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너희는 귀를 기울리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십일조에 대하여

십일조-5

윤주만목사 2016. 12. 4. 19:10

히브리서7:9절을 보겠습니다. (359)

또한 십분의 일을 받는 레위도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십분의 일을 바쳤다 할 수 있나니

성경은 대표성입니다

우리는 그 대표성을 잘 알아야 합니다. 성경을 보고 그 대표성을 모르게 되면 자기가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가를 모르게 되어 있습니다. 이 대표성을 모르기 때문에 사람들이 율법주의에 빠지고 있고 믿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라는 믿음의 조상을 세운 것은 모든 믿는 사람을 대표해서 세운 것입니다.

 

그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죽을 자의 축복을 받고 십일조를 했습니다. 그리고 레위 자손들은 십일조를 하지 않았습니다. 영원히 살아 있는 자에게 축복을 받아야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는데 이스라엘 백성은 십일조를 하고 그것을 먹기도 했지만 레위 사람은 십일조를 하지 않았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영원히 살아 있는 자에게서 축복을 받지 못했다는 말씀입니다 레위 자손이 십일조를 하지 않았으니까 그들은 축복을 받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을 대표해서 했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죽을 사람인 레위가 이스라엘에게서 십일조를 받고 축복을 해 주었지만 그 레위인도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십분의 일을 바쳤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레위는 십일조를 받기만 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이 십일조를 할 때 레위도 십일조를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이 대표성을 믿지를 않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십일조를 레위인들에게 했습니다. 레위인은 기업이 없다 보니까 이스라엘에게 받기만 했지 십일조를 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레위인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지금 이스라엘 전체를 말씀을 하고 있고 또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믿음이 있는 성도 전체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영원히 살아 있는 멜기세덱에게 축복을 받고 십일조를 한 것은 십일조를 하지 않은 레위도 함께 한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이 영원히 살아 있는 멜기세덱에게 축복을 받고 십일조를 한 것은 그 자손 모두가 한 것의 대표라는 말씀입니다

 

이 십일조는 믿음입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축복을 받고 십분의 일을 준 것은 멜기세덱의 축복을 받아들이는 것을 예표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십분의 일을 드린 것은 아브라함이 조카 롯을 구하고 왕들을 치고 노략물을 얻어 가지고 올 때입니다 이때 멜기세덱이 영접을 하고 축복을 하니까 아브라함에 노략물 중에 좋은 것으로 십분의 일을 주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약 5백년 후에 율법이 정해졌습니다.

이스라엘에게 레위 제사장을 선물로 주었습니다. 그리고 레위인이 제사장 일을 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십일조로 갚아 주셨습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한 것을 예표로 보여주는 율법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한 것은 죽을 자들에게 십일조를 했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영원히 살아 있는 자에게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죽을 자들에게 했습니다.

그리고 이 레위인은 십일조를 하지 않았습니다. 성경에서 레위인이라고 하지만 이 레위인은 영원히 살아 있는 자에게 십일조를 하지 않은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가르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단지 레위인이 아니라 레위인을 대표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레위인이 실제로 십일조를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영원히 살아 있는 자에게 십일조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누구만 했는가 하면 아브라함만 했다는 말씀입니다 그럼 아브라함만 축복을 받는 것이 됩니다. 하지만 성경은 십일조를 하지 않은 레위도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영원히 살아 있는 멜기세덱에게 축복을 받고 십일조를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레위인은 우리 이방인도 됩니다.

그러니까 영원히 살아 있는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하지 않은 모든 사람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전체도 마찬가지고 또 레위인도 마찬가지고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왕 같은 제사장인 성도들도 역시 마찬가지라는 말씀입니다

 

갈라디아서3:7-9절을 보겠습니다. (304)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아들인 줄 알지어다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이 너를 인하여 복을 받으리라 하였으니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레위도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십분의 일을 바쳤습니다.

그것은 레위뿐만 아니라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자들은 영원히 산다고 증거를 받은 자에게 십분의 일을 바쳤다고 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은 모든 성도는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십분의 일을 바칠 때 함께 바쳤습니다.

 

레위 제사장입니다

이 시대 제사장이 누구입니까? 바로 성도입니다 레위 제사장은 십일조를 드리지 않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이 시대 왕 같은 제사장인 성도들 역시 십일조를 드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아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도 레위와 같이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십분의 일을 바쳤다고 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왜 드리지 않습니까?

