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7:16-17절을 보겠습니다. (신 359쪽)
“그는 육체에 상관된 계명의 법을 좇지 아니하고 오직 무궁한 생명의 능력을 좇아 된 것이니 증거 하기를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이라 하였도다”
주님입니다
주님은 육체의 상관된 법을 좇았다면 대제사장이 되실 수 없습니다. 주님이 대제사장이 되셔서 우리를 축복해 주시는 것은 육체의 상관된 법을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무궁한 생명의 능력을 좇아 된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아브라함이 만나 십분의 일을 준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입니다
우리의 대제사장입니다
우리 이방인을 위한 제사장입니다 우리는 이방인이라는 것을 한 시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왜 이방인이 이스라엘이 되려고 합니까? 그렇다고 해서 이스라엘이 될 수 있습니까? 주님께서는 우리 이방인들을 위해서 율법을 따르는 제사장이 아닌 율법과는 상관이 없는 무궁한 생명의 능력을 좇아 되신 우리의 대제사장입니다.
주님은 제사장입니다.
성경 어디에 주님이 십일조를 받으셨다고 말씀합니까? 제사장이면 당연히 십일조를 받아야 하는데 성경 어디에도 주님은 십일조를 받으시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근체의 십일조를 하고 소득의 십일조를 하는 바리새인들을 책망을 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이 시대는 자기들 마음대로 억지로 받으라고 십일조를 하고 있습니다.
영의 일입니다
우리는 육의 이스라엘이 아닙니다. 왜 육의 이스라엘의 모양을 내려고 하고 있습니까? 영의 성도는 구약의 모든 그림자를 바로 알고 깨달아서 믿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육체의 행위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성경에서 누누이 가르쳐 주고 있는데도 그 육체의 행위를 버리지 못하고 점점 더 많은 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소득의 십일조는 육체에 상관된 계명입니다
그 십일조를 하고도 자기가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절대로 그런 일은 없습니다. 육체를 따라 난 자는 반드시 버림을 받는다는 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육체의 상관된 법을 좇지 말라고 소득의 십일조를 하지 말라고 히브리서에서 가르쳐 주고 있지만 이 시대는 오히려 십일조를 더 많이 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대제사장입니다
주님이 대제사장이 되신 것은 육체의 상관된 법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이 시대 주님을 믿는다고 하는 그들이 십일조를 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육체의 상관된 계명을 좇지 않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제사장이 되셨는데 교회 안에 있는 교인들은 육체의 상관된 계명을 따라 소득의 십일조를 하고 있습니다.
사망입니다.
이스라엘이 버림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육체의 상관된 계명을 좇아가다가 사망에 이르렀습니다. 그것을 성경이 다 가르쳐 주고 있는데 이 시대는 그것에 더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영원한 생명이 있는 일은 모르고 그저 육체를 좇아가면서 사망으로 빨리 가고 있습니다. 주님이 레위 지파를 따라 오셨다면 우리는 육체를 좇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레위 지파가 아닌 유다 지파로 오셨고 우리의 대제사장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7:18-19절을 보겠습니다. (신 359쪽)
“전엣 계명이 연약하며 무익하므로 폐하고 (율법은 아무것도 온전케 못할찌라) 이에 더 좋은 소망이 생기니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느니라”
이제 십일조의 결론입니다
전엣 계명은 연약하고 무익하므로 폐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에 했던 그 십일조도 연약하고 무익하므로 폐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구약에 율법으로 정해 놓은 그 십일조도 연약하고 무익하므로 폐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 무슨 말씀이 필요합니까?
이스라엘이 육체로 했던 구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십일조는 이제 폐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말씀은 이스라엘 사람 중에서 예수를 믿고 있는 사람들이 십일조를 하고 있는 것을 보고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그 계명입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민족이고 또 레위 지파가 아직까지 있습니다.
