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너희는 귀를 기울리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성막에 대하여

제10강, 증거궤

윤주만목사 2017. 1. 30. 08:07

출애굽기25:10-11절을 보겠습니다. (구 120쪽)

“그들은 조각목으로 궤를 짓되 장이 이 규빗 반, 광이 일 규빗 반, 고가 일 규빗 반이 되게 하고 너는 정금으로 그것을 싸되 그 안팎을 싸고 윗가로 돌아가며 금테를 두르고”

 

지성소

정사각형으로 길이 넓이가 약 4.5미터 정도 되는 것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막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 성소를 짓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성소에 휘장을 치고 지성소와 분리를 하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앞에서 배웠듯이 성소 안에는 진설병 상과 등대와 그리고 분향단이 있습니다. 그리고 성소와 지성소를 가리는 휘장이 쳐져 있습니다.

 

증거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증거궤를 만들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증거궤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조각목으로 궤를 만들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조각목으로 만든 궤를 정금으로 싸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말씀을 드리지만 정금은 생명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궤는 생명입니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고 있는 궤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 생명에 대해서 증거를 해 주고 있는 궤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십계명이 들어 있다 보니까 이것을 법궤로만 생각을 하고 있고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증거궤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런데 법이 될 수는 없습니다. 성경을 볼 때 모두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먼저 기본으로 생각하고 보아야 합니다. 그 안에 십계명이 들어 있다 해서 마치 이것을 법궤로 생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법궤라고 하면 사람들은 자기가 법을 완전히 지키지 못했기 때문에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어 있습니다.

 

아마도 거의 모든 사람들이 법궤로 말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 안에 십계명이라는 법이 들어 있다 보니까 법궤라고 하는 것이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 궤를 증거궤라고 하고 있고 언약궤라고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법궤라고 기록이 되어 있는 것은 단 한 차례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성경은 개역 성경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법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그리고 법이라는 단어를 너무 쉽게 사용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에서 사는 것 자체가 법이기 때문입니다. 법에 의해서 살아가고 있다 보니까 법을 무시를 하지 못하고 있고 무엇을 생각해도 법과 연결을 시켜서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증거궤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증거를 해 주시고 있고 그 증거는 생명이 있다는 것을 이 증거궤를 통해서 깨달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그 속에 들어가 있는 십계명을 너무 크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이 증거궤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을 하지 않고 있고 이 증거궤 자체가 마치 법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성막을 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자기 육체가 성전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은 다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 주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먼저 정립을 하고 성막에 대해서 배워야 합니다. 그러나 증거궤를 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도 않는 십계명을 보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안 봅니다.

그리고 율법을 보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는 사람들의 시각이 어떠하다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누구라도 지성소 안에 있는 증거궤를 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도 않고 있는 십계명을 보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이 지성소를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법을 보고 있는 사람은 늘 두려워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도는 두려워하는 자가 아니라 사랑을 받고 있는 자입니다.

 

성막을 보고 왜 두려워합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 두려워하는 사람은 성경에서 예수를 잘못 보고 있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율법은 우리에게 두려움을 주고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평강을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 성막을 보고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그는 성막을 잘못 보고 있는 사람입니다.

 

물두멍에서 한번 걸렸습니다.

그리고 다 이 증거궤에서 걸리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증거궤 안에 십계명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시대 거의 모든 교회가 이 십계명이 살아 있다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더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십계명이 살아 있다 보니까 주님께서 자기 육체로 휘장을 찢고 새롭고 산 길을 열어 주셨지만 들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왜 걸립니까?

다 문자적으로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십계명을 문자적으로 보고 있으니까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십계명을 제가 다 해석해서 그리스도편지 설교에 올려 드렸습니다. 그 십계명을 본 성도님들은 이제까지 육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십계명과는 전혀 다른 것을 보았을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문자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에 대해서 어느 누구도 자신이 있다고 말할 사람이 없습니다. 자기 부모를 공경했다고 하는 사람은 정말로 문제가 심각한 사람입니다 아무리 자기가 잘 공경을 했다 해도 어느 누구도 공경 했다고 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이 문제이기도 합니다.

 

공경 했습니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만약에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는 정말로 교만한 사람입니다. 이렇게 문자적으로 십계명을 보고 있는 사람들은 주님께서 열어주신 새롭고 산 길을 따라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 증거궤 앞에 가는 것을 두려워하게 되어 있습니다. 왜 두려워하는 가를 보겠습니다.

 

야고보서2:10절을 보겠습니다. (신 372쪽)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온 율법을 지켰습니까?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그 율법도 우리는 못 지켰습니다. 문자적으로 법적으로는 이것 하나도 지키지 못하고 사는 것이 사람입니다 이 십계명이 살아 있고 문자적으로 보고 있는 사람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어서 절대로 지성소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증거궤가 아닙니다.

그들에게는 법궤로 보입니다. 지금 이 시대 성경을 보고 있는 사람들이 이 궤를 보고 증거궤로 보는 것이 아니라 거의 다 법궤로 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증거궤 또는 언약궤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의 생각에는 법궤로 보여 지고 있습니다. 그 법궤를 보다 보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보는 것이 아니라 십계명을 문자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십계명은 죽었습니다.

아니 죽었다는 말보다는 폐해졌다고 하는 것이 맞습니다. 문자적으로 보고 있는 십계명은 폐해졌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이 문제가 정립이 안 되어 있는 사람은 어느 누구도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 어떻습니까? 아마도 거의 모든 교회가 이 십계명이 살아 있는 것으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너무 심각합니다.

왜 성경을 편찬하는데 자기들 마음대로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성경 앞뒤를 보면 십계명이 다 있습니다. 제가 집에서 보고 있는 큰 글자 성경에만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거의 모든 성경에는 앞뒤에 분명히 십계명을 따로 빼 놓았습니다.

 

왜 따로 뽑아 놓습니까?

