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너희는 귀를 기울리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십일조에 대하여

십일조-요약

윤주만목사 2016. 12. 4. 09:23

십일조 -요약

 

신명기14:22절을 보겠습니다. (285)

너는 마땅히 매년에 토지소산의 십일조를 드릴 것이며

 

십일조

율법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이 십일조를 율법으로 생각하지 않지 않습니다. 분명히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에 율법으로 기록이 되어 있는데도 십일조를 믿음의 증표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다른 율법과 다르게 이 십일조에 대한 규례는 성경에 여러 곳에서 기록이 되어 있고 그러다 보니까 이 시대 이 십일조에 대해서 정확하게 이해를 하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법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경에 분명히 계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계명이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그것을 믿음이라고 한다면 그는 너무도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성경에서 계명이라고 했으면 계명입니다 자기가 아무리 믿음으로 이 십일조를 드린다 해도 역시 그것은 계명을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율법은 폐하여졌습니다.

그렇다면 이 십일조 역시 폐하여졌습니다. 만약에 율법이 폐하여졌는데 이 십일조를 내고 있다면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지 않고 있는 사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고 의문의 쓴 계명의 율법이 폐하여졌다고 믿는 성도는 그 믿음이 행함으로 나타나서 절대로 이 십일조를 드리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이 곧 행함이 있는 믿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의문에 쓴 계명의 율법이 폐하여졌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 믿음에 따르는 행함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그 행함은 바로 율법이 폐하여졌으니까 더 이상 율법에 따르는 계명을 지키지 않는 것이 행함입니다.

 

문제는 율법이 폐하여졌다는 것을 믿지 않고 있습니다.

그 자체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아무리 의문에 쓴 계명의 율법이 폐하여졌다고 말씀을 하더라도 그것을 믿지 않으면 율법을 지키게 되어 있습니다. 왜 십일조를 내고 있는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모르고 있기 때문이며 모르다 보니까 믿지를 못해서 십일조를 내고 있습니다.

 

죽은 사자가 있습니다.

그것이 원형 그래도 있으면 설령 죽었다 해도 가까이 가는 것이 두렵습니다. 곁에 있는 사람이 그 사자가 죽었다 해도 자기에게 믿음이 없으면 그 사자가 무서워서 가까이 가지를 못 합니다.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이 의문의 쓴 계명의 율법이 폐하여졌다는 것을 알면 그것을 안 지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르면 어떻게 됩니까?

그것이 아무리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다 해도 안 믿어지면 율법을 지키게 되어 있습니다. 혹시라도 이 율법을 안 지키기다가는 천국에 못갈 것 같으니까 율법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분명히 이 율법이 폐하여졌다고 믿고 있는 성도는 율법이 아무리 두렵더라도 그것을 안 지킬 수 있는 담대함을 가지게 되어 있습니다.

 

유럽의 교회는 없습니다.

그리고 율법을 지키고 있는 이스라엘에도 이 십일조가 없다는 것을 먼저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나라에 선교사가 파송이 될 때만 해도 미국의 거의 대부분의 교회는 십일조가 없었습니다. 미국에서도 일부 종파 몰몬교나 안식일 교회에서 이 십일조를 받았지 거의 모든 교회는 십일조가 없었는데 지금 이 시대는 거꾸로 가느라고 십일조가 생겨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저는 확신합니다.

분명히 말씀을 드리지만 십일조는 내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절대로 천국에 들어가지 못 합니다. 아니 천국에 못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불과 유황 못에 던져져서 세세토록 고난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 시대는 지혜가 없어서 십일조를 내고 있고 더 많은 십일조를 내려고 교인들은 복을 달라고 기도를 하고 있고 십일조를 기쁨으로 내고 있습니다.