우리는 이방인입니다
사실 이 말씀은 이방인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교회가 얼마나 타락을 했는지 자기들이 이스라엘이나 되는 것 같이 전엣 계명을 지키려고 십일조를 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내고 있는 십일조도 연약하고 무익합니다. 그런데 이방인인 우리가 내는 십일조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전엣 계명도 아닙니다.
전엣 계명입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이 지키던 계명입니다 가나안을 기업으로 받은 이스라엘에게 해당이 되는 계명입니다 그 계명도 연약하고 무익하므로 폐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 왜 이방인인 지금 이 시대 교인들이 십일조를 내고 있습니까? 자기가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는 줄을 모르고 그저 종교에 사로잡혀서 십일조를 더 많이 내려고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7장은 사실 히브리인들에게 하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코미디를 하고 있습니다. 자기들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일을 하면서 그것을 믿음의 증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전엣 계명 이스라엘이 토지소산의 십일조를 낸 그것이 얼마나 연약하고 무익한가를 가르쳐 주고 있는데 다시 이스라엘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율법은 아무 것도 온전케 하지 못 합니다
이 말씀은 전엣 계명을 지키고 있는 사람은 절대로 온전케 될 수 없고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십일조를 내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지만 이 히브리서를 보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오히려 전엣 계명을 좇아가고 있습니다.
공동번역을 보겠습니다.
“전에 있던 율법의 규정은 무력하고 무익했기 때문에 폐기되었습니다. 율법은 아무것도 완전하게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더 좋은 희망을 주셨고 우리는 그 희망을 안고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것입니다”
폐기 되었습니다.
십일조는 폐기가 되었습니다. 십일조를 드리던 이스라엘 사람에게도 폐기가 되었는데 이방인인 우리는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무력하고 무익하기 때문에 폐기가 되었습니다. 그 전엣 계명으로는 우리가 하늘의 축복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폐기가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그 폐기된 십일조를 하면서 하늘의 복을 받으려 하고 있습니다.
십일조는 율법입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믿음이라는 이상한 이야기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 종교가 십일조를 믿음이라고 미혹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부탁드리지만 십일조를 하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그는 무익한 일을 했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25:30절을 보겠습니다. (신 44쪽)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반드시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십일조는 전엣 계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무익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달란트의 비유에서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쫓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 십일조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자기들이 얼마나 무익한 일을 하고 있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내어 쫓깁니다.
바깥 어두운 곳에 내어 쫓깁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그 날에 내어 쫓김을 당하고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까지 성경에서 말씀을 해 주고 있는데도 이 시대는 그 무익한 것에 너무도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제가 십일조를 하지 말라고 하면 오히려 화를 내고 있습니다.
십일조를 하고 있습니까?
그는 무익한 종입니다. 생명의 무궁한 것을 좇지 않고 있기 때문에 종교에 미혹이 되어서 그렇게 무익한 십일조를 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이 시대 십일조를 하지 않는 교회가 거의 없습니다. 물론 간혹 가다가는 있어도 그 교회 역시 십일조를 하면 어떻게 된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무서운 일입니다
십일조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십일조를 하는 사람은 반드시 바깥 어두운 곳에 쫓겨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 십일조가 무엇인가 하면 전엣 계명이고 그것은 무익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십일조를 하고 있는 사람은 절대로 구원을 받지 못 합니다. 십일조를 하면서 구원을 받았다고 하는 것은 다 거짓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무익한 일입니다.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그들이 평생을 이렇게 무익한 일을 했는데 그가 과연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까? 십일조 뿐 아니라 이 시대 교회 안에서 행하고 있는 모든 행위에 따르는 계명은 무익하므로 그것을 행하고 있는 사람은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에 반드시 바깥 어두운 곳이 쫓겨나게 된다는 것을 명심하고 있어야 합니다.
