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너희는 귀를 기울리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성막에 대하여

제8강, 분향단

윤주만목사 2017. 1. 24. 23:17

출애굽기30:1을 보겠습니다. (구 128쪽)

“너는 분향할 단을 만들지니 곧 조각목으로 만들되”

 

분향단을 만들라고 말씀합니다.

성소와 지성소가 있습니다. 성소에는 진설병 상이 있고 등대가 있고 분향단이 있습니다. 이 분향단은 성소 가장 안쪽에 성소와 지성소를 가리고 있는 휘장 앞에 있습니다. 진설병 상과 등대는 서로 마주 보고 있었다면 분향단은 지성소 앞에 있습니다.

 

조각목으로 만들라고 말씀을 합니다.

그리고 금으로 테를 두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금은 다 생명이라는 것을 이미 말씀을 드렸습니다. 향단은 높이가 90센티미터가 되고 길이와 넓이가 45센티미터 정도 되는 네모반듯하게 만들었습니다. 이 분향단에서 향을 피우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제사장이 매일 들어가서 분향단에 향을 피웠습니다.

 

향단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습니까?

그것은 기도입니다. 이 성소 안에는 주님의 살인 떡이 있습니다. 그리고 생명의 빛을 비추고 있는 등대가 있습니다. 그러면 이 향단은 무엇이 되겠습니까? 주님께서 기도를 하시는 것이 됩니다. 사람들은 이 분향단을 보고 성도가 기도하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는데 성막은 전체가 다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분향단을 잘 알아야 합니다.

분명히 성막의 모든 기구들은 다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막을 보면서 그 기초가 흔들려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이 기도에 대해서 사람들이 많이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마치 우리 성도의 기도가 드려지는 것으로 말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분향단의 기도가 성도들의 기도도 포함이 되어 있는 것으로 말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 향단에서 향이 피워지고 있는 것은 주님께서 기도를 하시고 있다는 것을 예표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주님이 기도를 하시는 것을 그림자로 보여 주시고 있는 것이지 우리 성도들이 기도를 하는 것으로 생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의 기도와 우리의 기도는 전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중보기도라고 합니다.

이 기도에 대해서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사람이 다른 사람을 위해서 기도를 해 주는 것을 중보기도라고 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다른 사람을 위해서 기도를 해 주는 것이 중보기도입니까? 아마도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중보라는 말을 잘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사전적인 의미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중간에서 일이 되도록 하는 것을 중보라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중보는 다르다는 것을 우리가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 성도가 중보기도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중보기도를 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밖에는 없습니다.

 

성도는 언어를 잘 사용해야 합니다.

그 언어가 좋다고 해서 무조건 사용을 해서는 안 됩니다. 특히 거룩하다는 언어를 아주 잘 사용을 하고 있는데 거룩하지도 않은 것을 거룩하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거룩이라는 언어가 좋다고 해서 그냥 무조건 사용을 해서는 안 되는데도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아주 쉽게 거룩이라는 언어를 쓰고 있습니다.

 

주일이 거룩합니까?

그런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얼마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거절하고 있는 줄을 사람들이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 어디에도 주일이라는 단어도 없고 또 그 날이 거룩하다는 말씀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주일을 거룩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바로 알지 못하고 있으면 이렇게 자기들이 하고 싶은 언어를 마음대로 사용을 하고 있습니다.

 

명확해야 합니다.

진리는 분명해야 합니다. 성경에서 우리가 진리를 알아 가는데 있어서 불분명하면 그것으로 사망에 이른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중보기도라는 말을 너무 쉽게 하고 있고 그것을 어느 누구도 가르쳐 주지를 않다 보니까 교인들이 쉽게 사용을 하고 있습니다.

 

디모데전서2:5절을 보겠습니다. (신 338쪽)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중보도 한 분입니다.

성경에 분명히 중보가 한 분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것은 서로를 위해서 기도를 해 주는 것이지 그것을 중보기도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중보라는 단어를 잘 이해를 해야 합니다. 성경에서 분명하게 중보는 한 분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중보기도를 하시는 분도 예수 그리스도 한분입니다.

 

이 기도입니다

주님께서 하시는 기도가 지금 분향단에서 향이 피워지고 있는 것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소 안 분향단에서 이 향이 계속해서 피워지고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지금도 기도를 해 주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기도는 생명의 기도라는 것을 여러분이 깨달아야 합니다.

 

생명에 대한 기도입니다.

분향단을 금으로 싸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기도를 해 주시면 우리가 생명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오직 주님만이 하실 수 있는 기도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한다 해도 우리의 기도로는 생명을 얻게 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생명을 얻게 해 달라고 기도는 할 수 있어도 주님의 기도와 같이 그 기도 자체가 생명의 기도가 되지는 않습니다.

 

분향단은 주님의 기도입니다.

그것을 우리의 기도와 연결을 시켜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물론 성도들이 기도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성소 안에 있는 분향단의 향이 우리의 기도가 되는 것으로 오해를 해서는 안 됩니다. 사람들이 중보에 대해서 오해를 하다 보니까 자기들이 하고 있는 다른 사람을 위한 기도를 중보기도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중보기도를 한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무슨 기도를 하고 있습니까? 자기 육체의 정욕과 욕심을 위해서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중보기도를 부탁하는 사람도 그렇고 중보기도를 한다고 하는 사람도 생명에 대한 기도를 하는 것이 아니라 다 육체의 것을 위해서 기도를 하면서 그것을 중보기도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중보기도를 한다는 것은 스스로를 주님으로 격상시키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도가 기도합니다.

그것은 성도의 기도입니다 성도는 서로 기도를 해 주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중보기도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중보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분이라고 분명히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성경에 대해서 너무 모르다 보니까 중보기도라는 말을 아주 쉽게 하고 있고 그들이 하는 기도는 거의 다 정욕에 빠져 있는 기도라는 것을 또한 알아야 합니다.

 

기도를 모릅니다.

이 분향단이 피워지고 있는 것은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기도를 해 주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주님이 어떤 기도를 하고 계십니까? 우리가 이 세상에서 잘살고 잘 먹고 하는 그런 기도를 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생명에 대해서 기도를 하시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주님만 생명에 대해서 기도를 하고 있습니까?

