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18:29절을 보겠습니다. (신 180쪽)
“그러므로 빌라도가 밖으로 저희에게 나가서 말하되 너희가 무슨 일로 이 사람을 고소하느냐”
성경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바로 보아야 합니다. 성경을 보라고 하니까 성경의 문자를 아는 것으로 성경을 보았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일부터 시작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 인생들이 생명을 얻게 하는 모든 구속의 일을 이루시고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기까지 모든 말씀이 다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성경의 사건입니다
그냥 우연히 이루어졌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저 성경의 문자를 보고 하나님께서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셨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실 때는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을 보시고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것을 우리는 성경에서 증거를 받아야 합니다.
우연은 없습니다.
물론 성경에 우연이라는 단어가 기록이 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말을 하는 그런 우연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실 때부터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모든 말씀은 창조하신 일의 모든 대략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다 이루신 일이라는 것을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사도 베드로입니다
그가 어떤 사람인가를 충분히 말씀을 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인간적이었다면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충분히 같이 죽었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런 인간적인 내용을 말씀을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세상의 책입니다
아마도 지금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시는 상황이라면 충분히 같이 죽을 사람이 있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의 책은 그런 같이 죽은 사람의 이름도 기록이 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런 이 세상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도 베드로도 충분히 그렇게 할 사람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런 인간의 감성과 의로움을 기록한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얻게 하심으로 해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는 말씀을 기록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는 주님과 같이 죽겠다고 큰소리로 장담을 했지만 성경에는 이미 시편에서 말씀을 하심으로 해서 주님께서 홀로 십자가를 지실 것을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그럴 사람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런 인간의 의로움이나 영웅 심리를 기록한 말씀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리 시편에 사도 베드로가 주님과 같이 죽을 수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시편88편에서 주께서 나의 사랑하는 자와 친구를 내게서 멀리 떠나게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구원을 말씀을 합니다.
우리는 바로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의로움으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이제까지 충분히 말씀을 해서 우리 성도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성경을 모르기 때문에 자기의 의로움을 나타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시편(44:3.)에서 말씀합니다.
저희가 자기 칼로 땅을 얻어 차지함이 아니요 저희 팔이 저희를 구원함도 아니라 오직 주의 오른손과 팔과 얼굴의 빛으로 하셨으니 주께서 저희를 기뻐하신 연고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은혜입니다
우리가 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오직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장사 지내시고 삼일 만에 영으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나심으로 해서 우리도 그의 생명을 얻은 자 되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고 그것이 우리의 영생입니다.
주님의 기뻐하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실 때부터 기뻐하셨습니다. 그래서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기뻐하셨는가 하면 창세 전에 아버지와 주님이 함께 가지셨던 영화를 보셨기 때문에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어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는 일을 보셨기 때문에 기뻐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종교입니다
그들은 자기 땅에 오셔서 우리 인생들에게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해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죽였습니다. 그것도 자기들의 종교의 명절을 더럽히지 않게 하기 위해서 유월절 예비일에 십자가에 죽게 하심으로 해서 유월절을 지키고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종교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그들이 하나님을 죽이는 것이 종교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방의 종교도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요한계시록에서 두 짐승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얻게 하는 일을 믿지 않겠다는 것을 그들이 율법을 지키는 것으로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입니다
그가 내가 주님과 함께 죽을지언정 주님을 버리지 않겠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사도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세 번 부인하리라고 말씀을 하신 것은 그냥 사도 베드로의 용기를 꺾기 위해서 말씀을 하신 것이 아니라 이미 시편에 기록이 되어 있는 말씀대로 하셨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럼으로 해서 성경대로 이루어지는 일을 믿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인간적입니다
사도 베드로입니다. 그가 세 번을 부인을 한다는 것은 사실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성경에 이미 기록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실제 사도 베드로는 주님의 말씀과 같이 세 번을 부인을 했다는 것을 4복음서에서 다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완전한 부인입니다
우리 성도를 대표로 해서 사도 베드로가 주님을 부인을 하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여호와께서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케 하셨은 즉 그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그 씨를 보게 되며 그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3번 부인입니다
사도 베드로를 대표로 해서 우리 성도의 허물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대로입니다
성경을 이스라엘의 역사로 보지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다시 말씀을 하지만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일의 대략을 말씀을 하고 있고 이제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시면 우리가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심을 받아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영화롭게 하시는 일을 증거를 받아 믿음으로 역사를 해서 태초에 있는 생명을 얻는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증거를 받지 못 합니다.