그것이 살아 있다는 것을 이 성경을 보는 사람들에게 각인을 시키기 위해서 아니 십계명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그렇게 따로 십계명을 기록해 놓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을 문자적으로 지키기 위해서 십계명을 성경에서 따로 뽑아서 아주 큰 글자로 사람들이 성경을 펼 때마다 볼 수 있게 해 놓았습니다.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성경이 내게 대해서 기록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시대 사람들이 보고 있는 성경은 십계명이 앞에 와 있습니다. 증거궤를 보는 것이 아니라 십계명을 문자적으로 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런 심각함이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의 생명을 어떻게 하고 있는 줄을 모르고 있고 진리를 모르는 소자들은 그저 소가 푸주로 가는 것 같이 끌려가고 있습니다.

 

십계명 우리가 지킬 수 없습니다.

문자적으로 그것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마음에서 탐을 내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만약에 있다고 한다면 그는 거짓말을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진리를 알고 있는 저 역시도 내 이웃의 소유를 탐을 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좋은 것을 보면 갖고 싶어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합니다. 그런데 이 십계명을 문자적으로 지키려고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기 자신을 냉정하게 보면 두려운 마음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물론 그들이 표면적으로 지키고 있는 것이 있을 수 있습니다. 몇 가지 계명은 잘 지키고 있는 것으로 보여 지기 때문에 사람들이 착각에 빠지고 있습니다.

 

법이 아닙니다.

증거라는 것을 깨닫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성막을 짓게 하시면서 이 십계명을 법이라고 하지 않고 증거판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법으로 보느냐 증거판으로 보느냐는 너무도 다릅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거의 다 법으로 보고 있습니다.

 

물론 문자적으로는 분명히 법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잘 보시기 바랍니다. 법이 아니라 증거판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십계명이라고 말씀을 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이 성막 안에 있는 것은 증거판이라고 해야 맞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이 궤를 만들고 증거판을 그 속에 넣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출애굽기25:16절을 보겠습니다. (구 120쪽)

“내가 네게 줄 증거판을 궤 속에 둘지며”

 

증거판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언약의 두 돌판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이 돌판에는 십계명이 쓰여 있습니다. 하지만 이 증거판에 대해서 성막에서는 다시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문자적으로 계명을 보는데 너무도 익숙해져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영생을 주기 위해서 기록이 되어 있고 그 생명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증거판입니다.

십계명이라고 하지 않고 증거판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보이는 것으로 보았을 때는 분명히 십계명이 맞지만 증거판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 이유를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왜 증거궤라고 하는가 하면 증거의 두 돌판이 들어가 있기 때문입니다.

 

율법 누가 지킵니까?

우리는 이 문제부터 바로 정립이 되어야 합니다. 이 시대 율법에 대한 정의가 안 되어 있습니다. 십계명은 그 율법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율법을 누가 지켜야 하는가를 모르다 보니까 십계명을 문자적으로 보고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니 이 십계명을 지키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무엇에 대한 증거입니까?

생명에 대한 증거입니다. 성경은 모두가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생명을 얻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십계명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에게 생명에 대해서 증거를 해 주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생명입니다

무엇에 대한 증거인가하면 생명에 대한 증거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쓰신 증거판은 생명에 대해서 증거를 해 주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생명에 대해서 증거를 해 주고 있는 것이지 우리에게 이 십계명을 문자 그대로 지키라고 한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우리는 이 십계명을 문자 그대로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인정을 하고 살아야 합니다.

 

생명에 대해서 증거를 해 주고 있습니다.

그것을 누가 해 주고 있는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해 주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증거궤 안에 이 증거판을 넣어 두라고 하신 것은 생명에 대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증거를 해 주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어느 누구도 이 십계명에 대해서 아니 율법에 대해서 완전하게 지킨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지키셨습니다.

하나님과 아담과의 첫 언약이 무엇입니까?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담은 그것을 따 먹고 사망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 언약을 지키지 못해서 사망을 당하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언약이라는 것이 그렇습니다.

그것을 지키면 생명을 얻을 수 있고 그것을 지키지 못하면 사망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 언약에 대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증거를 해 주셨습니다. 이 언약을 지켜서 생명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증거를 해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이 증거판을 궤 속에 두라고 하신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언약들을 다 지키셨다는 것을 증거를 해 주고 있습니다.

 

생명입니다

이 증거판이 들어가 있는 궤를 정금을 쌌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율법을 다 지키고 생명을 얻으셨다는 것을 증거를 해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을 주신 이유를 잘 알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신 이유를 이 시대는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로마서3:20절을 보겠습니다. (신 243쪽)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너무 잘 아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너무 모르고 있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십계명을 모세를 통해 주신 것은 그것을 지키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그것을 보고 죄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라는 말씀입니다. 왜 죄를 깨달으라고 주신 것입니까? 그 이유를 너무 모르기 때문에 이 시대 역시 이스라엘과 같이 율법주의로 점점 더 깊이 빠져 들어가고 있습니다.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넘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죄를 더 지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율법을 알면 죄인이라는 것을 고백할 수밖에 없다는 말씀입니다 제가 십계명에 대해서 설교를 올려 드렸습니다. 우리는 우상을 숭배하는 자였고 또 살인을 하는 자였고 간음을 하는 자였다는 것을 십계명을 통해서 깨달았습니다. 그 십계명을 문자적으로 본다면 우리는 절대로 우상 숭배도 안 했고 살인도 안한 사람이지만 율법을 바로 보니까 그 십계명의 모든 것을 다 못 지킨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이 시대는 십계명을 보고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언제 살인을 하고 언제 우상 숭배를 했느냐고 오히려 따지고 있습니다. 율법을 주었지만 이스라엘은 깨닫지 못했습니다. 지금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도 죄를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죄인입니다

십계명을 바로 알면 죄인 중에 죄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십계명을 보고 오히려 자기가 죄인이 아니라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문자적으로 살인을 안 했고 우상 숭배를 안 했고 간음을 안 했기 때문에 자기가 죄인이라는 것을 도무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부터가 해결이 안 되니까 성경을 보아도 소경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십계명을 먼저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제가 여기서 십계명을 일일이 다 설명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편지 설교에 이미 다 올려 있습니다. 그 말씀을 보면 자기가 십계명 중에 하나라도 지킨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 말씀을 보고도 자기가 십계명을 어기지 않았다고 한다면 그 사람과는 더 이상 성경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필요성이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우리가 보는 십계명입니다

그것은 죄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 주신 것입니다. 그 십계명을 보고도 자기가 하나님 이외에 다른 신을 섬긴 것을 모르고 또 살인을 한 것을 모르고 간음을 한 것으로 모르고 이웃에게 거짓 증거를 한 것으로 모르고 있다면 그는 아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증거판입니다.

