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18:31절을 보겠습니다. (신 180쪽)
“빌라도가 가로되 너희가 저를 데려다가 너희 법대로 재판하라 유대인들이 가로되 우리에게는 사람을 죽이는 권이 없나이다 하니”
종교입니다
우리는 종교에 대해서 바로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보고 있는 종교는 이미 성경에 예언이 되어 있는 그대로 그들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구약 성경을 보아도 이스라엘은 대대로 하나님을 믿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오해를 합니다.
표면적으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종교에 들어가면 마치 자기들이 하나님을 믿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보내셨을 때 언제 한번이라도 그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성경입니다
사람들은 종교에서 말을 듣는 것을 마치 성경을 보고 하나님 말씀을 아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성경의 문자를 보고 아는 것으로 그대로 이야기를 하니까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인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종교는 이 세상사람 누구나 성경을 보고 아는 것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종교는 세상 철학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 나라에 대한 말씀을 전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의 철학과 하나님 나라의 말씀을 듣는 것은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사람들은 종교에서 대제사장이 있고 종교인들이 있고 하면 그들이 하는 말을 듣고 마치 성경말씀을 듣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종교에서 말을 하는 선과 악입니다
그리고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선과 악입니다. 전혀 다르다는 것을 우리는 바로 알아야 합니다. 종교에서 말을 하는 선과 악은 이 세상 사람들의 철학으로 이 세상 다른 종교에서 말을 하는 선과 악에 대해서 하는 말과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성경입니다
주님께서 말씀을 하십니다.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주님의 말씀을 듣고 이 선과 악에 대해서 당시 유대인들이 그러니까 종교인들이 전혀 알아듣지를 못했으며 이방의 종교인들 역시 주님께서 말씀을 하시는 선과 악에 대해서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선입니다
하나님 한 분 만이 선하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선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나타내신 독생하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분이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가 영생을 얻을 수 있는 선한 일을 이루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우리 성도는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해서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아 믿음으로 역사를 하는 일이 선하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선입니다
자기들의 행위로 선한 일을 하는 것을 말을 하고 있고 이방의 종교인들 역시 그 안에서 행위로 선한 일을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것을 선하다고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영생을 얻는 일에 있어서 악하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인생의 철학으로는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유대인들입니다
그들이 왜 예수 그리스도를 잡아서 십자가에서 죽이려고 하고 있습니까? 그들도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려고 빌라도의 법정으로 끌고 가는 것은 그들이 알고 있는 선과 주님께서 행하시는 선이 전혀 다르기 때문에 주님을 죽이면서까지 당당하게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종교인들입니다
당시 로마 시대가 아니라면 유대인들은 그냥 돌로 쳐 죽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로마에 의해서 지배를 받고 있고 사람을 죽이는 권한이 유대인들에게는 없었기 때문에 율법에 기록이 되어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돌로 쳐 죽이지를 못해서 빌라도의 법정으로 끌고 가고 있고 그것은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그대로 응하게 하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모든 성경이 주님에 대해서 증거를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미 우리는 요한복음 5장에서와 그리고 17장에서 보았습니다. 그냥 막연하게 유대인들이 주님을 십자가에 죽인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그대로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종교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영생을 얻는 일의 싸움입니다. 종교에서 말을 하고 있는 선과 악은 복음으로 말씀을 하고 있는 선과 악과는 전혀 다르기 때문에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경을 보아도 사도들이 유대인들과 그리고 로마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고 있습니다.