율법은 아무 것도 온전케 하지 못 합니다.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모든 율법은 아무 것도 온전케 못 합니다 그런데도 이 시대는 그것을 믿음이라고 하면서 지키고 있습니다. 성도는 이제 정말로 율법을 버리고 더 좋은 소망이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언약을 믿고 하늘에 소망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대제사장입니다
성도는 율법에 따르는 제사장의 축복을 받아서는 안 됩니다 그것으로는 온전케 할 수 없습니다. 내가 지금 십일조를 하고 있다는 것은 온전케 하지 못하는 무익한 그 일을 하고 있는 것이며 결국에는 주님으로부터 버림을 받게 된다는 것을 히브리서에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율법은 그림자와 모형이라는 것을 늘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말라기3:7절을 보겠습니다. (구 1330쪽)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 열조의 날로부터 너희가 나의 규례를 떠나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런즉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하였더니 너희가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돌아가리이까 하도다”
동문서답입니다
말라기 시대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아서 잘 알겠지만 말라기 시대에 이스라엘이 어떠한 마음을 가졌는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바벨론의 포로에서 돌아왔지만 그들의 삶은 힘이 들었습니다. 그럴지라도 그들은 자기 조상들이 하나님께 범죄를 해서 이방의 포로가 되었다는 것을 알고 진심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살았습니다.
포로에서 돌아왔습니다.
우리가 느헤미야, 에스라에서 보아서 잘 알겠지만 포로에서 돌아온 그들이 가장 먼저 했던 것이 바로 율법을 세우는 일이었습니다. 그들이 돌아온 후에 소선지서를 보면 이스라엘은 정말로 하나님을 잘 섬기기 위해서 노력을 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이스라엘에게 하나님께서 말라기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너희 열조의 날부터 너희가 나의 규례를 떠나 지키지 않았다고 말씀합니다.
지금 이 말씀을 이스라엘은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말씀입니다 자기 조상들이 물론 죄를 진 것도 있지만 그래도 하나님을 섬기는데 있어서는 나름대로 잘 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스라엘은 육적으로는 하나님을 아주 잘 섬겼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너희 열조의 날부터 너희가 나의 규례를 떠나 지키지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돌아오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돌라오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스라엘은 우리가 어떻게 해야 돌아가리이까 라고 묻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분명히 예루살렘으로 돌아왔고 또 율법에 따라 제사를 드리고 있는데 하나님께서는 너희가 내 규례를 지키지 않았고 돌아오지도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육적으로는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율법의 행위로는 분명히 그들은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돌아오라고 하신 그 말씀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조상 대대로 하나님의 규례를 지키지 않았고 또 하나님께로 돌아오지도 않았지만 그들은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안에 들어와 있는 것으로 마치 자기가 돌아온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이 아무리 육체로는 교회 안에 있다 해도 영으로 새로 지으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면 그들은 절대로 돌아온 자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이 세상의 육체의 것으로 돌아온 것이 아니라 하늘의 것이 내 안에 있어야 하나님께로 돌아온 자가 될 수 있습니다.
표면적 유대인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표면적 교인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런 것으로 하나님께 돌아왔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있어서 천국에 들어갈 수 있어야 내가 하나님께로 돌아간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자기들이 그래도 어떻게 하여야 돌아갑니까? 묻고 있지만 이 시대는 마치 자기들이 돌아온 것으로 묻지도 않고 있습니다.
성경은 경계입니다
말라기의 이 말씀이 말라기 시대의 사람들에게만 하고 있는 말씀이라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규례를 지키지 않고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았다면 이 시대 역시도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표면적인 것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내가 교회 안에서 예배를 드리고 찬송을 하고 기도를 하고 십일조를 하고 하는 그런 것들은 다 표면적인 것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것으로 자기가 하나님께 돌아왔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정말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온 성도는 반드시 그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있어서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에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없는 사람은 교회 안에서 무익한 것을 행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고 바리새인들과 같이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면서 자기가 하나님께 돌아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마치 말라기 시대의 사람들과 같이 우리가 하나님께 돌아왔다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말라기3:8절을 보겠습니다. (구 1330쪽)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
참 문제가 많은 말씀입니다
아니 사람들이 이 십일조에 대해서 이해를 하지 못하다 보니까 이 말씀을 종교인들이 아주 잘 이용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 하고도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느냐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무엇인가 하면 십일조와 헌물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의 것입니다
분명히 십일조는 레위기에서 하나님의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너희가 이 십일조를 도적질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성경을 잘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십일조를 도적질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 이스라엘은 우리가 언제 주의 것을 도적질 했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십일조를 도적질 했습니까?
