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1:3.)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5)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요한복음 강해

265-2, 또 부인하니 곧 닭이 울더라

윤주만목사 2025. 1. 12. 21:36

요한복음18:27절을 보겠습니다. (180)

이에 베드로가 또 부인하니 곧 닭이 울더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베드로가 다시 부인하였다. 그러자 곧 닭이 울었다.”

 

사도 베드로입니다

마태복음에서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사도 베드로가 가로되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 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우리가 요한복음을 보아서도 알겠지만 사도 베드로는 말고의 귀를 검으로 베어버리고 있고 지금 대제사장의 집에까지 와서 주님께서 어떻게 되는가를 보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또 말씀하십니다.

그런 사도 베드로에게 네가 오늘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사도 베드로는 더 강하게 가로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이와 같이 말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입니다

그가 거짓을 말하고 있습니까? 그는 정말 주님께서 죽으실 때 같이 죽어야 한다고 했다면 인간적으로라도 그것을 받아들였을 것이라고 저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의 성격으로 보았을 때 충분히 그렇게 할 사람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사도 베드로의 생각입니다

우리 인생의 생각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제자들을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지난 삼년 반 동안 유월절을 먹이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15장의 말씀과 같이 성령이 오시면 그가 나를 증거를 하는 것과 같이 너희가 성령을 받으면 나에 대해서 증거를 할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일입니다

그리고 제자들의 일입니다. 어차피 인생은 다 죽은 자입니다. 조금 빨리 죽느냐 늦게 죽느냐 하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저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하셔야 하는 일이 있고 그리고 이제 제자들이 해야 하는 일이 있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그들을 지켜주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베드로입니다

그는 주님을 위하는 마음이 누구보다 더 컸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 그가 인간적으로 주님을 대하는 것을 보시고 주님께서는 네가 나를 세 번 부인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것은 시편에 기록이 되어 있는 말씀이기 때문에 주님께서 하셨고 실제 베드로가 그렇게 부인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입니다

우리는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그것을 인간적으로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종교 안에만 들어가면 그 종교의 교리를 따르기 때문에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철학에 따라 아는 대로 행하고 있습니다.

 

구원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들에게 왜 성령을 보내주시고 이렇게 복음을 듣게 하시고 계십니까? 바로 영생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 하나님의 뜻을 인생의 철학으로 생각을 해서는 절대로 영생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사도 베드로입니다

그가 얼마나 열정적인 사람입니까 그러나 주님의 말씀과 같이 그는 실제로 주님을 세 번이나 부인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 일로 인하여 그가 구원을 받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 일이 있음으로 해서 그는 성령이 오시고 난 후에 예수 그리스도를 성경에서 증거를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랑입니다

우리가 어떠한 사랑을 받았는가를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이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사도 베드로를 통해서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이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주님에게 주신 자를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 주님께서는 인간적으로 부인을 하는 사도 베드로를 끝까지 사랑하신다는 것을 나타내 보여주시고 있는 말씀입니다.

 

이사야53:10절을 보겠습니다. (1034)

여호와께서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케 하셨은즉 그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그 씨를 보게 되며 그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리로다

 

사도 베드로입니다

그는 주님의 제자를 대표로 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가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주님을 세 번 부인을 하고 있는 것을 사도 요한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저 단순하게 성경을 보면서 사도 베드로가 인간적으로 세 번 주님을 부인을 했다고 그리고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그대로 부인을 했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대표성입니다

1711절에서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저희는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내가 저희와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와 지키었나이다 그 중에 하나도 멸망치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멸망치 않습니다.

사도 베드로가 인생의 철학으로는 주님을 세 번 부인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이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시는 일이라는 것을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도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지켜 주신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입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허물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알 수 없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사도 베드로가 성령이 오시기 전에 그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나타내신 독생하신 하나님이심을 모르고 있고 그런 그가 부인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기록한 말씀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지금 성경에서 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도 베드로는 우리 성도를 대표로 하는 사람이고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양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하고 있지만 영생을 얻는 일에 있어서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것이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의 부인입니다

우리는 그럴 수밖에 없는 인생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태초에 있는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심으로 해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려고 하는데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구속의 일을 이루시고 있지만 우리 인생으로 깨달을 수 없는 일이고 그것이 우리의 허물이고 죄라는 말씀입니다.