 

이단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그러나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이 시대 교회 안에서 십일조를 받고 있다면 그 교회는 구원이 없습니다. 비단 십일조뿐 아니라 어느 헌금이라도 정해서 하고 있다면 그것으로 그 교회는 구원이 없습니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십일조이기 때문에 이 문제를 성경적으로 살펴보는 시간을 가지려 하고 있습니다.

 

왜 십일조를 내고 있습니까?

그 이유는 교회의 필요와 사람의 기복이 절묘하게 맞아 떨어졌다고 보아야 합니다. 교회는 십일조를 더 많이 거두어서 자기들이 하고 있는 일들을 나타내고자 하고 있고 또 교인들은 이 십일조를 통해서 이생의 복을 받고 또 그들의 잘못 된 생각으로 하늘에 자기 헌금을 쌓아두는 것으로 알고 이 행위가 믿음이 좋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샤머니즘입니다

십일조를 하면 복을 받습니까? 물론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생의 복은 받을 수 있을지 몰라도 하늘의 복은 절대로 받을 수 없습니다. 지금 교회 안에서 십일조를 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거대한 음녀에 의해서 속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구약은 그림자입니다.

구약에서 복을 말씀을 했다면 그것은 육신의 복이 아니라 영의 복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설령 이스라엘이 이 십일조를 해서 육신의 복을 받았다 해도 그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영혼의 복을 가르쳐 주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행위로 기쁨을 누립니다.

이것을 누리는 사람은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비단 십일조 문제 뿐 아니라 거의 모든 신앙생활에서 자기가 어떤 행위를 함으로 해서 그것에 대한 자부심이 너무 강합니다. 그것을 통해서 누리는 기쁨을 사람들이 절대로 뿌리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아마 목사가 십일조를 하지 말라고 해도 어떤 방법으로든지 사람들은 자기를 나타내고 교회 안에서 자기가 믿음이 있다는 것을 보이려고 할 것이 분명합니다.

 

그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신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상은 자기 스스로가 먼저 기뻐하고 있고 또 그것을 보는 사람들이 기뻐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이 시대 교인들이 내고 있는 십일조를 기뻐하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근심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자기가 기쁘면 하나님께서도 기쁘신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기쁨입니다.

그것을 누리면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얼마나 인간적인 생각인가를 알아야 하고 또 그런 사상에 빠져 있는 것이 자기 영혼을 망하게 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기들이 하고 있는 그런 행위를 통해서 자기가 믿음이 있다는 것을 나타내기를 좋아하고 있고 믿음의 비밀을 모르다 보니까 그것을 믿음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가복음18:12절을 보겠습니다. (126)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십일조입니다

이스라엘의 바리새인들은 자기가 내고 있는 십일조에 대해서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셨고 이것이 십일조를 내고 있는 바리새인들에게 하신 칭찬이 아니라고 하니까 이 시대는 대 놓고 이렇게까지는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십일조를 하고 있는 바리새인은 자랑을 하고 있습니다. 굳이 내가 십일조를 한다고 하지 않아도 되는데 바리새인들은 기도를 할 때 내가 소득의 십일조를 드린다고 기도를 합니다. 이것이 바리새인만 그렇게 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십일조를 내고 있는 모든 사람의 마음이 똑같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믿음으로 한다고요?

정말 진심으로 감사해서 한다고요? 그런 말 자체가 이 바리새인의 기도와 같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렇게 말하고 있는 자체가 지금 이 바리새인의 기도와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바리새인과 똑같이 행하면서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뭐가 다릅니까?

그것이 다르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지각이 없는 사람입니다. 바리새인이 기도를 하면서 소득의 십일조를 드릴 수 있어서 감사하다고 하는 것과 나는 율법으로 생각하지 않고 정말 믿음으로 감사해서 한다고 그것을 하면서 내 마음에 기쁨을 누린다고 하는 것과 무엇이 다릅니까?