전엣 계명의 십일조를 도적질 했습니까? 아마도 이 말씀을 보고 그렇다고 할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전엣 계명의 십일조를 절대로 도적질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계명을 얼마나 철저하게 지켰는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이 말라기 선지자가 오고 난 후에 400년 동안 이스라엘에는 선지자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은 전엣 계명의 십일조를 도적질 하지 않았습니다.
저도 말라기 때의 정확한 상황을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에게 십일조가 어떤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면 그들은 절대로 전엣 계명의 십일조를 도적질 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말라기 선지자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제사장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축복을 해 주는 제사장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말라기 시대에 하나님의 선물인 레위 제사장이 없었다는 말씀입니다 당연히 레위 제사장이 있어서 축복을 해 주어야 하는데 그들은 축복을 하지도 않았고 갚지를 않았다는 말씀입니다 쉽게 말씀을 드리면 이 시대는 예수 그리스도의 축복을 받은 사람이 없었다는 말씀입니다.
십일조를 먹는 사람이 없습니다.
잘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도 역시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고는 있지만 십일조를 먹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제사장이 되셔서 하늘의 축복을 해 주시고 있지만 이 축복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사람이 없고 그저 전엣 계명을 좇아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면서 자기들이 언제 십일조를 도적질 해 갔느냐고 따지고 있습니다.
아니 따지지도 않습니다.
말라기 선지자를 통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십일조를 도적질 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말라기 시대의 이스라엘도 그 말씀이 무슨 말씀인가를 몰랐고 이 시대는 한술 더 떠서 교인들을 이 말씀을 가지고 겁박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십일조를 도적질 하지 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10:10절을 보겠습니다. (신 163쪽)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무엇을 도적질 합니까?
영혼을 도적질 하고 있습니다. 말라기 시대에는 이스라엘 전체가 다 도적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들이 무엇을 도적하는 줄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이 시대 역시 전엣 계명을 좇아가는 자는 다 도적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도적이 어떻게 합니까?
영혼을 도적질하는 사단이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생명을 얻게 하는 것이 아니라 전엣 계명을 좇아가게 해서 그 무익한 것을 행하다가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그 날에 무익한 종이 되어서 바깥 어두운 곳에 쫓겨나게 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이 시대는 너무 모르고 있고 성경을 그저 문자적으로만 보고 있습니다.
사단은 도적입니다
그가 어떻게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을 도적질하는 가를 깨달아야 하는데 모르고 있습니다. 말라기 시대의 이스라엘이 십일조를 다 도적질하고도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 줄을 모르고 있는 것 같이 이 시대도 역시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사장으로 축복해 주시는 하늘의 복을 받아들이지를 않고 있습니다.
십일조를 안 내고 있습니다.
말라기 시대와 똑같이 십일조를 도적질하고 있습니다. 소득의 십일조는 아주 열심히 내고 있는 그들은 성도가 아니라 이스라엘의 바리새인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십일조를 도적질하고 그가 어떻게 영혼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까? 하지만 이 시대는 소득의 십일조를 내고 있는 전엣 계명을 보고 십일조를 도적질 하고 있다는 것을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망입니다
십일조를 도적질 하면 그는 반드시 죽습니다. 그런데 말라기에서 십일조를 도적질 했다고 말씀을 하니까 그것을 문자적으로 보고 이 시대 얼마나 그 십일조를 열심을 내서하고 있습니까? 전엣 계명대로 십일조를 하는 사람도 도적이고 또 그 십일조를 받는 사람도 도적이고 그 안에서 함께 그것을 인정하고 있는 모든 사람이 다 도적입니다.
