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너희는 귀를 기울리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십일조에 대하여

십일조-4

윤주만목사 2016. 12. 4. 10:29

히브리서7:1절을 보겠습니다. (359)

 

이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 여러 임금을 쳐서 죽이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복을 빈 자라


멜기세덱은 살렘의 왕입니다

이 살렘은 평화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살렘은 예루살렘을 시적으로 표현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도 평화의 도시라는 뜻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맞는다고 저 역시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평화의 왕입니다. 그것은 이 세상에 있는 예루살렘의 왕이라는 말씀이 아니라 하늘에서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왕이라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모두가 영의 일입니다

이렇게 창세기에서부터 새 예루살렘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주님은 그 예루살렘의 왕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이 말씀은 창세기14장에 있는 말씀과 똑같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는 살렘의 왕입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새 예루살렘이 내려오는데 그곳의 왕이라는 말씀입니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입니다.

앞에서도 말씀을 드렸습니다. 제사장이 무엇을 하는 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이 시대 성도들을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왕 같은 제사장들이 자기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 줄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제사장이 하는 일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있으면서 그저 성경에 문자적으로 기록이 되어 있으니까 자기들을 제사장이라고 말 합니다.

 

문자적으로는 너무 잘 압니다.

그리고 제사장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문자적으로 알고 제사장이라고 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성경에서 성도를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으면 제사장이 무슨 일을 하는 가를 먼저 깨달아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제사장이라고 하면서 제사장이 하는 일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사람의 제사장이 있고 하나님의 제사장이 있습니다.

이 시대 교회 안에는 두 제사장이 있습니다. 사람이 성경을 보고 이성적으로 이해를 해서 제사장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고 또 하나님께서 세우신 제사장이 있습니다. 구약의 레위인을 하나님께서 선택을 하셔서 제사장의 일을 하게 하셨습니다.

 

멜기세덱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하나님의 지극히 높으신 제사장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제사장이 무엇을 하는 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제사장은 복을 빌어주고 있습니다.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만나 한 일이 바로 아브라함에게 복을 빌어 준 일입니다 그것은 이 세상의 복이 아니라 하늘의 복을 빌어 주었다는 말씀입니다.

 

구약의 일은 다 영의 일입니다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에게 빌어준 복은 다른 복이 아니라 하늘의 복입니다 이것을 오해를 해서는 안 됩니다. 이제 우리는 히브리서를 통해서 십일조에 대해서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히브리서의 말씀만 알아도 십일조를 하지 않을 수 있는데 사람들은 성경을 너무 쉽게 보고 있고 또 사람의 이성으로 보고 있습니다.

 

제사장은 복을 빌어줍니다

이 시대 성도들을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말씀합니다. 그가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제사장인가 아니면 율법에 따르는 사람의 제사장인가를 알 수 있는 방법은 너무도 쉽습니다. 성경만 자세히 보아도 그가 누구의 제사장인가를 알 수 있는데 이 시대는 성경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반드시 복을 빌어야 합니다.

그 복은 이 세상의 복이 아니라 하늘의 복입니다. 성경의 모든 일은 다 영의 일이라는 것을 반드시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구약은 예표와 그림자이기 때문에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만나 빈 복은 이 세상의 복이 아니라 하늘의 복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 교회 안에서 자칭 제사장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교인들에게 이 세상의 복을 빌어 주고 있습니다.

 

샤머니즘입니다

무당과 무엇이 다릅니까? 무당에게 찾아온 사람들이 무엇을 위해서 찾아옵니까? 이 세상의 복을 위해서 찾아오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제사장이 지금 이 시대 그렇게 무당과 같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제사장이 아니라 사람의 제사장입니다. 나에게 복을 빌고 있는 자가 어떤 복을 빌고 있는 가를 알기만 해도 그가 참 선지자인가 거짓 선지자인가를 쉽게 분별할 수 있는데 그것조차도 모르고 있습니다.