그런 유대인들이 자기 땅에 오신 독생하신 하나님을 믿지를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주님을 십자가에 죽이면서 율법의 문자를 아는 것으로 더럽힘을 받는다고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그들이 유월절의 의미를 전혀 모르고 잔치를 먹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영생의 의미를 알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율법의 문자 그대로 하나님을 죽이면서까지 잔치를 먹겠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빌라도가 그들에게 나와서 "당신들은 이 사람을 무슨 일로 고발하는 거요?" 하고 물었다.”
종교와의 싸움입니다.
우리가 이제까지 성경을 보았습니다. 물론 종교라는 단어가 직접적으로 말씀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요한복음을 보더라도 주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지만 주님을 대적을 했던 사람들이 바로 종교인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이제 주님을 죽이기 위해서 군대를 보내서 잡아가서 세상 법정에 고발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요한계시록에서 환상으로 보여주셨습니다. 두 짐승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들에게 속한 사람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속한 사람들과의 싸움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적인 일이지만 우리 성도는 종교에 속한 사람들과 싸우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싸움입니다.
우리 성도의 믿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반드시 믿음으로 이겨야 한다는 것을 성경에서는 분명히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는 종교에 대해서 알고 있고 그 종교인들이 어떠한 철학적 사상을 가지고 있는가를 잘 알고 있습니다. 적은 누룩이 온 덩이를 부풀게 하고 있고 또 아주 적다고 생각을 하는 그들의 철학이 우리를 영생을 얻지 못하게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유대교인들입니다
더럽히지 않고 유월절을 먹겠다고 하고 있고 그래서 관정에 들어가지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인생의 철학에 따라 성경을 보고 더럽히지 않겠다고 하는 그것이 우리의 누룩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나 역시 그들과 같이 더럽히지 않게 하는 행위에 미혹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종교인들입니다
주님을 고소를 하고 있습니다. 왜 고소를 하는가 하면 인생의 철학으로 주님께서 하나님께로서 오신 분이심을 믿을 수 없고 무엇보다도 그분이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그대로 영존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을 수 없기 때문에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고소를 하고 있습니다.
시편9:3-4절을 보겠습니다. (구 808쪽)
“내 원수들이 물러갈 때에 주의 앞에서 넘어져 망함이니이다 주께서 나의 의와 송사를 변호하셨으며 보좌에 앉으사 의롭게 심판하셨나이다”
성경입니다
우리는 정말 성경을 바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모든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거를 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기초로 삼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도 5장에서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해서 증거를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모든 성경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그렇게 보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유대인들도 그렇고 이 시대 이방인들도 역시 성경을 보고 있지만 심지어는 신학을 공부를 한 사람들이 수백 번을 읽고 있지만 가장 기본이 되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거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시지 않으면 인생은 아무리 지혜가 있다고 해도 거기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기초가 안 되어 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종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시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인생의 철학에 따라 성경을 보기 때문에 성경을 아무리 보아도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거를 받을 수 없고 그런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싶어도 믿을 수 없습니다.
누가 고소합니까?
