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18:32절을 보겠습니다. (신 180쪽)
“이는 예수께서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가리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이렇게 하여, 예수께서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인가를 암시하여 주신 말씀이 이루어졌다”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저는 늘 성경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다른 사람들도 역시 성경에 대해서 강조를 하는 것으로 알고 있고 그런 사람들이 꽤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이야기를 하는 성경과 제가 말씀을 하고 있는 성경은 전혀 다릅니다.
성경입니다
우리가 보고 있는 텍스트가 성경입니까? 그것은 성경이 아니라 이 세상 초등학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편집이 되어 있는 문자로 기록이 되어 있는 책을 보면서 성경을 본다고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데 그것은 성경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제가 아무리 이렇게 말씀을 해도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시지 않으면 깨달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성경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도 바울의 말씀과 같이 이 세상 초등학문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쉽게 말씀을 해서 유대인들이 보고 알던 것은 성경말씀이 아닙니다. 그들은 율법을 보았지만 모세의 율법을 인생들의 철학에 따라 보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마치 무엇과 같습니까?
살인하지 말라는 십계명을 보았습니다. 그러면 이 세상 모든 사람이 그 말씀을 보고 인생의 육체를 살인을 하는 것으로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그렇게 성경을 보는 사람들을 사도 바울이 철학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제까지 유대교도 그렇고 이방의 종교도 철학으로 보면서 인생이 인생을 살인하는 것으로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모세의 율법에서 살인하지 말라는 말씀은 영생을 얻는 일에서 영생을 얻지 못하게 하는 일이 마치 육체를 살인을 하는 것과 같다는 의미에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인생들은 그저 살인이라는 단어만 보고 있지 영생을 얻는 일을 생각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모세의 율법입니다
인생들이 생각을 하는 성문법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법이 아닙니다. 그래서 스데반 집사가 생명의 도라고 그러니까 영생을 얻는 일을 말씀을 했다는 것을 사도행전에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인생의 언어로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로만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이 말씀합니다.
아들과 같은 디모데에게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디모데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보았는데 디모데는 그 성경에서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알았습니다.
누가 성경을 보고 있습니까?
이 시대 누가 성경을 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이 시대 종교인들은 유대인들과 같이 이 세상 초등학문을 보고 있습니다. 유대인이 보는 성경입니다. 영생을 얻는 일에 있어서 자기들이 행악자이면서도 주님을 보고 행악자라고 하면서 고소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뭐 합니까?
누가 악한 자인가를 모르고 있다면 그는 성경을 볼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 아니 차라리 사도 베드로의 말씀과 같이 그는 차라리 믿지 않는 것이 더 낫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서도 행악자가 누군지도 모르고 있는 사람들은 성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초등학문을 보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인생입니다
다 악하다는 것을 성경에서 정의를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말씀을 보면서도 왜 우리가 악한 자인가를 전혀 모르고 있고 그런 유대교인들이 자기들의 철학에 따라 주님을 행악자라고 하면서 빌라도의 법정에 그러니까 앞으로 종교가 되는 로마에 고소를 하고 있습니다.
유대교인입니다
지금 요한복음18장은 종교와의 싸움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저 주님께서 유대교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시는 일이 아니라 성경 전체는 종교와의 싸움을 말씀을 하고 있고 육체로는 지는 것과 같지만 그 일은 이미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창조하신 일의 영광이라는 말씀입니다.
종교입니다
그들은 육체적으로는 이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일로 주님께서는 세상을 이기신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세상을 이기시는가 하면 육체는 짐승에게 주고 이제 하나님의 능력으로 영으로 부활을 하신다는 말씀을 하고 있고 그 일이 창조하신 일에서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영화롭게 하시는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유대교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성경을 보고 있지만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자기 땅에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지만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으니까 성경을 이루기 위해서 주님을 고소를 하고 있습니다.
빌라도입니다
그는 세상을 대표로 하는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그는 종교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고소를 하자 너희가 무슨 일로 이 사람을 고소하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그러자 유대교인들은 이 사람이 행악자가 아니었으면 우리가 당신에게 넘기지 않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빌라도가 대답합니다.