 

교인들도 문제입니다

지금 이 시대 교회 안에서 이 세상의 복을 빌어주지 않으면 아마 목사라도 쫓아내고 말 것입니다 이미 교회가 얼마나 바알에 의해서 귀속이 되어 있는가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목사만의 문제가 아니라 교인들까지도 모두가 바알에게 귀속이 되어 있고 또 바알에게 무릎을 꿇고 있으면서도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제사장입니다

반드시 하늘의 복을 빌어 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이 시대 제사장들이 해야 하는 일입니다 다른 것을 요구하지 말고 다른 것을 하라고 하지 말고 천국의 복만 빌어주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제사장이 해야 하는 일입니다 제사장의 직분을 먼저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주님이 복을 빌면 어떻게 됩니까? 그 사람은 반드시 복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분향단에서 배워서 알고 있지만 주님께서 기도를 하시면 반드시 그 기도가 응답이 된다는 것을 말씀을 드렸습니다.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에게 복을 빌었으면 반드시 아브라함은 복을 받습니다. 그것을 히브리서를 통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성도도 제사장입니다

우리가 복을 비는 것과 주님이 복을 비는 것은 다릅니다. 물론 성도도 제사장으로서 복을 빌어 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비는 복은 그것이 하늘의 복이라 할지라도 반드시 복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빈 복은 반드시 복을 받습니다.

 

그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성경에 왜 이 말씀을 기록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지극히 높으신 제사장이 축복을 하면 그 복이 그대로 그에게 임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세상의 복을 빌어 주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복을 빌어 주시고 있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영접하고 복을 빌어 주었습니다.

 

히브리서7:2절을 보겠습니다. (359)

아브라함이 일체 십분의 일을 그에게 나눠 주니라 그 이름을 번역한즉 첫째 의의 왕이요 또 살렘 왕이니 곧 평강의 왕이요


멜기세덱이 복을 빌어 주었습니다.

그것이 하늘의 복입니다 그 복을 빌어주자 아브라함이 일체 십분의 일을 그에게 나눠 주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의미를 잘 모르고 있습니다. 이것은 아브라함과 멜기섹덱이 보여준 그림자입니다. 십분의 일을 나눠 주었다는 말씀 때문에 사람들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일체 십분의 일을 나눠 주었다고 하면서 이 시대도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무엇의 의미입니까?

멜기세덱이 먼저 복을 빌어 주었습니다. 그 복을 아브라함이 받아들인다는 것을 일체 십분의 일로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일체 십분의 일은 다시 말씀을 드려서 아브라함이 노략한 것의 전체를 드리는 것을 의미적으로 십분의 일을 준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이 노략한 것의 모든 것을 드렸다는 뜻입니다.

 

구원입니다

그리고 하늘의 복을 받았습니다. 지금 아브라함은 멜기세덱에 의해서 하늘의 복을 받았습니다. 그 복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은 일체 십분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성경을 너무 쉽게 보고 있고 자기들의 편의에 따라 이해를 하려하고 있습니다. 이 일체 십분의 일은 전 시간에 이미 말씀을 드렸듯이 아브라함의 전체를 드린 것입니다

 

그것을 지금 이 시대는 어떻게 합니까?

아브라함은 복을 받는 것을 갚기 위해서 일체 십분의 일을 드렸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원하는 것을 값없이 사 먹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다시 말씀을 드리겠지만 아브라함이 일체 십분의 일을 드림으로 해서 믿음의 자손들은 모두가 드린 것으로 계산을 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우리는 대표성을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멜기세덱이 누구입니까?

그 이름을 번역한즉 첫째 의의 왕이요 또 살렘 왕이니 곧 평강의 왕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문자적인 의미는 다 하나님을 나타내고 있는 단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누구에게 십분의 일을 주었는가 하면 바로 하나님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경은 모두가 다 하나님의 경륜에 대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신 일입니다

 

늘 말씀을 드립니다.

먼저 나를 알아야 합니다. 내가 누구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자기가 누구라는 것을 너무도 모르고 있습니다. 내가 누구라는 것을 알아야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자기도 모르다 보니까 하나님을 도무지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는 있지만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모르고 그저 남들이 부르니까 그 이름을 부르고 있습니다.