저주를 자청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 십일조를 하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이 이 바리새인의 기도와 무엇이 다릅니까? 똑같은 일을 하고 있으면서도 자기들은 바리새인들과 같이 기도를 안 하는 그것만으로 바리새인과 다르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바리새인은 그래도 얼마나 인간적입니까? 그러나 이 시대는 가증한 일을 하고 있으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누가 더 나쁩니까?

솔직히 바리새인보다 이 시대 십일조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더 나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똑같이 십일조를 하면서 자기들은 바리새인과 다르다고 생각하는 그 자체가 더 가증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고 있는 모든 사람의 마음에 이런 마음이 없습니까? 자기가 십일조를 한다는 것에 대해서 아주 기뻐하며 감사하고 있을 것입니다.

 

누가복음18:14절을 보겠습니다. (126)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사람이 저보다 의롭다 하심을 받고 집에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이 시대도 십일조를 못 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느 사람들은 십일조 문제로 교회에 나가고 싶어도 못 나갑니다. 솔직히 교회에 나가서 십일조를 내지 않으면 누가 반가워합니까? 물론 처음 몇 번은 반가워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아주 작은 교회는 나와서 예배를 드려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에 나가서 십일조를 내지 못하면 사람 취급도 못 받는 것이 이 시대 교회의 모습입니다.


십일조를 내면 어떻게 됩니까?

그 자체가 자기를 높이는 일이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내가 바리새인과 같은 기도를 하지 않을지라도 이미 십일조를 내고 있다는 자체가 자기를 높이고 있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십일조를 안 냅니다. 그런데 자기는 교회 안에서 십일조를 내고 있습니다. 당연히 십일조를 내는 사람의 마음은 높아져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십일조 내는 자체가 높아지는 행위입니다

내가 정말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감사해서 마음에 감동을 받아 십일조를 아주 기쁜 마음으로 냈다고 해도 그것으로 이미 그 사람은 높아졌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나는 정말 낮아져서 아무 사심이 없이 감사하는 마음으로 십일조를 드렸다 해도 이미 그 드린 자체가 그 사람을 높아지게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자기를 높이는 행위입니다

그 사람이 아무리 겸손하여서 진심으로 십일조를 냈다 해도 그 자체가 이미 높아지기 위해서 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도 이 시대는 자기가 감동을 받아서 냈다는 그것으로 십일조의 정당성을 찾으려고 하는데 주님께서는 십일조를 하는 순간 이 바리새인과 같이 된다는 것을 누가복음을 통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나는 안 그렇다고요?

그렇다면 그 사람은 이성이 없는 사람입니다 십일조를 드리는 순간 이 바리새인이 된다는 것을 예수님께서 예표로 말씀을 해 주시고 있습니다. 내가 진심이냐 아니냐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 바리새인은 진심으로 하지 않았습니까? 감사하는 마음으로 감동을 받아서 하지 않았습니까? 다 자기 합리화를 시키기 위해서 하는 말이고 그런 말이 그를 더 가증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바리새인보다 더 악한 자입니다.

그들은 아예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으니까 그럴 수 있다고 하지만 이 시대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거절하는 행위를 하면서 너무 하나님의 은혜가 감사해서 믿음으로 십일조를 드린다고 하면서 십일조를 하는 내 마음이 너무 기쁘다고 말하고 있다면 바리새인보다 더 가증한 자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높아집니다.

십일조를 못하는 사람보다 이미 그 마음에서는 높아져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도 겸손의 모양을 내면서 내가 주님의 은혜가 너무 감사해서 믿음으로 십일조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가증함이 얼마나 큰가를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누구십니까?

인생들의 심장과 폐부까지도 감찰을 하시는 분입니다 인생들의 마음을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감추고 자기가 진심으로 감사해서 하나님께서 십일조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십일조 하나만으로도 그들은 가증한 자가 되어서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십일조 뿐 아니라 이 시대 교회 안에서 정해서 내고 있는 모든 헌금이 그렇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고아의 아버지입니다

그리고 과부의 재판장입니다 또 나그네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기준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감사하다는 그 말 한마디로 그리고 믿음이라는 그 말 한 마디로 고아를 핍박을 하고 있고 과부의 가산을 삼키고 있고 나그네를 접대하지 않고 오히려 내 치고 있습니다.