고소, 송사 같은 단어입니다. 한글로 번역이 될 때 그 말씀에 더 의미가 가까운 한글로 번역을 하다보니까 고소라고도 번역을 하고 송사라고도 번역을 했습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그런 면에서 우리 한글이 언어의 다양성과 풍부성이 좋다는 것을 늘 말씀을 하고 있고 영생을 얻는데 있어서는 한글이 더 좋다는 것을 저는 강조를 해서 말씀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히브리어와 헬라어의 원어의 뜻을 알아야 한다고 말을 하고 있지만 그것은 어리석은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저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 전체를 보아야 하고 성경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을 하고자 하는 뜻을 알아야 한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한글은 성경 전체의 의미를 아는데 있어서 참 좋은 언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종교입니다
그들은 주님의 원수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요한복음을 보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하나님 나라와 그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1장부터 보았지만 유대교에 있는 종교인들이 주님께서 말씀을 하실 때 단 한번이라도 네! 라고 대답을 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없습니다.
그들은 계속해서 반대만 했습니다. 그러니까 대적만 했습니다. 마치 원수와 같이 대적을 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시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에게 생명을 얻게 하는 모든 구속의 일을 이루셨습니다. 그리고 성경을 보면 알겠지만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을 환상으로 보여주시고 있습니다.
전쟁입니다
그리고 싸움입니다. 성경을 보면 그렇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원수라는 말씀과 대적이라는 말씀을 많이 사용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일의 영광에서 보니까 원수가 되었다는 것을 시편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대로입니다
왜 선지자들을 보내셔서 성경을 기록하게 하셨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성경을 기록하게 하시고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우리가 보고 있고 그 말씀이 창조하신 일의 영광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럼으로 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에게 생명을 얻게 하시는 모든 일을 우리가 믿음으로 역사를 하게 하시고 그 믿음이 실상이 되게 하시겠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종교입니다
그들은 세상 속한 자이고 주님과 그리고 우리 성도와도 원수입니다. 그들이 주님을 죽이기 위해서 고소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시편의 예언의 말씀대로 내 원수들이 물러갈 때에 주의 앞에서 넘어져 망함이니이다 주께서 나의 의와 송사를 변호하셨으며 보좌에 앉으사 의롭게 심판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을 고소를 해서 죽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실제 육체로 이루어지고 있지만 그 일을 통해서 우리에게 생명을 얻게 하는 구속의 일을 이루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유대교는 원수가 되어서 주님을 죽이고 있지만 창조하신 일의 영광에서는 내 원수들이 물러갈 때에 주의 앞에서 넘어져 망함이니이다 주께서 나의 의와 송사를 변호하셨으며 보좌에 앉으사 의롭게 심판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유대교입니다
로마 시대가 아니라면 그들은 대제사장이 재판을 해서 얼마든지 주님을 죽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 로마가 지배를 하다보니까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재판은 유대인들이 함부로 할 수 없었다는 것을 이제 뒤에서 말씀을 하고 있고 그들이 빌라도에게 고소를 하는 것은 원수가 되어서 주님을 죽이기 위해서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영의 일입니다
성경을 육의 일을 보면 안 됩니다. 우리 피조물들이 볼 수 있는 것은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신 일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을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 창조물은 티끌과 같고 헛것과 같이 사라지고 만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실상은 무엇입니까?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러나 우리 피조물들은 실상을 볼 수 없습니다. 그 실상을 볼 수 없고 우리가 성경을 보아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기록하게 하셨고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해서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게 함으로 해서 우리가 실상을 믿을 수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눈으로 보고 철학으로 아는 것은 원수들이 이기는 것과 같이 보이고 있지만 성경은 내 원수들이 물러갈 때에 주의 앞에서 넘어져 망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그렇습니다.
종교 안에 있는 그들은 다 망하는 자가 되었다는 것을 우리 성도들은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고 있기 때문에 믿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하나님 나라를 보고 있기 때문에 주님께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을 믿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성도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심을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종교인들은 이 영의 일을 믿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율법을 보고 그것을 지키고 있습니다. 이 세상초등학문을 따라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은 참 놀랍습니다.