 

단지 사도 베드로의 일이 아닙니다.

우리 성도 전체를 대표로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시기 전에는 허물과 죄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것이 단순히 도덕적인 일을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영생을 얻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래서 주님께서 173절에서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오시기 전입니다

우리 인생의 철학으로는 영생이 무엇이라는 것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알 수 없다는 말씀을 하고 그것이 우리의 허물입니다. 그것을 이사야 선지자는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다고 창조하신 일의 영광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입니다

그가 단순히 주님을 세 번 부인하는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일이 바로 우리의 허물과 죄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럼으로 해서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시는 일을 여호와께서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케 하셨은즉 그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그 씨를 보게 되며 그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허물입니다

사도 바울도 에베소서에서 우리의 허물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바로 우리의 허물입니다

그 허물을 위해서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여호와께서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케 하셨은즉 그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그 씨를 보게 되며 그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리라고 영생을 얻는 일을 이루신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속건 제물입니다

우리 영생을 얻는 성도를 대표로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부인할 수밖에 없는 인생이라는 것을 사도 베드로를 통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영생을 얻는 일에 있어서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고 있고 그것이 우리의 허물이라는 말씀을 하고 있고 그 허물을 위해서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서서 속건 제물로 드려지심으로 해서 우리가 태초에 있는 생명을 얻은 자 된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세 번입니다

완전수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도 베드로를 통해서 우리 영생을 얻는 성도의 허물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제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시는 일을 이사야 선지자가 여호와께서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케 하셨은즉 그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그 씨를 보게 되며 그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그 결과를 사도 바울이 에베소서에서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고 우리의 구원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십자가의 죽음입니다.

그리고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일을 이사야 선지자는 그가 그 씨를 보게 되며 그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주님께서는 우리가 태초에 있는 생명으로 하나가 되는 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세 번 부인입니다

우리의 완전한 허물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허물과 죄를 위해서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속건 제물로 드려지고 있고 그럼으로 해서 그의 씨를 보게 된다는 말씀을 하고 있고 사도 요한은 태초에 있는 영원한 생명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허물로 죽은 우리를 위해서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해서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18:28절을 보겠습니다. (180)

저희가 예수를 가야바에게서 관정으로 끌고 가니 새벽이라 저희는 더럽힘을 받지 아니하고 유월절 잔치를 먹고자 하여 관정에 들어가지 아니하더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사람들이 가야바의 집에서 총독 관저로 예수를 끌고 갔다. 때는 이른 아침이었다. 그들은 몸을 더럽히지 않고 유월절 음식을 먹기 위하여 관저 안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영생입니다

인간의 철학적 감성에 빠지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태초에 있는 생명인 영원한 생명에 대해서 분명하게 말씀을 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말씀을 하고 있지만 그 언어도 비유로 기록이 되어 있다 보니까 인생들의 지혜로는 어느 누구도 깨달을 수 없습니다.

 

종교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어떻게 하고 있습니다. 인생들이 자기들의 철학적 지식으로 이 영생을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이 아는 지식의 한계 내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말을 하는 영생과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영생은 전혀 다르지만 그저 영생이라는 단어를 성경에서 보고 자기들이 영생을 얻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영원한 생명입니다

우리 육체는 한번 죽습니다. 그리고 죽으면 하나님의 말씀과 같이 흙이기 때문에 흙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사라지고 만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주의 형제 야고보는 우리 인생을 보고 너희 생명은 잠시 보이다가 사라지는 안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헛것입니다

그림자입니다. 성경에 이렇게 문자적으로는 우리 인생이 어떠한 존재인가를 말씀을 하고 있지만 그들은 혈과 육체 사로잡혀서 그런 말씀을 불교적인 용어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도 요한에게 환상으로 하나님 나라를 보여주시고 모든 피조물이 사라진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성경을 보면서도 말씀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철학입니다

그리고 혈과 정입니다. 저 역시도 육체를 가지고 있는 인생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저 역시 신체가 구원을 받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고 그것이 좋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 육체는 썩어 없어진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의 일을 전혀 모릅니다.