 

높아지지 마시기 바랍니다.

십일조를 내면서 겸손하다는 말은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자기가 겸손해 지려면 십일조를 안내면 됩니다. 고아는 십일조를 낼 형편이 안 됩니다. 정말 내고 싶으면 사도행전에 기록이 되어 있는 바나바와 같이 하시기를 바랍니다. 마음이 감동을 받아 정해 놓은 헌금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전 재산을 내 놓고 그는 사도바울을 따라 전도 여행을 갔던 사람입니다

 

제가 연보를 하지 말라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분명히 이 시대도 오직 복음을 위해서만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을 통해서 영적인 것을 얻었으면 육적인 것으로 갚아 주어야 한다고 사도바울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야 그 사람들이 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더욱 영적인 양식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도 과하면 안 됩니다. 이 세상의 보편성을 넘어서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매년에 토지소산의 십일조를 드릴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구약의 율법은 그림자입니다. 이것은 하늘의 참 형상이 아니라고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마치 이것을 참 형상과 같이 자기들의 육체로 드리고 있습니다. 율법의 그림자를 걷어 내지 않고 문자 그대로 보면서 십일조를 하고 있고 그것을 통해서 스스로가 마치 하나님의 백성인 것처럼 표징을 삼고자 하고 있습니다.

 

레위기27:30절을 보겠습니다. (192)

땅의 십분 일 곧 땅의 곡식이나 나무의 과실이나 그 십분 일은 여호와의 것이니 여호와께 성물이라


하나님의 것이라고 말 합니다.

이 시대 십일조를 강조하는 가장 큰 이유는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십일조가 만약에 하나님의 것이 아니라면 지금 이 시대 이렇게까지 십일조에 대해서 강조하지 않아도 되고 또 십일조를 내라고 말할 명분이 없는데도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율법은 폐하여졌습니다.

그런데 이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땅의 십분의 일은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이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습니다. 그렇다 보니까 하나님의 것을 떼어 먹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것 같으면 십일조를 안 해도 크게 상관이 없는데 하나님의 것이라고 하다 보니까 사람들이 십일조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 십일조만 하나님의 것입니까?

이스라엘이 가나안으로 받은 모든 땅이 사실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 중에서 나는 모든 것은 비록 이스라엘이 농사를 지었다고 해도 하나님의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십일조를 내는 거의 모든 사람의 생각은 다 하나님의 것인데 그 중에서 십분의 일을 낸다고 하고 있고 모든 것을 다 드려도 아깝지 않다고 말 합니다.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땅의 십분의 일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것에 대해서 제가 반대를 하고자 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하는 것은 이 땅의 십분의 일은 그림자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만약 이것이 문자 그대로라고 한다면 이 시대는 십일조를 어기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지키고자 하는 계명을 스스로 어기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십일조는 누가 먹습니까?

이스라엘이 먹습니다. 그리고 레위인이 먹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매 삼년에 드리는 십일조는 레위인과 고아와 과부와 객이 먹습니다. 법이라는 것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법을 지키려면 법대로 지켜야 합니다. 법대로 지키지도 않으면서 그것을 법이라고 하면 안 됩니다.


십일조를 내고 있습니까?

그것이 하나님의 것이라서 내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반드시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법대로 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사용하는 방법도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대로 하시기 바랍니다. 그렇지 않다면 이미 법을 어기고 있는 사람입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이 십일조는 율법입니다 믿음이라는 정신 이상한 이야기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에 율법으로 기록이 되어 있는데 왜 믿음이라고 말 합니까?

 

이것만 하나님의 것입니까?