그것은 율법에 따라 죽을 자들에게 십일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이 영원히 살아 있는 예수 그리스도께 십일조를 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믿는 성도는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말씀입니다 모든 이방이 너로 인하여 복을 받으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복을 받았습니다.

영원히 살아 있는 멜기세덱이 대적과의 싸움에서 이기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영접하고 그를 축복해 주었습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이 노략물 중에 좋은 것으로 십분의 일을 드렸습니다. 이스라엘은 율법에 따라 드렸지만 그것은 죽을 자들에게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오직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만이 영원히 살아 있다고 증거를 받은 멜기세덱에게 드렸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멜기세덱에게 십분의 일을 줄 수 있습니까?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세상에서 누가 멜기세덱의 영접을 받아 십분의 일을 드렸습니까? 그것은 오직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안 드렸다 할지라도 레위가 제사장으로 십일조를 받고 안 드렸다 해도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십일조를 바쳤다고 할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레위가 십일조를 안 바쳤지만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영원히 살아 있다고 증거를 받은 자에게 바쳤다고 믿는 것과 같이 이 시대 성도들 역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믿음을 모르고 그저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를 보고 십일조를 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율법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율법을 어기면서 십일조를 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합니까?

그것은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있는 성도는 아브라함이 행한 멜기세덱을 만나 노략물 중에 좋은 것으로 십분의 일을 준 것이 바로 믿음이라는 것을 알고 그 믿음을 갖기 위해서 성경을 보고 있지만 교회 안에 있는 가라지들은 그저 십일조라는 말씀만 성경에서 끄집어내서 그것을 육체에 상관된 계명을 따라 행하려 하고 있습니다.

 

죽습니다.

십일조를 하는 자체가 계명을 어기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계명을 지키기 위해서 자기 소득의 십일조를 교회에 내고 있는 그 사람이 실상은 계명을 어기고 있고 그 계명에 따라 그는 저주를 받게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 시대는 너무 모릅니다.

왜 이런 일이 있는가 하면 종교에 너무 사로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생각까지도 종교가 마음대로 묶어 버리고 있지만 그것을 하나님을 믿는 도리라고 생각하고 중교적인 행위에 더욱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비밀을 아는 성도는 절대로 그런 종교적인 행위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오직 믿음입니다.

아브라함도 믿음이 있습니다. 또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성도 역시 믿음이 있습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칭함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신비로운 믿음의 비밀을 모르다보니까 성경의 문자를 보고 종교에 빠져 자기 소득의 십일조를 내면서 스스로 기뻐하고 있고 그것으로 자기를 높이고 있습니다.

 

히브리서7:10절을 보겠습니다. (359)

이는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만날 때에 레위는 아직 자기 조상의 허리에 있었음이니라

왜 레위가 바쳤다고 합니까?

그것은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만날 때에 레위도 아브라함의 허리에 있었기 때문에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 바칠 때 같이 바쳤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에서는 이렇게 대표성을 말씀을 하면서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십분의 일을 바친 것을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십분의 일을 바쳤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가 멜기세덱을 만날 수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이스라엘도 하나님의 지극히 높으신 제사장 멜기세덱을 만나지 못하니까 그 예표로 레위 제사장에게 십일조를 바쳤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이스라엘이 십일조를 한 것은 앞으로 죽을 자에게 한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그 축복은 예표로 보여 주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시대 하나님께 십일조를 한다고 합니다.

그것이 맞는 말입니까? 이스라엘도 죽을 자들 레위 제사장들에게 했다고 성경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십일조를 했는데 그것이 하나님께 한 것이 아니라 앞으로 죽을 자인 레위 제사장들에게 했다고 성경이 분명히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이 시대 자기들이 하는 십일조를 하나님께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율법을 따르는 레위 제사장들에게 하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께 하는 것도 아니고 율법과는 상관이 없는 그저 자기들의 종교에 의해서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레위 제사장에게 한 이스라엘도 축복을 받지 못하고 망했는데 이 시대는 종교가 세운 교회에 하면서 그것을 하나님께 하고 있다고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누구만 했습니까?