 

성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중보기도라고 할 수는 없지만 우리 성도 역시 다른 사람을 위해서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 기도는 다른 것을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생명에 대해서 기도를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생명에 대해서 기도하는 것 말고 자기가 하나님을 위해서 일하기 위해서 기도하는 것 역시도 다 정욕에서 나온 기도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도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제가 그 기도에 대해서 무시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러나 이 시대 교인들이 하고 있는 기도는 다 정욕적인 기도라는 것을 우리가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주님이 생명에 대해서 기도를 하셨다면 성도 역시 생명에 대해서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냉정하게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의 기도가 무엇입니까?

 

다 정욕입니다

물론 그것이 하나님의 일을 위한 기도라고 하지만 실상은 다 정욕에서 나온 기도라는 것을 모르고 그저 기도를 하라고 하니까 아무 것이나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성도의 기도는 생명에 대한 기도고 가라지의 기도는 교회 안에서 하나님을 위해서 일을 하기 위한 기도와 그리고 자기가 하나님을 열심히 섬기겠다는 정욕적인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5:8절을 보겠습니다. (신 404쪽)

“책을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

 

성도의 기도입니다

요한계시록에서 향이 가득한 금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들의 기도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분명히 깨달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성도의 기도는 금대접에 있습니다. 그리고 금대접에 가득한 향을 성도의 기도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금은 생명입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이 기도에 대해서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반드시 생명에 대한 기도를 해야 합니다. 생명이 아닌 다른 기도를 하는 것은 성도의 기도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기도를 모르고 있습니다. 거의 정욕에 빠져 그런 기도를 하고 있는데 그 기도가 사망으로 끌고 간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기도 많이 하는 것이 좋은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향이 금대접에 담겨 있어야 합니다. 성도의 기도와 교회 안에 있는 지옥에 들어갈 가라지의 기도는 전혀 다릅니다. 지금 이 시대 교인들이 얼마나 기도에 대해서 모르고 있는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는 무조건 좋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기도 잘 하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금대접에 담아야 그것이 하나님께 올라간다는 것을 깨닫기 바랍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시대는 기도가 정욕으로 바뀌고 말았습니다. 그런 기도를 하면서 하나님께서 응답을 하셨다고 자랑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응답을 해 주신 것이 아니라 사단이 그 영혼들을 죽이기 위해서 응답을 해 준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도가 물론 교회를 위해서 기도를 해야 합니다.

또한 연약한 지체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그리고 서로를 위해서 기도를 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 모든 기도가 생명과 연결이 되어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생명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교회에서 무슨 일을 하는 것을 가지고 기도를 해서는 안 됩니다. 그 사람의 기도만 들어 보아도 그가 성도인가 아니면 교회 안에 있는 악한 자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기도 많이 하지 않아도 됩니다.

오히려 많이 하려고 하다 보니까 기도가 정욕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생명에 대해서 기도를 하면 그렇게 많이 하지 않아도 되는데 이 시대는 너무 기도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특히 목사들이 자기가 기도하는 시간까지 이야기를 하면서 교인들을 위해서 그렇게 기도를 하고 있다고 하는데 그런 기도가 다 정욕에서 나온 기도고 그 기도로 인하여 사망이 온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

이 말씀을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기도를 쉬지 않고 하고 또 많이 해야 하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습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씀은 늘 생명에 대해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라는 말씀입니다 성도는 이 생명에 대해서 늘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이지 진짜 쉬지 말고 많은 기도를 하는 것이 좋은 것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정욕으로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매일 새벽 기도를 하면서 그 기도가 거의 다 정욕으로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 기도들은 생명에 대한 기도가 아니라는 것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성도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분복을 받아들이고 생명을 간구하는 기도를 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세상이 아니라 하늘의 생명을 위해서 기도를 쉬지 않고 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8:3절을 보겠습니다. (신 407쪽)

“또 다른 천사가 와서 제단 곁에 서서 금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들과 합하여 보좌 앞 금단에 드리고자 함이라”

 

금향로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금향로는 성소 안 휘장 앞에 있는 향로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금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들과 합하여 보좌 앞 금단에 드린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금대접에 있는 기도와 금향로에 있는 기도는 다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기도입니다.

금향로의 기도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기도해 주시는 것이 바로 이 금향로의 향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도 성막론을 말씀을 하면서 분향단에 대해서 마치 성도들의 기도가 합하여져 있는 것으로 말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거의 모든 목사들이 그렇게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앞서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 성막의 모든 기구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들과 연결을 시켜서는 안 됩니다 이 성막을 보고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해 주시고 있는데 그것을 우리의 기도라고 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요한계시록에서 분명히 성도들의 기도는 금대접에 담겨 있고 주님의 기도는 금향로에 담겨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기도를 하시고 있습니다.

많은 향을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지금도 구원을 얻을 모든 사람을 위해서 기도를 하시고 있습니다. 구원을 받는 많은 성도들을 위해서 다 기도를 해 주시고 있습니다. 그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어주시고 우리를 구원해 주시고 있습니다.

 

이 향이 꺼지지 않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 까지 많은 향이 담겨질 것입니다 그 향은 우리 성도들을 구원하시고자 하는 기도입니다. 주님은 오직 이 기도를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주님의 기도가 있기 때문에 이 시대 우리가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시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생명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지금 나를 위해 기도해 주시고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하늘에서 지금도 기도를 하시고 있습니다. 그 기도는 오직 성도들의 생명을 위해서 기도를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주님께서 기도를 해 주시고 있습니다.

 

내 기도로는 안 됩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나와서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한다 해서 내가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기도를 해 주셔서 구원을 받아야 그때 우리의 기도가 금대접에 담길 수 있습니다. 생명이 없는 자의 기도는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구원을 받고 싶다고 해서 내가 생명에 대해서 기도를 한다고 해서 구원을 얻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금향로를 잘 깨달아야 합니다.

이 기도는 오직 주님이 하시는 기도입니다. 그것은 내가 바라서도 아니고 내가 원해서도 아닙니다. 내 의지와는 아무 상관이 없이 주님께서 구원하실 자를 위해서 기도를 하시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진심으로 기도를 하면 들어주신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내 진심입니다. 제가 그 사람들의 기도가 거짓이라고 말씀을 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분명히 그 사람들이 생명을 얻기 위해서 진심으로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그 사람을 위해서 기도해 주시지 않으면 절대로 생명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이 금향로를 통해서 깨달아야 합니다. 내 진심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주님이 기도를 안 해 주시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주님의 기도를 믿기 보다는 자기들이 진심으로 하는 기도가 응답이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내가 아무리 진심으로 기도를 해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것은 내 진심이지 그것이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성막을 주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생명을 얻으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 성소 안에서 향단에 향을 피우는 일은 잘 했지만 믿지를 않았습니다. 지금 이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들이 기도는 너무 잘 하고 있지만 주님이 하시고 있는 기도를 믿지를 않고 있습니다. 내가 진심으로 기도를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주님이 나를 위해 기도를 하고 있다는 것을 믿으라고 이 금향로를 만들게 하셨습니다.