  사람들이 성경을 자기들 편의에 따라 이용을 하고 있습니다. 십일조만 하나님의 것이 아닙니다. 구약의 레위인도 하나님의 것이고 또 이 시대 성도들 역시도 하나님의 것이라고 주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구원을 받은 모든 성도들은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말 합니까?

마치 이 십일조만 하나님의 것으로 생각하고 있고 이 십일조를 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 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 십일조로 인하여 사람들을 정죄를 하고 있고 이 시대 종교인들이 이 십일조를 가지고 강도짓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것이라고 강하게 세뇌를 시켜 버리면 아무 것도 모르는 소자들은 두려운 마음에서 하나님의 것을 드리게 되어 있습니다.

 

강도입니다.

칼만 안 들었지 강도입니다 사람들이 이 십일조를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 성경말씀을 가지고 이용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 그 마음에 두려움을 갖게 하도록 때리고 있습니다. 그렇게 말로 맞다 보니까 사람들은 당연히 하나님의 것을 드려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런데 감히 하나님의 것을 떼어 먹을 수 있습니까? 굳이 십일조를 강조하지 않고 이 말씀을 읽어 주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은 자기 소득의 십분의 일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어 있고 하나님의 것은 당연히 드려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십일조를 하고 있습니다.

 

모르면 안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기존에 교회에 다니던 모든 사람이 십일조를 하고 있고 이제 교회에 나온 사람에게 이 말씀을 보여 주기만 해도 자기 소득의 십분의 일은 하나님의 것이 되고 그것을 안 할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것이라고 하는데 계속해서 하나님을 믿는 그 사람이 이 말씀을 보고 안 할 수 있겠습니까?

      

문자적으로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러나 구약은 그림자입니다 그 그림자를 보고 하나님의 것이라고 하면서 지금 이 시대도 십일조를 하고 있다면 그는 너무도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불행하게도 교인들은 이 문자에 취해서 아니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몰라서 이것을 그대로 자기 육체로 하고 있습니다.

     

십분의 일 그것은 여호와의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구약의 율법은 그림자입니다. 이것은 하늘의 참 형상이 아니라고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마치 이것을 참 형상과 같이 자기들의 육체로 드리고 있습니다. 율법의 그림자를 걷어 내지 않고 문자 그대로 보면서 십일조를 하고 있고 그것을 통해서 스스로가 마치 하나님의 백성의 표징을 삼고자 하고 있습니다.

 

창세기14:17-19절을 보겠습니다. (17)

아브람이 그돌라오멜과 그와 함께한 왕들을 파하고 돌아올 때에 소돔 왕이 사웨 골짜기 곧 왕곡에 나와 그를 영접하였고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천지의 주재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

     

왜 십일조를 하고 있습니까?

이 말씀이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율법이 언제 반포가 되었습니까? 그들 나름대로는 다 성경을 기준으로 해서 타당성을 가지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십일조를 내야 하는 사람들의 주장을 들어보면 다 이유가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미혹을 당해서 자기 영혼이 사망에 이르는 줄을 모르고 십일조를 내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입니다  

율법이 있기 전에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십분의 일을 주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모세를 통해 율법을 반포하기 약 500년 전에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조카 롯을 구하고 오는 길에 멜기세덱을 만나서 십분의 일을 주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멜기세덱에 관하여는 히브리서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싸움에서 이기고 오는 아브라함에게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와서 영접을 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그돌라오멜과 그와 함께한 왕들을 파하고 조카 롯을 구해서 오는데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영접을 했습니다  

 

그리고 축복을 합니다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천지의 주재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하리라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싸움은 아브라함에게 그 대적을 붙이셨다는 말씀입니다 

 

십분의 일을 드렸습니다  

여기서 드린 십분의 일은 히브리서에서 노략물 중에서 좋은 것으로 저에게 주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에 기록이 되어 있는 땅의 십분의 일과는 조금 다릅니다.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을 만나 축복을 받고 드린 십분의 일은 조카 롯을 구하면서 생긴 노략물 중에 좋은 것으로 드렸고 율법에 기록이 되어 있는 십분의 일은 땅의 십분의 일을 드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조상입니다  