육체를 가지고 있는 우리 인생의 철학적 지식으로는 아무리 보고 싶어도 볼 수 없습니다. 만약에 그것을 볼 수 있다면 유대교인들은 절대로 주님을 죽이는 악한 일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믿음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성경에서 믿음이라는 단어를 보고 있지만 무엇이 믿음인가를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오직 믿음입니다.
왜 믿음인가 하면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를 알 수도 없습니다. 인생들을 보시기 바랍니다. 지금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사도들이 신약 성경을 기록했지만 인생들은 그것을 보고도 주님이 누구신가를 전혀 모르고 성경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우리가 믿는 유일하신 참 하나님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시대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으로 믿는 종교가 하나도 없습니다. 이방의 종교를 보더라도 삼위일체를 믿는 종파가 다수를 이루고 있고 일부는 예수 그리스도를 인간으로 보고 있고 단지 하나님께서 성령을 한량없이 부어주심으로 해서 이적을 행하시고 선지자로서 하나님의 일을 이루셨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없습니다.
이 시대 이방인들의 종교의 종파를 보시기 바랍니다. 참 신기하게도 주님께서는 요한복음5장을 통해서 아버지와 아들이 동등하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지만 그렇게 믿는 종파가 하나도 없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다 원수가 되어서 지금도 유대인들과 같이 주님의 원수가 되어서 망하는 길로 가면서도 그것이 주님께서 아버지와 함께 영화롭게 하시는 일이기 때문에 인생의 철학으로는 깨달을 수 없습니다.
저는 정말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우리 성도는 주님께서 유일하신 참 하나님으로 믿고 있습니다. 세상 법정에 고소를 할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민주주의 국가가 되어 표현의 자유가 있기 때문에 그들이 고소를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적은 숫자가 아버지께서 주님에게 주신 자들이지만 하나님께서 이 시대도 지켜 주시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영화롭게 하시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비록 유대교인들은 육적으로 일을 하고 있지만 시편의 말씀과 같이 내 원수들이 물러갈 때에 주의 앞에서 넘어져 망함이니이다 주께서 나의 의와 송사를 변호하셨으며 보좌에 앉으사 의롭게 심판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모릅니다.
이 일을 하는 유대교인들은 시편의 말씀이 자기들에게 하고 있는 말씀이라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들만 모르는 것이 아니라 이방인들 역시 종교가 되어 주님의 원수가 되어 망하는 길로 가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무엇인지를 인생의 철학으로는 깨달을 수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들이 성경을 보고 있지만 성령이 오시기 전에는 깨달을 수 없는 말씀이라는 것을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시기 전에는 어느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신명기1:17절을 보겠습니다. (구 260쪽)
“재판은 하나님께 속한 것인즉 너희는 재판에 외모를 보지 말고 귀천을 일반으로 듣고 사람의 낯을 두려워 말 것이며 스스로 결단하기 어려운 일이거든 내게로 돌리라 내가 들으리라 하였고”
성경입니다
인생들은 기본적으로 성경을 보는 지식부터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이스라엘을 통해서 가르쳐 주고 있고 그들이 왜 성경을 잘못 보고 있는가를 여러 가지 비유와 예표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역시 인생은 같은 철학을 가지고 있어서 성경을 아무리 보아도 하나님께서 말씀을 하시는 영생에 대한 말씀을 깨닫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하나님입니다
우리에게 성경을 주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미 창조는 다 이루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기초적인 말씀부터가 인생의 철학으로는 성경을 아무리 보아도 깨달을 수 없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인생입니다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우리는 피조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아니고 신의 뜻을 알 수 없다는 것을 먼저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인생들은 하나님께서 선지자들로 감동을 해서 인생의 언어로 성경을 기록하게 하시니까 그 성경의 문자를 보고 아는 것으로 마치 하나님과 같은 지혜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창조입니다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셨다는 말씀을 어느 누가 깨닫고 있습니까? 히브리서에서 이미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는도다 그 말씀하신 바와 같으니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저희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다 하였으나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그 일이 이루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창조할 때입니다