 

믿음은 아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모르고 어떻게 믿을 수 있습니까? 그것은 스스로 속고 있는 일입니다 사단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을 혼미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자기를 모르게 만들고 있고 또 자기를 모르다 보니까 하나님을 모르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 이름을 부르는 것으로 마치 모든 것을 아는 것처럼 미혹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히브리서7:3절을 보겠습니다. (359)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 아들과 방불하여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


아비도 없습니다.

어미도 없고 족보도 없습니다. 성막론에서 강의를 할 때 청색의 의미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요한복음에서 하나님으로 오셔서 족보가 없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시대는 성탄절이라는 것을 만들어 놓고 지키고 있습니다.

 

아비도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시작한 날이 없다고 성경에서 분명히 가르쳐 주고 있는데 왜 1225일이 성탄절이 되어야 합니까? 이것은 기독교라는 종교에 의해서 자기들의 생각에 따라 만들어진 날이지 성경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아니 예수 그리스도와는 상관이 없는 날입니다

 

그리고도 구원을 받기를 원합니까?

성경에 없는 날을 만들어서 그 날을 거룩하게 지키고 축제일로 지키고 있는데 과연 그 사람들이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까? 이성이 있는 사람이라면 절대로 그 날을 성탄절로 지키지 않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모두가 종교에 의해서 포승이 묶여 있기 때문에 그것을 깨달아 알 수 있는 지혜가 그들에게는 없습니다.

 

성경을 잘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반드시 바로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왜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악을 행했는가 하면 그들이 우리보다 지혜가 없어서가 아닙니다. 그들은 정말 성경을 외울 정도로 성경을 잘 알고 있었지만 너무 문자에 사로잡히고 말았습니다. 이 시대는 문자에 사로 잡혀 있는데다가 너무 사람들이 똑똑합니다.

 

부탁드립니다.

아니 이것은 생명에 관한 문제입니다 여러분이 지키고 있는 성탄절은 예수 그리스도를 사람으로 만들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람으로 깎아 내리면서 그가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까? 내가 하고 있는 그 일이 예수 그리스도를 멸시하고 또 폄하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늘 깨어 진리를 사모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항상 제사장으로 있습니다.

제사장에 대해서 계속해서 말씀을 드립니다. 제사장이 하는 일 중에 가장 첫 번째가 바로 번제단에서 제사를 드리는 일입니다 죄를 진 백성이 제물을 끌고 오면 그것에게 전가하는 안수를 하고 그것을 번제단에서 제사를 드려주고 죄인의 죄가 사함을 받았다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제사장은 축복입니다

그리고 제사장은 이스라엘에게 선물입니다 어떤 의미인가 하면 제사장이 없으면 이스라엘의 백성들이 죄를 지었을 때 사함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항상 있는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시지 않았다면 우리 인생 모두는 그저 죄인으로 살다가 이성이 없는 짐승과 같이 흙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항상 제사장으로 있습니다.

언제까지 제사장으로 있습니까?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그 날까지 항상 제사장으로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제사장은 이미 없어졌습니다. 주님이 오시고 난 후에 성전을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셨습니다. 성전이 없다 보니까 이제 더 이상 육체에 상관된 계명을 따르는 제사장도 없어진 것입니다.

 

그 제사장은 그림자입니다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시니까 그림자로 보였던 제사장은 이제 더 이상 필요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성전을 무너뜨리셨습니다. 이스라엘의 레위 자손의 제사장들은 주님이 오실 때까지의 그림자라는 말씀입니다 그들은 항상 있는 제사장이 아니라 이미 없어져 버린 제사장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항상 있습니다.

얼마나 감사한 말씀입니까? 이스라엘의 제사장과 같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하늘의 복을 빌어주는 제사장이 항상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복을 빌어 주면 뭐합니까? 이 시대는 십일조를 먹지 않고 자기들의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면서 스스로 저주를 자청하고 있으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대제사장입니다.