 

믿음입니다.

우리의 행위가 아닙니다. 내가 하고 있는 기도도 행위라는 것을 깨달으시기를 바랍니다. 물론 금대접에 담겨 있는 성도들의 기도를 제가 폄하를 하고자 하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그러나 내 기도가 금대접에 담기려면 먼저 주님이 나를 위해 기도를 해 주시고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하고 그 기도로 내가 생명을 얻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안 믿습니다.

그리고 기도만 죽어라 하고 있습니다. 기도를 안 하면 구원을 못 받을까봐서 기도하는데 너무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매일 교회에 나가서 기도를 하고 있고 또 기도원이라는 곳에 가서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 기도들은 사실 생명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자기 정욕의 기도라는 것을 모르고 그저 기도에 미쳐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출애굽기30:7-8절을 보겠습니다. (구 129쪽)

“아론이 아침마다 그 위에 향기로운 향을 사르되 등불을 정리할 때에 사를찌며 또 저녁때 등불을 켤 때에 사를찌니 이 향은 너희가 대대로 여호와 앞에 끊지 못할찌며”

 

성경을 잘 보시기 바랍니다.

성소 안에 진설병 상과 등대와 그리고 분향단이 있습니다. 진설병 상과 등대는 일반 제사장들이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분향단은 아론이 아침마다 그 위에 향기로운 향을 사르고 또 등불을 정리할 때 사르고 또 저녁 때 등불을 켤 때 사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론은 대제사장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 하는 인물입니다 아론이 향기로운 향을 사른다는 것은 주님이 기도를 하신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율법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기도를 하신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등불을 정리할 때 사르고 또 저녁때 등불을 켤 때도 사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등불은 생명의 빛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어떤 기도를 하신다는 뜻입니까?

생명에 대해서 기도를 하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분향단에 향을 사르는 일은 반드시 대제사장이 했습니다. 대제사장이 하는 일이 바로 이것입니다 분향단에 향을 사르는 일과 또 일 년 일 차례 이스라엘 모든 백성을 위해서 제사를 드리는 일입니다

 

생명의 기도는 오직 주님만이 하십니다.

주님이 하시는 그 기도로 우리가 생명을 얻고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물론 성도들도 생명에 대해서 기도를 하고 있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기도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기도가 다 응답이 되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그러나 주님이 하시는 모든 기도는 반드시 응답이 되어서 그에게 생명을 주시고 있습니다.

 

역대하26:16절을 보겠습니다. (구 691쪽)

“저가 강성하여지매 그 마음이 교만하여 악을 행하여 그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되 곧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향단에 분향하려 한지라”

 

웃시야 왕입니다

그가 강성하여 지매 그 마음이 교만하여 져서 악을 행하여 그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를 하되 곧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향단에 분향을 하려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는 너무도 중요한 교훈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 향은 반드시 대제사장만이 사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웃시야 왕이 강성하여 지매 자기가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분향을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 마음이 교만하고 악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왕이라 해도 생명에 대해서 기도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생명에 대해서는 오직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기도할 수 있습니다.

 

믿으면 됩니다.

주님께서 기도해 주시는 것을 믿으면 됩니다. 그런데 이 시대 그 마음이 교만한 사람들이 악해 져서 주님이 기도를 해 주시고 있다는 것을 믿기 보다는 자기들이 기도를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자기 생명에 대해서 스스로 기도를 하고 있는 사람은 교만한 사람이며 악한 자입니다

 

정말 중요한 말씀입니다

물론 우리는 생명을 간구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 문제는 주님이 기도를 해 주시고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믿지를 않고 내가 스스로 기도를 해서 생명을 얻겠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마치 웃시야 왕이 그 마음이 교만해서 분향단에 자기가 향을 사르는 악한 행위와 같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교만합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자기들이 얼마나 교만한 가를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서 기도를 해 주심으로 내가 생명을 얻고 있다는 것을 믿기 보다는 자기가 분향을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믿지를 않고 그런 기도를 아무리 해 보아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믿으라는 말씀입니다

믿으면 되는데 사람들이 자기가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믿지를 않는 것이 얼마나 교만한 행위고 악한 일이라는 것을 모르고 이 시대 사람들이 교회 안에서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기도를 해서 천국에 가려고 기도를 아주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그 자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기도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모릅니다.

자기가 교만한 줄도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분향단에서 기도를 해 주시고 있는 것을 믿지 않고 자기가 분향을 하려고 하면서 오히려 그런 기도가 겸손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안 믿고 있기 때문에 웃시야 왕과 같이 교만하여 져서 자기가 분향단에서 향을 사르고 있습니다.

 

역대하26:18-19절을 보겠습니다. (구 692쪽)

“웃시야 왕을 막아 가로되 웃시야여 여호와께 분향하는 일이 왕의 할 바가 아니요 오직 분향하기 위하여 구별함을 받은 아론의 자손 제사장의 할 바니 성소에서 나가소서 왕이 범죄하였으니 하나님 여호와께 영광을 얻지 못하리이다 웃시야가 손으로 향로를 잡고 분향하려 하다가 노를 발하니 저가 제사장에게 노할 때에 여호와의 전 안 향단 곁 제사장 앞에서 그 이마에 문둥병이 발한지라”

 

제사장이 못하게 했습니다.

그러자 웃시야 왕이 손으로 향로를 잡고 분향하려고 하다가 노를 발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 이마에 문둥병이 발하게 하셨습니다. 부정하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이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분향을 하려고 하다가는 반드시 문둥병이 걸린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평생을 문둥병으로 살다 죽었습니다.

그는 문둥병으로 인하여 왕의 자리도 아들에게 넘겨주고 홀로 별체에서 죽을 때까지 살아갔다고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기도를 믿지 않고 지금 이 시대도 자기가 분향을 하려고 하는 사람은 반드시 이 웃시야 왕과 같이 문둥병에 걸려 하나님의 백성에서 끊어지는 일을 당하게 된다는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사람들이 교만해 집니다.