성도는 십일조를 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전엣 계명을 좇아 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오히려 도적질하는 것입니다 왜 그런가 하면 그 십일조가 바로 무익한 것이고 그 무익한 것을 한 사람은 반드시 무익한 종이 되어서 바깥 어두운 곳에 쫓겨난다는 것을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내 십일조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십분의 일을 주었을 때 우리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함께 했습니다. 무엇인가 하면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축복하는 그 하늘의 복을 믿는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모든 것을 다 믿음으로 가르쳐 주고 있지만 사람들은 성령이 오시지 않아서 그것을 문자 그대로 행하면서 사망의 길로 가고 있습니다.
스스로 도적이 되고 있습니다.
또 종교인들은 영혼을 도적질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이 시대는 수많은 도적들이 있어서 영혼을 도적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믿음의 비밀을 모르기 때문에 자기가 행하고 있는 전엣 계명에 의해서 스스로 자기 영혼을 도적맞기도 하고 있고 또 강도에 의해서 도적을 맞기도 합니다. 성경은 이렇게 영의 비밀을 대해서 가르쳐 주고 있지만 사람들은 이 성경을 너무 쉽게 생각하고 있고 그 안에서 생명에 대해서 알려고 하지를 않고 있습니다.
오직 예수입니다.
주님만이 생명을 주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주시는 축복, 하늘의 생명을 거절하고 이 시대 교인들은 전엣 계명을 좇아서 스스로 자기 영혼을 도적에게 주고 있고 또 종교라는 거대한 도적이 모든 사람들에게 이 전엣 계명으로 그 영혼을 도적질하고 있지만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멸망당합니다.
도적은 멸망을 시키기 위해서 오고 있습니다. 이 도적이 보이는 도적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도적입니다 그것이 교회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암적으로 퍼져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영의 비밀을 모르다 보니까 사망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 시대 전엣 계명을 좇게 하고 있는 모든 사람은 다 도적이라고 보면 맞습니다.
영혼입니다
이 십일조는 영혼 구원의 문제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저 문자적으로 보고 바리새인과 같이 소득의 십일조를 내면서 자기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자기들은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 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실상은 그 자체가 이미 영혼을 도적질 하고 있고 도적질을 당하고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말라기3:9절을 보겠습니다. (구 1330쪽)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적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이스라엘입니다
이 말씀이 지금 이해가 됩니까? 어느 몇 사람이 십일조를 도적질 했다면 충분히 이해가 되지만 하나님께서는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적질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이것이 전엣 계명의 십일조라면 제가 말라기 시대를 안 살아보아서는 잘 모르겠지만 이것은 오히려 하나님께서 거짓말을 하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스라엘이 누구입니까?
바리새인들을 보았지 않았습니까? 이 말라기 시대와 주님이 오셨을 때는 거의 비슷합니다. 이 말라기 시대부터 해서 주님이 오실 때까지 이스라엘의 삶은 거의 같다고 보면 맞습니다. 그들이 무엇을 중요시 했습니까? 할례를 가장 중요시 했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는 것을 중요시 했고 그 다음에 율법입니다.
그런데 말이 됩니까?
어떻게 하나님을 믿는 이스라엘의 온 나라가 십일조를 도적질 했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더구나 이 말라기 시대로부터 해서 주님이 오시기까지는 이스라엘이 철저한 율법주의로 가고 있었습니다. 물론 이스라엘은 언제나 율법주의였지만 그 시작이 말라기 시대이고 그 정점이 주님이 오셨을 때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십일조를 냈습니다.