그는 항상 있어서 우리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복을 빌어주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을 영접하고 복을 빌어준 것과 같이 이 시대 성도들에게 복을 빌어 주고 있습니다. 이 복을 받은 성도는 십일조를 먹고 있습니다. 원하는 것을 값없이 사서 십일조를 먹고 있습니다. 십일조를 먹는 것이 우리의 대제사장이 하신 일을 갚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히브리서7:4절을 보겠습니다. (359)

이 사람의 어떻게 높은 것을 생각하라 조상 아브라함이 노략물 중 좋은 것으로 십분의 일을 저에게 주었느니라


이 사람이 어떻게 높은 가를 생각하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믿음의 조상이라고 하는 아브라함도 노략물 중에 좋은 것으로 십분의 일을 저에게 주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잘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율법이 있기 전에 믿음의 조상이라고 하는 아브라함이 저에게 십분의 일을 주었다고 말씀합니다.

 

그것이 무슨 말씀입니까?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이 그가 빌어 주는 복을 믿었다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이 십일조를 먹은 것과 같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노략물 중에 좋은 것으로 저에게 십분의 일을 주었다고 말씀합니다. 제사장이 축복을 했으면 반드시 그 축복을 받아야 합니다. 그 축복을 받는 것을 예표로 조상 아브라함이 노략물 중에 좋은 것으로 십분의 일을 주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십일조를 아시기 바랍니다.

레위 제사장을 준 것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이스라엘이 십일조를 드려서 하나님께서는 레위인들이 하는 일에 대해서 갚아 주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이 시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아 드림으로 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갚아 주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십분의 일을 주었습니다.

이 말씀을 보고 이 시대도 자기가 믿음의 자손이면 당연히 조상 아브라함이 십분의 일을 준 것 같이 자기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행위라는 것을 모르고 그저 성경에 문자적으로 기록이 되어 있으니까 십일조를 하고 있습니다. 사실 100여 년 전만 해도 이 십일조는 거의 이단성이 있는 교회에서 받아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 보시기 바랍니다.

어느 교회가 십일조를 안 받고 있습니까? 정통이나 이단이나 할 것 없이 이 십일조는 다 받고 있습니다. 제발 자원하는 마음이라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법에 정해져 있는 것을 자원하는 마음으로 한다는 것이 얼마나 모순인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최근에 일본 야구선수 다나카가 뉴스에 자주 등장합니다.

그가 일본 프로야구에서 24전승을 하고 또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습니다. 그런데 메이저리그로 진출을 하려고 하니까 포스팅 금액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구단에서 이 포스팅 금액이 맞지 않으니까 나중에는 다나카가 자기 연봉에서 구단에 감사에 보답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미국의 메이저리그에서 그것을 반대했습니다.

 

왜 반대를 합니까?

다나카는 자기를 메이저리그로 진출하게 허락해준 구단에게 감사하는 뜻으로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법적인 문제가 걸려 있습니다. 그것이 아무리 감사의 문제라 해도 법에 저촉이 된다는 것입니다 십일조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정말 진심으로 제사장의 축복이 감사해서 드린다고 하지만 그것은 이미 법을 어기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감사도 안 됩니다

제사장이 나를 위해 축복을 해 주어서 내가 그 복을 받았다 해도 감사도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 자체가 법을 어기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림자를 보고 하는 그런 행위가 얼마나 악하다는 것을 먼저 깨달아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왜 노략물 중에 좋은 것으로 십분의 일을 드렸는가 하면 그것은 꼭 십분의 일이 아니라 전체를 드린 것이며 축복을 받아들이는 의미입니다.

 

믿음입니다.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의 축복을 믿었습니다. 그것을 그림자로 보여준 것이 바로 노략물 중에 좋은 것으로 십분의 일을 준 것입니다. 그가 얼마나 높은가 하면 율법이 생기기도 전에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노략물 중에 좋은 것으로 십분의 일을 주었다는 말씀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그가 빈 복을 믿었다는 말씀입니다.