율법이 있기 전에 십분의 일을 드렸다고 해서 지금 이 시대도 믿음이 있으면 당연히 십일조를 드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생각해 보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드린 십일조는 분명히 대적과의 싸움에서 이겨서 거기서 얻은 노략물입니다. 그 후에 아브라함이 십일조를 드렸다는 말씀은 어디에도 기록이 안 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도 농사를 지었습니다  

그리고 목축을 많이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 어디에도 자기가 농사를 짓거나 가축을 쳐서 얻은 것에서 십분의 일을 드렸다는 말씀이 없습니다. 아브라함이 십일조를 드린 일은 조카 롯을 구하면서 대적과의 싸움에서 이기고 얻은 노략물입니다  

 

그 싸움을 누가 이기게 하셨습니까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서 너희 대적을 너희 손에 붙이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이 십분의 일을 드린 노략물은 아브라함 스스로가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대적을 아브라함의 손에 붙이심으로 노략물을 얻을 수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그 싸움에서 이기고 오는 아브라함에게 떡과 포도주를 멜기세덱이 가지고 와서 축복을 해 주고 있습니다  

 

누구 것입니까  

대적과의 싸움에서 이기게 하신 분은 하나님입니다. 당연히 노략물은 하나님께서 이기게 하셨음으로 아브라함이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만약에 하나님께서 그 대적을 아브라함의 손에 붙이지 않았다면 아브라함은 싸움에서 이길 수도 없었고 또 이같이 노략물을 얻을 수도 없었습니다  

 

알고 나왔습니다  

살렘의 왕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이 대적에게 이길 것을 알고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누구에게 십분의 일을 주었습니까? 바로 레위의 자손 제사장들에게 주었습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십분의 일을 주는 것을 예표로 보여 주고 있습니다  

 

민수기18:21절을 보겠습니다. (227  

내가 이스라엘의 십일조를 레위 자손에게 기업으로 다 주어서 그들의 하는 일 곧 회막에서 하는 일을 갚나니  

 

레위 자손에게 주라고 말씀합니다  

이스라엘이 십일조를 드리면 그것을 레위 자손에게 기업으로 다 주어서 그들이 하는 일 곧 회막에서 하는 일을 갚게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정말 중요한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왜 레위 자손에게 주었는가를 깨닫기 바랍니다  

 

그들이 기업이 없어서입니까  

물론 그것도 하나의 이유가 됩니다. 그러나 이 십일조는 레위 자손이 회막에서 하는 일을 갚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십일조를 받아서 레위 자손들에게 주었는데 그들은 제사장입니다 그 제사장들에게 주신 이유는 그들이 하는 일 곧 회막에서 하는 일을 갚게 하기 위해서 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기업이 없어서 준 것도 맞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이 회막에서 하는 일을 갚기 위해서 주었습니다  

 

주님은 대제사장입니다  

멜기세덱의 반차를 쫓아 우리의 대제사장이라고 히브리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앞으로 하실 성전을 짓는 그 일을 갚기 위해서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이 대적을 치고 얻은 노략물 중에서 좋은 것으로 주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림자입니다   

 

회막이 무엇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레위 자손들은 이 회막에서 일을 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다는 뜻이기도 하고 또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나타내기도 했습니다. 회막에서 하는 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시는 모든 구속의 일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성막에 대해서 강의를 들었지만 그 성막 전체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습니다.