너희는 저를 데려다가 너희 법대로 재판하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세상도 재판은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알고 대답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재판을 하지 않겠다고 하면서 너희가 데려다가 너희 법대로 재판을 하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영의 일을 모릅니다.
그런 인생들이 종교가 되니까 재판을 세상으로 끌고 가서 자기 땅에 나타내신 독생하신 하나님을 죽이려고 하고 있습니다. 유대교인들만 영의 일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이방의 종교인들 역시 그들과 같은 인생들이고 그 철학적 사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종교인입니다.
그들은 빌라도가 예수 그리스도를 재판하지 않겠다고 말을 하자 자기들에게는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권이 없다고 하면서 종교의 다수의 힘을 빌어서 끝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그들을 원수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성경을 보고 있지만 이 세상 초등학문으로 보이고 있는 사람들은 누가 원수인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종교에서 잘 편집이 되어 있는 텍스트를 보면서 그 문자를 안다고 해서 성경을 본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거를 받지 못하면 그들은 성경을 보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저 성경의 문자를 안다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유대교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방의 종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지만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누구신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영생입니다
주님께서 17장3절에서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지만 어느 누구도 주님의 말씀대로 믿지를 않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바로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창조주시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분이 창조하신 일의 영광을 우리 인생들에게 알게 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셔서 생명을 얻게 하는 일을 이루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지만 성경을 보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빌라도의 법정입니다
예수께서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가리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천국복음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천국에 가는 것을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생명을 얻어 간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천국입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에게 생명을 얻게 하는 모든 구속의 일을 이루셨습니다. 그것이 이미 모세의 율법에 기록이 되어 있고 그리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성경에서 주님께서 어떠한 죽음으로 죽어야 하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신명기21:23절을 보겠습니다. (구 205쪽)
“그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고 당일에 장사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
성경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방의 종교인들은 성경을 안 보고 있습니다. 그들은 성경을 보고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 초등학문을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인생의 철학에 따라 그 언어를 알기 위해서 히브리어를 공부를 하고 있고 헬라어를 공부를 하면서 그 지식을 자랑을 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어입니다
그리고 헬라어입니다. 그것을 안다고 해서 예수께서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가리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함이라는 말씀을 알 수 있습니까? 그가 아무리 히브리어와 헬라어에 정통하고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해도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어떻습니까?
그가 아는 지식이 도리어 의가 되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데 있어서 방해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늘 말씀을 하고 있지만 우리 성도는 그 어떤 것으로도 우리의 의를 삼아서는 안 되고 그것으로 부자가 되어서는 주님의 말씀과 같이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하신 말씀 그대로 된다고 믿고 있습니다.
부자입니다
율법의 행위의 의만이 부자가 아닙니다. 지식 역시 부자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도 의가 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 성경의 기초를 모르는 사람들이 결국에는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다가 둘 다 구덩이에 빠지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입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우리 인생은 피조물입니다. 어느 누구도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성경대로 모든 구속의 일을 이루심으로 해서 우리에게 생명을 얻게 하시고 그 나라를 이루신다는 것을 성경에서 다 보여주시고 있습니다.
성경이 아니고는 안 됩니다.
그런데 종교인들은 성경을 본다고 하면서 그것을 이 세상 초등학문으로 만들어 버리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자기들이 알고 있는 알량한 지식을 가지고 선생이라고 하면서 교회 안에서 가르치고 있고 자기만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들어가려고 하는 사람의 문도 막아서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믿을 수 있습니까? 가장 기초가 되는 것이 성경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고 그 성경대로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구속의 일을 이루어 주시는 것을 알게 됨으로서 성령이 오심으로 해서 믿음으로 역사를 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거를 받고 성령이 역사를 함으로 해서 믿음으로 우리가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본다고 하는 그들이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어떻게 죽으실 것인가에 대해서 응하게 하는 말씀을 모르고 있다면 그는 믿고 싶어도 믿을 수 없습니다.
저는 놀랍습니다.
성경을 보면 다 증거를 해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해서 믿음으로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 믿음이 우리의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 되고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가 되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천국의 실상이 되고 있고 지금은 볼 수 없지만 천국에 대한 증거가 된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알 수 있습니까?