 

히브리서7:5절을 보겠습니다. (359)

레위의 아들들 가운데 제사장의 직분을 받는 자들이 율법을 좇아 아브라함의 허리에서 난 자라도 자기 형제인 백성에게서 십분의 일을 취하라는 명령을 가졌으나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레위 자손 가운데서 제사장 직분을 맡는 사람들은, 자기네 동족인 이스라엘 백성에게서, 비록 그 백성도 아브라함의 자손이지만, 율법을 따라 십분의 일을 받아들이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십일조는 율법입니다

성경에서 분명히 이 십일조를 율법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말씀을 드리지만 이 율법의 십일조를 하면서 그것을 믿음으로 한다는 말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믿음으로 한다는 그 자체가 이미 모순이고 말이 성립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율법은 자기 몸으로 행하는 것이고 믿음은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인데 어떻게 몸으로 하면서 마음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 성립이 될 수 있습니까?

 

세뇌입니다

이 시대 한국에 있는 교인들은 십일조에 대해서 너무 강하게 세뇌가 되어 있습니다. 더구나 그것이 성경에 하나님의 것이라고 기록이 되어 있다 보니까 그 말씀의 문자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고 그것에서 다른 어느 말씀도 개입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기까지 했습니다.

 

사단은 이렇게 무섭습니다.

한번 사람들의 머리에 각인이 되어 버리면 그것을 어느 누구도 바꾸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하나님께 드려야 하고 그것을 통해서 교회 안에서 전도도 하고 선교도 하고 또 교회를 유지하기도 하고 목사의 월급도 주고 하다보니까 그것이 없으면 그런 것을 할 수 없다는 생각이 앞서서 십일조를 하지 말라고 하면 그러면 교회가 무너질 것이 아니냐고 말 합니다.

 

말씀드립니다.

교회가 무너지면 어떻습니까? 진리가 사라져 있는 아니 십일조를 먹지도 않는 교회는 차라리 없는 것이 더 낫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생명을 좇아가지 않고 육체의 상관된 법을 좇아가는 교회는 사실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면 필요악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말에 구더기 무서워서 장을 못 담근다는 말이 있습니다.

 

교회가 중요합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중요합니까? 이 시대는 그것을 간과하고 있습니다. 왜 교회가 무너지는 것을 무서워하고 있습니까? 그것보다 더 무서워해야 하는 것이 있다면 교회 안에서 진리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 생명이 사라지는 것임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교회 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 교회에 구더기가 낀다면 그 교회도 과감하게 버려야 내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십일조 때문에 생명이 사라진 교회라면 그 교회는 버려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가 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는가 하는 그 이유를 모르고 교회에서 아무리 신앙생활을 잘하면 무엇 합니까? 그것은 구더기를 키우는 일에 불과합니다.

 

율법이라는 것을 깨닫기 바랍니다.

그 율법에 따라 아브라함의 자손 레위 제사장들이 이스라엘에게 십일조를 받으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이 명령을 받았다는 것을 잘 이해를 해야 합니다. 이 십일조의 의미는 명령입니다 반드시 받아야 합니다. 왜 받아야 하는가 하면 이스라엘의 십일조를 받는 것은 이스라엘이 제사장의 축복을 받아들인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십일조는 명령입니다

그 명령을 지켜야 이스라엘이 제사장의 축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그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레위 제사장들이 십일조를 명령으로 받았습니다. 명령으로 받았다는 것은 축복을 받고 안 받고 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이스라엘의 백성이면 제사장의 축복을 받으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이스라엘의 육입니다.

그것을 히브리서에서 영적으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사실 이런 말씀들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이 시대도 역시 육적으로 자기 소득의 십일조를 하면서 점점 더 바리새인이 되어 가고 있으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큰 악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고 바리새인과 같이 저주를 받는 자가 된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레위 제사장들이 받는 십일조는 명령입니다

그것을 안 받고 받고 하는 것을 레위 제사장이나 이스라엘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이 명령대로 받아야 그들이 제사장의 축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사장의 축복을 받는 것은 명령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주님이 대제사장으로 오셨습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선물이고 축복입니다 그런데 이 선물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것의 예표가 이스라엘의 십일조였습니다. 이 시대는 창고에 이미 쌓아 두었기 때문에 이 축복을 배부르게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천국에 넉넉히 들어간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제사장의 축복을 받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히브리서7:6절을 보겠습니다. (359)

레위 족보에 들지 아니한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에게서 십분의 일을 취하고 그 약속 얻은 자를 위하여 복을 빌었나니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그러나 멜기세덱은 그들의 족보에 들지도 않았지만, 아브라함에게서 십분의 일을 받았고,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그 사람을 축복해 주었습니다.”