원수입니다
그들이 주님을 고소할 때는 인생들의 철학에 따르는 선과 악에 대한 기준이 있었기 때문에 고소를 하고 있습니다. 앞에서 말씀을 한 그대로 사실은 대제사장이 권한이 있으면 그가 재판을 해서 얼마든지 죽일 수 있지만 성경말씀을 응하게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유대인들입니다
그들은 성경을 문자 그대로 보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그들에게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천국복음을 전파를 하셨습니다. 그것으로 끝이 난 것이 아니라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고 율법을 지키는 일을 반대를 하셨고 또 주님께서는 스스로 하나님과 동등하시다는 것을 말씀을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믿는 유대인들에게 주님께서 내가 아버지와 동등하시다고 하고 또 아버지와 나는 하나라고 말씀을 하시니까 그리고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방법으로 병자들을 고치는 것을 보면서 더구나 율법을 지키지 않는 주님을 보면서 행악자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종교인들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그들의 말과 같이 행악자로 보였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영생을 얻는 일에 있어서는 자기들이 행악자이면서도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지 못하니까 우리에게 생명을 얻게 하시는 선한 목자이신 주님을 빌라도의 법정에 고소를 하면서 행악자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종교 안에 있습니다.
성경의 문자는 잘 알고 있지만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지 못해서 스스로가 행악자인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도 역시 자기들이 미련한 자가 되어서 행악으로 낙을 삼으면서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자기들의 철학으로 성경을 보면서 진리를 전하는 사람을 도리어 행악하는 자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미련한 자들입니다
종교 안에 있는 절대 다수는 다 미련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미 초기 교회 안에는 그런 미련한 자들이 들어와 있었고 사도들이 죽은 후에는 이방의 교회는 미련한 자들이 이 세상의 지혜를 가지고 행악으로 낙을 삼으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얼마나 안타깝습니까?
평생을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종교 안에서 미련한 자로 살아가면서 행악으로 낙을 삼고 있습니다. 그들을 사도 바울은 비유적으로 말씀을 하면서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손할례당을 삼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선한 목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엇에 대해서 선한 목자이신가 하면 우리 양들을 위해서 자기 목숨을 버리시는 일에 대해서 선한 목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종교인들은 인생의 철학으로 율법을 지키면서 행악자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빌라도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그를 데리고 가서, 당신들의 법대로 재판하시오." 유대 사람들이 "우리는 사람을 죽일 권한이 없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성경대로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보고 영생을 얻는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성경을 기록하게 하신 목적은 우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기 위해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시고 우리 인생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해서 성경을 보고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아 믿음으로 역사를 하게 하기 위해서 이 성경을 주셨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창조하신 목적입니다
영생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 인생은 주의 말씀에 비추면 그저 지나가는 그림자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사도 베드로는 들의 풀의 꽃과 같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런 우리 인생들에게 성경을 주셨고 이제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해서 주님의 말씀과 같이 거듭나는 일을 믿게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경말씀입니다
인생의 언어로 기록이 되어 있는 성경이 아니라 그 성경에서 반드시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지 못하는 종교는 지금 대제사장과 같이 교회 안에서 하나님을 믿어야 하는 일을 세상의 일로 만들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령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성령을 구하려면 반드시 먼저 유월절을 먹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먼저 복음을 전하는 사람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래서 사도 바울이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서냐 듣고 믿음으로서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입니다.
17장3절에서 영생에 대해서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가장 기초가 되는 말씀이지만 이방인들 역시 이 말씀을 보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고 유대교의 대제사장이라고 하는 사람 역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지 못하니까 자기 땅에 오신 독생하신 하나님을 빌라도의 법정에서 고소를 하고 있습니다.
이사야33:22절을 보겠습니다. (구 1006쪽)
“대저 여호와는 우리 재판장이시요 여호와는 우리에게 율법을 세우신 자시요 여호와는 우리의 왕이시니 우리를 구원하실 것임이니라”
재판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다보면 자기 의도와는 상관이 없이 재판에 휘말리게 될 때가 있습니다. 물론 평생을 살면서도 재판한번 받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남의 재판에 휘말리지도 않고 편하게 살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참으로 이 세상에서 복을 받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재판입니다
특히 남의 재판에 끼어드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영화 같은 것을 보면 실제를 바탕으로 한 영화에서 증인이라는 소재의 영화가 많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실제 그런 책도 보았고 영화도 본 기억이 있습니다.