오직 아브라함만 했습니다. 영원히 살아 있다고 증거를 받은 멜기세덱에게 십분의 일을 바친 사람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뿐입니다 그 대표를 하나님께서 인정을 하시고 아브라함이 믿은 것 같이 이 시대도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아브라함이 십분의 일을 주었을 때 함께 주었다는 것을 인정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을 레위인을 통해서 예를 들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나머지 지파는 십일조를 했습니다. 그들은 죽을 자 레위인들에게 했습니다. 그러나 레위는 안 했습니다. 십일조를 받기만 했지 하지를 않았기 때문에 성경이 십일조를 하지 않는 우리 이방인에게 가르쳐 주기 위해서 레위인을 예표로 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십분의 일을 줄 때 레위도 그 허리에 있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2:20절을 보겠습니다. (304)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사도바울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습니까?

그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는 지독한 율법주의자였습니다. 아니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것이 너무도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사도바울이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거짓입니까?

세상의 이치로는 거짓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말미암은 사도바울은 참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성경을 볼 때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일이지만 사도바울은 믿음으로 실제 자기가 죽었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있고 그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대표성입니다.

 

사도바울만 죽었습니까?

이 시대 믿음이 있는 성도는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만약에 이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그리스도의 사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오직 믿음으로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멀쩡히 살아 있는 나를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고 어떻게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까?

 

믿음입니다.

이 믿음을 모르면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은 사람입니다. 내가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야 합니다. 이것은 숨길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이 사실을 믿는 성도만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에 참여를 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레위가 어떻게 아직 낳지도 않았는데 멜기세덱에게 십분의 일을 바쳤다고 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믿음입니다. 레위만 멜기세덱에게 십분의 일을 바친 것이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이방인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의 자손이기 때문에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이 행한 그것은 내가 한 것이라고 믿을 수 있습니다.

 

십일조 안 바쳤습니까?

그는 믿음이 없는 사람입니다 이미 아브라함과 십일조를 바친 사람은 값없이 원하는 생명수를 사 먹고 있습니다. 그러나 십일조를 바쳤다고 안 믿는 사람은 지금도 자기 소득의 십일조를 바치고 있습니다. 그것을 누가에게 바치고 있는가 하면 자기들이 만든 우상에게 바치고 있으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왜 십일조를 바칩니까?

믿음을 모르기 때문에 행위로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믿음의 비밀을 알면 절대로 십일조를 자기 육체로 하지 않을 수 있는데 믿음의 비밀을 모르다 보니까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십일조라는 문자를 보고 그것이 하나님의 것이니까 당연히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행위가 얼마나 믿음이 없는 것인가를 스스로 증거를 하고 있는데도 이 시대는 그 십일조를 더 많이 하고 싶어서 견디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다 바쳤습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의 자손이기 때문입니다 십일조를 하지 않은 레위도 아브라함의 자손이기 때문에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바쳤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다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이 있는 성도는 이것이 믿어지는데 믿음의 비밀을 모르는 사람은 안 믿어지니까 자기 소득의 십일조를 열심을 내서 바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7:11-12절을 보겠습니다. (359)

"레위 계통의 제사 직분으로 말미암아 온전함을 얻을 수 있었으면 (백성이 그 아래서 율법을 받았으니) 어찌하여 아론의 반차를 좇지 않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별다른 한 제사장을 세울 필요가 있느뇨 제사 직분이 변역한즉 율법도 반드시 변역하리니"

제사장은 선물입니다

그리고 제사장은 축복을 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레위 계통의 제사장의 축복이 우리 영혼이 온전한 축복을 받을 수 있었을 것 같았으면 아론의 반차를 좇아 제사장을 세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그 아론의 반차를 좇아 난 제사장은 우리를 온전케 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 이유는 앞에서 말씀을 한 것 같이 그들은 죽을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죽을 자들입니다

이 시대 십일조를 받는 자들도 죽을 자들입니다 그렇게 죽을 자들을 위해서 하는 십일조는 온전한 십일조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코미디를 합니다. 영의 일을 모르고 자기 소득의 온전한 십일조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온전한 십일조도 아니고 문자적으로도 계명을 어기는 종교에서 나온 십일조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그런데 이 레위 계통의 제사직과 관련하여, 이스라엘 백성은 율법으로 지령을 받기는 하였습니다. 그러나 만일 그 제사직으로 완전한 것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면, 아론의 계통이 아닌 멜기세덱의 계통을 따른 다른 제사장이 생겨날 필요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제사직분에 변화가 생기면, 율법에도 반드시 변화가 생기기 마련입니다.”