자기가 강성하면 교만해 지고 있습니다. 이 시대 자기가 성경에 대해서 조금 알면 아주 교만해지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위해서 기도를 해 주시고 있지만 믿지를 않고 자기가 분향을 하려고하는 사람은 교만한 사람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악한 사람입니다

사람의 기도가 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웃시야 왕을 통해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생명에 대해서는 주님이 기도해 주시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렇게 믿는 성도들에게는 주님께서 반드시 생명을 주실 줄 믿습니다.

 

그러나 모릅니다.

자기에게 생명을 누가 주시고 있는 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 생명을 위해서 스스로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기도도 하나의 행위라는 것을 모르고 기도를 마치 만능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교인들이 이렇게 교만한 행위를 하고 있으면서도 그 일이 악한 일이라는 것을 모르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위해서 기도해 주시는 것을 믿기 보다는 스스로 분향을 하려하고 있습니다.

 

왕도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왕도 분향을 하려고 하니까 문둥병에 걸리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감히 어떻게 분향을 하려고 생각합니까? 분향단을 모르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모르면 교회 안에서 이렇게 악한 일을 하고 있으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왜 깨닫지 못 합니까?

이스라엘은 직접 그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분향단이 없고 영적으로 우리가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자기 스스로 분향을 하더라도 문둥병에 걸리지가 않습니다. 웃이야 왕과 같이 육적으로 문둥병에 걸리면 사람들이 절대로 자기가 분향을 하려하지 않을 텐데도 문둥병이 걸리지 않으니까 점점 더 교만하여 지고 있습니다.

 

성경은 예표입니다

그리고 시범케이스입니다 이미 웃시야 왕을 통해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 분향단을 바로 알고 내가 스스로 분향을 하려고 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그러나 이 분향단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그저 기도를 하는 것으로만 알고 있다 보니까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교만하여 져서 악을 행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문둥병이 걸리면 안 합니다.

그러나 이제는 문둥병이 걸리지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왕이라도 분향단에서 분향을 하면 어떻게 된다는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러나 지식이 없어서 망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지식이 있으면 절대로 내가 분향하려고 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는데 지식이 없어서 악한 일을 행하고 있습니다.

 

문둥병이 걸리면 어떻게 합니까?

이스라엘이 진 밖에 내 보내라고 했습니다. 진 밖에 있다는 것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천국은 내가 스스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서 기도해 주심으로 내 안에 생명이 탄생이 되어 들어간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출애굽기30:34-36절을 보겠습니다. (구 130쪽)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소합향과 나감향과 풍자향의 향품을 취하고 그 향품을 유향에 섞되 각기 동일한 중수로 하고 그것으로 향을 만들되 향 만드는 법대로 만들고 그것에 소금을 쳐서 성결하게 하고 그 향 얼마를 곱게 찧어 내가 너와 만날 회막 안 증거궤 앞에 두라 이 향은 너희에게 지극히 거룩하니라”

 

향품을 만들라고 말씀을 합니다.

너는 소합향과 나감향과 풍자향의 향품을 취하고 그 향품에 유향을 섞되 각기 동일한 중수로 해서 향을 만들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무 향품을 가지고 향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소합향과 나감향과 풍자향에 유향을 섞되 동일한 중수로 만들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유향에서 대해서는 이미 말씀을 드렸기 때문에 오늘은 이 세 가지 향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소합향입니다

소합향은 때죽 나무 과에서 추출물 또는 몰약 수지를 소합향이라고 합니다.

소합향은 성경에 딱 한번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물론 저도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그것이 몰약의 수지라고 많이 기록이 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어찌 되었든 소합향은 때죽 나무에서 추출했다는 것이 가장 설득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깨어나게 하는 향기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말 합니다

 

잠언20:13절을 보겠습니다. (구 933쪽)

“너는 잠자기를 좋아하지 말라 네가 빈궁하게 될까 두려우니라 네 눈을 뜨라 그리하면 양식에 족하리라”

 

이스라엘은 잤습니다.

그들은 행위에 대해서는 너무 열심을 냈지만 진리에 대해서는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소경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소경은 잠을 자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의 기도는 우리를 깨워 주시고 있습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은 자고 있습니다.

육체의 눈은 뜨고 있을지 몰라도 진리에 대해서는 잠을 자고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잠자고 있는 자를 깨워주시고 있고 그들에게 양식을 주시고 있습니다. 소합향은 잠자는 이스라엘을 깨워주는 향기입니다 이 향이 살라짐으로 해서 그들이 생명의 양식을 먹고 구원을 얻을 수 있게 해 주시고 있습니다.

 

우리가 깨달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깨워 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생명의 양식을 먹을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눈을 뜨게 해 주셔야지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갈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은 내 능력으로 되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또한 내가 지혜가 있다 해서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은 다 소경이 되었습니다.

성경을 보고는 있지만 그리고 하나님을 믿는다고는 하고 있지만 그들은 잠자는 자와 같았습니다. 자기들이 잠을 자고 있으면서도 깨닫지를 못했고 결국에는 빈궁해 졌는데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깨워 주셔서 우리에게 성경을 볼 수 있는 눈을 열어 주셔야 합니다.

 

진리의 성령입니다

성령을 보내 주셔서 우리가 진리 가운데로 인도함을 받게 해 주시고 있습니다. 성령을 내가 받고 싶다고 해서 받아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택하신 자들에게 보내 주셔 야지만 성령이 임하셔서 족하게 양식을 먹고 생명을 얻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시대도 역시 사람들은 자고 있으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왜 모릅니까?

자기들이 행위를 보면 분명히 깨어 있는 자 같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행위에 대해서 깨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서 진리를 알아가는 눈이 열려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자기들이 알고 있는 아주 적은 지식으로 마치 생명의 양식을 먹고 있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이 향품의 의미도 모르고 있는 그들이 어떻게 깨어 생명의 양식을 먹을 수 있겠습니까?

 

성도는 깨어 있어야 합니다.

잠자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내가 깨어 있는 자인가 아니면 잠자는 자인가를 바로 알아야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기도를 해 주시면서 깨워 주시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이 다 자고 있지만 주님께서 깨워주시는 자는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25:13절을 보겠습니다. (신 43쪽)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

 

열처녀의 비유입니다.

교회에 나와 있지만 깨어 있지 않은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열처녀의 비유에서 다섯으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실제는 다 자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다 자고 있었습니다.

 

기름이 무엇입니까?