이 일을 이루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창세기2장4절에서 이 일을 이루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제 그 이루신 일을 우리 인생들이 어떠한 방법으로도 증거를 받을 수 없으니까 선지자들로 감동을 해서 기록하게 하신 것이 우리가 보고 있는 성경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창세기입니다
인류의 시작과 그리고 이스라엘의 조상들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리고 모세가 율법을 반포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창세기부터 해서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창조를 하셨다는 말씀을 하고 있고 그러나 이미 창조는 다 이루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들이 아무리 지혜가 있다고 해도 이 창조하신 일의 영광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창조하신 일의 영광입니다
그저 성경의 문자를 보고 아는 것으로 인생들은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그들이 말을 하는 창조주는 그저 시작을 한 일을 믿는 그런 창조를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가 다 이루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입니다
이미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는도다 그 말씀하신 바와 같으니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저희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다 하였으나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그 일이 이루었느니라 제 칠 일에 관하여는 어디 이렇게 일렀으되 하나님은 제 칠 일에 그의 모든 일을 쉬셨다 하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제 칠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쉬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창조를 다 이루셨기 때문에 쉬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쉬고 계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더 이상 창조된 세상에 개입을 하지 않고 있고 이제는 안식을 하시고 있고 다만 우리 인생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게 하고 있습니다.
이 일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 반드시 이 일을 믿는 일이 기초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 창조하신 일에서 이스라엘은 교회를 비유로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교회에서 있는 일을 비유와 예표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인생들은 성경을 보면서도 교회가 무엇인지 조차 모르고 그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말씀을 하니까 자기들의 종교 안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을 보고 믿는다고 하는 것이 인생의 철학입니다.
성경입니다
우리가 보는 성경은 교회 안에 있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창조를 다 이루시고 하나님께서는 지금 안식을 하시는 것과 같이 쉬고 계신다는 말씀을 하고 있고 그러나 창조된 세상에 교회 안에서 있는 일을 우리 인생들의 법과 당시 근동 지방의 풍습과 그리고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입니다
늘 말씀을 하고 있지만 그들은 교회입니다. 성경을 보면서도 광야가 교회라는 것도 그리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에 들어간 이스라엘이 교회라는 것도 모르면서 성경을 본다고 하고 있고 그런 그들이 창조하시고 다 이루신 일을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지 못하니까 인생의 철학에 따라 종교가 되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지만 어느 누구도 성경을 보고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육적 이스라엘입니다
그리고 유대교입니다. 그들은 신약 성경을 안 보니까 그렇다고 어느 정도 인정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방인들은 신약 성경까지 보고 있으니까 정말 깊이 상고를 하면서 지혜를 구하면 어느 정도는 깨달을 수 있다고 저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입니다
그리고 이방에 복음이 전파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이스라엘의 역사보다 이방의 복음이 전파가 된 시간이 더 흘렀다는 것을 우리가 다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는 인생들의 철학은 이스라엘과 조금도 변하지 않는 것을 우리가 이 시대 종교를 보면 쉽게 깨달을 수 있습니다.
교회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창조하신 일의 영광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대제사장이라고 하는 사람과 유대교를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자기들의 민족이 교회라는 것을 조금이라도 생각을 하고 있는가를 우리는 바로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입니다
교회 안에 있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모세의 율법을 그리고 선지자의 말씀을 기록하게 하신 일은 이 세상의 역사가 아니라 교회 안에 있는 일을 우리 인생들이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게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대제사장입니다
물론 앞에서 말씀을 했지만 당시 대제사장은 로마에 의해서 임명이 된 사람들이라는 것을 우리가 역사를 통해서 알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교회라는 것을 그들은 깨달을 수 없고 그래서 세상의 일로 모든 것을 보고 있습니다.