내가 관여된 일입니다
그렇다 해도 재판을 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재판이라는 것이 어떻게 진행이 될지를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가능한 재판을 하지 않는 것이 옳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육적으로 이런 재판에 나도 모르게 말리게 되는 일이 있고 그런 일이 없다는 것만으로도 인생을 사는데 있어서 그래도 평안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영적인 말씀입니다
그러나 육적으로 생각을 해도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능한 재판을 하는 것도 옳지 않다고 생각을 하고 있고 설령 그런 일이 생긴다 해도 우리 성도는 세상의 일을 가지고 재판을 하지 않는 것이 옳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재판,
특히 우리 성도는 재판에 대해서 생각을 해야 하고 가능한 재판을 하지 않고 있고 주님의 말씀과 같이 이 세상의 일이라도 재판에 휘말리는 일이 있으면 내가 조금 손해를 보는 한이 있더라도 재판을 하지 않고 서로 타협을 하고 끝을 내는 것이 옳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빌라도입니다
그는 당시 총독이었고 재판의 권한이 있었던 사람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당시 유대 지방의 총독이었기 때문에 당시 유대 지방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모든 정보를 다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고 해야 맞습니다. 오늘날과 같은 시대가 아니라 당시는 모든 것이 소문에 의해서 전해지고 있던 시대이기 때문에 한 지방의 총독으로 있으려고 하면 사소한 일까지 다 알고 있어야 했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빌라도라는 사람이 그래도 당시 유대 지방의 로마의 총독이었습니다. 그렇게 무지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적으로 어느 정도 지혜가 있었고 그래서 이 사람은 당시 유대 지방의 일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알고 있었고 자기가 관여를 해야 하는 일과 하지 말아야 하는 일에 대해서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총독 아무나 하지 않습니다.
한 나라를 운영하고 더구나 로마라는 거대한 나라를 운영을 하고 각 지방에 총독을 세울 때는 그래도 어느 정도 신망이 있는 사람을 세워야 나라가 잘 운영이 될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왕이라고 해도 나라를 잘 운영을 하려면 가까운 사람보다는 지혜롭고 한 지역을 잘 다스려 줄 사람을 총독으로 삼는 것이 편하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종교입니다
지난 시간에도 말씀을 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는 이유를 바로 알아야 하고 또 하나님을 믿는 목적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 유대교라는 종교는 자기들이 왜 하나님을 믿고 있는가를 전혀 모르고 있다는 것을 이 말씀에서 쉽게 깨달을 수 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왜 요한복음에서 이 말씀을 하고 있는가 하면 경계가 되게 하기 위해서 이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지난 시간에도 보았지만 율법에도 재판이라는 말씀이 있고 재판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인생의 언어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재판입니다
모세가 신명기에서 재판은 하나님께 속한 것인즉 너희는 재판에 외모를 보지 말고 귀천을 일반으로 듣고 사람의 낯을 두려워 말 것이며 스스로 결단하기 어려운 일이거든 내게로 돌리라 내가 들으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재판은 하나님께 속했다고 하는 말씀은 우리가 영생을 얻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이제 우리 성도는 충분히 깨닫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인생들이 성경을 보고 있지만 그 기초가 안 되어 있습니다. 주님께서 17장에서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시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종교입니다
그들은 성경을 보고 있지만 기초가 전혀 안 되어 있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영생에 대한 말씀을 모르니까 어떻게 하고 있는가 하면 로마라는 세상의 빌라도의 법정에 주님을 고소를 해서 재판을 하게하고 있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빌라도입니다
너희가 저를 데려다가 너희 법대로 재판하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빌라도를 통해서 유대인들이 고소를 해서 재판을 하고 있는 이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유대교인들은 성경을 모르니까 우리에게는 사람을 죽이는 권이 없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입니다
언제 우리에게 사람을 죽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물론 성경의 문자입니다. 민수기32장에서 이스라엘이 안식일에 어떤 사람이 나무하는 것을 발견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나무하는 자를 발견한 자들이 그를 모세와 아론과 온 회중의 앞으로 끌어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 사람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을 반드시 죽일찌니 온 회중이 진 밖에서 돌로 그를 칠찌니라 온 회중이 곧 그를 진 밖으로 끌어내고 돌로 그를 쳐죽여서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입니다
이방의 종교인들은 십계명을 지켜야 한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안식일이 변해서 이제 주일이 되었다고 하면서 주일 성수라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종교 안에서 주일에 불을 피우는 일을 했다고 해서 온 회중이 돌로 치지는 않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의 교리대로라면 당연히 돌로 쳐 죽여야 하지만 그들은 실제 그렇게 하지 않고 있습니다.