무엇을 증거를 해 주고 있는 가를 우리가 깨달아야 합니다. 그 증거판에는 십계명이 쓰여 있습니다. 그 십계명을 지키라고 증거를 해 주는 것이라고 생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분명히 이 계명을 온전히 지키면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그 계명을 지켜야 하는 것으로 증거를 해서는 안 됩니다.

 

누가 증거를 해 주었습니까?

 

마태복음5:17절을 보겠습니다. (신 6쪽)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내가 율법이나 예언자들의 말을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아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왔다.”

 

예수 안에 생명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것을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 바로 이 십계명이 쓰여 있는 두 돌판이 증거를 해 주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시대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 율법에 대해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이 이 율법을 지켜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특히 십계명은 교인들이 지켜야 하는 계명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증거판입니다.

누가 지키는 것입니까? 예수님께서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러 오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이 증거판을 보고 자기들이 지키겠다고 했습니다. 더구나 하나님과 언약을 하면서 자기들이 다 지켜 행하겠다고 했습니다.

 

생명입니다

이것을 다 지키면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아니 죽지를 않는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율법을 사람이 지킬 수 있는 것이 아닌데도 이 시대 교회 안에서 이스라엘과 똑같이 그것을 지키겠다고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무엇을 증거해 주고 있습니까?

이 증거판이 생명에 대해서 증거를 해 주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의롭다고 하는 욥도 율법의 의로는 죄인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 율법은 우리에게 생명에 대해서 증거를 해 주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 율법을 모두 지키셨습니다.

 

그것을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증거궤 안에 이 십계명이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증거궤가 예수 그리스도라면 이 증거판을 주님께서 완성하셨습니다. 잘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 증거판 대로 다 행해서 생명이 있다는 것을 증거를 해 주셨습니다.

 

예수님 그 자체입니다

증거판은 예수님 안에 있다는 말씀입니다 십계명을 우리가 문자적으로 보려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증거판은 따로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증거궤 안에 넣어 두었습니다. 그 증거궤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며 주님께서 마태복음에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로 온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오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생명이 있다는 것을 증거를 해 주고 있습니다. 이 판은 생명에 대해서 증거를 해 주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어느 누구도 죽일 수 없는 분입니다 죄악 중에 탄생을 한 아담의 씨도 아니고 또 죄를 진 분도 아니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죽일 수 없습니다. 그것은 사단이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증거입니다

주님께서 의롭다는 것에 대해서 이 십계명이 증거를 해 주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내가 의롭다 해서 의로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증거를 해 줄 수 있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증거궤 안에 있는 이 증거판이라는 말씀입니다.

 

주님이 의롭습니까?

그것을 무엇이 증거를 해 주고 있습니까? 이 증거판이 의롭다는 것을 증거를 해 주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쓰셔서 모세에게 주신 이 두 돌판은 증거판입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의롭다는 것을 증거해 주고 있는 증거판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십계명을 지켜서 의롭다 함을 받는 증거가 아니라 주님을 증거를 해 주고 있습니다.

 

요한일서3:5절을 보겠습니다. (신 390쪽)

“그가 우리 죄를 없이 하려고 나타내신 바 된 것을 너희가 아나니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

 

그에게는 죄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죄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죄가 없다는 것을 무엇이 증거를 해 주고 있습니까? 그냥 사도요한이 그에게는 죄가 없다고 하면 죄가 없는 것입니까? 그것이 아니라 죄가 없다고 하면 반드시 증거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죄가 없다는 증거가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이 증거판입니다.

십계명을 통해서 주님께서는 죄가 없다는 것의 증거가 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만약에 죄가 있으면 어떻게 됩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로 우리의 죄를 대속할 수 없습니다. 이 증거라는 것을 잘 이해를 하고 깨달아야 합니다.

 

쉽게 말씀을 드려서 이렇습니다.

법정에서 죄인에게 판결을 내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가 죄인이라고 판결을 내리려면 반드시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 증거가 없으면 아무리 심증적으로 그가 죄인이라 해도 죄에 대해서 판결을 내릴 수 없습니다. 증거라는 것이 그렇게 중요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죄가 없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것을 증거해 주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증거판이라는 말씀입니다.

 

내가 죄인이 아니라고 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비웃습니다. 그것은 율법을 보면 쉽게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십계명이 증거를 해 주고 있는데 사람이 죄가 없다고 하면 스스로가 비웃음거리가 되고 맙니다. 증거궤 속에 있는 증거판이 주님이 죄가 없다는 것을 증거해 주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은 마태복음에서 이미 주님께서 내가 율법을 완성하러 오셨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죄가 없습니다.

그러면 그 안에는 생명이 있습니다. 증거판이 증거궤 안에 들어가 있다는 것은 주님께서 그 계명을 완성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증거궤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생명이라는 말씀은 죄가 없다는 말씀과 같습니다. 죄가 없다는 것을 이 증거판이 증거를 해 주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증거궤는 정금으로 쌌습니다.

정금 자체가 생명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생명이라는 것을 증거궤를 통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안에 증거판이 들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죄가 없다는 것을 그래서 생명이라는 것을 이 증거판이 증거를 해 주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는 율법을 완성케 하셨기 때문에 그 안에 십계명이 들어가 있습니다. 들어가 있다는 것은 주님이 완성케 했다는 말씀입니다.

 

두 돌판을 십계명으로만 생각합니다.

분명히 그 돌판에는 십계명이 쓰여 있지만 이 성막을 통해서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그것은 증거입니다 증거궤 안에 있는 이 돌판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율법을 완성케 하는 것을 우리에게 예표로 보여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이 증거궤 자체가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안에 있는 증거판이 증거를 해 주고 있습니다.

주님이 죄가 없다는 것을 증거해 주고 있으며 그것을 예표하기 위해서 증거궤가 금으로 싸여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생명이라는 것을 이 증거판이 증거를 해 주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증거궤 안에 증거판을 넣어 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생명의 증거가 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14:6절을 보겠습니다. (신 172쪽)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주님은 생명입니다.