주님을 고소를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도 보시기 바랍니다. 교회 안에 있는 일을 지금 대제사장과 같은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시대 뿐 아니라 이방의 종교를 보면 지금 대제사장이 로마에 관원에게 고소를 하는 것과 같이 고소를 하는 일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미국입니다
언젠가도 한번 말씀을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미국에서 어느 선생이 학교에서 진화론을 가르쳤습니다. 그것을 배우는 것을 학부모가 보고 미국 법원에 그 선생을 고소를 했던 실제 있었던 일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이 선생이 벌금형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세상의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종교에 빠져 있는 사람들은 성경에서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을 수 없으니까 이것이 세상의 일인지 교회 안에 있는 일인지를 전혀 분별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제사장입니다
주님을 고소를 하고 있습니다. 왜 주님을 고소를 하는가 하면 이스라엘이 교회라는 기초조차 모르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인생들이 종교가 되면 성경이 교회 안에 있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창조하신 일의 영광입니다
그 창조하신 일은 다 이루셨고 이제 하나님은 안식을 하고 계신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일에서 교회 안에서 이러한 일이 있다는 것을 신명기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재판은 하나님께 속한 것인즉 너희는 재판에 외모를 보지 말고 귀천을 일반으로 듣고 사람의 낯을 두려워 말 것이며 스스로 결단하기 어려운 일이거든 내게로 돌리라 내가 들으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재판을 합니다.
마치 세상과 같이 인생들이 교회 안에 있는 창조하신 일의 영광을 인생의 철학으로 재판을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을 너무도 잘 아시기 때문에 모세를 통해서 재판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 지금 대 제사장은 로마의 관원에게 재판을 요구를 하고 있고 그것이 종교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물론 독생하신 하나님이 이 세상에 나타내셨기 때문에 인생들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그렇다 해도 주님께서 죽어야 한다고 해도 모세의 율법에서 재판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율법주의라고 하는 유대교조차도 자기들의 필요에 따라 율법을 무시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모세입니다
왜 이 말씀을 하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모든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거를 하고 있습니다. 유대교인들이 재판을 로마에게 요청을 한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아시기 때문에 재판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고 말씀을 하는데도 율법을 지킨다고 하는 대제사장이 모세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자기들의 뜻에 따라 재판을 하기 위해서 로마의 관원에게 맡기고 있습니다.
인생들입니다
성경을 자기들의 철학으로 보고 이렇게 한다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너무도 잘 아시고 있고 실제 이스라엘이 재판을 스스로 해서 많은 선지자들을 죽였고 이제 유대교가 자기 땅에 나타내신 독생하신 하나님을 죽이려고 하고 있고 이방의 종교인들 역시 성경에 고소, 재판이라는 말씀을 보고 실제 세상의 재판과 같이 생각을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교회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교회 안에 있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지금 유대교를 통해서 그들이 자기 땅에 나타내신 독생하신 하나님을 세상 재판에 넘겨 죽이고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성경을 보면서도 이방의 종교인들 역시 성도들을 죽이면서 이 같은 재판을 했다는 것을 우리는 바로 알아야 합니다.
주의 형제 야고보입니다
그래서 그 역시도 야보보서에서 입법자와 재판자는 오직 하나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관대 이웃을 판단하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경은 영생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이 영생을 얻는 일에 있어서 재판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인생들은 영적인 일을 모르고 있고 그들이 육체를 죽이기 위해서 이방인들에게 고소를 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을 고소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유대교의 대제사장이 성경을 바로 알았다면 그는 절대로 주님을 로마의 관원에게 고소를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무엇을 말씀을 하고 있는지를 모르는 종교는 세상 법정에 고소를 해서 하나님께 속한 재판을 인생들이 하게하고 있고 그런 그들이 자기 땅에 나타내신 독생하신 하나님을 죽이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우리 육체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기 위해서 이 성경을 기록하게 하셨고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해서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영화롭게 하시는 일을 하고 있지만 유대교인도 그렇고 이방의 종교인들도 역시 소경이 되어 세상의 일과 하나님의 말씀을 분별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next 26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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