영의 생명에 대해서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평생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종교 안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그들이 이 생명에 대해서 들어보지도 못하고 죽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인생의 철학에 따라 헛것 같은 육체가 죽어 장례식을 하면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갔다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입니다

말씀 그대로 하나님 나라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거룩하신 하나님이 계시는 곳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피조물들은 더럽기 때문에 들어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곳임을 말씀을 하고 있지만 종교가 되어 있는 이방의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신체가 구원을 받는다고 말을 하고 있고 그런 그들이 진리로 인도함을 받기 보다는 종교의 철학에 깊이 빠져 있습니다.

 

창조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일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 나라로 귀결이 된다는 것을 우리는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나라를 이루시기 위해서 이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또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양들로 생명을 얻게 하는 구속의 일을 이루셨습니다.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나

주님께서는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 부활을 하심으로 해서 이 세상을 이기셨다는 말씀을 선언을 해 주시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말씀을 보고도 어떻게 주님께서 이기셨는지를 모르고 있고 그리고 주님께서 세상을 이기신 것이 우리에게 어떻게 되는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그저 성경에 문자로 기록이 되어 있는 것만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십자가를 형상으로 만들어서 우상화를 시키고 있는 것이 이방의 종교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교회에다가 그리고 여러 곳에다가 장식으로도 십자가를 사용을 하고 있지만 실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주님께서 오신 목적입니다

유월절 어린 양으로 제사를 드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유월절에 양을 먹게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성경을 보면서도 그저 문자만을 보고 있습니다. 그 문자는 아는 것으로 자기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안다고 말을 하고 있고 그것을 종교는 감성적으로 이용을 하고 있고 교인들은 십자가를 보면서 그 의미도 모르고 통곡을 하면서 기도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종교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교리에 벗어나는 사람을 다 죽이고자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문자 그대로 보는 그들에게 있어서 너무도 당연합니다. 율법에도 하나님께서 돌로 쳐 죽이라고 말씀을 하셨기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에 대한 열심으로 주님을 죽이고자 하고 있습니다.

 

관정입니다

로마의 사령부라고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로마 군대에서 파견이 나와 있고 로마의 사람이 나와서 유대인들을 관할하는 곳이라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거기서 재판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대제사장들이 주님을 관정으로 끌고 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15:20절을 보겠습니다. (25)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 씻지 않은 손으로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느니라

 

더럽히다

종교적으로 볼 때 율법을 지키지 않는 것을 이야기 하는 뜻이 있는 단어입니다. 물론 요한복음에서 말씀을 하는 단어와 마태복음에서 말씀을 하는 단어는 헬라어로는 다릅니다. 그러나 그 의미는 거의 같기 때문에 이 말씀을 인용을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단어는 다릅니다.

그러나 그 뜻은 같다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성경에서 그 의미를 아는 것이 중요하지 헬라어의 단어가 맞냐 틀리냐를 가지고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어리석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마태복음은 아람어로 기록이 되었고 요한복음은 헬라어로 기록이 되다보니까 후에 번역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저는 영생입니다

영생만 얻을 수 있다면 저는 그것이 옳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지금 유대인들을 보시기 바랍니다. 자기들이 어떻게 영생을 얻는 줄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땅에 오신 독생하신 하나님을 죽이면서까지도 무엇을 하는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마태복음15장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이 시대 종교인들은 이 말씀을 보면서도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유대인들은 손을 씻고 먹어서 잘못 되었다고 하는 그들이 식사를 할 때 기도를 하고 먹으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같은 행위를 하면서도 유대인들이 하는 것은 행위가 되고 자기들을 하는 것은 행위가 아니라고 생각을 하는 것이 참으로 이해하기가 어렵지만 그것이 종교입니다.