증거궤는 주님이 생명이라는 말씀입니다 주님이 생명 그 자체라는 것을 이 증거궤를 통해서 보여 주시고 있습니다. 주님이 생명이라면 죄가 없어야 하는데 이 증거판이 그것을 증거를 해 주고 있습니다. 주님 안에 있는 증거판이 증거를 해 주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증거궤를 보고 있습니다.

그 안에 담겨져 있는 십계명을 보아서는 안 됩니다. 증거판에 십계명이 쓰여 있을지라도 이 증거궤 안에 있는 두 돌판은 주님이 누구라는 것을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 죄가 없으신 분이라는 것을 증거를 해 주고 있고 죄가 없으신 분이기 때문에 이 증거궤를 조각목으로 만들어서 정금으로 싸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출애굽기31:18절을 보겠습니다. (구 131쪽)

“여호와께서 시내 산 위에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마치신 때에 증거판 둘을 모세에게 주시니 이는 돌판이요 하나님이 친히 쓰신 것이더라”

 

하나님이 친히 쓰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잘 이해를 해야 합니다. 무슨 말씀인가를 정말 주의 깊게 깨달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친히 쓰셨다고 하니까 이 십계명에 대해서 이상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친히 쓰셨다는 그것으로 마치 이 십계명을 성도들이 꼭 지켜야 하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다른 것은 다 선지자들을 통해서 말씀을 하셨는데 이 십계명만은 친히 쓰셨다고 하면서 꼭 지켜야 하는 것으로 생각을 합니다.

 

왜 친히 쓰셨습니까?

그리고 그것을 증거판에 쓰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친히 쓰셨는데 증거판에 쓰셨습니다. 이 말씀을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다 예표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안에 담겨져 있는 메타포를 찾지 못하면 절대로 깨달을 수 없습니다. 문자 그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 문자 안에 담겨져 있는 뜻을 알아야 합니다.

 

왕이 있습니다.

그리고 왕이 어떤 문서를 친히 썼습니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습니까? 물론 그것을 백성들이 지키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미 로마서에서 말씀을 했듯이 이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 주신 것이지 지키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럼 왜 친히 쓰셨습니까?

그리고 그 쓴 돌을 증거판이라고 하겠습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대로 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하시겠다는 것을 말씀하기 위해서 증거판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마태복음에서 주님께서 오셔서 내가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율법을 완전케 하러 오셨다고 하면서 율법을 온전히 다 이루셨습니다.

 

주님은 죄가 없습니다.

그것은 율법을 온전히 다 이루셨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을 증거해 주는 것이 바로 이 돌판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쓰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그것을 그대로 다 이루시겠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무엇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까?

 

아담이 범죄를 했습니다.

그것은 첫 언약을 어긴 것입니다 바로 증거판에 쓰여 있는 십계명을 어긴 것과 마찬가지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사망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생명 그 자체입니다 생명이기 때문에 이 증거판에 쓰여 있는 모든 것을 다 지키셨습니다. 증거궤가 생명이고 그 생명에 대해서 증거를 해 주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증거판이라는 말씀입니다

 

성막에서 보시기 바랍니다.

성막을 말씀을 할 때는 이 돌판을 증거판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언약의 돌판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십계명이라고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무엇을 하든지 보든지 법을 먼저 보고 있는 것이 큰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법을 주셨을 때는 왜 주셨는가를 생각해야 하는데 우선 법부터 보는 것이 문제입니다.

 

법을 보면 무조건 지키려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법에 익숙해져 있다 보니까 성경에서 법을 보면 그 의미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우선 그것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굳어져 있습니다. 그것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법을 지키기를 좋아하고 있습니다

 

친히라는 사전적인 뜻입니다

높은 사람이 자기 몸으로 직접 한다는 말입니다 사전적인 뜻에서도 우리가 알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 이 증거판에 친히 쓰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직접 하시겠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증거 하기 위해서 증거판에 친히 쓰셨습니다. 다시 거듭 말씀을 드리지만 율법은 하나님께서 직접 지키시고 완성을 하시기 위해서 친히 쓰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서 오셔서 이 말씀 그대로 율법을 완성케 하셨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율법을 내가 지키려고 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더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오셔서 율법을 완성케 하시고 십자가에서 율법을 폐하셨는데도 아직도 율법을 지키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행위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내가 해야 하는 일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하셔야 하는 일이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보고 그것을 잘 분별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하셔야 할 일을 내가 하는 것이 얼마나 악한 일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으면 무조건 내가 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는데 내가 해야 할 일이 있고 하나님이 하셔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신명기1:30절을 보겠습니다. (구 260쪽)

“너희 앞서 행하시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 목전에서 모든 일을 행하신 것같이 이제도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며”

 

너희 앞서 행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올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앞서 행하셨기 때문에 나올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아서 잘 알겠지만 이스라엘의 힘으로는 도저히 나올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앞서 행하시지 않았다면 그들은 애굽의 포로가 되어 영원히 그들의 종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누가 해야 합니까?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올 수 있게 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밖에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스라엘이 스스로 나오겠다고 하다가는 애굽의 군대에 의해서 진멸을 당할 것이 분명합니다. 자기들이 하려고 하다가는 다 죽고 만다는 것을 우리가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가나안을 목전에 두고 있습니다.

 

모세가 이스라엘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애굽에서 너희 앞서 행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너희가 나왔고 이제 가나안에 들어가는 일도 너희를 위해서 싸우실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싸워 주셔야지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지 이스라엘이 스스로 싸우겠다고 하면 정탐꾼들의 말과 같이 메뚜기 같은 이스라엘은 죽어도 이기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실 일입니다

가나안에 들어가는 일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그것은 내가 하겠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말로는 믿는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믿지를 않고 있습니다. 믿지를 않고 있기 때문에 이 시대 사람들이 율법을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무엇을 몰랐습니까?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몰랐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해야 하는 일과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몰랐습니다. 이것을 모르게 되는 순간 마치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다 죽은 것 같이 이 시대도 역시 교회 안에서 다 죽게 된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하셔야 하는 일을 내가 하고 있다면 그것은 심각한 월권입니다.