레위 계통의 제사장입니다

그것은 모형과 그림자입니다 그 제사장들이 축복해 주는 것으로 하늘의 축복을 받을 수 있었다면 아론의 계통이 아닌 멜기세덱의 계통을 따른 다른 제사장이 생겨날 필요성이 있겠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레위 제사장들의 축복으로는 우리가 하늘의 축복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다른 제사장을 세우셨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레위 제사장의 축복을 받아서는 안 됩니다.

그들은 죽을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죽을 자들에게 하는 십일조는 온전함을 얻을 수 없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려서 지금 하고 있는 소득의 십일조를 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게 하기 위해서 레위 계통이 아닌 다른 제사장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이 우리에게 있다는 말씀입니다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를 온전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레위 계통의 제사장의 축복으로는 우리가 생명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별다른 제사장을 세워서 우리를 축복하게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을 축복하고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과 함께 축복을 받게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이 믿음의 비밀을 모르고 있습니다.

 

왜 소득의 십일조를 하고 있습니까?

그 자체가 레위 계통의 제사장을 좇겠다는 뜻입니다 그들은 앞으로 죽을 제사장들입니다 우리는 앞으로 죽을 제사장의 축복을 받는 자가 아니라 영원히 산다고 증거를 받은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의 축복을 받아 영원한 축복을 받아 천국에서 살 성도라는 말씀입니다

 

히브리서7장은 십일조에 대해서 명확하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이 십일조에 대해서 반론을 제기하지 못하고 있고 오히려 십일조를 더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 이방인의 신분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이스라엘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하고 또 하나님으로부터 기업을 받은 자들도 아닙니다.

 

죽을 자들의 축복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그러나 이 시대 십일조는 그 죽을 자들의 축복도 아니고 그저 기복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의 종교적인 행위입니다 십일조를 한다고 해서 이스라엘이 됩니까? 설령 이스라엘이 된다 해도 소득의 십일조는 죽을 자들의 축복을 갚는 것이기 때문에 온전케 할 수 없습니다. 온전케 할 수 없기 때문에 제사 직분의 변화가 생기면 율법도 변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제사 직분이 변했습니다.

우리는 앞으로 죽을 레위 제사장을 좇는 자들이 아닙니다. 영원히 산다고 증거를 받은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의 축복을 믿는 성도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제 십일조는 변역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히브리서에서 분명히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제사 직분이 변역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앞으로 죽을 레위 제사장에게서 영원히 산다고 증거를 받은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으로 변역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에서 변역을 하라고 했으면 반드시 변역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성경말씀을 무시하고 아직까지 번역을 시키지 않고 죽을 자들에게 하는 십일조를 하라고 강요를 하고 있습니다.

 

바꾸라는 말씀입니다

이 히브리서는 이스라엘에게 기록한 말씀입니다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쓴 서신입니다 그것을 잘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물론 이스라엘만을 위해서 기록한 성경이 아니라 이 시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 중에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아직까지도 제사 제도를 따르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제 그 제사 제도가 변역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십일조를 하고 있습니다.

초대 교회에 나와서 그들은 습관대로 아니 조상 대대로 해온 십일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보고 사도바울이 이스라엘사람들에게 이제 제사제도는 변역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 제사제도의 중심에는 바로 십일조가 있습니다. 이 십일조를 변역을 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입니다

우리가 복음서에서 보아서 알겠지만 그 당시 이스라엘은 근채의 십일조까지 드릴 정도로 철저했습니다.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는다고 해서 조상 대대로 해온 것을 하루아침이 버릴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제사 제도를 따르는 십일조를 교회 안에서 하고 있는 것을 보고 제사 제도가 왜 변역이 되어야 하는 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불과 3세대 정도 밖에 되지 않은 우리나라 같은 경우도 이 십일조를 하지 말라고 하면 이단이니 교회를 무너뜨리고자 하는 사단이니 하고 있는데 당시 이스라엘은 천년이 넘게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그들이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는 했지만 그들이 행했던 것을 하루아침에 버릴 수 있겠습니까?