 

멜기세덱입니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입니다. 아브라함은 그 제사장에게 자기가 얻은 노략물 중에 좋은 것으로 멜기세덱에게 주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십일조를 드려서 레위 자손에게 그것을 줌으로 해서 그들이 하는 일을 갚게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말기세덱은 보이지 않는 성전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레위 자손들은 보이는 성전을 위해서 일을 했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하는 일 곧 회막에서 하는 일을 갚아 주었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갚아 주었지만 그것은 이스라엘이 십일조를 내서 갚게 하셨습니다. 주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직접 성전이 되신 자기를 짓는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레위 자손들은 자기들의 손으로 지은 성전을 섬기는 일을 했습니다.  

 

성전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주님께서는 사람의 손으로 짓지 않은 하늘의 성전에 들어가셨습니다. 그 성전에서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있습니다. 그 생명에 대해서 아브라함이 십분의 일을 드려서 갚았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자기들이 손으로 지은 회막에서 일하는 레위인들에게 갚아 주었습니다  

 

무엇을 주셨습니까  

그것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습니다. 그 생명을 준 것을 다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생명을 주었습니다. 그것을 상징하는 것으로 아브라함은 노력물에서 좋은 것으로 십분의 일을 주었고 이스라엘은 레위 자손이 회막에서 일을 함으로 해서 생명을 얻게 해 줌으로 해서 십일조를 드림으로 해서 그들이 하는 일을 갚아 주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늘의 제사장입니다   

그리고 레위 자손은 이 땅에 제사장입니다. 주님이 대제사장이 되셔서 하나님 우편 보좌에 계심으로 해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있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그것을 갚기 위해서 멜기세덱에게 노략물 중에서 좋은 것으로 십분의 일을 주었고 이스라엘은 제사장인 레위 자손들에게 십일조를 드렸다는 말씀입니다   

 

그들이 하는 일 곧 회막에서 하는 일을 갚아 주었습니다.

그것의 실체는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하신 모든 일들입니다 레위인들이 회막에서 하는 일은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하신 모든 일을 섬기는 일이었습니다. 그것을 이스라엘의 십일조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갚아 주셨습니다  

 

육의 일이 아닙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영의 일에 대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성경을 문자 그대로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근체의 십일조를 드렸고 자기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면서 그것에 대한 자부심이 너무도 대단했던 것을 바리새인의 기도를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문자 그대로를 보면 십일조를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초등학문을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영의 비밀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저 문자로 기록이 되어 있는 대로 십일조를 한다는 것은 한 마디로 이 세상의 초등학문입니다 그것이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고 그대로 하는 것은 이 세상 사람도 성경을 보면 하게 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십일조가 무엇입니까  

레위 자손들이 회막에서 하는 일을 갚아 주는 것입니다. 그것은 다시 말해서 멜기세덱에 이 세상에 오셔서 보이지 않는 성전의 대제사장의 일을 갚아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보이지 않는 성전에서 대제사장으로 지금도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그것을 갚기 위해서 아브라함은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고 이스라엘은 래위인들에게 십일조를 드렸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민수기18:6-7절을 보겠습니다. (226)

보라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너희 형제 레위인을 취하여 내게 돌리고 너희에게 선물로 주어 회막의 일을 하게 하였나니 너와 네 아들들은 단과 장 안의 모든 일에 대하여 제사장의 직분을 지켜 섬기라 내가 제사장의 직분을 너희에게 선물로 주었은즉 거기 가까이 하는 외인은 죽이울지니라  

 

제사장입니다   

주님도 제사장이고 레위인도 제사장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늘의 참 장막에 있는 멜기세덱에게 십분의 일을 주었고 이스라엘은 하늘의 모형과 그림자인 회막에서 일하는 제사장들에게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이 제사장이 하는 일이 무엇인가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제사장이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회막을 섬기는 일입니다 그것은 다시 말해서 이 회막을 통해서 이스라엘에게 생명을 주는 일입니다. 죄인인 이스라엘이 이 회막을 통해서 생명을 얻게 하는 일을 하는 것이 바로 제사장의 직무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하늘의 대제사장으로 오셔서 그 일을 하셨습니다. 이 시대는 제사장의 직무를 모르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제사장이 하는 일이 있습니다  