성령을 받지 못하고 있는 사람은 자고 있는 자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교회 안에서 나타나고 있는 은사를 보면서 자기가 성령을 받은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열처녀의 비유에서 성령을 받지 못하고 있는 다섯 처녀를 자고 있다는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을 보내 주셔서 우리가 진리를 행할 수 있게 깨워주시고 있습니다.

 

안 됩니다

성령이 오시지 않으면 아무리 그가 성경을 많이 읽는다 해도 또 성경을 연구하면서 묵상을 한다 해도 그는 잠을 자고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자고 있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잠을 자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보내 주셔서 책망을 하고 있지만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도 주님이 보내 주시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위해서 성령을 보내 주셔서 우리가 생명에 대해서 깨어 있게 해 주시고 있습니다. 문제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다 성령을 받았다고 믿고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는 다 율법의 행위에 빠져 있으면서도 성령이 오시지 않아서 주님의 기도를 믿지 않고 있으면서도 스스로의 지식으로 깨어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성령론에 대해서 강의를 했습니다.

이 시대 성령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그저 자기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고 있는 것으로 마치 성령이 오신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오시면 반드시 율법에서 벗어나야 하는데 율법을 지키고 있으면서도 성령이 오셨다고 믿고 있습니다.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성령이 오시면 우리에게 율법을 지키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서 믿게 역사를 해 주고 있습니다. 성도가 믿으려면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바로 알아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한 가지라도 율법을 지키고 있다면 그는 아직 성령이 오시지 않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주일이라는 율법을 지키고 있고 각종 예배의 율법을 지키고 있으면서도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왜 깨닫지 못 합니까?

그것이 율법이라는 것을 왜 모릅니까? 그들에게는 아직 성령이 오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오셨다면 율법에 대해서 바로 볼 수 있는 눈이 열릴 텐데도 잠자는 자들과 같이 있어서 자기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조차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소합향은 깨워주는 향입니다

누구를 깨워주시겠습니까? 아무나 깨워주는 것이 아니라 구원을 받을 성도들을 깨워 주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주님이 기도를 하심으로 영적으로 잠을 자고 있는 자를 깨워 주시고 있습니다. 이 기도는 성도들을 깨워주는 기도라고 생각을 하시면 됩니다. 주님께서는 실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성도들을 위해서 기도를 하셨습니다.

 

요한복음17:9절을 보겠습니다. (신 177쪽)

“내가 저희를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저희는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

 

누구를 위해 기도를 합니까?

세상을 위해서 기도를 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님에게 주신 자들을 위해서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기도를 하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소합향의 기도는 이 세상 사람들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 택하신 자들을 위한 주님의 기도입니다

 

그 기도가 응답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깨어 있습니다. 주님께서 성도들을 위해서 기도를 해 주심으로 이 시대 우리가 생명을 얻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17장에서 3번의 기도를 하시고 있습니다. 그 기도의 첫 번째가 우리를 깨워 주시는 기도입니다 우리를 위해서 기도를 하고 있다고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나를 위해서 기도를 해 주셨습니다. 그 기도로 내가 깨어나 생명을 얻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참으로 놀라운 비밀들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살아가고 있고 교회 안에서 거의 맹목적으로 종교적인 행위에 빠져 들어가고 있습니다.

 

내가 저희를 위해 비옵나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나를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 주님께서 기도를 해 주셨습니다. 이 기도가 있었기 때문에 내가 사망에서 깨어나 지금 생명으로 옮겨졌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성도들 하나하나를 위해서 기도를 해서 생명을 얻게 하시고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기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주님의 기도를 반드시 들어주십니다. 나사로의 무덤에서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여 내 기도를 들어 주신 것을 감사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바로 알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주님의 기도를 들어주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기도를 할 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습니까?

그것은 순전히 주님께서 나를 위해서 기도를 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기도를 해 주시지 않았다면 나는 아직도 어두움에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어두움에서 자고 있으면서도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오히려 주님을 대적을 했습니다.

 

안 됩니다

주님이 기도해 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깨어날 수 없습니다. 이 모든 것은 믿음이 있는 성도만이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믿음의 비밀을 모르고 있는 사람은 제가 아무리 이 말씀을 드려도 이해가 안 되게 되어 있습니다. 성경에서 그저 문자적으로 알고 있는 지식을 가지고 스스로 깨어 있다고 하면서 착각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마치 다섯 처녀 같습니다.

그들이 성령을 안 받았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까? 자기들도 성령을 받았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에 주님이 오실 때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이렇게 성령이 아직 임하시지 않은 줄도 모르고 그저 주님을 기다리고 있는 자들은 모두가 잠자는 사람입니다

 

정말 바로 알아야 합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다 이 다섯 처녀와 같이 그렇게 주님을 막연하게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도 전혀 모르면서 마치 자기들이 다 알고 있는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 시대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됩니까? 율법을 지키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믿음이라고 하는 황당한 이야기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사람들은 이스라엘과 같이 잠자는 자들입니다

 

나감향입니다

나감향은 바다에서 나는 조개 일종의 연체동물의 껍질에서 추출을 해서 향을 만드는데 이것을 태울 때는 쏘는 듯한 향기가 난다고 합니다. 강한 향기가 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향 하나하나는 주님께서 어떤 기도를 해 주시고 있는가를 가르쳐 주고 있는 예표입니다.

 

고린도전서15:55-57절을 보겠습니다. (신 284쪽)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나감향은 죽음의 쏘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망을 이기게 하셨습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은 이 사망에게 지고 있습니다. 모두가 죄인이기 때문에 사망을 당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들은 모두가 죄의 권능 율법을 이기지 못해서 사망을 당하고 있습니다. 이 사망에서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것은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탄생이 된 생명입니다

 

우리 육체가 아닙니다.

육체는 모두가 지기 때문에 죄인이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의롭다 함을 얻었어도 죽고 있습니다. 아담의 자손으로 태어난 우리 육체는 모두가 죄인으로서 사망을 당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는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은 것이지 실제 의인이 된 것이 아닙니다. 의롭다 함을 얻은 것은 육체가 아니라 영이라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이김을 주셨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육체가 아니라 영입니다. 그런데 이 이김을 육체의 이김으로 오해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죄의 권능 율법을 이기지 못하니까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루시고 우리에게 이김을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영의 일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영의 일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이기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영이 이기는 것입니다 그 영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탄생이 되어 죄와는 아무 상관이 없기 때문에 우리가 이길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영의 일과 육의 일을 혼동을 해서는 안 되고 또 오해를 해서도 안 됩니다.

 

주님께서 이기셨습니다.

