹이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룹 사이에 하나님의 보좌가 있다는 것은 그곳에 하나님이 계신다는 뜻입니다.

 

영의 일입니다

제가 거듭 말씀을 드리지만 이런 그룹이나 천사나 하는 것들은 우리가 어떻게 규정할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먼저 이해를 하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환상으로 보여 주셨다 해도 그룹이나 천사를 정확하게 알고 모르는 것과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이 그룹을 천사라고 한다 해도 우리의 구원의 취소가 되지 않는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이런 것이 마음 빼앗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영의 일을 환상으로 본 것에 대해서는 가능한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좋습니다. 그것을 규정하려고 하는 자체가 인생의 이성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먼저 이해를 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쓸모없는 것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지위를 정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그룹이 높다 천사가 높다 하고 지위를 정하고 있습니다. 그런 생각들이 얼마나 인간적인 것인가를 모르고 그런 것을 아는 것으로 자기가 무슨 대단한 것을 안 것으로 생각을 하고 또 그렇게 미혹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영의 일은 우리가 알 수도 없고 또 인생의 언어로는 설명이 안 된다는 것을 늘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넘어지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 외에 것을 가지고 논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려고 하는 성도지 그룹이 무엇이고 천사가 무엇이고 누가 더 지위가 높고 하는 것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확실한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그룹 사이에 계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에스겔이나 요한계시록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성막의 시은좌를 정금으로 두 그룹을 쳐서 만들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유일하신 하나님이 계신 곳입니다. 하나님께서 계시다는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두 그룹을 만들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늘의 식양입니다

그리고 성막은 전체가 다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이 시은좌 역시도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고 있어야 합니다. 성막의 모든 식양이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고 있는데 이 시은좌만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하는 것은 문제가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룹 사이에 계신 이는 하나님입니다. 또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이 성막을 통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사람들이 이해를 잘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성경에 문자적으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기록이 되어 있으니까 그렇게 믿는 것은 어쩌면 너무도 당연합니다.

 

기도를 합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께 기도를 합니다. 그리고 간절히 호소를 하고 있습니다. 또 실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시고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이런 모든 말씀들 때문에 사람들이 삼위일체라고 하는 것은 너무도 지극히 당연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성경에 분명히 문자적으로 그렇게 기록이 되어 있고 또 예수님께서도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이것을 사람의 이성으로 정의를 하려고 하니까 삼위일체 교리가 탄생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자기들이 교리로 만들어서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그것이 어쩌면 우리 인생들의 한계라고 보면 맞습니다.

 

지극히 당연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그 영이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 주신 것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또 구약에서 하늘의 모형과 그림자를 성막을 통해서 보여 주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모든 것을 육의 이성을 가지고 있는 인생의 생각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렇게 보다보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분명히 하나님의 아들로 보이고 삼위일체를 부정할 수 없는 하나님으로 믿고 있습니다.

 

하나님이십니다.

저도 그것을 어떻게 설명을 해 드려야 이해를 시킬 수 있는지 고민을 하고 지혜를 구하고 있지만 딱히 설명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보고 있는 성경 전체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저보고 설명하라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제가 부활에 대해서도 그렇고 천국에 대해서도 그렇고 지옥에 대해서도 설명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성경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정도만 계시가 되었기 때문이고 더욱더 분명한 것은 영의 일을 우리가 이해를 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설령 하나님께서 계시를 해 주어서 제가 그것을 안다 해도 여러분에게 그것을 설명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도 비유로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비유로 우리가 알아들 수 있는 정도만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이라는 것도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을 깨달으시기를 바랍니다. 아니 이 문제는 믿음으로 밖에 설명이 안 되는 일입니다 믿음이 아니고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을 억지로 설명하려고 하다가 망하는 길로 가게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제가 지난번에 하나님에 대해서 강의를 한번 했습니다.

솔직히 그때도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그렇게 계시를 해 주고 있다는 것을 말씀을 드렸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만약 그렇게 믿지 않고 삼위일체를 주장하면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라는 기초가 흔들리게 되어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깨달아야 합니다.