 

그들은 더구나 하나님을 믿는 백성이었습니다.

할례를 받는 것을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했고 또 십일조를 드리는 것을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했습니다. 이 두 가지는 율법이 생기기 전부터 자기들의 조상이라고 하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한 것입니다 그런 그들에게 십일조를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이단의 주장과 마찬가지였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지금 그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초대 교회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왜 십일조를 안 했겠습니까? 그들은 하나님을 믿으면 너무도 당연하게 십일조를 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교회 안에 그런 이스라엘 사람들이 많이 있으니까 히브리서를 통해서 제사 제도에 대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만약에 보이는 교회를 세우고 예배를 한다고 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묻지도 않고 일요일 11시에 나올 것이 분명합니다. 만약에 제가 11시에 나오지 않는다면 아마도 더 이상 그 교회에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사람이라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에게 십일조는 그와 같은 것입니다

사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은 아직까지 율법의 모양을 버리지를 못하고 있었습니다. 쉽게 말해서 자기들이 이제까지 해 오던 율법도 지키고 또 복음도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무엇이 맞는가를 잘 몰랐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제사 제도가 왜 변역이 되어야 하는 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온전케 안 됩니다.

이스라엘은 자기들이 드리고 있는 제사를 통해서 온전케 된다고 믿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십일조를 내지 말라고 하는 것은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었습니다. 이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새로 어떤 것을 받아들이면 무엇을 하라고 하는 것이 좋습니까? 기존에 하던 것을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 더 좋습니까?

 

사람입니다.

우리나라에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제사입니다 사실 이 제사 문제만 해결이 되었어도 쉽게 복음을 받아들일 사람이 많았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제가 제사를 해도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렇게 사람들은 자기들이 이제까지 해 오던 것을 하지 말라고 하면 그것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습니다. 교회에 나와서 이제까지 자기들이 하지 않던 것을 새롭게 하라고 하면 그것은 아주 쉽게 합니다.

 

그러나 하던 것을 하지 말라고 하면 안 됩니다.

바로 이 문제입니다 이스라엘이 그래서 십일조를 교회에 했고 그것을 사도바울이 자세히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제사제도가 변역이 되었으니까 온전케 할 수 없는 소득의 십일조를 하는 것을 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별다른 제사장입니다

이제까지 이스라엘이 알고 있던 제사장이 아닙니다. 그 제사장의 축복을 받는다면 당연히 십일조를 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이제 별다른 제사장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대제사장으로 이 세상에 오셨고 또 하늘에 올라가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시므로 제사 제도가 변역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히브리서7:13-15절을 보겠습니다. (359)

이것은 한 사람도 제단 일을 받들지 않는 다른 지파에 속한 자를 가리켜 말한 것이라 우리 주께서 유다로 좇아 나신 것이 분명하도다 이 지파에는 모세가 제사장들에 관하여 말한 것이 하나도 없고 멜기세덱과 같은 별다른 한 제사장이 일어난 것을 보니 더욱 분명하도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이런 말이 가리키는 분은 레위 지파가 아닌 다른 지파에 속한 분입니다. 그 지파에 속한 사람으로서는 아무도 제단에 종사한 적이 없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유다 지파에서 나신 것이 명백합니다. 그런데 모세는 제사장들에 관하여 말할 때에, 이 지파와 관련해서는 말한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멜기세덱과 같은 모양으로 다른 제사장이 생겨난 것을 보면, 이 사실은 더욱더 명백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주님은 레위 지파에서 나신 것이 아닙니다. 제사 직분이 왜 변역이 되어야 하는가 하면 주님은 레위 지파로 오신 것이 아니라 유다 지파로 오셨기 때문입니다 이 유다 지파에서는 이제까지 아무도 제사장의 직분을 행했던 사람이 없었다고 말씀합니다.

 

유다지파입니다

이 지파는 모세가 율법으로 말한 것이 하나도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말씀을 드리지만 율법은 율법대로 지켜야 합니다. 지금 그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이신데 어떻게 대제사장에 될 수 있느냐는 말씀입니다 율법으로 하면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율법에 따라서는 제사장이 될 수 없습니다.