신명기1:31-32절을 보겠습니다. (구 260쪽)

“광야에서도 너희가 당하였거니와 사람이 자기 아들을 안음같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의 행로 중에 너희를 안으사 이곳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 하나 이 일에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믿지 아니하였도다”

 

가나안을 목전에 두고 있습니다.

모세가 지금 무슨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너희를 인도해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에 들어가게 하시는 이가 하나님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믿지를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믿지를 않아서 그들은 광야에서 40년을 보내다가 애굽에서 나온 1세대가 다 죽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다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에 들어가기 까지 모든 일을 다 하셨습니다. 그리고 선악을 분별하지 못하는 20세 이하의 사람들이 40년이 지난 지금 가나안을 목전에 두고 있고 또 우리가 성경을 보아서 알겠지만 그들을 가나안으로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아니 사람이 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는 일은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실제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다 보여 주셨습니다. 이 모든 사건이 무엇을 예표를 하고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가 천국에 갈 수 있게 십자가에 다 이루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십자가의 사건입니다.

그것을 하나님께서 예표로 이미 이스라엘을 통해서 보여 주셨습니다. 십자가를 지실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어느 누구도 그 십자가를 대신 질 수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이 시대 사람들이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이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물론 사도들이 십자가에서 죽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이 세상 죄를 지고 간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그들은 순교를 당한 것이지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시는 십자가를 자기들이 같이 진 것이 절대로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아니 그 십자가를 제자들이 지려고 했다면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일이 되고 맙니다. 그래서 전승에 의하면 베드로는 거꾸로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이미 이스라엘을 통해서 보여 주셨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시고 또 광야를 지나 가나안에 들어가게 하신 역사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이 모든 일은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그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율법을 친히 쓰셨다는 말씀의 의미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 의미를 모르기 때문에 이스라엘과 같이 율법주의에 빠지고 있는 것입니다 친히 쓰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 율법을 완성하시겠다는 말씀인데도 이 율법을 자기들이 지키겠다고 객기를 부리고 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악한 일인가를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회사의 사장이 있습니다.

모든 결정은 사장이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직원이 함부로 해서는 안 됩니다. 만약에 사장이 해야 하는 일을 직원이 월권을 해서 하고 있다면 사장이 그 직원을 그냥 두지 않을 것이 분명합니다. 성경을 보고 그것을 모르다 보니까 이스라엘이 율법주의에 빠졌고 이 시대 역시 그렇게 율법주의로 점점 깊이 빠져 들어가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을 신명기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너희가 믿지를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인도를 하시고 가나안에 들어가게 하시는 역사를 믿지를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이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요한복음6:29절을 보겠습니다. (신 153쪽)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우리가 해야 하는 일입니다.

신명기에서도 똑같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너희가 믿지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해야 하는 일과 하나님이 해야 하는 일을 모르면 어떻게 됩니까? 그들은 다 광야에서 죽고 만다는 것을 이미 이스라엘을 통해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믿음입니다.

그런데 이 일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셔서 가나안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을 믿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성도가 이 세상에서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가 하면 바로 이 십자가를 믿는 일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것을 일이라고 생각하지를 않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체질을 아십니다.

에덴에서 단 하나 동산중앙에서 있는 선악과를 따 먹지 말라고 하신 것을 따 먹은 것이 아담과 하와입니다. 죄를 한 번도 안 지어본 그들이 그랬다면 죄악 중에서 탄생을 한 우리는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믿는 방법입니다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가나안으로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그 전체가 무엇입니까? 바로 우리가 믿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라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보여 주시기 위해서 이스라엘을 통해서 예표로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십자가를 보고도 믿지를 않고 있습니다. 이스라엘만 믿지를 않는 것이 아니라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도 믿지를 않고 있습니다.

 

어떻게 합니까?

자기들이 싸우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눈에 보이는 원수들과 싸우려고 하다가 결국에는 믿음을 저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일은 하나님이 하셔야 하는데 이스라엘이 스스로 하려고 하다가 믿지를 못했습니다. 이스라엘이 해야 하는 일은 하나님을 믿는 일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눈에 보이는 원수와 싸웠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눈에 보이지 않는 원수와 싸우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율법입니다 이 율법과 싸우시는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밖에는 없습니다. 이 율법과 싸우셔서 율법을 완성하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자기 육체로 이 율법을 폐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은 내가 싸워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안 됩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의 군대와 싸우면 반드시 지고 또 가나안에 있는 여러 민족들과 싸우면 반드시 집니다. 그 싸우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믿고 따라 들어가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이 시대도 마찬가지로 율법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완성을 하셨습니다. 그것을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지키겠다고 하는 것은 광야에서 하나님을 안 믿었던 이스라엘과 같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율법

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십계명이 쓰여 있는 증거판을 왜 궤 속에 두라고 하셨는가를 잘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이 오셔서 이 율법을 완성을 하시고 생명으로 싸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시고 있습니다.

 

율법을 모르면 죽습니다.

제가 늘 강조를 하고 있지만 이 시대는 율법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이 율법을 누가 지키는 가를 깨닫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자기들이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원수와 싸우는 것은 내가 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믿는 일입니다.

 

에베소서에서 율법을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원수 된 것 의문에 쓴 계명의 율법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원수와는 우리가 싸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싸워서도 안 되고 싸우려고 해서도 안 됩니다. 그러나 사단은 이 원수와 싸우도록 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 율법을 지키게 만들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실 일들을 자기들이 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성경 심오합니다.

그냥 겉으로 보지마시기 바랍니다. 사람의 이성으로는 분명히 이 율법을 지키는 것이 좋게 보입니다. 제가 율법을 폐하였다고 하면 저를 오히려 이단이라고 공격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율법을 원수라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왜 원수를 내가 지키려고 하고 있습니까? 율법은 지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사망으로 빠지게 만드는 원수입니다.

 

오직 주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그 일을 내가 하려고 하는 것은 월권입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지 않겠다고 하는 의사 표시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율법을 누가 지켜야 하는 줄을 모르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율법주의에 빠졌고 이 시대도 역시 율법주의에 빠지고 있습니다. 그 한 가지만 알아도 절대로 율법을 지키지 않을 것입니다.