 

성경입니다

우리가 음식을 먹을 때 기도를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아니 율법에 밥을 먹을 때 손을 씻으라는 율법이 있습니까? 성경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분명히 마태복음에서 장로의 유전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 율법이라고는 말씀을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율법에 있습니다.

아론과 그 아들들이 물두멍에서 수족을 씻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리고 유출병이 있는 자는 손을 씻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편의 말씀에서 손을 씻는 것을 말씀을 하니까 후에 장로들이 먹을 때 손을 씻는 것을 유전으로 만들었습니다.

 

장로의 유전입니다

그러니까 종교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 전해 내려오는 것으로 손을 씻는 행위를 하고 먹었다는 말씀입니다. 유전이라는 것은 언제 정했는지는 모르지만 전해서 내려오는 것을 말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바리새인들이 주님과 제자들이 잡수시는 것을 보고 당신의 제자들이 장로의 유전을 범했다고 하면서 왜 손을 씻지 않고 먹느냐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왜 손을 씻습니까?

더럽다고 생각을 하기 때문에 깨끗하게 먹기 위해서 손을 씻고 먹는 것을 그들의 유전으로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누구로부터 시작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그들은 자기들의 조상 때부터 그렇게 해 왔기 때문에 그것이 거의 율법화가 되어서 손을 씻고 먹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주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외식하는 자들아 이사야 선지자가 너희에게 대하여 잘 예언을 하였다고 말씀을 하시면서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를 한다고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손을 씻습니까?

그들은 그것이 더럽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냥 먹는 것이 더럽다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 장로의 유전으로 만들어서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주님께서는 외식하는 자들이라고 말씀을 하시면서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을 인용을 해서 사람의 계명으로 헛되이 경배를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습니까?

유대인들은 헛되이 믿는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더럽다고 생각을 하면서 손을 씻는 행위를 보면서 주님께서는 외식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것이 헛되이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유대인들은 오히려 손을 씻지 않고 먹는 것을 보고 더럽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누가 더럽습니까?

유대인들이 더럽습니까? 주님의 제자들이 더럽습니까? 먹을 때 외식을 하면서 손을 씻는 유대인들이 더럽다고 주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물로 씻지 않고 손으로 먹는 그 음식이 더러운 것이 아니라 물로 씻고 음식을 먹는 장로의 유전이 더럽다고 주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유대교입니다

그리고 이방의 종교입니다. 유대교인들은 먹을 때 손을 씻고 먹고 있습니다. 왜 손을 씻고 먹는가 하면 더럽다고 생각을 하기 때문에 손을 씻고 있는데 그것이 장로의 유전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방인들은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물론 더러운 것을 깨끗하게 하기 위해서 기도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은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를 하고 나서 음식을 먹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유대인들에게 무엇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외식하는 자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외식입니다

겉을 보기 좋게 꾸미는 것을 외식이라고 사전에서 말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외식이라는 단어를 잘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유대인들이 손을 씻고 먹는 것을 외식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겉으로 손을 씻는 행위를 하는 것을 외식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철학으로 하나님을 믿는 백성과 같이 보이는 행위가 외식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손을 씻습니다.

그리고 기도를 합니다. 기도는 속으로 합니까? 기도도 겉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손을 씻는 것도 사람이 볼 수 있는 것이고 기도를 하는 것도 겉으로 보이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종교에만 들어가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저 역시 그랬습니다.

저도 종교에 있을 때는 먹을 때 기도를 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을 했습니다. 아니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라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타내는 것을 때로는 자랑스럽게 생각을 했고 종교인이 아닌 사람들과 식사를 할 때도 당당하게 기도를 하고 먹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주님께서 그것을 외식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께 먹을 것을 주셔서 감사를 했더라도 그것 역시 외식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는 것을 우리는 바로 알아야 합니다. 물론 우리 성도님들은 벌써부터 이 외식하는 행위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의 행위입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우리의 의는 더러운 옷과 같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겉으로 나타내는 모든 행위가 더럽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더러운 행위를 유대인들은 손을 씻고 음식을 먹었고 이방의 종교인들은 음식을 앞에 두고 기도를 하고 먹고 있습니다.

 

식사 기도입니까?