이겼으면 영생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 육체는 죄인의 육체이기 때문에 사망을 당하고 있습니다. 사망에서 이겼으면 우리는 이제 천국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구원할 자들을 위해서 아직까지 지금까지 오래 참으시고 있습니다.

 

요한복음17:15절을 보겠습니다. (신 178쪽)

“내가 비옵는 것은 저희를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사망에서 이겼습니다.

그러면 당연히 이제 천국으로 데려가야 합니다. 그것이 완전한 의인으로 형상화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사망의 권세를 이기셨으면 당시 모든 믿는 성도들을 주님이 데려 가시면 됩니다. 그것이 사망에서 완전하게 이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안 데려갔습니다.

그들은 이 세상에서 살다가 육체가 죽었습니다. 사망의 쏘는 것에서 이겼으면 데려가야 하는데 안 데려갔습니다. 그것은 그들을 통해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복음을 전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렇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김을 얻은 성도들이 이제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그들을 위해서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죄의 권능 율법의 사망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이김을 주셨습니다. 이제 그들을 통해서 주님께서 이 세상에 또 다른 성도들을 구원하시려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단번에 속죄를 이루심으로 사망에서 이김을 주셨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영이 사망에서 이김을 얻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이제 성도들에게는 죄의 문제는 사라졌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고 있는 성도들은 더 이상 죄가 우리를 사망으로 끌고 가지 못한다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설령 내가 죄를 지어서 육체의 생명이 남에 의해서 죽는다 해도 우리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영으로 우리는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죄의 문제는 모두 해결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교회 안에서 이 죄의 문제가 걸림이 되고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은 죄를 안 지려고 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죄를 안 질 수 있는 것이 아닌데도 죄를 안 짓기 위해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킨다 해서 죄를 안 짓는 것이 아닌데 사람들이 깨닫지를 못해서 율법을 더욱 잘 지키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죄와 아직까지 싸우고 있는 사람은 초보입니다

죄를 안 지려고 죄를 가지고 정죄를 하고 있는 사람은 아직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합니다. 아직 초등학문에서 벗어나지를 못한 사람들은 죄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이제 주님께서는 그 죄의 문제를 십자가로 다 해결을 하셨기 때문에 악이 문제입니다

 

두 번째 기도를 잘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데려가시지 않았습니다. 죄 있는 인생들을 단번 속죄를 해 주셨으면 데려가야 하는데 그들을 세상에 그냥 두셨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에 복음이 전해지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죄의 문제는 해결이 되었지만 이제 정말 중요한 악의 문제가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악에 빠지지 않고 보존하기 위해서 기도를 하시고 있습니다.

 

악입니다

구원을 왜 못 받는가 하면 죄 때문에 못 받는 것이 아니라 악을 행하기 때문에 구원을 못 받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사단이 어떻게 성도들을 미혹할 것인가를 너무 잘 아시고 구원 받은 성도들이 악에 빠지지 않게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 시대 거의 모든 사람이 이 악에 빠져 있으면서도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죄는 끝이 났습니다.

이제 악이 구원을 못 받게 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너무도 쉽게 악에 빠지기 때문에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기도를 해 주시고 있습니다. 이 악이 사람의 이성으로는 너무도 좋게 보이기 때문에 사람의 의지로는 이 악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 시대 성도들에게 주님께서 이 기도를 해 주시고 있기 때문에 악에 빠지지 않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 교인들이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이 세상 죄를 다 지고 가셨습니다. 이제 그 십자가를 믿으면 구원을 얻습니다. 그러나 악이 있습니다. 이 악이 영적인 죄인데 이 악이 무엇인가를 모르기 때문에 사람들은 악을 행하면서도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1:6절을 보겠습니다. (신 302쪽)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 좇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전했습니다. 그러나 갈라디아 교회는 주님의 은혜에서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좇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교회 안에서 악을 행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듣고서 얼마나 빨리 악에 빠지는 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아직까지 살아서 복음을 전하고 있는 그때에 벌써 갈라디아교회 안에는 율법주의가 들어왔습니다.

 

악이 무엇입니까?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이 악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악이라고 하니까 나쁜 것으로 생각하는데 갈라디아교회가 속히 다른 복음을 좇아 간 것은 율법을 지켰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는 있지만 사람들은 이 율법에 철저하게 사로 잡혀 있습니다. 아니 사람의 이성으로는 율법을 지키는 것이 너무 좋기 때문에 속히 율법을 지키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 악입니다

쉽게 말씀을 드려서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가려지고 내 영광이 나타나는 모든 행위가 다 악입니다 사실 이 악에서 나를 스스로 지킬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반드시 성령이 우리에게 오셔야지 이 악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로마서에서 사도바울이 고백을 합니다.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치 아니하고 악을 행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무슨 악을 행했습니까? 사도바울은 정말 자기 생명까지도 아까워하지 않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한 모든 행위도 다 악이라는 것을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진리를 알고 구원을 받은 성도지만 그래서 이 생명에 대해서 전하고 있는 그 행위까지도 악이라는 것을 사도바울이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죄에서는 이미 건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악이 남아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사람이 행하고 있는 모든 행위가 악하다는 것을 아시고 성도가 악에 빠지지 않게 보존하게 하기 위해서 기도를 해 주셨습니다. 정말 이 문제를 바로 알지 못하면 어느 누구도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쉽게 말씀을 드려서 내가 하나님을 위해서 하는 모든 일 역시도 다 악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이 시대는 그 악에 깊이 빠져 있습니다. 제가 그것을 악이라고 하면 도무지 이해를 못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쉽게 율법주의에 빠지고 있는 가를 사도바울이 갈라디아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눈에는 그리고 이성으로는 율법을 지키는 것이 너무도 좋아 보이기 때문에 아주 작은 율법을 하나 지키기 시작하면 나중에는 온 덩이가 퍼지게 되어 있습니다.

 

지금 교회는 온 덩이에 퍼져 있습니다.

율법을 얼마나 많이 지키고 있는 줄을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모르는 이유는 율법을 믿음이라는 말로 미혹을 하기 때문에 분명히 성경에 율법으로 기록이 되어 있어도 그것을 지키면서도 도무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전도서5:1절을 보겠습니다. (구 952쪽)

“너는 하나님의 전에 들어갈 때에 네 발을 삼갈지어다 가까이 하여 말씀을 듣는 것이 우매자의 제사드리는 것보다 나으니 저희는 악을 행하면서도 깨닫지 못함이니라”

 

모릅니다.