 

히브리서10:30절을 보겠습니다. (신 364쪽)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하시고 또 다시 주께서 그의 백성을 심판하리라 말씀하신 것을 우리가 아노니”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원수를 갚는 것은 내가 할 일이니, 내가 갚아 주겠다" 하고 말씀하시고, 또 "주님께서 그의 백성을 심판하실 것이다" 하신 분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원수 갚는 것은 누가 할 일입니까?

에베소서에서 원수된 것 의문에 쓴 계명의 율법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이 한 가지만 바로 알아도 절대로 율법을 지키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몰랐습니다. 이스라엘은 그림자와 모형을 보았기 때문에 당연히 모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분명히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데도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율법 주님이 지키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셔야 할 일을 왜 우리가 하고 있습니까? 그것은 다른 말이 필요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기 때문에 율법을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아무리 말로는 예수를 믿는다 해도 이 한 가지만 보아도 그가 믿음이 있는 자인가 아니면 광야에서 다 죽임을 당한 이스라엘과 같이 교회 안에서 청함을 받아 사망에 이를 사람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누가 할 일입니까?

하나님이 친히 쓰시고 하실 일입니다 그런데 왜 이 시대 사람들이 그 일을 자기들이 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하시겠다고 증거판에 써서 모세에게 주셨는데도 사람들은 그것을 자기들이 하겠다고 나서고 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악한 일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하셔야 하는 일을 사람이 하겠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악한 일입니까?

 

왜 악한 일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율법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지키라고 주신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하실 일입니다 실제 이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그 일을 다 이루셨습니다. 그런데도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이 이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솔직히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 중에 율법을 안 지키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하나도 없습니다.

제가 보고 있는 교회에서는 율법을 안 지키고 있는 교회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악한 일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일이라는 것의 증거가 되고 있는데도 이 시대는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아니 초대교회로부터 이제까지 교회를 보면 거의 모든 교회가 다 이 율법에 의해서 망하는 길로 갔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가 해야 하는 일입니다

주님께서 가르쳐 주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성도가 해야 하는 일입니다 지금 이 시대 성도는 그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교회 안에 있는 가라지들은 말로는 믿는다고는 하지만 원수 갚는 일을 자기들이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셔야 하는 일을 자기들이 하면서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성립이 될 수 없습니다.

 

원수가 사람입니까?

율법입니다 그 율법을 누가 가지고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이 시대 사람들이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오시면 율법을 잘 지키게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어디 그런 말씀이 있습니까? 성령이 오시면 성도들에게 율법을 안 지키게 역사를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데 오히려 거꾸로 알고 있습니다.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체질을 아십니다. 못하는 것을 빤히 알고 계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율법을 지키라고 하시겠습니까? 성경을 바로 볼 수 있는 눈이 열려야 합니다.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율법을 지키는 일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 이루신 일을 믿는 그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이 믿음의 비밀을 모르다 보니까 하나님께서 하셔야 하는 일을 자기들이 하려고 하다가 결국에는 사망에 이르고 있습니다.

 

출애굽기25:21절을 보겠습니다. (구 120쪽)

“속죄소를 궤 위에 얹고 내가 네게 줄 증거판을 궤 속에 넣으라”

 

증거판을 궤 속에 두라고 말씀을 합니다.

증거궤는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를 하고 있습니다. 그 예수 안에 증거판을 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증거를 해 주시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 증거판의 모든 계명을 다 지키시고 생명으로 감싸셨다는 것을 보여 주시고 있습니다.

 

증거궤는 생명입니다.

증거판이 이 생명 안에 들어가 있습니다. 생명에 대한 증거를 해 주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성막에서는 이 증거판을 십계명으로 보는 것이 옳지 않습니다. 계명이라고 하기 보다는 생명에 대해서 증거를 해 주고 있는 증거판이라고 보는 것이 더 맞습니다. 궤 속에 들어가 있는 증거판을 생각하라는 말씀입니다.

 

사람들은 이 증거판을 꺼내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도 이 증거판은 분명히 궤 속에 들어가 있어야 하는데 사람들은 이 증거판을 꺼내고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하는 증거판이 지금 이 시대 그대로 꺼내져 있어서 사람들이 그것을 지키느라고 애쓰고 있고 또 그것을 지키지 못했을 때는 스스로를 정죄해서 사망에 이르게 하고 있습니다.

 

꺼내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성소 안에 있는 증거궤입니다. 반드시 그 안에 두어야지 그것을 밖으로 꺼내 두어서는 안 됩니다. 십계명은 예수 안에 있다는 것을 증거해 주고 있지만 이 시대는 이 십계명을 꺼내서 자기들이 보고 있고 지키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

이 증거판이 어디에 있는 가를 증거를 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 증거판을 친히 쓰시고 증거궤 안에 넣어 두라고 하셨는가를 이제 우리는 바로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이 증거궤에 쓰여 있는 십계명을 지키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이 증거판을 예수 안에 넣어 둠으로 해서 우리에게 생명이 있다는 것을 증거를 해 주시고 있습니다.

 

증거판이 밖으로 나오면 어떻게 됩니까?

이 세상에 어느 누구도 이 증거판으로 인하여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증거판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음으로 해서 그것이 증거가 됨으로 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지성소 안에 담대히 들어갈 수 있는 담력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못 들어갑니다.

아무리 주님께서 자기 육체로 휘장을 찢어 놓으셨다 해도 증거판이 밖으로 나와 있으면 우리는 그 증거판으로 인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어 있어서 못 들어갑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자기 안에 이 증거판을 두고 우리가 율법으로부터 자유해서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반드시 이 증거판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어떻습니까?

이 증거판을 다 꺼내서 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이 증거판을 볼 수 없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모세가 하나님께서 친히 쓰신 증거판을 가지고 산에서 내려올 때 보았습니다. 그러고 나서 이 증거판은 성막을 지은 후에는 항상 증거궤 안에 들어가 있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꺼내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왜 오셨는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이 증거판을 자기 안에 두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의문의 쓴 계명의 율법을 폐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도 그렇고 지금 이 시대도 역시 이 증거판을 꺼내서 거기에 적혀 있는 십계명을 자기들이 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곳입니다.

하늘의 참 장막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도가 성소를 지나 휘장 사이로 난 새롭고 산 길을 따라 들어가면 예수 그리스도가 보여야지 율법이 보여서는 안 됩니다. 십계명을 안 보이게 하기 위해서 이 증거판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 넣게 하셨습니다.