세상이 변했습니다.
그런 이유도 있고 종교성이 강하지 않은 것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일이라는 날을 지키지 않는 것으로 사람을 돌로 쳐 죽이는 일을 한다는 것은 도리어 그 종교의 세력을 키우는 일에 있어서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이방인들은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니 어쩌면 서로 모르는 척을 한다고 해도 틀리지가 않습니다.
우리 성도입니다
이 말씀의 영적인 의미를 이제는 충분히 깨닫고 있습니다. 실제 안식일이 아니라 안식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성도는 안식이라는 날과 그리고 주일이라는 날도 지키지 않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바로 이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시면 민수기의 말씀을 보고 우리 성도는 이 말씀은 비유와 경계가 되는 말씀이라는 것을 깨닫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성도가 안식에 들어가지 못하는 일을 비유로 해서 이 사람을 대표로 해서 돌로 쳐 죽였다는 것을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의 의미를 모르는 사람들은 민수기의 말씀을 보면서도 이것이 무슨 말씀인가를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빌라도입니다
그는 주님을 재판하는 일을 거절을 하고 있고 유대교인들에게 너희가 재판을 하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방인을 통해서 유대교인들에게 말을 하고 있지만 유대교인들은 성경을 전혀 모르기 때문에 재판을 자기들이 할 수 없다고 하면서 사람을 죽이는 권이 없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입니다
이스라엘의 구원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육적인 구원을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 이스라엘의 구원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이스라엘이 바벨론의 포로가 된 후에 구원을 받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20절부터입니다
새번역에서는 우리가 마음껏 절기를 지킬 수 있는 우리의 도성 시온을 보아라. 옮겨지지 않을 장막, 예루살렘을 보아라. 우리가 살기에 얼마나 안락한 곳인가? 다시는 옮겨지지 않을 장막과도 같다. 그 말뚝이 영원히 뽑히지 않을 것이며, 그 줄이 하나도 끊어지지 않을 것이다. 거기에서는 주님께서 우리의 능력이 되시니, 그 곳은 마치 드넓은 강과 시내가 흐르는 곳 같겠지만, 대적의 배가 그리로 오지 못하고, 적군의 군함이 들어올 엄두도 못낼 것이다. 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입니다
이 세상에 있는 땅 예루살렘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새 하늘과 새 땅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고 대저 여호와는 우리 재판장이시요 여호와는 우리에게 율법을 세우신 자시요 여호와는 우리의 왕이시니 우리를 구원하실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이렇게 창조하신 일의 영광을 우리가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게 선지자들로 기록하게 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나 인생들은 창조하신 일의 영광으로 성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마치 이 세상의 일로 성경을 보고 있고 그런 그들이 지금 종교가 되어서 빌라도의 법정에 주님을 고소를 해서 재판을 해 달라고 하고 있습니다.