 

인생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아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영의 일이라서 저도 설명이 불가합니다. 불가하다고 해서 삼위일체라는 교리를 만들어서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못 믿게 하고 있다면 그것 역시 하나님을 모르는 어리석음에 빠지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사람의 생각으로 성경을 보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막입니다

그 마지막이 시은좌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보좌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하나님께서 그곳에 계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성막은 하늘의 식양대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분명히 성막은 당신의 육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유일하신 참 하나님입니다 만약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유일하신 하나님이 아니라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필요가 없어진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냥 유일하신 참 하나님만 믿으면 되지 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합니까? 믿음의 대상은 하나지 둘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말이 안 됩니다.

하나님도 믿어야 하고 예수 그리스도도 믿어야 합니까? 삼위일체교리는 두 신을 믿어야 한다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예수가 그냥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해도 마찬가지가 됩니다. 성경은 분명히 주 예수를 믿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사야9:6절을 보겠습니다. (구978쪽)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입니다.

이 말씀 그대로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습니다.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 아니라고 주장을 하는 것은 스스로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부정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경을 잘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또 이 성경이 영의 일이라는 것을 한시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영의 일을 말씀을 하려고 하다 보니까 설명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이해를 시키려고 하다 보니까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된 것입니다 그러나 초대 교회가 지나가고 교회가 세상의 권력과 함께 공유를 하기 시작을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사람들이 정의를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이 말씀이 정답입니다.

우리가 이해할 수 없지만 이 말씀을 기초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어떻게 아들을 주셨는데 그 아들이 아버지가 되겠습니까? 이것은 사람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일입니다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셨는데 그가 아버지라는 말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습니까?

 

설명이 안 됩니다.

그러다 보니까 이렇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마치 천국을 말씀하면서 설명할 방법이 없으니까 신부가 신랑을 위해 단장한 것 같더라는 말씀과 같습니다. 영의 일을 사람이 알아들 수 있게 설명할 방법이 없으니까 이렇게 가르쳐 주시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이라고 믿지를 않고 있습니다.

 

아니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삼위의 아들로서 하나님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 자체가 유일하신 하나님을 안 믿고 있는 것임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그저 막연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이라고는 믿고 있지만 왜 하나님인가를 모르고 교회에서 가르쳐 주는 대로 삼위일체 중에 하나라고 믿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왜 삼위일체가 됩니까?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영이신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실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아니 사실 오신다는 것 자체가 도무지 이해가 안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잉태가 되셨다고 하지만 그것을 우리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습니까? 그러다 보니까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아들로 마치 하나님의 한 위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입니다

그것을 사람들이 어떻게 이해를 합니까? 그것은 사람들의 이성으로 이해를 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입니다.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방법 외에는 다른 것으로는 이해가 불가능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조차도 믿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요한복음에서 하나님께 로서 난 자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께 로서 났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그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믿음이 아니고는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실 목사인 저 조차도 하나님께 로서 난 것을 여러분에게 명확하게 보여 드릴 수 없습니다.

 

믿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역사로만 믿어지는 일입니다. 사실 우리 안에 탄생이 되는 그리스도의 영도 설명이 잘 안 되는데 그것도 말씀으로 밖에는 설명할 방법이 없는데 더구나 하나님을 우리가 설명하려고 하고 또 규정을 하려고 하는 자체가 얼마나 교만한 일인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말씀으로 믿어져야 합니다.

성경에 그렇게 기록이 되어 있으면 그대로만 믿어져야 합니다. 영의 일은 누구도 그것을 규정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사람이 교만해져서 하나님을 자기들의 이성으로 규정을 하고 있고 그것을 교리로 만들어서 그렇게 믿으라고 강요를 하고 있습니다. 또 그렇게 믿지를 않으면 마치 이단인 것으로 취급을 하고 있습니다.

 

오직 믿음입니다.

성경에서 왜 믿음이라고 하는 줄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 영의 일을 우리에게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믿음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천국 하나만 생각해도 그렇지 않습니까? 솔직히 천국이 있다는 것을 누가 증명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믿음이 아니고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성도님들이 잘 알고 있습니다.

 

모르겠습니다.