그들은 전엣 계명을 좇아 십일조를 했습니다. 그러나 그 백성 전부는 예수 그리스도의 축복을 받지 않았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가 십일조를 도적질해서 영혼 구원을 받은 사람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말라기 시대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 시대 역시 소득의 십일조는 드리고 있지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십일조를 하지 않아서 그 영혼들이 다 도적을 맞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적질 했습니다.
정말 이 시대 우리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하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이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 돌아온 후에 이스라엘이 얼마나 하나님을 잘 섬기려고 했는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 때에 온 나라가 십일조를 도적질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다 십일조를 도적질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축복을 하늘의 선물을 믿지를 않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한 이스라엘도 그랬는데 지금 이 시대는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십일조를 도적질하면서 자기들이 내고 있는 소득의 십일조를 보면서 그것을 믿음의 증표라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무익한 종이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행위를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라 또 그것을 행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그림자를 통해서 실체를 알아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그랬던 것과 같이 이 시대 역시 십일조를 도적질 하면서 스스로 망하는 길로 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저주를 받았습니다.
갈라디아서3:10절을 보겠습니다. (신 305쪽)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나니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율법의 행위 아래 있는 사람은 저주 아래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저주를 받았습니다. 그 이유는 전엣 계명대로 소득의 십일조를 드렸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축복하시는 것을 믿지 않고 그 선물을 받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율법의 행위에 있는 사람은 절대로 이 하늘의 축복과 선물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저주를 자청하고 있습니다.
말라기 시대의 이스라엘이 저주를 자청한 것과 같이 이 시대도 역시 전엣 계명을 좇아 십일조를 드리면서 저주를 자청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십일조는 하지 않고 자기 종교를 위해서 십일조를 하고 있고 그 십일조를 반대를 하면 심지어는 이단이라고 까지 공격을 하고 있습니다. 저주를 받을 자들이 오히려 진리를 전하는 성도들에게 저주를 하고 있는 것이 이 시대 교인들의 모습입니다.
말라기3:10절을 보겠습니다. (구 1330쪽)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온전한 십일조입니다
율법은 아무 것도 온전케 할 수 없다고 히브리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그 율법의 십일조를 하면서 온전한 십일조를 하기 위해서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교인들이 온전한 십일조를 하기 위해서 이 십일조에 대해서 별의 별 규례를 자기들이 만들어서 하고 있습니다.
온전한 십일조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주님이 제사장으로서 우리를 축복해 주시는 것입니다 영원히 살아계시는 주님이 축복을 해 주심으로 그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여서 천국을 선물로 받는 그것입니다. 그런 온전한 십일조를 하려 고는 하지 않고 자기 소득에서 온전한 십일조를 하기 위해서 심지어는 자기 소득을 계산까지 하는 어리석은 행위들을 하고 있습니다.
온전한 십일조를 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이 먹었던 십일조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축복을 받은 것을 갚은 십일조입니다 그것은 우리 소득으로 갚는 것이 아니라 믿음입니다. 이 온전한 십일조는 바로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드릴 때 레위 자손들이 그 허리에서 함께 바친 십일조라는 말씀입니다.
이 시대는 온전한 십일조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연약하고 무익한 전엣 계명을 따르는 소득의 십일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 십일조는 반드시 저주를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온전한 십일조를 하지 않고 연약하고 무익한 십일조를 하는 사람은 반드시 저주를 받아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바깥 어두운 곳에 쫓겨나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을 것입니다.
얼마나 슬픕니까?
소득의 십일조를 하느라고 얼마나 힘이 들었습니까? 십일조 뿐 아니라 수십 가자가 되는 헌금을 하느라 등골이 휘어 질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헌금을 해서 교회를 짓고 또 그 교회를 섬기느라 더 많은 헌금을 하고 있고 자기들을 높이려고 이 십일조를 하다가 결국에는 주님으로부터 저주를 받는다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됩니다.