그가 성경을 많이 읽는다고 알 수 있습니까? 그가 평생을 텍스트만 보고 산다고 해서 천국복음에 대해서 깨달을 수 있습니까? 성경의 중심이 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대해서 바로 알고 있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영의 일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우리 인생은 육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인생은 깨달을 수 없습니다. 이 성경도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선지자들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하는 성경을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인간으로는 이 성경 자체를 기록할 수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을 보면 뭐 합니까?
우리가 믿는 분은 창조주 하나님입니다. 그리고 우리 인생은 가상현실속의 존재와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인생이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아서 알 수 있습니까? 그러나 놀랍게도 성경을 기록하게 하시고 또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게 역사를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성경입니다
그리고 우리 피조물이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 방법입니다. 그러나 인생들이 문자를 아는 지식이 있는 것으로 성경을 마치 이 세상의 책으로 생각을 하면서 그저 문자를 아는 것으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고 있고 영생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그들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주님이 어떻게 죽으실 것을 가르쳐 하신 말씀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빌라도와 유대인들이 하는 대화를 통해서 주님께서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가리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그대로 죽으신다는 것을 가리켜 하신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죽어야 합니까?
신명기 17장의 말씀에서 본 것과 같이 온 회중의 돌에 맞아 죽어야 합니다. 유대인들의 말과 같이 주님께서 행악자라면 돌에 맞아 죽어야 합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어떻게 죽으실 것을 신명기 21장에서 말씀을 하고 있고 로마가 지배를 함으로 해서 빌라도의 말과 같이 너희가 저를 데려다가 너희 법대로 재판하라고 하지만 당시 법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을 말을 하고 있고 그럼으로 해서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입니다
주님께서는 분명히 유대인들의 기준이라면 돌에 맞아 죽어야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율법에 주님께서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신명기 21장의 말씀은 주님께서 나무에 달려 죽으실 것을 율법에 기록을 하신 말씀입니다.
성경대로입니다
모든 말씀은 성경대로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성경대로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져야지 성경을 보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고 그런 성도만이 성령이 오심으로 해서 믿음으로 역사를 해서 히브리서의 말씀과 같이 그 믿음이 실상이 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악한 자입니다
온 회중이 돌로 쳐 죽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볼 때 주님은 행악자입니다. 그래서 빌라도의 법정으로 고소를 하러 끌고 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율법에 기록이 되어 있는 그대로 죽지 않고 나무에 달려 죽어야 하시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유대인들의 돌에 맞아 죽지 않으시고 빌라도의 법정에서 십자가형을 받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나무에 달려 죽은 자입니다
왜 나무에 달려 죽습니까? 그것을 신명기 21장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주님께서는 저주를 받아 죽으셔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입니다
그래서 그는 성경을 기록하면서 이는 예수께서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가리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냥 유대인들의 주장과 같이 행악한 자로서 온 회중의 돌에 맞아 죽는 자가 아니라 저주를 받아 나무에 달려 죽은 자가 된다는 것을 신명기 21장에서 기록이 되어 있고 신명기21장의 말씀과 같이 죽는다는 것을 요한복음 18장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입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완전케 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주님께서 이루심으로 해서 완전케 하시는 율법도 있습니다. 그러나 신명기의 율법은 종교에 의해서 주님께서 어떠한 죽임을 당하시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죽을 죄 입니다.
유대인들에게 주님은 죽을죄를 지었기 때문에 지금 빌라도의 법정으로 왔고 그리고 빌라도에게 이 사람이 행악자라고 하면서 우리에게는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권이 없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종교에 의해서 예수 그리스도는 죽을죄를 지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것이 신명기 21장의 율법입니다.
율법입니다
그대로 이루신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율법은 계속해서 말씀을 하지만 인생의 철학으로 알고 있는 성문법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유대교라는 종교에 의해서 이렇게 되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아도 이렇게 죽인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누가 보아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는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이 신명기의 율법을 보고 인용을 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전하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새번역입니다
우리가 조금 더 확실하게 증거를 받을 수 있게 번역이 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2절부터의 말씀을 보면 죽을죄를 지어서 처형된 사람의 주검은 나무에 매달아 두어야 합니다. 그러나 당신들은 그 주검을 나무에 매달아 둔 채로 밤을 지내지 말고, 그 날로 묻으십시오. 나무에 달린 사람은 하나님께 저주를 받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당신들은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당신들에게 유산으로 준 땅을 더럽혀서는 안 됩니다. 라고 번역을 하고 있습니다.