요즘은 자기들이 갔다 온 사람들이 있다고 하니까 사람들이 아주 쉽게 미혹을 당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도 사람의 말로 가히 말할 수 없다고 하는데 이 시대는 사람의 말로 천국을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런 말들로 사람들이 얼마나 미혹이 되고 있습니까? 마찬가지로 이 삼위일체로 거의 모든 사람들을 미혹을 하고 있고 그것에 속아 결국에는 사망의 길로 가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가장 어려운 문제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어야 하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믿는가는 너무도 중요합니다. 하나님으로 믿을 것인가 아니면 삼위일체에서 하나님의 아들로 믿을 것인가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고 하겠지만 하나님의 아들은, 아들은 될 수 있어도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단은 교묘합니다.

하나님으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로 믿습니다. 사실 아무 문제가 없는 것 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은 그냥 아들이라고 인정만 하면 되는 것이지 믿음의 주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마치 천사를 천사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 천사의 능력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그것은 천사일뿐입니다.

 

아들입니다

하나님의 어린 양입니다 그런데 왜 믿습니까? 믿는다는 것을 잘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만약에 하나님의 어린 양이면 우리가 믿을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믿는 것이지 하나님이 아니라면 왜 믿습니까? 절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닫기 바랍니다.

 

요한복음1:18절을 보겠습니다. (신 142쪽)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성경에는 분명히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씀이 너무도 많이 있고 사람들은 다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이 문자적인 말씀을 전적으로 부정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아들이라는 말씀을 잘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아들이라고 하는 말씀은 우리가 알아들 수 있게 설명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오십니다.

그것이 더 이상하게 생각이 될 수 있습니다. 만약에 가정을 해서 하나님께서 직접 오셨다고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에스겔을 보아서 알겠지만 그룹 사이에 계시는 하나님입니다 그룹이 같이 와야 하고 그리고 천천만만의 천사들이 함께 와야 합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영이신 하나님이 직접 이 세상에 오실 수 없는 이유는 사람이 하나님을 보는 순간에 죽게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흠도 점도 없으신 분인데 죄인인 인생들이 하나님을 보는 순간에는 그 자리에서 죽는다는 것을 성경 곳곳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직접 오실 수 없는 이유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로 오셨습니다.

사람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셔야 사람들이 죽지 않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어느 누구도 인생으로는 하나님을 직접 볼 수 없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신성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냥 신이 아니라 유일하신 참 신이신 하나님을 사람이 본다는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성경에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세상에 신이 있습니까?

그것은 다 인생들이 만들어 낸 신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유일하신 참 신이시며 거룩하신 분입니다. 그런 하나님께서 만약에 이 지구에 그대로 오신다면 이 지구에 있는 모든 사람은 다 죽게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깨달아야 합니다.

 

영의 일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제가 부활에 대해서도 말씀을 드렸습니다. 왜 우리가 부활을 해야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부활의 형상을 입지 않고 하나님을 본다면 그 자리에서 죽음을 당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은 우리에게 부활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부활의 형상이 아니고는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독생하신 하나님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우리와 똑같은 모습으로 오셔야 우리가 그 분을 보고도 죽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이신 하나님이 그대로 우리에게 오신다면 죄가 있는 인생들이 보는 순간에 그대로 죽는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본 사람이 없습니다.

이제 까지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습니다. 영이신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다는 말씀을 잘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왜 본 사람이 없는 가면 보는 순간에 죽기 때문에 본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사람들이 보고 믿을 수 있게 예수 그리스도로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이것은 영의 비밀이기 때문에 저도 이렇게밖에 설명을 드릴 방법이 없습니다.

 

안 됩니다.

하나님의 신성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영의 부활과 천국에 대해서 바로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계시는 그곳에는 죄와 허물이 있는 인생들이 견딜 수 없는 곳임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부활과 천국에 대해서 사람들이 이해를 잘 못하다 보니까 성경에 문자적으로 기록이 되어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생각하면서 삼위일체라는 이상한 것을 탄생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입니다.