유대인들이 손을 씻고 먹는 것과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그것을 외식하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렇게 외식을 하는 자는 입술로는 하나님을 존경을 하고 있지만 마음은 내게서 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외식을 합니까?

그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식사를 하기 전에 외식을 하면서 기도를 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를 하는 자들을 주님께서는 입술로는 존경을 하되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피조물입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행위는 다 더럽습니다. 우리가 기도를 하든 찬양을 하든 모든 것이 다 더럽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오직 무엇만 깨끗한가 하면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루신 구속의 일만 깨끗하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입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을 깨끗하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방의 종교인들 역시 율법을 지키는 것을 보고 깨끗하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렇게 행위를 하는 유대인들에게 외식하는 자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종교인들입니다

그들은 외식하는 것을 좋아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믿음의 비밀을 모르기 때문에 그렇게 외식하는 행위를 함으로 해서 자기들이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을 나타내고자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런 그들에게 외식하는 자들이라고 말씀을 하시면서 입술로는 주여 주여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지만 실상은 믿지 않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외식입니다

유대인들이 식사를 하기 전에 손을 씻고 먹는 것 외식이라고 주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방의 종교인들이 식사를 하기 전에 기도를 하는 것 역시 외식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더러운 행위를 하면서 입술로만 주여 주여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것이 종교인들입니다.

 

고린도전서5:7절을 보겠습니다. (268)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어 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

 

더럽습니다.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그렇게 외식을 하느라 무엇이 더러운 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은 영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지만 그들은 문자적으로 보면서 율법을 지키고 있고 외식을 하면서 자기들의 행위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외식하는 자입니다

주님께서 마태복음23장에서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여 7번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겉으로 나타나는 행위를 하는 그것이 율법이든지 장로의 유전이든지 종교의 교리든지 사람이 행위를 하면서 나타나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화가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무엇이 더러운 것인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들만 모르는 것이 아니라 이방의 종교인들 역시 무엇이 더러운 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 더러운 것에 대해서 많이 말씀을 하고 있지만 소경이 되어서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입니다

그들이 외식을 했으면 이방인들 역시 외식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방인들은 유대인들은 먹을 때 손을 씻고 먹어서 외식이라고 하고 있고 자기들은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를 하고 먹어서 외식이 아니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가끔 종교인들을 만납니다.

요즘은 거의 만날 일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볼 때마다 기도를 하는 것을 보면서 정말 한 마디라도 가르쳐 주고 싶지만 마태복음15장의 유대인들과 같이 도리어 제가 이상한 사람이 되는 것 같아 그만두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아무리 말씀을 바로 전해도 자기들이 하는 기도가 외식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유월절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유월절에는 어린 양과 무교병과 쓴 나물을 먹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 역시 유대인들은 실제 율법에 기록이 되어 있는 그대로 먹는 것이 깨끗하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유월절 어린 양으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성경을 보아서 잘 알고 있지만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떡을 떼어 주시면서 이것은 너희는 위하는 내 살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성경에서 알고 믿는 것이 유월절을 먹는 일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더럽습니까?

그리고 무엇이 깨끗합니까?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에서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어 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성경에서 진리로 인도함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아 믿는 것이 유월절을 먹는 일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행위입니다

율법을 지키는 행위입니다. 그것이 더럽다고 이사야 선지자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그런 율법의 행위를 하는 것이 더럽지 않게 유월절을 먹는 것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유월절을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유월절에 대해서 성경은 분명히 말씀을 해 주고 있는데도 유대인들도 더럽게 율법을 지키고 있고 이방의 종교인들은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거를 받지 않고 역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입니다

새 덩어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율법을 지키지 않고 있다는 것을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분명히 율법을 지키지 말라고 누룩 없는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도 이방의 종교인들 역시 종교 안에서 율법을 지키는데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유월절입니다

우리 성도는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떼어 주시는 누룩 없는 떡을 먹고 있습니다. 어떻게 먹고 있는가 하면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해서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거를 받고 있고 그럼으로 해서 우리는 새 덩어리가 새 생명을 얻은 자 되었다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next 26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