 

안 꺼냈습니다.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이 증거궤를 만들고 나서 언제 이 증거궤 안에서 증거판을 꺼냈는가를 보시기 바랍니다. 증거궤를 전쟁이 나서 옮길 때도 절대로 그 안에 있는 증거판을 꺼내지 않았습니다. 또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옮겨 다닐 때도 이 증거궤를 통째로 옮겼지 증거판을 절대로 꺼내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분명히 거기에는 십계명이 적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꺼내는 사람은 반드시 죽게 되어 있습니다. 그 증거판은 하나님께서 친히 쓰시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완성케 하셨습니다. 그것은 오직 예수 안에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예수 밖으로 나오는 순간 이 세상에 어느 누구도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이 증거판을 꺼내서 십계명을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십계명이 살아 있다고 주장을 하면서 그것을 지키라고 강요를 하고 있습니다.

 

예수 안에 있어야 합니다.

아니 예수 그리스도께서 감추어 버리셨다는 것이 더 맞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보아야 하는 계명을 감추어 버리셨습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그것을 완성하시고 자기 안에 두셨습니다. 그럼으로 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에게 생명을 주시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이 증거판이 들어가 있어야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물론 십계명입니다

그런 그것은 증거판이라는 것을 먼저 깨달아야 합니다. 이 증거판을 어디에 두었는가를 잘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증거궤 안에 넣어 두라고 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율법을 다 지키시고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지 증거판이 아닙니다.

 

지성소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면 무엇이 보입니까? 증거판이 보이는 것이 아니라 증거궤가 보인다는 말씀입니다 온전한 생명인 이 증거궤만 보이는 것이지 증거판은 우리가 보려고 해도 보이지가 않습니다. 우리가 천국에 들어갔을 때 법이 보이면 우리는 다 죽습니다. 법이 예수 안에 감추어져 있어야 우리가 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요한복음11:25절을 보겠습니다. (신 166쪽)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주님께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중요한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오직 예수만 보게 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지성소 안에 있는 증거궤입니다. 이 증거궤를 봄으로 해서 생명만을 보게 하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생명을 보고 있는 성도는 반드시 생명을 얻게 되어 있습니다.

 

오직 예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오직 예수만 보라고 성막을 통해서 가르쳐 주시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쓰신 증거판을 보라는 것이 아니라 그 증거판은 예수 안에 두시고 우리는 증거궤만 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증거궤를 안 보았습니다. 그리고 증거판을 꺼내 보다가 결국에는 그것으로 인하여 사망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성막의 놀라운 비밀입니다

십계명을 친히 쓰셔서 모세에게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 십계명을 이스라엘 백성이 보게 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증거궤 안에 두게 하셨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증거궤 안에 있는 십계명은 우리가 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생명이요 부활이신 예수 그리스도만 보게 하시고 우리가 구원을 얻게 하셨습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십계명이 어디에 들어가 있는 줄을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성소에 들어가서 휘장 사이로 난 새롭고 산 길을 따라 들어가면 우리에게는 예수 그리스도만 보인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가는 천국에는 법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만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예수만 보는 성도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으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를 보시기 바랍니다.

솔직히 무엇을 보고 있습니까? 물론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전혀 안 본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만 보는 것이 아니라 증거궤 안에 있는 증거판을 꺼내서 보고 있습니다. 그것이 자기들에게 어떠한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지성소는 하늘의 참 장막입니다

우리가 가는 천국에는 법이 없습니다. 만약에 법이 있다면 우리는 또 죽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가는 천국에는 법이 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보이고 그 사랑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예표로 보여 주시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살아가고 있는 성도도 역시 이 법을 보아서는 안 되고 오직 예수만 보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입니다

그가 무엇을 보고 있는가에 따라 생명을 얻을 수도 있고 또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경은 오직 예수를 말씀을 하고 있는데도 사람들은 예수를 보려고 하지 않고 있습니다. 아니 예수를 보면서 증거궤 안에 들어 있는 증거판을 꺼내서 거기에 쓰여 있는 십계명을 지키고자 애를 쓰고 있습니다.

 

신명기4:13절을 보겠습니다. (구 266쪽)

“여호와께서 그 언약을 너희에게 반포하시고 너희로 지키라 명하셨으니 곧 십계명이며 두 돌판에 친히 쓰신 것이라”

 

이 말씀 때문입니다.

너희로 지키라 명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 말씀 때문에 증거판에 쓰여 있는 십계명을 이스라엘도 지키려고 노력을 했고 또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 승천 하신 후에도 교회가 이 십계명을 지키고 있습니다. 이 성경 말씀 때문에 거의 모든 사람들이 문자적으로 보고 십계명을 지키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안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의문에 쓴 계명의 율법을 십자가에서 폐하셨다고 해도 믿지를 않고 있습니다. 또 고린도후서3장7절에 돌에 써서 새긴 죽게 하는 의문의 직분이라고 분명히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그런 말씀들을 보려고 하지 않고 있습니다.

 

죽게 합니다.

그런데도 이 십계명을 문자적으로 지키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너희로 지키라 명하셨으니 곧 십계명이며 두 돌판에 친히 쓰신 것이라는 이 말씀 때문에 아무리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계명을 폐하셨다고 해도 믿지를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미 성막을 통해서 이 증거판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을 보여 주시고 있지만 사람들은 믿지를 않고 있습니다.

 

왜 지키라고 하십니까?

정말 우리는 성경을 잘 보아야 합니다. 이 십계명이 예수 안에 있을 때는 지킬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 십계명을 이스라엘에게 반포를 하고 그들이 보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보이니까 하나님께서 그것을 지키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안에 감추어져 있으면 안 지켜도 됩니다.

그러나 그것이 이스라엘에게 보여 지고 있으니까 지키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십계명을 보는 사람은 지금도 이 계명을 지키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보고 있는 사람들에게 지키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안 보고 있으면 안 지켜도 되는데 보고 있으니까 지키라고 명령을 하시고 있습니다.