종교입니다.
유대교인들이 지금 빌라도에게 말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사람을 죽이는 권한이 없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공동번역에서는 죽을죄를 지은 사람을 처형하고는 나무에 달아 효시할 경우가 있다고 번역을 하고 있고 실제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종교가 죽을죄를 지은 것과 같이 주님을 십자가에서 죽이고 있습니다.
성경대로입니다
사도 요한 역시 이는 예수께서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가리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말씀대로 주님께서는 죽으신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보고 신명기의 율법을 인용을 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은 성경을 인생의 철학으로만 보고 있다는 뜻입니다.
성경을 응하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반드시 이 응하는 말씀을 성경에서 찾아서 인용 구절을 달아 놓아야 합니다. 그런데 다른 말씀들은 그렇게 인용을 잘 찾아서 첨삭을 해 놓은 종교인들이 너무도 쉽게 말씀을 하고 있는 신명기의 말씀은 인용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율법을 보는 인생들의 철학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율법을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완전케 하시는 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이 그렇게 해야 하는 성문법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인용을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것이 종교인들의 철학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너무도 중요하지 않습니까? 이방의 종교인들은 이 십자가를 형상으로 만들어서 우상과 같이 섬기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종교에 의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리시는 일을 율법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데도 그 말씀이 창조하신 일의 영광에서 무엇을 말씀을 하는지를 모르니까 신명기의 율법 따로 그리고 요한복음의 말씀을 따로 보고 있습니다.
성경을 응하게 하고 있습니다.
그 응하는 말씀이 바로 신명기의 말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종교에 의해서 그들의 철학에 따라 행악자가 되어서 나무에 달려 죽게 되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나무에 달려 죽는 자를 그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고 당일에 장사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철학입니다
그렇게 생각을 한다는 말씀입니다. 지금 유대교인들이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면서 하나님께 저주를 받은 것과 같이 생각을 하게 된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들은 유월절을 먹기 위해서 그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고 당일에 장사하는 것을 우리가 성경에서 보고 있습니다.
누구입니까?
이 율법대로 성경에서 이루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우리가 성경을 보고 있지만 이 율법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유대인들에게 저주를 받아 행악자가 되어서 나무에 달려 죽은 자가 된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이 유월절을 더럽히지 않고 먹는다는 것을 아시고 그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고 당일에 장사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그리고 율법입니다. 그냥 기록이 되었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모든 성경은 이렇게 반드시 기록이 된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도 자기들이 선생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성경을 보면서도 창조하신 일의 영광을 모르니까 무슨 말씀을 하고 있는지를 모르고 심지어는 율법이 폐하여졌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입니다
종교에 의해서는 저주를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육신으로 나타 난 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입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은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리우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종교에 의해서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으신 것과 같이 죽으셨지만 영으로는 부활을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갈라디아서에서도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를 받은 자라고 신명기의 율법을 인용을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종교입니다
종교는 우리 인생들을 율법주의에 빠지게 하고 있고 그 율법에 의해서 저주를 받게 하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일을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육체로는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종교입니다
그들이 이렇게 성경을 응하게 하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신명기의 율법은 이스라엘이 종교가 되어 그렇게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주님을 행악자라고 하면서 저주를 받은 자라고 해서 십자가에서 죽게 하는 일을 이미 신명기의 율법에서 정하신 일이고 그 일을 응하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을 하면서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모든 성경이 이렇게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아버지와 함께 영화롭게 하시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신 성도만이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대로입니다
성경을 응하게 하신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이방의 종교는 이렇게 성경에서 응하게 하는 말씀을 찾아 믿는 일을 알레고리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교회사를 보면 종교가 되고 난 후에 이미 그들은 유대교인들과 같이 성경을 인생의 철학으로 보고 있어서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을 수 없었다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식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더 성경을 보는 지식이 경직이 되어 있다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들은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는 것보다는 성경의 문자를 그대로 아는 것을 더 중요시하게 생각을 하고 있고 그것이 인생의 철학으로 더 깊이 빠지게 하고 있지만 인생들은 그 철학적 지식을 더 좋아하고 있고 그것이 종교가 되고 있습니다.