재판입니다
성경에서 이 단어가 많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재판을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교회고 그 교회 안에 있는 일을 이사야 선지자가 대저 여호와는 우리 재판장이시요 여호와는 우리에게 율법을 세우신 자시요 여호와는 우리의 왕이시니 우리를 구원하실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생입니다
그런데 이 영생을 얻는 일을 종교는 세상 법정으로 가져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누가 종교인가를 바로 알아야 하고 종교가 어떻게 하고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영생을 얻는 일을 세상일과 같이 만들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구원입니다
우리가 영생을 얻는 일을 비유로 해서 이사야 선지자가 계속해서 너의 돛대 줄이 풀렸었고 돛대 밑을 튼튼히 하지 못하였었고 돛을 달지 못 하였었느니라 때가 되면 많은 재물을 탈취하여 나누리니 저는 자도 그 재물을 취할 것이며 그 거민은 내가 병들었노라 하지 아니할 것이라 거기 거하는 백성이 사죄함을 받으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주님께서 우리가 성경을 보는 목적에 대해서 분명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해서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해서 증거를 하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시면 이렇게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아 믿음으로 역사를 해서 영생을 얻는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재판입니다
세상 법정으로 가는 사람들은 종교인들이라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인생의 철학으로 재판이라는 단어를 안다고 해서 그대로 행하는 사람들은 영생을 얻을 수 없습니다. 이사야 선지자 역시 대저 여호와는 우리 재판장이시요 여호와는 우리에게 율법을 세우신 자시요 여호와는 우리의 왕이시니 우리를 구원하실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입니다
그분만이 우리의 재판장이십니다. 지금 대제사장이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을 몰라서 빌라도의 법정으로 가고 있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을 잘 알고 있지만 이 말씀은 그 당시 이스라엘에게 하는 말씀으로 성경을 보고 있기 때문에 빌라도의 법정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고 그것이 종교인들이 성경을 보는 철학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모든 성경입니다
지금 보고 있는 나에게 하고 있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고 영생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정말 부탁드리지만 성경을 보면서 이 기초적인 말씀을 망각을 하는 사람은 주님을 십자가에서 죽이려고 하는 유대인들과 같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창세기3:14절을 보겠습니다. (구 4쪽)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육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종신토록 흙을 먹을지니라”
성경입니다
그저 성경의 문자를 보는 것으로 성경을 안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구속의 일을 이루시고 있다는 것을 성경을 보고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인생들은 성경을 보는 것이 지금도 요한복음 18장만 보고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고난을 받으시는 일을 말을 하고 있습니다.
빌라도입니다.
그는 종교 재판에 끼어드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자기들에게 사람을 죽이는 권한이 없다고 하면서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그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죽이고자 하고 있습니다. 당시 유대교의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일을 창조를 하시고 우리에게 나타내시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나타내신 독생하신 하나님이심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이 세상에 오셨는가는 우리에게 길로 보여주시기 위해서 오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0장에서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목숨입니다
우리 인생의 형체를 입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그 목숨을 버리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일이 성경대로 이루신다는 것을 우리는 바로 알아야 하고 성경에서 증거를 받아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로마입니다
물론 종교를 대표로 하는 나라가 바벨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벨론 이후에 나타나는 나라들은 다 종교를 비유로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실제 이 로마라는 나라를 통해서 이방의 종교가 세워지는 것을 우리가 역사를 통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항상 창조를 생각을 하면서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마치 인류사를 보는 것과 같이 성경을 보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혀 깨달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빌라도의 법정은 로마의 법정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고 이 로마가 물론 지금은 종교를 핍박을 하고 있지만 창조하신 일의 영광에서 보면 그들이 313년에 종교를 공인을 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종교입니다
유대교도 그렇고 로마라는 나라도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철학적 사상이 같기 때문에 결국에는 이 로마라는 나라가 종교를 공인을 한다는 것을 역사에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모든 것을 성경에서는 두 짐승으로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빌라도입니다
너희 법대로 재판을 하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유대인들이 우리에게는 사람을 죽일 권이 없다고 말을 하고 있고 결국에는 이 로마의 빌라도의 법정에서 유대교인들의 생각과 같이 성경대로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만약입니다
로마의 빌라도가 세상이 아니라면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로마 역시 종교가 되는 것을 우리가 역사를 통해서 알고 있고 유대교의 철학과 같기 때문에 비록 빌라도가 처음에는 반대를 하는 것과 같이 말을 해도 성경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경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우리 인생들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기 위해서 선지자들로 기록하게 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나 유대교도 이 말씀을 모르고 로마라는 종교 역시 하나님의 말씀을 모르기 때문에 유대교인들의 뜻을 따라 주님을 십자가에서 죽게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표입니다