영의 일을 모르면 다 그렇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영의 일을 가르쳐 주고 있는데 이 시대는 영의 일이 아니라 성경을 문자적으로 그대로 보고 있으면서 스스로 저주 아래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는 축복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저주가 함께 있다는 것을 늘 깨달아야 합니다. 영의 깊은 비밀을 모르면 교회에 나와서 평생을 열심을 다 해서 신앙생활을 하다가 그렇게 저주를 받는다는 것을 깨닫고 늘 지혜를 구하는 성도가 되어서 하늘의 축복을 믿음으로 선물로 받아야 합니다.
말라기3:11-12절을 보겠습니다. (구 1330쪽)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황충을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멸하지 않게 하며 너희 밭에 포도나무의 과실로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너희 땅이 아름다와지므로 열방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다 육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토지소산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이스라엘이 육적으로 드렸던 십일조입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주었던 십분의 일입니다 그것은 제사장을 선물로 주고 축복을 해 주는 것을 갚는 것입니다. 그 축복을 갚는 토지소산을 멸하지 않게 하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적입니다
그러나 다 영의 의미가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런 말씀을 보고 다 육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이 십일조를 통해서 기복주의가 탄생이 되고 있습니다. 자기들의 소득의 십일조를 하면 이 땅에서 복을 받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말씀은 영에 일에 대해서 가르쳐 주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은 토지소산의 십일조를 냈습니다.
그것은 제사장의 일을 갚아 주는 것의 예표입니다 너희가 온전한 십일조를 내면 그것을 갚아주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모르기 때문에 온전한 십일조가 무엇인가도 모르고 또 포도나무의 과실이 무엇인가도 모르고 있습니다.
포도나무의 과실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구원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황충이 토지소산을 해하지 못 합니다 사단이 해하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온전한 십일조를 내면 그렇게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습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성도는 이렇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온전한 십일조를 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영혼이 구원을 받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마태복음의 23장23절에 십일조가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이미 그 말씀은 제가 설교로 그리스도편지에 올려 드렸습니다. 굳이 여기서 말씀을 안 드려도 그 말씀에 대해서는 이미 이해를 하고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이제 십일조에 대한 문제를 확실하게 성경을 통해서 알았습니다. 성도는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 십일조는 전엣 계명을 좇아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이 되셔서 축복을 해 주시는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천국의 기업을 선물로 받는 그것입니다
고린도후서 9:7절을 보겠습니다. (신 295쪽)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소득의 십일조 무익합니다.
그것을 하고 있는 사람은 반드시 저주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아무리 하나님의 은혜가 감사하다고 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그 은혜가 넘쳐서 진심으로 한다고 해도 그 무익한 일을 하는 자는 반드시 바깥 어두운 곳으로 쫓겨나게 됩니다.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이 다 가하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람이 저주를 당하는 것은 죄를 지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고자 하는 지나친 열심에서 나온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비단 이 십일조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엣 계명에 속한 모든 것이 다 그렇고 또한 교회에서 하고 있는 20여 가지의 헌금도 마찬가지로 무익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제가 연보를 하지 말라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성도 각자에게 이 세상에서 분복으로 주신 것이 있습니다. 내가 주님의 은혜를 입었다면 연보를 해서 이 복음이 전해지게 사용이 되어야 합니다. 또한 이 복음만을 위해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을 소득이 있는 성도는 그들을 저버리지 말고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연보를 하시기 바랍니다.
복음을 내가 들었으면 그것을 육체의 기회로 이용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장성한 분량에 이른 성도는 내가 어떻게 연보를 해야 하는 줄을 알고 있을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인색함이나 억지로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분명히 즐겨 내는 자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소득의 십일조는 무익한 행위입니다
이제 그 행위에서 벗어나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은혜를 받은 성도는 그 마음에 감동을 받을 줄 믿고 있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축복을 받고 그 구원을 선물로 받아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에 영접을 받아 천국에서 모든 축복을 누리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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