먼저 죄인이 오면 죄인의 죄를 양에게 전가를 하고 그 양을 번제단에서 불살라서 번제로 드림으로 해서 그의 죄가 사함을 받는 것입니다. 그 일을 이스라엘의 제사장들은 육적으로 했고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오셔서 당신 스스로가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해서 이 세상 모든 죄를 지고 가셨습니다  

 

이 시대 성도는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왕 같은 제사장이 무엇을 해야 하는 줄을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제사장이 회막에서 섬기는 일을 했지만 그들은 영의 일을 모르고 그저 육적으로 율법에 따르는 제사장의 직분을 행하기만 했습니다. 번제단에서 제사를 드리면서도 그것이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것만 모른 것이 아닙니다  

성막에서 섬기는 일을 다 몰랐습니다. 물두멍에서 수족을 씻으면서도 왜 씻는 줄을 모르고 또 진설병 상에서 내려오는 떡을 먹으면서도 그것이 주님의 살이라는 것을 몰랐고 등대의 불을 켜면서도 그것이 주님께서 참 빛이라는 것을 몰랐고 분향단에서 향을 피우면서도 그것이 주님의 기도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제사장이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그 일들을 백성들에게 가르쳐 주는 것이 제사장의 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깨닫지를 못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일을 하는 제사장들에게 갚아 주기 위해서 십일조를 드리게 하셨는데도 그것은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하는 구속의 일을 갚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성도는 왕 같은 제사장입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영적인 이스라엘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도 역시 자기들이 해야 하는 일을 모르고 이스라엘과 마찬가지로 그저 행위에 빠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의 문자를 보고 영의 일을 모르면 그는 반드시 사망에 이르게 되어 있습니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나는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서 너희의 친족인 레위 사람을 너희에게 줄 선물로 선택하였다. 그들은 회막 일을 하도록 나 주에게 바쳐진 사람들이다. 그러나 제단과 관련된 일이나 휘장 안에서 일을 하는 제사장 직무는, 너와 너에게 딸린 아들들만이 할 수 있다. 너희의 제사장 직무는, 내가 너희만 봉사하라고 준 선물이다. 다른 사람이 성소에 접근하면, 죽임을 당할 것이다."

 

제사장입니다.  

하나님께서 레위 자손을 이스라엘의 선물로 택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레위 자손들은 회막에서 일을 하도록 나에게 바쳐진 사람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레위 자손이 회막에서 일을 하는 것은 이스라엘에게는 선물이라는 말씀입니다.

 

제사장 직무는 선물입니다   

그런데 이 선물은 누구를 위해서 주었는가 하면 바로 이스라엘을 위해서 주었다는 말씀입니다. 이 선물들이 일을 하게 하기 위해서 이스라엘에게 십일조를 드리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 십일조를 말씀하고 있는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지금 이 시대 이 십일조의 문제로 거의 모든 사람이 사망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문자입니다   

문자로 보고 십일조를 했던 바리새인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칭찬을 하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책망을 하셨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문자 그대로 십일조를 하면서 한껏 높아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 시대 역시 사람들이 이 십일조를 문자 그대로 하면서 자기들이 마음을 부자로 만들고 있습니다  

 

선물입니다  

무슨 선물입니까? 회막에서 일을 하는 그들이 이스라엘에게 무슨 선물이 되었습니까? 회막에서 일을 하는 그들은 이스라엘에게 선물이 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저주가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이스라엘에게 선물로 주셨지만 이 제사장들이 자기가 해야 하는 직무를 몰랐기 때문에 그 선물이 오히려 저주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 무엇입니까  

물론 은사도 하나의 선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주신 가장 큰 선물은 바로 영생이고 천국이고 또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영혼 구원이라는 선물을 주시기 위해서 이 성경을 기록하게 하셨고 또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대제사장으로 오셨다는 말씀입니다. 바로 그것이 성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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