그러나 그 형상 그대로 이 지구에 오실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인생들이 보고도 죽지 않을 수 있는 형상 우리와 똑같은 체질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 인생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스스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속죄를 받고 또 그 분이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부활의 산 소망을 주신 것입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나타나셨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아니고는 어느 누구도 우리를 구원해 주실 분이 없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로 속죄 제물이 되었다면 그것은 우리가 그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이유가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영의 일은 정말 어렵습니다.

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라고 확신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 하나님이 아니라면 제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너무도 오랜 동안 교리에 묶여서 아니 성경을 너무 쉽게 보다보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취급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이라는 것을 믿지를 못하고 하나님의 아들로 다른 위로 믿고 있고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구속의 경륜을 믿지 못하는 결과는 가져오고 있습니다.

 

아들이 아닙니다.

아니 우리가 부를 때는 아들이라고 불러도 됩니다. 그러나 믿을 때는 분명히 하나님으로 믿어야 합니다. 그것은 그 분이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구원자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하나님의 형상으로 직접 오실 수 없는 이유는 우리 인생들이 하나님을 보는 순간에 죽기 때문에 인생의 몸을 빌어 입고서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요한복음14:8-9절을 보겠습니다. (신 172쪽)

“빌립이 가로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빌립이 말 합니다.

예수님께 아버지를 보여 달라고 말 합니다. 아마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빌립이 예수님께 묻고 있다고 보면 맞습니다. 예수님께서 보여 주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직접 보여 주시면 더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빌립은 모르고 있습니다.

 

지금 그것을 예수님께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내가 하나님이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또 주님께서는 너희가 하나님을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보았습니다.

그럼 하나님을 보았다는 말씀입니다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들을 사랑하셔서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것을 이사야서에서 한 아기가 나셨다고 말씀을 하면서 영존하시는 아버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해가 안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이라고 믿지 않는 것이 더 이해가 안 됩니다 정말 성령의 감동을 받고 있는 성도라면 성경에서 수도 없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라는 것을 계시를 해 주고 있는데 어떻게 삼위일체라는 이상한 교리를 따라갈 수 있습니까?

 

보았습니다.

이제까지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습니다. 그것은 영이신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또 그 말씀은 영이신 하나님을 우리 인생들은 볼 수 없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로 오셔서 보여 주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으로 믿지를 않고 삼위일체라는 교리에 의해서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인생의 눈으로 볼 수 있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을 우리 인생이 다른 방법으로는 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빌립이 아버지를 보여 달라고 하니까 주님께서 네가 나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고 하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쉽게 말씀을 드립니다.

아마도 이 말씀이 여러분에게 이해가 가장 쉽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들이 볼 수 있는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육신의 모습을 입고 오셨습니다. 육을 가지고 있는 인생들에게 하나님께서 직접 오셔서 구원의 경륜을 이루시려고 하니까 하나님께서 육의 모습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영이신 하나님입니다

그 하나님을 우리 인생들은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그 날에 우리 영이 신령한 몸을 입으면 그때는 우리가 영이신 하나님을 볼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아마도 이렇게 설명을 하는 것이 이해를 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부활입니다

그리고 천국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우리가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호해 줄 수도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을 사랑하셔서 천국에서 함께 사시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구속의 경륜을 이루시고 그 믿는 성도들에게 하늘로서 온 하나님의 영이 탄생하게 하시고 그 영이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에 천국으로 인도함을 받아 부활이 되어 거기서 영이신 하나님을 볼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인생들의 눈으로 보는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 인생들이 구원을 받아 탄생이 된 영이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에 신령한 몸을 입고 볼 수 있는 하나님은 영이신 하나님입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지 않고는 이런 영의 일들이 깨달아질 수 없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성경을 인생의 지식으로 보고 있고 그런 생각들이 삼위일체라는 교리를 만들어 냈고 그 교리에 묶여서 꼼짝을 못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4:8절을 보겠습니다. (신 403쪽)

“네 생물이 각각 여섯 날개가 있고 그 안과 주위에 눈이 가득하더라 그들이 밤낮 쉬지 않고 이르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자라 하고”

 

장차 오실 자가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는 사람이라면 장차 오실 자가 누구라는 것은 다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오십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십니까? 주님께서 사도행전에서 하늘로 승천을 하시면서 너희가 본 그대로 내가 속히 다시 오리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룹입니다

그 사이에 계시는 하나님입니다 그룹들이 하나님을 찬송을 하고 있습니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이 세상에 오실 때는 죄 있는 인생들이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로 오셨습니다. 영이신 하나님이 직접 오시면 인생들이 보고 죽기 때문에 그렇게 오셨습니다.