 

율법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렸고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제사장의 일을 하는 레위자손들에게 갚아 주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율법에 따라 레위 자손에게 하지를 않았습니다. 제가 늘 말씀을 드리지만 법을 지키려면 반드시 법대로 해야 합니다. 법대로 하지 않고 법을 지킨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지금 그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법대로 하면 아브라함의 십일조는 잘못된 것입니다. 멜기세덱은 레위 족보가 아니기 때문에 아브라함이 한 십일조는 법대로 하면 잘못되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법을 대충 지키면 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법은 법대로 지켜야 합니다.

지난 시간에 말씀을 드린 대로 십일조에 대한 율법이 기록되어 있는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에 기록이 되어 있는 법대로 해야 합니다. 법대로 지키지 않으면 그것은 이미 그 자체가 법을 어기는 일이 된다는 것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지금 이 시대 드리고 있는 소득의 십일조는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법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이 자기들이 만든 것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법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그냥 십일조라는 것만 알아서는 안 됩니다 분명히 성경에 어떻게 십일조를 내라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십일조를 누가 먹어야 하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법을 지키지 않고 십일조를 하는 것은 이미 십일조에 대한 법을 어기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왜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십일조가 무엇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법대로 하면 아브라함도 레위 자손에게 해야 하는데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했고 하늘의 약속을 얻는 아브라함에게 멜기세덱이 축복을 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누구입니까?

하나님으로부터 약속을 받은 자입니다 어떤 약속을 받았는가 하면 네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많으리라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물론 창세기에서는 이 사건이 먼저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기 이전에 이 사건이 먼저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해 주시려고 아브라함을 갈데아우르에서 부르셨습니다.

 

히브리서7:7-8절을 보겠습니다. (359)

폐일언하고 낮은 자가 높은 자에게 복 빎을 받느니라 또 여기는 죽을 자들이 십분의 일을 받으나 저기는 산다고 증거를 얻은 자가 받았느니라


공동번역을 보겠습니다.

다시 말할 것 없이 축복이란 것은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해주는 것입니다.”


누가 복을 빌어 줍니까?

히브리서7장의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을 만나 축복을 받고 노략물 중에 좋은 것으로 십분의 일을 주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늘의 축복을 누가 해 주는 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까지 한 말씀은 누가 누구를 축복해 주고 있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을 만나 십분의 일을 준 것은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축복했다는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을 누가 축복했습니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축복해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이 십분의 일을 주어서 축복을 한 것이 아니라 멜기세덱이 먼저 아브라함을 만나 축복을 해 주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높은 자가 낮은 자를 축복해 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무 당연한 말씀입니다

이 세상의 이치로 따져도 높은 자가 낮은 자를 축복해 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축복해 준 멜기세덱이 얼마나 높은 가를 먼저 말씀을 하고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이 높은 자가 낮은 자를 축복해 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축복을 받은 아브라함은 창세기 15장에서 네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많다는 약속을 받고 있습니다.

 

누가 먼저 축복을 했습니까?

창세기14장에서 멜기세덱이 먼저 아브라함을 영접하고 축복을 해 주고 있고 아브라함이 대적과의 싸움에서 이기고 노략물로 얻은 것 중에 좋은 것으로 십분의 일을 주었을 때 또 복을 빌어 주었습니다.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에게 축복을 해 주고 난 후에 아브라함에 15장에서 하나님을 믿으니 하나님께서 이를 의롭다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먼저입니까?