악이 무엇인가를 모르기 때문에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그렇게 율법을 지키고 있으면서도 모르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기도를 해 주시고 있는 성도만이 이 악에 빠지지 않고 지금 이 시대에 보존이 되고 있다는 것을 주님의 기도를 통해서 우리가 깨달아야 합니다.

 

악에 빠져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이 악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악을 교회 안에서 행하고 있다는 자체가 주님께서 그를 위해 기도를 해 주시지 않고 있다는 증거가 되고 있습니다. 앞서서 말씀을 드렸지만 예수님께서 하시는 기도는 우리의 생명을 주시는 기도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율법을 지키는 행위가 악이라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이 시대 율법주의에 빠져 있으면서도 깨닫지 못하고 있고 또 율법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기도해 주시고 있습니다.

십자가로 세상 죄를 다 없애시고 제자들을 하늘로 데려가신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 그냥 두셨습니다. 그것은 제자들을 통해서 이 세상에 복음이 전파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한지 불과 얼마 되지도 않아서 갈라디아교회가 율법주의 빠지고 말았습니다. 율법을 지키면서도 그것이 악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다른 복음에 빠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는 안 빠집니다.

주님께서 기도를 해 주시기 때문에 악에 빠지지 않고 보존을 해서 이 시대도 복음을 전하게 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율법을 안 지키고 또 행위를 따라가지 않고 믿음으로 행하는 것은 주님께서 우리를 악에 빠지지 않게 보존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기도로 우리가 악에 빠지지 않고 이 세상에 성도로 살아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내가 악에 안 빠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인생이 아무리 지혜가 있다 해도 이 악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는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도서에서 저희는 악을 행하면서도 깨닫지 못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것이 다 죄요 그리고 악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악을 모르기 때문에 이 시대 거의 모든 교인들이 그 악에서 빠져 나오지를 못하고 있고 오히려 악을 행하는데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풍자향입니다

풍자향은 갈색을 띤 점성 액체로서 지중해 연안에 다년생 초본 식물인 페룰라 갈바니풀루아 라고 하는 식물의 수지를 풍자향이라고 합니다. 이 향은 혼합을 해서 사용을 하면 그 향기가 오래 동안 머문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래 머문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요한복음17:20절을 보겠습니다. (신 178쪽)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저희 말을 인하여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예수님의 세 번째 기도입니다.

정말 성경을 볼 때마다 그 오묘함이 놀랍다는 말밖에는 표현할 방법이 없습니다. 성경의 모든 말씀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고 있는가를 나타내시고 있습니다. 죄로 인하여 사망을 당할 수밖에 없는 우리 인생들을 하나님의 경륜으로 구원을 해 주시고 있습니다. 우리가 한 것이 아무 것도 없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 이루셨다는 말씀을 깨닫고 있습니다.

 

풍자향은 오래 머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래 참으시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대 우리가 이 복음의 말씀을 듣고 구원을 받은 성도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세 번째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저희 말을 인하여 나를 믿는 사람들을 위함이라고 기도하시고 있습니다.

 

사도들이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들이 쓴 성경이 지금까지 그대로 전해지고 있고 그것을 우리가 보고 있습니다. 사도들의 말을 직접 우리가 듣지는 못했을지라도 성경을 통해서 충분히 듣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서 우리가 성령의 감동을 받아 사도들과 한 성령 안에서 교제를 하고 있다 해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이렇게 우리가 한 성령 안에서 주의 복음을 듣고 있는 것은 주님께서 세 번째 기도를 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믿었습니다.

초대교회로부터 지금 이 시대까지 사도들이 기록한 성경을 통해서 진리 가운데로 인도함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고 그들이 구원을 받은 성도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실 초대 교회를 지나오면서 니케아 공회가 있었던 313년 이후에는 진리가 거의 사라졌다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있어서 지금도 구원을 받은 성도들이 있습니다.

중세 시대에는 심지어는 이 성경을 보는 것 까지도 금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거짓 선지자들만이 성경을 보고 성경을 해석하다 보니까 그런 때는 성도가 거의 없었다고 보면 맞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 주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고 또 기도를 해 주심으로 성경을 마음 놓고 볼 수 있고 성령을 보내 주셔서 생명을 주시고 있습니다.

 

베드로후서3:9절을 보겠습니다. (신 386쪽)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초대 교회는 고난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너무 잘 알고 있듯이 초대 교회의 성도들은 사는 것 자체가 고난이었습니다. 얼마나 큰 환난과 고난을 당했는가를 역사를 통해서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로마를 피해 숨어 살았고 먹을 것이 없어서 굶주림에 시달리면서도 오직 이 복음을 전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래서 당시에 성도들은 주님이 빨리 오시기만을 바라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들이 피를 흘리면서 믿음을 지키고 그들이 환난 가운데서도 천국에 대한 소망을 가졌습니다. 그런 그들의 환난이 있어서 지금 우리가 환난을 당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기를 원하시고 있습니다.

 

오래 참으시고 있습니다.

저도 하나님께서 얼마나 더 오래 참으실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오래 참으셔서 우리가 지금 이 복음을 듣고 생명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이 복음이 거의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실 이 시대는 진리가 사라졌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그러나 아직 종말의 때는 아닙니다.

분명한 것은 주님께서 기도를 하신 그대로 제자들의 말을 듣고 구원을 받을 성도들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모를 지라도 주님께서는 이 시대도 은혜를 주시고 있습니다. 또 그들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주님께서 이 기도를 하셨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이미 종교가 되어 버린 지 오래 되었고 구원을 받을 성도가 아주 적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기독교인 천만 명입니까?

그런 숫자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노아의 홍수 때를 생각하면 이 천만 명이라는 숫자는 자랑거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다수를 기뻐하시지 않았는데 이 시대라고 다를 것 같습니까? 제가 생각하기에 우리나라에서 정말 200명 정도만 구원을 받는 성도가 있다 해도 그것은 주님의 은혜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오래 참으시고 있습니다.

그것은 많은 영혼이 구원을 받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천하 보다 더 귀한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을 하시기 위해서 주님의 약속이 아직까지는 더디고 있습니다. 이렇게 오래 참으신다는 것은 이 세상에 아직까지도 구원할 생명들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시대는 아닙니다.