 

그러나 종말의 때입니다

지금 요한계시록은 종말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종말의 때에는 하나님이 오십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은 다 죽는다는 것을 성경에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오시기 때문에 인생들은 다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안에서 잠자고 있는 하나님의 영이 있는 성도들은 신령한 몸을 입고 영접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분명히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장차 오실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다고 알고 있습니다. 아니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요한은 하나님이 오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지만 사람들은 문자에 갇혀서 빠져 나오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2000년 전에 오셨습니다.

우리 인생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인생의 몸을 입고 오셨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사람들에게 보이시고 또 구속의 경륜을 이루셨습니다. 사단에게 다 죽어가고 있는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셔서 사단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하시고 부활하셔서 하늘에 올라가셨습니다.

 

이제 다시 주님이 오시지 않습니다.

잘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다시 오시면 종말의 때에도 이 세상에 구원을 받을 사람이 있다는 것이 됩니다. 주님을 보는 사람은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보는 사람은 살 수 없습니다. 종말의 때에는 하나님이 오시기 때문에 이 세상에 말씀 그대로 종말이 온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때는 주님으로 오실 필요가 없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그때는 구원을 받을 성도들은 다 하늘의 형상을 입고 있기 때문에 영이신 하나님을 보아도 죽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땅에 남아 있는 자들은 다 죽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지만 사람이 만든 교리로 인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폄하시키고 있고 또 하나님을 삼위일체의 위로 나누고 있습니다.

 

무엇이 문제입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 아니라면 우리의 구원은 거짓이 되고 맙니다. 구원은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우리 인생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신 것이지 다른 이유가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일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러 오셨습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오신 유일한 목적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주님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다 보니까 생일까지 만들어 놓고 그 날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런 것이 얼마나 인간적인 생각인가를 모르고 있고 성탄절이라고 지키고 있습니다. 만약에 주님이 하나님이라고 믿고 있다면 누가 성탄절을 만들고 지키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이다 보니까 성탄절을 만들어 지키고 있습니다. 그 절기가 율법이 되어서 사망으로 끌고 가고 있는데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생일이 어디 있습니까?

하나님의 아들이다 보니까 생일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히브리서에서 분명히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시작한 날도 없는 예수 그리스도를 지금 이 시대는 성탄절이라고 하면서 절기를 지키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너희가 삼가 절기를 지키니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헛될까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룹 사이에 계십니다.

그 분은 하나님이라고 말씀합니다. 또 장차오실 분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주님께서 장차 오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성막의 시은좌에는 누가 앉아 계시는 가를 알 수 있습니다. 장차 오실 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으로 앉아 계신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늘의 참 장막을 보여 주시고 그 모형과 그림자로 성막을 짓게 하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막의 중심이 무엇입니까?

그 마지막 안에 있는 것이 바로 시은좌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보좌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거기로 들어가야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대제사장들이 일 년 일 차례 하나님을 만났던 곳이 바로 이 시은좌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막의 모든 식양이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고 있는데 이 시은좌만은 하나님이라고 하는 것은 모순입니다.

 

시편18:2절을 보겠습니다. (구 813쪽)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다윗의 시입니다

누구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물론 다윗은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표현이 누구를 지칭하고 있는가를 성경을 본 성도들은 깨닫고 있습니다.

 

누가 반석입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반석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까? 반석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떠올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시편에서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는데 다윗은 여호와를 반석이라고 시로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건지시는 자입니까?