주님은 유다 지파로 오셨습니다. 율법이 정해지고 난 후로 이제까지 유다 지파에서는 어느 누구도 제사장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율법에 정해졌기 때문입니다 법이라는 것을 자기들 편리에 따라 이리 맞추고 저리 맞추면서 지키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율법에 정해 놓았으면 그대로 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율법을 너무 모릅니다.

정말 이 시대는 자기들 마음대로 율법을 해석하고 있고 지키고 싶은 것은 지키고 지키기 싫은 것은 안 지키고 있습니다. 이 십일조 문제만 해도 이 시대가 얼마나 잘못된 종교에 빠져 있는가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지금 히브리서는 예수를 믿고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쓰고 있는 서신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들은 율법을 지켰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우리 이방인은 처음부터 율법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자기들이 가나안에 살고 있습니까? 하나님으로부터 선택을 받은 레위인입니까? 히브리인들은 그것과 상관이 있기 때문에 사도바울이 그들에게 이 서신을 쓰고 있습니다. 사실 이 히브리서는 제사 제도에 빠져 있는 이스라엘에게 쓴 말씀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성전이 있었습니까?

우리에게 제사장이 있었습니까? 그리고 우리가 언제 양을 잡아서 제사를 드렸습니까? 그런데도 이 시대는 자기들이 육적인 이스라엘인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이방인에게는 레위 제사장이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대제장이라는 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지만 이 시대 교회에는 레위인이 있는 것 같습니다.

 

목사가 레위인입니까?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도는 모두가 다 왕 같은 제사장입니다 목사만 제사장이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는 모든 성도는 다 왕 같은 제사장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율법에 기록이 되어 있는 십일조는 이스라엘이 반드시 먹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교회에 갔다 바치기만 하지 먹지를 않고 있습니다.

 

십일조 하면 안 됩니다.

그리고 십일조를 받아서도 안 됩니다. 십일조를 하는 것은 스스로 율법을 범하는 죄를 짓고 있는 일입니다. 또한 멜기세덱이 아니고는 어느 누구도 십일조를 받아서는 안 됩니다. 사람의 이성으로는 그것이 교회를 위하는 일이고 또 오직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위하는 일이라고 하지만 히브리서에서 그것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지 말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디도서3:5절을 보겠습니다. (349)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영의 시대입니다

이스라엘의 육으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영을 예표로 보여주셨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이스라엘과 같이 육이 되려고 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은 우리의 행하는 행위가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십일조가 행위가 아니라고 하는 사람은 정신이 이상한 사람입니다 그것을 믿음이라고 하는 사람은 한글도 모르는 정말로 무식한 사람입니다

 

히브리서에서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십일조를 믿음의 증표라는 이상한 말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믿음의 증표가 아니라 그저 율법의 행위입니다. 이스라엘이 죽을 사람들에게 축복을 받고 그것을 갚는 것이 십일조입니다 히브리서에서 그것으로는 온전케 할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 사람들은 성경을 보는 눈이 감겨져 있어 종교가 시키는 대로 그것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행위로는 안 됩니다.

안 된다는 말씀은 행위를 하면 죽는다는 말씀입니다 이 시대 십일조를 하는 사람은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저를 이단이라고 해도 좋고 교회를 무너뜨리는 사단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구원은 행위로는 안 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말씀은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그림자의 행위를 하면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제가 연보를 하지 말라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성령의 감동을 받고 있는 성도는 자기가 소득이 있으면 연보를 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사 제도가 이제는 사라졌습니다. 그 제사 제도를 따르는 헌금을 해서는 안 됩니다. 제사 제도도 없는데 왜 십일조를 하고 있습니까? 그것은 자기를 육적인 이스라엘로 속이고 있는 것이고 또 그것을 받아서 쓰고 있는 사람은 자기를 레위 지파의 제사장으로 속이는 악한 행위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연보를 하면 되지 않습니까?

왜 굳이 히브리서에서 이렇게까지 말씀을 하고 있는 십일조를 하면서 자기 영혼을 망하게 하고 있습니까? 제사 제도를 따라 행위를 하고 있는 사람은 모두가 바리새인입니다 그것으로 인하여 높아지고 있고 그렇게 높아지는 자를 주님께서 버리신다는 것을 성경에서 누누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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