 

잘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증거궤 안에 있는 십계명은 우리가 지킬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완성케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증거궤 밖으로 나온 십계명은 지켜야 합니다. 지키지 못하면 죽이겠다는 말씀입니다 정말 중요한 말씀입니다 성도가 무엇을 보고 있는가에 따라 그것을 지켜야 하기도 하고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말씀입니다.

 

지금 그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는 성도는 이 십계명이 어디에 있는가를 알고 있습니다. 예수 안에 감추어져 있기 때문에 보이지가 않습니다. 그러나 거의 모든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보는 것이 아니라 증거판을 같이 보고 있다가 결국에는 돌에 써서 죽게 하는 의문의 직분을 행하다가 사망에 이르고 있습니다.

 

사무엘상6:19절을 보겠습니다. (구 417쪽)

“벧세메스 사람들이 여호와의 궤를 들여다 본 고로 그들을 치사 (오만) 칠십 인을 죽이신지라 여호와께서 백성을 쳐서 크게 살륙하셨으므로 백성이 애곡하였더라”

 

참으로 놀라운 사건입니다.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서 배워야 하는 너무 중요한 말씀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블레셋에 증거궤를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엘리 대제사장 시대에 그 아들들이 전쟁에 나가면서 증거궤를 가지고 갔습니다. 그런데 전쟁에서 패함으로 해서 증거궤를 블레셋에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이 증거궤를 다곤의 당에 두었습니다.

아침에 블레셋 사람들이 다곤 당에 들어가 보니까 다곤이 증거궤 앞에 엎드려져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이 궤를 어떻게 해야 하는 가를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자기들이 신이 자꾸 엎드러지는 것을 보고 블레셋 사람들이 두려워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이 궤를 가져갔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 궤가 있는 지방에 독종과 재앙으로 치니까 그 백성들이 다른 곳으로 옮겼습니다. 그러자 그 지방에서도 또 독종과 재앙이 있자 이제는 할 수 없이 이 궤를 이스라엘로 돌려보내기로 하고 소의 수레에 실어 벧세메스로 가게 했습니다.

 

이스라엘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블레셋에서 이스라엘로 다시 돌아왔는데 벧세메스 사람들이 이 증거궤를 열어서 그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가를 보았습니다. 그 궤를 열어보자 하나님께서 그들을 치사 (오만) 칠십 인을 죽이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열어본 벧세메스 사람들을 다 죽이셨다는 말씀입니다

 

숫자에 연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을 열어본 벧세메스 사람들을 다 죽이신 것입니다 우리가 이 사건에서 참으로 귀한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들을 왜 죽이셨습니까? 단지 그 궤를 열어 보았다고 죽이신 것입니까? 그것이 아니라 그 안에 십계명을 보았기 때문에 이 계명으로 다 죽이신 것입니다 계명을 본 사람들을 다 죽이셨다는 말씀입니다.

 

다 죽습니다.

궤 속에 있는 십계명을 보는 사람들은 다 죽습니다. 이 시대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지금 이 시대는 성경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지키고자 하는 십계명이 어떠한 결과는 가져오고 있는 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십계명 보면 죽습니다.

우리가 보아야 하는 것은 증거궤입니다 그것은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런데 벧세메스 사람들은 증거궤 안에 있는 십계명을 들여다보았습니다. 지금은 이 십계명이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가 보고 있는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벧세메스 사람들이 죽은 것은 이 시대도 궤 안을 들여다보는 모든 사람은 죽는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오직 예수입니다

그런데 예수만 보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을 드렸지만 이 십계명을 얼마나 귀하게 여기고 있는가 하면 성경 앞에 따로 빼서 적어 놓고 있습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된다는 것을 모르고 십계명을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지금 십계명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은 벧세메스의 사람들이 궤를 들여다 본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궤를 열면 안 됩니다.

이 궤위에 하나님의 보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누구도 열지 못하게 하나님의 보좌가 그 위에 있는데 사람들은 이 궤를 너무 쉽게 열어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좌로 그 궤를 덮고 있는데 사람들은 그 궤를 열어보다가 죽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에 벧세메스 사람들이 다 죽었다는 것은 정말로 중요한 메시지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증거궤만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그 덮개를 열고 십계명을 보는 사람은 다 죽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증거궤만 보라고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만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있는 증거판을 함께 보다가 죽고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에서 무엇을 보아야 하는 가를 증거궤를 통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벧세메스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그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역시 증거궤 안에 있는 하나님께서 친히 쓰신 돌판을 보는 사람은 죽는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모르다 보니까 사람들이 증거궤를 함부로 열고 있고 그 안에 있는 것을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십계명은 반드시 증거궤 안에 있어야 하고 또 하나님의 보좌로 덮어져 있어야 합니다.

 

야고보서1:25절을 보겠습니다. (신 372쪽)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니 이 사람이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성경은 참으로 오묘합니다.

이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도 모르고 있습니다. 이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이 무엇입니까? 바로 진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율법을 완전케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그 율법을 들여다보는 것이 무엇인가 하면 바로 우리가 보고 있는 지성소 안에 있는 증거궤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믿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보았습니까?

예수님께서 십계명을 온전히 지키시고 그것을 증거궤 안에 넣어 두셨습니다. 그것을 보고 있는 성도는 듣고 잃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 성도들에게 십계명을 보지 말고 증거궤를 보라는 말씀입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를 믿는 성도는 복이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도 거꾸로 해석을 해서 오히려 율법을 지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성소 안에 들어가서 증거궤를 보고 있는 성도들이지 그 안에 있는 증거판을 보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늘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듣고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증거궤 안에 십계명을 넣고 그 위에 속죄소로 덮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예수 그리스도를 안 믿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가르쳐 줘도 금세 잊어버리고 또 십계명을 지킨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증거궤를 보고 있는 성도는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보고 실행을 하는 자입니다

 

여기서 다 넘어지고 있습니다.

성막에서도 증거궤 안에 있는 십계명을 굳이 보려고 하다가 넘어지고 있고 또 신약에 와서 야고보서를 잘못 해석을 해서 다 넘어지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는 모든 율법에서 자유하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지만 듣고도 잊어버리고 실행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직 예수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왜 보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서 믿고 영생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증거궤를 보는 성도가 복이 있습니다. 하늘의 복을 받아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에 영접을 받아 천국에서 모든 축복을 누리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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