주님은 우리 인생들의 대표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대표로 하고 있는가 하면 주님께서 먼저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는 일에 있어서 대표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일을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서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사망이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이 한 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우리 인생의 시간으로는 분명히 2000년 전에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장시 지내시고 삼일 만에 영으로 부활하시고 사십일 동안 제자들에게 보이시다가 하나님 나라에 올라가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인생의 시간적 사실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입니다
요한복음 17장4절에서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아버지여 창세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시는 일이라는 것을 주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창세기에서 이미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담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 먹고 난 후에 하나님께서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육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종신토록 흙을 먹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을 죽일 권한입니다
우리 인생에게는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창세기에서 아담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 먹고 난 후에 사단을 비유로 하는 뱀이 흙을 먹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담에게는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대표성입니다
우리 인생이 누구에 의해서 죽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종교에 의해서 지금 죽임을 당하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뱀은 사단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사단이 짐승에게 그러니까 종교에게 권세를 주었다고 요한계시록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창세기의 말씀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육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종신토록 흙을 먹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인생들이 사단에 의해서 죽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 사단이 이 세상에 종교에게 권세를 주고 그 종교에 의해서 주님께서 대표로 해서 죽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입니다
인생이 인생을 죽일 수 있는 권이 없습니다. 물론 성경에서는 살인이라는 말씀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고 가인이 아벨을 죽였다는 말씀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본래는 사람이 사람을 죽일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대표로 해서 종교의 권세에 의해서 그러니까 사단에게 죽임을 당하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단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육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종신토록 흙을 먹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으로 부활을 하시는 일을 이루신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우리 인생의 육체가 종교에 의해서 죽임을 당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종교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는 일을 대표로 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이 죽임이 있음으로 해서 우리가 생명을 얻는다는 말씀입니다.
종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종교를 이렇게 쓰시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모든 성경은 이렇게 창조하신 일의 영광을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인생들은 성경을 보면서도 이것이 무슨 말씀인지를 전혀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반드시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신 우리 성도만이 창조하신 일의 영광을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의로우신 분입니다. 유대인들의 말 그대로 그들에게는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를 죽을 수 있는 권이 없습니다. 창조하신 일의 영광에서 보면 그렇다는 말입니다. 누가 죽일 수 있는가 하면 사단이 죽일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바로 알아야 합니다.
물론 압니다.
성경에서 사람을 죽이는 일이 많이 있다는 것을 저 역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대표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서도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같이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반드시 성경대로 이루어진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음 절에서도 이는 예수께서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가리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그대로 이루어지는 일이라는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종교입니다
그들을 짐승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짐승이 우리 인생들을 죽인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창세기의 말씀과 같이 흙을 먹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육체를 버리시고 영으로 부활을 하신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창조하신 일의 영광입니다
유대인들의 말을 잘 이해를 해야 합니다. 우리 인생들은 인생들을 죽일 수 있는 권이 없습니다. 그래서 헬라어를 보면 가능하다, 합법적이다, 타당하다는 뜻이 있습니다. 누가 이 일을 할 수 있는가 하면 흙은 짐승이 먹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그저 주님께서 로마에 의해서 십자가에서 죽는 것으로 성경을 보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분은 이 세상에 오셔서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영화롭게 하시는 일을 이루시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이 일이 있음으로 해서 우리가 죽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인생입니다
다 종교에 의해서 죽임을 당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거대한 종교든 샤머니즘이든 이 세상의 철학은 종교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종교에서 우리를 하나님께서 꺼내 주기 위해서 성령을 보내주시고 있고 우리가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아 믿음으로 역사를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경을 문자를 보고 사실 관계로 아는 것이 아니라 우리 성도는 반드시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next 26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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