우리를 악에서 건져주시는 자가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악에서 우리를 건져 주심으로 구원을 받고 있습니다. 이 악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들은 교회 안에서 평생 신앙생활을 하면서 악을 행하다가 진노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이 시대도 역시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행하는 행위들이 악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나의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라고 믿지를 않고 있습니다. 아니 하나님이라고는 하지만 삼위의 아들로서 하나님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부정하는 것임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성도는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믿고 있지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믿고 있지 않습니다. 성경 어디에도 삼위일체의 하나님이라는 말씀은 없습니다.

 

누구에게 피합니까?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피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우리의 안식처가 되고 있습니다. 주님이 주시는 안식으로 우리가 들어가고 있습니다. 이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쓰라고 히브리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피난처 되시는 주님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런 성도를 구원을 해 주시고 있습니다.

 

나의 방패가 됩니다.

우리 성도는 믿음으로 방패를 삼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 앞에 계시는 방패가 되어서 사단이 만지지도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영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구원의 뿔이 되시고 있습니다. 시편의 모든 표현이 다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누가 목자입니까? 예수님께서 나는 선한 목자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렇게 모든 성경이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로 보고 있는데 사람들은 문자에 갇혀서 또 아타나시우스가 만든 교리에 매여서 꼼짝을 못하고 하나님을 그저 아들로 보고 있습니다.

 

삼위일체의 모순입니다

그것은 유일하신 하나님을 부정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으로 안 보고 있고 또 성령을 하나님으로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 어디에도 성령을 하나님으로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심지어는 성령을 하나님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노래를 부르면서 오소서 성령 하나님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모순된 것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입니다 그리스도의 영입니다. 하나님이 되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출애굽기25:22절을 보겠습니다. (구 120쪽)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

 

어디서 만납니까?

성도는 주님께서 열어주신 휘장 사이로 난 새롭고 산 길을 따라 들어가면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성소에서 지성소로 들어가는 것은 천국으로 들어가는 것의 모형입니다 그 휘장 안에 하나님의 보좌 시은좌가 있다는 것을 성막을 통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휘장은 성도가 부활을 해서 천국으로 들어가는 길의 모형입니다.

 

성막을 통해서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성막의 모형은 하늘의 참 장막입니다 우리 성도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을 보여 주시고 있고 그 천국에 들어갔을 때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룹 사이에 보좌에 앉아 계신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성막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시은좌에 계시다는 것을 보여 주시고 있지만 이 시대는 성막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또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고 있습니다.

 

시은좌입니다

성막은 하늘의 참 장막의 모형입니다 우리가 휘장 사이로 들어가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그리고 그곳에는 분명히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받아 들여야 합니다. 그 시은좌가 하나님의 보좌라는 것은 받아들이면서도 이 성막이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라는 것은 안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이런 문제들이 다 자기들이 만든 교리에서 서로 상충이 되다 보니까 설명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히브리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하늘의 참 장막에 들어가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성경에서 보고 있는 성막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이 세상에 당신이 오셔서 이루실 모든 구속의 일들을 미리 예표를 통해서 보여 주셨지만 이스라엘은 도무지 깨닫지 못하고 그것을 육체적으로 섬기는 일에만 열심을 냈습니다.

 

하나님의 보좌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곳입니다 우리가 나중에 신령한 몸을 입고 하늘의 참 장막에 들어갈 때 그곳 보좌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도의 신랑으로 앉아 계십니다. 마치 아담이 하와를 내 뼈 중에 뼈요 살 중에 살이라고 하면서 사랑한 것과 같이 성도가 구원을 받아 들어가는 천국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충만히 넘치게 됩니다.

 

사랑만 있습니다.

그것을 저도 어떻게 표현할 수 없습니다. 인생이 생각하는 사랑으로는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성막이라는 모형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을 얼마나 사랑하시는 가를 아주 자세히 보여 주시고 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힘입어서 담대하게 휘장 안으로 들어가 하나님을 만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구원입니다

또 우리의 영생이기도 합니다. 이 시은좌는 육을 가지고 있는 인생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탄생이 되어 있는 우리 영이 신령한 몸을 입고 들어가는 곳입니다. 주 예수의 은혜를 입어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에 하늘의 신령한 것을 입고 영접을 받아 천국에서 모든 축복을 누리는 성도가 도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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