아직까지 성경에 계시가 되어 있는 그런 때는 아닌 것으로 저는 믿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은 우리가 은혜를 받을 때입니다 주님께서 기도를 해 주시고 있기 때문에 이 기도로 우리가 은혜를 받고 있습니다. 주님의 기도가 얼마나 놀라운 능력이 있는가를 깨닫고 이 기도를 믿으셔야 합니다. 분향단에서 주님은 우리를 위해서 이렇게 기도를 해 주셨고 지금 우리가 그 기도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입고 있습니다.

 

출애굽기30:37-38절을 보겠습니다. (구 130쪽)

“네가 만들 향은 여호와를 위하여 거룩한 것이니 그 방법대로 너희를 위하여 만들지 말라 무릇 맡으려고 이같은 것을 만드는 자는 그 백성 중에서 끊쳐지리라”

 

향은 하나님을 위하여 거룩한 것입니다

그 방법대로 너희를 위하여 만들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향은 오직 하나님만을 위해서 만들어야 합니다. 그것은 주님의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그 방법대로 너희를 위하여 만들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이 기도를 대신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죽습니다.

주님의 기도는 주님만이 하실 수 있는 기도입니다 이 기도는 우리 성도들에게 생명을 주시는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어떤 기도를 하셨는가를 아는 성도는 주님의 기도를 믿습니다. 우리가 기도를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하신 기도를 믿으라는 말씀입니다 믿지 않고 너희를 위해서 이 향을 만들면 백성 중에서 끊쳐지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생명을 얻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교만한 자입니다

이 향을 자기를 위해서 만드는 자는 교만한 자이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기도를 믿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것을 악하다고 분명히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자기들을 위해서 이 향을 만들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 분향단에서 어떤 기도를 하셨는가를 믿으면 되는데 우리 생명을 위해서 기도해 주신 것을 믿으면 되는데 믿지를 않고 자기들이 생명을 위해서 스스로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출애굽기30:9절을 보겠습니다. (구 129쪽)

“너희는 그 위에 다른 향을 사르지 말며 번제나 소제를 드리지 말며 전제의 술을 붓지 말며”

 

분향단입니다.

너희는 그 위에 다른 향을 사르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반드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소합향과 나감향과 풍자향의 향품을 취하고 유향을 섞되 각기 동일한 중수로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어떤 기도를 하시는 가를 가르쳐 주는 말씀입니다

 

다른 향을 사르면 안 됩니다.

이제 성도님들이 이 향에 대해서 말씀을 들었기 때문에 절대로 다른 향을 사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 향이 우리가 맡기에는 정말 좋은 향이라 할지라도 다른 향을 섞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은 성도들은 절대로 다른 향을 사르지 않을 것입니다.

 

기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분향단에서는 번제나 소제를 드리지 말고 전제의 술을 붓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기도를 응답해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 분향단에 대해서 바로 알아야 우리가 어떻게 생명을 얻는 가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모릅니다.

이 시대는 이 분향단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어떤 기도를 하셨는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기도를 하셨는데도 믿지를 않고 있습니다. 분향단을 모르다 보니까 믿을 수 없는 것입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알아야 믿을 수 있습니다. 알지도 못하면서 믿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다른 향은 안 됩니다

반드시 하나님께서 정하신 향을 살라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다른 향을 사르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율법입니다 성막을 기구들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알고 믿으면 됩니다. 그러나 이 믿음의 비밀을 모르다 보니까 사람들이 교만하여 져서 웃시야 왕과 같이 악을 행하면서도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22:32절을 보겠습니다. (신 135쪽)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 가륫 유다는 예수님을 은 삼십에 팔았고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 부인을 했습니다. 우리가 여기에서 중요한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물론 예수님을 판 죄가 더 큽니다. 그러나 부인을 한 죄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한 사람은 팔았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은 주님을 부인을 했습니다. 그리고 난 후에 누가 더 회개를 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베드로는 부인을 하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러나 가룟 유다는 자기의 잘못을 깨닫고 스스로 자살을 했습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 누가 더 참회를 했다고 볼 수 있습니까? 누가 더 참회를 했는가는 중요하지가 않습니다.

 

주님께서 누구를 위해 기도를 하셨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같은 제자였지만 주님은 가룟 유다를 위해서는 기도를 안 해주시고 베드로를 위해서는 기도를 해 주셨습니다. 베드로를 위해서 믿음이 떨어지지 않게 기도를 해 주셨습니다. 주님께서 베드로를 위해서 기도를 해 주셔서 그는 끝까지 믿음을 간직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성령이 오시고 난 후에 삼천 명이 회개를 하는 설교를 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주님의 기도입니다

나를 위해서 어떤 기도를 해 주셨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베드로는 주님께서 기도를 해 주셔서 비록 세 번이나 부인을 했을지라도 돌이키고 난 후에 주님의 사도로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주님의 기도는 바로 이런 능력이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기도를 해 주시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다는 것을 분향단을 통해서 깨달아야 합니다.

 

로마서8:34절을 보겠습니다. (신 250쪽)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기도하시고 있습니다.

지금도 주님은 하나님 우편에서 대제사장으로 우리를 위해서 기도를 해 주시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가 생명을 얻은 것은 내가 원해서도 아니고 오직 주님께서 나를 사랑하셔서 기도를 해 주시기 때문에 영원한 생명을 얻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 우편입니다

그것은 대제사장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론이 분향단의 향을 사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주님께서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서 간구를 하시고 있습니다. 우리가 바로 깨달아야 하는 것은 성경은 생명에 대한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우리에게 이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어떻습니까?

생명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모른다고 해야 맞습니다. 성경을 보고도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저 자기들이 어떻게 하면 잘 해서 천국에 갈 수 있을까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잘하고자 하는 모든 행위가 다 악이라는 것을 모르고 그 일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에게는 하나님께서 믿음을 주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생명은 말 그대로 주시는 것입니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내 의지와는 아무 상관이 없이 부모의 사랑에 의해서 태어났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생명을 주시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썩어지는 생명이 아니라 영원히 썩지 않는 생명을 주시고 있습니다. 이 생명을 주님께서 분향단에서 기도를 하셔서 주신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어떤 종교적인 행위가 아닙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어떤 일을 하셨는가를 믿는 것입니다 주님의 기도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들어주신다는 것을 분향단을 통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분향단에서 우리 생명을 위해서 기도해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생명을 얻어 천국에서 모든 축복을 누리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성막에 대하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10강, 증거궤   (0) 2017.01.30
제9강, 휘장   (0) 2017.01.28
제7강, 등대  (0) 2017.01.21
제6강, 진설병상   (0) 2017.01.19
제5강, 제사장의 옷   (0) 2017.0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