시편31:13절을 보겠습니다. (구 823쪽)
“내가 무리의 비방을 들으오며 사방에 두려움이 있나이다 저희가 나를 치려 의논할 때에 내 생명을 빼앗기로 꾀하였나이다”
성경이 응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우리는 어떻게 해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성경을 본다고는 하지만 성경이 어떻게 응하는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유대교인들도 그렇고 이방의 종교 역시 성경이 어떻게 응하게 되는지도 모르면서 요한복음의 말씀을 보고 있습니다.
쉽게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입니다. 시작과 끝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창조를 하실 때부터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질 때까지의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시는 분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을 믿어야 하고 그 창조는 시작부터 끝까지의 모든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입니다
성경을 보면 뭐 합니까? 그대로 이루어진 일을 믿어야 하는데 그 성경을 보면서도 믿지를 않고 있고 심지어는 자기들의 철학적 생각으로 마음대로 성경을 억지로 풀고 있습니다. 인생들은 종교가 되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철학적 사상을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믿고 싶어도 믿을 수 없습니다.
종교인들이 거짓 선지자들이 많아서 소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싶어도 믿을 수 없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이 시대 종교 안에서 온갖 미혹적인 말을 하고 있으면서도 영의 일이다보니까 어느 누구도 증거를 할 수 없으니까 자기들이 하고 싶은 말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성경을 아시기 바랍니다.
주의 형제 야고보가 말씀을 합니다. 지혜가 부족하거든 꾸짖지 아니하고 후히 주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너희가 악할찌라도 자식에게 좋은 것을 줄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입니다.
왜 성경은 우리에게 믿음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믿음이 아니고는 안 되기 때문에 믿음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으로는 이해할 수 있는 말씀이 아니기 때문에 믿음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래서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아 믿음으로 역사를 해야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믿음입니다.
믿음을 주기 위해서 성경을 응하게 하시고 있습니다. 사실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수천 년 동안 40여명 이상이 되는 선지자들이 기록을 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다 같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이 응해야 합니다.
지금 요한복음 18장도 보시기 바랍니다. 빌라도와 유대인들이 하고 있는 대화에 대해서 알아야 합니다. 그런 성도만이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하심이라는 말씀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빌라도와 유대인들이 하고 있는 대화를 전혀 모르고 있는 사람들은 성경을 아무리 보아도 도무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를 모르게 되어 있습니다.
말씀이 응하게 되었습니다.
신명기의 말씀과 갈라디아서의 말씀을 인용을 하지 않으면 성경이 응하게 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전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고 신명기의 말씀을 보고 또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에서 말씀을 하는 율법의 저주를 보니까 성경이 응하게 되었다는 것을 우리가 깨달을 수 있고 그럼으로 해서 주님께서 성경을 응하게 하셨다는 말씀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믿을 수 있습니다.
이 믿음입니다.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해서 이 믿음이 역사를 하게 되고 그럼으로 해서 우리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 되고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가 됨으로 해서 하나님 나라를 믿을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에 우리가 주님과 같은 형상으로 부활을 하는 일을 믿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입니다
그리고 그 율법을 사도 요한이 그리고 사도 바울이 인용을 해서 또 다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뿐 아니라 성경이 응하는 말씀은 시편에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많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시편 31편에서도 내가 무리의 비방을 들으오며 사방에 두려움이 있나이다. 저희가 나를 치려 의논할 때에 내 생명을 빼앗기로 꾀하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저는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기 위해서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어떻게 증거를 받는가 하면 그분이 이 세상에 나타내신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심을 증거를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그분이 이 세상에 오셔서 창세전에 아버지와 가졌던 영화를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영화롭게 하시는 일을 증거를 받고 있고 그것이 믿음으로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제가 성경을 보는 목적입니다
이렇게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창세전에 있던 하나님의 영화를 나타내 주심으로서 그 일을 믿음으로 역사를 해서 영생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이 인생의 철학이 아니라 성령이 오심으로 해서 성경에서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는 일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래서 사도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가리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의 일입니다
인생의 철학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소망하는 하나님 나라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가 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주님께서 하신 일이 응하게 된 일을 알아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next 26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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