아브라함이 의롭다 함을 얻기 이전에 먼저 십분의 일을 주었다는 것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이방인들이 왜 십일조를 먹어야 하는가 하면 바로 이 십일조를 주고 난 후에 아브라함이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함을 얻었다고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먼저 십일조를 먹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창고에 쌓아 둔 십일조를 먹어야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것을 요한계시록에서 원하는 자가 값없이 생명수를 먹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생명은 이렇게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을 통해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귀한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이 그것을 예표로 보여주었다 할지라도 우리는 그것을 통해서 영의 일을 깨달아야 합니다.

 

레위 자손이 십일조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죽을 자들이 십분의 일을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을 만나 십분의 일을 준 것은 산다고 증거를 받은 자가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율법에 따라 십일조를 한 것은 죽을 자들이 받았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한 것은 산다고 증거를 받은 자가 받았습니다.

 

공동번역을 보겠습니다.

제사장들도 십분의 일을 받고 멜기세덱도 십분의 일을 받았지만 제사장들은 언젠가는 죽을 사람들이고 멜기세덱은 성경이 증언하는 바와 같이 영원히 살아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제사장에게 했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제사장들은 언젠가는 죽을 자들이고 멜기세덱은 성경이 증언하는 바와 같이 영원히 살아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율법에 의해서 십일조를 한 이스라엘은 제사장들이 죽었습니다. 그러나 멜기세덱은 영원히 살아 있다는 말씀입니다

 

제사장은 축복을 합니다.

잘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은 율법에 따라 제사장들에게 십일조를 했는데 그 제사장들은 죽었습니다. 그 축복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말씀하고 그림자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멜기세덱은 영원히 살아 있어 아브라함에게 한 축복이 영원하다는 말씀입니다.

 

축복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죽으면 이제 그 축복은 끝이 나는 것입니다. 율법을 따라 레위인에게 했던 십일조는 그렇다는 말씀입니다 레위의 제사장이 죽으니까 그 축복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말씀입니다 유효하지 않은 축복을 받기 위해서 이 시대는 십일조를 하고 있습니다. 정말 성경을 바로 알지 못하면 그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고 그 일의 결과가 어떻게 되는지를 알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됩니다.

내 아버지가 나를 축복했습니다. 그러면 그것은 아버지가 살아 있을 때까지입니다. 아들이 열이 있는데 아버지가 어느 아들을 특히 사랑해서 그 아들을 축복해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 아버지가 살아 있을 때까지고 아버지가 죽고 나면 더 이상 아버지의 축복을 받을 수 없게 됩니다.

 

이스라엘의 십일조가 그렇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 축복을 받은 것은 멜기세덱에 영원히 살아 있기 때문에 영원한 축복을 받았다는 말씀입니다 그 영원한 축복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이스라엘의 레위 자손을 제사장 삼으셨고 이것이 선물이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림자입니다 그 그림자는 제사장들이 죽기 때문에 그 축복이 영원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멜기세덱은 영원히 살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브라함이 받은 축복은 영원하다는 말씀입니다 같은 십일조를 드렸지만 이스라엘은 죽은 자들에게 드렸고 아브라함은 산 자에게 드렸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통해서 우리가 어떤 십일조를 해야 하는 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지금 이 시대 십일조를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그것은 이미 율법을 어기는 십일조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자기들의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반드시 그 십일조로 원하는 것을 사서 하나님 앞에서 먹고 즐거워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바리새인과 같이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고는 있지만 그것이 죽는 자들에게 하는 것임을 모르고 있습니다.

 

율법에 따르는 십일조입니다.

그것은 죽는 자들에게 하는 십일조입니다. 그 십일조는 하나님께서 산 자에게 하는 십일조의 그림자라는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이스라엘의 레위 자손들을 택해서 그림자로서 그 일을 하게 하셨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십일조의 의미를 모르고 죽는 자들에게 십일조를 하고 있습니다.

 

반드시 죽습니다.

우리는 죽는 자에게 십일조를 해서는 안 됩니다. 이스라엘이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고 또 근채와 박하와 회향의 십일조를 드렸어도 그것은 죽는 자들에게 했기 때문에 아무 의미가 없는 십일조였습니다. 성도는 반드시 산다고 증거를 받은 자에게 십일조를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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